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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집 2 (46~90조)後集

채근담 菜根譚 · 홍자성(洪自誠) · 명 만력 연간(1600년 무렵) · 단락 45 · 한자 1,776자 · 낭독 7.1분

「채근담」 한 권 「후집 2 (46~90조)」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나물 뿌리를 씹을 수 있으면 백 가지 일을 이룰 수 있다」에서 이름을 딴 처세의 잠언집. 전집은 사람 사이에서 몸을 지키는 법을, 후집은 자연 속에서 마음을 놓는 법을 말한다. 유·불·도 세 갈래가 한 그릇에 담겼다.

1글자 한 자 몰라도 시심이 있으면

一字不識,而有詩意者,得詩家真趣。一偈不參,而有禪味者,悟禪教玄機。

글자 한 자 몰라도 시심을 지닌 이는 시인의 참멋을 얻고, 게송 한 구 참구하지 않아도 선의 맛을 지닌 이는 선교의 현묘한 기틀을 깨닫는다.

2활 그림자도 뱀으로 보인다

機動的,弓影疑爲蛇蠍,寢石視爲伏虎。此中渾是殺氣。念息的,石虎可作海鷗,蛙聲可當鼓吹,觸機倶見真機。

기틀이 움직이는 자는 활 그림자도 뱀과 전갈로 의심하고 누운 돌도 엎드린 범으로 보니, 이 속은 온통 살기다. 생각이 쉰 자는 돌 범도 갈매기로 삼고 개구리 소리도 풍악으로 삼으니, 닿는 곳마다 다 참기틀을 본다.

3매이지 않은 배처럼

身如不繋之舟,一任流行坎止。心似既灰之木,何妨刀割香塗。

몸은 매어 두지 않은 배와 같으니 흘러가든 여울에 멎든 내맡기고, 마음은 이미 재가 된 나무와 같으니 칼로 쪼개든 향을 바르든 무엇이 거리끼랴.

4꾀꼬리는 반기고 개구리는 싫어하나

人情聽鶯啼則喜,聞蛙鳴則厭。見花則思培之,遇草則欲去之。倶是以形氣用事。若以性天視之,何者非自鳴其天機,非自暢其生意也。

인정은 꾀꼬리 소리를 들으면 기뻐하고 개구리 울음을 들으면 싫어하며, 꽃을 보면 가꾸려 하고 풀을 만나면 뽑으려 한다. 다 형체와 기질로 일을 삼는 것이다. 만약 본성으로 보면, 어느 것인들 하늘 기틀을 스스로 울리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제 살려는 뜻을 펴는 것이 아니랴.

5머리 빠지고 이 성글어도

髪落齒疎,任幻形之彫謝,鳥吟花笑,識自性之真如。

머리 빠지고 이 성글어지거든 헛된 형체의 시들어 감에 내맡기고, 새 노래하고 꽃 웃는 데서 자성의 참모습을 알라.

6속을 비우면 저자에서도 시원하다

欲其中者,波沸寒潭,山林不見其寂。虚其中者,凉生酷暑,朝市不知其喧。

속에 욕심이 가득한 자는 찬 못에도 물결이 끓어 산림에서도 그 고요를 보지 못하고, 속이 빈 자는 무더위에도 서늘함이 일어 저자 한복판에서도 그 시끄러움을 모른다.

7많이 쌓으면 많이 잃는다

多藏者厚亡。故知富不如貧之無慮。高步者疾顛。故知貴不如賤之常安。

많이 쌓은 자는 크게 잃는다. 그러므로 부유함이 가난한 이의 근심 없음만 못함을 안다. 높이 걷는 자는 빨리 넘어진다. 그러므로 귀함이 천한 이의 늘 편안함만 못함을 안다.

