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집 3 (91~134조)後集
1놓음과 거둠의 자루
白氏云:「不如放身心冥然任天造。」晁氏云:「不如收身心凝然歸寂定。」放者流爲猖狂,收者入於枯寂。唯善操身心的,欛柄在手,收放自如。
백낙천은 「몸과 마음을 놓아 아득히 하늘 하는 대로 맡김만 못하다」 하고, 조보지는 「몸과 마음을 거두어 고요히 적정으로 돌아감만 못하다」 하였다. 놓기만 하면 미쳐 날뜀으로 흐르고 거두기만 하면 메마른 적막에 든다. 오직 몸과 마음을 잘 부리는 이라야, 자루를 손에 쥐고 거두고 놓음이 자유롭다.
2눈 오는 밤과 봄바람
當雪夜月天,心境便爾澄徹,遇春風和氣,意界亦自沖融。造化人心,混合無間。
눈 오는 밤 달 밝은 하늘을 만나면 심경이 문득 맑게 트이고, 봄바람의 화창한 기운을 만나면 뜻과 생각도 절로 무르녹는다. 조화와 사람 마음이 한데 섞여 틈이 없다.
3서툴 졸(拙) 한 글자
文以拙進,道以拙成。一拙字有無限意味。如桃源犬吠,桑間雞鳴,何等淳龐氣象。至於寒潭之月,古木之鴉,工巧中便覺有衰颯氣象矣。
글은 서툶으로 나아가고 도는 서툶으로 이루어지니, 서툴 졸(拙) 한 글자에 무한한 뜻이 있다. 복사꽃 마을에 개 짖고 뽕나무 사이에 닭 우는 것은 얼마나 순박한 기상인가. 찬 못의 달과 고목의 까마귀에 이르면, 공교한 가운데 문득 쇠락한 기상이 있음을 느낀다.
4내가 사물을 부리면
以我轉物者,得固不喜,失亦不憂,大地盡屬逍遙之境。以物役我者,逆固生憎,順亦生愛,一毛皆便纏縛之端。
내가 사물을 부리는 자는 얻어도 굳이 기뻐하지 않고 잃어도 근심하지 않으니 대지가 다 소요하는 마당이요, 사물이 나를 부리는 자는 거슬리면 미움이 나고 순하면 애착이 나니 터럭 하나에도 얽매인다.
5이치가 고요하면 일도 고요하다
理寂則事寂。遺事執理者,以去影留形。心空則境空去。境在心者,如聚羶卻蚋。
이치가 고요하면 일도 고요하다. 일을 버리고 이치만 잡는 것은 그림자를 버리고 형체만 남기려는 것이다. 마음이 비면 경계도 빈다. 경계를 버리고 마음만 남기려는 것은 비린 것을 모아 두고 파리를 쫓으려는 것과 같다.
6숨어 사는 이의 맑은 일
幽人清事總在自適其情。故酒以不勸爲歡,棋以不浄爲勝。笛以無腔爲適,琴以無絃爲高。會以不期約爲真率,客以不迎送爲坦夷。若一牽文泥迹,便落塵世苦海矣。
숨어 사는 이의 맑은 일은 모두 유유자적에 있다. 그러므로 술은 권하지 않음으로 기쁨을 삼고, 바둑은 다투지 않음으로 이김을 삼고, 피리는 구멍 없음으로 알맞음을 삼고, 거문고는 줄 없음으로 높음을 삼고, 만남은 기약 없음으로 참됨을 삼고, 손님은 마중과 배웅 없음으로 편안함을 삼는다. 한번 겉치레에 이끌리고 형식에 얽매이면, 곧 티끌세상 괴로움 바다에 떨어진다.
7나기 전과 죽은 뒤를 생각하면
試思未生之前有何象貌,又思既死之後作何景色,則萬念灰冷,一性寂然,自可超物外遊象先。
이 몸이 나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해 보고, 또 이미 죽은 뒤에는 어떤 모습이 될까 생각해 보라. 그러면 만 가지 생각이 재처럼 식고 한 성품만이 고요히 남아, 절로 만물 밖으로 나가 형상 이전의 세계에 노닐 수 있다.
