補閑集 卷中
元正冬至,諸牧都護府,例修狀賀相府。尙州牧上晉陽府狀云:「書妙銀鉤,鑑明璣鏡。當北水之至鎭,安鰈海之風濤。率西滸而來開,出鰲宮之日月〔術家謂胡爲北水。初公以奇謀,退兵奉乘輿,西都木海上花山。〕」。又:「佐卯金之中興,攘古月之外侮。乾坤卷入於門下,百千萬乘家不多。城闕奉安於海中,三十六洞天別一〔公於新都沿江環堞,又營宮闕,其御寢及正殿,皆公之傾私賄,遣門客所創也。〕」。又「掃雲北山,洗日東海。天將供樂,降生歌舞之小娥〔小娥十餘輩,年纔六七,皆善歌舞,似非烟火食者也。〕。地亦薦祥,湧出銀丹之大寶〔公聞義安山産寶,命工鑿之,得白銀黃丹。〕」。又「傳家畵㦸之門,擧世玉簪之客。遷都負險,別開無事之乾坤。創學育才,付與大平之日月〔遷都創學,皆出公謀。遣門客,營黌舍,仍納學料。〕」。公摠諸州牧府賀狀,使門下文人科第之,尙牧皆爲第一,以其實錄。
정월 초하루와 동짓날에 여러 목(牧)과 도호부가 으레 글을 지어 상부(相府)에 하례하였다. 상주목이 진양부에 올린 글에 이르기를,
「글씨는 은 갈고리처럼 묘하고 거울은 구슬 거울처럼 밝습니다. 북쪽 물이 이르는 진(鎭)을 맡아 접해(鰈海)의 풍파를 편안히 하시고, 서쪽 물가를 거느려 와 여시니 자라 궁전의 해와 달이 나왔습니다.」〔술가는 오랑캐를 북쪽 물이라 한다. 처음에 공이 기이한 꾀로 군사를 물리고 임금의 수레를 받들어 서도 목해 위 화산으로 모셨다.〕
또 「묘금(卯金)의 중흥을 돕고 옛 오랑캐가 밖에서 업신여기는 것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늘과 땅이 말려 문하에 들었으니 백천만 승(乘)의 집도 많다 할 수 없고, 성과 대궐을 바다 가운데 받들어 두시니 서른여섯 동천(洞天)에 따로 하나입니다.」〔공이 새 도읍에서 강을 따라 성가퀴를 두르고 또 궁궐을 지었는데, 그 침전과 정전이 다 공이 사사로운 재물을 기울여 문객을 보내어 세운 것이다.〕
또 「북쪽 산의 구름을 쓸고 동쪽 바다의 해를 씻으셨습니다. 하늘이 장차 풍류를 바치려고 노래하고 춤추는 어린 계집아이를 내려보냈고〔어린 계집아이 열 남짓이 나이 겨우 예닐곱인데 다 노래와 춤을 잘하여 불로 익힌 것을 먹는 이 같지 않았다.〕, 땅도 또한 상서를 바쳐 은과 단사의 큰 보배를 솟아나게 하였습니다.」〔공이 의안산에서 보배가 난다는 말을 듣고 장인에게 명하여 파게 하니 흰 은과 누런 단사를 얻었다.〕
또 「집에는 그림 창을 세운 문을 전하고 온 세상이 옥비녀 꽂은 손입니다. 도읍을 옮겨 험한 데를 등지니 일 없는 하늘과 땅을 따로 여셨고, 학교를 세워 인재를 기르니 태평한 해와 달을 맡기셨습니다.」〔도읍을 옮기고 학교를 세운 것이 다 공의 꾀에서 나왔다. 문객을 보내어 학사(黌舍)를 짓고 이어 학료를 들였다.〕
공이 여러 주와 목과 부의 하례장을 모아 문하의 문인에게 등수를 매기게 하니 상주목의 것이 다 첫째가 되었으니, 그것이 사실을 적었기 때문이다.
侍中上柱國崔公,功名富貴之極,雅尙出塵,詩語淸婉。忽一夕風淸月朗,松篁自籟,不覺吟一絶云:「滿庭月色無烟燭,入座山光不速賓。更有松絃彈譜外,只堪珍重未傳人。」公未當國時,丁未冬月,寓居加祚里別第,夜坐,見林曹李諸子圍爐打話,書以示之云:「龍騰虎踞列穹豐,壯氣能銷鳳炭紅。莫向晨昏爭鷰蝠,好將行止付天公。」立語神奇,措意淸壯,有雄偉不常之韻。公之不與庸瑣爭,而順受天命承襲大業,於此一聯可見矣。此皇天眷祐於未形,使公不自知,而發此言耳,其金幢之夢,亦何異也!公之第十二樓臺,珠翠森列,奇花異卉蒸紅曬綠,飄飄若登瑤臺望玉淸,不可以耳目以狀容也。然此特侯邸尋常事,不足爲異。若靈泉流入於前池,怪鳥飛鳴於後峯,此必天公地媼,別作溪山逸賞,以供方外之樂也。越甲寅春夏之交,百花方盛,開瓊筵燕兩府。召集當時韻儒四十許人,刻燭賦月花。及懽酣乃作詩,示諸座客曰:「水閣風欞苦見招,簿書叢裡度流年。朱櫻紫笋時將過,紅槿丹榴態亦姸。病久却嫌邀客飮,性慵偏喜聽鶯眠。良辰健日終難再,急趁花開作醉仙。」甲寅季夏久雨不止,公乃作詩曰:「溽暑久敲蒸,陰雲雨不收。市窮喧野叟,江漲鬧漁舟。蚊蚋棲窓机,蝦蟆入竈厨。何時卷炎熱,斫額上層樓。」公之寒亭宜暑,高閣宜雨,似不識民間窮苦,今言暑雨甚悉,以至斫額上樓,其燮理經濟之心,可見於此。
시중 상주국 최공은 공명과 부귀가 지극하면서도 티끌을 벗어나기를 아담히 숭상하고 시의 말이 맑고 아름다웠다. 홀연 어느 저녁 바람이 맑고 달이 밝으며 솔과 대가 절로 울리매, 저도 모르게 절구 하나를 읊었다.
뜰에 가득한 달빛은 연기 없는 촛불이요 자리에 드는 산빛은 부르지 않은 손이로다. 다시 솔의 거문고가 악보 밖을 타니 다만 진중할 뿐 남에게 전하지 못하네.
공이 아직 나라를 맡기 전, 정미년 겨울 달에 가조리 별저에 붙어 살 때 밤에 앉아 임씨·조씨·이씨 여러 사람이 화로를 둘러싸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글로 써서 보였다.
용이 오르고 범이 웅크려 높고 넉넉함을 벌였는데 씩씩한 기운이 능히 봉탄(鳳炭)의 붉음을 녹이네. 새벽과 저녁을 향하여 제비와 박쥐처럼 다투지 말고 가고 멈춤을 하늘에 맡기는 것이 좋으리.
말을 세운 것이 신기하고 뜻을 놓은 것이 맑고 씩씩하여 웅위하고 예사롭지 않은 운치가 있다. 공이 용렬하고 자잘한 이들과 다투지 않고 천명을 순히 받아 큰 업을 이어받은 것을 이 한 연에서 볼 수 있다. 이는 하늘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데서 돌보아 도우시어 공이 스스로 알지 못한 채 이 말을 내게 한 것이니, 저 금당(金幢)의 꿈과 또한 무엇이 다르랴.
공의 열두 누대는 구슬과 비취가 삼연히 벌여 서고 기이한 꽃과 남다른 풀이 붉은 것을 찌고 푸른 것을 쬐어, 표표히 요대(瑤臺)에 올라 옥청(玉淸)을 바라보는 듯하여 귀와 눈으로 형용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다만 후작 집의 예삿일이라 남다르다 할 것이 못 된다. 신령한 샘이 앞 못으로 흘러들고 괴이한 새가 뒤 봉우리에서 날며 우는 것으로 말하면, 이는 반드시 하늘 아버지와 땅 어머니가 따로 시내와 산을 만들어 세상 밖의 즐거움에 이바지한 것이다.
갑인년 봄과 여름이 갈리는 즈음에 온갖 꽃이 바야흐로 성하매 아름다운 자리를 열어 양부(兩府)에 잔치하였다. 그때의 운치 있는 선비 마흔 남짓을 불러 모아 초에 금을 그어 놓고 달과 꽃을 읊게 하였다. 즐거움이 무르익자 시를 지어 여러 손에게 보였다.
물가 누각 바람 든 난간에 애써 부름을 받았으나 문서 더미 속에서 흐르는 해를 보냈네. 붉은 앵두 자줏빛 죽순은 때가 장차 지나고 붉은 무궁화 붉은 석류는 자태가 또한 곱네. 병이 오래되어 도리어 손을 맞아 마시기를 꺼리고 성품이 게을러 유달리 꾀꼬리 소리 들으며 자기를 좋아하네. 좋은 철과 성한 날은 끝내 다시 오기 어려우니 급히 꽃 핀 때를 좇아 취한 신선이 되리라.
갑인년 늦여름에 오랜 비가 그치지 않으매 공이 시를 지었다.
무더위가 오래 두드려 찌는데 그늘진 구름이 비를 거두지 않네. 저자가 궁하여 들 늙은이가 떠들고 강이 불어 고깃배가 시끄럽네. 모기와 각다귀는 창과 책상에 깃들고 두꺼비는 부엌으로 들어오네. 어느 때에 이 더위를 걷어 이마에 손을 얹고 층층 누각에 오르랴.
공의 서늘한 정자는 더위에 마땅하고 높은 누각은 비에 마땅하여 백성의 곤궁함을 알지 못할 듯한데, 이제 더위와 비를 말한 것이 매우 자세하고 이마에 손을 얹고 누각에 오르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그 다스림을 고르게 하고 세상을 건지려는 마음을 여기서 볼 수 있다.
今之詩人評曰:「兪文安公升旦,語勁意淳,用事精簡。金貞肅公仁鏡,凡使字必欲淸新,故每出一篇,動驚時俗。李文順公奎報,氣壯辭雄,創意新奇。李學士仁老,言皆格勝,使事如神,雖有躡古人畦畛處,琢鍊之巧靑於藍也。李承制公老,辭語遒麗,尤長於演誥對偶之文。金翰林克已,屬辭淸曠,言多益富。金諫議君綏,辭旨和裕。吳先生世材,安處士淳之,富贍渾厚。李史館允甫,林先生椿,簡古精雋。陳補闕澕,淸雄華靡,變態百出。此皆一時宗匠也。」欲觀其下手之妙,必於巨構,其短章絶句,不足爲大手之工拙也。然此書止數卷,所載要略,故唯載其絶句詩不多首,標諸家各體而已。況其長篇巨韻,各載於本集,此不收錄。
지금의 시인이 품평하여 말한다. 「유문안공 승단은 말이 굳세고 뜻이 순수하며 고사를 쓰는 것이 정밀하고 간결하다. 김정숙공 인경은 무릇 글자를 쓸 때 반드시 맑고 새롭게 하려 하므로 한 편을 낼 때마다 그때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이문순공 규보는 기운이 씩씩하고 말이 웅장하며 뜻을 새로 지어 기이하다. 이 학사 인로는 말이 다 격에서 이기고 고사를 부리는 것이 신묘하여, 비록 옛사람의 두렁을 밟은 데가 있으나 갈고 다듬은 솜씨는 쪽에서 나와 쪽보다 푸르다. 이승제공 노는 말이 굳세고 고우며 연고(演誥)와 대우(對偶)의 글에 더욱 뛰어나다. 김한림 극기는 글을 엮음이 맑고 트였으며 말이 많을수록 더욱 넉넉하다. 김간의 군수는 말과 뜻이 화평하고 넉넉하다. 오 선생 세재와 안 처사 순지는 넉넉하고 두텁다. 이사관 윤보와 임 선생 춘은 간결하고 예스러우며 정밀하고 빼어나다. 진 보궐 화는 맑고 웅장하며 화려하여 변하는 모양이 백 가지로 나온다. 이들이 다 한때의 종장이다.」
그 손대는 묘함을 보려면 반드시 큰 작품에서 보아야 한다. 그 짧은 글과 절구로는 큰 솜씨의 잘되고 못됨을 가릴 것이 못 된다. 그러나 이 책은 두어 권에 그치고 실은 것도 요약한 것이므로, 오직 그 절구 시 몇 수만 실어 여러 집의 각 체를 드러낼 뿐이다. 하물며 그 장편과 큰 운은 저마다 본집에 실려 있으니 여기에 거두지 않는다.
文安公以文行,爲人倫龜鑑。嘗謂所親曰:「吾欲終身行之,唯不欺二字。」公微時,過朴尙書仁碩宅,朴君有鑑裁,待之盡禮。人問其故曰:「此人如照夜神珠。求不可得,況敢自致乎!」公嘗遊穴口寺,和板上韻云:「地縮兼旬路,天低去尺隣。雨宵猶見月,風晝不躋塵。晦朔潮爲曆,寒暄草記辰。胡羗看世事,堪羨臥雲人。」爲中道按廉巡歷□〔⿰木⿱刃⿰刃刃〕城,和壁題云:「再過煩宵候,松明度兩傍。䏶槍新翼衛,腰劍舊顔行。共待寒年纊,誰分儉歲粱。酌民無小澤,每媿勸鵝黃。」抵宿保寧云:「晝發海豐縣,侵宵到保寧。竹鳴風警寢,雲泫雨留行。暮靄頭仍重,朝暾骨乍輕。始知身老病,唯解卜陰晴。」仰賡睿廟題僧伽窟聖製云:「崎嶇石棧躡雲行,華構隣天若化城。秋露輕霏千里爽,夕陽遙浸一江明。漾空嵐細連香穗,啼谷禽閑遞磬聲。可羨高僧心上事,世途名利摠忘情。」和文正公獨樂園唱和詩曰:「蘚刻丹書額,壺藏白日仙。淸歡雖共客,眞樂得全天。庭雨蕉先響,園晴草自烟。桃花流水遠,回郤武陵船。」和文正公同年席上詩云:「般斧誰掄一代雄,靈椿獨秀衆材中。安危經濟當今日,將相功名屬我公。幾轉玉弢馴犬豕,時留珠唾警兒童。算來萬事皆無歉,揚觶唯祈壽不窮。」和移竹詩云:「瞻公有韻畵,訝竹不根生。愛爾情非俗,呼君贊不名。嫩凉廻枕簟,濃暑却簷楹。體道虛心久,蓍靈謾四營。
문안공은 문(文)과 행실로 인륜의 거울이 되었다. 일찍이 가까운 이에게 이르기를 「내가 몸이 다하도록 행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속이지 않는다』 두 글자다」 하였다.
공이 미천할 때 상서 박인석(朴仁碩)의 집을 지나매 박군이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 예를 다하여 대접하였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였다. 「이 사람은 밤을 비추는 신령한 구슬 같다.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데 하물며 감히 스스로 오게 하겠는가.」
공이 일찍이 혈구사에 노닐며 판 위의 운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땅이 열흘 길을 줄여 놓고 하늘이 낮아 한 자 이웃으로 가네. 비 오는 밤에도 오히려 달을 보고 바람 부는 낮에도 티끌이 오르지 않네. 그믐과 초하루는 조수로 책력을 삼고 춥고 더움은 풀로 철을 적네. 오랑캐 일로 세상일을 보노니 구름에 누운 사람이 부럽구나.
중도 안렴이 되어 □성〔한 글자를 유니코드에 넣을 수 없어 위키문헌이 모양만 적어 두었다〕을 돌며 벽에 제한 것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두 번 지나며 밤 문안을 번거롭게 하니 솔불이 양쪽을 밝히네. 넓적다리에 창을 든 새 호위요 허리에 칼을 찬 옛 반열이로다. 함께 추운 해의 솜을 기다리는데 누가 흉년의 기장을 나누랴. 백성에게 따르는 데 작은 은택도 없어 늘 아황(鵝黃) 술 권하기를 부끄러워하네.
보령에 이르러 묵으며 이르기를,
낮에 해풍현을 떠나 밤을 무릅쓰고 보령에 이르렀네. 대가 우니 바람이 잠을 깨우고 구름이 젖으니 비가 길을 멈추게 하네. 저녁 아지랑이에 머리가 무겁더니 아침 햇살에 뼈가 잠깐 가볍네. 비로소 알겠구나, 몸이 늙고 병들어 오직 흐리고 갬을 점칠 줄만 아는 것을.
예종께서 승가굴에 제하신 성제(聖製)를 우러러 이어 이르기를,
가파른 돌 잔도를 구름 밟고 가니 화려한 집이 하늘에 이웃하여 화성(化城) 같네. 가을 이슬이 가볍게 날려 천 리가 상쾌하고 저녁 해가 멀리 잠겨 한 강이 밝네. 허공에 일렁이는 아지랑이는 향 이삭에 잇닿고 골에 우는 새는 한가로이 경쇠 소리를 갈마드네. 부럽구나, 높은 스님의 마음 위의 일이여 세상길의 이름과 이익을 모두 잊었구나.
문정공의 독락원 창화시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이끼에 붉은 글씨의 편액을 새기고 병 속에 흰 해의 신선을 감추었네. 맑은 즐거움을 비록 손과 함께하나 참 즐거움은 온전한 하늘을 얻은 것이로다. 뜰에 비 오니 파초가 먼저 울리고 동산이 개니 풀에서 절로 아지랑이가 이네. 복사꽃 흐르는 물이 머니 무릉의 배를 도로 물리네.
문정공의 동년 자리 시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반(般)의 도끼로 누가 한 시대의 영웅을 가리랴 신령한 춘(椿)나무가 뭇 재목 가운데 홀로 빼어났네.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다스림이 오늘에 달렸고 장수와 재상의 공명이 우리 공에게 속하였네. 몇 번이나 옥 활집을 굴려 개와 돼지를 길들였고 때로 구슬 같은 말을 남겨 아이를 깨우쳤네. 헤아려 보면 온갖 일에 다 모자람이 없으니 잔을 들어 오직 목숨이 다함 없기를 비네.
대를 옮긴 시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공을 우러르니 운치 있는 그림이 있어 대가 뿌리 없이 난 것인가 의심하네. 너를 사랑하는 정이 속되지 않아 그대를 부르되 이름으로 하지 않네. 연한 서늘함이 베개와 자리에 돌아오고 짙은 더위가 처마 기둥에서 물러가네. 도를 체득하여 마음을 비운 지 오래니 시초(蓍草)의 신령함도 부질없이 네 번 셈하네.
貞肅公以左承宣,出爲東北面兵馬使,聞李祭酒公老代爲喉舌任,以詩寄之曰:「千里書廻一鴈天,新承宣代舊承宣。不才見擯雖堪媿,猶向皇朝賀得賢。」曉起云:「玉帳燈殘入睡鄕,康安親捧赭袍光。門前曉角渾無賴,咽破雲霄夢一場。」大觀殿黼座後,障無逸圖壞,上欲命公書之,試其筆蹟。公作詩書二簇以進曰:「輅重駑馳短,天高鶴戀長。舊衣幾經濯,猶帶御爐香。」又「園花紅錦綉,宮柳碧絲綸。喉舌千般巧,春鶯郤勝人。」或謂公有未忘權要之義,非也。公天資淸婉,詩語似之,可謂表裡水澄,塵不能點者。豈爲權要所累耶。孔子三月無君,則皇皇如也,杜子美在寒窘中,句句不忘君臣之大節。況名爵如公者,雖在閫外,戀戀有愛君之心,固其宜也。嘗於洛山祝聖齋罷有作云:「華祝精誠動覺天,奉爐雙淚濕香烟。直將龜鶴三千歳,算作吾皇第一年。」愛君之意,略見於此。又左遷爲尙州牧,路過德通驛,書一絶於壁上云:「豈向蒼蒼有怨情,謫來猶得任專城。何時鈴閣卽黃閣,太守行爲宰相行。」有二進士過德通驛,見此詩吟翫良久曰:「何時鈴閣卽黃閣,此一句造語似未工。且自鈴閣登黃閣,其間何闊。」其友生曰:「此公之詩讖也,非爾曺所識。」未幾果大拜。予於甲辰春,自尙州罷任,過郵亭,見公手蹟,惻然有感,籠以碧紗,因題一絶。後三年丁未夏,除國子祭酒芸閣學士,仍受節鉞出鎭東南路,復和二絶。及戊申春,拜文昌右相,承詔赴闕,又留一絶,今皆在壁間。龍頭會他客不得參。公之猶子皇甫壯元瓘家設此會,公以第二人及第,未得往。乃著一絶寄之云:「聞道君家有貴賓,桂林渾是一枝春。如今未得參高會,郤恨當年第二人。
정숙공이 좌승선으로 동북면 병마사가 되어 나갔는데, 이제주 공로가 대신 후설(喉舌)의 소임을 맡았다는 말을 듣고 시를 지어 부쳤다.