8새벽 창에서 주역을 읽고

讀易曉窗,丹砂研松間之露。譚經午案,寶磬宣竹下之風。

새벽 창가에서 주역을 읽다가 소나무 사이 이슬로 붉은 먹을 갈고, 한낮 책상에서 불경을 담론하다가 대숲 아래 바람에 경쇠 소리를 실려 보낸다.

9화분의 꽃, 조롱의 새

花居盆内,終乏生機,鳥入籠中,便減天趣。不若山間花鳥,錯雑成文,翺翔自若,自是悠然會心。

꽃이 화분 안에 있으면 끝내 생기가 없고, 새가 조롱에 들면 문득 천연의 멋이 준다. 산속의 꽃과 새가 한데 어울려 무늬를 이루고 마음껏 날아올라, 절로 유연히 마음에 와 닿는 것만 못하다.

10나라는 글자를 너무 참되게 여기지 말라

世人只綠認得我字太真。故多種種嗜好,種種煩惱。前人云:「不復知有我,安知物爲貴。」又云:「知身不是我,煩惱更何侵。」真破的之言也。

세상 사람은 다만 나라는 글자를 너무 참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갖가지 기호와 갖가지 번뇌가 생긴다. 옛사람이 「내가 있는 줄도 다시 알지 못하는데 어찌 물건이 귀한 줄 알랴」 하였고, 또 「이 몸이 내가 아닌 줄 알면 번뇌가 어찌 침노하랴」 하였으니, 참으로 정곡을 찌른 말이다.

11늙음에서 젊음을 보라

自老視少,可以消奔馳角逐之心。自瘁視榮,可以絶紛華靡麗之念。

늙은이의 눈으로 젊음을 보면 바삐 내닫고 서로 다투는 마음을 사라지게 할 수 있고, 시든 자리에서 영화를 보면 화려하고 사치한 생각을 끊을 수 있다.

12어제의 나와 오늘의 저

人情世態,倐忽萬端,不宜認得太真。堯夫云:昔日所云我,而今卻是伊。不知今日我又屬後來誰。人常作是觀,便可解卻胸中罥矣。

인정과 세태는 잠깐 사이에 만 갈래로 변하니 너무 참된 것으로 여기지 말라. 요부(堯夫)가 이르기를 「지난날 나라고 하던 것이 오늘은 도리어 저가 되었으니, 오늘의 나는 또 뒷날 누구가 될지 모른다」 하였다. 사람이 늘 이렇게 보면 가슴속 얽매임을 풀 수 있다.

13뜨거운 북새통에 찬 눈 하나

熱閙中,着一冷眼,便省許多苦心思。冷落處,存一熱心,便得許多真趣味。

뜨거운 북새통 속에 찬 눈 하나를 두면 문득 숱한 괴로운 생각을 덜고, 쓸쓸한 처지에 뜨거운 마음 하나를 지니면 문득 숱한 참된 멋을 얻는다.

14즐거움 하나에는 괴로움 하나

有一樂境界,就有一不樂的相対待。有一好光景,就有一不好的相乘除。只是尋常家飯,素位風光,纔是個安樂的窩巣。

하나의 즐거운 경계가 있으면 곧 하나의 즐겁지 않은 것이 맞서 기다리고, 하나의 좋은 광경이 있으면 곧 하나의 좋지 않은 것이 서로 맞물린다. 다만 늘 먹는 집밥과 벼슬 없는 풍광이라야 비로소 안락한 보금자리다.

15발 높이 걷고 청산을 보라

簾櫳高敞,看青山綠水呑吐雲煙,識乾坤之自在。竹樹扶疎,任乳燕鳴鳩送迎時序,知物我之兩忘。

발과 창을 높이 걷고, 푸른 산 푸른 물이 구름과 안개를 삼켰다 뱉는 것을 보며 천지의 자재함을 알고, 대나무 우거진 곳에 새끼 제비 우는 비둘기가 계절을 보내고 맞음을 내맡겨 물아를 둘 다 잊음을 안다.