8병들고서야 건강이 보배인 줄 알면 늦다
遇病而後思強之爲寶,處亂而後思平之爲福,非蚤智也。倖福而知其爲禍之本,貪生而先知其爲死之因,其卓見乎。
병든 뒤에 건강이 보배인 줄 생각하고 난리에 처한 뒤에 평화가 복인 줄 생각함은 일찍 아는 지혜가 아니다. 복을 바라는 것이 재앙의 근본인 줄 미리 알고, 삶을 탐하는 것이 죽음의 원인인 줄 먼저 안다면, 그것이야말로 탁월한 식견이다.
9배우가 분을 지우고 나면
優人傅粉調硃,效妍醜於毫端,俄而歌殘場罷,妍醜何在。弈者爭先競後,較雌雄於着子,俄而局盡子收,雌雄安在。
배우는 분 바르고 연지 찍어 붓끝으로 곱고 미움을 흉내 내지만, 이윽고 노래가 끝나고 마당이 파하면 곱고 미움이 어디 있는가. 바둑 두는 이는 앞뒤를 다투어 바둑돌로 승패를 겨루지만, 이윽고 판이 끝나고 돌을 거두면 이기고 짐이 어디 있는가.
10고요한 자가 주인이다
風花之瀟洒,雪月之空清,唯靜者爲之主。水木之榮枯,竹石之消長,獨閒者操其權。
바람과 꽃의 시원함과 눈과 달의 맑음은 오직 고요한 자가 그 주인이 되고, 물과 나무의 성하고 마름과 대와 돌의 자라고 스러짐은 홀로 한가한 자가 그 권리를 쥔다.
11들 늙은이의 온전한 천성
田父野叟,語以黄雞白酒,則欣然喜,問以鼎養食,則不知。語以藥袍裋褐,則油然樂,問以袞服,則不識。其天全,故其欲淡,此是人生第一個境界。
시골 늙은이는 닭백숙과 막걸리를 이야기하면 흔연히 기뻐하나 고급 요리를 물으면 알지 못하고, 무명 두루마기와 베잠방이를 이야기하면 유연히 즐거워하나 예복을 물으면 알지 못한다. 그 천성이 온전하므로 그 욕망이 담박하니, 이것이 인생 제일의 경계다.
12마음을 보겠다는 마음
心無其心,何有於觀。釋氏曰:觀心者,重增其障。物本一物,何待於齊。荘生曰:「齊物者,自剖其同。」
마음에 그 마음이 없는데 무슨 볼 것이 있으랴. 석가가 말한 「마음을 본다」는 것은 그 장애를 거듭 더할 뿐이다. 만물은 본래 한 물건인데 무슨 가지런히 할 것이 있으랴. 장자가 말한 「만물을 가지런히 한다」는 것은 같은 것을 스스로 갈라놓는 것이다.
13풍악이 한창일 때 옷자락을 떨치고
笙歌正濃處,便自拂衣長往,羨達人撒手懸崖。更漏已殘時,猶然夜行不休,笑俗士沈身苦海。
피리와 노래가 한창 무르익은 곳에서 문득 옷자락을 떨치고 멀리 떠나니, 통달한 사람이 벼랑에서 손을 놓는 것 같아 부럽다. 시각이 이미 다한 때에 오히려 밤길을 쉬지 않고 다니니, 속된 선비가 몸을 괴로움 바다에 담그는 것 같아 우습다.
14잡은 것이 굳거든 저자에 섞이라
把握未定者,宜絶迹塵囂。使此心不見可欲而不亂,庶以澄吾靜體。操持既堅者,又當混迹風塵。使此心見可欲而亦不亂,藉以養吾圓機。
마음의 잡음이 아직 굳지 못하거든 마땅히 시끄러운 티끌에서 발을 끊으라. 이 마음이 욕심낼 만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하여 어지럽지 않게 함으로써 내 고요한 바탕을 맑히라. 잡은 것이 이미 굳거든 다시 마땅히 풍진에 몸을 섞으라. 이 마음이 욕심낼 만한 것을 보고도 또한 어지럽지 않게 함으로써 내 원만한 기틀을 기르라.