천 리 밖 글이 기러기 한 마리 나는 하늘로 돌아오니 새 승선이 옛 승선을 대신하였네. 재주 없어 물리침을 당한 것은 비록 부끄러우나 그래도 조정을 향하여 어진 이를 얻음을 하례하네.
새벽에 일어나 이르기를,
옥 장막에 등불이 스러져 잠의 고을로 드니 편안히 몸소 붉은 곤룡포의 빛을 받들었네. 문 앞의 새벽 뿔피리가 도무지 무뢰하여 구름 하늘을 목메어 깨뜨리니 한바탕 꿈이로다.
대관전 임금 자리 뒤에 두른 「무일도(無逸圖)」가 헐매 임금께서 공에게 쓰게 하려고 그 필적을 시험하셨다. 공이 시를 지어 두 폭에 써서 올렸다.
수레는 무거운데 노둔한 말은 달림이 짧고 하늘은 높은데 학은 그리움이 기네. 옛 옷을 몇 번이나 빨았던가 아직도 임금의 향로 향내를 띠었네.
또,
동산의 꽃은 붉은 비단 수요 궁궐의 버들은 푸른 실 벼리로다. 후설이 천 가지로 공교하나 봄 꾀꼬리가 도리어 사람보다 낫네.
어떤 이는 공에게 권세 있는 자리를 잊지 못하는 뜻이 있다고 하나 그렇지 않다. 공은 타고난 바탕이 맑고 고우며 시의 말도 그와 같으니, 겉과 속이 물처럼 맑아 티끌이 점 찍지 못하는 이라 할 만하다. 어찌 권세 있는 자리에 얽매였겠는가. 공자는 석 달 임금이 없으면 황황하였고, 두자미는 춥고 궁한 가운데서도 구절마다 임금과 신하의 큰 절개를 잊지 않았다. 하물며 이름과 벼슬이 공만 한 이가 비록 지방에 있어도 그리고 그리워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진실로 마땅하다.
일찍이 낙산에서 축성재를 마치고 지은 것에 이르기를,
화봉(華封)의 축원은 정성이 깨달음의 하늘을 움직이고 향로를 받드니 두 줄기 눈물이 향 연기를 적시네. 곧바로 거북과 학의 삼천 해를 가져다 임금의 첫 해로 셈하리라.
임금을 사랑하는 뜻을 여기서 대강 볼 수 있다.
또 좌천되어 상주 목사가 되어 길에 덕통역을 지나며 벽 위에 절구 하나를 썼다.
어찌 푸르고 푸른 하늘을 향하여 원망하는 정이 있으랴 귀양 와서도 오히려 한 성을 오로지 맡았네. 어느 때에 영각(鈴閣)이 곧 황각(黃閣)이 되어 태수의 걸음이 재상의 걸음이 되랴.
진사 두 사람이 덕통역을 지나다 이 시를 보고 한참을 읊으며 감상하다가 말하였다. 「『어느 때에 영각이 곧 황각이 되랴』, 이 한 구는 말을 지은 것이 공교롭지 못한 듯하다. 또 영각에서 황각에 오르기까지 그 사이가 얼마나 아득한가.」 그 벗이 말하였다. 「이는 공의 시참(詩讖)이다. 너희가 알 바 아니다.」 얼마 안 되어 과연 재상에 임명되었다.
내가 갑진년 봄에 상주에서 벼슬을 그만두고 역참을 지나다 공의 손자취를 보고 측연히 느낌이 있어 푸른 깁으로 씌우고 절구 하나를 제하였다. 뒤 삼 년 정미년 여름에 국자제주 운각학사에 제수되고 이어 절월(節鉞)을 받아 동남로를 진무하러 나가며 다시 절구 둘을 화답하였다. 무신년 봄에 이르러 문창 우상에 임명되어 조서를 받아 대궐로 나아가며 또 절구 하나를 남겼으니, 이제 다 벽 사이에 있다.
용두회(龍頭會)에는 다른 손이 참여하지 못한다. 공의 조카 황보 장원 관의 집에서 이 모임을 베풀었는데, 공은 둘째로 급제한 터라 가지 못하였다. 이에 절구 하나를 지어 부쳤다.
들으니 그대 집에 귀한 손이 있어 계수 숲이 온통 한 가지의 봄이라 하네. 이제 높은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니 도리어 그해의 둘째 사람 된 것이 한스럽네.
文順公家集已行於世,觀其詩文,如日月不足譽。近代律詩,於五七字中,有聲韻對偶,故必須俯仰穿琢,以應其律。雖宏材偉器,不得肆意放言,披露妙蘊,故例無氣骨。公自妙齡,走筆皆創出新意,吐辭漸多,騁氣益壯。雖入於聲律繩墨中,細琢巧構,猶豪肆奇峭。然以公爲天才俊邁者,非謂對律。盖以古調長篇,强韻險題中,縱意奔放,一掃百紙,皆不踐襲古人,卓然天成也。猶能謙下於人,凡有一善必褒獎,若出己右。弱冠時,作麴秀才傳。李史館允甫,初登第時效之,亦作無腸公子傳,公見之而甚善,每唱於詞林間曰:「近得能文者,李允甫眞良史才也。」又與文安公,同在誥院時,晉陽公設禪會於普濟廣明西普通三寺,及罷會,公請二公及尹直講于一,作三會枋。兪作廣明枋,時人以兪枋下於公,而公見之稱歎,所至揚言曰:「今此作,吾不及兪君遠矣。」公爲翰林時,孫直院得之,和公早茶長篇五首。公驚歎曰:「從來未識,孫有如此高才也。」公資正直公明,觀其讚善詬惡,出自天性。古人云:「詞人相輕。」盖爲凡庸兒輩言之耳。
문순공의 문집이 이미 세상에 돌아다니니, 그 시와 글을 보면 해와 달 같아 기릴 것이 없다.
요즘의 율시는 다섯 자 일곱 자 안에 소리의 운과 짝 맞춤이 있으므로 반드시 굽어보고 우러러보며 뚫고 쪼아 그 율에 맞추어야 한다. 비록 큰 재목과 위대한 그릇이라도 뜻을 마음대로 하여 말을 놓아 묘한 속을 헤쳐 드러내지 못하므로 으레 기골이 없다. 공은 어린 나이부터 붓을 달리면 다 새 뜻을 지어냈고, 말을 토함이 점점 많아지고 기운을 달림이 더욱 씩씩하였다. 비록 소리와 율의 먹줄 안에 들어가 잘게 쪼고 공교히 얽었어도 오히려 호방하고 기이하고 가팔랐다. 그러나 공을 하늘이 낸 뛰어난 재주라 하는 것은 율시를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니다. 대개 옛 가락의 긴 편과 굳센 운의 험한 제목에서 뜻을 놓아 내달려 백 장을 한 번에 쓸어 내되, 다 옛사람을 밟아 따르지 않고 우뚝이 하늘에서 이룬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겸손히 낮추어 무릇 한 가지 좋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기려 자기보다 나은 듯이 하였다. 약관 때에 「국수재전(麴秀才傳)」을 지었다. 이사관 윤보가 처음 급제하였을 때 이를 본떠 또한 「무장공자전(無腸公子傳)」을 지으니, 공이 보고 매우 좋다 하여 늘 사림 사이에서 외며 말하였다. 「요즘 글 잘하는 이를 얻었으니 이윤보는 참으로 좋은 사관의 재목이다.」
또 문안공과 함께 고원(誥院)에 있을 때 진양공이 보제사·광명사·서보통사에서 선회(禪會)를 베풀었는데, 모임이 끝나자 공이 두 공과 윤 직강 우일에게 청하여 세 모임의 방(枋)을 짓게 하였다. 유(兪)가 광명사 방을 지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유의 방을 공의 것보다 아래로 쳤다. 그런데 공은 그것을 보고 일컬어 감탄하며 이르는 곳마다 드러내어 말하였다. 「이번의 이 글은 내가 유군에게 훨씬 미치지 못한다.」
공이 한림으로 있을 때 손 직원 득지가 공의 「이른 차(早茶)」 장편 다섯 수에 화답하였다. 공이 놀라 감탄하며 말하였다. 「여태 몰랐구나, 손군에게 이런 높은 재주가 있는 줄을.」
공은 바탕이 바르고 곧으며 공평하고 밝아, 착한 것을 기리고 악한 것을 꾸짖음이 타고난 성품에서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옛사람이 「글하는 이는 서로 가벼이 여긴다」 하였으니, 대개 용렬하고 범상한 아이들을 두고 한 말일 뿐이다.
及第金台臣,和許彦國虞美人草歌,爲贄於文順公。時李史館允甫往謁公,公出示之。史館借其卷子來,予於史館家見其詩,卽和進七首,史館傳示公,公許可特裁長書,遣翰林何千旦齎書報云:「此詩韻强,凡作者頗艱於和。觀君之作,辭意絶妙。雖使李杜作之,無以復加也。」又投長篇褒獎大過。及予謝進,倒屣出迎,固留開飮。盡出文藁示之曰:「深愧相知之晚也。昔全履之能文,時人不識,我獨知之。今見君貌,不知有逸才,是眞隱德人也。」後數年,公除國子祭酒,予爲學諭。一日因公事,坐廳事曰:「日者宴庾諫議宅,走筆賦水精杯詞。人皆見和,君獨不和,何也?」予驚惶承命,卽和成七首奉呈。公稱歎不已,傳示於誥院曰:「此詩非今世人作也。」其寵勸後進如此。
급제한 김태신이 허언국의 「우미인초가」에 화답하여 문순공에게 폐백으로 드렸다. 그때 이사관 윤보가 공을 뵈러 가니 공이 내어 보였다. 사관이 그 두루마리를 빌려 왔는데, 내가 사관의 집에서 그 시를 보고 곧 화답하여 일곱 수를 지어 올렸다. 사관이 공에게 전하여 보이니 공이 허락하고 특별히 긴 편지를 지어, 한림 하천단을 보내어 글을 가지고 가 알리게 하였다. 「이 시는 운이 굳세어 무릇 짓는 이가 화답하기를 자못 어려워한다. 그대의 지은 것을 보니 말과 뜻이 절묘하다. 비록 이백과 두보로 하여금 짓게 하여도 더할 것이 없겠다.」 또 장편을 던져 기림이 크게 지나쳤다.
내가 사례하러 나아가매 신을 거꾸로 신고 나와 맞으며 굳이 붙들어 자리를 열고 마셨다. 글 원고를 다 내어 보이며 말하였다. 「서로 안 것이 늦은 것이 매우 부끄럽다. 옛날 전이지가 글을 잘하였으나 그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였는데 나만 홀로 알았다. 이제 그대의 모습을 보니 뛰어난 재주가 있는 줄 알아채지 못하겠으니, 이는 참으로 덕을 숨긴 사람이다.」
몇 해 뒤에 공이 국자제주에 제수되고 나는 학유가 되었다. 하루는 공사로 마루에 앉아 말하였다. 「지난날 유 간의 댁에서 잔치할 때 붓을 달려 「수정배(水精杯)」 사를 지었다. 사람들이 다 화답하여 보였는데 그대만 홀로 화답하지 않았으니 어찌 된 일인가.」 내가 놀라고 두려워 명을 받들어 곧 화답하여 일곱 수를 이루어 받들어 올렸다. 공이 일컬어 감탄하기를 그치지 않고 고원에 전하여 보이며 말하였다. 「이 시는 지금 세상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다.」 그 후배를 아끼고 권함이 이와 같았다.
文順公與兪尹諸同年席上,和任副樞景謙寢屛六詠列子御風云:「從來道境尙遺身,何必乘虛始自神。若向風頭尋禦宼,滿空飛鳥亦眞人。」陶潛漉巾云:「漉則爲蒭戴則巾,箇中分別任他人。不妨頭上餘痕在,已是平生着酒身。」子猷訪戴云:「訪人情味雪溪中,若便相看一笑空。莫道興闌迴棹去,造門直返意無窮。」潘閬騎驢云:「閬仙若也愛三華,一望嵯峨已足多。倒跨蹇驢眞好事,將身欲入畵中誇。」李學士仁老剡溪乘興云:「山陰雪月色交寒,興盡孤舟郤棹還。何必揚眉資目擊,茫然千界一毫端。」四明狂客云:「萬里吳天一棹歸,荷花零落暮秋時。鏡湖風月元無主,何必君前乞一枝。」山陰陳迹云:「此身念念異前身,俯仰人間迹已陳。賴有銀鉤留蠒紙,山陰風月古今新。」西塞風雨云:「秋深笠澤紫鱗肥,雲盡西山片月輝。十幅蒲帆千頃玉,紅塵應不到蓑衣。」文順公新意入妙,李學士主語淸婉。李學士月季花云:「萬斛丹砂問葛洪,何年深窖小園中。芳根得染雲霞色,故作仙葩不老紅。」文烈公云:「嘉期難近陶潛菊,芳信猶賖陸凱梅。不待殷翁誇善幻,非時紅艶自能開。」文安公云:「曾隨姚魏媚和風,一例看爲幻色空。他日雪中開最好,知渠不是霅時紅。」文順公云:「臘梅秋菊巧侵寒,輕薄春紅已莫干。爲有此花專四序,一時偏艶不堪看。」貞肅公云:「東君去後覓無因,始覺公家是主人。不爾豈能私造化,一盆培養四時春。」李學士詩云丹砂,又言雲霞,此所謂喩中之喩也。如用他人韻賦之,押洪字甚善。文烈公詩,如言七八月開花,文安公詩,雖止言春及冬,其意已盡。文順公具言,而辭趣深勁。貞肅公亦言四時,尙有新意。
문순공이 유·윤 여러 동년의 자리에서 임 부추 경겸의 침병(寢屛) 여섯 가지 읊음에 화답하였다.
「열자가 바람을 타다」
예로부터 도의 지경은 몸 버리기를 숭상하니 어찌 반드시 허공을 타야 비로소 스스로 신령하랴. 만약 바람 머리를 향하여 어구(禦寇)를 찾는다면 하늘에 가득 나는 새도 또한 참사람이리라.
「도잠이 두건으로 술을 거르다」
거르면 술이 되고 쓰면 두건이 되니 그 가운데 가름은 남에게 맡기네. 머리 위에 자국이 남아도 거리낄 것 없으니 이미 한평생 술에 붙은 몸이로다.
「자유가 대안도를 찾다」
사람을 찾는 정취는 눈 내린 시내 가운데 있으니 만약 곧 서로 보았다면 한 번 웃고 말았으리. 흥이 다하여 노를 돌렸다 이르지 말라 문에 이르러 곧 돌아선 뜻이 끝이 없네.
「반랑이 나귀를 타다」
낭선(閬仙)이 만약 세 봉우리를 사랑하였다면 한 번 바라본 우뚝함으로 이미 넉넉하였으리. 절뚝이는 나귀에 거꾸로 걸터앉은 것이 참으로 좋은 일이니 몸을 그림 속에 넣어 뽐내려 함이로다.
이 학사 인로의 「섬계에서 흥을 타다」
산음의 눈과 달은 빛이 서로 차가운데 흥이 다하여 외로운 배를 도리어 돌려 왔네. 어찌 반드시 눈썹을 들어 눈으로 맞대야 하랴 아득한 천 세계가 한 터럭 끝이로다.
「사명(四明)의 미친 나그네」
만 리 오나라 하늘로 노 하나로 돌아가니 연꽃이 시들어 지는 늦가을 때로다. 경호(鏡湖)의 바람과 달은 본디 주인이 없거늘 어찌 반드시 임금 앞에서 한 가지를 빌었으랴.
「산음의 묵은 자취」
이 몸은 생각마다 앞의 몸과 다르니 굽어보고 우러러보는 사이에 인간의 자취가 이미 묵었네. 은 갈고리 글씨가 고치 종이에 남아 있음을 힘입어 산음의 바람과 달은 예나 이제나 새롭네.
「서새(西塞)의 바람과 비」
가을이 깊어 입택(笠澤)의 자줏빛 비늘이 살졌고 구름이 다한 서산에 조각달이 빛나네. 열 폭 부들 돛에 천 이랑 옥이니 붉은 티끌은 응당 도롱이에 이르지 못하리.
문순공은 새 뜻이 묘한 데 들었고 이 학사는 주장하는 말이 맑고 곱다.
이 학사의 「월계화」
만 섬 단사를 갈홍에게 묻노니 어느 해에 작은 동산 가운데 깊이 묻었던가. 꽃다운 뿌리가 구름 노을빛을 물들여 얻어 짐짓 신선의 꽃을 지어 늙지 않게 붉네.
문열공이 이르기를,
좋은 철은 도잠의 국화에 가까이하기 어렵고 꽃다운 소식은 육개의 매화에 아직 머네. 은옹(殷翁)이 잘 홀리는 것을 자랑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때 아닌데도 붉은 고움이 절로 능히 피네.
문안공이 이르기를,
일찍이 요황·위자를 따라 화한 바람에 아양 떨더니 한결같이 헛된 빛의 공(空)으로 보네. 다른 날 눈 가운데 피는 것이 가장 좋으니 저것이 잠깐 붉은 것이 아님을 알겠네.
문순공이 이르기를,
섣달 매화와 가을 국화가 공교로이 추위를 침노하니 가볍고 얇은 봄의 붉음은 이미 범하지 못하네. 이 꽃이 네 철을 오로지함이 있으니 한때에 치우쳐 고운 것은 볼 것이 못 되네.
정숙공이 이르기를,
봄의 임금이 간 뒤에는 찾을 길이 없더니 비로소 공의 집이 주인인 줄 알겠네. 그렇지 않다면 어찌 능히 조화를 사사로이 하여 한 화분에 네 철의 봄을 길렀으랴.
이 학사의 시는 단사를 이르고 또 구름 노을을 말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견줌 가운데 견줌이다. 남의 운을 써서 지은 것이라면 홍(洪) 자를 누른 것이 매우 좋다. 문열공의 시는 칠팔월에 꽃이 핀다고 말한 것 같고, 문안공의 시는 비록 봄과 겨울만 말하는 데 그쳤으나 그 뜻이 이미 다하였다. 문순공은 갖추어 말하였는데 말의 정취가 깊고 굳세다. 정숙공도 또한 네 철을 말하였으되 오히려 새 뜻이 있다.
文烈公和慧素師猫兒云:「螻蟻道存狼虎仁,不須遣妄始求眞。吾師慧眼無分別,物物皆呈淸淨身。」文順公蟾云:「痱磊形可憎,爬□〔⿰⿸虍(鹵-⺊)者〕行亦澁。群蟲且莫輕,解向月中入。」眉叟蟻云:「身動牛應鬪,穴深山恐頹。功名珠幾曲,富貴夢初回。」文順公形容甚工,李學士句句皆用事,文烈公寄意浮屠,言理最深。大抵體物之作,用事不如言理,言理不如形容。然其工拙,在乎構意造辭耳。
문열공이 혜소 스님의 「고양이」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땅강아지와 개미에게도 도가 있고 이리와 범에게도 어짊이 있으니 망령됨을 보낸 뒤에야 비로소 참을 구할 것은 아니네. 우리 스승의 지혜의 눈은 가름이 없으니 물건마다 다 맑고 깨끗한 몸을 드러내네.
문순공의 「두꺼비」
두드러기 돋은 꼴은 미워할 만하고 기어가는 것은 다니기도 또한 껄끄럽네.〔한 글자를 유니코드에 넣을 수 없어 위키문헌이 모양만 적어 두었다〕 뭇 벌레들아 부디 가벼이 여기지 말라 달 속으로 들어갈 줄을 아느니라.
미수의 「개미」
몸을 움직이면 소가 응당 싸우고 구멍이 깊으면 산이 무너질까 두렵네. 공명은 구슬이 몇 굽이며 부귀는 꿈이 갓 돌아온 것이로다.
문순공은 모양을 그린 것이 매우 공교하고, 이 학사는 구절마다 다 고사를 썼고, 문열공은 뜻을 부처에 부쳐 이치를 말한 것이 가장 깊다. 대저 물건을 읊는 작품은 고사를 쓰는 것이 이치를 말하는 것만 못하고, 이치를 말하는 것이 모양을 그리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그 잘되고 못됨은 뜻을 얽고 말을 짓는 데 있을 뿐이다.
