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補閑集 卷下

보한집 補閑集 · 최자(崔滋) · 1254년 · 단락 49 · 한자 12,823자 · 낭독 51.3분

「보한집」 권하 「補閑集 卷下」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파한집의 뒤를 잇는 시화집. 최우가 「그 책이 넓지 못하니 이어 기우라」 명하여 최자가 지었다. 이규보·이인로·유승단·김인경을 한 사람씩 품평하고, 같은 제목을 여럿이 저마다 읊은 것을 나란히 놓고 누가 어떻게 다른지 따진다. 고려 문단이 서로를 어떻게 보았는지가 그대로 남았다. 오수(獒樹)의 개 이야기가 처음 적힌 곳이고, 몽골에 불탄 개경 옛터에서 오동 한 그루를 보고 온 기록도 여기 있다. 끝 편에는 괴이한 이야기 여덟 자락을 일부러 붙여 두었다 — 「괴로이 배우는 이로 하여금 노닐고 쉬게 하려 함」이라 적었다.

有一好事者,集聲律七字聯評之,第其上下,屬予曰:「彼雄深奇妙,古雅宏遠之句,必反覆詳閱,久而後得味,故學者不悅,如工部詩之類也。今所集若干聯,皆一見卽悅之語,可以資補閑,君其錄於後編。」觀其所評,皆不法古人,新以臆論之,尙有可取,列之于左。新警如文順公萬日寺樓云:「渡了幾人舟自泛,噪殘孤虎鳥猶鳴。」含蓄如芮學士樂全閑居云:「萬里行裝春已暮,百年計活夜何長。」婉麗如文順公夏日卽事云:「密葉翳花春後在,薄雲漏日雨中明。」淸峭如皇祖北山寺云:「墮檻松聲淸刮夜,倚空山骨冷磨秋。」俊壯如金翰林克己云:「天馬足驕千里近,海鰲頭壯五山輕。」富貴如趙祭酒伯琪:「鶯花別院笙歌咽,車駕高門劍佩鳴。」精彩如文順公甘露寺云:「霜花照日添秋露,海氣干雲散夕霏。」飄逸如陳補闕江上云:「風吹釣叟帆邊雨,山染沙鷗影外秋。」淸遠如皇祖北山聖居寺云:「別洞白雲欹枕送,到山明月卷簾迎。」奇巧如文順公興聖寺云:「走藤遇曲難成杖,臥木因高偶作梯。」志寓如李司成百全東山溪亭云:「地側逆流雖湊北,時平沔水會朝東。」優游如文順公乞退後云:「周行世界閑僧坐,遍閱夫郞老妓休。」感懷如文順公病中云:「病憶故人空有淚,老思明主若爲情。」豪易如李眉叟:「林間出沒幾多屋,天外有無何處山。」淸駛如文順公北寺樓云:「閑雲頃刻成千狀,流水尋常作一聲。」金翰林云:「多情塞月圓還缺,少格山花落又開。」幽博如金翰林:「讖雨廢池蛙閣閣,相風枯樹鵲査査。」文順公興聖寺云:「厭雪寒麕爭穴燥,避風幽鳥擇枝低。」明媚如金翰林:「雨送紫茸歸野蕨,風催靑子上江梅。」文順公:「雨晴草色連空綠,風暧梅花度嶺香。」此二聯一骨,而雨送之聯其氣飄然。爽豁如鄭舍人嶺南寺樓云:「一溪明月憑欄夜,萬里淸風卷箔天。」文順公北山寺云:「半壁夕陽飛鳥影,滿山秋月冷猿聲。」龍潭寺云:「萬柳影中南北路,一溪聲裏兩三家。」皆一骨也,萬里淸風之語尤佳。華艶如外王父上李諫議純祐云:「詰筆暖霑紅藥露,朝衣輕颺紫薇風。」又上奇相國云:「滿衣花影朝溫室,一徑松陰退冷齋。」李眉叟:「風細佩聲傳紫禁,日高花影上紅墻。」又云:「日照花塼迎醉步,月和蓮燭映回廊。」外王父:「花院雨晴紅露泣,筠階日午碧霜乾。」此五聯皆一骨也,滿衣花影之語句格尤勝。佼壯如皇祖上文烈公西征云:「一聲鼓角靑山裂,萬里旌旗白日濛。掃盡河山還聖主,洗回風月付詩翁。三鼇山峻忠誠壯,五鳳樓高國手雄。」文順公占韻賦晉康公第蟠松云:「乾坤摠入吹噓內,草木猶榮顧眄前。」崔承制宗蕃登高望長安云:「十川蛇遶平章洞,三峴龍蟠學士家〔世稱,松京五宅,皆學士家,在三峴中〕。」此五聯皆一骨也,上文烈公三聯最爲淸雄。壯麗如劉司成沖基初入新都云:「海爲門作琉璃闕,山自花開錦繡都〔壬辰,移居海上花山。〕。」金翰林莘鼎新都夜直云:「一江風月金門遠,萬國烟花玉輦春。」皆一骨而劉尤贍壯。

한 호사가가 성률(聲律) 일곱 자의 연(聯)을 모아 품평하여 그 위아래를 매기고는 나에게 부탁하였다. 「저 웅장하고 깊고 기이하고 묘하며 예스럽고 아담하고 크고 먼 구절은 반드시 되풀이하여 자세히 훑어보아야 오래된 뒤에 맛을 얻으므로 배우는 이가 기뻐하지 않으니, 공부(工部)의 시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이제 모은 몇 연은 다 한 번 보면 곧 기뻐할 말이니 한가함을 깁는 데 도움이 될 만합니다. 그대는 뒤편에 적어 주십시오.」

그 품평한 것을 보니 다 옛사람을 본받지 않고 새로 억측으로 논한 것인데 오히려 취할 만한 것이 있으므로 아래에 벌여 놓는다.

새롭고 깨우치는 것 — 문순공 「만일사 누각」

건너간 몇 사람의 배는 절로 떠 있고 울다 지친 외로운 범에 새가 오히려 우네.

함축 — 예 학사 낙전 「한가히 살며」

만 리 갈 행장에 봄이 이미 저물고 백 년 살 셈에 밤이 어찌 이리 긴가.

곱고 아름다움 — 문순공 「여름날 즉사」

빽빽한 잎이 꽃을 가려 봄 뒤에도 남았고 엷은 구름이 해를 새어 빗속에도 밝네.

맑고 가파름 — 돌아가신 할아버지 「북산사」

난간에 지는 솔소리가 맑게 밤을 깎고 허공에 기댄 산뼈가 차갑게 가을을 가네.

빼어나고 씩씩함 — 김한림 극기

하늘 말의 발이 교만하니 천 리가 가깝고 바다 자라의 머리가 씩씩하니 다섯 산이 가볍네.

부귀 — 조 제주 백기

꾀꼬리와 꽃의 별원에 생황과 노래가 목메고 수레와 높은 문에 칼과 패옥이 울리네.

정채 — 문순공 「감로사」

서리꽃이 해에 비쳐 가을 이슬을 더하고 바다 기운이 구름을 범해 저녁 안개를 흩네.

나부껴 빼어남 — 진 보궐 「강 위에서」

바람이 낚시 늙은이의 돛 가에 비를 불고 산이 모래 갈매기의 그림자 밖에 가을을 물들이네.

맑고 멂 — 돌아가신 할아버지 「북산 성거사」

다른 골의 흰 구름은 베개를 기울여 보내고 산에 이른 밝은 달은 발을 걷어 맞네.

기이하고 공교로움 — 문순공 「흥성사」

달리는 등나무는 굽이를 만나 지팡이 되기 어렵고 누운 나무는 높음으로 말미암아 우연히 사다리가 되었네.

뜻을 부침 — 이 사성 백전 「동산 계정」

땅이 기울어 거스르는 흐름이 비록 북으로 모이나 때가 평안하여 면수(沔水)가 모여 동으로 조회하네.

넉넉히 노님 — 문순공 「물러나기를 빌고 나서」

세계를 두루 다니다 한가한 중이 앉고 사내들을 두루 겪고 늙은 기생이 쉬네.

느꺼움 — 문순공 「병중에」

병들어 옛 벗을 생각하니 부질없이 눈물만 있고 늙어 밝은 임금을 생각하니 정을 어이하랴.

호방하고 쉬움 — 이미수

숲 사이에 나왔다 잠겼다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집인가 하늘 밖에 있는 듯 없는 듯한 것은 어디의 산인가.

맑고 빠름 — 문순공 「북사 누각」

한가한 구름은 잠깐 사이에 천 가지 모습을 이루고 흐르는 물은 늘 한 소리를 짓네.

김한림

정 많은 변방의 달은 둥글었다 다시 이지러지고 격조 적은 산꽃은 졌다가 또 피네.

그윽하고 넓음 — 김한림

비를 점치는 버려진 못에 개구리가 개굴개굴 울고 바람을 살피는 마른 나무에 까치가 짹짹거리네.

문순공 「흥성사」

눈을 싫어하는 추운 노루는 마른 굴을 다투고 바람을 피하는 그윽한 새는 낮은 가지를 고르네.

밝고 고움 — 김한림

비는 자줏빛 새싹을 보내어 들고사리로 돌아가고 바람은 푸른 열매를 재촉하여 강 매화에 오르네.

문순공

비가 개니 풀빛이 허공에 이어 푸르고 바람이 따스하니 매화가 재를 넘어 향기롭네.

이 두 연은 한 골격인데 「비는 보내어」의 연이 그 기운이 나부낀다.

상쾌하고 트임 — 정 사인 「영남 절 누각」

한 시내의 밝은 달에 난간에 기댄 밤이요 만 리의 맑은 바람에 발을 걷은 하늘이로다.

문순공 「북산사」

반 벽의 저녁 해에 나는 새 그림자요 온 산의 가을 달에 차가운 잔나비 소리로다.

「용담사」

만 그루 버들 그림자 가운데 남북의 길이요 한 시내 소리 속에 두세 집이로다.

다 한 골격인데 「만 리의 맑은 바람」이라는 말이 더욱 아름답다.

화려하고 고움 — 외할아버지가 이 간의 순우에게 올린 것

붓을 다잡으니 따스하게 붉은 작약의 이슬에 젖고 조복이 가벼이 자미화 바람에 날리네.

또 기 상국에게 올려

옷에 가득한 꽃 그림자에 온실에 조회하고 한 길 솔 그늘에 냉재로 물러나네.

이미수

바람이 가늘어 패옥 소리가 자금(紫禁)에 전하고 해가 높아 꽃 그림자가 붉은 담에 오르네.

또

해가 꽃 벽돌을 비추어 취한 걸음을 맞고 달이 연꽃 촛불과 어울려 회랑에 비치네.

외할아버지

꽃 동산에 비가 개니 붉은 이슬이 우는 듯하고 대 섬돌에 해가 한낮이니 푸른 서리가 말랐네.

이 다섯 연이 다 한 골격인데 「옷에 가득한 꽃 그림자」의 말과 구법이 더욱 낫다.

굳세고 씩씩함 —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문열공의 서정(西征)에 올린 것

한 소리 북과 뿔피리에 푸른 산이 갈라지고 만 리 깃발에 흰 해가 흐리네. 강과 산을 다 쓸어 거룩한 임금께 돌리고 바람과 달을 씻어 돌려 시옹(詩翁)에게 부치네. 삼오산이 높으니 충성이 씩씩하고 오봉루가 높으니 나라의 솜씨가 웅장하네.

문순공이 운을 뽑아 진강공 집의 서린 솔을 읊어

하늘과 땅이 모두 불어 주는 안으로 들고 풀과 나무가 오히려 돌아보는 앞에 영화롭네.

최 승제 종번이 높은 데 올라 장안을 바라보며

열 내가 뱀처럼 평장동을 두르고 세 고개가 용처럼 학사의 집에 서렸네.〔세상에서 이르기를, 송경의 다섯 집이 다 학사의 집인데 세 고개 가운데 있다 한다.〕

이 다섯 연이 다 한 골격인데 문열공에게 올린 세 연이 가장 맑고 웅장하다.

씩씩하고 아름다움 — 유 사성 충기가 처음 새 도읍에 들며

바다로 문을 삼아 유리 대궐을 짓고 산이 절로 꽃을 피워 비단 수 도읍이로다.〔임진년에 바다 위 화산으로 옮겨 살았다.〕

김한림 신정 「새 도읍에서 밤 숙직하며」

한 강의 바람과 달에 금문(金門)이 멀고 만 나라의 안개와 꽃에 옥 수레가 봄이로다.

다 한 골격인데 유가 더욱 넉넉하고 씩씩하다.

毅廟幸西都時,白學士光臣,管記黃州,上歌謠云:「洞仙溪水千年色,岊嶺松風萬壑聲。」晉陽公孫女配東宮,生男後,公宴宗室諸王,陳八洞樂觀之〔舊京諸坊,號十二洞,各有里樂,及遷都皆廢,晉陽公更爲八洞,閱其樂。〕,東山洞進歌謠云:「東山曲是童輝四,中岳聲爲萬歲三〔見子山爲中岳,其洞亦進樂。〕。」花山洞云:「一門簪履三韓會,八洞笙歌萬壽聲。」此三聯一格也。

의종께서 서도에 거둥하실 때 백 학사 광신이 황주의 관기(管記)로 있으면서 가요를 올려 이르기를,

동선(洞仙) 시내의 물은 천 년의 빛이요 절령(岊嶺)의 솔바람은 만 골짜기의 소리로다.

진양공의 손녀가 동궁의 배필이 되어 아들을 낳은 뒤, 공이 종실의 여러 왕에게 잔치를 베풀고 여덟 동(洞)의 음악을 벌여 보게 하였다.〔옛 서울의 여러 방(坊)을 열두 동이라 불렀는데 저마다 마을 음악이 있었다. 도읍을 옮기자 다 없어졌으므로 진양공이 다시 여덟 동으로 만들어 그 음악을 훑어보았다.〕

동산동이 가요를 올려 이르기를,

동산의 곡은 이 아이를 넷으로 빛냄이요 중악(中岳)의 소리는 만세를 셋으로 부름이로다.〔자산(子山)을 중악으로 삼았으니 그 동에서도 또한 음악을 올렸다.〕

화산동이 이르기를,

한 집안의 비녀와 신이 삼한에 모이고 여덟 동의 생황과 노래가 만수(萬壽)의 소리로다.

이 세 연이 한 격이다.

凡用故事不同,或名號或言行。大抵用事之聯,罕有新意,唯假借爲用,如有新意,然失實。眉叟云:「老去陶潛方止酒,慵多杜叟不梳頭。」此用古人名。又云:「附熱肯追氷氏子,絶交偏恨孔方兄。」此假用名。又云:「要作洞中秦博士,何須墓上漢征西。」用古人官。皇祖云:「氷廳掛鏡容寒士,霜署提綱激暖卿。」假用官名。文順公云:「墮車醉者只全酒,把甕丈人寧有機。」用古人語。皇祖云:「薄宦一生誰得鹿,故人千里子知魚。」借用古人語〔得鹿之語,非指薄宦,知魚之說,不關故人,此皆借用。〕。文順公云:「世味淺深曾染指,人生得失已忘蹄。」染指,借用古人事〔與上知魚,借用語同。〕,忘蹄,借用古人語。詩家貴借用,然用之不工,則意反而語生。尹直講于一,趙直講文拔,同在國學考藝試闈,趙作詩云:「欲雨欲晴天半笑,無風無月夜全聾。」尹吟味良久曰:「此古人所謂借字,甚工也。」

무릇 고사를 쓰는 것은 같지 않으니 혹은 이름과 호이고 혹은 말과 행실이다. 대저 고사를 쓴 연에는 새 뜻이 있는 것이 드물고, 오직 빌려다 쓰면 새 뜻이 있는 듯하나 실상을 잃는다.

미수가 이르기를,

늙어 가는 도잠은 바야흐로 술을 그치고 게으름 많은 두 늙은이는 머리를 빗지 않네.

이는 옛사람의 이름을 쓴 것이다.

또 이르기를,

더운 데 붙으면서 어찌 빙씨(氷氏)의 아들을 따르랴 사귐을 끊고 유달리 공방형(孔方兄)을 한하네.

이는 이름을 빌려 쓴 것이다.

또 이르기를,

골 안의 진나라 박사가 되고자 할 뿐이니 어찌 무덤 위의 한나라 정서장군을 쓰랴.

이는 옛사람의 벼슬을 쓴 것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이르기를,

빙청(氷廳)에 거울을 걸어 추운 선비를 받아들이고 상서(霜署)에 벼리를 들어 따스한 벼슬아치를 부딪치네.

이는 벼슬 이름을 빌려 쓴 것이다.

문순공이 이르기를,

수레에서 떨어진 취한 이는 다만 술로 온전하고 항아리를 안은 노인이 어찌 기심(機心)이 있으랴.

이는 옛사람의 말을 쓴 것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이르기를,

엷은 벼슬 한평생에 누가 사슴을 얻었으며 옛 벗은 천 리에 그대가 물고기를 아는가.

이는 옛사람의 말을 빌려 쓴 것이다.〔사슴을 얻는다는 말은 엷은 벼슬을 가리킨 것이 아니고, 물고기를 안다는 말은 옛 벗과 관계가 없다. 이는 다 빌려 쓴 것이다.〕

문순공이 이르기를,

세상 맛의 얕고 깊음을 일찍이 손가락에 물들였고 사람살이의 얻고 잃음은 이미 통발을 잊었네.

「손가락에 물들임」은 옛사람의 일을 빌려 쓴 것이고〔위의 「물고기를 안다」와 함께 말을 빌려 쓴 것과 같다.〕 「통발을 잊음」은 옛사람의 말을 빌려 쓴 것이다.

시가(詩家)는 빌려 쓰는 것을 귀히 여긴다. 그러나 쓰는 것이 공교롭지 않으면 뜻이 뒤집히고 말이 설다.

윤 직강 우일과 조 직강 문발이 함께 국학에서 예(藝)를 시험하는 과장에 있었는데, 조가 시를 지어 이르기를,

비가 오려다 개려다 하니 하늘이 반쯤 웃고 바람도 없고 달도 없으니 밤이 온통 귀먹었네.