15고요만 좋아하면 고요가 병
喜寂厭喧者,往往避人以求靜。不知,意在無人便成我相,心着於靜便是動根。如何到得人我一視,動靜兩忘的境界。
고요를 기뻐하고 시끄러움을 싫어하는 자는 흔히 사람을 피해 고요를 구한다. 뜻이 사람 없음에 있으면 곧 아상(我相)에 사로잡히고 마음이 고요에 집착하면 곧 움직임의 뿌리가 됨을 알지 못하니, 어찌 남과 나를 하나로 보고 움직임과 고요함을 둘 다 잊는 경계에 이르랴.
16산에 살면 가슴이 맑아진다
山居胸次清洒,觸物皆有佳思。見孤雲野鶴,而起超絶之想,遇石澗流泉,而動澡雪之思。撫老檜寒梅,而勁節與之挺立,侶沙鷗麋鹿,而機心與之頓忘。若一走入塵寰,無論物不相關,即此身亦屬贅瘤矣。
산에 살면 가슴속이 맑고 시원하여 부딪치는 것마다 다 아름다운 생각이 든다. 외로운 구름과 들의 학을 보면 세속을 뛰어넘는 생각이 일고, 돌 틈 흐르는 샘을 만나면 씻은 듯 깨끗해지려는 생각이 움직이고, 늙은 전나무와 찬 매화를 어루만지면 굳센 절개가 함께 우뚝 서고, 모래밭 갈매기와 사슴을 벗하면 잔꾀 부리는 마음이 그들과 더불어 문득 잊힌다. 그러나 한번 티끌세상에 발을 들이면, 바깥 것들과 상관하지 않더라도 이 몸부터가 벌써 군더더기가 되고 만다.
17흥이 나면 맨발로 풀밭을
興逐時來,芳草中撒履地閒行,野鳥忘機時作伴。景與心會,落花下披襟兀坐,白雲無語漫相留。
흥이 때를 타고 오면 향기로운 풀밭을 신도 없이 한가로이 거니니 들새도 겁내지 않고 벗이 되고, 경치가 마음에 어울리면 지는 꽃 아래 옷깃을 헤치고 우두커니 앉으니 흰 구름이 말없이 곁에 와 머문다.
18화복은 다 생각이 지어낸다
人生福境禍區,皆念想造成。故釋氏云:「利欲熾然,即是火坑;貪愛沈溺,便爲苦海;一念清淨即,烈熖成池,一念警覺即 ,船登彼岸。」念頭稍異,境界頓殊。可不慎哉。
인생의 복된 경계와 재앙의 자리는 다 생각이 지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가 이르기를 「이욕이 타오르면 그것이 곧 불구덩이요, 탐애에 빠지면 그것이 곧 괴로움 바다다. 한 생각이 청정하면 사나운 불꽃도 못이 되고, 한 생각을 깨달으면 배가 저 언덕에 오른다」 하였다.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경계가 문득 달라지니, 삼가지 않을 수 있으랴.
19새끼줄도 오래 쓸면 나무를 벤다
繩鋸木斷,水滴石穿。學道者須加力索。水到渠成,瓜熟蔕落。得道者一任天機。
새끼줄 톱도 오래 쓸면 나무를 자르고 물방울도 오래 떨어지면 돌을 뚫으니, 도를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힘써 찾기를 더하라. 물이 이르면 도랑이 이루어지고 참외가 익으면 꼭지가 떨어지니, 도를 얻으려는 자는 온전히 하늘 기틀에 맡기라.
20기틀이 쉬면 달이 이른다
機息時,便有月到風來,不必苦海人世。心遠處,自無車塵馬迹,何須痼疾丘山。
기틀이 쉬면 문득 달이 이르고 바람이 오니 굳이 인간 세상이 괴로움 바다일 것 없고, 마음이 멀면 절로 수레 먼지 말발굽 자취가 없으니 어찌 산언덕을 그리는 병이 필요하랴.
21초목은 떨어지면 다시 움튼다
草木纔零落,便露萌穎於根底。時序雖凝寒,終回陽氣於飛灰。粛殺之中, 生生之意常爲之主。即是可以見天地之心。
초목은 겨우 시들어 떨어지면 곧 뿌리 밑에 새싹을 내밀고, 계절은 비록 얼어붙는 추위라도 마침내 날리는 재에 볕 기운을 돌린다. 만물을 죽이는 기운 가운데도 자라나게 하는 뜻이 늘 주인이 되니, 여기서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다.