16이룸은 반드시 무너진다

知成之必敗,則求成之心,不必太堅。知生之必死,則保生之道,不必過勞。

이룬 것은 반드시 무너짐을 알면 이루기를 구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굳지 않을 것이요, 산 것은 반드시 죽음을 알면 삶을 지키는 길에 지나치게 애태우지 않으리라.

17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古徳云:「竹影掃堦塵不動。月輪穿沼水無痕。」吾儒云:「水流任急境常靜。花落雖頻意自閒。」

옛 고승이 이르기를 「대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티끌은 움직이지 않고, 달빛이 못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다」 하였고, 우리 유가에서 이르기를 「물살이 아무리 급해도 둘레는 늘 고요하고, 꽃이 자주 져도 마음은 절로 한가하다」 하였다. 사람이 늘 이런 뜻을 지니고 사물을 대하면 몸과 마음이 얼마나 자유로우랴.

18숲 사이 솔바람, 돌 위 샘물

林間松韻,石上泉聲,靜裏聽來,識天地自然鳴佩。草際煙光,水心雲影,閒中觀去,見乾坤最上文章。

숲 사이 솔바람 소리와 돌 위 샘물 소리를 고요한 속에 들으면 천지자연의 패옥 울림인 줄 알고, 풀섶의 안개 빛과 물 가운데 구름 그림자를 한가한 가운데 보면 천지 최상의 문장임을 안다.

19눈으로 서진의 가시밭을 보면서

眼看西晉之荊榛,猶矜白刃。身屬北邙之狐兔,尚惜黄金。語云:「猛獸易伏,人心難降。谿壑易塡,人心難滿。」信哉。

눈으로 서진의 가시밭을 보면서도 오히려 시퍼런 칼날을 자랑하고, 몸은 북망산의 여우와 토끼 차지가 될 것이면서 아직도 황금을 아낀다. 옛말에 「사나운 짐승은 굴복시키기 쉬워도 사람 마음은 항복받기 어렵고, 골짜기는 채우기 쉬워도 사람 마음은 채우기 어렵다」 하였으니, 참으로 옳다.

20마음에 풍파가 없으면

心地上無風濤,隨在皆青山綠樹。性天中有化育,觸處見魚躍鳶飛。

마음자리에 바람과 물결이 없으면 이르는 곳마다 다 푸른 산 푸른 나무요, 천성 가운데 화육하는 기운이 있으면 닿는 곳마다 물고기 뛰고 솔개 나는 것을 본다.

21높은 관 큰 띠의 선비도

峨冠大帯之士,一旦睹輕蓑小笠飄飄然逸也,未必不動其咨嗟。長筵廣席之豪,一旦遇疎簾浄几悠悠焉靜也,未必不增其綣戀。人奈何驅以火牛,誘以風馬,而不思自適其性哉。

높은 관 큰 띠의 선비도 한번 가벼운 도롱이 작은 삿갓으로 표연히 노니는 이를 보면 부러워 탄식하지 않을 수 없고, 긴 잔치 넓은 자리의 부호도 한번 성긴 발 깨끗한 책상에서 유유히 고요한 이를 만나면 그리워하는 마음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어찌하여 불소로 몰고 바람난 말로 꾀는 것만 알고, 제 본성에 맞게 사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가.

22고기는 물을 잊고 헤엄친다

魚得水游,而相忘乎水。鳥乘風飛,而不知有風。識此可以超物累,可以樂天機。

고기는 물을 얻어 헤엄치면서 물을 잊고, 새는 바람을 타고 날면서 바람이 있는 줄 모른다. 이것을 알면 사물의 얽매임을 벗어날 수 있고 하늘 기틀을 즐길 수 있다.