李學士逍遙園云:「接輿當日諗肩吾,綽約神人在邈姑。唯有神高汾水側,杳然親見雪肌膚。」文順公獨樂園云:「一泉寒水呼鄰汲〔園中井,縱隣里汲。〕,滿榻淸風共客分。唯有名園靜中樂,不曾容易使人聞。」金翰林淸聚軒云:「下嶺飛泉尙有情,穿林落沼響泠泠。若觀一性無分別,尋丈波瀾卽四溟。」李學士奇辭妙意,全用南華篇,文順公出自新趣,金翰林使浮屠語。古人云:「蘇子瞻,雖言辭浩瀚有餘意,近於浮屠,非謂風騷之作。」若文烈公猫兒詩,是答慧素師,金翰林淸軒詩,是題僧舍,宜以浮屠言之也。其他作不應淺異。
이 학사의 「소요원」
접여가 그날 견오에게 일렀으니 아리따운 신인이 아득한 고야산에 있다 하였네. 오직 신령함이 분수 가에 높으니 아득히 눈 같은 살결을 몸소 보았네.
문순공의 「독락원」
한 샘의 찬 물을 이웃을 불러 긷게 하고〔동산 가운데 우물을 이웃 마을이 긷도록 놓아두었다.〕 평상에 가득한 맑은 바람을 손과 함께 나누네. 오직 이름난 동산의 고요한 가운데 즐거움만은 일찍이 쉽사리 남에게 듣게 하지 않네.
김한림의 「청취헌」
재를 내리는 나는 샘도 오히려 정이 있어 숲을 뚫고 못에 떨어지며 맑게 울리네. 만약 한 성품이 가름 없음을 본다면 여덟 자 물결도 곧 네 바다로다.
이 학사는 기이한 말과 묘한 뜻이 온전히 「남화편」을 썼고, 문순공은 새 정취에서 나왔고, 김한림은 부처의 말을 썼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소자첨은 비록 말이 넓고 남은 뜻이 있으나 부처에 가까우니 풍소(風騷)의 작품이라 이를 것이 아니다」 하였다. 문열공의 「고양이」 시 같은 것은 혜소 스님에게 답한 것이고 김한림의 「청헌」 시는 절집에 제한 것이니 마땅히 부처의 말로 할 것이다. 그 밖의 작품은 응당 얕고 다르지 않다.
文烈公菊花云:「一夜秋風萬樹空,菊花纔發兩三叢。樊素無情逐春去,朝雲獨自伴蘇公。」文順公云:「靑帝司花翦刻多,何如白帝又司花。金風日日吹蕭瑟,把底陽和放艶葩。」金翰林云:「芬敷恨不及春風,露冷霜凄慘玉容。歳晚芳心誰獨識,殘叢尙有愛花蜂。」李學士重九後云:「莫將殘艶怨居諸,一掬秋香久尙餘。人意不隨時自變,龍陽何苦泣前魚。」古今多以美女比花。文烈用美人事,意雖精當,事則蒭狗。眉叟用龍陽事,此詩家意外之喩最警。又賦鸚鵡云:「語言愈巧身愈困,須信韓非死說難。」皆類此。金詩有風人自寓之意,讀之悽然有感。文順公不用事不取比,直穿天心而已。
문열공의 「국화」
하룻밤 가을바람에 만 그루가 비었는데 국화가 겨우 두세 떨기 피었네. 번소는 정이 없어 봄을 좇아 갔으나 조운만은 홀로 소공을 짝하네.
문순공이 이르기를,
푸른 임금이 꽃을 맡아 오리고 새김이 많거늘 어찌 흰 임금이 또 꽃을 맡음만 하랴. 가을바람이 날마다 쓸쓸히 부는데 무슨 볕의 화기를 잡아 고운 꽃을 놓았는가.
김한림이 이르기를,
향기 퍼짐이 봄바람에 미치지 못함을 한하니 이슬이 차고 서리가 매워 옥 같은 얼굴이 참담하네. 해가 저물어 꽃다운 마음을 누가 홀로 알랴 남은 떨기에 아직도 꽃을 사랑하는 벌이 있네.
이 학사의 「중구 뒤에」
남은 고움을 가지고 해와 달을 원망하지 말라 한 움큼 가을 향기가 오래도록 아직 남았네. 사람의 뜻은 때를 따르지 않고 절로 변하나니 용양(龍陽)은 어찌 괴로이 앞서 잡은 물고기를 위해 울었던가.
예와 이제에 흔히 아름다운 여인으로 꽃을 견준다. 문열공은 미인의 일을 썼으니 뜻은 비록 정밀하고 마땅하나 그 일은 곧 짚으로 만든 개다. 미수는 용양의 일을 썼으니, 이는 시인의 뜻 밖의 견줌 가운데 가장 깨우치는 것이다. 또 「앵무」를 읊어 이르기를 「말이 공교로울수록 몸은 더욱 곤하니, 한비가 『세난(說難)』으로 죽은 것을 믿을 만하다」 하였으니 다 이와 같은 무리다. 김의 시는 시인이 스스로에게 부친 뜻이 있어 읽으면 처연히 느낌이 있다. 문순공은 고사를 쓰지 않고 견줌을 취하지도 않고 곧바로 하늘의 마음을 뚫었을 뿐이다.
李學士梅花云:「靑帝含情玉作花,素衣眞箇在施家。幾敎醉尉昏昏眼,錯認林中縞袂斜。」皇祖和金樞密玉梅云:「姑射氷膚雪作衣,香唇曉露吸珠璣。應嫌俗蘂春紅染,欲向瑤臺駕鶴飛。」文順公梨花云:「初疑枝上雪黏華,爲有淸香認是花。飛來易見穿靑樹,落去難知混白沙。」金翰林李花云:「悽風冷雨濕枯根,一樹狂花獨放春。無奈異香來聚窟,漢宮重見李夫人。」李學士眉叟李花云:「曾將玉鹿駕雲車,入處瓊宮十八餘。樹下初生因作姓,從玆仙李便扶疎。」梅花二首,用事雖異,皆取色言。李花兩首,用事有深淺,優劣自分。眉叟但言李不言花,雖用事深何工?文順公率不好用事,盖尙新意耳。
이 학사의 「매화」
푸른 임금이 정을 머금어 옥으로 꽃을 지으니 흰옷 입은 이가 참으로 시씨 집에 있네. 몇 번이나 취한 위(尉)의 흐릿한 눈을 시켜 숲 속에 흰 소매가 비꼈다고 잘못 알게 하였던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김 추밀의 「옥매」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고야산의 얼음 살결에 눈으로 옷을 지었고 향기로운 입술은 새벽 이슬에 구슬을 마시네. 응당 속된 꽃술이 봄의 붉음에 물드는 것을 싫어하여 요대(瑤臺)를 향해 학을 타고 날려 하네.
문순공의 「배꽃」
처음엔 가지 위에 눈이 붙어 화려한 줄 알았더니 맑은 향기가 있어 이것이 꽃인 줄 알았네. 날아오면 푸른 나무를 뚫는 것이 보이기 쉽고 떨어지면 흰 모래에 섞여 알기 어렵네.
김한림의 「오얏꽃」
처절한 바람 찬 비가 마른 뿌리를 적시더니 한 그루 미친 꽃이 홀로 봄을 놓았네. 어찌하랴, 남다른 향기가 취굴주(聚窟洲)에서 왔으니 한나라 궁에서 이 부인을 다시 보는구나.
이 학사 미수의 「오얏꽃」
일찍이 옥사슴으로 구름 수레를 몰아 경궁(瓊宮)에 든 지 열여덟 해 남짓. 나무 아래서 처음 났기에 그것으로 성을 삼았으니 이로부터 신선의 오얏이 곧 무성하였네.
매화 두 수는 고사를 쓴 것이 비록 다르나 다 빛깔을 취하여 말하였다. 오얏꽃 두 수는 고사를 쓴 것에 깊고 얕음이 있어 낫고 못함이 절로 갈린다. 미수는 다만 오얏만 말하고 꽃은 말하지 않았으니 고사를 쓴 것이 비록 깊은들 무엇이 공교로우랴. 문순공은 대개 고사 쓰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니 새 뜻을 숭상하였을 뿐이다.
宋夏英公微時,謁文肅公,公曰:「子文章有臺閣氣,異日必顯。」果如其言。文順公爲完山幕參軍時,承按廉符爲邊山斫木使,作絶句云:「權在擁軍榮可詫,官呼斫木辱堪知。邊山自古眞天府,好揀長材備棟榱。」又云:「曉寒虛閣生淸籟,夕霽長天卷駁雲。門外幾人皆墮指,媿予猶擁綺羅熏。」和友人云:「努力事文字,休嫌秩未高。須知三足鼎,鑄自一錐毫。」公之宰相之氣,於此三詩,早已形矣。予偶得金翰林集第一卷觀之,卷首編宮詞八詠。皆古人已陳之意,且復辭語淺局,私心竊薄之。漸披至兩三幅,見醉時歌及河陽山莊用劇韻敍舊等長篇,其辭意淸曠。後復見八九卷,淸辭浩汗,酌而不窮,誠富贍之才華也。不然何以陳補闕憶翰林云:「吟詩臥窮巷,爽氣透屋浮。上天結爲露,散作人間秋。」翰林途中卽事云:「一徑靑笞澁馬蹄,蟬聲斷續路高低。窮村婦女猶多思,笑整荆釵照柳溪。」漁翁云:「天翁尙不貰漁翁,故遣江湖少順風。人世險巇君莫笑,自家猶在急流中。」晨興云:「竟日長吟蜀道難,橫眠始得一身閑。郤嫌枕上多情蝶,千里崎嶇訪故山。」東郊値雨云:「黃塵漠漠漲晴旻,擧扇西風厭汚人。多謝晚雲能作雨,半途湔洗滿衣塵。」贈彌勒寺住老云:「林端窈眇路逶遲,境僻寧敎俗士知。唯有雪衣松上鶴,見公初到結廬時。」秋晚月夜云:「日落頑風起樹端,飛霜貿貿葉聲乾。開軒不用迎淸月,瘦骨秋來怯夜寒。」興海道上云:「桑間婦女趁微行,撥穀飛來繞樹鳴。只爲田家趨事報,何人寫出管絃聲。」辭意淸熟,頗帶風騷。類多長篇巨韻,或鮮有宮禁富貴之作。故但錄此山野絶句而已。觀其集,疑有他山石來介於群玉崗,是由編摭者無似耳。
송나라 하영공이 미천할 때 문숙공을 뵈니 공이 말하였다. 「그대의 문장에 대각(臺閣)의 기운이 있으니 다른 날 반드시 드러나리라.」 과연 그 말과 같았다.
문순공이 완산 막부의 참군으로 있을 때 안렴사의 부(符)를 받아 변산 벌목사가 되어 절구를 지었다.
권세는 군사를 거느리는 데 있으니 영화를 자랑할 만하고 벼슬은 나무 베기라 부르니 욕됨을 알 만하네. 변산은 예로부터 참으로 하늘의 곳간이니 좋이 긴 재목을 가려 마룻대와 서까래에 대비하리.
또 이르기를,
새벽 추위에 빈 누각이 맑은 소리를 내고 저녁 갬에 긴 하늘이 얼룩진 구름을 걷네. 문 밖에서 몇 사람이나 다 손가락을 떨어뜨렸는데 부끄럽구나, 나는 아직도 비단을 끼고 향내를 쬐고 있네.
벗에게 화답하여 이르기를,
힘써 글을 일삼으라 벼슬이 아직 높지 않음을 싫어하지 말라. 모름지기 알라, 세 발 솥도 한 송곳 같은 터럭에서 부어진 것을.
공의 재상 될 기운이 이 세 시에 벌써 드러났다.
내가 우연히 김한림의 문집 제1권을 얻어 보니 권 머리에 궁사(宮詞) 여덟 수를 엮어 두었다. 다 옛사람이 이미 펼친 뜻이고 또 말이 얕고 좁아 마음속으로 가만히 얕잡아 보았다. 점점 헤쳐 두세 폭에 이르러 「취했을 때의 노래」와 「하양 산장에서 험한 운으로 옛일을 펴다」 같은 장편을 보니 그 말과 뜻이 맑고 넓었다. 뒤에 다시 여덟아홉 권을 보니 맑은 말이 넓고 넓어 떠내어도 다하지 않으니 참으로 넉넉한 재주였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진 보궐이 한림을 그리며 이렇게 읊었겠는가.
시를 읊으며 궁한 거리에 누웠으니 상쾌한 기운이 집을 뚫고 뜨네. 하늘에 올라 맺혀 이슬이 되고 흩어져 인간의 가을이 되네.
한림의 「길 가운데 즉사」
한 길 푸른 이끼에 말굽이 껄끄럽고 매미 소리 끊겼다 이어지며 길이 높았다 낮았다 하네. 궁벽한 마을 아낙도 오히려 생각이 많아 웃으며 가시나무 비녀를 고쳐 꽂고 버들 시내에 비추네.
「고기잡이 늙은이」
하늘 늙은이도 오히려 고기잡이 늙은이를 용서하지 않아 짐짓 강호에 순한 바람을 적게 보내네. 사람 세상이 험하다고 그대는 웃지 말라 제 몸도 오히려 급한 물살 가운데 있네.
「새벽에 일어나」
온종일 「촉도난」을 길게 읊다가 비껴 누워서야 비로소 한 몸의 한가함을 얻었네. 도리어 베개 위의 정 많은 나비가 밉구나 천 리 험한 길로 옛 산을 찾아가네.
「동교에서 비를 만나」
누런 티끌이 아득히 갠 하늘에 넘치는데 부채를 드니 서풍이 사람 더럽히기를 싫어하네. 늦은 구름이 능히 비를 지어 줌을 크게 사례하노니 가는 길 반에 옷에 가득한 티끌을 씻었네.
「미륵사 주지 노스님에게 드림」
숲 끝이 아득하고 길이 구불구불하니 땅이 궁벽한데 어찌 속된 선비에게 알리랴. 오직 눈옷 입은 솔 위의 학만이 공이 처음 와 집을 엮던 때를 보았네.
「늦가을 달밤」
해가 지고 모진 바람이 나무 끝에서 일어 나는 서리가 자욱한데 잎 소리가 마르네. 창을 열어 맑은 달을 맞을 것 없으니 여윈 뼈가 가을 들어 밤 추위를 겁내네.
「흥해 길 위에서」
뽕밭 사이 아낙이 은밀한 걸음을 좇는데 뻐꾸기가 날아와 나무를 돌며 우네. 다만 농삿집을 위하여 일을 서두르라 알리는 것이니 어떤 사람이 관현의 소리를 그려 냈으랴.
말과 뜻이 맑고 익어 자못 풍소(風騷)를 띠었다. 대개 장편과 큰 운이 많고 궁궐과 부귀를 읊은 작품은 드물다. 그러므로 다만 이 산과 들의 절구만을 적을 뿐이다. 그 문집을 보면 다른 산의 돌이 옥 무더기 언덕에 끼어 든 듯한 데가 있는가 의심스러우니, 이는 엮어 주운 이가 변변치 못한 탓일 따름이다.
金壯元莘鼎,頌文順公游魚曰:「圉圉紅鱗沒復浮,人言得意好優游。細思片隙無閑睱,漁父方歸鷺又謀。」聞鶯曰:「公子王孫擁綺羅,要憑嬌唱助歡多。東君亦學人間樂,開了千花遣爾歌。」問予曰:「孰勝」,予曰:「鶯詩淺近,魚詩雄深,且有比興之趣,此爲絶勝。」壯元曰:「不然,今古鶯咏,皆不及此意,唯公新鑿。夫意雖雄深,已陳則常也。雖淺近,新鑿則可警。」予未能答,今復思之,金之言然。
김 장원 신정이 문순공의 「노는 물고기」를 기려 이르기를,
느릿느릿 붉은 비늘이 잠겼다 다시 뜨니 사람들은 뜻을 얻어 넉넉히 논다고 말하네. 가만히 생각하면 잠깐도 한가한 틈이 없으니 고기잡이 늙은이가 막 돌아가자 백로가 또 꾀하네.
「꾀꼬리 소리를 듣고」
공자와 왕손이 비단을 끼고 있어 고운 노래에 기대어 즐거움을 돕고자 하네. 봄의 임금도 또한 인간의 즐거움을 배워 천 가지 꽃을 피우고 너를 보내어 노래하게 하였네.
나에게 묻기를 「어느 것이 나은가」 하기에 내가 말하였다. 「꾀꼬리 시는 얕고 가깝고 물고기 시는 웅장하고 깊으며 또 비(比)와 흥(興)의 정취가 있으니 이것이 훨씬 낫다.」 장원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예나 이제나 꾀꼬리를 읊은 것이 다 이 뜻에 미치지 못하니 오직 공이 새로 뚫은 것이다. 무릇 뜻이 비록 웅장하고 깊어도 이미 펼쳐진 것이면 예사롭고, 비록 얕고 가까워도 새로 뚫은 것이면 깨우칠 만하다.」 내가 대답하지 못하였는데, 이제 다시 생각하니 김의 말이 옳다.
鄭舍人知常新雪云:「昨夜紛紛瑞雪新,曉來鵷鷺賀中宸。〔新雪,朝賀。〕輕風不動陰雪卷,白玉花開萬樹春。」此詩和艶富貴,非東坡所謂村學中雪詩也。金翰林雪云:「矗嶺嵬岑繞郭來,橫空萬疊玉成堆。水仙向曉遊何處,江上銀屛邐迤開。」李眉叟雪云:「暮風吹雪弄纖纖,夜久渾疑月滿簷。須信書生淸透骨,玉壺空掛水晶簾。」金詩喩白,李詩喩淸,喩淸之詩尤爽。
정 사인 지상의 「새 눈」
어젯밤 어지러이 상서로운 눈이 새로우니 새벽에 원추새와 백로가 대궐에 하례하네.〔새 눈이 오자 조회하여 하례한 것이다.〕 가벼운 바람도 움직이지 않아 그늘진 구름이 걷히고 흰 옥 같은 꽃이 피어 온 나무가 봄이로다.
이 시는 화려하고 곱고 부귀하니 동파가 이른바 시골 글방의 눈 시가 아니다.
김한림의 「눈」
우뚝한 재와 높은 봉우리가 성을 둘러 오니 허공을 가로질러 만 겹 옥이 무더기를 이루었네. 물의 신선은 새벽을 향하여 어디서 노는가 강 위에 은 병풍이 비스듬히 열렸네.
이미수의 「눈」
저녁 바람이 눈을 불어 가늘고 가늘게 놀리더니 밤이 깊어 도무지 달이 처마에 가득한가 의심하네. 모름지기 믿으라, 서생의 맑음이 뼈에 사무침을 옥 병이 부질없이 수정 발에 걸렸네.
김의 시는 흼을 견주었고 이의 시는 맑음을 견주었으니, 맑음을 견준 시가 더욱 상쾌하다.
李眉叟僧院茶磨云:「風輪不管蟻行遲,月斧初揮玉屑飛。法戲從來眞自在,晴天雷吼雪霏霏。」拾栗云:「霜餘脫實赤孄斑,曉拾林間露未乾。喚起兒童開宿火,燒殘玉殼逬金丸。」一字一句巧琢淸玩。有人頌命妓名玉盤珠改爲掌中珠云:「一箇明珠在玉盤,銀河秋露滴團團。千回萬轉元無定,豈若移來掌上看。」此詩疑眉叟語也,然於銀臺集中未詳,則殆貞肅公所作也。和賀新榜第三人云:「韓信旌旗背碧江,燕城趙壁一時降。論功縱在蕭張下,國士從來罕有雙。」此詩非徒琢磨,其措意用事尤妙。白芍藥云:「無賴千花夢已空,一叢香雪獨春風。太眞初罷溫泉浴,白玉肌膚不點紅。」文順公醉西施云:「嚴粧兩臉醉潮勻,共道西施舊日身。笑破吳家猶未足,郤來還欲惱何人。」李眉叟盆竹云:「水灔盆中玉鏡寒,白沙培養碧琅玕。渭濱湘岸俱千里,爭及軒窓取次看。」文順公和朴丞家盆竹云:「欲試君賢豈一端,悍根又耐石盆寒。箇中尙有湘江意,直作攙天玉槊看。」學士詩警於眼,相國詩警於心。然水盆白沙,宜養菖蒲,非養竹。學者但取韻語淸婉,而忘其意。文安公和朴丞家宴崔相國賦瑞祥花云:「新祥喜見滿枝春,果向今朝得好賓。花瑞一家賢瑞國,誰收花愛摠移人。」此詩亦警於心。
이미수의 「절집의 차 맷돌」
바람 바퀴는 개미 걸음이 더딘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달 도끼를 처음 휘두르니 옥 가루가 나네. 법의 놀이는 예로부터 참으로 절로 있는 것이니 갠 하늘에 우레가 울고 눈이 흩날리네.