22비 갠 뒤 산빛
雨餘觀山色,景象便覺新妍。夜靜聽鐘聲,音響尤爲清越。
비 갠 뒤에 산빛을 보면 경치가 문득 새롭고 고움을 깨닫고, 밤이 고요한 가운데 종소리를 들으면 울림이 더욱 맑고 드높다.
23높이 오르면 마음이 트인다
登高使人心曠,臨流使人意遠。讀書於雨雪之夜,使人神清,舒嘯於丘阜之嶺,使人興邁。
높은 데 오르면 사람의 마음이 트이고, 흐르는 물에 서면 사람의 뜻이 멀어진다. 눈비 오는 밤에 책을 읽으면 사람의 정신이 맑아지고, 언덕 마루에서 휘파람을 불면 사람의 흥이 드높아진다.
24마음이 넓으면 만종도 질그릇
心曠則萬鐘如瓦缶,心隘則一髪似車輪。
마음이 넓으면 만종의 녹도 질항아리 같고, 마음이 좁으면 터럭 하나도 수레바퀴 같다.
25바람과 달과 꽃과 버들이 없으면
無風月花柳,不成造化。無情欲嗜好,不成心體。只以我轉物,不以物役我,則嗜慾莫非天機,塵情即是理境矣。
바람과 달과 꽃과 버들이 없으면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정욕과 기호가 없으면 마음 바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만 내가 사물을 부리고 사물이 나를 부리지 않게 하면, 기호와 욕망도 하늘 기틀 아닌 것이 없고 티끌 정도 곧 이치의 경계가 된다.
26제 한 몸을 깨친 사람이라야
就一身了一身者,方能以萬物付萬物。還天下於天下者,方能出世間於世間。
제 한 몸에 나아가 그 한 몸을 깨친 사람이라야 바야흐로 만물을 만물에 맡길 수 있고, 천하를 천하에 돌려주는 사람이라야 바야흐로 세간 속에서 세간을 벗어날 수 있다.
27너무 한가하면 딴생각이 난다
人生太閒,則別念竊生,太忙,則真性不現。故士君子不可不抱身心之憂,亦不可不耽風月之趣。
인생이 너무 한가하면 딴생각이 슬며시 생기고, 너무 바쁘면 참된 본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비는 몸과 마음의 근심을 지니지 않을 수 없고, 또한 풍월의 멋을 즐기지 않을 수 없다.
28고요 속에 마음이 밝으면
人心多從動處失真。若一念不生,澄然靜坐,雲興而悠然共逝,雨滴而冷然倶清,鳥啼而欣然有會,花落而瀟然自得。何地非真境,何物無真機。
사람 마음은 흔히 움직이는 데서 참됨을 잃는다. 만약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 맑게 고요히 앉으면, 구름이 일면 유연히 함께 가고, 빗방울이 지면 서늘히 함께 맑아지고, 새가 울면 흔연히 느끼는 바 있고, 꽃이 지면 소연히 스스로 얻는다. 어느 곳인들 참된 경계가 아니며 어느 것인들 참된 기틀이 없으랴.
29기쁨 속의 근심, 근심 속의 기쁨
子生而母危,鏹積而盜窺,何喜非憂也。貧可以節用,病可以保身,何憂非喜也。故達人當順逆一視而欣戚兩忘。
자식이 나면 어미가 위태롭고 돈꿰미가 쌓이면 도둑이 엿보니, 어느 기쁨이 근심 아니랴. 가난은 씀씀이를 아끼게 하고 병은 몸을 보전하게 하니, 어느 근심이 기쁨 아니랴. 그러므로 통달한 사람은 순경과 역경을 하나로 보아 기쁨과 슬픔을 둘 다 잊는다.
30귀는 바람 골짜기처럼
耳根似颷谷投響,過而不留,則是非倶謝。心境如月池浸色,空而不着,則物我兩忘。
귀는 회오리바람이 골짜기에 소리를 던지는 것같이 하여, 지나가면 담아 두지 않으면 시비도 함께 사라진다. 마음은 달빛이 못에 빛을 담그는 것같이 하여, 비어서 붙잡지 않으면 사물과 나를 둘 다 잊는다.