윤이 한참을 읊어 맛보고 말하였다. 「이는 옛사람이 이른바 글자를 빌린 것이니 매우 공교롭다.」

皇祖九月二十五日夜月云:「已將凉扇藏秋篋,漸見寒鉤掛曉簾。」體物精妙。文順公再三和李需詠白云:「笏光朝未退,窓色醉方醒。」亦爲奇警。康日用御試占韻賦雪云:「聲逐漁簑歸渭浦,迹隨僧杖入天台。」此押强韻,甚工。予入北朝,見故燕地村家壁上題:「春前有雨花開早,秋後無霜葉落遲。」傍書曰端的,此殆謂敍事對屬端的也。鄭與齡和文懿公葦詩云:「春芽綠日河豚上,秋葉黃時塞鴈來。」此賦物端的也,敍事不及賦物。世傳,文懿公見與齡此句曰:「吾詩不敢與此同板。」遂削之,此言之者過耳。觀鄭詩雖端的,是新進,刻燭賦物,號爲急作者之體也。昔爲童冠赴夏課會,占韻急作土卵云:「種時鳩始乳,收日雁初賓」。亦其體。櫻桃云:「摘來夏實珠千顆,想得春花雪一枝。」此亦一骨而異體。有二生賦絞床,一曰:「下恐壓顚擎柱錯,中嫌陷落絡繩多。」一曰:「靑衫影裏承恩少,畵角聲中得意多。」壓顚之聯意,巧語瑣,靑衫之語,非新進急作,乃老儒語也。李侍郞需,被人請走筆賦鞘子云:「裹皮尙有將軍質,著漆猶存國士風。恐管不留中漸窄,惡塵多滯下微通。」恐管之聯與壓顚之聯,語格同,其使恐、留、惡三字,尤生且疎。然爲時俗所尙,裹皮、著漆皆常談也,若改爲裹革、漆身,此聯有可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구월 스무닷새 밤 달」에 이르기를,

이미 서늘한 부채를 가을 상자에 감추었는데 점점 찬 갈고리가 새벽 발에 걸린 것을 보네.

사물을 그린 것이 정밀하고 묘하다.

문순공이 두세 번 이수의 「흰 것을 읊음」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홀(笏)의 빛은 조회에서 아직 물러나기 전이요 창의 빛은 취함이 바야흐로 깨는 때로다.

또한 기이하고 깨우친다.

강일용이 어시(御試)에서 운을 뽑아 눈을 읊어 이르기를,

소리는 고기잡이 도롱이를 좇아 위수 포구로 돌아가고 자취는 스님의 지팡이를 따라 천태산으로 드네.

이는 굳센 운을 누른 것이 매우 공교롭다.

내가 북조에 들어가 옛 연(燕) 땅 마을집 벽 위에 제한 것을 보았다.

봄 앞에 비가 있으니 꽃이 일찍 피고 가을 뒤에 서리가 없으니 잎이 더디 지네.

곁에 「단적(端的)」이라 적혀 있었으니, 이는 아마 일을 펴고 짝을 붙인 것이 딱 맞다고 이른 것이다.

정여령이 문의공의 「갈대」 시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봄 싹이 푸른 날에 복어가 오르고 가을 잎이 누런 때에 변방 기러기가 오네.

이는 사물을 읊은 것이 딱 맞다. 일을 펴는 것은 사물을 읊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세상에 전하기를, 문의공이 여령의 이 구절을 보고 「내 시는 감히 이것과 같은 판에 두지 못하겠다」 하고 마침내 깎아 버렸다 하는데, 이는 말하는 이가 지나친 것이다. 정의 시를 보면 비록 딱 맞으나 이는 새로 나아가는 이가 초에 금을 그어 놓고 사물을 읊는, 이른바 급히 짓는 이의 체다.

옛날 관례한 이와 아이들이 여름 공부 모임에 나아갔을 때 운을 뽑아 급히 토란을 읊어 이르기를,

심을 때 비둘기가 비로소 새끼를 치고 거둘 날 기러기가 처음 손이 되네.

또한 그 체다.

「앵두」에 이르기를,

따 오니 여름 열매가 구슬 천 알이요 생각해 보니 봄꽃이 눈 한 가지로다.

이 또한 한 골격이면서 체가 다르다.

두 서생이 「교상(絞床)」을 읊었는데 하나는,

아래로는 넘어져 눌릴까 두려워 기둥 받침이 어긋나고 가운데는 빠질까 꺼려 얽은 줄이 많네.

하나는,

푸른 적삼 그림자 속에 은혜 받음이 적고 그림 뿔피리 소리 가운데 뜻 얻음이 많네.

「넘어져 눌린다」는 연은 뜻이 공교로우나 말이 자잘하고, 「푸른 적삼」의 말은 새로 나아가는 이의 급작이 아니라 곧 늙은 선비의 말이다.

이 시랑 수가 남의 청을 받아 붓을 달려 「칼집」을 읊어 이르기를,

가죽을 싼 것은 아직 장군의 바탕이 있고 옻을 칠한 것은 오히려 나라 선비의 풍모가 남았네. 관(管)이 머무르지 않을까 두려워 가운데가 점점 좁고 티끌이 많이 막힐까 미워하여 아래가 조금 트였네.

「두려워한다」는 연은 「넘어져 눌린다」는 연과 말의 격이 같고, 그 「공(恐)」·「유(留)」·「오(惡)」 세 글자를 부린 것이 더욱 설고 또 성기다. 그러나 그때 세속이 숭상하는 바가 되었다. 「가죽을 쌌다」와 「옻을 칠했다」는 다 예삿말이니, 만약 「과혁(裹革)」과 「칠신(漆身)」으로 고쳤더라면 이 연은 볼 만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詩評曰:「氣尙生語欲熟。初學之氣生,然後壯氣逸,壯氣逸,然後老氣豪。」文順公少年時走筆,皆氣生之句,膾炙衆口。如次韻文長老見贈云:「睡美工夫深巷雨,夜寒消息一瓶氷。」又:「數篇詩句閑中迫,一局棊聲靜裡喧。」又:「一洞烟霞僧富貴,兩峰松月鶴生涯〔其寺對兩峰。〕,朝暮鳥聲門外樹,古今人影路傍潭。」又:「階竹困陰孫未長,庭梅飽雨子初肥。」又:「顔逢美酒雙紅易,眼爲佳人一白難。」:「滿林白雪猿跳破,半壁斜陽鳥喚殘。」「竹根擘地龍腰曲,蕉葉翻堦鳳尾長。」「蟾腹硯寒書易凍,猊蹄鑢煖坐慵遷。」「觀棋遺迹衣生皺,省酒奇功語減暄。」半壁斜陽,語格淸爽,省酒奇功,氣生語熟,古今人影,辭雖已陳,屬意則新,閑中迫,聯辭淺,而意不淺。無衣子爲大學生時,野行云:「臂筐桑女盛春色,頂笠蓑翁戴雨聲。」陳補闕云:「觸石樹腰成磊碨,入地泉脚失潺湲。」臂筐之句,氣與語俱生,爲時俗所尙,觸石聯,氣雖生語猶熟,雖詩老亦驚。

시평(詩評)에 이르기를 「기운은 설기를 숭상하고 말은 익기를 바란다. 처음 배울 때 기운이 설고, 그런 뒤에 씩씩한 기운이 빼어나며, 씩씩한 기운이 빼어난 뒤에 늙은 기운이 호방하다」 하였다.

문순공이 젊었을 때 붓을 달린 것은 다 기운이 선 구절인데 뭇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를테면 문 장로가 준 것에 차운하여 이르기를,

잠이 단 공부는 깊은 골목의 비요 밤이 찬 소식은 한 병의 얼음이로다.

또,

몇 편 시 구절은 한가한 가운데 다그치고 한 판 바둑 소리는 고요한 속에 시끄럽네.

또,

한 골의 안개와 노을은 중의 부귀요 두 봉우리 솔과 달은 학의 살림이로다.〔그 절이 두 봉우리를 마주하였다.〕 아침저녁 새소리는 문 밖의 나무요 예와 이제 사람 그림자는 길가의 못이로다.

또,

섬돌의 대는 그늘에 시달려 손자가 자라지 못하고 뜰의 매화는 비에 배불러 열매가 갓 살졌네.

또,

얼굴이 좋은 술을 만나 두 번 붉기는 쉽고 눈이 아름다운 사람을 위해 한 번 희기는 어렵네.

숲에 가득한 흰 눈은 잔나비가 뛰어 깨뜨리고 반 벽의 비낀 해는 새가 불러 스러지네.

대뿌리는 땅을 쪼개어 용의 허리가 굽고 파초 잎은 섬돌에 뒤집혀 봉황의 꼬리가 기네.

두꺼비 배 벼루는 차서 글씨가 얼기 쉽고 사자 발 화로는 따스하여 앉아 옮기기 게으르네.

바둑 구경하던 자취에 옷이 주름지고 술을 살피던 기이한 공에 말이 따스함을 더네.

「반 벽의 비낀 해」는 말의 격이 맑고 상쾌하고, 「술을 살피던 기이한 공」은 기운이 설되 말이 익었고, 「예와 이제 사람 그림자」는 말이 비록 이미 펼쳐진 것이나 뜻을 붙인 것은 새롭고, 「한가한 가운데 다그친다」는 연은 말이 얕되 뜻은 얕지 않다.

무의자가 태학생이었을 때 들길을 가며 이르기를,

팔에 광주리 낀 뽕 따는 여인은 봄빛을 담았고 머리에 삿갓 쓴 도롱이 늙은이는 빗소리를 이었네.

진 보궐이 이르기를,

돌에 닿아 나무 허리가 울퉁불퉁해지고 땅에 들어 샘 다리가 졸졸거림을 잃었네.

「팔에 광주리」 구절은 기운과 말이 다 설어 그때 세속이 숭상하는 바가 되었고, 「돌에 닿아」의 연은 기운이 비록 설되 말이 오히려 익어 비록 시에 늙은 이라도 또한 놀랐다.

凡詩紀美自敍,皆要其得實。或用同姓名故事,是謂精博。趙文正公和崔、琴兩相國唱和詩云:「貴糸題鷹後,仙源駕鯉孫。」用同姓事。「谷同鸎放手,年別桂分恩。」此紀美得實,崔、琴皆忠肅公門下,壯元故也。崔相復和云:「庭蘭同舊臭,門笋按新孫。」自敍得實。「弄翰殘星詠,臨戎愛日恩。」用同姓幷得實也。誥院孫得之和進云:「失多名負得,兒少姓慙孫。」此用同姓名之字,爲自敍也。

무릇 시로 아름다움을 적고 스스로 펴는 것은 다 그 실상을 얻는 것이 요긴하다. 혹 같은 성과 이름의 고사를 쓰면 이를 정밀하고 넓다고 이른다.

조 문정공이 최·금 두 상국이 주고받은 시에 화답하여 이르기를,

귀한 실은 매를 제한 뒤요 신선의 근원은 잉어를 탄 손자로다.

같은 성의 일을 쓴 것이다.

골이 같아 꾀꼬리가 손을 놓고 해가 달라 계수가 은혜를 나누네.

이는 아름다움을 적어 실상을 얻은 것이니, 최와 금이 다 충숙공 문하의 장원이었기 때문이다.

최 상국이 다시 화답하여 이르기를,

뜰의 난초는 옛 향기와 같고 문의 죽순은 새 손자를 살피네.

스스로 펴서 실상을 얻은 것이다.

붓을 놀려 남은 별을 읊고 전쟁에 임하여 사랑하는 해의 은혜로다.

같은 성을 쓰면서 아울러 실상을 얻은 것이다.

고원의 손득지가 화답하여 올려 이르기를,

잃음이 많아 이름이 얻음을 저버리고 아이가 적어 성이 손자에게 부끄럽네.

이는 같은 성과 이름의 글자를 써서 스스로 편 것이다.

河直講千旦訪予曰:「康日用賦鷺鷥云:「飛割碧山腰。」苦吟未得對。後眉叟對云:「占巢喬木頂。」載之破閑。凡續補是好事,如未得佳句則已,何眉叟自揚己短,如彼乎?君其削去。」予對曰:「破閑所載,鄭舍人至都門而返,黃彬彬慟哭下樓,似乎過矣。然先覺之言,不敢擅非,況以占巢喬,對飛割碧熟矣,何削?」河怒其拒,突出便去。時座有兩三客,吟味良久曰:「請各對之」,曰「立拳靑草面」,或「起穿靑壠首」,或「睡偎紅蓼脛」,或「立窺淸沼面」,或「叫穿明月脇」,爭自爲勝。予戲曰:「康李兩老,豈不能道你輩此等句也?」客呵呵而罷。

하 직강 천단이 나를 찾아와 말하였다. 「강일용이 해오라기를 읊어 『날며 푸른 산허리를 가른다』 하고는 괴로이 읊었으나 짝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뒤에 미수가 짝을 지어 『높은 나무 꼭대기에 집을 차지한다』 하고 이를 「파한집」에 실었습니다. 무릇 이어 깁는 것은 좋은 일이나 만약 아름다운 구절을 얻지 못하였으면 그만둘 일이지, 어찌 미수가 스스로 제 모자람을 저처럼 드러냈습니까. 그대는 그것을 깎아 내십시오.」

내가 답하였다. 「「파한집」에 실린 것 가운데 정 사인이 도성 문에 이르러 돌아섰다는 것과 황빈빈이 통곡하며 누각을 내려왔다는 것은 지나친 듯하다. 그러나 먼저 깨달은 이의 말을 감히 함부로 그르다 하지 못하겠거니와, 하물며 『집을 차지한 높은 나무』로 『날며 가르는 푸른 산』을 짝지은 것은 익은 것이니 어찌 깎으랴.」

하가 그 막음에 성이 나 불쑥 나가 버렸다. 그때 자리에 두세 손이 있어 한참을 읊어 맛보고 말하였다. 「저마다 짝을 지어 봅시다.」 하나는 「푸른 풀 낯에 주먹을 세운다」 하고, 혹은 「푸른 두렁 머리를 뚫고 일어난다」 하고, 혹은 「붉은 여뀌 정강이에 기대어 존다」 하고, 혹은 「맑은 못 낯을 엿보며 선다」 하고, 혹은 「밝은 달 옆구리를 뚫고 운다」 하며 다투어 스스로 낫다 하였다.

내가 놀리며 말하였다. 「강과 이 두 늙은이가 어찌 그대들의 이런 구절을 말하지 못하였겠는가.」 손들이 껄껄 웃고 파하였다.

趙承宣伯琪,文正公之子,弱冠擢第,不數年腰犀爲襯衣使,過淸風縣。其監務井宗厚,膝行膜拜而進曰:「我是嚴君同榜,不幸陸沈,年將七十始得此任。」趙驚起避席再拜,作詩贈之曰:「靑衫門外白頭翁,曾共先人折桂叢。同榜盡爲卿相貴,可憐七十在淸風。」時趙年二十餘,詩語已老。

조 승선 백기는 문정공의 아들인데 약관에 급제하여 몇 해가 안 되어 무소 띠를 두르고 친의사(襯衣使)가 되어 청풍현을 지났다. 그 감무 정종후가 무릎으로 기어 와 절하고 나아가 말하였다. 「저는 아버님과 같은 방(榜)입니다. 불행히 뭍에 잠겨 나이가 장차 일흔에 비로소 이 소임을 얻었습니다.」

조가 놀라 일어나 자리를 피하여 두 번 절하고 시를 지어 주었다.

푸른 적삼 문 밖의 흰머리 늙은이여 일찍이 선친과 함께 계수 떨기를 꺾으셨네. 같은 방이 다 경상(卿相)의 귀함이 되었건만 가엾구나, 일흔에 청풍에 계시다니.

그때 조의 나이 스물 남짓인데 시의 말이 이미 늙었다.

崔相國保淳爲省郞時,措大皇甫瓘往謁,相國以畵松詩卷子示之,皇卽次韻聯寫曰:「蒼髯一叟老雲峰,水墨傳眞號是松。無限子孫今滿洞,大夫餘蔭有誰蒙。」相國驚曰:「此郞必占龍頭。」後果作成均試副元,未幾又作金榜第一人。

최 상국 보순이 성랑(省郞)으로 있을 때 조대(措大) 황보관이 뵈러 가니 상국이 솔 그림 시 두루마리를 보여 주었다. 황이 곧 차운하여 잇달아 써서 이르기를,

푸른 수염 한 늙은이가 구름 봉우리에 늙었으니 수묵으로 참모습을 전하여 이름이 솔이로다. 가없는 자손이 이제 골에 가득하니 대부(大夫)의 남은 그늘을 누가 입으랴.

상국이 놀라 말하였다. 「이 낭관은 반드시 용두를 차지하겠다.」 뒤에 과연 성균시 부원(副元)이 되고, 얼마 안 되어 또 금방(金榜)의 첫째 사람이 되었다.

己酉仲春,因事到古京,皆丘墟,有孤桐生大觀殿古址,已拱矣。及日暮子規啼西麓,不忍澘然。曉起見壁間有二絶,問重修都監胥吏,是誰作也,答云是副使安搢所書。其一曰:「萬家煨燼一無遺,殿上生桐自底時。我老萬分觀再造,薰風琴用汝當支。」二曰:「不意皇都有子規,終宵啼月使人悲。潛思往事汍瀾泣,曉傍孤桐詠黍離。」此詩雖非警策,卽事備詳可哀。

기유년 중춘에 일이 있어 옛 서울에 이르니 다 언덕과 터가 되었고, 외로운 오동 하나가 대관전 옛터에 나서 이미 아름드리가 되었다. 해가 저물자 두견이 서쪽 기슭에서 우니 차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벽 사이에 절구 둘이 있는 것을 보고 중수도감의 아전에게 누가 지은 것이냐 물으니 부사 안진이 쓴 것이라 답하였다.

그 하나,

만 집이 잿더미가 되어 하나도 남지 않았는데 전각 위에 오동이 난 것은 어느 때부터인가. 내가 늙어 만분의 하나라도 다시 지음을 보리니 훈풍(薰風)의 거문고는 너를 써서 마땅히 받치리라.

둘,

뜻하지 않게 황도(皇都)에 두견이 있어 밤새 달을 보고 울어 사람을 슬프게 하네. 가만히 지난 일을 생각하며 줄줄 우니 새벽에 외로운 오동 곁에서 「서리(黍離)」를 읊네.

이 시는 비록 깨우쳐 채찍질하는 것은 아니나 곧 일을 갖추어 자세히 하여 슬퍼할 만하다.