「밤 줍기」
서리 뒤에 열매가 벗어져 붉게 반들반들한데 새벽에 숲 사이에서 주우니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았네. 아이들을 불러 일으켜 묵은 불을 헤치니 옥 껍질이 타 스러지고 금 알이 튀어 나오네.
한 글자 한 구절이 공교로이 쪼아져 맑게 즐길 만하다.
어떤 사람이 기생 이름 「옥반주(玉盤珠)」를 「장중주(掌中珠)」로 고치라 명한 것을 기려 이르기를,
한 알 밝은 구슬이 옥 소반에 있으니 은하수 가을 이슬이 방울방울 둥그네. 천 번 만 번 굴러 본디 정한 데가 없으니 어찌 손바닥 위로 옮겨 와 보는 것만 하랴.
이 시는 미수의 말인가 싶으나 「은대집」 가운데는 자세하지 않으니 아마도 정숙공이 지은 것이다.
「새 방(榜)의 셋째 사람을 하례함에 화답하여」
한신의 깃발이 푸른 강을 등지니 연나라 성과 조나라 벽이 한때에 항복하였네. 공을 논함이 비록 소하와 장량 아래 있으나 나라의 선비는 예로부터 둘이 있기 드무네.
이 시는 한갓 쪼고 갈았을 뿐 아니라 뜻을 놓고 고사를 쓴 것이 더욱 묘하다.
「흰 작약」
무뢰한 천 가지 꽃의 꿈은 이미 비었는데 한 떨기 향기로운 눈이 홀로 봄바람에 있네. 태진(太眞)이 막 온천 목욕을 마치니 흰 옥 같은 살결에 붉음을 점찍지 않았네.
문순공의 「취한 서시」
곱게 단장한 두 뺨에 취한 물결이 고르니 다 서시의 옛날 몸이라 이르네. 웃음으로 오나라를 깨뜨리고도 오히려 모자라 도리어 와서 또 누구를 괴롭히려는가.
이미수의 「화분의 대」
물이 넘실대는 화분 가운데 옥거울이 차가운데 흰 모래로 푸른 낭간(琅玕)을 북돋아 길렀네. 위수 가와 상강 언덕이 다 천 리이니 어찌 마루 창에서 차례로 보는 것만 하랴.
문순공이 박 승(丞)의 집 화분 대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그대의 어짊을 시험함이 어찌 한 끝뿐이랴 사나운 뿌리가 또 돌 화분의 추위를 견디네. 그 가운데 아직도 상강의 뜻이 있으니 곧바로 하늘을 찌르는 옥 창으로 보리라.
학사의 시는 눈에 깨우침이 있고 상국의 시는 마음에 깨우침이 있다. 그러나 물 화분에 흰 모래는 창포를 기르기에 마땅하지 대를 기르는 것이 아니다. 배우는 이가 다만 운자와 말이 맑고 고운 것만 취하고 그 뜻은 잊는다.
문안공이 박 승의 집에서 최 상국에게 잔치하며 「서상화(瑞祥花)」를 읊은 것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새 상서를 기쁘게 보니 가지에 봄이 가득하여 과연 오늘 아침에 좋은 손을 얻었네. 꽃의 상서는 한 집이요 어짊의 상서는 나라이니 누가 꽃 사랑을 거두어 모두 사람에게로 옮기랴.
이 시도 또한 마음에 깨우침이 있다.
金翰林睡起云:「鵲尾沈烟一穟靑,松風掠拂紙窓鳴。隔林野鳥呼殘夢,驚破江南萬里行。」林耆之云:「頹然臥榻便忘形,午枕風來睡自醒。夢裡此身無處著,乾坤都是一長亭。」文順公春眠云:「睡鄕偏與醉鄕鄰,兩地歸來只一身。九十日春都是夢,夢中還作夢中人。」金詩意雜是卽事。林李兩詩意專睡起,李詩尤可警。
김한림의 「잠에서 깨어」
까치 꼬리 향로에 잠긴 연기가 한 이삭 푸른데 솔바람이 스쳐 종이 창을 울리네. 숲 너머 들새가 남은 꿈을 부르니 강남 만 리 길을 놀라 깨뜨렸네.
임기지가 이르기를,
무너지듯 평상에 누워 곧 몸을 잊었더니 낮 베개에 바람이 와 잠이 절로 깨네. 꿈속에서 이 몸은 붙일 데가 없었으니 하늘과 땅이 모두 한 긴 정자로다.
문순공의 「봄잠」
잠의 고을은 유달리 취한 고을과 이웃하니 두 곳에서 돌아온 것이 다만 한 몸이로다. 아흔 날 봄이 다 꿈이니 꿈 가운데 도리어 꿈속 사람이 되네.
김의 시는 뜻이 섞여 곧 즉사(卽事)다. 임과 이 두 시는 뜻이 오로지 잠 깨는 데 있으니, 이의 시가 더욱 깨우칠 만하다.
林先生椿贈李眉叟書云:「僕與吾子,雖未讀東坡,往往句法,已略相似矣。豈非得於中者,闇與之合?」今觀眉叟詩,或有七字五字,從東坡集來。觀文順公詩,無四五字,奪東坡語,其豪邁之氣富贍之體,直與東坡吻合。世以椿之文得古人體,觀其文,皆攘取古人語。咸至連數十字綴之以爲己辭,此非得其體奪其語。
임 선생 춘이 이미수에게 준 글에 이르기를, 「제가 그대와 더불어 비록 동파를 읽지 않았으나 이따금 구절 짓는 법이 이미 대강 서로 비슷합니다. 어찌 속에서 얻은 것이 가만히 그와 맞아떨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였다.
이제 미수의 시를 보면 더러 일곱 자 다섯 자가 「동파집」에서 온 것이 있다. 문순공의 시를 보면 네댓 자도 동파의 말을 빼앗은 것이 없는데, 그 호방하고 뛰어난 기운과 넉넉한 체는 곧바로 동파와 맞아떨어진다.
세상에서는 춘의 글이 옛사람의 체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글을 보면 다 옛사람의 말을 빼앗아 취한 것이다. 심하면 수십 자를 잇달아 엮어 제 말로 삼는 데까지 이르니, 이는 그 체를 얻은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빼앗은 것이다.
予嘗謁文安公,有一僧持東坡集,質疑於公。讀至「碧潭如見試,白塔若相招」一聯。公吟味再三曰:「古今詩集中,罕見有如此新意。近得李學士春卿詩稿見之,警絶新意頗多。其長篇中,氣至末句而愈壯,如千里驥足方展走通衢,未半途勒止也。」
내가 일찍이 문안공을 뵈었는데 한 스님이 「동파집」을 가지고 와 공에게 의심난 것을 물었다. 읽어 「푸른 못은 시험하려는 듯하고 흰 탑은 부르는 듯하다」는 한 연에 이르렀다. 공이 두세 번 읊어 맛보고 말하였다. 「예와 이제의 시집 가운데 이런 새 뜻이 있는 것은 보기 드물다. 요즘 이 학사 춘경의 시고를 얻어 보니 깨우치고 빼어난 새 뜻이 자못 많았다. 그 장편 가운데는 기운이 끝 구절에 이르러 더욱 씩씩하니, 마치 천 리 가는 준마의 발이 바야흐로 펴져 큰길을 달리다가 길 반도 못 가서 고삐를 당겨 멈춘 것 같다.」
李眉叟明妃長篇略云:「早年若貯黃金屋,一笑聲中漢業空。不敎尤物留帝側,延壽錯畵眞是忠。」文順公云:「若將一女使和隣,何恨胡沙委玉人。狼子貪婪終莫厭,可怜虛辱後宮嬪。」前詩弄天機,後詩言人情。文順公蟬云:「不敢傍古柳,恐驚枝上蟬。莫敎移別樹,好聽一聲全。」眉叟詩:「飮風眞自虛,吸露亦至潔。何事趁秋晨,哀哀聲不絶。」眉叟詩言蟬甚詳,文順公言簡意新。
이미수의 「명비(明妃)」 장편에 대략 이르기를,
젊은 날 만약 황금 집에 넣어 두었더라면 한 번 웃는 소리 가운데 한나라 업이 비었으리. 빼어난 물건을 임금 곁에 머무르게 하지 않았으니 연수(延壽)가 잘못 그린 것이 참으로 충성이로다.
문순공이 이르기를,
만약 한 여자로 이웃과 화친하게 한다면 어찌 오랑캐 모래에 옥 같은 사람을 버린 것을 한하랴. 이리 새끼의 탐욕은 끝내 싫증 낼 줄 모르니 가엾구나, 헛되이 뒷궁의 여인들을 욕보인 것이.
앞의 시는 하늘의 기틀을 놀렸고 뒤의 시는 사람의 정을 말하였다.
문순공의 「매미」
감히 옛 버들에 다가서지 못하니 가지 위의 매미가 놀랄까 두려워서네. 다른 나무로 옮기게 하지 말라 한 소리를 온전히 듣는 것이 좋으니.
미수의 시,
바람을 마시니 참으로 절로 비었고 이슬을 마시니 또한 지극히 깨끗하네. 무슨 일로 가을 새벽을 좇아 슬프고 슬피 소리가 그치지 않는가.
미수의 시는 매미를 말한 것이 매우 자세하고, 문순공은 말이 간결하고 뜻이 새롭다.
丁秘監而安,邃於文章,墨竹最妙。嘗於侯家有一畵簇,衆史皆瞢其圖本。監見之曰:「是劉賓客詩也。」頌其詩,以校其畵,歷歷無一毫差。因曰:「士大夫揮掃,例以詩爲本,若沓其圖,則畵工也。」鄭舍人知常醉題云:「桃花紅雨鳥喃喃,繞屋靑山間翠嵐。一頂烏紗慵不整,醉眠花塢夢江南。」此詩可作畵圖看也。陳補闕遊五臺山云:「畵裡當年見五臺,掃雲蒼翠有高低。今來萬壑爭流處,却喜穿雲路不迷。」此古人所謂對境想畵也。
정 비감 이안은 문장에 깊고 먹으로 그린 대가 가장 묘하였다. 일찍이 후작 집에 그림 한 폭이 있었는데 여러 화사(畵史)가 다 그 밑그림이 무엇인지 어두워하였다. 비감이 보고 말하였다. 「이는 유 빈객의 시다.」 그 시를 외어 그 그림에 견주니 낱낱이 한 터럭도 어긋남이 없었다. 이어 말하였다. 「사대부가 붓을 휘두르는 것은 으레 시로 밑바탕을 삼는다. 만약 그 밑그림만 겹쳐 뜬다면 그것은 화공이다.」
정 사인 지상이 취하여 제하기를,
복사꽃 붉은 비에 새가 재잘거리고 집을 두른 푸른 산에 비취빛 아지랑이가 끼었네. 검은 사(紗) 두건 하나를 게을러 바루지 않고 꽃 언덕에 취해 누워 강남을 꿈꾸네.
이 시는 그림으로 삼아 볼 만하다.
진 보궐의 「오대산에 노닐며」
그림 속에서 그해 오대산을 보았으니 구름을 쓸어 낸 푸르름에 높고 낮음이 있었네. 이제 만 골짜기가 다투어 흐르는 곳에 와서 도리어 기쁘구나, 구름을 뚫는 길에서 헤매지 않는 것이.
이것이 옛사람이 이른바 「마주한 지경에서 그림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詩僧元湛謂予云:「今之士大夫作詩,遠託異域人物地名,以爲本朝事實,可笑。如文順公南遊曰:「秋霜染盡吳中樹,暮雨昏來楚外山。」雖造語淸遠,吳楚非我地也。未若前輩松京早發云:「初行馬坂人烟動,及過駝橋野意生。」非特辭新趣勝,言辭甚的。」予答曰:「凡詩人用事不必泥其本,但寓意而已。況復天下一家,翰墨同文,胡彼此之有間。」僧服之。
시 짓는 스님 원담이 나에게 말하였다. 「요즘 사대부가 시를 지으면서 멀리 다른 나라의 인물과 지명에 기대어 이 나라의 사실로 삼으니 우습습니다. 이를테면 문순공이 남쪽에 노닐며 이르기를 『가을 서리가 오(吳) 땅 나무를 다 물들이고, 저녁 비가 어둑히 초(楚) 밖 산으로 오네』 하였는데, 비록 말을 지은 것이 맑고 멀지만 오와 초는 이 땅이 아닙니다. 앞 세대가 송경(松京)에서 일찍 떠나며 이른 것만 못합니다. 『처음 마판(馬坂)을 가니 사람 사는 연기가 움직이고, 타교(駝橋)를 지나매 들의 뜻이 나네.』 이는 말이 새롭고 정취가 나을 뿐 아니라 말이 매우 딱 맞습니다.」
내가 답하였다. 「무릇 시인이 고사를 쓰는 것은 반드시 그 본디에 얽매일 것이 아니고 다만 뜻을 부칠 뿐이다. 하물며 천하가 한 집이요 글월이 같은 글자를 쓰거늘 어찌 저와 이의 사이가 있겠는가.」 스님이 수긍하였다.
陳補闕澕評詩:「以文順公杜門云:「初如蕩蕩懷春女,漸作寥寥結夏僧。」如牙齒間寘蜜,漸而有味。李由之和耆老相國詩云:「睡倚乍容靑玉案,醉扶聊遺絳紗裙。」如咀氷嚼雪,令人心地爽然無累。寘蜜之辭未若咀氷之語。」僕於此評未服。彼咀氷之語,雖新進輩月鍊日琢,則萬有一得,寘蜜之辭,深得杜門之意,非老手固不可導。陳與由之及當時鳴詩輩,共和耆老相國詩,裙韻最强,至於復用,皆有難色。而由之導此聯,陳卽驚動,故有此語。陳補闕讀李春卿詩云:「啾啾多言費楮毫,三尺喙長只自勞。謫仙逸氣萬像外,一言足倒千詩豪。」及第吳芮公曰:「逸氣一言,可得聞乎?」陳曰:「蘇子贍品畵云:「摩詰得之於象外,筆所未到氣已吞。」詩畵一也。杜子美詩,雖五字中,尙有氣呑象外,李春卿走筆長篇,亦象外得之。是謂逸氣。謂一語者,欲其重也。夫世之嗜常惑凡者,不可與言詩,況筆所未到之氣也!
진 보궐 화가 시를 품평하였다. 「문순공의 「문을 닫고」에 이르기를 『처음엔 하늘하늘 봄을 그리는 여인 같더니, 점점 쓸쓸히 여름 안거에 든 중이 되었네』 한 것은 어금니 사이에 꿀을 둔 것 같아 점점 맛이 있다. 이유지가 기로 상국의 시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졸음에 기대어 잠깐 푸른 옥 책상을 받아들이고, 취하여 부축받으며 애오라지 붉은 사(紗) 치마를 남기네』 한 것은 얼음을 씹고 눈을 깨무는 것 같아 사람의 마음자리를 상쾌하게 하여 걸림이 없게 한다. 꿀을 둔 말은 얼음을 씹는 말만 못하다.」
나는 이 품평에 수긍하지 못한다. 저 얼음을 씹는다는 말은 비록 새로 나아가는 무리라도 달마다 단련하고 날마다 쪼면 만에 하나 얻음이 있겠지만, 꿀을 둔 말은 문 닫은 뜻을 깊이 얻은 것이라 노련한 손이 아니면 진실로 이끌어 낼 수 없다.
진과 유지와 그때 시로 이름난 무리가 함께 기로 상국의 시에 화답하였는데, 「군(裙)」 운이 가장 굳세어 거듭 쓰기에 이르러서는 다들 어려워하는 빛이 있었다. 그런데 유지가 이 연을 이끌어 내니 진이 곧 놀라 움직였으므로 이런 말이 있는 것이다.
진 보궐이 이춘경의 시를 읽고 이르기를,
재잘재잘 말이 많아 종이와 붓을 허비하니 석 자 부리가 길어 다만 스스로 수고롭네. 귀양 온 신선의 빼어난 기운은 온갖 형상 밖에 있어 한 마디면 천 사람의 시 호걸을 넘어뜨리기에 넉넉하네.
급제한 오예공이 말하였다. 「빼어난 기운과 한 마디란 것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진이 말하였다. 「소자첨이 그림을 품평하여 이르기를 『마힐은 형상 밖에서 얻었으니 붓이 이르지 않은 데를 기운이 이미 삼켰다』 하였다. 시와 그림은 하나다. 두자미의 시는 비록 다섯 자 가운데라도 오히려 형상 밖을 삼키는 기운이 있고, 이춘경이 붓을 달려 지은 장편도 또한 형상 밖에서 얻은 것이다. 이를 빼어난 기운이라 한다. 한 마디라 이른 것은 그것이 무겁기를 바란 것이다. 무릇 세상에서 예사로운 것을 즐기고 범상한 것에 홀린 이와는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없거늘, 하물며 붓이 이르지 않은 기운이랴.」
棄菴居士安淳之,以曠世大手,於文章愼推。李眉叟嘗以書及詩,求作汲古堂記,再三猶不應。李固迫之,乃不得已作記,以駁李所著汲古堂詩之意非之。金翰林克己,與安同邑又同時,安之文集中,未嘗一與金有唱和之作,唯於吳先生世材,一見歎服不已。見陳玉堂澕詩曰:「君才已過筠溪,小進之可至東坡。」見文順公文藁,作小序略云:「發言成章,頃刻百篇,天縱神授,淸新俊逸,人以公爲李太白,盖實錄。然以僕言之,其醉吟之際,狂海蕩然,錦腸爛然,卽已相類,至於律格嚴整,對偶眞切,於悤悤不暇中,尤見功夫,似過之也。」又作讀雅詩敍云:「詩三百篇,非必出於聖賢之口。而仲尼皆錄爲萬世之經者,豈非以美刺之言,發其性情之眞,而感動之切,入人骨髓之深耶?然則雖蒭蕘賤隷,苟其言中道,則聖人之所不敢捨,況大賢君子之所作,文義俱勝,華實相副者,獨不入於雅頌之列乎?余近得樂天集閱之,縱橫和裕,而無鍛鍊之迹,似近而遠,旣華而實,詩之六義備矣。」棄菴之言然。白詩於風雅頌義,深淺異耳,其關於敎化一也。杜牧自負文章俊逸,譏樂天之詩尨雜淺陋,當時貍德若視日者,皆從而作謗,譁然同辭。故至于今詩人,雖不及知古人所謂白俗之意者,猶曰:「長慶雜說,何足看也。」笑哉。凡新學詩,欲壯其氣力,雖不讀可矣。若搢紳先覺,閑居覽閱,樂天忘憂,非白詩莫可。古人以白公爲人才者,盖其辭和易,言風俗敍物理,甚的於人情也。今觀文順公詩,雖氣韻逸越,侔於太白,其明道德陳風諭,略與白公契合,可謂天才人才備矣。
기암거사 안순지는 세상에 드문 큰 솜씨로 문장에 대해 남을 밀어 주는 데 삼갔다. 이미수가 일찍이 글과 시로 「급고당기(汲古堂記)」를 지어 달라 청하였으나 두세 번 청해도 오히려 응하지 않았다. 이가 굳이 다그치니 그제야 부득이 기(記)를 짓되, 이가 지은 「급고당시」의 뜻을 반박하여 그르다 하였다.
김한림 극기는 안과 같은 고을이고 또 같은 때 사람인데, 안의 문집 가운데 일찍이 한 번도 김과 주고받은 작품이 없다. 오직 오 선생 세재에게만은 한 번 보고 감탄하여 마지않았다.
진 옥당 화의 시를 보고 말하였다. 「그대의 재주는 이미 균계(筠溪)를 지났으니 조금만 더 나아가면 동파에 이를 수 있다.」
문순공의 글 원고를 보고 작은 서문을 지어 대략 이르기를, 「말을 내면 글이 되어 잠깐에 백 편이니 하늘이 놓아 주고 신이 준 것이라 맑고 새롭고 뛰어나고 빼어나므로 사람들이 공을 이태백이라 하는데 대개 사실을 적은 것이다. 그러나 내 말로 하면, 취하여 읊을 즈음에 미친 바다가 출렁이고 비단 창자가 찬란한 것은 곧 이미 서로 비슷하지만, 율격이 엄정하고 짝 맞춤이 참되고 절실하여 총총히 겨를 없는 가운데서도 더욱 공부가 보이는 데 이르러서는 태백을 넘어선 듯하다.」 하였다.
