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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장 — 도화道化

도덕경 道德經 · 노자(老子), 주석 왕필(王弼)·하상공(河上公) · 기원전 4~3세기 (왕필 주는 3세기) · 단락 3 · 한자 73자 · 낭독 0.3분

「도덕경」 덕경 「42장 — 도화」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여든한 장, 오천 자. 무덤에서 나온 백서본이 오늘 쓰는 판본과 글자가 달라, 같은 구절을 두고 읽기가 갈리는 자리가 많다. 왕필은 철학으로, 하상공은 다스림과 양생으로 읽는다.

1도가 하나를 낳는다

道生一,一生二,二生三,三生萬物。萬物負陰而抱陽,沖氣以為和。人之所惡,唯孤﹑寡﹑不穀,而王公以為稱。故物或損之而益,或益之而損。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으며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안으며 빈 기운으로 어울림을 삼는다. 사람이 싫어하는 것은 오직 외로운 이, 덕 적은 이, 곡식만 못한 이인데 임금과 공이 이로써 일컬음을 삼는다. 그러므로 사물은 더러 덜어서 더해지고 더러 더해서 덜린다.

주 10
王弼

萬物萬形,其歸一也,何由致一,由於無也。由無乃一,一可謂無,已謂之一,豈得無言乎。有言有一,非二如何?有一有二,遂生乎三,從無之有,數盡乎斯,過此以往,非道之流,故萬物之生,吾知其主,雖有萬形,沖氣一焉。百姓有心,異國殊風,而得一者,王侯主焉。以一為主,一何可舍,愈多愈遠,損則近之,損之至盡,乃得其極。既謂之一,猶乃至三,況本不一而道可近乎,損之而益,豈虛言也。

만물의 만 가지 꼴이 그 돌아감은 하나다. 무엇으로 하나에 이르는가. 없음에서 말미암는다. 없음에서 말미암아 하나가 되니, 하나를 없음이라 이를 만하다. 그런데 이미 하나라고 일렀으니 어찌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말이 있고 하나가 있으니 둘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나가 있고 둘이 있으니 마침내 셋이 생긴다. 없음에서 있음으로 가는 수가 여기서 다하니, 이를 지나 나아가면 도의 흐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생겨남에 내가 그 주인을 아니, 비록 만 가지 꼴이 있어도 빈 기운으로는 하나다. 백성에게 마음이 있고 나라마다 풍속이 달라도 하나를 얻은 이가 임금으로 주인이 된다. 하나를 주인으로 삼으니 하나를 어찌 버리겠는가. 많을수록 멀어지고 덜수록 가까워지니, 덜고 덜어 다함에 이르러야 그 끝을 얻는다. 이미 하나라 일렀는데도 오히려 셋에 이르는데, 하물며 본디 하나가 아니면서 도에 가까울 수 있겠는가. 덜어서 더해진다는 것이 어찌 빈말이겠는가.

河上公

道使所生者一也。

河上公

一生陰與陽也。

河上公

陰陽生和、清、濁三氣,分為天地人也。

河上公

天地人共生萬物也,天施地化,人長養之也。

河上公

萬物無不負陰而向陽,迴心而就日。

河上公

萬物中皆有元氣,得以和柔,若胸中有藏,骨中有髓,草木中有空虛與氣通,故得久生也。

河上公

孤寡不轂者,不祥之名,而王公以為稱者,處謙卑,法空虛和柔。

河上公

引之不得,推之必還。

河上公

夫增高者志崩,貪富者致患。

2남이 가르치는 바를 나도 가르친다

人之所教,我亦教之。

남이 가르치는 바를 나 또한 가르친다.

주 3
王弼

我之非強使人從之也,而用夫自然,舉其至理,順之必吉,違之必凶。故人相教,違之自取其凶也,亦如我之教人,勿違之也。

내가 억지로 사람을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 절로 그러함을 쓰는 것이다. 그 지극한 이치를 들어 따르면 반드시 길하고 어기면 반드시 흉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서로 가르치되 어기면 스스로 그 흉함을 취하니, 또한 내가 남을 가르칠 때 어기지 말라 하는 것과 같다.

河上公

謂眾人所教,去弱為強,去柔為剛。

河上公

言我教眾人,使去強為弱,去柔為剛。

3굳세고 사나운 자는 제명에 죽지 못한다

強梁者不得其死,吾將以為教父。

굳세고 사나운 자는 제명에 죽지 못하니, 나는 이를 가르침의 아비로 삼겠다.

주 3
王弼

强梁則必不得其死。人相教為强梁,則必如我之教人不當為强梁也。舉其強梁不得其死以教邪。若云順吾教之必吉也,故得其違教之徒,適可以為教父也。

굳세고 사나우면 반드시 제명에 죽지 못한다. 사람들이 서로 굳세고 사나워지라 가르친다면, 반드시 내가 남에게 굳세고 사나워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과 같아야 한다. 그 굳세고 사나운 자가 제명에 죽지 못함을 들어 가르치는 것이다. 내 가르침을 따르면 반드시 길하다고 말한다면, 그 가르침을 어기는 무리야말로 가르침의 아비로 삼을 만하다.

河上公

強粱者,謂不信玄妙,背叛道德,不從經教,尚勢任力也。不得其死者,為天命所絕,兵刃所伐,王法所殺,不得以壽命死。

河上公

父,使也。老子以強梁之人為教,誡之始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