31세상이 티끌인가, 마음이 티끌인가
世人爲榮利纏縛,動曰塵世苦海。不知雲白山青,川行石立,花迎鳥笑,谷答樵謳。世亦不塵,海亦不苦,彼自塵苦其心爾。
세상 사람들은 영화와 이익에 얽매여 걸핏하면 티끌세상이니 괴로움 바다니 말하지만, 구름 희고 산 푸르며 냇물 흐르고 바위 서 있으며 꽃이 맞고 새가 웃으며 골짜기가 나무꾼의 노래에 화답하는 줄은 알지 못한다. 세상은 티끌이 아니요 바다도 괴로움이 아니건만, 저들 스스로 제 마음을 티끌로 만들고 괴롭게 할 뿐이다.
32꽃은 반쯤 핀 것을 보라
花看半開,酒飲微醉。此中大佳趣。若至爛熳骸醄,便成悪境矣。履盈滿者,宜思之。
꽃은 반쯤 핀 것을 보고 술은 살짝 취하도록 마시면, 이 가운데 크게 아름다운 멋이 있다. 흐드러지게 피고 곤드레로 취하면 곧 추악한 경계가 되니, 가득 찬 자리에 있는 이는 마땅히 이를 생각할 일이다.
33산나물은 심지 않아도 향기롭다
山肴不受世間灌漑,野禽不受世間拳養,其味皆香而且冽。吾人能不爲世法所點染,其臭味不迥然別乎。
산나물은 세상의 물 대고 가꿈을 받지 않고 들새는 세상의 기름을 받지 않으나 그 맛이 다 향기롭고 맑다. 우리 사람도 세상 법도에 물들지 않을 수 있다면, 그 품격이 어찌 확연히 다르지 않으랴.
34꽃 가꾸고 학 보는 일에도
栽花種竹,玩鶴觀魚,亦要有段自得處。若徒留連光景,玩弄物華,亦吾儒之口耳,釋氏之頑空而已。有何佳趣。
꽃을 가꾸고 대를 심으며 학을 즐기고 물고기를 바라보는 데도 또한 스스로 얻는 바가 있어야 한다. 만약 한갓 눈앞 경치에 머물러 물건의 화려함만 희롱한다면, 또한 우리 유가의 구이지학이요 불가의 완공일 뿐이니 무슨 아름다운 멋이 있으랴.
35산림의 선비와 저잣거리
山林之士,清苦而逸趣自饒,農野之夫,鄙略而天真渾具。若一矢身市井伹儈,不若轉死溝壑,神骨猶清。
산림의 선비는 맑게 가난하나 그윽한 멋이 절로 넉넉하고, 들녘의 농부는 거칠고 소박하나 천진을 온통 갖추었다. 만약 한번 몸을 저자의 거간꾼으로 떨어뜨리면, 도랑에 굴러 죽을지언정 정신과 뼈대가 오히려 맑음만 못하다.
36분수 밖의 복은 함정
非分之福,無故之獲,非造物之釣餌,即人世之機妌。此處着眼不高,鮮不墮彼術中矣。
분수 밖의 복과 까닭 없는 얻음은 조물주의 낚싯밥이 아니면 인간 세상의 함정이다. 이런 곳에서 눈을 높이 두지 않으면 그 술수에 떨어지지 않을 이가 드물다.
37인생은 본래 꼭두각시
人生原是一傀儡,只要根蒂在手。一線不亂,卷舒自由,行止在我。一毫不受他人提掇,便超出此場中矣。
인생은 본래 하나의 꼭두각시니, 다만 그 밑동을 손에 쥐고 있으라. 한 가닥 줄도 헝클어짐 없이 감고 풂이 자유로우면 가고 멈춤이 나에게 있으니, 털끝만큼도 남의 조종을 받지 않으면 곧 이 놀이판을 벗어난 것이다.