또 「아시(雅詩)를 읽고」 서문을 지어 이르기를, 「시 삼백 편이 반드시 성현의 입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런데 중니가 다 적어 만세의 경전으로 삼은 것은, 어찌 기리고 나무라는 말이 그 성정의 참됨을 펴서 감동시킴이 절실하여 사람의 뼛속 깊이 들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한즉 비록 꼴 베고 나무하는 천한 종이라도 진실로 그 말이 도에 맞으면 성인이 감히 버리지 않는 바이거늘, 하물며 큰 어짊과 군자가 지은 것으로 글과 뜻이 다 뛰어나고 꽃과 열매가 서로 걸맞은 것이 유독 아(雅)와 송(頌)의 반열에 들지 못하겠는가. 내가 요즘 낙천의 문집을 얻어 훑어보니, 가로세로 화하고 넉넉하되 두드려 단련한 자취가 없고, 가까운 듯하면서 멀고, 이미 화려하면서 열매가 있으니, 시의 여섯 뜻이 갖추어졌다.」 하였다.
기암의 말이 옳다. 백의 시가 풍(風)·아(雅)·송(頌)의 뜻에 깊고 얕음이 다를 뿐이지 교화에 관계되는 것은 하나다.
두목은 문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여 낙천의 시가 잡스럽고 얕고 비루하다고 비웃었다. 그때 좁은 덕으로 해를 쳐다보듯 하던 이들이 다 따라 헐뜯어 시끄럽게 말을 같이하였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도 시인들이 비록 옛사람이 이른바 「백은 속되다」 한 뜻을 알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장경(長慶)의 잡설을 무엇 볼 것이 있으랴」 한다. 우습다.
무릇 새로 시를 배워 그 기력을 씩씩하게 하려는 이는 비록 읽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벼슬한 이나 먼저 깨달은 이가 한가히 살며 훑어보아 즐거워 근심을 잊는 데는 백의 시가 아니면 안 된다. 옛사람이 백공을 사람의 재주라 한 것은, 대개 그 말이 화평하고 쉬우며 풍속을 말하고 사물의 이치를 편 것이 사람의 정에 매우 딱 맞기 때문이다.
이제 문순공의 시를 보면 비록 기운과 운치가 빼어나고 뛰어난 것은 태백에 짝하되, 그 도덕을 밝히고 풍유를 편 것은 대략 백공과 맞아떨어지니, 하늘의 재주와 사람의 재주를 갖추었다 할 만하다.
李史館允甫,嘗與人評曰:「吾曩與李翰林春卿等詩友三四人,同作詩。李先曰:「送來一雨雲還拆,開了千花天始閑。」一座閣筆,終不吐一辭。後與李同在禁林,時康廟大行,誥院翰署,皆作挽詞。李曰:「未信賓天終不返,却疑遊月儻還來。」院署諸老,拱手歎服。時陳翰林澕亦云:「九原一旦成千古,四海三年遏八音。」不及李遠矣,又言九原非。
이사관 윤보가 일찍이 남과 더불어 품평하여 말하였다. 「내가 지난날 이 한림 춘경 등 시 벗 서너 사람과 함께 시를 지었다. 이가 먼저 이르기를 『한 줄기 비를 보내오자 구름이 도로 터지고, 천 가지 꽃이 피고 나니 하늘이 비로소 한가하네』 하니, 온 자리가 붓을 놓고 끝내 한마디도 뱉지 못하였다.
뒤에 이와 함께 금림(禁林)에 있을 때 강종께서 승하하시매 고원과 한림서에서 다 만사(挽詞)를 지었다. 이가 이르기를 『하늘로 오르시어 끝내 돌아오지 않으심을 믿지 못하니, 도리어 달에 노니시다 혹 돌아오실까 의심하네』 하니, 원(院)과 서(署)의 여러 노인이 손을 맞잡고 감탄하여 수긍하였다. 그때 진 한림 화도 이르기를 『구원(九原)이 하루아침에 천고가 되니, 사해가 삼 년 동안 여덟 소리를 그쳤네』 하였으나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였고, 또 「구원」이라 한 것이 잘못이다.」
李眉叟次韻崔平章和昌黎春雪詩云:「六出欣新瑞,三章憶舊謠。細怜投隙騁,光惜入池消。皎皎欺潘鬢,輕輕鬪楚腰。玲瓏排夜色,點綴放春條。賦興歸梁苑,詩情起灞橋。敗鱗浮浩渺,飛羽拂扶搖。落絮先迷夏,行雲已失朝。爭輝嫌月照,弄片厭風飄。遇凸高堆玉,緣平淨展綃。滿庭奇貨積,殘計訝還饒。」外王父金禮卿云:「陽春還有雪,欲作郢中謠。細落乾相積,遲回濕欲消。石掀鹽虎頂,城繚玉龍腰。柳失黃金線,梅添白玉條。韓車拖縞帶,羅杖變銀橋。惡洒窓深閉,疑霑袖數搖。寒威猶當臈,曙色已先朝。風急俄驚打,烟籠未省飄。題詩難下筆,寫景欲煩綃。好入心懷潔,休粘鬢髮饒。」皇甫同文抗云:「冷噤鶯兒舌,光凝鳳子腰。郢歌聞一曲,張咏琢三條。粉葉飄梅嶺,銀濤卷五橋,云云。瓦覆溝平壠,窓明夜自朝。霓裳凌日舞,柳絮逐風飄。預道豐年瑞,毫端舌已饒。」梁待制南一云:「翠鬟埋嶽頂,縞帶束廊腰。滿眼銀千界,渾林玉萬條。成凘應及午,寄賞不終朝。冷助吟肩聳,輕隨舞袖飄。入詩□□絮,上畵色迷綃。四野如枰白,還疑黑路饒。」前兩詩句句皆佳,後二首唯十二聯淸苦。
이미수가 최 평장이 창려(昌黎)의 「봄눈」 시에 화답한 것에 차운하여 이르기를,
여섯 모가 새 상서로움을 기뻐하고 석 장(章)에서 옛 노래를 생각하네. 가늘게 어여쁘구나, 틈을 타 달림이여 빛이 아깝구나, 못에 들어 스러짐이여. 희고 희어 반악의 살쩍을 속이고 가볍고 가벼워 초나라 허리와 다투네. 영롱하게 밤빛을 밀치고 점점이 봄 가지에 놓이네. 부(賦)의 흥은 양원(梁苑)으로 돌아가고 시의 정은 파교(灞橋)에서 일어나네. 깨어진 비늘이 아득한 물에 뜨고 나는 깃이 회오리바람을 스치네. 지는 버들솜은 먼저 여름을 홀리고 가는 구름은 이미 아침을 잃었네. 빛을 다투어 달이 비추는 것을 꺼리고 조각을 놀리며 바람에 날림을 싫어하네. 불룩한 데를 만나면 높이 옥을 쌓고 평평한 데를 따라서는 깨끗이 깁을 펴네. 뜰에 가득 기이한 재화가 쌓이니 남은 셈이 도리어 넉넉함을 놀라네.
외할아버지 김예경이 이르기를,
봄볕에도 도리어 눈이 있어 영중(郢中)의 노래를 지으려 하네. 가늘게 떨어져 마르면 서로 쌓이고 더디 돌다 젖으면 스러지려 하네. 돌은 소금 범의 정수리를 들추고 성은 옥 용의 허리를 둘렀네. 버들은 누런 금실을 잃고 매화는 흰 옥 가지를 더하였네. 한(韓)의 수레는 흰 띠를 끌고 나(羅)의 지팡이는 은 다리로 변하였네. 모질게 뿌리니 창을 깊이 닫고 젖을까 의심하여 소매를 자주 흔드네. 찬 기운은 아직 섣달에 맞갖고 새벽빛은 이미 아침보다 앞서네. 바람이 급하니 갑자기 때림에 놀라고 연기에 싸여 날리는 줄을 깨닫지 못하네. 시를 제하려니 붓 내리기 어렵고 경치를 그리려니 깁이 번거로우려 하네. 좋이 마음속에 들어 깨끗하니 살쩍과 머리털에는 넉넉히 붙지 말라.
황보 동문 항이 이르기를,
차가움은 꾀꼬리의 혀를 다물게 하고 빛은 나비의 허리에 엉기네. 영(郢)의 노래를 한 곡 듣고 장(張)의 읊음을 세 가락 쪼네. 가루 잎은 매화 고개에 날리고 은 물결은 다섯 다리를 말아 올리네.〔줄임〕 기와가 덮여 도랑이 두렁과 평평하고 창이 밝아 밤이 절로 아침이로다. 무지개 치마가 해를 넘어 춤추고 버들솜이 바람을 좇아 날리네. 미리 풍년의 상서를 말하니 붓끝에 혀가 이미 넉넉하네.
양 대제 남일이 이르기를,
푸른 쪽 진 머리가 산꼭대기를 묻고 흰 띠가 행랑 허리를 묶었네. 눈에 가득 은이 천 세계요 온 숲이 옥 만 가지로다. 성엣장 이룸은 응당 한낮에 미치리니 감상을 부치는 것도 아침을 마치지 못하네. 차가움은 읊는 어깨 솟음을 돕고 가벼움은 춤추는 소매를 따라 날리네. 시에 드니 □□ 버들솜이요 그림에 오르니 빛이 깁을 홀리네. 사방 들이 바둑판처럼 희니 도리어 검은 길이 넉넉한가 의심하네.
앞의 두 시는 구절마다 다 아름답고, 뒤의 두 수는 오직 열두 연만 맑고 애틋하다.
己未仲夏,晉康公第,千葉榴花盛開。公邀致李翰林仁老,金翰林克己,李留院湛之,咸司直淳,李先達奎報,請賦之。席上占韻,禽字最强。李翰林云:「錦幄朝遮日,金鈴曉起禽。」李先達云:「爇香晴引蝶,散火夜驚禽。」次曰:「輕投怜巧蝶,惡踏禁閑禽。」次曰:「蘂繁難結子,枝弱不勝禽。」次曰:「襲香風檻客,弄影午庭禽。」次曰:「碧桃空伴鶴,靑李謾來禽。」以錦幄聯爲第一,笙篁於都下。或曰:「此聯雖富貴婉艶,其立對相似,使事相近,未免詩家一病。」後於南山里第北園小峰上,別開一閣,以白茅爲幈幪,命之曰茅亭,又請李仁老、李奎報,及金君綏、李公老、金良鏡、李允甫作記。皆當時名儒。以李公奎報所述爲最,遂勒板于亭上。
기미년 한여름에 진강공의 집에 천엽 석류꽃이 활짝 피었다. 공이 이 한림 인로, 김한림 극기, 이 유원 담지, 함 사직 순, 이 선달 규보를 불러 이르게 하여 읊기를 청하였다. 자리에서 운을 뽑으니 「금(禽)」 자가 가장 굳세었다.
이 한림이 이르기를,
비단 장막이 아침에 해를 가리고 금방울이 새벽에 새를 일으키네.
이 선달이 이르기를,
향을 사르니 갠 날에 나비를 끌고 불을 흩으니 밤에 새를 놀래네.
다음은,
가벼이 던져 어여쁜 것은 재주 있는 나비요 사납게 밟아 막는 것은 한가한 새로다.
다음은,
꽃술이 번다하여 열매 맺기 어렵고 가지가 약하여 새를 이기지 못하네.
다음은,
향을 끼치는 것은 바람 든 난간의 손이요 그림자를 놀리는 것은 한낮 뜰의 새로다.
다음은,
벽도(碧桃)는 부질없이 학을 짝하고 푸른 오얏에는 헛되이 능금이 오네.
「비단 장막」 연을 첫째로 삼으니 서울 안에 생황 소리처럼 퍼졌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이 연은 비록 부귀하고 곱지만 그 짝을 세운 것이 서로 비슷하고 고사를 부린 것이 서로 가까우니, 시가(詩家)의 한 가지 병을 면하지 못한다.」
뒤에 남산 마을 집 북쪽 동산의 작은 봉우리 위에 따로 한 누각을 열고 흰 띠로 장막을 삼아 「모정(茅亭)」이라 이름 짓고, 또 이인로·이규보와 김군수·이공로·김양경·이윤보에게 기(記)를 짓기를 청하였다. 다 그때의 이름난 선비였다. 이 공 규보가 지은 것을 으뜸으로 삼아 마침내 정자 위에 판에 새겼다.
貞肅公嘗言:「昔朴待制椿齡,嘗見人佳作卽感泣,我亦如之。」予聞其言,嘗慕朴君,不知其爲文何如也。切欲見之,今得一詩,果深於詩者也。題寶城公館思金太守儒云:「下惠官卑尙不辭,牛刀焉用割鷄爲。甘棠正是思人樹,峴岫依然墮淚碑。父老能談遺愛化,兒童爭頌舊留詩。嘗聞跖壽顔回夭,天理茫茫不可知。
정숙공이 일찍이 말하였다. 「옛날 박 대제 춘령은 남의 좋은 작품을 보면 곧 감동하여 울었는데, 나도 또한 그러하다.」
내가 그 말을 듣고 일찍이 박군을 사모하였으나 그 글이 어떠한지는 알지 못하였다. 몹시 보고 싶었는데 이제 시 하나를 얻으니 과연 시에 깊은 이였다.
「보성 공관에 제하여 김 태수 유를 그리며」
유하혜는 벼슬이 낮아도 오히려 사양하지 않았으니 소 잡는 칼을 어찌 닭 잡는 데 쓰랴. 감당(甘棠)은 바로 사람을 그리는 나무요 현산(峴山)은 여전히 눈물 떨어뜨리는 비로다. 늙은이들은 남긴 사랑의 교화를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다투어 옛날 남긴 시를 외네. 일찍이 들으니 도척은 오래 살고 안회는 일찍 죽었다 하니 하늘의 이치가 아득하여 알 수 없구나.
八巓山絶頂上,有危樓。權學士適爲嶺南觀察,題此樓云:「日月東西三面水,乾坤上下一峰樓。」後人讀作乾坤之上下,不知其句有味。杜子美登樓詩云:「二儀淸濁還高下。」上下亦高下。當作乾坤還上下讀之,則其句妙矣。日月東西亦然。
팔전산 꼭대기에 높은 누각이 있다. 권 학사 적이 영남 관찰이 되어 이 누각에 제하여 이르기를,
해와 달은 동으로 서로 오가고 세 면은 물이며 하늘과 땅은 위로 아래로 놓이고 한 봉우리에 누각이로다.
뒷사람이 「하늘과 땅의 위아래」로 읽어 그 구절에 맛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 두자미의 「누각에 올라」 시에 이르기를 「두 기운의 맑고 흐림이 도로 높고 낮다」 하였으니, 위아래도 또한 높고 낮음이다. 마땅히 「하늘과 땅이 도로 위아래가 된다」로 읽어야 그 구절이 묘하다. 「해와 달이 동으로 서로 오간다」도 또한 그러하다.
中原靈鵠寺,倚峭壁俯蒼流,結構古遠。立屋縱二間橫折一間,架空爲樓,自下望之若懸,其三稜高啄,去天一握。有一使臣姓崔亡名題云:「千仞巖頭千古寺,前臨江水後依山。上磨星斗屋三角,半出虛空樓一間。」是寺形容曲盡於此,未知他後續題者,更導得何語。
중원의 영곡사는 가파른 벼랑에 기대어 푸른 물줄기를 굽어보는데 얽어 지은 것이 예스럽고 아득하다. 집을 세우되 세로 두 칸에 가로 한 칸을 꺾어 허공에 시렁을 얹어 누각을 삼았다. 아래에서 바라보면 매달린 듯하고, 그 세 모서리가 높이 쪼아 하늘까지 한 줌이다.
성이 최씨이고 이름은 전하지 않는 사신 하나가 제하여 이르기를,
천 길 바위 머리의 천고의 절이여 앞으로는 강물에 임하고 뒤로는 산에 기대었네. 위로 별을 갈아 지붕이 세 모서리요 반이 허공에 나와 누각이 한 칸이로다.
이 절의 모습이 여기서 남김없이 그려졌으니, 뒤에 이어 제하는 이가 다시 무슨 말을 이끌어 낼지 알지 못하겠다.
每歲春秋,轉大藏經及與消災道場,皆命誥院詞臣,作四韻音讚詩。李公仁老,初登誥院以謂:「音讚詩乃讚佛德也,大抵賦道場莊嚴觀覽景致,或歸美君主敍事,說情皆非也。」及製呈云:「靈山當日鵲巢肩,濯濯還如出水蓮。」此雖句語有力,鵲巢肩是苦行時事,非讚萬德莊嚴也。金貞肅公仁鏡云:「千古金仙事杳茫,海東今日更張皇。扶蘇蒼翠眞靈鷲,宣慶莊嚴是普光。」此用古事,卽今事,可警。蔡拾遺寶文云:「性空月滿乾坤曉,覺樹花開世界春。」此眞讚佛也,亦可云讚法。然非出新意。夫音讚之法,若不能專讚佛寶,通讚三寶亦得。如陳補闕云:「兩手蕉心經卷卷,半肩山色衲層層。」此讚僧寶也。文順公云:「琅函霧濕龍擎到,紺席風生象踏行。」此通讚法寶僧寶也。金貞肅公云:「穿花玉漏曹溪滴,映日珠簾帝網重。」此卽禁中事,讚法寶也。趙直講文拔云:「改穿花爲風傳,則尤佳。」崔平章奭在綸院時云:「鍾吼遠醒三界夢,殿嚴高壓五天空。雖將大地硏爲墨,難盡吾皇志願洪。」此詩當文廟創立興王寺,三層大殿特開慶讚道場。故雖敍事可也。文順公云:「形勝新開白玉京,江山王氣擁明堂。更憑佛力金城固,寧畏胡雛鐵騎强。」李學士云:「譆譆出出如鳴社,戰戰兢兢若履氷。」文順公當遷新都日,禳狄兵,李學士當廩災,後招稉,宜敍事如此。陳補闕云:「禪朝案上香堆燼,講夜簷頭月减稜。」雖語格淸爽,賦景致非也。第一聯言設席,頷聯頸聯皆讚三寶,落句言福利,此音讚詩之範也。雖鴻儒巨筆,猶局其前範,未免換骨。而文順公天變消災云:「虜吻流涎已足徵,乾文見謫又何懲。天心似水雖難測,佛力如山信可憑。」禳狄兵云:「殘寇虛張菜色軍,吾皇專倚玉毫尊。若敎梵唱如龍吼,寧有胡兒不鹿奔。」其語豪放不局,故拘凡滯俗者,或議其偃蹇。趙直講大藏道場云:「金章進勸宸躬拜,繡衲趨迎御步巡。」言君主擧動非也。周官司議,掌相以詔揖讓之節注,贊禮曰,相以揖讓之節吿王〔後漢,謁者僕射贊拜,又唱贊百官拜,若今之喝。至魏始置通事舍人。〕。今諸道場,親幸拜禮,樞密詣左相之,俗稱爲勸拜。趙用俗語。
해마다 봄가을에 대장경을 돌려 읽고 소재도량(消災道場)을 여는데, 다 고원의 사신(詞臣)에게 명하여 사운(四韻)의 음찬시(音讚詩)를 짓게 한다.
이 공 인로가 처음 고원에 오르며 말하였다. 「음찬시는 곧 부처의 덕을 기리는 것이다. 대개 도량의 장엄함을 읊거나 경치를 구경하거나, 혹 임금에게 아름다움을 돌려 일을 펴고 정을 말하는 것은 다 그르다.」
지어 올리기를,
영산(靈山)의 그날 까치가 어깨에 집을 지었으니 말갛기가 도리어 물에서 나온 연꽃 같네.
이것이 비록 구절과 말에 힘이 있으나, 까치가 어깨에 집을 지은 것은 고행하실 때의 일이니 온갖 덕의 장엄함을 기린 것이 아니다.
김 정숙공 인경이 이르기를,
천고의 금선(金仙)의 일이 아득한데 해동에서 오늘 다시 크게 벌였네. 부소산 푸르름이 참으로 영취산이요 선경전의 장엄이 곧 보광명전이로다.
이는 옛일을 써서 곧 오늘의 일로 삼았으니 깨우칠 만하다.
채 습유 보문이 이르기를,
성품이 비어 달이 차니 하늘과 땅이 새벽이요 깨달음의 나무에 꽃이 피니 세계가 봄이로다.
이는 참으로 부처를 기린 것이요 또한 법을 기렸다 이를 만하다. 그러나 새 뜻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무릇 음찬의 법은 만약 오로지 불보(佛寶)만 기릴 수 없다면 삼보(三寶)를 두루 기려도 된다.
