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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사성과 기사굴산

불국기 佛國記 · 법현(法顯) · 동진 의희 연간(416년 무렵) · 단락 8 · 한자 855자 · 낭독 3.4분

「불국기」 한 권 「왕사성과 기사굴산」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예순다섯의 승려 법현이 계율을 구하러 장안을 떠나 사막과 총령을 넘어 천축까지 갔다가, 사자국을 거쳐 바닷길로 돌아온 십오 년의 기록. 다녀온 나라가 서른. 한국·중국·일본이 서로를 적던 시대에, 동아시아 사람이 인도를 제 눈으로 보고 남긴 가장 이른 기행문이다.

1제석이 마흔두 가지를 물은 석실

從此東南行九由延,至一小孤石山。山頭有石室,石室南向。佛坐其中,天帝釋將天樂般遮彈琴樂佛處。帝釋以四十二事問佛,佛一一以指畫石,畫跡故在。此中亦有僧伽藍。

여기서 동남쪽으로 구 유연을 가면 작은 외딴 돌산에 이른다. 산꼭대기에 석실이 있어 남향인데, 부처가 그 안에 앉아 계실 때 천제석이 하늘 악사 반차를 데려와 거문고를 타며 부처를 즐겁게 한 곳이다. 제석이 마흔두 가지 일을 부처께 여쭈니, 부처가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돌에 그으셨는데 그 자국이 아직 남아 있다. 이곳에도 승가람이 있다.

2사리불이 태어나고 열반한 마을

從此西南行一由延,到那羅聚落,是舍利弗本生村。舍利弗還於此村中般泥洹。即此處起塔,今亦現在。

여기서 서남쪽으로 일 유연을 가면 나라 마을에 이르니 사리불이 태어난 마을이다. 사리불은 이 마을로 돌아와 열반하였으므로 곧 이곳에 탑을 세웠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3왕사신성

從此西行一由延,到王舍新城。新城者,是阿闍世王所造,中有二僧伽藍。出城西門三百步,阿闍世王得佛一分舍利起塔,高大嚴麗。

여기서 서쪽으로 일 유연을 가서 왕사신성에 이르렀다. 새 성은 아사세왕이 지은 것으로 안에 승가람이 둘 있다. 성 서문을 나서 삼백 걸음에 아사세왕이 부처의 사리 한 몫을 얻어 세운 탑이 있으니 높고 크며 장엄하고 화려하다.

4빈사왕의 옛 성

出城南四里,南向入谷,至五山裏。五山周圍,狀若城郭,即是䓑沙王舊城。城東西可五六里,南北七八里。舍利弗、目連初見頞鞞處,尼犍子作火坑、毒飯請佛處,阿闍世王酒飲黑象欲害佛處,城東北角曲中,耆舊於菴婆羅園中起精舍請佛及千二百五十弟子供養處,今故在。其城中空荒,無人住。

성을 나서 남쪽으로 사 리, 남쪽으로 골짜기에 들면 다섯 산 안에 이른다. 다섯 산이 빙 둘러 모양이 성곽 같으니, 곧 빈사왕의 옛 성이다. 성은 동서 오륙 리, 남북 칠팔 리다. 사리불과 목련이 처음 알비(頞鞞)를 만난 곳, 니건자가 불구덩이를 만들고 독 넣은 밥으로 부처를 청한 곳, 아사세왕이 검은 코끼리에게 술을 먹여 부처를 해치려 한 곳이 있다. 성 동북쪽 모퉁이 굽이에서 기바(耆舊)가 암바라 동산에 정사를 세워 부처와 제자 천이백오십 인을 청해 공양한 곳은 지금도 그대로 있다. 그 성안은 텅 비어 사는 사람이 없다.

5기사굴산 — 독수리 굴

入谷,搏山東南上十五里,到耆闍崛山。未至頭三里,有石窟南向,佛本於此坐禪。西北三十步,復有一石窟,阿難於中坐禪,天魔波旬化作雕鷲,住窟前恐阿難,佛以神足力隔石舒手摩阿難肩,怖即得止。鳥跡、手孔今悉在,故曰雕鷲窟山。窟前有四佛坐處。又諸羅漢各各有石窟坐禪處,動有數百。佛在石室前,東西經行。調達於山北嶮巇間橫擲石傷佛足指處,石猶在。佛說法堂已毀壞,止有塼壁基在。其山峯秀端嚴,是五山中最高。