予掌書上洛,後爲遨頭復之任。闢所居廳事,後欄臨小池,名之曰不勞亭,種花竹其前。及瓜代,第四年丁未春,帶玉出鎭東南路,巡歷上洛,自牧守至于鄕校諸儒,呈歌詩引啓,騈塡街路。有四大老年七八十餘,自號尙原四老,呈短引幷絶句詩四首。其一曰:「前爲藍袖後朱轓,政最如公古未聞。草綠圓門虎生子,至今傳作美談云。」其二曰:「不勞亭畔百花開,曾是爲州手自栽。去後春光猶寂寞,無情亦喜相君來。」予覽之曰:「虎負子渡河去,古人美之。今來生子,非善政也,但取空獄云耳。」

내가 상락(上洛)의 장서기가 되었다가 뒤에 오두(遨頭)로 그 자리에 다시 갔다. 사는 곳의 마루를 열어 뒤 난간이 작은 못에 임하게 하고 「불로정(不勞亭)」이라 이름 짓고 그 앞에 꽃과 대를 심었다.

임기를 갈고 넷째 해 정미년 봄에 옥을 띠고 동남로를 진무하러 나가 상락을 순행하니, 목사와 수령으로부터 향교의 여러 선비에 이르기까지 노래와 시와 인계(引啓)를 올리는 이가 거리에 나란히 가득하였다.

늙은이 넷이 있어 나이가 일흔여든 남짓인데 스스로 「상원사로(尙原四老)」라 부르며 짧은 인(引)과 아울러 절구 시 네 수를 올렸다.

그 하나,

전에는 쪽빛 소매였다가 뒤에는 붉은 수레휘장이시니 정사가 공만 한 이는 예로부터 듣지 못하였네. 풀 푸른 둥근 문에 범이 새끼를 낳았으니 이제까지 전하여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었네.

그 둘,

불로정 가에 온갖 꽃이 피니 일찍이 고을을 맡아 손수 심으신 것이라. 가신 뒤에 봄빛이 오히려 쓸쓸하더니 정 없는 것도 또한 상공(相公)의 오심을 기뻐하네.

내가 보고 말하였다. 「범이 새끼를 업고 강을 건너간 것을 옛사람이 아름답게 여겼다. 이제 와서 새끼를 낳았다는 것은 좋은 정사가 아니고, 다만 옥(獄)이 빈 것을 취하여 말한 것일 뿐이다.」

古今警絶句不多。如草堂江上云:「功業頻看鏡,行藏獨倚樓。」悶云:「卷簾唯白水,隱几亦靑山。」陳補闕云:「杜子美詩,雖五字氣吞象外。」殆謂此等句也。然白水之聯,用唯亦二字爲妙,欲味其妙,當悶中咀嚼。崔壯元基靜四時詞云:「侵雪還萱草,占霜有麥花。」白拈草堂語。吳先生世才自敍云:「丘壑孤忠赤,才名兩鬢華。」暗竊草堂格。皇祖初入金閨,奉使江南留題曰:「雲霄茅下纔連茹,原隰蓬間忽斷根。」詩人以爲,與杜子美:「日月籠中鳥,乾坤水上萍。」其琢句精工相似。或云:「此等句格,琢爲五字,則絶妙,七言則未工。」眉叟破閑云:「古今琢句之法,唯杜少陵得之。如日月籠中句,吟味果如啖蔗。」陳補闕云:「三年旅枕庭闈月,萬里征衣草樹風。」未若草堂:「三年笛裡關山月,萬國兵前草木風。」語峭意深。李史館允甫,平生嗜杜詩,時時吟賞干戈送老儒一句曰:「此語天然遒緊,凡才固不得導。」宋翰林昌問:「工部,『九江春草外,三峽暮帆前。』辭易意滑,儻可及導?」史館笑曰:「其語意豁遠,固非汝曹所識。如:「古墻猶竹色,虛閣自松聲。」此工部尋常語體,今幾人學杜體,而莫能髣髴。唯雪堂。「欹枕落花餘幾片,閉門新竹自千竿。」其語格淸緊則同,遣意閑雅過之,蓋有欹枕閉門之語耳。」史館嘗與李翰林〔文順公〕,宿安和寺留詩,翰林曰「廢興餘老木,今古獨寒流。」史館曰:「改獨爲尙,則草堂句也。」歸正寺壁題云:「晨鍾雲外濕,午梵日邊乾。」此奪工部晨鍾雲外濕,勝地石堂烟句也。於晨鍾言濕可警,於梵言乾疎矣。但對觸切耳。石堂烟句,是氣吞之類也。補閑只載本朝詩。然言詩不及杜,如言儒不及夫子,故編末略及之。凡詩琢鍊如工部,妙則妙矣。彼手生者,欲琢彌苦,而拙澁愈甚,虛雕肝腎而已,豈若各隨才局,吐出天然無礱錯之痕?今之事鍛鍊者,皆師貞肅公,李眉叟曰:「章句之法不外是,如使古人見之,安知不謂生拙也?」

예와 이제에 깨우쳐 빼어난 구절은 많지 않다. 이를테면 초당(草堂)의 「강 위에서」에 이르기를,

공업(功業)은 자주 거울을 보고 나아감과 물러남은 홀로 누각에 기대네.

「번민」에 이르기를,

발을 걷으니 오직 흰 물이요 안석에 기대니 또한 푸른 산이로다.

진 보궐이 이르기를 「두자미의 시는 비록 다섯 자라도 기운이 형상 밖을 삼킨다」 하였으니 아마 이런 구절을 이른 것이다. 그러나 「흰 물」의 연은 「오직(唯)」과 「또한(亦)」 두 글자를 쓴 것이 묘하니, 그 묘함을 맛보려면 마땅히 번민 가운데서 씹어야 한다.

최 장원 기정의 「사시사」에 이르기를,

눈을 무릅쓰고 원추리가 돌아오고 서리를 차지하여 보리꽃이 있네.

초당의 말을 맨손으로 집은 것이다.

오 선생 세재가 스스로 펴서 이르기를,

언덕과 골에 외로운 충성이 붉고 재주와 이름에 두 살쩍이 세었네.

가만히 초당의 격을 훔친 것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처음 금규(金閨)에 들어 강남에 사신 가서 제하여 남긴 것에 이르기를,

구름 하늘 띠풀 아래 겨우 뿌리를 이었더니 언덕과 진펄 쑥 사이에 홀연 뿌리가 끊겼네.

시인들이 이르기를, 두자미의

해와 달은 조롱 속의 새요 하늘과 땅은 물 위의 부평이라

한 것과 그 구절을 쪼아 다듬은 정교함이 서로 비슷하다 하였다. 어떤 이는 말하였다. 「이런 구절의 격은 다섯 자로 쪼면 절묘하고 일곱 자로 하면 공교롭지 못하다.」

미수의 「파한집」에 이르기를 「예와 이제에 구절 쪼는 법은 오직 두소릉이 얻었다. 『해와 달은 조롱 속』 같은 구절은 읊어 맛보면 과연 사탕수수를 씹는 것 같다」 하였다.

진 보궐이 이르기를,

세 해 나그네 베개에 뜰의 달이요 만 리 나그네 옷에 풀과 나무의 바람이로다.

한 것은 초당의

세 해 피리 속의 관산의 달이요 만 나라 군사 앞의 초목의 바람이라

한 것이 말이 가파르고 뜻이 깊은 것만 못하다.

이사관 윤보는 평생 두보의 시를 즐겨, 때때로 「전쟁이 늙은 선비를 보낸다」는 한 구절을 읊고 감상하며 말하였다. 「이 말은 하늘 그대로 굳세고 긴하니 범상한 재주로는 진실로 이끌어 내지 못한다.」

송 한림 창이 물었다. 「공부의 『구강의 봄풀 밖이요 삼협의 저녁 돛 앞이라』는 말이 쉽고 뜻이 미끄러우니 혹 미쳐 이끌어 낼 만합니까.」

사관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 말과 뜻이 트이고 머니 진실로 그대들이 알 바가 아니다. 『옛 담은 아직도 대 빛이요 빈 누각은 절로 솔 소리라』 같은 것은 곧 공부의 예사로운 말의 체인데, 지금 몇 사람이 두보의 체를 배우되 비슷하게도 하지 못한다. 오직 설당(雪堂)의

베개를 기울이니 지는 꽃이 몇 잎 남았고 문을 닫으니 새 대가 절로 천 그루로다

가 그 말의 격이 맑고 긴한 것은 같고, 뜻을 놓은 것이 한가하고 아담하여 그를 지나니, 대개 『베개를 기울이고 문을 닫는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사관이 일찍이 이 한림〔문순공〕과 안화사에 묵으며 시를 남겼는데, 한림이 이르기를,

흥하고 망함에 늙은 나무가 남았고 예와 이제에 홀로 찬 물이 흐르네.

사관이 말하였다. 「『홀로』를 『아직도』로 고치면 초당의 구절이다.」

귀정사 벽에 제하여 이르기를,

새벽 종은 구름 밖에서 젖고 낮 범패는 해 가에서 마르네.

이는 공부의 「새벽 종은 구름 밖에서 젖고, 빼어난 땅은 돌집의 연기라」 한 구절을 빼앗은 것이다. 새벽 종에 젖는다고 말한 것은 깨우칠 만하나 범패에 마른다고 한 것은 성기다. 다만 짝지어 닿은 것이 절실할 뿐이다. 「돌집의 연기」 구절은 기운이 삼키는 무리다.

「보한(補閑)」은 다만 이 나라의 시만 싣는다. 그러나 시를 말하며 두보에 미치지 않는 것은 유학을 말하며 공자에 미치지 않는 것과 같으므로 편 끝에 대략 언급한다.

무릇 시를 쪼고 단련하기를 공부처럼 하면 묘하기는 묘하다. 그러나 저 손이 선 이가 쪼려 할수록 더욱 괴로워 졸하고 껄끄러움이 더욱 심해지니 부질없이 간과 콩팥을 새길 뿐이다. 어찌 저마다 재주의 그릇을 따라 하늘 그대로 갈고 다듬은 자취 없이 토해 내는 것만 하랴.

지금 단련을 일삼는 이들이 다 정숙공을 스승으로 삼는데, 이미수가 말하였다. 「글귀의 법이 이 밖에 있지 않다. 만약 옛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한다면 설고 졸하다 이르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文以豪邁壯逸爲氣,勁崚淸駛爲骨,正直精詳爲意,富贍宏肆爲辭,簡古倔强爲體。若局生澁瑣弱蕪淺是病。若詩則新奇絶妙,逸越含蓄,險怪俊邁,豪壯富貴,雄深古雅上也。精雋遒緊,爽豁淸峭,飄逸勁直,宏贍和裕,炳煥激切,平淡高邈,優閑夷曠,淸玩巧麗次之。生拙野疎,蹇澁寒枯,淺俗蕪雜,衰弱淫靡病也。夫評詩者,先以氣骨意格,次以辭語聲律。一般意格中其韻語,或有勝劣一聯,而兼得者蓋寡。故所評之辭,亦雜而不同。詩格曰:「句老而字不俗,理深而意不雜,才縱而氣不怒,言簡而事不晦,方入於風騷。」此言可師。

글은 호방하고 뛰어나고 씩씩하고 빼어난 것을 기운으로 삼고, 굳세고 험하고 맑고 빠른 것을 뼈로 삼고, 바르고 곧고 정밀하고 자세한 것을 뜻으로 삼고, 넉넉하고 크고 마음껏인 것을 말로 삼고, 간결하고 예스럽고 우뚝하고 굳센 것을 체로 삼는다. 갇히고 설고 껄끄럽고 자잘하고 약하고 거칠고 얕은 것은 병이다.

시로 말하면 새롭고 기이하고 절묘한 것, 빼어나고 넘치고 함축한 것, 험하고 괴이하고 뛰어난 것, 호방하고 씩씩하고 부귀한 것, 웅장하고 깊고 예스럽고 아담한 것이 위다.

정밀하고 빼어나고 굳세고 긴한 것, 상쾌하고 트이고 맑고 가파른 것, 나부껴 빼어나고 굳세고 곧은 것, 크고 넉넉하고 화하고 너그러운 것, 빛나고 격하고 절실한 것, 평담하고 높고 아득한 것, 넉넉하고 한가하고 평이하고 트인 것, 맑게 즐길 만하고 공교롭고 고운 것이 그다음이다.

설고 졸하고 거칠고 성긴 것, 절뚝이고 껄끄럽고 차고 마른 것, 얕고 속되고 거칠고 잡스러운 것, 쇠하고 약하고 음란하고 나른한 것은 병이다.

무릇 시를 품평하는 이는 먼저 기운과 뼈와 뜻과 격으로 하고 다음으로 말과 소리의 율로 한다. 한 가지 뜻과 격 가운데 그 운의 말이 혹 낫고 못한 한 연이 있어도 아울러 얻은 것은 대개 드물다. 그러므로 품평하는 말도 또한 섞여 같지 않다.

「시격(詩格)」에 이르기를 「구절이 늙되 글자가 속되지 않고, 이치가 깊되 뜻이 잡스럽지 않고, 재주가 마음껏이되 기운이 성내지 않고, 말이 간결하되 일이 어둡지 않아야 바야흐로 풍소(風騷)에 든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승 삼을 만하다.

書命之作,始於畢命冏命。秦改命爲制,改令爲詔,漢因之。周官六辭三曰誥,春秋作而誥絶。元狩六年初作誥,告示大臣曰敎,秦制也。記功曰冊,凡封立用之,或有哀冊,其文辭必簡而典實。魏晉齊梁間,代王言者,其文尙浮縟。唐興元稹,芟繁辭侔古訓,齊澣以古謨誥爲準的,常袞長於除書,楊炎善於德音,皆得制誥體。本朝詞誥古有典則,及睿王代一變華靡,今又三變,皆繁辭虛美,甚者至類俳優戲讚。文懿公撰睿代內外制〔唐制內翰林外中書,本朝內省郞外誥院。〕若干章,目爲本朝制誥規式。

명을 내리는 글은 「필명(畢命)」과 「경명(冏命)」에서 비롯되었다. 진나라가 명(命)을 고쳐 제(制)라 하고 영(令)을 고쳐 조(詔)라 하니 한나라가 그대로 하였다. 「주관(周官)」의 여섯 가지 말 가운데 셋째가 고(誥)인데 「춘추」가 지어지자 고가 끊겼다. 원수(元狩) 육년에 처음 고를 지었다. 대신에게 고하여 보이는 것을 교(敎)라 하니 진나라 제도다. 공을 적는 것을 책(冊)이라 하는데 무릇 봉하고 세울 때 쓴다. 혹 애책(哀冊)도 있는데 그 글은 반드시 간결하고 법도 있고 실하다.

위·진·제·양 사이에 왕의 말을 대신하는 이들은 그 글이 뜬 꾸밈을 숭상하였다. 당나라가 일어나 원진이 번거로운 말을 베어 옛 가르침과 나란히 하였고, 제한은 옛 모(謨)와 고(誥)를 표준으로 삼았고, 상곤은 제서(除書)에 뛰어났고, 양염은 덕음(德音)에 능하였으니 다 제고(制誥)의 체를 얻었다.

이 나라의 사고(詞誥)는 예로부터 법도가 있었는데, 예종 대에 이르러 한 번 화려하고 나른한 데로 변하였고 이제 또 세 번 변하여 다 번거로운 말과 헛된 기림이며, 심한 것은 배우의 놀이 찬사와 비슷한 데까지 이르렀다. 문의공이 예종 대의 안팎 제(制) 몇 장을 가려〔당나라 제도는 안이 한림이고 밖이 중서인데, 이 나라는 안이 성랑(省郞)이고 밖이 고원(誥院)이다.〕 「본조제고규식(本朝制誥規式)」이라 이름 지었다.

漢制帝書有四,曰冊曰制曰詔曰誡勅,唐制王言有七,冊書制書勅書〔今之批答回詔等諸詔,皆勅書。〕勅牒等是。凡拜公相命將曰制,皆用白麻,貞觀中或用黃麻。宣吿百寮,謂之宣麻〔元和初,雙日起草,隻日百寮立班於宣政殿下,舍人奉制,矩步而宣之。〕。本朝一年除拜雖多,合宣一麻。故其制書首末章,皆總論通行,末章以於戲,或以噫字標其首,唯中諸章紀諸公功德,故各異。每章簾律與首尾二章相協,分編作諸公吿身各一通,是爲大官誥。唐誥初用紙或用絹,貞觀後用綾,敎書亦通行,各附其編首。宗室雖大誥,不宣吿廷會,故不預宣麻。舊制樞密僕射八座〔魏隋唐皆以六尙書兩僕射爲八座,今以六尙書左右散騎爲八座。〕,上將竝小官誥。近樞密使始預宣麻,僧官誥視卿相,大小各有差。文懿公所撰中書門下摠省吏兵曹,及行員姓名草押規式,與令文不同,中書所藏宋及遼金三國誥式,亦各異,宜從板本令文。

한나라 제도에 임금의 글이 넷이니 책(冊)·제(制)·조(詔)·계칙(誡勅)이라 하고, 당나라 제도에 왕의 말이 일곱이니 책서·제서·칙서〔지금의 비답(批答)과 회조(回詔) 따위 여러 조서가 다 칙서다.〕·칙첩 따위가 이것이다.

무릇 공(公)과 상(相)을 임명하고 장수를 명하는 것을 제(制)라 하며 다 흰 삼(麻)을 쓰는데, 정관 연간에는 더러 누런 삼을 썼다. 백료에게 펴 알리는 것을 「선마(宣麻)」라 한다.〔원화 초에 짝수 날에 초를 잡고 홀수 날에 백료가 선정전 아래 반열을 서면, 사인이 제(制)를 받들어 반듯한 걸음으로 폈다.〕

이 나라는 한 해에 벼슬을 내리는 것이 비록 많아도 합하여 한 삼을 편다. 그러므로 그 제서의 처음과 끝 장은 다 통틀어 논하여 두루 행하고, 끝 장은 「오호(於戲)」로 혹은 「희(噫)」 자로 그 머리를 표한다. 오직 가운데 여러 장이 여러 공의 공덕을 적으므로 저마다 다르다. 장마다 발과 율이 처음과 끝 두 장과 서로 어울리고, 나누어 엮어 여러 공의 고신(告身)을 각각 한 통씩 만드니 이것이 대관고(大官誥)다.

당나라 고(誥)는 처음에 종이를 쓰거나 깁을 썼는데 정관 뒤에는 능(綾)을 썼다. 교서(敎書)도 또한 두루 행하여 저마다 그 편 머리에 붙였다. 종실은 비록 큰 고라도 조정 모임에서 펴 알리지 않으므로 선마에 끼지 않는다.