진 보궐이 이른 것 같은 것은,
두 손의 파초 같은 마음은 경권마다 펼치고 반 어깨의 산빛은 누비옷이 층층이로다.
이는 승보를 기린 것이다.
문순공이 이르기를,
낭함(琅函)에 안개가 젖어 용이 받들어 이르고 감색 자리에 바람이 일어 코끼리가 밟고 가네.
이는 법보와 승보를 두루 기린 것이다.
김 정숙공이 이르기를,
꽃을 뚫는 옥루(玉漏)는 조계(曹溪)로 방울지고 해에 비치는 구슬 발은 제망(帝網)이 겹겹이로다.
이는 곧 궁중의 일이면서 법보를 기린 것이다. 조 직강 문발이 말하였다. 「『꽃을 뚫는다』를 『바람이 전한다』로 고치면 더욱 아름답다.」
최 평장 석이 윤원(綸院)에 있을 때 이르기를,
종이 울어 멀리 삼계의 꿈을 깨우고 전각이 엄숙히 높아 다섯 하늘의 허공을 누르네. 비록 큰 땅을 갈아 먹을 삼는다 해도 우리 임금의 크신 뜻과 소원을 다하기 어렵네.
이 시는 문종께서 흥왕사를 창건하시고 삼층 대전에서 특별히 경찬도량을 여신 때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비록 일을 펴도 괜찮다.
문순공이 이르기를,
형승(形勝)에 백옥경을 새로 여니 강산의 왕기가 명당을 감쌌네. 다시 부처의 힘에 기대어 금성이 굳으니 어찌 오랑캐 새끼의 철기가 강함을 두려워하랴.
이 학사가 이르기를,
「희희 출출」 하며 사(社)에서 우는 듯하고 전전긍긍 얼음을 밟는 듯하네.
문순공은 새 도읍으로 옮기던 날에 오랑캐 군사를 물리치는 것이었고, 이 학사는 재앙에 곳간을 열고 뒤에 벼를 부르는 것이었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일을 펼 만하다.
진 보궐이 이르기를,
선(禪)의 아침 책상 위에 향이 재를 쌓고 강(講)의 밤 처마 끝에 달이 모를 덜었네.
비록 말의 격이 맑고 상쾌하나 경치를 읊은 것은 그르다.
첫째 연은 자리를 베푼 것을 말하고, 함련과 경련은 다 삼보를 기리고, 끝 구절은 복과 이로움을 말하는 것 — 이것이 음찬시의 본이다. 비록 큰 선비와 큰 붓이라도 오히려 그 앞의 본에 갇혀 뼈를 바꾸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
그런데 문순공의 「하늘의 변고에 재앙을 사르며」에 이르기를,
오랑캐 입에 침이 흐르는 것이 이미 징조로 넉넉한데 하늘 무늬가 꾸짖음을 보이니 또 무엇을 징계하랴. 하늘 마음은 물 같아 비록 헤아리기 어려우나 부처의 힘은 산 같아 믿고 기댈 만하네.
「오랑캐 군사를 물리치며」에 이르기를,
남은 도적이 헛되이 굶주린 낯빛의 군사를 벌였는데 우리 임금은 오로지 옥호(玉毫)의 높으심에 기대시네. 만약 범패 소리로 하여금 용의 울음같이 하면 어찌 오랑캐 아이가 사슴처럼 달아나지 않으랴.
그 말이 호방하여 갇히지 않았으므로, 범상한 데 얽매이고 속된 데 막힌 이들이 더러 그 우뚝함을 나무란다.
조 직강의 「대장도량」에 이르기를,
금장(金章)이 나아가 권하니 임금의 몸이 절하시고 수놓은 누비옷이 달려 맞으니 어가의 걸음이 도시네.
임금의 거동을 말한 것은 그르다. 「주관(周官)」의 사의(司議)는 「상(相)을 맡아 읍하고 사양하는 절차를 알린다」 하였고, 그 주에 「예를 돕는 것을 찬(贊)이라 하니, 상은 읍하고 사양하는 절차를 왕에게 아뢰는 것이다」 하였다.〔후한에서는 알자복야가 절하기를 찬하였고 또 백관의 절을 소리쳐 찬하였으니 지금의 갈(喝)과 같다. 위나라에 이르러 비로소 통사사인을 두었다.〕 이제 여러 도량에 임금이 몸소 나아가 절하는 예에 추밀이 나아가 그것을 돕는데, 세속에서 「권배(勸拜)」라 부른다. 조는 세속의 말을 쓴 것이다.
權學士適題珍富驛云:「古驛名珍富,名珍富意何。雪堆山玉滿,柳拂路金多。溪鯉跳紅錦,村烟散碧羅。眼前雙戶長,銀縷鬢毛華。」學士曰:「我特戲作也,類於俳談。」李學士眉叟,謝興天堂頭惠柴云:「平生不解趨炎計,珍重吾師惠也愚。」此語老儒閑中善戲耳。雖唐宋人有此體,然後進不可效之。
권 학사 적이 진부역에 제하여 이르기를,
옛 역 이름이 진부(珍富)이니 진부라는 이름이 무슨 뜻인가. 눈이 쌓이니 산에 옥이 가득하고 버들이 스치니 길에 금이 많네. 시내의 잉어는 붉은 비단으로 뛰고 마을 연기는 푸른 깁으로 흩어지네. 눈앞의 두 집 어른은 은실 같은 살쩍 털이 화려하네.
학사가 말하였다. 「내가 짐짓 놀이로 지은 것이라 배우의 이야기에 가깝다.」
이 학사 미수가 흥천사 주지가 땔나무를 준 것을 사례하여 이르기를,
한평생 불길 좇는 셈을 알지 못하니 진중하여라, 우리 스님의 은혜로움이 어리석음이로다.
이 말은 늙은 선비가 한가한 가운데 잘 놀린 것일 뿐이다. 비록 당송 사람에게 이런 체가 있으나 뒤에 나아가는 이가 본받을 것은 아니다.
李學士眉叟春日江行云:「碧岫巉巉攢筆刃,滄江杳杳漲松烟。暗雲陣陣成奇字,萬里靑天一幅牋。」此詩遣意雖大,拘於類喩,言不得肆。如文順公苦熱云:「金烏自吐炎,呀喘反難翥。自此日行遲,留作煎人火。安得亘空扇,搖簸遍天下。」近於類喩,而言肆意大。崔學士孝著,和北朝滌暑亭詩云:「靑回山腹長江帶,翠揷雲頭遠岫眉。」如此類喩,新進學詩者之體也。文順公浦口村云:「湖淸巧印當心月,浦闊貪吞入口潮。」言吞言口,雖近於類喩,非新進輩所得導。凡作詩,莫善於借字爲喩。然老手用之,則語熟而意巧,新學用之,則語生而意疎。如梁待制和獨樂詩云:「霧蒭山釀雨,風槪谷量烟。」意巧而語不大生。閻東叟曰:「詩率意立成者。如李太白:「柳色黃金嫩,梨花白雪香。」婉麗精巧,略無留思苦求者。如潘公古鏡云:「篆經千古澁,影瀉一堂寒。」此精思極慮,最爲辛苦。」以此觀之,今世之爲警句者,殆未免辛苦之病也。然庸才欲率意立成,則其語俚雜。俚雜之捷,不如善琢之爲遲也。善琢苟至於極慮,恐見崔融借髓而死。文順公北山雜題云:「山人不出山,古徑荒苔沒。應恐紅塵人,欺我綠蘿月。」此詩置李白集中,未知孰是。陳補闕聞人頌文禪師詩一句云:「剪蕉窓減雨,裁竹砌添秋。」以爲警句,陳笑曰:「此乃兒曹語,老儒不道也。予嘗題山寺落句云,『碧砌落花深一寸,東風吹去又吹來。』此等句格,乃老儒語也。」金翰林云:「北軒睡足花陰轉,梁燕將雛去又來。」雖不及陳詩,其語華緊相近。
이 학사 미수의 「봄날 강을 가며」
푸른 봉우리 가파르게 붓날을 모았고 푸른 강 아득히 솔 연기가 넘치네. 어두운 구름이 진(陣)마다 기이한 글자를 이루니 만 리 푸른 하늘이 한 폭 편지로다.
이 시는 뜻을 놓은 것이 비록 크나 견줌의 틀에 얽매여 말이 마음껏 되지 못하였다.
문순공의 「무더위」 같은 것은,
금 까마귀가 스스로 불꽃을 토하니 헐떡이며 도리어 날기 어렵네. 이로부터 해의 걸음이 더디어 머물러 사람 지지는 불이 되었네. 어찌하면 허공에 걸친 부채를 얻어 흔들어 까불러 천하에 두루 하랴.
견줌에 가까우면서도 말이 마음껏이고 뜻이 크다.
최 학사 효저가 북조의 「척서정」 시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푸름이 산허리를 돌아 긴 강이 띠요 비취가 구름머리에 꽂혀 먼 봉우리가 눈썹이로다.
이 같은 견줌은 새로 나아가 시를 배우는 이의 체다.
문순공의 「포구 마을」
호수가 맑아 공교로이 마음에 닿는 달을 찍고 포구가 넓어 탐내어 입에 드는 조수를 삼키네.
삼킨다 하고 입이라 한 것이 비록 견줌에 가까우나 새로 나아가는 무리가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릇 시를 지음에 글자를 빌려 견줌으로 삼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그러나 노련한 손이 쓰면 말이 익고 뜻이 공교로우며, 새로 배우는 이가 쓰면 말이 설고 뜻이 성기다. 양 대제가 「독락」 시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안개는 산이 비를 빚은 것을 꼴로 삼고 바람은 골이 연기를 되질한 것을 헤아리네.
뜻이 공교롭고 말도 크게 설지 않다.
염동수가 말하였다. 「시에는 뜻을 좇아 곧바로 이루는 것이 있다. 이태백의 『버들빛은 누런 금이 여리고, 배꽃은 흰 눈이 향기롭다』 같은 것은 곱고 아름답고 정교하되 대략 머물러 생각하고 괴로이 구한 데가 없다. 반공의 「옛 거울」에 『전자(篆字)가 천고를 지나 껄끄럽고, 그림자가 한 집에 차갑게 쏟아진다』 한 것 같은 것은 정밀히 생각하고 지극히 헤아려 가장 괴롭게 한 것이다.」
이로써 보면 지금 세상에 깨우치는 구절을 짓는 이들은 자못 괴로움의 병을 면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용렬한 재주가 뜻을 좇아 곧바로 이루려 하면 그 말이 속되고 잡스럽다. 속되고 잡스러운 빠름은 잘 쪼아 더딘 것만 못하다. 잘 쪼는 것이 진실로 지극히 헤아리는 데 이르면 최융이 골수를 빌리다 죽은 꼴을 볼까 두렵다.
문순공의 「북산 잡제」
산 사람이 산을 나가지 않으니 옛 길이 거친 이끼에 묻혔네. 응당 두려워하노니, 붉은 티끌의 사람이 나의 푸른 넝쿨의 달을 속일까.
이 시를 이백의 문집 가운데 두면 어느 것이 그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진 보궐이 어떤 사람이 문 선사의 시 한 구절을 외는 것을 들었다. 「파초를 자르니 창이 비를 덜고, 대를 베니 섬돌이 가을을 더하네.」 그것을 깨우치는 구절이라 여겼다. 진이 웃으며 말하였다. 「이는 곧 아이들의 말이니 늙은 선비는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일찍이 산사에 제한 끝 구절에 이르기를 『푸른 섬돌에 지는 꽃이 한 치나 깊은데, 동풍이 불어 갔다가 또 불어 오네』 하였으니, 이런 구절의 격이 곧 늙은 선비의 말이다.」
김한림이 이르기를,
북쪽 마루에 잠이 넉넉하니 꽃 그늘이 옮기고 들보의 제비가 새끼를 데리고 갔다가 또 오네.
비록 진의 시에 미치지 못하나 그 말의 화려하고 긴함이 서로 가깝다.
毅王遜于南荒,有李琪者善畵,寫眞不題,稱謂安於東都草堂,朝夕禮事。棄菴居士偶覩之,乃作讚曰:「以爲帝王之像,幅巾鶴氅如呂翁,以爲隱逸之姿,豐準龍顔如沛公。却推之於丹墀玉座之上,命不再通,欲引之於長松怪石之間,氣尙不窮。初疑孔衰鳳,或恐李猶龍。不然此必自天降靈,數會河淸,民登春臺,享我大平。龍亢悔作,一夢方驚,遂復返於杳冥者乎。」嘗自寫醉睡先生眞,書其後曰:「有道不行不如醉,有口不言不如睡。先生醉睡杏花陰,世上無人知此意。」夫頌者,褒美功德,讚亦其流也。賦者,原於詩派於詞。精微析理曰論,明據開難曰策,披文相質曰碑,序事淸潤曰銘。表以達其誠,疏以宣其志,冊以紀功,䛶以美終,箴是補闕,檄是傳諭。其文各有體,讚之文要其俊逸,而不拘一格,惟棄菴得之。居士亦工於書畵,每掃竹作詩書其後。嘗過李僕射世長宅,有脩竹數叢,新梢出檻。公出一屛命畵,卽寫數梢頭而已,題云:「樓下篁林百尺脩,樓高只見數梢頭。要看拔地千竿玉,須踏層梯下此樓。」李文院由之以詩讚之曰:「此君眞態畵難工,膠粉纔施氣已空。居士手痕淸似月,幻移疎影上屛風。」安豪李淸,皆播在人口。
의종께서 남쪽 거친 땅으로 물러나셨을 때 이기(李琪)라는 이가 그림을 잘하여 초상을 그리되 이름을 적지 않고 「안어(安於)」라 일컬어 동도의 초당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예를 올렸다.
기암거사가 우연히 그것을 보고 이에 찬(讚)을 지었다.
「제왕의 모습이라 하자니 폭건과 학창의가 여옹(呂翁) 같고, 숨어 사는 이의 자태라 하자니 두툼한 콧마루와 용의 얼굴이 패공(沛公) 같다. 도리어 붉은 뜰 옥 자리 위로 밀어 올리자니 명(命)이 다시 통하지 않고, 큰 솔과 괴이한 돌 사이로 끌어들이자니 기운이 오히려 다하지 않는다. 처음엔 공자의 쇠한 봉인가 의심하고, 혹 이(李)의 오히려 용인가 두려워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반드시 하늘에서 신령이 내려 몇 번 황하가 맑아지는 때를 만나 백성이 봄 누대에 올라 태평을 누리게 하려던 것인데, 용이 너무 높아 뉘우침이 생기고 한 꿈이 바야흐로 놀라 마침내 다시 아득한 데로 돌아간 것인가.」
일찍이 스스로 「취수선생(醉睡先生)」의 초상을 그리고 그 뒤에 썼다.
도가 있어도 행하지 못할 바에는 취하느니만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할 바에는 자느니만 못하네. 선생이 살구꽃 그늘에서 취해 자니 세상에 이 뜻을 아는 이가 없네.
무릇 송(頌)이란 공과 덕을 기려 아름답게 하는 것이니 찬(讚)도 또한 그 갈래다. 부(賦)는 시에 뿌리를 두고 사(詞)로 갈라졌다. 정밀하고 미세하게 이치를 쪼개는 것을 논(論)이라 하고, 밝은 근거로 어려움을 여는 것을 책(策)이라 하고, 글을 헤쳐 바탕과 걸맞게 하는 것을 비(碑)라 하고, 일을 펴되 맑고 윤택한 것을 명(銘)이라 한다. 표(表)로써 그 정성을 이르게 하고, 소(疏)로써 그 뜻을 펴고, 책(冊)으로써 공을 적고, 뇌(誄)로써 끝을 아름답게 하고, 잠(箴)은 모자람을 깁는 것이고, 격(檄)은 타이름을 전하는 것이다. 그 글이 저마다 체가 있는데, 찬의 글은 그 빼어나고 뛰어남을 요할 뿐 한 격에 얽매이지 않으니 오직 기암이 그것을 얻었다.
거사는 또한 글씨와 그림에 능하여 늘 대를 치면 시를 지어 그 뒤에 썼다. 일찍이 이 복야 세장의 집을 지나는데 긴 대 몇 떨기가 있어 새 가지가 난간 밖으로 나와 있었다. 공이 병풍 하나를 내어 그리기를 청하니, 곧 몇 가지 끝만 그리고 제하여 이르기를,
누각 아래 대숲은 백 자로 길건만 누각이 높아 다만 몇 가지 끝만 보이네. 땅을 뽑고 선 천 그루 옥을 보려거든 모름지기 층층 사다리를 밟아 이 누각을 내려가라.
이 문원 유지가 시로 기려 이르기를,
이 군(此君)의 참 모습은 그리기 어려운데 아교와 분을 겨우 베풀자 기운이 이미 비었네. 거사의 손자취는 맑기가 달 같아 성긴 그림자를 홀리듯 옮겨 병풍에 올렸네.
안의 호방함과 이의 맑음이 다 사람들 입에 퍼졌다.
金盖仁居寧縣人也。畜一狗甚怜。嘗一日出行,狗亦隨之。盖仁醉臥道周而睡,野燒將及,狗乃濡身于傍川,來往環繞以潤著草茅,令絶火道,氣盡乃斃。盖仁旣醒,見狗迹悲感,作歌寫哀,起墳以葬,植杖以誌之。杖成樹,因名其地爲獒樹。樂譜中有犬墳曲是也。後有人作詩云:「人恥呼爲畜,公然負大恩。主危身不死,安足犬同論。」晉陽公命門客,作傳記,行於世,意欲使世之受恩者,知有以報也。
김개인은 거령현 사람이다. 개 한 마리를 길렀는데 매우 어여뻐하였다. 일찍이 하루는 나가 다니는데 개도 따라갔다. 개인이 술에 취하여 길가에 누워 잠들었는데 들불이 장차 미치려 하였다. 개가 이에 곁의 냇물에 몸을 적셔 오가며 둘러 돌아 붙어 있는 풀을 적셔 불길을 끊게 하고는, 기운이 다하여 곧 죽었다.
개인이 깨어나 개의 자취를 보고 슬퍼 느껴 노래를 지어 슬픔을 적고, 무덤을 일으켜 묻고 지팡이를 심어 그것을 표하였다. 지팡이가 나무가 되었으므로 그 땅을 「오수(獒樹)」라 이름 지었다. 악보 가운데 「견분곡(犬墳曲)」이 이것이다.
뒤에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사람이 짐승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공공연히 큰 은혜를 저버리네. 주인이 위태로운데 몸을 죽이지 않는다면 어찌 개와 함께 논하기에 넉넉하랴.
진양공이 문객에게 명하여 전기(傳記)를 지어 세상에 돌게 하였으니, 뜻은 세상에 은혜를 받은 이로 하여금 갚을 바가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었다.
十二徒冠童,每夏會山林肄業,及秋而罷,多寓龍興歸法兩寺。一夕秋空月朗,爽氣襲人。咸司直淳,李先達湛之,玉先達和遇,率童冠六七人,會歸法石橋開小飮,用前人韻賦詩。李曰:「夏炎風掃去,秋意月含來。」咸玉皆愕然自屈。聞者笑曰:「此林椿先生句也。不知醉李潛竊耶,暗合耶,何毒玉不知而自屈也?〔李使酒不檢,玉耿介忤物,故時號醉李毒玉。〕」
십이도(十二徒)의 관례한 이와 아이들이 해마다 여름이면 산림에 모여 학업을 익히고 가을이 되면 파하는데, 흔히 용흥사와 귀법사 두 절에 붙어 있었다.
어느 저녁 가을 하늘에 달이 밝고 상쾌한 기운이 사람에게 끼쳐 왔다. 함 사직 순, 이 선달 담지, 옥 선달 화우가 아이와 관례한 이 예닐곱을 데리고 귀법사 돌다리에 모여 조촐한 술자리를 열고 앞사람의 운을 써서 시를 지었다.
이가 이르기를,
여름 더위는 바람이 쓸어 갔고 가을 뜻은 달이 머금어 왔네.
