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 계원필경집 서 — 홍석주校印桂苑筆耕集序 洪奭周
1근본을 무겁게 여기는 뜻
《記》有之,曰:「酒醴之美,而玄酒明水之尙,貴五味之本也。黼黻文繡之美,而疏布之尙,反女功之始也。」古之君子必重其本始如此。
『예기』에 이런 말이 있다. 「술과 단술이 맛있어도 현주(玄酒)와 명수(明水)를 높이는 것은 다섯 맛의 근본을 귀히 여기는 것이요, 보불(黼黻) 무늬 비단이 아름다워도 거친 베를 높이는 것은 여자 일의 시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옛 군자가 반드시 그 근본과 시작을 무겁게 여긴 것이 이와 같았다.
2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
吾東方之有文章而能著書傳後者,自孤雲崔公始,吾東方之士北學于中國,而以文聲天下者,亦自崔公始。崔公之書傳于後者,唯《桂苑筆耕》與《中山覆簣集》二部,是二書者,亦吾東方文章之本始也。
우리 동방에 문장이 있어 책을 지어 뒤에 전한 이는 고운 최공에서 비롯하고, 우리 동방의 선비가 북쪽으로 중국에 가서 배워 글로 천하에 이름을 떨친 이도 최공에서 비롯한다. 최공의 책으로 뒤에 전하는 것은 오직 『계원필경』과 『중산복궤집』 두 부이니, 이 두 책은 또한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다.
3문집은 넘치는데 최공의 책을 아는 이가 드물다
吾東方以文爲尙,至我朝益煥以融,家燕、許而戶曹、劉,以詩若文成集者,無慮充棟宇矣,而顧鮮有知崔公之書者。
우리 동방은 글을 숭상하여 우리 조선에 이르러 더욱 빛나고 무르익어, 집집마다 연국공(燕國公)·허국공(許國公)이요 문마다 조식·유정이라, 시와 글로 문집을 이룬 것이 헤아릴 것 없이 집을 채우는데, 돌아보면 최공의 책을 아는 이는 드물다.
4거의 끊어질 뻔한 책
余嘗見近代人所撰《東國書目》,有載《中山覆簣集》者,徧求之,終不可得。唯《桂苑筆耕》二十卷,爲吾家先世舊藏,自童幼時,知珍而玩之。然間以語人,雖博雅能文而好古者,亦皆言未曾見,然則是書也,幾乎絶矣。使是書不行于東方,是玄酒不設于太室,而疏布不羃于犧罇也,豈所以敎民不忘本哉?
내가 일찍이 근래 사람이 엮은 『동국서목』을 보니 『중산복궤집』이 실려 있어 두루 구하였으나 끝내 얻지 못하였다. 오직 『계원필경』 스무 권만 우리 집안 선대의 옛 소장이라 어릴 때부터 보배로 여겨 아껴 보았다. 그러나 이따금 남에게 말하면 박아하고 글에 능하며 옛것을 좋아하는 이라도 다 본 적이 없다 하니, 그렇다면 이 책은 거의 끊어질 뻔한 것이다. 이 책이 동방에 다니지 않게 한다면 이는 태실에 현주를 놓지 않고 희준(犧罇)에 거친 베를 덮지 않는 것이니, 어찌 백성에게 근본을 잊지 말라고 가르치는 도리이겠는가.
5변려문이라 흠잡는 이에게
世或謂:「公文皆騈儷、四六,殊不類古作者。」公之入中國,在唐懿、僖之際,中國之文,方專事騈儷,風會所趨,固有不得而免者。然觀公所爲辭,往往多華而不浮。如《檄黃巢》一篇,氣勁意直,絶不以雕鏤爲工,至其詩平易近雅,尤非晩唐人所可及。是蓋以明水、疏布之質,而兼有乎酒醴、黼黻之美者,豈不彌可珍哉?