23여우 자는 무너진 섬돌

狐眠敗砌,兔走荒台,盡是當年歌舞之地。露冷黄花,煙迷衰草,悉屬舊時爭戰之場。盛衰何常,強弱安在。念此令人心灰。

여우는 무너진 섬돌에서 잠들고 토끼는 황폐한 누대를 달리니 다 그 옛날 노래하고 춤추던 곳이요, 이슬은 국화에 차고 안개는 시든 풀에 어리니 모두 지난날 싸우던 마당이다. 성쇠가 어찌 늘 같으며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어디 있는가. 이를 생각하면 사람의 마음이 재처럼 식는다.

24영욕에 놀라지 않으니

寵辱不驚,閒看庭前花開花落。去留無意,漫隨天外雲卷雲舒。

총애와 욕됨에 놀라지 않으니 뜰 앞에 꽃 피고 지는 것을 한가로이 바라보고, 가고 머무름에 뜻이 없으니 하늘 밖에 구름 걷히고 펴지는 것을 무심히 따른다.

25나방은 촛불에 몸을 던진다

晴空朗月,何天不可翺翔,而飛蛾獨投夜燭。清泉綠卉,何物不可飲啄,而鴟鴞偏嗜腐鼠。噫,世之不爲飛蛾鴟鴞,幾何人哉。

갠 하늘 밝은 달 아래 어느 하늘인들 날지 못하랴만 나방은 홀로 밤 촛불에 몸을 던지고, 맑은 샘 푸른 풀에 어느 것인들 먹고 마시지 못하랴만 올빼미는 굳이 썩은 쥐를 즐긴다. 아, 세상에 나방과 올빼미 아닌 이가 몇이나 되랴.

26뗏목에 오르자 뗏목 버릴 생각을

纔就筏便思舎筏。方是無事道人。若騎驢又復覓驢,終爲不了禪師。

뗏목에 오르자마자 곧 뗏목 버릴 것을 생각하면 이야말로 일없는 도인이거니와, 나귀를 타고서 다시 나귀를 찾으면 끝내 깨치지 못한 선사가 되고 만다.

27찬 눈으로 권세 다툼을 보면

權貴竜驤,英雄虎戰。以冷眼視之,如蟻聚羶,如蠅競血。是非蜂起,得矢蝟興。以冷情當之,如冶化金,如湯消雪。

권세가는 용처럼 다투고 영웅은 범처럼 싸우나, 찬 눈으로 보면 개미가 비린내에 모여들고 파리가 다투어 피를 빠는 것과 같다. 시비가 벌 떼처럼 일어나고 득실이 고슴도치 바늘처럼 일어서나, 찬 마음으로 맞으면 풀무가 쇠를 녹이고 끓는 물이 눈을 녹이는 것과 같다.

28물욕에 매이면 삶이 애달프다

覊鎖於物欲,覺吾生之可哀。夷猶於性真,覺吾生之可樂。知其可哀,則塵情立破,知其可樂,則聖境自臻。

물욕에 매이면 내 삶이 애달픈 줄 깨닫고, 본성에 유유히 노닐면 내 삶이 즐거운 줄 깨닫는다. 애달픈 줄 알면 속된 정이 그 자리에서 깨어지고, 즐거운 줄 알면 성인의 경지가 절로 이른다.

29가슴에 물욕이 없으면 눈앞이 트인다

胸中既無半點物欲,已如雪消爐焰冰消日。眼前自有一段空明,時見月在青天影在波。

가슴속에 반 점의 물욕도 없으면 이미 눈 녹듯 화롯불에 녹고 얼음 녹듯 햇살에 녹은 것이요, 눈앞에 한 조각 밝은 하늘이 절로 있으면 언제나 달이 푸른 하늘에 있고 그림자가 물결에 있음을 본다.

30시상은 파릉교 위에 있다

詩思在灞陵橋上,微吟就,林岫便已浩然。野興在鏡湖曲邊,獨往時,山川自相映發。

시상은 파릉교 위에 있으니 나직이 읊조리자 숲과 산굴이 문득 호연해지고, 들 흥취는 경호 굽이에 있으니 홀로 거닐 때 산과 내가 서로 비추어 어울린다.