함과 옥이 다 놀라 스스로 굽혔다. 듣는 이가 웃으며 말하였다. 「이는 임춘 선생의 구절이다. 취한 이가 몰래 훔친 것인지 가만히 맞아떨어진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어찌 독한 옥이 알지 못하고 스스로 굽혔단 말인가.」〔이는 술을 부려 검속하지 않았고 옥은 굳세어 남과 어긋났으므로, 그때 「취한 이(醉李)·독한 옥(毒玉)」이라 불렀다.〕
白壯元得珠,爲完山書記,按廉使方赴闕留一絶,白卽和云:「星使朝天後,柳營空自春。無情靑草怨,況乃有情人。」按廉下床執手而謝。及罷仕投閑,晉康公聞其才,召致命書一團扇。白手蹟端麗,用筆電速。得扇立書曰:「江山非魏寶,只倚信陵君。爲禮夷門老,能提十萬軍。」公顧左右曰:「眞箇走筆也。
백 장원 득주가 완산 서기가 되었는데, 안렴사가 바야흐로 대궐로 나아가며 절구 하나를 남겼다. 백이 곧 화답하여 이르기를,
별의 사신이 하늘에 조회하러 가신 뒤에 버들 진영이 부질없이 절로 봄이로다. 정 없는 푸른 풀도 원망하거늘 하물며 정 있는 사람이랴.
안렴사가 상에서 내려와 손을 잡고 사례하였다.
벼슬을 그만두고 한가함에 던져졌을 때 진강공이 그 재주를 듣고 불러 이르게 하여 둥근 부채에 글씨를 쓰게 하였다. 백은 손자취가 단정하고 고왔으며 붓 놀림이 번개처럼 빨랐다. 부채를 얻자 선 자리에서 썼다.
강산은 위나라의 보배가 아니라 다만 신릉군에게 기대었네. 이문(夷門)의 늙은이에게 예를 다하였기에 능히 십만 군사를 이끌었네.
공이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참으로 붓을 달리는구나.」
李學士眉叟使大金,次韻漁陽懷古云:「槿花低映碧山峰,卯酒初酣白玉容。舞罷霓裳歡未足,一朝雷雨送猪龍。」後李司成百全,爲書狀官入大金,抵此和之云:「一上鵝毛寺後峰,祿山曾此鍊軍容。只因欲奪鷄頭肉,豈是爭爲月化龍。」又:「宴會驪山玉蘂峰,芙蓉那似酒酣容。不知今有明駝使,千里殷勤寄瑞龍。」眉叟用事,必以辭語淸新,然槿花事,語新而意不切,其次韻峰龍兩字甚佳。陳玉堂澕,李蓬山允甫,同夜直禁林。時有前入大金書狀官某言:「廣寧一府道傍,有十三山,往來客子題詠頗多,皆淺近未能破的。請兩君賦之。」陳卽援筆云:「巫山十二但聞名,驛路偸閑午枕凉。剩骨一峰雲雨惱,傍人應笑夢魂長。」李云:「六七山抽碧玉簪,蔥籠佳氣射朝驂〔臨使客往來程。〕。從今嵩嶽嘉名減,只數奇峰二十三。」又:「少年蠟屐好登山,踏盡衡巫岱華間。五老八公遊未遍,不知藏此此中慳。」陳詩以意,李詩以言,兩首之言,不如一首之意。
이 학사 미수가 대금(大金)에 사신 갔을 때 「어양회고(漁陽懷古)」에 차운하여 이르기를,
무궁화가 낮게 푸른 산봉우리에 비치고 아침 술이 갓 무르익어 흰 옥 같은 얼굴이로다. 「예상(霓裳)」 춤이 끝나도 즐거움이 모자라더니 하루아침에 우레와 비가 저룡(猪龍)을 보냈네.
뒤에 이 사성 백전이 서장관으로 대금에 들어가 여기에 이르러 화답하여 이르기를,
한 번 아모사(鵝毛寺) 뒤 봉우리에 오르니 안녹산이 일찍이 여기서 군용을 단련하였네. 다만 계두육(鷄頭肉)을 빼앗으려 한 것뿐이지 어찌 다투어 달로 변한 용이 되려 하였으랴.
또,
여산 옥예봉에서 잔치하니 연꽃인들 어찌 술 취한 얼굴만 하랴. 알지 못하겠구나, 이제 명타(明駝)의 사신이 있어 천 리에 은근히 상서로운 용을 부치는 줄을.
미수가 고사를 쓰는 것은 반드시 말이 맑고 새롭다. 그러나 무궁화의 일은 말은 새로우나 뜻이 절실하지 않고, 그 차운한 「봉(峰)」과 「용(龍)」 두 글자는 매우 아름답다.
진 옥당 화와 이 봉산 윤보가 같은 밤에 금림에서 숙직하였다. 그때 앞서 대금에 들어갔던 서장관 아무개가 말하였다. 「광녕부 한 고을 길가에 십삼산(十三山)이 있는데, 오가는 나그네들이 제하여 읊은 것이 자못 많으나 다 얕고 가까워 딱 맞게 깨뜨리지 못하였습니다. 두 분께서 지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진이 곧 붓을 당겨 이르기를,
무산(巫山) 열둘은 다만 이름만 들었는데 역로에서 짬을 훔쳐 낮 베개가 서늘하네. 남은 뼈 한 봉우리가 구름과 비를 괴롭히니 곁의 사람이 응당 꿈속 넋이 길다고 웃으리.
이가 이르기를,
예닐곱 산이 푸른 옥비녀를 뽑았고 푸릇푸릇한 아름다운 기운이 아침 곁마를 쏘네.〔사신 손님이 오가는 길에 임하였다.〕 이제부터 숭악(嵩嶽)의 아름다운 이름이 줄어들리니 다만 기이한 봉우리 스물셋을 셀 뿐이네.
또,
젊은 날 밀 먹인 나막신으로 산 오르기를 좋아하여 형산과 무산과 대산과 화산 사이를 다 밟았네. 오로봉과 팔공산도 다 노닐지 못하였으니 여기에 이것을 감추어 두고 아꼈는 줄 알지 못하였네.
진의 시는 뜻으로 하였고 이의 시는 말로 하였으니, 두 수의 말이 한 수의 뜻만 못하다.
崔郞官仁全爲國博時,和同姓從弟見贈詩云:「先後龍頭三相國,聯翩麟閣四功臣。一門盛事傾千古,更有何人繼後塵。」蓋言文憲公,以龍頭,配饗靖廟爲功臣,其子文和公,亦以龍頭,配饗文廟,其孫中書令思諏,配饗肅廟,玄孫平章事允儀,配饗毅廟,仍孫平章事洪胤,亦是龍門上客。其餘非龍頭,而位宰相者十餘人。仁全亦文憲之孫也。
최 낭관 인전이 국박(國博)으로 있을 때 같은 성의 종제가 준 시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앞뒤로 용두(龍頭)가 세 상국이요 잇달아 나란한 인각(麟閣)이 네 공신이로다. 한 집안의 성한 일이 천고를 기울이니 다시 어떤 사람이 뒤의 티끌을 이으랴.
대개 문헌공이 용두로 정종에 배향된 공신이 되었고, 그 아들 문화공도 또한 용두로 문종에 배향되었으며, 그 손자 중서령 사추가 숙종에 배향되고, 현손 평장사 윤의가 의종에 배향되고, 잉손 평장사 홍윤도 또한 용문에 오른 손이었음을 말한 것이다. 그 밖에 용두는 아니면서 재상 자리에 오른 이가 열 남짓이다. 인전도 또한 문헌공의 손자다.
李史館允甫夜直,與陳玉堂澕,賦遊月宮篇云:「月駕長風轉虛碧,劚出瑠璃作飛轍。廣寒宮殿千里圓,玉女乘鸞庭下列。天高仙樂咽笙簫,風動霓裳饗環玦。白兎搗藥經幾秋,藥成不被姮娥竊。調和沆瀣供仙眞,嚼下天喉若氷雪。仙居天上得長生,噀向人間除酷熱。妙手修宮八萬條,玉斧森羅守扃鐍。逍遙各飽靑冥遊,厭飫天瓢白玉屑。羨他公遠緣銀橋,捫參陟過北斗舌。星河下拍牛郞肩,踏掬瓊華親手掇。淸都可望不可攀,夜夜轉頭心斷絶。」館閣諸君,以陳詩淸壯爲優,李詩語雖淸寒,瑣屑爲劣。陳詩逸。
이사관 윤보가 밤 숙직에 진 옥당 화와 더불어 「달 궁전에 노닐다」를 지어 이르기를,
달이 긴 바람을 몰아 빈 푸름을 도니 유리를 파내어 나는 바퀴 자국을 지었네. 광한궁전이 천 리에 둥근데 옥녀가 난새를 타고 뜰 아래 벌여 섰네. 하늘이 높아 신선의 음악에 생황과 퉁소가 목메고 바람이 불어 예상(霓裳)에 고리와 옥이 울리네. 흰 토끼가 약을 찧은 지 몇 가을이던가 약이 이루어져도 항아에게 도둑맞지 않았네. 항해(沆瀣)를 고루 섞어 신선에게 바치니 씹어 삼키니 하늘의 목이 얼음과 눈 같네. 신선은 하늘 위에 살아 길이 삶을 얻고 인간을 향해 뿜어 모진 더위를 덜어 주네. 묘한 손이 궁전 팔만 가지를 손질하니 옥도끼가 삼연히 벌여 빗장을 지키네. 거닐며 저마다 푸른 하늘의 노님에 배부르고 하늘 바가지의 흰 옥 가루에 물리도록 먹네. 부럽구나, 저 나공원이 은다리에 인연하여 삼성(參星)을 더듬고 북두의 혀를 넘어간 것이. 은하수가 내려와 견우의 어깨를 치고 경화(瓊華)를 밟고 움켜 몸소 손으로 줍네. 맑은 도읍은 바라볼 수는 있어도 잡을 수 없으니 밤마다 머리를 돌려 마음이 끊어지네.
관각의 여러 사람이 진의 시가 맑고 씩씩하다 하여 나은 것으로 삼고, 이의 시는 말이 비록 맑고 차나 자질구레하여 못한 것으로 삼았다. 진의 시는 빠졌다.
雲之,不知何許上人也,將歸江南,乞詩於李由之,歷謁館翰求和甚勤,蓬瀛諸君,各和一篇以贈之。李史館允甫次韻云:「一片浮雲安所宅,入壑無心忽復出。朝從大華度軒丘,暮向會稽歸羽窟。隨風萬里蕩無垠,不作霶𩃱還沒滅。雲師雲性亦雲身,厭却京華將適越。我雖未識江南遊,江南勝致遙能說。筠抽碧玉留春色,橘壓黃金涉冬月。請師少壯恣尋遊,老大秪堪安一室。手持傑句來示予,爲拂塵毫賡一一。毫端有口會也無,佛卽是心心卽佛。」李學士眉叟見之,以李詩爲最云。
운지는 어디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스님이다. 장차 강남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이유지에게 시를 빌고, 관각과 한림을 두루 뵈며 화답을 구하기를 매우 부지런히 하였다. 봉래와 영주의 여러 사람이 저마다 한 편씩 화답하여 주었다.
이사관 윤보가 차운하여 이르기를,
한 조각 뜬구름은 어디에 집을 두었는가 골에 들 때 무심하더니 홀연 다시 나오네. 아침엔 대화산을 좇아 헌구(軒丘)를 지나고 저녁엔 회계를 향하여 깃 굴로 돌아가네. 바람을 따라 만 리를 거침없이 끝없이 흔들리다 큰비를 짓지 않고 도로 스러지네. 구름의 스승이요 구름의 성품이요 또한 구름의 몸이라 서울을 싫어하여 장차 월(越) 땅으로 가려 하네. 내가 비록 강남의 노님을 알지 못하나 강남의 빼어난 경치는 멀리서도 능히 말할 수 있네. 대는 푸른 옥을 뽑아 봄빛을 머무르고 귤은 누런 금을 눌러 겨울 달을 건너네. 청컨대 스승은 젊고 굳셀 때 마음껏 찾아 노시라 늙고 크면 다만 한 방에 편안할 뿐이니. 손에 뛰어난 구절을 들고 와 나에게 보이니 티끌 붓을 떨어 하나하나 이어 짓네. 붓끝에 입이 있는가 없는가 부처가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부처로다.
이 학사 미수가 보고 이의 시를 으뜸으로 삼았다 한다.
有一曹溪長老來問曰:「李陽補闕詩格,孰與文禪師?」曰:「相上下。」曰:「李補闕詩云:「曉鍾聲出洞門寒。」文禪師:「磬聲淸度月明峰。」李平章:「磬聲淸斷石門寒。」孰優?」曰:「皆得淸寒一髓。然補闕尙與平章,同日而評。」曰:「謂其詩淺易耶?」曰:「庸言拙句,不足言淺易。」長老曰:「補闕集已行於世,其有文章優於補闕,而家集未行者有誰?」曰:「中古已上名賢,不可勝數,今世吳先生兄弟,安處士,陳補闕,兪金二李,許多輩,比於補闕霄壤懸絶。時無知己捃拾,遺稿皆散亡。」長老猶未釋然。
한 조계 장로가 와서 물었다. 「이양 보궐의 시격은 문 선사와 견주어 어떠합니까.」 말하기를 「서로 위아래다」 하였다.
말하기를 「이 보궐의 시에 『새벽 종소리가 골 문을 나와 차갑다』 하였고, 문 선사는 『경쇠 소리가 맑게 달 밝은 봉우리를 건넌다』 하였고, 이 평장은 『경쇠 소리가 맑게 끊겨 돌문이 차갑다』 하였으니 어느 것이 낫습니까.」 하였다.
말하기를 「다 맑고 찬 것의 한 골수를 얻었다. 그러나 보궐은 오히려 평장과 같은 날에 놓고 품평할 것이다」 하였다.
말하기를 「그 시가 얕고 쉽다는 말입니까.」 하였다. 말하기를 「범상한 말과 졸렬한 구절이라야 얕고 쉽다 할 것이니, 이는 그럴 거리가 못 된다」 하였다.
장로가 말하였다. 「보궐의 문집은 이미 세상에 돌아다닙니다. 문장이 보궐보다 나으면서 집안 문집이 아직 돌지 않는 이는 누가 있습니까.」
말하기를 「중고 이상의 이름난 어진 이는 이루 다 셀 수 없다. 지금 세상에는 오 선생 형제, 안 처사, 진 보궐, 유·김과 두 이씨 등 허다한 무리가 보궐에 견주면 하늘과 땅처럼 아득히 다르다. 때에 알아주는 이가 있어 주워 모으지 않아 남은 원고가 다 흩어져 없어졌다」 하였다. 장로가 오히려 석연치 않아 하였다.
李待制淳牧直玉堂時,與翰林諸君會芸閣。及酒酣,諸君請走筆得鱗字,卽書于素屛風云:「鳳池波影碧鱗鱗,松麓千年第幾春。玉輦不巡三十載,隔花烟月屬何人。」一座未曉其義,及酒醒,李亦不知所導之意。後六年遷都花山,此詩乃驗,豈神物假手使然耶!唯三十載之義未識,當竢後日。
이 대제 순목이 옥당에 숙직할 때 한림의 여러 사람과 운각에 모였다. 술이 무르익자 여러 사람이 붓을 달리기를 청하여 「인(鱗)」 자를 얻으니 곧 흰 병풍에 썼다.
봉지(鳳池)의 물결 그림자가 푸르게 비늘지고 솔 기슭 천 년에 몇 번째 봄인가. 옥 수레가 순행하지 않은 지 서른 해 꽃 너머 안개 낀 달은 누구에게 속하는가.
온 자리가 그 뜻을 깨닫지 못하였고, 술이 깬 뒤에는 이도 또한 이끌어 낸 뜻을 알지 못하였다. 뒤 여섯 해에 화산으로 도읍을 옮기니 이 시가 이에 들어맞았다. 어찌 신령한 것이 손을 빌려 그렇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오직 「서른 해」의 뜻만은 알지 못하니 마땅히 뒷날을 기다려야 하겠다.
李郞官湛之,上文相國詩云:「月下賢桃艶,風前聖杏新。唯餘氷谷李,憔悴未逢春。」貞肅公小名有松字,及第金台臣小名是竹,及公入相,台臣獻詩云:「聞道山中十八公,年來已受大夫封。此君知己唯君在,爲報殷勤薦祖龍。」近有及第柳葆,上朴舍人暄云:「紫薇花下僊毫露,化出人間萬樹紅。唯有東門一條柳,年年虛度好春風。」古今以姓名字,喩物爲詩頗多。是雖已陳之體,始見之,如有新構意。台臣言祖龍,非所宜列。
이 낭관 담지가 문 상국에게 올린 시에 이르기를,
달 아래 어진 복사꽃이 곱고 바람 앞에 성스러운 살구꽃이 새롭네. 오직 얼음 골짜기의 오얏만 남아 시들어 봄을 만나지 못하였네.
정숙공의 어릴 적 이름에 「송(松)」 자가 있고 급제한 김태신의 어릴 적 이름은 「죽(竹)」이었다. 공이 재상에 들자 태신이 시를 올려 이르기를,
들으니 산속의 열여덟 공(公)이 근래 이미 대부의 봉함을 받았다 하네. 이 군(此君)을 알아주는 이는 오직 그대뿐이니 은근히 조룡(祖龍)에게 천거하기를 갚아 주오.
요즘 급제한 유보가 박 사인 훤에게 올려 이르기를,
자미화 아래 신선의 붓이 이슬을 내려 인간에 만 그루 붉음을 지어 내었네. 오직 동문의 한 가닥 버들만 있어 해마다 좋은 봄바람을 헛되이 보내네.
예와 이제에 성과 이름 글자로 사물에 견주어 시를 지은 것이 자못 많다. 이는 비록 이미 펼쳐진 체이지만 처음 보면 새로 얽은 뜻이 있는 듯하다. 태신이 조룡을 말한 것은 벌여 놓기에 마땅한 바가 아니다.
陳補闕初直玉堂時,孫翰林得之,李史館允甫,李同文百順,前翰林尹于一,六官才俊皆在席上,占韻令賦扇,陳卽抽筆書之曰:「欲風犀楓扇,自氷火雲天。暑退蠅難近,秋回雁莫先。小荷飜掌上,團月墮襟前。雅稱麾軍將,曾隨畵水仙。紈新如剪雪,柄古尙含烟。安石仁風遠,羲之醉墨顚。畵昏餘綵女,恩薄怨凉蟬。把翫臨寒簟,楊州百萬錢。」一座以陳詩不佳,乃相約各自賦口吟,相切磨品第。孫翰林:「携持寧暫歇,出入每相先。竪障歌唇外,橫拋醉膝前。汗靑輪假月,沫碧貌眞仙。」一座智戲曰:「携持一聯常而熟,汗靑沫碧別而生。」李同文云:「品因飛燕重,畵自季龍先。繡幕搖飜浪,琅庖鼓颺烟。擺冷醒炎鼠,揚泠飫潔蟬。」尹云:「月圓今似古,詩對後連前。飄拂身無垢,凄凉意欲仙。畵宜留顧絶,書不要張顚。」座曰:「擺冷揚泠之句,辭意淸新,尹之三句,圓熟有力。」李秘書云:「碧月談筵上,淸風孝枕前。丹竈催龍火,靑樓用麝烟。盤蠅隨影散,野馬觸風顚。畵好安蘆鴨,詞宜謝柳蟬。」韓留院云:「蝶舞橫霞外,魚跳細浪前。地還淸暑殿,人卽廣寒仙。蛾暮遮蘭焰,風朝護蕙烟。」座曰:「李詩蘆鴨,豈宜圖於小扇?三句皆用蟲鳥,唯碧月一聯句法淸勝。韓蝶魚賦月傾扇失實,淸暑一聯直擧人地,言事疎遠。」李東觀云:「風生紬史地,月動演綸天。制作羲軒下,炎凉象帝先。信疎松栢後,功小粃糠前。輕却携長拂,凉於戲半仙。剪蕉疑鳳雨,揮羽掃狼烟。破熱肌如濯,揚泠手似顚。簸腰搖帶鳳,拂首側冠蟬。願借眞淸力,驅除俗臭錢。」座曰:「前三聯尤妙,以此詩爲第一。」尹曰:「此詩之意,先深後淺,是爲倒格。」時文順公爲翰林,最後至走筆云:「我欲洗煩熱,潛投井裡天,捉來雙手後,搖入六官前。已近高廚下,堪陳漢仗前。月圓奔底妾,風弱馭無仙。飛白書縈霧,空靑畵點烟。驅蚊雷已靜,撲蝶雪將顚。發發供頭鶴,輕輕弄鬢蟬。蓬瀛爭賦詠,誰最號靑錢。」一座歎服,無復間言。文順公曰:「李東觀風生制作信疎三聯,眞老杜詩也。吾詩不及遠矣。」史館曰:「君井扇之喩尤妙,引高廚漢仗,言禁中扇又妙。吾詩安能抗?
진 보궐이 처음 옥당에 숙직할 때 손 한림 득지, 이사관 윤보, 이 동문 백순, 전 한림 윤우일과 육관(六官)의 재주 있는 이들이 다 자리에 있었다. 운을 뽑아 부채를 읊게 하니 진이 곧 붓을 뽑아 썼다.