옛 제도에 추밀과 복야와 팔좌(八座)〔위·수·당은 다 육상서와 두 복야를 팔좌로 삼았는데, 지금은 육상서와 좌우 산기를 팔좌로 삼는다.〕와 상장은 아울러 작은 관고(官誥)였다. 요즘은 추밀사가 비로소 선마에 끼고, 승관(僧官)의 고는 경상(卿相)에 견주되 크고 작음에 저마다 차등이 있다.

문의공이 지은 중서문하와 총성(摠省)과 이조·병조 및 행원의 성명을 초하고 서명하는 규식은 영문(令文)과 같지 않고, 중서에 간직한 송·요·금 세 나라의 고식(誥式)도 또한 저마다 다르니 마땅히 판본의 영문을 따라야 한다.

元正冬至八關及聖上節日,兩界兵馬諸牧都護府上賀表,下中書,第其高下以牓之。舊時尙州牧,上八關表云:「自葉飛來於漢殿,愧乏雙鳧,聞韶率舞於舜庭,願同百獸。」當時以爲警策,或者言雙鳧,縣令事也,用之牧守頗謬。遷都後辛丑年,八關表云:「衣冠雜遝,新都猶勝於舊都,簫管鏘洋,今樂不殊於古樂。」冬至表云:「在木德盛,更延松麓之帝基,及草仁深,已暢花山之王氣。」一時牓出,二表皆居第一。又元正表云:「璣衡改度,慶凝洛水之新都,玉帛趨朝,禮盛塗山之舊會,又皇風布和,東國農桑之春早,聖日燭遠,北蒙兵革之雪消。」節日表云:「錦江繞郭,爲帝王萬世之都,繡嶺開宮,復歌吹千秋之節。」牓出二表皆居第一。

정월 초하루와 동짓날과 팔관회와 임금의 생신에 양계의 병마사와 여러 목과 도호부가 하례하는 표(表)를 올리면 중서에 내려 그 높낮이를 매겨 방(牓)을 붙인다.

옛날 상주목이 올린 팔관 표에 이르기를,

「섭(葉)에서 날아와 한나라 전각에 이르렀으나 두 오리가 없음이 부끄럽고, 「소(韶)」를 듣고 순임금 뜰에서 춤을 따르니 온갖 짐승과 같기를 바랍니다.」

그때 사람들이 깨우쳐 채찍질하는 것으로 여겼는데, 어떤 이는 두 오리는 현령의 일이니 목사와 수령에게 쓴 것이 자못 그르다고 하였다.

도읍을 옮긴 뒤 신축년 팔관 표에 이르기를,

「의관이 뒤섞여 모이니 새 도읍이 오히려 옛 도읍보다 낫고, 퉁소와 피리가 쟁쟁히 울리니 지금 음악이 옛 음악과 다르지 않습니다.」

동지 표에 이르기를,

「나무의 덕이 성함에 있어 다시 솔 기슭의 제왕의 터를 늘이시고, 풀에 미치는 어짊이 깊어 이미 화산의 왕기를 펴셨습니다.」

한때에 방이 나가니 두 표가 다 첫째에 놓였다.

또 정월 초하루 표에 이르기를,

「기형(璣衡)이 도수를 고치니 경사가 낙수(洛水)의 새 도읍에 엉기고, 옥과 비단이 조정에 달려오니 예가 도산(塗山)의 옛 모임보다 성합니다. 또 임금의 바람이 화기를 펴니 동쪽 나라 농사와 누에의 봄이 이르고, 거룩한 해가 멀리 비추니 북쪽 몽고의 전쟁의 눈이 스러집니다.」

생신 표에 이르기를,

「비단 강이 성을 둘렀으니 제왕 만세의 도읍이 되고, 수놓은 재에 궁궐을 여니 다시 천추의 명절을 노래하고 붑니다.」

방이 나가니 두 표가 다 첫째에 놓였다.

崔宣肅公宗峻,天性淸介。自弱冠從仕,無一犯憲,位侍中爲冢宰十五年,門庭水淨。年方乞退,上賜几杖不朝,輔政如故。尙牧賀冬至狀云:「富貴瀟洒,恬淡剛明,門庭不雜塵埃,奴隷猶爲氷玉。淸威不怒,人皆望而畏之,華態多儀,天然無所飾也。終至一節,弼諧五朝,自從從仕已來,無有有司所劾,四世平章之相繼,莫高今日之蟬冠。十年冢宰之罕聞,況賜平生之鳩杖云云。」公特命狀答云:「廉正無私,忠貞自許。紫袍繼藍袍之遺愛〔其守曾爲書記,任此州。〕,鈴閣尋黃閣之前蹤〔用貞肅公事出上。〕。所聞政理聲,竝重文章價,不遺親舊。枉示寒暄,上洛芳梅,隨使來綠野堂老,中書紅藥無主,待紫薇舍人,宜收製錦之功,直躡演綸之地。」凡宰相答賀狀,例以短簡,文不過一兩行,今此答至悉異常,他州牧莫不聳聽榮之。

최 선숙공 종준은 타고난 성품이 맑고 꼿꼿하였다. 약관에 벼슬을 좇은 뒤로 한 번도 법을 어긴 일이 없었고, 시중의 자리에 올라 총재(冢宰)가 된 지 열다섯 해에 문과 뜰이 물처럼 깨끗하였다. 나이가 물러나기를 빌 때가 되자 임금께서 안석과 지팡이를 내리시고 조회하지 않게 하시되 정사를 돕는 것은 예와 같게 하셨다.

상주목이 동지를 하례하는 장(狀)에 이르기를,

「부귀하시면서 시원스럽고 담박하시면서 굳세고 밝으시니, 문과 뜰에 티끌이 섞이지 않고 종들까지 오히려 얼음과 옥이 되었습니다. 맑은 위엄은 성내지 않으셔도 사람들이 다 바라보고 두려워하며, 화려한 태도에 거동이 많으나 하늘 그대로 꾸미는 바가 없으십니다. 마침내 한 절개에 이르러 다섯 조정을 도와 어울리게 하셨고, 벼슬을 좇으신 이래로 유사(有司)에게 탄핵받은 일이 없으십니다. 사대에 걸친 평장이 잇달았으나 오늘의 매미 갓보다 높은 이가 없고, 열 해의 총재는 드물게 듣는 바이거늘 하물며 한평생의 비둘기 지팡이를 내리심이겠습니까.」

공이 특별히 명하여 장으로 답하여 이르기를,

「청렴하고 바르며 사사로움이 없고 충성되고 곧기를 스스로 다짐하였소. 자줏빛 도포가 쪽빛 도포의 남긴 사랑을 이었고〔그 수령이 일찍이 서기가 되어 이 고을을 맡았다.〕 영각(鈴閣)이 황각(黃閣)의 앞선 자취를 찾는구려.〔정숙공의 일을 쓴 것이니 앞에 나온다.〕 들리는 바 정사의 소리가 문장의 값과 아울러 무겁고, 친하고 오랜 이를 버리지 않는구려. 굽혀 문안을 보내니, 상락의 꽃다운 매화가 사신을 따라 녹야당(綠野堂)의 늙은이에게 오고, 중서의 붉은 작약이 주인이 없어 자미 사인(舍人)을 기다리오. 마땅히 비단 짓는 공을 거두어 곧바로 윤음 짓는 자리를 밟으시오.」

무릇 재상이 하례 장에 답하는 것은 으레 짧은 편지로 하여 글이 한두 줄에 지나지 않는데, 이제 이 답이 지극히 자세하여 예사롭지 않으니 다른 고을 목사들이 귀를 곤두세우고 영예롭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金政堂敞,以金牓第三人,爲晉陽門下上客,日以薦賢助國爲務。無幾何拜相位,連年掌試。同年進士韓惟善登第於門下,是年冬至尙牧賀狀云:「白布登名於成均,牓同牓奈今門生,靑衫爲客於晉陽,公與公竝時相國。」今諸州牧賀表狀,類多模奪舊本,此尙牧表狀,無一二章畵葫蘆,皆卽事但辭不圓熟耳。

김 정당 창은 금방(金榜) 셋째 사람으로 진양공 문하의 상객이 되어 날마다 어진 이를 천거하여 나라를 돕는 것을 일삼았다. 얼마 안 되어 재상 자리에 올라 여러 해 시험을 맡았다. 같은 해 진사 한유선이 그 문하에서 급제하였다.

그해 동짓날 상주목의 하례 장에 이르기를,

「흰 베로 성균에 이름을 올리셨으니 방(牓)이 같은 방인데 이제 문생이 되었고, 푸른 적삼으로 진양에 손이 되셨으니 공과 공이 나란한 때의 상국이십니다.」

요즘 여러 주와 목의 하례 표와 장은 흔히 옛 본을 본떠 빼앗은 것이 많은데, 이 상주목의 표와 장은 한두 장도 조롱박을 본떠 그린 것이 없이 다 그때 일이니 다만 말이 둥글고 익지 못할 뿐이다.

古四六龜鑑,非韓柳則宋三賢。不及此者,以文烈公爲模範可矣。文順公以逸氣豪才,驅文辭必弘長。至於牋表,必約辭短章,不愆簾律。比者蒙古帝,詔責我國,條條意曲。公爲表,不可以一二章敍答,故間或散其辭,而簾律尙存。其後爲蒙古表者,例散其辭,以至讓謝官職者,漸效之,尤爲不法。凡牋表限四六簾對者,欲謙檢而不越也,以辭約義盡爲優。隋唐以前,肆言無簾律,自唐以降,有對儷有簾律,爲對儷荒長尙非禮,況散其辭,而無簾律!是不恭也。予少時嘗頌貞肅公場屋賦,願一效嚬,及登第後,慕林宗庇鄭知常之爲四六,竊欲畵虎焉。迺今反視從前所作,皆生澁荒虛,反類狗也。恨不當時畵鵠於三賢及文烈公,雖未得寫眞,庶可彷彿於𮬾也。

옛 사륙(四六)의 거울은 한유와 유종원이 아니면 송나라 세 어진 이다.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이는 문열공을 본보기로 삼아도 좋다.

문순공은 빼어난 기운과 호방한 재주로 글월을 몰아가면 반드시 크고 길었다. 그러나 전(牋)과 표(表)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말을 간추리고 장을 짧게 하여 발과 율을 어기지 않았다.

요즘 몽고 황제가 조서로 이 나라를 꾸짖는데 조목마다 뜻이 곡진하였다. 공이 표를 지으면서 한두 장으로 펴서 답할 수 없었으므로 사이사이 그 말을 흩었으나 발과 율은 오히려 남았다. 그 뒤에 몽고에 표를 짓는 이들이 으레 그 말을 흩고, 벼슬을 사양하고 사례하는 데까지 점점 그것을 본받으니 더욱 법답지 않다.

무릇 전과 표에 사륙과 발의 짝을 한정하는 것은 겸손히 검속하여 넘지 않으려는 것이니 말이 간결하고 뜻이 다한 것을 나은 것으로 삼는다. 수·당 이전에는 말을 마음껏 하여 발과 율이 없었으나 당나라부터 내려오면서 짝맞춤이 있고 발과 율이 있었다. 짝을 맞추면서 거칠고 긴 것도 오히려 예가 아니거늘 하물며 그 말을 흩어 발과 율이 없는 것이랴. 이는 공손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때 일찍이 정숙공의 과장 부(賦)를 외며 한 번 찡그림을 본받기를 바랐고, 급제한 뒤에는 임종비와 정지상의 사륙을 사모하여 가만히 범을 그리려 하였다. 그런데 이제 도리어 전에 지은 것을 보니 다 설고 껄끄럽고 거칠고 헛되어 도리어 개를 닮았다. 그때 세 어진 이와 문열공에게서 고니를 그리지 않은 것이 한스럽다. 비록 참모습을 그리지는 못하더라도 아마 집오리와 비슷하기는 하였을 것이다.

丁未春,國家因胡宼備禦,以三品官爲鎭撫使,分遣三方。時金壯元之岱,以刑部侍郞,爲東南路按廉使、兼副行,及正朝狀賀鎭撫使云:「鷄人報曉,爭糊楚戶之鷄,鳳詔頒春,催洛荀池之鳳。恭惟懷霸王之略,通天地曰儒。文和文憲之一門積善,必有慶,司業司成之六朔超資,曾無難。朝未收選席之權衡,暮卽授戎門之節鉞,制外威名,二年魚鳥渾相識,安邊功業,萬國笙歌醉太平。」隔兩日除書到,以鎭撫使爲右僕射。金又修狀致賀云:「新詔濕鵶之字,千里而來,前書浴鳳之言,三日乃驗。恭惟才名蓋世,德行絶倫。黃閣四朝,父宰相子宰相,紅牋七世,祖文章孫文章。早躡淸班,歷遷要地,談經璧水,諸老先生無間言。揮翰玉堂,自古詞人難到處。政聲猶在於上洛,簿判尙傳於西垣。不離兩制之榮,便陟九卿之列。提衡選士,春開桃李之門,仗鉞臨戎,夏闢芙蓉之慕。天子已忘於南顧,國人爭徯於中興。果得腥羶彌滿於邇遐,三方盡擾,談笑指揮而鎭定,一境獨完。我勞也旣獨賢,宜賞之以不次。累遷芹泮,氷銜月改而轉淸,尋入栢臺,霜憲風生而更烈〔一年中,累遷祭酒司成知臺僕射。〕。顧重位當先推德,況異人不必徇資?故除光祿大夫,仍帶翰林學士,豈唯賀聖朝之善用?抑亦欣吾道之大行。」此狀雖有推美過實處,其立語敍事精詳。唯萬國笙歌之對,浮誕可笑。

정미년 봄에 나라가 오랑캐 도적을 막기 위하여 삼품 벼슬로 진무사(鎭撫使)를 삼아 세 방면에 나누어 보냈다. 그때 김 장원 지대가 형부시랑으로 동남로 안렴사 겸 부행이 되었다.

정월 초하루에 장으로 진무사를 하례하여 이르기를,

「계인(鷄人)이 새벽을 알리니 다투어 초나라 집의 닭을 붙이고, 봉황 조서가 봄을 반포하니 낙수 순씨 못의 봉황을 재촉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패왕의 지략을 품으시고 하늘과 땅을 통한 것을 유(儒)라 이릅니다. 문화공과 문헌공 한 집안이 선을 쌓았으니 반드시 경사가 있고, 사업(司業)과 사성(司成)을 여섯 달에 뛰어넘으셨으니 일찍이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아침에 아직 인재 뽑는 자리의 저울을 거두지 않으셨는데 저녁에 곧 군문의 절월을 받으셨으니, 밖을 누르는 위엄과 이름에 두 해 동안 물고기와 새가 다 서로 알고, 변방을 편안히 한 공업에 만 나라의 생황과 노래가 태평에 취합니다.」

이틀을 사이에 두고 제서(除書)가 이르러 진무사를 우복야로 삼았다. 김이 또 장을 닦아 하례하여 이르기를,

「새 조서의 젖은 까마귀 글자가 천 리에 왔으니 앞 글의 봉황을 목욕시킨 말이 사흘 만에 들어맞았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재주와 이름이 세상을 덮고 덕과 행실이 뛰어나 견줄 데 없으십니다. 황각(黃閣) 네 조정에 아버지도 재상이요 아들도 재상이며, 붉은 종이 일곱 대에 할아버지도 문장이요 손자도 문장입니다. 일찍이 맑은 반열을 밟고 요긴한 자리를 두루 옮기시니, 벽수(璧水)에서 경을 이야기함에 여러 노선생이 딴말이 없었고, 옥당에서 붓을 휘두름은 예로부터 시인이 이르기 어려운 곳입니다. 정사의 소리가 아직 상락에 남았고 부판(簿判)이 아직 서원(西垣)에 전합니다. 두 제(制)의 영예를 떠나지 않으시고 곧 구경(九卿)의 반열에 오르셨습니다. 저울을 들어 선비를 뽑으시니 봄에 복사와 오얏의 문을 여시고, 절월을 짚고 전쟁에 임하시니 여름에 연꽃의 그리움을 여셨습니다. 천자께서 이미 남쪽 돌아봄을 잊으시고 나라 사람들이 다투어 중흥을 기다립니다. 과연 비린내가 멀고 가까운 데 가득하여 세 방면이 다 시끄러운데, 담소로 지휘하여 눌러 정하시니 한 지경만이 홀로 온전합니다. 나의 수고로움이 이미 홀로 어지시니 마땅히 차례를 뛰어넘어 상 주어야 합니다. 거듭 근반(芹泮)으로 옮기시매 얼음 같은 직함이 달마다 고쳐져 더욱 맑아지고, 이어 백대(栢臺)에 드시매 서릿발 같은 법이 바람을 일으켜 다시 매서워졌습니다.〔한 해 안에 제주·사성·지대·복야로 거듭 옮겼다.〕 돌아보건대 무거운 자리는 마땅히 덕을 먼저 밀어야 하거늘 하물며 남다른 사람은 반드시 자격을 따를 것이 없겠습니까. 그러므로 광록대부를 제수하시고 이어 한림학사를 띠게 하셨으니, 어찌 거룩한 조정이 잘 쓰심을 하례할 뿐이겠습니까. 또한 이 도가 크게 행해짐을 기뻐합니다.」

이 장은 비록 아름다움을 밀어 올린 것이 실상을 지나친 데가 있으나 그 말을 세우고 일을 편 것이 정밀하고 자세하다. 오직 「만 나라의 생황과 노래」라는 짝만은 뜬 허풍이라 우습다.

世以四六詩文爲別,或云「某工詩,某工文,某工四六,而不可兼得」。是未入文章之室者,各從門戶窺一班之說耳。大手之下無施不可,豈別有工拙哉?況四六非別出於文,蓋魏晉間著述者,爲文上長,欲其覽之易也,章分句斷騈四儷六,以爲牋表啓狀。此亦文之爲耦對者,後因變爲簾角音律之賦行於場屋,欲試其代言奏章之才也。如代王言,雖散辭無對亦可。今人以四六別作一家,鈔摘古人語多至七八字,或十餘字,幸得其對,自以爲工。了無自綴之語,況敢有新意耶?眉叟以林宗庇崑崙岡上之對,戴於破閑,吾不取焉。及第柳和流南島,寄京洛諸友云:「風生震澤,雨入松江,帆初飽漸肥之水,雪擁藍關,雲橫秦嶺,馬不前何在之家。」秉筆小兒樂其體效之。由是辭蔓,而不精實,意迃而不眞切。以至入翰林詞疏於佛天者,例以繁言蕪辭,非特辭語繁蕪,或臆論佛神報應,國家災祥,戎狄指趣,以敍事弘長,爲己之才,是欺佛妄人也。古人詞疏,必以言約者,豈其才不足爲弘長?蓋去浮虛取悃愊,表宣事由而已,作者愼之。

세상에서는 사륙과 시와 글을 갈라 놓고 더러 「아무개는 시에 공교롭고 아무개는 글에 공교롭고 아무개는 사륙에 공교로우니 아울러 얻을 수 없다」고 한다. 이는 문장의 방에 들지 못한 이가 저마다 문틈으로 한 조각을 엿본 말일 뿐이다. 큰 솜씨 아래에서는 베풀어 안 되는 것이 없으니 어찌 따로 공교롭고 졸함이 있겠는가.