38일 하나 일면 해 하나 생긴다
一事起則一害生。故天下常以無事爲福。讀前人詩云:「勸君莫話封候事,一將功成萬骨枯。」又云:「天下常令萬事平,匣中不惜千年死。」雖有雄心猛氣,不覺化爲冰霰矣。
일 하나가 일어나면 해 하나가 생긴다. 그러므로 천하는 늘 일 없음을 복으로 삼는다. 옛사람의 시를 읽으니 「그대에게 권하노니 제후에 봉해지는 일일랑 말하지 말라. 장수 하나 공을 이루는 데 만 사람의 뼈가 마른다」 하였고, 또 「천하가 늘 만사 태평하다면 칼집 속 천 년을 썩어도 아깝지 않다」 하였다. 영웅의 마음과 사나운 기개가 있더라도, 저도 모르게 얼음 녹듯 사라진다.
39음탕한 여인도 머리 깎으면
婬奔之婦,矯而爲尼,熱中之人,激而入道。清浄之門,常爲婬邪之淵藪也如此。吁,可嗤已。
음탕하던 여인도 극에 달하면 머리를 깎아 비구니가 되고, 명리에 달뜬 사람도 격해지면 불문에 든다. 청정해야 할 문이 늘 음사의 소굴이 되는 것이 이와 같다. 아, 가히 탄식할 일이로다.
40파도 속의 배 안과 배 밖
波浪兼天,舟中不知懼,而舟外者寒心。猖狂罵坐,席上不知警,而席外者咋舌。故君子身雖在事中,心要超事外也。
물결이 하늘에 닿을 때 배 안에 있는 이는 두려움을 모르나 배 밖의 사람이 마음 졸이고, 미치광이가 좌중을 욕할 때 그 자리에 있는 이는 경계할 줄 모르나 자리 밖의 사람이 혀를 찬다. 그러므로 군자는 몸이 일 가운데 있더라도 마음은 그 일 밖으로 벗어나 있어야 한다.
41하나를 덜면 하나를 벗어난다
人生減省一分,便超脫一分。如交遊減,便免紛擾,言語減便寡愆尤,思慮減,則精神不耗,聡明減則混沌可完。彼不求日減而求日增者,真桎梏此生哉。
인생은 한 푼을 덜면 곧 한 푼을 벗어난다. 사귐을 덜면 시끄러움을 면하고, 말을 덜면 허물이 적어지고, 생각을 덜면 정신이 소모되지 않고, 총명을 덜면 본바탕을 온전히 할 수 있다. 날로 덜기를 구하지 않고 날로 더하기를 구하는 자들은, 참으로 이 삶을 스스로 묶는 것이로다.
42내 마음의 얼음과 숯
天運之寒暑易避,人世之炎凉難除。人世之炎凉易除,吾心之冰炭難去。去得此中之冰炭,則滿腔皆和氣,自隨地有春風矣。
천운의 추위와 더위는 피하기 쉬워도 인간 세상의 덥고 서늘함은 없애기 어렵고, 인간 세상의 덥고 서늘함은 없애기 쉬워도 내 마음의 얼음과 숯불은 버리기 어렵다. 이 마음속의 얼음과 숯불을 버릴 수 있으면, 가슴 가득 다 온화한 기운이라 가는 곳마다 절로 봄바람이 인다.
43차를 굳이 좋은 것만 구하지 않는다
茶不求精而壺亦不燥,酒不求冽而樽亦不空。素琴無絃而常調,短笛無腔而自適。縱難超越羲皇之世。,亦可匹儔荊嵆阮之倫。
차는 굳이 좋은 것만 구하지 않으니 찻주전자가 마를 날 없고, 술은 굳이 독한 것만 구하지 않으니 술동이가 빌 때 없다. 꾸밈없는 거문고는 줄이 없어도 늘 고르고, 짧은 피리는 구멍이 없어도 절로 즐겁다. 비록 복희씨의 세상은 뛰어넘기 어려워도, 죽림의 혜강·완적의 무리와는 짝할 만하리라.
44수연과 소위 넉 자
釋氏之隨綠,吾儒之素位,四字是渡海的浮嚢。蓋世路茫茫,一念求全,則萬緒紛起。惟隨寓而安則無入不自得矣。
불가의 수연(隨緣)과 우리 유가의 소위(素位), 이 넉 자야말로 바다를 건너는 부낭이다. 대개 세상길은 아득하여 한 생각으로 완전함을 구하면 만 갈래 실마리가 어지러이 일어나니, 처지를 따라 편안하면 가는 곳마다 얻지 못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