바람을 내려 무소와 단풍으로 부채를 만들고 스스로 얼음이 되어 불구름 하늘을 식히네. 더위가 물러가니 파리가 가까이하기 어렵고 가을이 돌아오니 기러기도 앞서지 못하네. 작은 연꽃이 손바닥 위에 뒤집히고 둥근 달이 옷깃 앞에 떨어지네. 아담히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에 걸맞고 일찍이 물을 그리는 신선을 따랐네. 새 깁은 눈을 오려 낸 듯하고 옛 자루는 아직 연기를 머금었네. 그림이 어두워 채색한 여인이 남았고 은혜가 엷어 서늘한 매미를 원망하네. 잡고 즐기며 찬 대자리에 임하니 양주의 백만 전이로다.
온 자리가 진의 시를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 이에 서로 약속하여 저마다 입으로 읊어 짓고 서로 갈고 다듬어 등수를 매기기로 하였다.
손 한림,
가지고 다니매 어찌 잠시라도 쉬랴 드나들 때 늘 서로 앞서네. 가리개를 세우니 노래하는 입술 밖이요 비스듬히 던지니 취한 무릎 앞이로다. 땀이 푸르니 바퀴가 달을 빌리고 거품이 푸르니 모습이 참 신선이로다.
온 자리가 슬기롭게 놀리며 말하였다. 「『가지고 다닌다』는 한 연은 예사롭고 익었으며, 『땀이 푸르다·거품이 푸르다』는 남다르되 설다.」
이 동문이 이르기를,
품계는 비연(飛燕)으로 말미암아 무겁고 그림은 계룡(季龍)으로부터 앞섰네. 수놓은 장막은 흔들려 물결이 뒤집히고 낭간 부엌은 두드려 연기를 날리네. 찬 것을 흔드니 더위 먹은 쥐가 깨어나고 서늘함을 날리니 깨끗한 매미가 물리네.
윤이 이르기를,
달의 둥긂은 이제나 옛날 같고 시의 짝은 뒤가 앞을 잇네. 나부껴 스치니 몸에 때가 없고 쓸쓸하여 뜻이 신선이 되려 하네. 그림은 돌아보아 마땅히 절묘함을 남기고 글씨는 장욱의 미침을 구하지 않네.
자리가 말하였다. 「『찬 것을 흔들고 서늘함을 날린다』는 구절은 말과 뜻이 맑고 새롭고, 윤의 세 구절은 둥글고 익어 힘이 있다.」
이 비서가 이르기를,
푸른 달은 이야기하는 자리 위요 맑은 바람은 효도하는 베개 앞이로다. 붉은 부엌은 용의 불을 재촉하고 푸른 누각은 사향 연기를 쓰네. 소반의 파리는 그림자를 따라 흩어지고 아지랑이는 바람에 닿아 미치네. 그림은 갈대와 오리를 두는 것이 좋고 말은 버들과 매미를 사양함이 마땅하네.
한 유원이 이르기를,
나비 춤은 비낀 노을 밖이요 고기 뜀은 가는 물결 앞이로다. 땅은 도리어 청서전(淸暑殿)이요 사람은 곧 광한궁의 신선이로다. 나방은 저녁에 난초 불꽃을 가리고 바람은 아침에 혜초 연기를 지키네.
자리가 말하였다. 「이의 시에 갈대와 오리를 어찌 작은 부채에 그리기에 마땅하랴. 세 구절이 다 벌레와 새를 썼고 오직 『푸른 달』 한 연만 구법이 맑고 낫다. 한은 나비와 물고기와 달을 읊어 부채를 기울여 실상을 잃었고, 『청서전』 한 연은 곧바로 사람과 땅을 들어 일을 말한 것이 성기고 멀다.」
이 동관이 이르기를,
바람은 주사(紬史)의 땅에서 나고 달은 연륜(演綸)의 하늘에서 움직이네. 지음은 복희와 헌원 아래요 덥고 서늘함은 상제(象帝)보다 앞서네. 믿음은 솔과 잣 뒤에 성기고 공은 쭉정이와 겨 앞에 작네. 가벼이 긴 총채 가짐을 물리치고 서늘함이 반신선 놀리는 것보다 낫네. 파초를 자르니 봉황의 비인가 의심하고 깃을 휘두르니 이리의 연기를 쓰네. 더위를 깨뜨리니 살결이 씻은 듯하고 서늘함을 날리니 손이 미친 듯하네. 허리를 까부니 흔들려 봉황을 띠고 머리를 스치니 매미 갓이 기우네. 원컨대 참으로 맑은 힘을 빌려 속된 냄새 나는 돈을 몰아내고 싶네.
자리가 말하였다. 「앞의 세 연이 더욱 묘하다.」 이 시를 첫째로 삼았다. 윤이 말하였다. 「이 시의 뜻은 앞이 깊고 뒤가 얕으니 이는 거꾸로 된 격이다.」
그때 문순공이 한림으로 있었는데 가장 늦게 이르러 붓을 달려 이르기를,
내가 번거로운 더위를 씻으려 하여 가만히 우물 속 하늘에 던지네. 두 손 뒤로 잡아 오니 흔들어 육관 앞으로 드네. 이미 높은 부엌 아래 가까웠고 한나라 의장 앞에 벌일 만하네. 달이 둥그니 그 아래로 달아난 첩이요 바람이 약하니 몰 신선이 없네. 비백(飛白) 글씨는 안개를 두르고 공청(空靑) 그림은 연기를 찍네. 모기를 몰아 우레가 이미 고요하고 나비를 치니 눈이 장차 미치려 하네. 펄펄 머리를 바치는 학이요 가벼이 살쩍을 놀리는 매미로다. 봉래와 영주가 다투어 읊었으니 누가 가장 청전(靑錢)이라 불리랴.
온 자리가 감탄하여 수긍하고 다시 다른 말이 없었다. 문순공이 말하였다. 「이 동관의 『바람이 나고』, 『지음은』, 『믿음은 성기고』 세 연은 참으로 노두(老杜)의 시다. 내 시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사관이 말하였다. 「그대의 우물과 부채의 견줌이 더욱 묘하고, 높은 부엌과 한나라 의장을 끌어 궁중의 부채를 말한 것이 또 묘하다. 내 시가 어찌 능히 겨루랴.」
李學士眉叟曰:「吾杜門讀黃蘇兩集,然後語遒然韻鏘然,得作詩三昧。」文順公曰:「吾不襲古人語,創出新意。」時人聞此言:「以爲兩公所入不同。」非也。其壼奥雖異,所入皆一門。何也?學者讀經史百家,非得意傳道而止,將以習其語效其體,重於心熟於工。及賦詠之際,心與口相應,發言成章。故動無生澁之辭,其不襲古人,而出自新警者,唯構意設文耳。兩公所云不同者,殆此而已。詩文以氣爲主,氣發於性,意憑於氣,言出於情,情卽意也。而新奇之意,立語尤難,輒爲生澁。雖文順公,遍閱經史百家,熏芳染彩,故其辭自然富艶。雖新意至微難狀處,曲盡其言,而皆精熟。嘗賦明皇念奴云:「帝意方專眷玉環,尙知嬌艶念奴顔。若均寵幸分人謗,老羯何名敢作難。」雖使古人幸出此新意,其立語殆不能至此工也。夫才勝其情,則雖無佳意,語猶圓熟,情勝其才,則辭語鄙靡,而不知有佳意。情與才兼得,而後其詩有可觀。文安公曰:「吳世才先生,才識絶倫,嘗得類篇覽之曰,『爲學莫此爲急。』乃手寫畢頌。」凡作者,當先審字本,凡與經史百家所用,參會商酌,應筆卽使辭輒精强,能發難得巧語。辭若不精强,雖有逸情豪氣,無所發揚,而終爲拙澁之詩文也。李史館允甫,學識精博,詩文皆有根蔕。嘗笑後學使字屬辭曰:「洗盡場屋習氣,然後文章可敎也。」今之後輩下於彼時遠矣,例不事讀書,務速進取。習科擧易曉文,幸得第,猶未能勉益學業,唯以抽靑嫓白,立一對二,琢生斲冷,以爲工耳。故見前人詩文雅正簡古,則以爲朴質難效,雄深奇險,則以爲詰屈難知,宏贍和裕,則以爲疎闊未工。都不容思。見今人詩文,有集今古已陳之語之意,更爲結構其辭,至於生弱鄙俚,則皆以爲淸婉,或以爲警苦。殊不知見詩文有偃蹇,不入我情者,謂是爲己所未到處,及反覆詳閱,至得其味而後已也。噫!時文大變,至於俚,俚一變,至於俳,不知其卒何若也。近世尙東坡,蓋愛其氣韻豪邁,意深言富,用事恢博,庶幾效得其體也。今之後進讀東坡集,非欲倣效,以得其風骨,但欲證據,以爲用事之具,剽竊,不足導也。況敢學杜甫,得其波耶?文安公常言:「凡爲國朝制作,引用古事,於文則六經三史,詩則文選李杜韓柳。此外諸家文集,不宜據引爲用。」又曰:「至妙之辭,久而得味,鄙近之作,一見卽悅。學者看書,當熟讀之深思之,期至於得意。」文順公曰:「曩余初見歐陽公集,愛其富。再見得佳處,至于三拱手歎服。又見梅聖兪集,心竊輕之,未識古今所以號詩翁者。及今見,外若薾弱,中含骨鯁,眞詩中之精雋也。知梅詩,然後可謂知詩者也。」又曰:「古人評詩之意,老而漸詳味,無不得於我心者。唯謝公,『池塘生春草。』未識佳處。」公之所云猶若是,識者爲誰歟?今有臆論者曰:「此句出語天然,發生春意。初茸新綠之想,依然五字之間也。」或曰:「春光漲暖,物像菁華,和裕之辭,自然流出,是所取者也。」此意豈公不識處耶?必有賽不得之意與氣,存乎其間。不然言之者過矣。李眉叟少年時,所作送春詩,孤石碧蘿亭詩記,無不膾炙人口,以此名爲獨步。及爲翰林以後,見從前所作甚鄙之,人有言者,輒慚恧皆焚之,不編於家集中。文順公常謂人曰:「吾平生所作,隨歲而進,去年所作,今年視之可笑。年年類此。」凡公少年時,走筆立書,略不構思。其語或有近於時體者,則人皆傳寫以頌之。至於老貴閑吟,徐詠覃思,造語之作,學者罕能悅其味。然則知詩之難,難復難矣。予自少年,入侍春坊,至於今日,無一歲無官責,不暇事讀書,徒以膚淺之學冒昧承乏,官至學士。秉筆汗顔,何足知文章之勝劣,妄爲筆舌哉?但以及見老成人,得聞餘論,故粗記以所聞,傳示後進云。
이 학사 미수가 말하였다. 「내가 문을 닫고 황(黃)·소(蘇) 두 문집을 읽은 뒤에야 말이 굳세어지고 운이 쟁쟁해져 시 짓는 삼매를 얻었다.」
문순공이 말하였다. 「나는 옛사람의 말을 이어받지 않고 새 뜻을 지어냈다.」
그때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두 공이 들어간 데가 같지 않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다. 그 방 안쪽은 비록 다르나 들어간 데는 다 한 문이다.
어째서인가. 배우는 이가 경서와 사기와 백가를 읽는 것은 뜻을 얻어 도를 전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차 그 말을 익히고 그 체를 본떠 마음에 무겁게 하고 공부에 익게 하려는 것이다. 읊고 지을 즈음에 이르러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하여 말을 내면 글이 된다. 그러므로 움직여도 설고 껄끄러운 말이 없다. 옛사람을 이어받지 않고 스스로 새롭고 깨우치는 데서 나오는 것은 오직 뜻을 얽고 글을 베푸는 것일 뿐이다. 두 공이 같지 않다고 이른 것은 아마 이것뿐이다.
시와 글은 기운을 주인으로 삼는다. 기운은 성품에서 피어나고, 뜻은 기운에 기대고, 말은 정에서 나오니 정이 곧 뜻이다. 그런데 새롭고 기이한 뜻은 말을 세우기가 더욱 어려워 번번이 설고 껄끄러워진다. 문순공 같은 이도 경서와 사기와 백가를 두루 훑어 향기를 쐬고 빛깔을 물들였으므로 그 말이 저절로 넉넉하고 곱다. 비록 새 뜻이 지극히 미묘하여 형용하기 어려운 데라도 그 말을 남김없이 다하면서 다 정밀하고 익었다.
일찍이 「명황(明皇)과 염노(念奴)」를 읊어 이르기를,
임금의 뜻이 바야흐로 옥환(玉環)만 돌보시는데 그래도 염노의 고운 얼굴을 아셨네. 만약 사랑을 고루 하여 남의 헐뜯음을 나누었더라면 늙은 오랑캐가 무슨 이름으로 감히 난을 일으켰으랴.
비록 옛사람으로 하여금 다행히 이 새 뜻을 내게 하였더라도, 그 말을 세운 것이 아마 이만큼 공교로운 데는 이르지 못하였을 것이다.
무릇 재주가 그 정을 이기면 비록 아름다운 뜻이 없어도 말이 오히려 둥글고 익으며, 정이 그 재주를 이기면 말이 비루하고 나른하여 아름다운 뜻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 정과 재주를 아울러 얻은 뒤에야 그 시에 볼 만한 것이 있다.
문안공이 말하였다. 「오세재 선생은 재주와 식견이 뛰어나 견줄 데가 없었다. 일찍이 「유편(類篇)」을 얻어 훑어보고 말하기를 『배움에 이보다 급한 것이 없다』 하고는 이에 손수 베껴 끝까지 마쳤다.」
무릇 짓는 이는 마땅히 먼저 글자의 밑바탕을 살펴, 무릇 경서와 사기와 백가에서 쓴 것과 견주어 모으고 헤아려야 한다. 붓에 응하여 곧 부리면 말이 문득 정밀하고 굳세어 능히 얻기 어려운 공교로운 말을 낼 수 있다. 말이 만약 정밀하고 굳세지 않으면 비록 빼어난 정과 호방한 기운이 있어도 펴서 드날릴 데가 없어 마침내 졸하고 껄끄러운 시와 글이 되고 만다.
이사관 윤보는 학식이 정밀하고 넓어 시와 글이 다 뿌리와 꼭지가 있었다. 일찍이 뒤에 배우는 이들이 글자를 부리고 말을 잇는 것을 비웃으며 말하였다. 「과거 마당의 버릇을 다 씻어 낸 뒤에야 문장을 가르칠 만하다.」
지금의 뒷사람들은 그때보다 훨씬 못하다. 으레 글 읽기를 일삼지 않고 빨리 나아가 얻기에만 힘쓴다. 과거의 알기 쉬운 글을 익혀 다행히 급제하면, 오히려 학업에 힘써 더하지 못하고 오직 푸른 것을 뽑고 흰 것을 짝지어 하나를 세우면 둘을 짝하며 선 것을 쪼고 찬 것을 깎는 것을 공교로움으로 삼을 뿐이다.
그러므로 앞사람의 시와 글이 아담하고 바르고 간결하고 예스러우면 「질박하여 본뜨기 어렵다」 하고, 웅장하고 깊고 기이하고 험하면 「굽어서 알기 어렵다」 하고, 크고 넉넉하고 화하고 너그러우면 「성글고 넓어 공교롭지 못하다」 한다. 도무지 생각을 들이지 않는다.
지금 사람의 시와 글을 보면, 예와 이제에 이미 펼쳐진 말과 뜻을 모아 다시 그 말을 얽은 것이 있어 설고 약하고 비루하고 속된 데 이르는데도 다 「맑고 곱다」 하거나 「깨우치고 애쓴 것」이라 한다. 시와 글에 우뚝하여 내 정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면 이것이 내가 아직 이르지 못한 데라 여기고, 되풀이하여 자세히 훑어 그 맛을 얻은 뒤에야 그친다는 것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아아, 그때의 글이 크게 변하여 속됨에 이르고, 속됨이 한 번 변하여 배우의 놀이에 이르렀으니, 그 끝이 마침내 어찌 될지 알지 못하겠다.
요즘 세상이 동파를 숭상하는 것은 대개 그 기운과 운치가 호방하고 뛰어나며 뜻이 깊고 말이 넉넉하며 고사를 쓴 것이 넓고 커서, 본떠 그 체를 얻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뒤에 나아가는 이들은 「동파집」을 읽되 본떠 그 풍골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증거를 삼아 고사 쓸 도구로 삼으려는 것이니 훔치는 것이라 이끌어 낼 것이 못 된다. 하물며 감히 두보를 배워 그 물결이라도 얻겠는가.
문안공이 늘 말하였다. 「무릇 나라의 글을 지으며 옛일을 끌어 쓸 때, 글에서는 육경과 삼사(三史)를, 시에서는 「문선」과 이백·두보·한유·유종원을 쓴다. 이 밖의 여러 집안 문집은 근거로 끌어다 쓰기에 마땅하지 않다.」
또 말하였다. 「지극히 묘한 말은 오래되어야 맛을 얻고, 비루하고 가까운 작품은 한 번 보면 곧 기쁘다. 배우는 이가 글을 볼 때는 마땅히 익히 읽고 깊이 생각하여 뜻을 얻는 데 이르기를 기약해야 한다.」
문순공이 말하였다. 「지난날 내가 처음 구양공의 문집을 보고 그 넉넉함을 사랑하였다. 두 번 보고 아름다운 데를 얻었고, 세 번에 이르러 손을 맞잡고 감탄하여 수긍하였다. 또 매성유의 문집을 보고 마음속으로 가만히 가벼이 여겨, 예와 이제에 시옹(詩翁)이라 부르는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이제 보니 겉은 시들하고 약한 듯하나 속에 뼈대를 머금었으니 참으로 시 가운데 정밀하고 빼어난 것이다. 매의 시를 안 뒤에야 시를 안다 이를 만하다.」
또 말하였다. 「옛사람이 시를 품평한 뜻을 늙어 가며 점점 자세히 맛보니 내 마음에 얻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오직 사공(謝公)의 『못둑에 봄풀이 돋는다』만은 아름다운 데를 알지 못하겠다.」
공이 이른 것이 오히려 이와 같으니, 아는 이는 누구인가.
이제 억측으로 논하는 이가 있어 말한다. 「이 구절은 말이 나온 것이 하늘 그대로여서 봄뜻을 피어나게 한다. 갓 돋은 새 푸름의 생각이 다섯 자 사이에 완연하다.」 혹은 말한다. 「봄빛이 넘쳐 따스하고 물상이 우거져 빛나니, 화하고 넉넉한 말이 저절로 흘러나온 것이 취할 바다.」 이 뜻이 어찌 공이 알지 못한 데이겠는가. 반드시 겨루어 얻지 못할 뜻과 기운이 그 사이에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말하는 이가 지나친 것이다.
이미수가 젊었을 때 지은 「봄을 보내며」 시와 「고석 벽라정」 시와 기(記)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이 없어, 이로써 홀로 걷는다는 이름을 얻었다. 한림이 된 뒤에 이르러 전에 지은 것을 보고 몹시 비루하게 여겨, 사람이 말하는 이가 있으면 문득 부끄러워하며 다 불살라 집안 문집에 엮지 않았다.
문순공이 늘 사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평생 지은 것은 해를 따라 나아가니, 지난해에 지은 것을 올해 보면 우습다. 해마다 이와 같다.」
무릇 공이 젊었을 때는 붓을 달려 선 자리에서 써 대략 생각을 얽지 않았다. 그 말이 더러 그때의 체에 가까운 것이 있으면 사람들이 다 옮겨 베껴 외웠다. 늙고 귀해져 한가히 읊고 천천히 읊조리며 깊이 생각하여 말을 지은 작품에 이르러서는 배우는 이가 그 맛을 기뻐하는 이가 드물다. 그러한즉 시를 아는 어려움은 어렵고 또 어렵다.
나는 젊은 날부터 춘방(春坊)에 들어 모신 뒤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해도 벼슬의 책임이 없은 적이 없어 글 읽기를 일삼을 겨를이 없었다. 한갓 살갗처럼 얕은 배움으로 어름어름 빈자리를 이어 벼슬이 학사에 이르렀다. 붓을 잡으면 얼굴에 땀이 나니 어찌 문장의 낫고 못함을 알아 함부로 붓과 혀를 놀리겠는가. 다만 나이 들고 이룬 사람들을 미쳐 뵙고 남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으므로, 들은 바를 거칠게 적어 뒤에 나아가는 이에게 전하여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