31오래 엎드린 새가 높이 난다

伏久者,飛必高,開先者,謝獨早。知此,可以免蹭蹬之憂,可以消躁急之念。

오래 엎드린 새는 반드시 높이 날고, 먼저 핀 꽃은 홀로 일찍 진다. 이것을 알면 발 헛디딜 근심을 면할 수 있고 조급한 생각을 삭일 수 있다.

32관 뚜껑을 덮어야 안다

樹木至歸根日,而後知華萼枝葉之徒榮。人事至蓋棺,而後知子女玉帛之無益。

나무는 뿌리로 돌아가는 날에 이르러서야 꽃과 가지와 잎이 헛된 영화였음을 알고, 사람은 관 뚜껑을 덮는 날에 이르러서야 자손과 재물이 쓸데없음을 안다.

33참공(空)은 공이 아니다

真空不空。執相非真。破相亦非真。問世尊如何發付?在世出世,徇欲是苦,絶欲亦是苦。聽吾儕善自修持。

참된 공(空)은 공이 아니다. 형상에 집착함도 참이 아니요 형상을 깨뜨림도 참이 아니니, 묻노니 세존은 무어라 이르셨는가.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을 벗어나라. 욕심을 따름도 괴로움이요 욕심을 끊음도 괴로움이니, 우리 스스로 잘 닦아 지님에 달렸다.」

34열사는 천승도 사양하지만

烈士讓千乘,貪夫爭一文。人品星淵也,而好名,不殊好利。天子營家國,乞人號饔飧。位分霄壤也,而焦思,何異焦聲。

열사는 천승의 나라도 사양하고 탐부는 한 푼을 다투니 인품은 하늘과 땅 차이나, 이름을 좋아함은 이익을 좋아함과 다르지 않다. 천자는 나라를 경영하고 거지는 끼니를 부르짖으니 지위는 하늘과 땅 차이나, 애태우는 마음이 애타는 소리와 무엇이 다르랴.

35실컷 세상맛을 알고 나면

飽諳世味,一任覆雨翻雲,總慵開眼。會盡人情,隨教呼牛喚馬,只是點頭。

세상맛을 실컷 알고 나면 비 되든 구름 되든 뒤집히는 대로 맡겨 두고 눈뜨기조차 게을러지고, 인정을 다 깨치고 나면 소라 부르든 말이라 부르든 부르는 대로 두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36앞 생각을 붙잡지 말라

今人専求無念,而終不可無。只是前念不滯,後念不迎,但將現在的隨綠,打發得去,自然漸漸入無。

요즘 사람들은 오로지 무념을 구하나 끝내 없애지 못한다. 다만 앞 생각을 붙잡아 두지 말고 뒷 생각을 맞이하지 말며, 그저 지금의 인연을 따라 처리해 가면, 자연히 차츰 무(無)로 들어간다.

37우연히 마음에 맞으면 문득 가경

意所偶會,便成佳境,物出天然,纔見真機。若加一分調停布置,趣味便減矣。白氏云:意隨無事適,風逐自然清。有味哉,其言之也。

뜻이 우연히 맞으면 문득 아름다운 경지를 이루고, 물건은 천연에서 나와야 비로소 참기틀을 본다. 조금이라도 손보고 늘어놓으면 멋이 곧 준다. 백낙천이 「뜻은 일 없을 때 넉넉하고, 바람은 절로 불어올 때 맑다」 하였으니, 맛있도다 그 말이여.

38본성이 맑으면 밥 먹고 물 마셔도

性天澄徹,即饑喰渇飲,無非康済身心。心地沈迷,縱譚談禪演偈,總是播弄精魂。

본성이 맑게 트이면 배고파 밥 먹고 목말라 물 마셔도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지 않음이 없고, 마음자리가 흐리고 미혹하면 비록 선을 이야기하고 게송을 풀이해도 다 정신을 부질없이 희롱할 뿐이다.