하물며 사륙은 글에서 따로 나온 것이 아니다. 대개 위·진 사이에 짓는 이들이 글을 길게 하되 보기 쉽게 하려고 장을 나누고 구를 끊어 넉 자와 여섯 자를 나란히 하여 전·표·계·장으로 삼은 것이다. 이 또한 글이 짝을 이룬 것인데, 뒤에 변하여 발의 모와 음률의 부(賦)가 되어 과장에 행해졌으니 그 말을 대신하고 장을 아뢰는 재주를 시험하려 한 것이다. 왕의 말을 대신하는 것 같으면 비록 말을 흩어 짝이 없어도 또한 괜찮다.

지금 사람들은 사륙을 따로 한 집안으로 삼아, 옛사람의 말을 베껴 뽑되 많으면 일고여덟 자에서 열 남짓 자에 이르고, 다행히 그 짝을 얻으면 스스로 공교롭다 여긴다. 도무지 제가 엮은 말이 없으니 하물며 감히 새 뜻이 있겠는가.

미수가 임종비의 「곤륜강 위」라는 짝을 「파한집」에 실었으나 나는 취하지 않는다.

급제한 유화가 남쪽 섬에 귀양 가 서울의 여러 벗에게 부쳐 이르기를,

「바람은 진택(震澤)에서 일고 비는 송강(松江)에 드니 돛이 처음 점점 살찌는 물에 배부르고, 눈은 남관(藍關)을 안고 구름은 진령(秦嶺)에 비끼니 말이 나아가지 않는데 집이 어디인가.」

붓 잡은 어린아이들이 그 체를 즐겨 본받았다. 이로 말미암아 말이 덩굴지고 정밀하고 실하지 않으며, 뜻이 에두르고 참되고 절실하지 않게 되었다.

한림에 들어 부처와 하늘에 사소(詞疏)를 짓는 이에 이르러서는 으레 번거로운 말과 거친 글을 쓴다. 다만 말이 번거롭고 거칠 뿐 아니라, 더러는 부처와 신의 응보와 나라의 재앙과 상서와 오랑캐의 뜻을 억측으로 논하여 일을 펴 크고 길게 하는 것으로 제 재주를 삼으니, 이는 부처를 속이고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옛사람의 사소가 반드시 말을 간결히 한 것은 어찌 그 재주가 크고 길게 하기에 모자라서였겠는가. 대개 뜬 헛것을 버리고 정성을 취하여 일의 까닭을 펴 알릴 뿐이니, 짓는 이는 삼갈 일이다.

嘗讀文烈公集,見大覺國師碑。師以王子求出家,如宋問道,得賢首達摩天台慈恩南山等五宗法門。至泗上,禮僧伽塔天竺寺,禮觀音像皆放光明。北遼天祐帝聞其名,送大藏經諸宗疏鈔六千九百餘卷。燕京法師雲諝,高昌國闍梨尸羅嚩底,亦皆以策書法服爲問。遼人來聘者皆請見。吾使入遼,則必問師安否,日本人求師碑誌,其爲異國所尊如此。師餘力外學經史百子,皆尋其根柢,率爾落筆,文辭平淡而有味。今得數詩嘗味之,文烈公平淡之言,信哉!到飛來方丈,禮普德聖師云:「涅槃方等敎,傳授自吾師,兩聖橫經日〔元曉義相,受涅槃維摩經於師。〕,高僧獨步時。隨緣任南北,在道勿迎隨。可惜飛房後,東明古國危〔師本句高麗盤龍寺沙門,飛房至百濟孤大山。後神人見於句高麗馬嶺,吿人曰:「汝國敗無日。」〕。」題錦石庵云:「老苔斑似錦,瑞石列如屛。時有高僧倚,長眠養性靈。」題龍巖院云:「踏盡殘花上翠微,徘徊瞻景欲忘歸。他年若也酬前志,高臥烟霞與世違。」

일찍이 문열공의 문집을 읽다가 「대각국사 비」를 보았다. 스님은 왕자로서 출가하기를 구하여 송나라에 가서 도를 물어 현수(賢首)·달마·천태·자은·남산 등 다섯 종파의 법문을 얻었다. 사수(泗水) 가에 이르러 승가탑에 예배하고 천축사에서 관음상에 예배하니 다 빛을 놓았다.

북쪽 요나라 천우제가 그 이름을 듣고 대장경과 여러 종파의 소초(疏鈔) 육천구백여 권을 보냈다. 연경의 법사 운서와 고창국의 사리(闍梨) 시라바티도 또한 다 책과 법복으로 문안하였다. 요나라에서 사신으로 오는 이가 다 뵙기를 청하였고, 이 나라 사신이 요나라에 들어가면 반드시 스님의 안부를 물었으며, 일본 사람이 스님의 비지(碑誌)를 구하였으니 다른 나라에 높임을 받은 것이 이와 같았다.

스님은 남은 힘으로 밖으로 경서와 사기와 백가를 배워 다 그 뿌리와 밑동을 찾았고, 문득 붓을 내리면 글월이 평담하면서 맛이 있었다. 이제 시 몇 편을 얻어 맛보니 문열공이 평담하다 한 말이 참으로 미덥다.

비래방장에 이르러 보덕 성사에게 예배하며 이르기를,

열반과 방등의 가르침을 우리 스승에게서 전해 받았네. 두 성인이 경을 가로놓던 날이요〔원효와 의상이 스님에게 「열반경」과 「유마경」을 받았다.〕 높은 스님이 홀로 걷던 때로다. 인연을 따라 남북에 맡기고 도에 있어 맞고 따름이 없네. 아깝구나, 방을 날려 옮긴 뒤에 동명의 옛 나라가 위태로워졌네.〔스님은 본디 고구려 반룡사의 사문인데 방을 날려 백제 고대산에 이르렀다. 뒤에 신인이 고구려 마령에 나타나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희 나라가 패망할 날이 멀지 않다」 하였다.〕

금석암에 제하여 이르기를,

늙은 이끼는 얼룩져 비단 같고 상서로운 돌은 벌여 서서 병풍 같네. 때로 높은 스님이 기대어 길이 잠들어 성령을 기르네.

용암원에 제하여 이르기를,

남은 꽃을 다 밟고 푸른 산에 오르니 서성이며 경치를 보다 돌아가기를 잊으려 하네. 다른 해에 만약 앞서의 뜻을 갚는다면 안개와 노을에 높이 누워 세상과 등지리라.

無㝵智國師戒膺,講道外游刃於文章。睿王邀入大內苦請留,師作詩云:「聖勅嚴明辭未得,巖猿松鶴別江東。多年幸免魚吞餌,一旦翻爲鳥在籠。無限旅愁宮裡月,有時歸夢洞中風。不知何日君恩報,瓶錫重回對碧峯。」卽往太白山卜居將終焉。上復遣使徵之,屢詔不受。

무애지국사 계응은 도를 강하는 밖에 문장에도 칼날을 놀렸다. 예종이 맞아 대궐 안에 들이고 머물기를 괴로이 청하니 스님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거룩한 칙명이 엄하고 밝아 사양하지 못하니 바위의 잔나비와 솔의 학이 강동과 이별하네. 여러 해 다행히 물고기가 미끼 삼킴은 면하였더니 하루아침에 도리어 새가 조롱에 든 것이 되었네. 가없는 나그네 시름은 궁궐 속의 달이요 때로 돌아가는 꿈은 골 안의 바람이로다. 알지 못하겠구나, 어느 날 임금의 은혜를 갚고 병과 지팡이로 거듭 돌아가 푸른 봉우리를 마주할지.

곧 태백산으로 가 살 곳을 잡고 장차 거기서 마치려 하였다. 임금이 다시 사신을 보내 부르셨으나 여러 번 조서에도 받지 않았다.

大鑑國師坦然,筆蹟精妙,詩格高淡,所過多題詠。三角山文殊寺詩曰:「一室何寥廓,萬緣俱寂寞。路穿石罅通,泉透雲根落。皓月掛簷楹,凉風動林壑。誰從彼上人,淸坐學眞樂。」作四威儀頌,寄宋朝介諶禪師,師見而奇之,卽以衣鉢遙傳之。安信居士住毗琴山白雲庵,師嘗訪之題詩于板。後有人竊此詩板欲去,已到山下,玄風官吏逆知之,收在官府。不知其眞蹟今在否。

대감국사 탄연은 붓 자취가 정밀하고 묘하며 시격이 높고 담박하여 지나는 곳마다 제하여 읊은 것이 많았다.

삼각산 문수사 시에 이르기를,

한 방이 어찌 이리 텅 비고 넓은가 온갖 인연이 다 고요하네. 길은 돌 틈을 뚫고 통하고 샘은 구름 뿌리를 새어 떨어지네. 흰 달은 처마 기둥에 걸리고 서늘한 바람은 숲과 골을 흔드네. 누가 저 상인(上人)을 좇아 맑게 앉아 참 즐거움을 배우랴.

「사위의송(四威儀頌)」을 지어 송나라 개심 선사에게 부치니, 선사가 보고 기이하게 여겨 곧 옷과 바리를 멀리서 전하였다.

안신거사가 비금산 백운암에 살 때 스님이 일찍이 찾아가 판에 시를 제하였다. 뒤에 어떤 사람이 이 시판을 훔쳐 가려다 이미 산 아래에 이르렀는데, 현풍의 아전이 미리 알아채고 거두어 관부에 두었다. 그 참 자취가 지금도 있는지 알지 못한다.

龜山曇秀禪師,與郭璵處士,金洪兩學士〔富轍洪瓘。〕等,爲文會之交。時睿王幸西都,郭金洪皆扈駕,唯曇秀不得詣行在。有詩寄云:「靑雲二學士,白日一仙翁。竝筆巡遊下,連裾扈從中。大同楊柳雨,長樂牧丹風。應製多佳句,聯篇寄驛筒。

구산의 담수 선사는 곽여 처사와 김·홍 두 학사〔부철과 홍관이다.〕 등과 글 모임의 사귐을 맺었다. 그때 예종이 서도에 거둥하시매 곽과 김과 홍이 다 어가를 따랐는데 오직 담수만 행재소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시가 있어 부쳐 이르기를,

푸른 구름의 두 학사요 흰 해의 한 신선 늙은이로다. 붓을 나란히 하여 순행 아래 있고 옷자락을 이어 호종 가운데 있네. 대동강의 버들에 비 오고 장락궁의 모란에 바람 부네. 응제(應製)에 아름다운 구절이 많으리니 편을 이어 역참 통에 부쳐 주오.

僧無已,自號大昏子,隱居智異山,餘三十年,不釋一衲。每冬夏入山不出,卷肚皮在帶索中。春秋鼓肚遊山,日食三四斗,一坐必浹旬,起行則朗吟山偈。山四面七十餘庵,一庵每宿輒留一偈。無住庵詩曰:「此境本無住,何人起此堂。唯餘無已者,去住兩無妨。」語若疎易,而寄意高深,殆寒拾之流歟。

무이(無已)라는 스님은 스스로 「대혼자(大昏子)」라 부르며 지리산에 숨어 산 지 서른 해 남짓, 한 벌 누비옷을 벗지 않았다. 겨울과 여름마다 산에 들어 나오지 않고 뱃가죽을 말아 띠 끈 속에 넣어 두었다. 봄과 가을에는 배를 두드리며 산에 노니는데, 하루에 서너 말을 먹고 한 번 앉으면 반드시 열흘이 넘었으며 일어나 다니면 낭랑히 산의 게송을 읊었다.

산 네 면에 암자가 일흔 남짓인데 한 암자에 묵을 때마다 문득 게송 하나를 남겼다.

무주암 시에 이르기를,

이 지경은 본디 머묾이 없거늘 어떤 사람이 이 집을 세웠는가. 오직 무이(無已)라는 자만 남아 가고 머묾이 둘 다 거리낌 없네.

말이 성기고 쉬운 듯하나 뜻을 부친 것이 높고 깊으니 아마 한산과 습득의 무리인가.

國初有亡名士,隱居智異山,操行高潔,不涉人間事。上聞之請迎,謝曰:「外臣無所知,王命不可容易受。」卽閉房不出。排戶入視之,壁上唯書一句曰:「一片絲綸來入洞,始知名字落人間。」跡之,從北牖而遁,眞隱者也。

나라 처음에 이름을 잃은 선비가 있어 지리산에 숨어 살았는데, 지조와 행실이 높고 깨끗하여 사람 세상 일에 건너지 않았다. 임금께서 들으시고 청하여 맞으려 하니 사양하여 말하였다. 「밖의 신하는 아는 바가 없으니 왕명을 쉽게 받을 수 없습니다.」 곧 방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문을 밀치고 들어가 보니 벽 위에 오직 한 구절만 적혀 있었다.

한 조각 실 같은 명령이 골에 들어오니 비로소 이름이 사람 세상에 떨어진 줄 알겠네.

자취를 밟으니 북쪽 창으로 달아난 것이었다. 참으로 숨은 이였다.

鄭參政國儉知南原,日嘗行春屬邑,過原川洞,洞左石壁上有松林寺僧正思,大書一絶曰:「古佛巖前水,哀鳴復嗚咽。應恨到人間,永與雲山別。」翌日與老儒梁積中,連鑣尋訪,結爲山水友。後每論人物,必以正思爲詩僧中龍。

정 참정 국검이 남원을 맡았을 때 어느 날 봄에 속읍을 돌다가 원천동을 지났다. 골 왼쪽 돌벼랑 위에 송림사 스님 정사(正思)가 크게 쓴 절구 하나가 있었다.

옛 부처 바위 앞의 물이여 슬피 울고 다시 목메네. 응당 사람 세상에 이른 것을 한하여 길이 구름 낀 산과 이별하는구나.

이튿날 늙은 선비 양적중과 함께 말고삐를 나란히 하여 찾아가 산수의 벗을 맺었다. 뒤에 인물을 논할 때마다 반드시 정사를 시 짓는 스님 가운데 용이라 하였다.

檜巖寺有圓鏡國師手蹟,在南樓東西壁,及客室西偏小樓間。寺僧云:「大定甲午歲西都叛時,大金使至國朝。患西北路梗,從春州路導送。一行擧入寺,禮像設訖聚觀書。一人曰:「貴人筆也?」,一人曰:「此山人書,蔬笋之氣頗存。」時有僧統宗呂,在其傍以實吿,二人皆喜其言中。」乃題詩曰:「王子膏粱氣半存,山僧蔬笋尙餘痕。顚張醉素無全骨,却恨當年許作髡。」

회암사에 원경국사의 손자취가 있는데 남쪽 누각 동서 벽과 객실 서쪽 편 작은 누각 사이에 있다. 절의 스님이 말하였다.

「대정(大定) 갑오년에 서도가 반란했을 때 대금(大金)의 사신이 이 나라에 이르렀습니다. 서북 길이 막힌 것을 근심하여 춘주 길을 따라 인도해 보냈는데, 일행이 다 절에 들어와 불상에 예를 마치고 모여서 글씨를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귀한 사람의 붓입니까』 하고, 한 사람이 『이는 산 사람의 글씨입니다. 나물과 죽순의 기운이 자못 남아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때 승통 종려가 그 곁에 있다가 사실대로 알리니, 두 사람이 다 그 말이 맞은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이에 시를 제하여 이르기를,

왕자의 기름진 기운이 반은 남았고 산승의 나물과 죽순도 아직 자취가 남았네. 미친 장욱과 취한 회소도 온전한 뼈가 없으니 도리어 한하노라, 그해에 머리 깎기를 허락한 것을.

毅王近聲色好遊豫。文忠肅公克謙,時爲正言,上疏切諫之,不從。及庚寅秋,武臣構亂,乘輿南遷。癸巳冬,定山縣維鳩驛,新修公館畢,請工施壁彩,工當時妙手,姓朴亡名〔今其驛,吏具言事實。〕。寢宇西壁間,畵一白衣着笠乘馬者,緣山路信轡徐驅。物色凄然,其童僕相携持轉行。人見之,皆不知是何圖。後松廣社無衣子,壬午秋,受請領道侶千餘人,將赴西原,抵宿此驛,見之咨嗟良久曰:「此是諫臣去國圖。」乃題詩曰:「壁上何人畵此圖,諫臣去國事幾乎。山僧一見尙惆悵,何況當塗士大夫。」噫!畵工之感前事寫此圖,禪師之識舊畵留此詩,與古風雅君子無異也。後有二過客,次韻書壁曰:「曲堗言前不早圖,焦頭後悔可追乎。何人畵此諫臣去,滿壁淸風激懶夫。」次曰:「白衣黃帶諫臣圖,是屈原乎微子乎。未正君非空去國,不須毫底費土夫。

의종이 소리와 빛깔을 가까이하고 놀이를 좋아하였다. 문충숙공 극겸이 그때 정언(正言)으로 있으면서 상소하여 간절히 간하였으나 따르지 않으셨다. 경인년 가을에 이르러 무신이 난을 얽어 임금의 수레가 남쪽으로 옮겨졌다.

계사년 겨울에 정산현 유구역의 새 공관을 다 고치고 장인을 청하여 벽에 채색을 하게 하였는데, 장인은 그때의 묘한 솜씨로 성이 박씨이고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지금 그 역의 아전이 사실을 갖추어 말하였다.〕

침실 서쪽 벽 사이에 흰옷을 입고 삿갓을 쓰고 말을 탄 이가 산길을 따라 고삐를 놓아 천천히 가는 것을 그렸다. 물색이 처연하고 그 아이 종들이 서로 붙들고 돌아가며 걷는다. 사람들이 보아도 다 무슨 그림인지 알지 못하였다.