골짜기에 들어 산을 끼고 동남쪽으로 십오 리를 오르면 기사굴산에 이른다. 꼭대기 못 미쳐 삼 리에 남향 석굴이 있으니 부처가 본래 이 안에서 좌선하셨다. 서북쪽 삼십 걸음에 또 석굴 하나가 있으니 아난이 그 안에서 좌선하는데, 천마 파순이 독수리로 변화하여 굴 앞에 머물며 아난을 겁주었다. 부처가 신족력으로 돌을 사이에 두고 손을 뻗어 아난의 어깨를 어루만지니 두려움이 곧 그쳤다. 새 발자국과 손 구멍이 지금도 다 남아 있으므로 독수리 굴 산이라 부른다. 굴 앞에는 네 부처가 앉았던 자리가 있다. 또 나한들마다 좌선하던 석굴이 있어 수백을 헤아린다. 부처가 석실 앞에서 동서로 거니실 때, 조달이 산 북쪽 험한 틈에서 돌을 옆으로 던져 부처의 발가락을 상하게 한 곳이 있으니 그 돌이 아직 있다. 부처가 설법하시던 강당은 이미 무너져 벽돌담 터만 남았다. 그 산은 봉우리가 빼어나고 단정하며 장엄하니 다섯 산 가운데 가장 높다.

6법현, 수능엄경을 외우며 하룻밤

法顯於新城中買香、華、油、燈,倩二舊比丘送法顯上耆闍崛山。華、香供養,然燈續明。慨然悲傷,收淚而言︰「佛昔於此住,說《首楞嚴》。法顯生不值佛,但見遺跡處所而已。」既於石窟前誦《首楞嚴》。停止一宿,還向新城。

법현은 새 성에서 향과 꽃과 기름과 등을 사고, 오래 머문 두 비구에게 부탁하여 법현을 기사굴산에 올려 보내 달라 하였다. 꽃과 향으로 공양하고 등불을 켜 밝히니, 슬픔이 북받쳐 눈물을 거두며 말하였다. 「부처께서 옛날 여기 머무시며 수능엄을 설하셨다. 법현은 부처 계실 때 태어나지 못하고 다만 남은 자취만 볼 뿐이로구나.」 이윽고 석굴 앞에서 수능엄경을 외우고, 하룻밤을 머문 뒤 새 성으로 돌아왔다.

7오백 나한이 경을 결집한 굴

出舊城北行三百餘步,道西,迦蘭陀竹園精舍今現在,衆僧掃灑。精舍北二三里有尸摩賒那。尸摩賒那者,漢言棄死人墓田。搏南山西行三百步,有一石室,名賓波羅窟,佛食後常於此坐禪。又西行五六里,山北陰中有一石室,名車帝。佛泥洹後,五百阿羅漢結集經處。出經時,鋪三空座,莊嚴校餝,舍利弗在左,目連在右。五百數中少一阿羅漢。大迦葉爲上座。時阿難在門外不得入。其處起塔,今亦在。搏山亦有諸羅漢坐禪石窟甚多。

옛 성을 나서 북쪽으로 삼백여 걸음 길 서쪽에 가란타 죽원 정사가 지금도 있어 승려들이 쓸고 닦는다. 정사 북쪽 이삼 리에 시마사나가 있으니, 시마사나란 한나라 말로 죽은 사람을 버리는 묘지다. 남산을 끼고 서쪽으로 삼백 걸음을 가면 석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이 빈파라굴이다. 부처가 공양 뒤에 늘 이 안에서 좌선하셨다. 또 서쪽으로 오륙 리를 가면 산 북쪽 응달에 석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이 차제다. 부처가 열반하신 뒤 오백 아라한이 경을 결집한 곳이다. 경을 낼 때 빈 자리 셋을 펴고 장엄하게 꾸몄으니, 사리불이 왼쪽에 목련이 오른쪽에 자리하였다. 오백에서 아라한 하나가 모자랐는데 대가섭이 상좌였고, 그때 아난은 문 밖에 있어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 자리에 탑을 세웠으니 지금도 있다. 산을 끼고 나한들이 좌선하던 석굴이 또한 매우 많다.

8칼로 제 목을 벤 비구

出舊城北,東下三里,有調達石窟。離此五十步,有大方黑石。昔有比丘在上經行,思惟是身無常、苦、空,得不淨觀,猒患是身,即捉刀欲自殺。復念世尊制戒,不得自殺。又念雖爾,我今但欲殺三毒賊。便以刀自刎。始傷,再得須陀洹,既半得阿那含,斷已成阿羅漢果,般泥洹。

옛 성을 나서 북쪽으로, 동쪽으로 삼 리를 내려가면 조달의 석굴이 있다. 여기서 쉰 걸음 떨어져 크고 네모난 검은 돌이 있다. 옛날 한 비구가 그 위를 거닐며, 이 몸은 덧없고 괴롭고 공하다고 사무쳐 부정관을 얻고는 이 몸이 지긋지긋해져 곧 칼을 잡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다. 다시 생각하니 세존께서 계를 지어 스스로 죽지 말라 하셨다. 또 생각하기를, 그러하나 나는 지금 다만 세 독한 도적을 죽이려는 것뿐이라 하고, 곧 칼로 제 목을 그었다. 처음 살을 베자 수다원을 얻고, 반쯤 긋자 아나함을 얻고, 다 끊고서는 아라한과를 이루어 열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