39마음에 줄 없는 거문고

人心有個真境,非絲非竹,而自恬愉。不煙不茗,而自清芬。須念浄境空,慮忘形釋。纔得以游衍其中。

사람 마음에는 하나의 참된 경지가 있으니, 거문고와 피리가 아니어도 절로 편안하고 즐거우며 향과 차가 아니어도 절로 맑고 향기롭다. 모름지기 생각을 깨끗이 하고 경계를 비우며 근심을 잊고 형체를 놓아야, 비로소 그 가운데 노닐 수 있다.

40쇠는 광석에서 나오고

金自鑛出,玉從石生。非幻無以求真。道得酒中,仙遇花裏。雖雅不能離俗。

쇠는 광석에서 나오고 옥은 돌에서 난다. 헛것이 아니면 참됨을 구할 길이 없다. 도는 술 가운데서 얻기도 하고 신선은 꽃 속에서 만나기도 하니, 아무리 아담해도 속됨을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41천지 안의 만물은 다 한 몸

天地中萬物,人倫萬情,世界中萬事。以俗眼觀,紛紛各異,以道眼觀,種種是常。何煩分別,何用取捨。

천지 가운데 만물과 인륜의 만 가지 정과 세계의 만 가지 일은, 속된 눈으로 보면 어지러이 저마다 다르나 도의 눈으로 보면 갖가지가 다 늘 그러한 것이니, 어찌 번거로이 나누며 무엇하러 가리고 버리랴.

42베 이불 속의 화평

神酣布被窩中,得天地冲和之氣。味足藜羹飯後,識人生澹泊之真。

베 이불 좁은 잠자리에서 정신이 흐뭇하면 천지의 충화한 기운을 얻고, 명아주국에 밥 한 그릇으로 맛이 족하면 인생의 담박한 참맛을 안다.

43얽매임과 벗어남은 마음에 달렸다

纏脫只在自心。心了,則屠肆糟廛,居然浄土。不然,縱一琴一鶴,一花一卉,嗜好雖清,魔障終在。語云:「能休塵境爲真境,未了僧家是俗家。」信夫。

얽매임과 벗어남은 다만 제 마음에 달렸다. 마음이 깨치면 푸줏간과 술도가도 그대로 정토가 된다. 그러지 못하면 비록 거문고 하나 학 한 마리,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를 벗 삼아 즐김이 맑을지라도 마귀의 장애는 끝내 남는다. 옛말에 「쉴 줄 알면 티끌 세상도 참된 경계요, 깨치지 못하면 절간도 속가다」 하였으니 참으로 옳다.

44좁은 방에서도 만 가지 근심을 버리면

斗室中萬慮都捐,說甚畫棟飛雲,珠簾捲雨。三杯後一真自得,唯知素琴橫月,短笛吟風。

좁은 방 안에서 온갖 근심 다 버리면, 단청 올린 들보에 구름 날고 구슬발 걷고 비를 본다는 이야기를 새삼 말해 무엇하랴. 석 잔 술 뒤에 하나의 참됨을 스스로 얻으면, 오직 거문고를 달빛 아래 비껴 타고 피리를 바람에 읊조릴 줄 알 뿐이다.

45만물의 적막 속 한 소리

萬籟寂寥中,忽聞一鳥弄聲,便喚起許多幽趣。萬卉摧剝後,忽見一枝擢秀,便觸動無限生機。可見,性天未常枯槁,機神最宜觸發。

만뢰가 고요한 가운데 문득 새 한 마리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 문득 숱한 그윽한 멋을 불러일으키고, 온갖 초목이 시들어 진 뒤에 문득 빼어난 가지 하나가 솟은 것을 보면 문득 무한한 생기가 움직인다. 본성의 하늘은 늘 마른 적이 없고, 기틀의 정신은 부딪침에서 가장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