뒤에 송광사의 무의자가 임오년 가을에 청을 받아 도반 천여 명을 거느리고 장차 서원(西原)으로 가려다 이 역에 이르러 묵으며 그것을 보고, 한참을 탄식하고 말하였다. 「이는 간하는 신하가 나라를 떠나는 그림이다.」

이에 시를 제하여 이르기를,

벽 위에 어떤 사람이 이 그림을 그렸는가 간하는 신하가 나라를 떠나니 일이 거의 되었구나. 산승도 한 번 보고 오히려 서글픈데 하물며 길에 나선 사대부이랴.

아아, 화공이 지난 일에 느껴 이 그림을 그리고 선사가 옛 그림을 알아보아 이 시를 남긴 것은 옛 풍아(風雅)의 군자와 다름이 없다.

뒤에 두 나그네가 있어 차운하여 벽에 써 이르기를,

굽은 굴뚝의 말이 있기 전에 일찍 꾀하지 않았으니 머리를 그을린 뒤에 뉘우친들 따라잡을 수 있으랴. 어떤 사람이 이 간하는 신하 떠남을 그렸는가 벽에 가득한 맑은 바람이 게으른 사내를 격동시키네.

다음은,

흰옷에 누런 띠는 간하는 신하의 그림이니 이는 굴원인가 미자인가. 임금의 그름을 바로잡지 못하고 헛되이 나라를 떠났으니 붓 끝에 사대부를 허비할 것 없네.

惠文禪師天壽寺詩云:「路長門外人南北,松老巖邊月古今。」天龍寺云:「地泮花新意,氷消水舊聲。」繩鞋云:「中靑藍畝錯,邊白雪城環。」松巖月句,盜鄭舍人石頭松老一片月,此宿盜也,人莫能擒。

혜문 선사의 「천수사」 시에 이르기를,

길이 길어 문 밖에 사람이 남북이요 솔이 늙어 바위 가에 달이 예와 이제로다.

「천룡사」에 이르기를,

땅이 풀리니 꽃이 뜻을 새로이 하고 얼음이 녹으니 물이 옛 소리를 내네.

「미투리」에 이르기를,

가운데 푸른 것은 쪽밭이 섞인 듯하고 가장자리 흰 것은 눈 성이 두른 듯하네.

「솔과 바위의 달」 구절은 정 사인의 「돌머리에 솔이 늙고 한 조각 달」을 훔친 것이니, 이는 묵은 도둑이라 사람이 능히 잡지 못한다.

開泰寺僧統守眞,學博識精,奉勅勘大藏經正錯,如素所親譯。河直講千旦作詩,幷以芥子一帒見寄。師卽次韻答之曰:「芥子吾宗所極論,須彌巨海摠能呑。惠來經榻知何意,卽事談玄報佛恩。」眞老宿道談,今爲五敎都僧統。

개태사 승통 수진은 배움이 넓고 식견이 정밀하여, 칙명을 받들어 대장경의 바르고 틀림을 살피는데 마치 본디 몸소 번역한 것 같았다.

하 직강 천단이 시를 짓고 아울러 겨자씨 한 자루를 보냈다. 스님이 곧 차운하여 답하여 이르기를,

겨자씨는 우리 종문에서 지극히 논하는 바이니 수미산과 큰 바다를 모두 능히 삼키네. 경 책상에 은혜로이 보내신 것은 무슨 뜻인지 곧 일에 나아가 현묘함을 말하여 부처의 은혜를 갚으리.

참으로 노숙한 도의 이야기다. 지금은 오교(五敎) 도승통이 되었다.

知識沖歲,初以南省亞元,籍金閨,卽脫身往松廣社修眞。晉陽公爲知奏事,時因中使往江南者,以書遺茶香及楞嚴經。使將還,請書欲報公,師曰:「予以絶俗,何修書往復爲?」使强迫之,且以詩贈,師卽次韻云:「瘦鶴靜翹松頂月,閑雲輕逐嶺頭風。箇中面目同千里,何更新翻語一通。」卒不以書答。此眞謝世道人,雅尙不似今之以山林,爲名敎捷徑者。

지식(知識) 충세는 처음 남성(南省)의 아원(亞元)으로 금규(金閨)에 이름을 올리고는 곧 몸을 빼어 송광사로 가 참을 닦았다.

진양공이 지주사(知奏事)로 있을 때 강남으로 가는 중사(中使) 편에 글로 차와 향과 「능엄경」을 보냈다. 사신이 장차 돌아가려 하면서 글을 청하여 공에게 답하려 하니 스님이 말하였다. 「내가 세속을 끊었는데 어찌 글을 닦아 오가게 하겠는가.」

사신이 굳이 다그치고 또 시를 주니 스님이 곧 차운하여 이르기를,

여윈 학은 고요히 솔 꼭대기의 달에 발을 들고 한가한 구름은 가벼이 재 머리의 바람을 좇네. 그 가운데 낯과 눈이 천 리에 한가지이니 어찌 다시 새로 말 한 통을 뒤치랴.

끝내 글로 답하지 않았다. 이는 참으로 세상을 사양한 도인이니, 아담히 숭상함이 요즘 산림을 명교(名敎)의 지름길로 삼는 이들과 같지 않다.

修禪社卓然師,宰相之子,筆法絶倫。甲辰春自京師還江南,道過鷄龍山下一村,見有鵲栖于樹,體皓臆丹尾黔。居民長福云:「此鵲來巢已七年矣。其雛每歲爲土梟所食,呼訴不已。哀感所鍾,一年頭始白,二年頭盡白,三年體渾白。及今年幸免其厄,尾漸還黑。」然師異之,語同社天英師,師曰:「噫!此所謂禽頭人也。」迺作詩曰:「怨氣積頭成雪嶺,血痕沾臆化丹田。渠如不惱他家子,四海霜毛一日玄。」英師爲晉陽公所縻住,斷俗爵,禪師時年三十餘。

수선사의 탁연 스님은 재상의 아들로 필법이 뛰어나 견줄 데가 없었다. 갑진년 봄에 서울에서 강남으로 돌아오다가 길에 계룡산 아래 한 마을을 지나는데, 까치가 나무에 깃들인 것을 보니 몸이 희고 가슴이 붉고 꼬리가 검었다.

사는 백성 장복이 말하였다. 「이 까치가 와서 둥지를 튼 지 이미 일곱 해입니다. 그 새끼가 해마다 수리부엉이에게 먹혀 부르짖어 하소연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슬픔이 맺힌 바로, 한 해에는 머리가 비로소 희어지고 두 해에는 머리가 다 희어지고 세 해에는 몸이 온통 희어졌습니다. 올해에 이르러 다행히 그 액을 면하니 꼬리가 점점 검은빛으로 돌아옵니다.」

스님이 기이하게 여겨 같은 절의 천영 스님에게 말하니 스님이 말하였다. 「아아, 이것이 이른바 새 머리의 사람이다.」

이에 시를 지어 이르기를,

원망하는 기운이 머리에 쌓여 눈 덮인 재를 이루고 피 자국이 가슴을 적셔 붉은 밭이 되었네. 그가 만약 남의 집 자식을 괴롭히지 않았더라면 사해의 서리 같은 털이 하루에 검어지리.

영 스님은 진양공에게 매여 머무르며 속세의 벼슬을 끊었다. 선사는 그때 나이 서른 남짓이었다.

權學士適入中朝擢甲科。天子嘉之,直除華貫,使楊球書官誥,粧以玉軸金鈴賜之。明年表請還,帝許之。將行,相者曰:「君才高命薄,年不過四十,位不逾四品。宜頌大乘經以資算祿。」學士心然之,約三日了誦法華。帝呼前令誦,無一字錯謬。帝乃嘉嘆,賜觀音像一幀,法華書塔一幀。學士有二男一女,女卽吾祖母也。觀音像吾祖家傳之,長子權公敦禮傳官誥。次子爲浮屠,而傳法華塔,卽沒,此塔流傳方外人無知在。予守上洛時,新修米麵社,請萬德山道侶設會。一日昏時,忽有老僧持法華塔,到門通謁云:「吾是權學士內孫,與使君連戚。自吾傳此塔秘之久矣,聞君創蓮社,故來獻之。」時道侶適至鈴齋,萬德社主天因在其中,聞之驚愕,歎未曾有,乃作詩讚云:「如來昔在靈鷲山,蓮華妙法三周宣。是時寶塔從地湧,古佛讚歎何殷虔。何人幻八筆三昧,寫出塔相尤精姸。金言六萬九千字,字字蠕蠕如蟻旋。鵝溪一幅高半丈,想見高出須彌巓。問渠何處得此本,流落南州今幾年。答言學士學西宋,三日專精誦七篇。玉皇案前試聽誦,一瀉流水聲泠然。意將多寶同證聽,寵賜此塔嘉其賢。一從學士上仙去,置在僧舍無人傳。嗟哉使君偶自致,此事荒怪誰能詮。樹下探環認羊子,甕中覓畵知永禪。那知今人是昔人,宿願未滿猶在纒。故於此法彌篤信,願創蓮社功垂圓。龍天亦發歡喜心,靈貺仍將舊物還。由來外物非我有,自有眞宰專其權。得之何樂失何慼,過眼變化如風烟。君看此塔別有屬,地轉天回曾不遷。」師年十七擢進士科,旋入賢關,其年冬考藝爲第一生。卽謝世投萬德社剃髮,道行日進,爲一家之法。

권 학사 적이 중조(中朝)에 들어가 갑과에 뽑혔다. 천자가 아름답게 여겨 곧바로 화려한 벼슬을 제수하고, 양구에게 관고(官誥)를 쓰게 하여 옥 축과 금 방울로 꾸며 내리셨다.

이듬해 표를 올려 돌아가기를 청하니 황제가 허락하셨다. 장차 떠나려 할 때 관상 보는 이가 말하였다. 「그대는 재주가 높으나 명이 엷어 나이가 마흔을 넘지 못하고 자리가 사품을 넘지 못하겠소. 마땅히 대승경을 외어 셈과 녹을 도우시오.」

학사가 마음에 그렇게 여겨 사흘을 기약하고 「법화경」을 다 외웠다. 황제가 앞으로 불러 외게 하니 한 글자도 틀림이 없었다. 황제가 이에 아름다이 여겨 감탄하고 관음상 한 폭과 법화서탑(法華書塔) 한 폭을 내리셨다.

학사에게 두 아들과 한 딸이 있었는데 딸이 곧 나의 할머니다. 관음상은 우리 할아버지 집에 전하였고 맏아들 권공 돈례가 관고를 전하였다. 둘째 아들은 승려가 되어 법화탑을 전하였는데 곧 죽으니, 이 탑이 흘러 전하여 세상 밖 사람에게 있는 줄 아는 이가 없었다.

내가 상락을 지킬 때 미면사(米麵社)를 새로 고치고 만덕산 도반을 청하여 모임을 베풀었다. 하루는 어스름에 홀연 늙은 스님이 법화탑을 지니고 문에 이르러 뵙기를 청하며 말하였다. 「나는 권 학사의 내손(內孫)이니 사군과 겨레로 이어집니다. 내가 이 탑을 전해 받은 뒤로 감춘 지 오래인데, 그대가 연사(蓮社)를 세웠다는 말을 듣고 왔으므로 이를 바칩니다.」

그때 도반이 마침 영재(鈴齋)에 이르렀는데 만덕사 사주 천인이 그 가운데 있었다. 이를 듣고 놀라 일찍이 없던 일이라 감탄하고 이에 시를 지어 기려 이르기를,

여래께서 옛날 영취산에 계실 때 연화의 묘한 법을 세 바퀴로 펴셨네. 이때 보배 탑이 땅에서 솟으니 옛 부처가 찬탄함이 어찌 그리 간절하고 정성스러웠던가. 어떤 사람이 여덟 가지 붓 삼매를 홀려 내어 탑의 모습을 그려 냄이 더욱 정교하고 고운가. 금 같은 말씀 육만 구천 자가 글자마다 꿈틀꿈틀 개미가 도는 듯하네. 아계(鵝溪) 한 폭이 높이가 반 길이니 수미산 꼭대기보다 높이 솟은 것을 보는 듯하네. 그에게 묻노니 어디서 이 본을 얻었으며 남쪽 고을에 흘러든 지 이제 몇 해인가. 답하기를, 학사가 서쪽 송나라에서 배울 때 사흘을 오로지 정성으로 일곱 편을 외웠네. 옥황의 책상 앞에서 외는 것을 시험 삼아 들으시니 쏟아지는 흐르는 물처럼 소리가 맑았네. 뜻은 장차 다보(多寶)와 함께 증명하여 들으려 하심이라 이 탑을 총애로 내려 그 어짊을 아름답게 여기셨네. 한 번 학사가 신선이 되어 올라간 뒤로 절집에 두어 전하는 사람이 없었네. 아아, 사군이 우연히 스스로 이르렀으니 이 일이 황당하고 괴이하여 누가 능히 풀이하랴. 나무 아래서 고리를 더듬어 양자(羊子)를 알아보고 항아리 속에서 그림을 찾아 영선사(永禪師)를 알았네. 어찌 알랴, 지금 사람이 곧 옛사람이요 묵은 소원이 차지 않아 아직도 얽매여 있음을. 그러므로 이 법에 더욱 도타이 믿어 연사를 세워 공이 원만하기를 바라네. 용과 하늘도 또한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 신령한 내림으로 이어 옛 물건을 돌려주었네. 예로부터 밖의 물건은 내 것이 아니요 절로 참 주인이 있어 그 권한을 오로지하네. 얻었다 무엇이 즐겁고 잃었다 무엇이 슬프랴 눈을 스쳐 변하는 것이 바람과 연기 같네. 그대는 보라, 이 탑이 따로 속한 데가 있어 땅이 구르고 하늘이 돌아도 일찍이 옮기지 않았음을.

스님은 나이 열일곱에 진사과에 뽑히고 곧 현관(賢關)에 들어 그해 겨울에 예(藝)를 시험하여 첫째 학생이 되었다. 곧 세상을 사양하고 만덕사에 던져 머리를 깎았는데, 도의 행실이 날로 나아가 한 집안의 법이 되었다.

尹直講于一曰:「僧家詩格有三。語涉經論偈頌體,謂之豆湯痕,好作生酸語,謂之捨水滴〔僧家飯訖,洗鉢水名捨水。〕,立語寒枯,謂之蔬笋氣。」西伯寺僧統時義,李史館允甫之舍弟也,兄許其能詩。嘗住歸正寺,寺莊有陶工。安戎太守求瓦罇缸,師以詩寄之曰:「之二物身是瓦,父於土母於火。生與麴生善器使無不可,堅貞不似鴟夷滑。飽則坐飢則臥,空洞皤腹容聖賢。平生可與陶寫,宜當錦筵奉豪士。何抵死隨我。山僧一瓢計已足,用無處何汝借。況今酒禁日來急,無物充汝餓,設茶湯欲供汝兮,恐汝未慣喉吻不得過。汝於天地間唯口腹耳,珍重乎不我捨。似聞戎城太守來,萬戶流涎飮新化,果酌芳恩慰民渴,公餘樂賓傾玉斝。噫汝幸生天下無事時,往與賢太守,飮無何醉太平樂長暇。」此詩雖使尹公見之,必無三格之譏。

윤 직강 우일이 말하였다. 「승가(僧家)의 시격에 셋이 있다. 말이 경론의 게송체에 걸치는 것을 『콩국 자국(豆湯痕)』이라 하고, 설고 신 말 짓기를 좋아하는 것을 『사수 방울(捨水滴)』이라 하고〔승가에서 밥을 마치고 바리를 씻은 물을 사수라 한다.〕, 말을 세운 것이 차고 마른 것을 『나물과 죽순의 기운(蔬笋氣)』이라 한다.」

서백사 승통 시의는 이사관 윤보의 아우인데 형이 그가 시에 능함을 인정하였다. 일찍이 귀정사에 머물렀는데 절의 농장에 옹기장이가 있었다. 안융 태수가 기와 술독과 항아리를 구하니 스님이 시로 부쳐 이르기를,

이 두 물건은 몸이 기와요 아비는 흙이요 어미는 불이라. 누룩 선생과 잘 지내어 그릇으로 쓰이니 안 될 것이 없고 굳고 곧아 치이자(鴟夷)의 미끄러움과 같지 않네. 배부르면 앉고 주리면 누우며 텅 빈 불룩한 배에 성현을 담네. 한평생 더불어 마음을 풀 만하니 마땅히 비단 자리에서 호방한 선비를 받들 것이지 어찌 죽기로 나를 따르려 하는가. 산승은 표주박 하나로 셈이 이미 넉넉하여 쓸 데가 없으니 어찌 너를 빌리랴. 하물며 이제 술 금함이 날로 급해지니 너의 주림을 채울 물건이 없네. 차 끓인 물을 베풀어 너에게 이바지하려 하나 네가 익숙하지 않아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할까 두렵네. 너는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입과 배뿐이니 진중하여라, 나를 버리지 않음이여. 들으니 융성(戎城) 태수가 오시어 만 집이 침을 흘리며 새 교화를 마신다 하네. 과연 꽃다운 은혜를 부어 백성의 목마름을 위로하시고 공무의 여가에 손을 즐겁게 하여 옥잔을 기울이시리. 아아, 너는 다행히 천하에 일 없는 때에 났으니 가서 어진 태수와 더불어 마시고 어찌하랴, 취하여 태평의 즐거움에 길이 한가하라.

이 시는 비록 윤공으로 하여금 보게 하더라도 반드시 세 가지 격의 나무람이 없을 것이다.

陳補闕因王事,行過雉岳西。松杉蔭密,水石幽奇,心愛之入洞中,有草屋兩三隱映林間。一老僧帶兒子坐溪石,陳下馬與語,氣韻不凡。遂偶坐,見一紙扇畵蟠松,陳取扇書其背云:「老僧長伴蒼髯叟,何更移眞入扇團。」僧卽和云:「春風不到峩眉嶺,撲地蛟龍翠作團。」陳驚愕歎服。又贈十韻語意俱淸絶。不知何許人。

진 보궐이 나랏일로 치악 서쪽을 지났다. 솔과 삼나무 그늘이 빽빽하고 물과 돌이 그윽하고 기이하여 마음에 사랑스러워 골 안으로 드니, 초가 두세 채가 숲 사이에 은은히 비쳤다. 한 늙은 스님이 아이를 데리고 시냇가 돌에 앉아 있었다. 진이 말에서 내려 말을 나누니 기운과 운치가 범상하지 않았다. 마침내 마주 앉았는데, 종이 부채에 서린 솔을 그린 것을 보고 진이 부채를 가져다 그 뒤에 써 이르기를,

늙은 중이 길이 푸른 수염 늙은이를 짝하는데 어찌 다시 참모습을 옮겨 둥근 부채에 넣었는가.