세상에서 더러 「공의 글은 다 변려문 사륙문이라 옛 작가와는 사뭇 다르다」 한다. 공이 중국에 들어간 것은 당 의종·희종 사이라 중국의 글이 바야흐로 변려문에만 힘쓰던 때이니, 풍조가 쏠리는 바를 참으로 면하지 못할 것이 있었다. 그러나 공이 지은 글을 보면 흔히 화려하되 들뜨지 않는다. 「격황소」 한 편 같은 것은 기운이 굳세고 뜻이 곧아 결코 새기고 다듬는 것을 솜씨로 삼지 않았고, 그 시에 이르러서는 평이하고 아담하여 더욱 만당 사람이 미칠 바가 아니다. 이는 대개 명수와 거친 베의 바탕으로 술과 보불의 아름다움까지 겸한 것이니 어찌 더욱 보배롭지 않겠는가.
6헌신짝처럼 버리고 돌아와
公在中國,取科第入軍府,亦旣已聲施當時矣,而一朝去之如脫屣。及歸東方,躋翰苑貳兵部,以至阿飡,阿飡者,新羅大官。其顯用方未已也,而顧又自放於山林寂寞之濱,以終老其身而不悔,蓋度其時之皆不可有爲也。
공은 중국에서 과거에 오르고 군부에 들어가 이미 당시에 이름을 떨쳤는데, 하루아침에 헌신짝 벗듯 버리고 떠났다. 동방에 돌아와서는 한림원에 오르고 병부 차관을 지내 아찬에 이르렀으니 아찬은 신라의 큰 벼슬이다. 그 드러나게 쓰임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돌아보아 다시 스스로 산림의 쓸쓸한 물가에 몸을 놓아 늙어 죽도록 뉘우치지 않았으니, 대개 그 때가 다 무엇을 할 수 없음을 헤아린 것이다.
7나아가고 물러남에 때를 잃지 않은 이
士君子立身蹈道,莫有大乎出處之際,出處而不失其時,非賢者,不能也。賢者之作,固不可使其無傳,況其文傑然如彼,而又爲東國文章之本始者哉?
선비가 몸을 세우고 도를 밟는 데 나아가고 물러나는 즈음보다 큰 것이 없으니, 나아가고 물러남에 그 때를 잃지 않는 것은 어진 이가 아니면 할 수 없다. 어진 이의 저술은 참으로 전함이 없게 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그 글이 저처럼 우뚝하고 또 동국 문장의 근본과 시작이 되는 것임에랴.
8서준평이 활자로 찍다
湖南觀察使徐公準平,卽余所稱博雅能文而好古者也。聞余蓄是書,亟取而校之,捐其俸搨以活字,得數十百本,用廣其傳曰:「不可使是書絶于東國也。」
호남 관찰사 서공 준평은 곧 내가 박아하고 글에 능하며 옛것을 좋아한다고 일컫는 이다. 내가 이 책을 간직한 것을 듣고 급히 가져다 교정하고 제 녹봉을 덜어 활자로 찍어 수십 수백 본을 얻어 그 전함을 넓히며 말하였다. 「이 책이 동국에서 끊어지게 할 수는 없다.」
9서공의 마음 씀
嗚呼!不忘本始,敎民厚也;表章賢人,勸民善也。徐公之用心也如此,其所以爲政於湖南者,亦可知已。役旣完,徐公屬余曰:「子實傳是書,今不可以靳一言。」余辭不能得。若崔公之蹟行本末與是書之可備考證者,徐公之序詳之矣,余無所復贅云。
아, 근본을 잊지 않음은 백성을 두텁게 가르치는 것이요, 어진 이를 드러냄은 백성에게 선을 권하는 것이다. 서공의 마음 씀이 이와 같으니 그가 호남에서 정사하는 바도 알 만하다. 일이 다 끝나자 서공이 나에게 부탁하였다. 「그대가 실로 이 책을 전하였으니 이제 한마디를 아낄 수 없다.」 내가 사양하였으나 되지 않았다. 최공의 행적 본말과 이 책에서 고증할 만한 것은 서공의 서문에 자세하니 나는 다시 덧붙일 것이 없다.
10갑오년 구월
甲午九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豐山洪奭周序。
갑오년 구월,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좌의정 풍산 홍석주가 서문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