스님이 곧 화답하여 이르기를,

봄바람이 아미령에 이르지 않으니 땅을 치는 교룡이 푸르게 둥긂을 이루었네.

진이 놀라 감탄하고 수긍하였다. 또 열 운을 주었는데 말과 뜻이 다 맑고 빼어났다. 어디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三重空空,性不檢好詩酒,居不離京師。雖晚歲喜與少年輩遊,酩酊吟哦嘲花弄草,以自放也。常過布川,留詩讚石彌勒云:「金色巍巍丈六身,靑山獨立幾經春。我來稽首何無語,曩劫同修是故人。」後庾壯元碩,以中道按廉過,此見之,代彌勒喜書云:「腰上僧形下俗身,長安桃李眼迷春。莫言曩劫同修善,吾黨曾無破戒人。」空空聞之,作鮮嘲詩,上相國崔公云:「昔過布川院,閑留一首詩。多談彌勒在,戲答使人疑。」公絶倒〔俗以饒語者,爲多談。〕。

삼중(三重) 공공은 성품이 검속하지 않아 시와 술을 좋아하고 사는 것이 서울을 떠나지 않았다. 비록 늘그막에도 젊은이들과 노는 것을 즐겨, 곤드레만드레 취해 읊조리며 꽃을 조롱하고 풀을 놀리며 스스로 놓아 지냈다.

늘 포천을 지나며 시를 남겨 돌미륵을 기려 이르기를,

금빛이 우뚝한 열여섯 자의 몸이여 푸른 산에 홀로 서서 몇 봄을 지났는가. 내가 와서 머리를 조아리는데 어찌 말이 없는가 지난 겁에 함께 닦은 옛 벗이거늘.

뒤에 유 장원 석이 중도 안렴으로 지나다 이를 보고, 미륵을 대신하여 기뻐하며 써 이르기를,

허리 위는 중의 모습이요 아래는 속인의 몸이라 장안의 복사와 오얏에 눈이 봄에 홀렸구나. 지난 겁에 함께 선을 닦았다 말하지 말라 우리 무리에는 일찍이 계를 깨뜨린 사람이 없느니라.

공공이 이를 듣고 산뜻한 조롱 시를 지어 상국 최공에게 올려 이르기를,

옛날 포천원을 지나며 한가히 한 수의 시를 남겼더니 말 많은 미륵이 있어 희롱으로 답하여 사신을 의심케 하였네.

공이 배를 잡고 웃었다.〔세속에서 말 많은 이를 「다담(多談)」이라 한다.〕

華嚴月首座餘事,亦深於文章,有草集傳士林。嘗撰海東高僧傳。時李東觀允甫言:「有默行者,不知族氏年可五十。或爲髡或爲頭陀,不念經不禮佛,終日宴坐暝如也。有候之者,無貴賤不擧目改觀,問其名不應,問從甚處來亦不應。故以默行者名焉,居歸正寺別區。」時予適在龜城,道人存純謂予言行者:「嘗冬月敷一座具,着一衲衣,衲中無蟣蝨,坐氷堗上,寒色不形。學道後進,抱冊往從質疑者,無不委細開說。方大寒恐其凍也,候出時遣房子,急爇柴頭溫其堗而去。行者來觀之無喜慍色,徐出戶拾石礫,塡堗口泥其灰塗隙而上,宴坐如初。自是不復遣溫也。嘗齋時食菜不用醬,又不禁午後食,値幸則食之,或至七八日不食。『自言,凡名山有聖蹟,無不遊觀』,予往見不交一言。」後乙丑歲冬十月遊窟巖寺,寺僧曰:「近默行者來,陟鸇巖樂之就石窟,構一小庵,躬負石築階,新開磴道。自山下至窟,置三百餘層,無一石動搖者。時聞齋鼓下來飯食,至十餘日不下。」因往候焉,片石上有七言頌,是行者所作,其言頗涉神仙事。庚午歲,以定戎分道乘傳,復至龜城,問行者今在何所,城人云:「頃往奉州三角山門巖居焉。去歲夏月住窟巖寺時,謂寺僧曰,『有鬼自北方來,萃此城,因下山入城。』乘城上巡行而出城,人皆見之。後有鬼火晝伏昏起,其色靑小大不等。或入人家,或聚園樹,或飛空中。城人擊鳴器以噪之,守夜不眠,如是過數日方止。」時予之妻息下在是城,問之果然。後有僧益芬來吿予:「近往三角山見行者,無小恙好在。近旁村民,恐行者之去,相與修完所住草屋,日夕供護焉。」將吿別,行者謂芬曰:「大都修行者,不以寒苦易其志。今之修行,必欲高樓屹殿庇其徒,美食細服供其身。出入公卿士大夫之門,諭以造寺,息利爲得福多,屠割平民,烏在其爲修行者歟?汝勉之無忽也。芬佩服焉。」東觀言如此,因撰傳,以補僧史之闕遺。

화엄의 월 수좌는 남은 일로 또한 문장에 깊어 초집(草集)이 사림에 전한다. 일찍이 「해동고승전」을 지었다.

그때 이 동관 윤보가 말하였다. 「묵행자(默行者)라는 이가 있는데 성씨를 알지 못하고 나이는 쉰쯤 되었다. 혹 머리를 깎기도 하고 혹 두타(頭陀)가 되기도 하는데, 경을 외지 않고 부처에 예배하지 않으며 온종일 편안히 앉아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문안하는 이가 있어도 귀하고 천함을 가리지 않고 눈을 들어 다시 보지 않으며, 그 이름을 물어도 응하지 않고 어디서 왔느냐 물어도 또한 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묵행자라 이름하였는데 귀정사 별채에 산다.」

그때 내가 마침 구성(龜城)에 있었는데 도인 존순이 나에게 행자의 일을 말하였다.

「일찍이 겨울 달에 자리 하나를 펴고 누비옷 한 벌을 입었는데 누비 속에 서캐와 이가 없었고, 얼음 언 온돌 위에 앉았으되 추운 빛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도를 배우는 후배들이 책을 안고 가서 의심난 것을 물으면 자세히 열어 말해 주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한창 큰 추위에 그가 얼까 두려워, 나갈 때를 살펴 방지기를 보내 급히 나뭇단에 불을 지펴 그 온돌을 덥히고 오게 하였습니다. 행자가 와서 보고 기뻐하거나 성내는 빛이 없이, 천천히 문을 나가 자갈을 주워 아궁이를 막고 그 재를 진흙으로 이겨 틈을 바르고 올라가 처음처럼 편안히 앉았습니다. 이로부터 다시 덥히려 보내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재(齋) 때에 나물을 먹되 장을 쓰지 않고, 또 낮이 지난 뒤 먹는 것을 금하지 않아 마침 있으면 먹고 혹 이레 여드레에 이르도록 먹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스스로 말하기를 『무릇 이름난 산에 성스러운 자취가 있으면 노닐어 보지 않은 데가 없다』 하였습니다. 내가 가서 보았으나 한마디도 나누지 못하였습니다.」

뒤에 을축년 겨울 시월에 굴암사에 노닐었는데 절 스님이 말하였다. 「요즘 묵행자가 와서 전암(鸇巖)에 올라 그곳을 즐거워하여 석굴로 나아가 작은 암자 하나를 얽었습니다. 몸소 돌을 져 섬돌을 쌓고 돌길을 새로 열었는데, 산 아래에서 굴까지 삼백 층 남짓을 놓았으되 한 돌도 흔들리는 것이 없습니다. 때로 재 알리는 북소리를 들으면 내려와 밥을 먹는데 열흘 남짓 내려오지 않기도 합니다.」

이에 가서 문안하니 조각돌 위에 칠언의 송(頌)이 있었는데 행자가 지은 것이었고, 그 말이 자못 신선의 일에 걸쳤다.

경오년에 정융(定戎)에 나뉘어 가느라 역마를 타고 다시 구성에 이르러 행자가 지금 어디 있느냐 물으니 성 사람이 말하였다.

「얼마 전에 봉주 삼각산 문암으로 가 사십니다. 지난해 여름 달에 굴암사에 머무를 때 절 스님에게 이르기를 『귀신이 북쪽에서 와 이 성에 모인다』 하고는, 이어 산을 내려와 성에 들어가 성 위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성을 나갔는데 사람들이 다 보았습니다. 뒤에 도깨비불이 낮에는 엎드렸다가 어두우면 일어났는데 그 빛이 푸르고 크고 작음이 고르지 않았습니다. 혹 남의 집에 들고 혹 동산 나무에 모이고 혹 공중을 날았습니다. 성 사람들이 소리 나는 그릇을 두드려 시끄럽게 하고 밤을 지키며 자지 않기를 이와 같이 며칠 지나서야 비로소 그쳤습니다.」

그때 내 아내와 자식이 이 성에 내려와 있었으므로 물으니 과연 그러하였다.

뒤에 익분이라는 스님이 와서 나에게 알렸다. 「요즘 삼각산에 가 행자를 뵈니 작은 병도 없이 잘 계셨습니다. 가까운 마을 백성들이 행자가 떠날까 두려워 서로 더불어 사는 초가를 고쳐 완전히 하고 아침저녁으로 이바지하며 지켰습니다. 장차 작별을 고하려 하니 행자가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대개 수행하는 이는 춥고 괴로움으로 그 뜻을 바꾸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의 수행은 반드시 높은 누각과 우뚝한 전각으로 그 무리를 덮으려 하고, 좋은 음식과 고운 옷으로 그 몸을 이바지하려 한다. 공경과 사대부의 문에 드나들며 절 짓기를 타이르고, 이자 불리는 것을 복 얻음이 많다 하여 백성을 도살하니 그 수행하는 이 됨이 어디에 있는가. 너는 힘쓰고 소홀히 하지 말라.』

제가 마음에 새겼습니다.」

동관의 말이 이와 같으므로 이어 전(傳)을 지어 「승사(僧史)」의 빠진 것을 깁는다.

漆陽寺僧子林,愚騃不可言。來遊京都還渡臨津,中流見一白面沙彌,寄他船而先渡者,心竊喜之。比下,度其不及,不覺前之遠也,騰身超之投江而沒。偕去人歸以死報,門人設齋追薦。過三七日,忽一夕子林來至。門人怪而問之,子林云:「溺至底浮出,適有船過,船上人拯而活之。出訖,問沙彌所之,追至三角山啓聖寺,入見喜甚不忍捨去,留二十日而來。」人聞之絶倒。又月夜蟾出於庭,僧徒聚觀之,子林後至曰:「是何蟲也?」紿曰:「此土無此蟲。近有人從宋商家就買,欲畜之來放耳。雖類蟾非是,師可買畜而翫?」子林以銀盂易之。從者曰:「此蟾也。何以買爲?」子林曰:「毌妄言沮我。」卽以蒿裹之去。鄭侍郞子直聞之作詩曰:「俗習年來尙巧姦,天敎癡絶示人間。買蟾投水雖堪笑,愛友輕財意可觀。」

칠양사 스님 자림은 어리석기가 말할 수 없었다. 서울에 놀러 왔다가 돌아가며 임진강을 건너는데, 강 가운데서 흰 얼굴의 사미 하나가 다른 배에 붙어 먼저 건너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가만히 기뻐하였다. 배가 닿을 즈음에 미치지 못할 것을 헤아리고, 앞이 먼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몸을 솟구쳐 뛰어넘으려다 강에 던져져 잠겼다.

함께 간 사람이 돌아가 죽었다고 알리니 문인들이 재를 베풀어 천도하였다. 삼칠일이 지나 홀연 어느 저녁 자림이 왔다. 문인들이 괴이하여 물으니 자림이 말하였다. 「빠져 바닥에 이르렀다가 떠올랐는데 마침 지나는 배가 있어 배 위의 사람이 건져 살렸다. 나오고 나서 사미가 간 곳을 물어 삼각산 계성사까지 좇아가 들어가 보니 기쁨이 심하여 차마 버리고 오지 못하다가, 스무 날을 머물다 왔다.」 사람들이 듣고 배를 잡고 웃었다.

또 달밤에 두꺼비가 뜰에 나오니 스님들이 모여 구경하는데 자림이 뒤에 이르러 말하였다. 「이것이 무슨 벌레인가.」 속여 말하였다. 「이 땅에는 이런 벌레가 없다. 요즘 어떤 사람이 송나라 장사꾼 집에서 사 와 기르려고 놓아 둔 것이다. 비록 두꺼비와 비슷하나 그것이 아니니, 스님이 사서 길러 즐기시겠는가.」 자림이 은 사발로 그것을 바꾸었다.

따르는 이가 말하였다. 「이것은 두꺼비입니다. 무엇 하러 사십니까.」 자림이 말하였다. 「망령된 말로 나를 막지 말라.」 곧 쑥으로 싸서 갔다.

정 시랑 자직이 이를 듣고 시를 지어 이르기를,

세속의 버릇이 근래 공교롭고 간사함을 숭상하니 하늘이 어리석음의 끝을 가르쳐 사람 세상에 보이셨네. 두꺼비를 사서 물에 던진 것은 비록 우스우나 벗을 사랑하고 재물을 가벼이 여긴 뜻은 볼 만하네.

麟州有妓名白蓮者,貞肅公常奉使過此州睠之。別後寄詩云:「寄語北飛雲一片,汝應行過大華峯。峰頭若見玉井蓮,說我相思憔悴容。」後爲兵馬使,妓以其詩進呈,公復贈一絶云:「城南城北碧重重,疑是巫山十二峯。白髮未成雲雨夢,玉顔都不損春容。」李眉叟戲龍灣使君慕妓白蓮云:「風暖鶯嬌客路邊,千紅百紫競爭姸。使君却厭春光鬧,獨向秋塘賞白蓮。」李詩華艶,未若金詩淸婉。

인주(麟州)에 백련이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정숙공이 늘 사신으로 이 고을을 지나며 그를 돌아보았다. 헤어진 뒤에 시를 부쳐 이르기를,

북으로 나는 한 조각 구름에 말을 부치노니 너는 응당 대화봉을 지나가리라. 봉우리 머리에서 만약 옥정(玉井)의 연꽃을 보거든 내가 그리워 시들어 가는 얼굴을 말해 다오.

뒤에 병마사가 되니 기생이 그 시를 올렸다. 공이 다시 절구 하나를 주어 이르기를,

성 남쪽 성 북쪽에 푸르름이 겹겹이니 무산 열두 봉우리인가 싶네. 흰머리로는 구름과 비의 꿈을 이루지 못하니 옥 같은 얼굴이 도무지 봄 모습을 덜지 않았구나.

이미수가 용만 사군이 기생 백련을 사모하는 것을 놀려 이르기를,

바람이 따스하고 꾀꼬리가 아양 떠는 나그넷길 가에 천 가지 붉음과 백 가지 자줏빛이 다투어 곱기를 겨루네. 사군은 도리어 봄빛의 시끄러움을 싫어하여 홀로 가을 못을 향해 흰 연꽃을 감상하네.

이의 시는 화려하고 고우나 김의 시가 맑고 고운 것만 못하다.

承安三年戊午,司天監李寅甫,以慶州道祭吿使,歷祀山川旣畢將還,暮抵浮石寺,有僧迎入客宇。蕭然無左右,忽有女乍見廊廡間。監謂爲近方州牧送妓,未之訝也。少選蹁躚來庭下拜之,屈伸頗不類倡。拜訖,升自階徑就室入焉,細視之非烟火食者。監雖怪之,以其姿色絶代,不忍拒也。乃攝衣出戶周覽,獨有一古井可怪,復坐愕然。久之有一沙彌,將主公命來報曰:「大監甚勞苦,幸今戾止,請臨丈室,敢以茶湯奉之。」監不得已往,强以女侍從,牢讓再三,躡出於戶。監與主公接殷勤之歡。至昏夜乃罷歸。俄而向女復來,監稍近狎焉,女曰:「大官旣悉我無疑也。妾所居去此不遠,竊慕高義以是來爾。」其應對慧利甚閑。遂同衾曲盡綢繆之意,爲留三日而出。止郵亭宿焉,向之女苒苒來至。監曰:「已去矣,何復來爲?」女曰:「腹有君之息一矣,乞復添一,所以至耳。」仍薦枕如故,比曉吿別,雲情雨意甚繾綣然。行入興州將宿,女復來入。監自念若以舊好接之,恐爲後患,遂面之而不省。女瞪目良久,怫然作色曰:「甚善。後當不復見也。」卽出戶,回風卷地,擊毀廳事間一扉,截樹杪而去,如以斤斧斫之。略論曰李監旣知其非人,何便與合歡,曲盡綢繆,人與神物交,至有腹息,胡怪誕之甚?韓子曰:「無形與聲者鬼也。人有忤於天,有違於民,有爽於物,逆於倫,而感於物。於是鬼有托於形憑於聲以應之,皆民之爲也。然則惑鬼者自欺也」。

승안 삼년 무오년에 사천감 이인보가 경주도 제고사(祭吿使)로서 산천에 두루 제사를 마치고 장차 돌아가려 할 때, 저물어 부석사에 이르니 스님이 맞아 객실로 들였다. 쓸쓸히 곁에 아무도 없는데 홀연 여인 하나가 행랑 사이에 잠깐 보였다. 감(監)은 가까운 고을 목사가 보낸 기생이려니 여겨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조금 있다 사뿐사뿐 뜰 아래로 와 절하는데 굽히고 펴는 것이 자못 창기 같지 않았다. 절을 마치고 섬돌로 올라 곧장 방으로 들어오니, 자세히 보매 불로 익힌 것을 먹는 이가 아니었다. 감이 비록 괴이하게 여겼으나 그 자태와 빛깔이 세상에 뛰어나 차마 물리치지 못하였다.

이에 옷을 여미고 문을 나가 두루 둘러보니 오직 옛 우물 하나가 있어 괴이하였다. 다시 앉아 놀랐다.

한참 있다 사미 하나가 주지의 명을 받들고 와 알렸다. 「대감께서 몹시 수고로우셨는데 다행히 이제 이르셨으니, 청컨대 장실(丈室)에 임하시면 감히 차를 받들겠습니다.」 감이 부득이 가면서 억지로 여인에게 따르게 하니 두세 번 굳이 사양하고 문으로 살짝 나갔다.

감이 주지와 은근한 즐거움을 나누다 어두운 밤에 이르러 파하고 돌아왔다. 이윽고 아까의 여인이 다시 왔다. 감이 조금 가까이 다가서니 여인이 말하였다. 「대관께서 이미 제가 사람이 아님을 다 아셨으니 의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사는 곳은 여기서 멀지 않은데, 가만히 높은 뜻을 사모하여 이렇게 왔을 뿐입니다.」 응대하는 것이 슬기롭고 날카로우면서도 매우 한가하였다.

마침내 이불을 함께하여 얽히는 뜻을 남김없이 다하고 사흘을 머물다 나왔다.

역참에 머물러 묵는데 아까의 여인이 하늘하늘 이르렀다. 감이 말하였다. 「이미 떠났거늘 어찌 다시 왔는가.」 여인이 말하였다. 「배에 그대의 아이 하나가 있는데 다시 하나를 더하기를 빌므로 온 것입니다.」 이어 예처럼 잠자리를 받들었고, 새벽에 작별을 고하는데 구름 같은 정과 비 같은 뜻이 매우 얽혀 있었다.

가다가 흥주에 들어 묵으려 하는데 여인이 다시 와 들었다. 감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만약 옛 정으로 맞으면 뒷날의 근심이 될까 두려워 마침내 마주 보고도 아는 체하지 않았다. 여인이 눈을 부릅뜨고 한참 있다가 발끈하여 낯빛을 지으며 말하였다. 「매우 좋소. 뒤에 마땅히 다시는 보지 못하리다.」

곧 문을 나가니 회오리바람이 땅을 말고, 마루 사이의 문짝 하나를 쳐 부수고 나무 끝을 잘라 갔는데 마치 도끼로 찍은 것 같았다.

대략 논하건대, 이 감이 이미 그가 사람이 아님을 알았거늘 어찌 곧 함께 즐거움을 나누어 얽히기를 남김없이 하였는가. 사람이 신물(神物)과 사귀어 배에 아이가 있기까지 하였으니 어찌 괴이하고 허황함이 이리 심한가.

한자(韓子)가 말하였다. 「형체도 소리도 없는 것이 귀신이다. 사람이 하늘에 거스름이 있고 백성에게 어김이 있고 사물에 어긋남이 있고 인륜에 거스름이 있어 사물에 느끼면, 이에 귀신이 형체에 붙고 소리에 기대어 응하니 다 백성이 하는 것이다. 그러한즉 귀신에 홀리는 이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邊山有一老宿,自言,往時聞高敞縣人設燃燈會,往觀焉。有一少年異於尋常者,問諸左右,皆曰不知誰之子。及罷去,踵其後追至于山麓,少年吿曰:「莫我追。我居陋不堪寄宿。」師曰:「日暮矣,將安適歸。」曰:「業已俱來,不可辭以僻陋。」行有老嫗出迎曰:「咄爾兒子!若汝兩兄見之,此師其爲食乎?」師至是,知其爲虎窟,欲出去,嫗曰:「二子已回來,若强去必殆矣。」因携持而入。少年曰:「吾恐甚,請以師置母之後。」須臾二虎將一兎入來,嫗欲其不久滯也,曰:「我與汝等共一兎,其何以療飢?速遠出更求食來。」虎作人語而對曰:「母有食,何更求爲?」卽出去。良久復來曰:「我從山主所乞禱,各得食,小妹可從來。何能忍飢自苦?」復出去。俄有來呼者曰:「以若之子女,婆娑於州里間,主命罰之。詰朝當往入高敞縣檻穽中就死。」少年曰:「主命也,不可逃。今幸逢師亦命也。方我入檻中,衆來制我,恐不忍生嗔。師宜來吿衆寧却,曰我能獨斃之,持短槍而前。吾出一言而死,師之惠也。」明旦至縣,聞檻中有虎。師往如其言却衆,持短槍以直前,虎曰:「我向某村某家,受生爲男子。至年十二三時往謁師,剃髮以度我。」卽接刃自穴其胸而斃。後十五年師偶出洞門,見一童子,拜於道左。問之,曰:「我乃某村男子也。」師憶向檻虎之言,而髡爲沙彌。頗穎悟可愛。忽遁去不知所之,後聞日嚴寺師修秘呪,以加持力日服人,承命赴畿內蘭若。師往省之乃向沙彌也。此說甚怪誕,世謂讖有虎僧之說,惟日嚴師當之,此亦難憑。

변산에 한 노숙(老宿)이 있어 스스로 말하였다.

지난날 고창현 사람이 연등회를 베푼다는 말을 듣고 가서 구경하였다. 한 소년이 있어 예사롭지 않았으므로 곁의 사람들에게 물으니 다 누구의 아들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파하고 갈 때 그 뒤를 밟아 산기슭에 이르니 소년이 알렸다. 「나를 따르지 마십시오. 제가 사는 곳이 누추하여 묵으실 만하지 않습니다.」 스님이 말하였다. 「날이 저물었으니 장차 어디로 가랴.」 말하기를 「이미 함께 왔으니 궁벽하고 누추하다고 사양할 수 없겠습니다」 하였다.

가니 늙은 할미가 나와 맞으며 말하였다. 「쯧, 이 아이야. 만약 네 두 형이 이를 보면 이 스님이 그 밥이 되지 않겠느냐.」 스님이 이에 이르러 그곳이 범의 굴인 줄 알고 나가려 하니 할미가 말하였다. 「두 아들이 이미 돌아오니 만약 억지로 가면 반드시 위태롭소.」 이에 붙들어 들였다.

소년이 말하였다. 「내가 몹시 두려우니 청컨대 스님을 어머니 뒤에 두십시오.」

이윽고 범 둘이 토끼 하나를 가지고 들어왔다. 할미가 그들이 오래 머물지 않기를 바라 말하였다. 「나와 너희가 토끼 하나를 함께하니 그것으로 어찌 주림을 고치랴. 빨리 멀리 나가 다시 먹을 것을 구해 오너라.」

범이 사람의 말을 지어 대답하였다. 「어머니께 먹을 것이 있는데 어찌 다시 구하겠습니까.」 곧 나갔다. 한참 있다 다시 와 말하였다. 「우리가 산 주인께 빌고 빌어 저마다 먹을 것을 얻었으니 어린 누이도 따라올 만합니다. 어찌 주림을 참아 스스로 괴로워하겠습니까.」 다시 나갔다.

이윽고 와서 부르는 이가 있어 말하였다. 「너희 아들과 딸이 고을 마을 사이에서 어정거렸으므로 주인의 명으로 벌한다. 내일 아침에 마땅히 고창현의 함정 속에 들어가 죽으라.」

소년이 말하였다. 「주인의 명이니 달아날 수 없습니다. 이제 다행히 스님을 만난 것도 또한 명입니다. 바야흐로 제가 함정 속에 들면 뭇 사람이 와서 저를 제압할 터인데 차마 성냄을 내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스님께서 마땅히 오시어 뭇 사람에게 일러 물리치시고 『내가 홀로 죽일 수 있다』 하시고 짧은 창을 들고 앞으로 나오십시오. 제가 한마디를 하고 죽는 것이 스님의 은혜입니다.」

이튿날 아침에 현에 이르니 함정 속에 범이 있다는 말이 들렸다. 스님이 가서 그 말대로 뭇 사람을 물리치고 짧은 창을 들고 곧장 앞으로 나아가니 범이 말하였다. 「나는 아무 마을 아무 집으로 가 사내로 태어나겠습니다. 나이 열두세 살에 이르러 스님을 뵈러 가거든 머리를 깎아 저를 건네주십시오.」 곧 칼날을 받아 스스로 제 가슴을 뚫고 죽었다.

뒤 열다섯 해에 스님이 우연히 골 문을 나서다 한 아이가 길 왼쪽에서 절하는 것을 보았다. 물으니 「나는 곧 아무 마을의 사내입니다」 하였다. 스님이 지난날 함정의 범이 한 말을 떠올리고 머리를 깎아 사미로 삼았다. 자못 총명하여 사랑스러웠는데 홀연 달아나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뒤에 들으니 일엄사의 스님이 비밀한 주문을 닦아 가지력(加持力)으로 날마다 사람을 굴복시키므로, 명을 받아 경기 안의 난야(蘭若)로 갔다 하였다. 스님이 가서 살피니 곧 지난날의 사미였다.

이 말은 매우 괴이하고 허황하다. 세상에서 이르기를 참(讖)에 「범 스님(虎僧)」의 말이 있다 하는데, 오직 일엄사 스님이 그에 해당한다고 하나 이 또한 기대기 어렵다.

光化縣北有蓴池,採蓴者往往見害。有一民名今同,操鎌躍入,至底探焉,入一室津然無水,槪如棟宇明,可數沙石。見一堆穹豐然,撥之有蛤大如拳。掇之而出,棄於池之濱田,復入掇,忽聞岸上錚錚聲。跳身而出,雷雨暴作。遂怖懼揮鎌而去。進士梁國元,親見其人,聞其言傳說,衆皆異之。有一措大在座末笑之,作絶句贈梁進士云:「蛟龍窟穴在蒼海,不知亦在蓴池非。旣能探底欲除害,何事平地怖畏歸。」此措大有志節,不爲浮怪所,後不知至何官。

광화현 북쪽에 순채 못이 있는데 순채 캐는 이가 이따금 해를 입었다. 금동(今同)이라는 백성 하나가 낫을 들고 뛰어들어 바닥에 이르러 더듬으니, 한 방에 들어섰는데 마르고 물이 없어 대개 마룻집처럼 밝아 모래와 돌을 셀 만하였다.

한 무더기가 불룩하게 솟은 것을 보고 헤치니 주먹만 한 조개가 있었다. 주워 나와 못가 밭에 버리고 다시 들어가 주우려는데 홀연 언덕 위에서 쨍쨍 소리가 들렸다. 몸을 솟구쳐 나오니 우레와 비가 사납게 일었다. 마침내 두려워 낫을 휘두르며 갔다.

진사 양국원이 그 사람을 몸소 보고 그 말을 들어 전하니 뭇 사람이 다 기이하게 여겼다. 한 조대(措大)가 자리 끝에 있다가 이를 비웃고 절구를 지어 양 진사에게 주어 이르기를,

교룡의 굴은 푸른 바다에 있으니 또한 순채 못에 있는지 아닌지 알지 못하네. 이미 능히 바닥을 더듬어 해를 없애려 하였거늘 무슨 일로 평지에서 두려워하며 돌아왔는가.

이 조대는 뜻과 절개가 있어 뜬 괴이함에 흔들리지 않았다. 뒤에 어느 벼슬에 이르렀는지 알지 못한다.

西伯寺僧統時義,爲學者時,與進士朴仁厚及二三子,寓奉靈寺。夜飮聯句,忽窓外唱曰:「更深將罷壺中客。」其聲厲,一座皆若以手撮毛髮而上也。又有一士人名李植,詣佛岬寺,道逢一叟狀貌魁梧。伴行數里嘯咏相得懽甚。比至寺側,將捨去入山,吟曰:「松風吹永日,蕭蕭無盡時,其下茯苓千古在,往來樵子未曾知。」嘗味其詩,意雖淸婉,不及幽獨,君亦出塵語也。又法泉寺僧失其名,夜於樓上,讀東坡詩,忽有人叩門,開視之,冠者一人被髮者一人,如舊相知握手登樓。冠者曰:「新月一眉高可見。」僧沈吟良久,被髮者曰:「胡不道。」「故人千里遠難期。」酬唱良久忽不見。西伯華嚴宗匠也,語此事甚悉,然師本是不迃不神者也。

서백사 승통 시의가 배우는 이였을 때 진사 박인후 및 두세 사람과 봉령사에 붙어 있었다. 밤에 술을 마시며 구를 이어 짓는데 홀연 창밖에서 읊는 소리가 났다. 「밤이 깊어 장차 병 속의 손을 파하리라.」 그 소리가 매서워 온 자리가 다 손으로 머리털을 잡아 올리는 듯하였다.

또 이식이라는 선비 하나가 불갑사에 나아가는데 길에 한 늙은이를 만나니 생김새가 크고 우람하였다. 짝하여 몇 리를 가며 휘파람 불고 읊으며 서로 뜻이 맞아 즐거움이 심하였다. 절 곁에 이르러 장차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려 하며 읊었다.

솔바람이 긴 해를 부니 쓸쓸하여 다할 때가 없네. 그 아래 복령이 천고에 있는데 오가는 나무꾼이 일찍이 알지 못하네.

일찍이 그 시를 맛보니 뜻은 비록 맑고 고우나 유독군(幽獨君)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또한 티끌을 벗어난 말이다.

또 법천사의 스님이 그 이름을 잃었는데, 밤에 누각 위에서 「동파집」을 읽었다. 홀연 어떤 사람이 문을 두드려 열어 보니 갓 쓴 이 하나와 머리 푼 이 하나였다. 옛날부터 서로 아는 것처럼 손을 잡고 누각에 올랐다.

갓 쓴 이가 말하였다. 「새 달이 한 눈썹으로 높이 보일 만하다.」 스님이 한참을 읊조리는데 머리 푼 이가 말하였다. 「어찌 말하지 않는가.」 「옛 벗은 천 리라 멀어 기약하기 어렵다.」 주고받기를 한참 하다가 홀연 보이지 않았다.

서백은 화엄의 종장인데 이 일을 말한 것이 매우 자세하다. 그러나 스님은 본디 에두르지 않고 신령한 것을 말하지 않는 이다.

及第柳公器子源,五歲解聯句。晉陽公召見占爐字,卽應命曰:「爐堆鳳炭侯家暖。」公嘉之賜繒帛,問所欲,曰「願除父官。」卽署爲甫州倅。後投禪源剃髮,法名汝髓,殤。

급제한 유공기의 아들 자원은 다섯 살에 구를 이을 줄 알았다. 진양공이 불러 보고 「노(爐)」 자를 뽑으니 곧 명에 응하여 말하였다. 「화로에 봉탄(鳳炭)을 쌓으니 후작 집이 따스하네.」 공이 아름다이 여겨 비단을 내리고 바라는 바를 물으니 「아버지의 벼슬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곧 보주(甫州)의 수령으로 삼았다. 뒤에 선원사에 던져 머리를 깎았는데 법명이 여수(汝髓)이며 일찍 죽었다.

動人紅彭原倡妓也,頗知文句。有一兵馬分道,與太守圍棋,因宿酲未解曰:「都護博州千杯酒,醉未分東西。」動人紅在傍曰:「太守分營一局棋,蒙不知生死。」嘗從一書生欲學韓文,書生曰:「不作詩不敎授。」遂作八韻曰:「買酒羅裳解,招君玉手搖。」又贈趙擧子曰:「幸逢溱洧會,芍藥贈如何?」自敍云:「倡女與良家,其心間幾何。可憐栢舟節,自誓死靡他。」自敍之意似乎貞烈。

동인홍(動人紅)은 팽원의 창기인데 자못 글귀를 알았다. 한 병마 분도(分道)가 태수와 바둑을 두는데 어제 마신 술이 아직 깨지 않아 말하였다. 「도호(都護)는 박주(博州)의 천 잔 술에 취하여 동서를 가리지 못하네.」 동인홍이 곁에 있다가 말하였다. 「태수는 진영을 나눈 한 판 바둑에 어두워 살고 죽음을 알지 못하네.」

일찍이 한 서생을 좇아 한유의 글을 배우려 하니 서생이 말하였다. 「시를 짓지 못하면 가르치지 않겠다.」 마침내 팔운(八韻)을 지어 이르기를,

술을 사니 비단 치마가 풀리고 그대를 부르니 옥 같은 손이 흔들리네.

또 조 거자에게 주어 이르기를,

다행히 진수와 유수의 모임을 만났으니 작약을 드림이 어떠하리.

스스로 펴서 이르기를,

창녀와 양가의 여인이 그 마음에 사이가 얼마나 되랴. 가엾어라, 「백주(栢舟)」의 절개여 스스로 죽어도 다름이 없기를 맹세하네.

스스로 편 뜻이 곧고 매운 듯하다.

宋學士國瞻爲察院時,出佐西北戎幕。龍城官妓家名于咄,每爲使客所寵。燕飮中善唱和共歡樂,宋獨不與遊狎。妓乃作詩呈云:「廣平腸鐡早知堅,兒本無心共枕眠。但願一宵詩酒席,助吟風月結芳緣。」

송 학사 국첨이 찰원(察院)으로 있을 때 나가서 서북 융막(戎幕)을 도왔다. 용성의 관기 집에 우돌(于咄)이라는 이가 있어 늘 사신 손님의 총애를 받았다. 잔치에서 노래를 잘 주고받아 함께 즐거워하였는데 송만은 홀로 어울려 놀지 않았다. 기생이 이에 시를 지어 올려 이르기를,

광평(廣平)의 창자가 쇠 같아 굳음을 일찍이 알았으니 저는 본디 베개를 함께하여 잘 마음이 없습니다. 다만 바라건대 하룻밤 시와 술의 자리에서 바람과 달을 읊는 것을 도와 꽃다운 인연을 맺고자 합니다.

唐李肇國史補序云:「敍鬼神近帷箔悉去之。」歐陽公作歸田錄,以肇言爲法。此古今儒者撰述之常也。今此書,非敢以文章增廣國華,又非撰錄盛朝遺事,姑集雕篆之餘,以資笑語。故於末篇,紀數段淫怪事,欲使新進苦學者,游焉息焉。有所縱也,且有鑑戒存乎數字中,覽者詳之。

당나라 이조(李肇)의 「국사보(國史補)」 서문에 이르기를 「귀신을 펴는 일과 휘장 안에 가까운 일은 다 버렸다」 하였고, 구양공이 「귀전록」을 지으며 이조의 말을 법으로 삼았으니 이는 예와 이제 유자(儒者)가 지어 적는 데의 떳떳함이다.

이제 이 책은 감히 문장으로 나라의 빛을 더하고 넓히려는 것이 아니고, 또 성한 조정의 남긴 일을 지어 적으려는 것도 아니다. 짐짓 새기고 아로새긴 나머지를 모아 웃음과 이야기에 도움이 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끝 편에 몇 단락의 음란하고 괴이한 일을 적어, 새로 나아가 괴로이 배우는 이로 하여금 노닐고 쉬게 하려 하였다. 놓아둔 바가 있으나 또한 몇 글자 가운데 거울과 경계가 있으니, 보는 이는 자세히 살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