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계원필경집 › 권4 주장

아우 축을 다시 면주자사에 제수한 것에 사례하는 장謝弟柷再除綿州刺史狀

계원필경집 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 886년 (당 중화 6·신라 헌강왕 12) · 단락 2 · 한자 243자 · 낭독 1.0분

「계원필경집」 권4 주장 「아우 축을 다시 면주자사에 제수한 것에 사례하는 장」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면주자사 고축

綿州刺史高柷

면주자사 고축.

2백성이 붙잡아 다시 자사가 되다

右件官。是臣堂弟。今得進奏院狀報。奉某月日恩制。除授金吾將軍。被軍州官衆狀擧留。續准勑旨。依前授綿州刺史者。恩資鳳扆。喜集鴒原。形影光輝。精魂震越。伏以高柷早從裾履。免墜箕裘。旣懸報主之誠。得習牧人之術。昨者忝膺寵寄。粗擧政條。銀水金山。曾無自潤。帶牛佩犢或有可觀。振家聲廉愼之名。致郡俗擧留之請。況乃秩假帝之喉舌。官登王之爪牙。仕宦旣榮。分憂又重。柷也必遵勗勵。更愼撫綏。不辜署劍之恩。以謝擁轅之衆。臣亦申敎誨。俾贖貪叨。俱在朝之盛儀。雖慙前哲。各爲郡之淸譽。可畏後生。共資綽綽之詩。冀播優優之政。臣限拘藩鎭。不獲稱謝行在。無任感恩抃躍之至。謹奉狀陳謝。謹奏。

위 관원은 신의 사촌 아우입니다. 이제 진주원의 장보를 받으니 아무 달 아무 날 은혜로운 제서를 받들어 금오장군에 제수되었다가 군주의 관원과 백성이 장으로 붙잡기를 청하여 이어 칙지에 준하여 예전대로 면주자사에 제수하셨다 합니다. 은혜는 봉황 병풍에서 나오고 기쁨은 할미새 언덕에 모여 형체와 그림자가 빛나고 정신과 넋이 놀라 뜁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고축은 일찍이 옷자락과 신발을 따라 가업을 떨어뜨리지 않고 이미 임금에게 보답하는 정성을 걸어 백성 다스리는 술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 외람되이 총애의 부탁을 받아 대략 정사의 조목을 들어 은수·금산에서 일찍이 스스로 윤택함이 없었고 소를 두르고 송아지를 찬 것은 혹 볼 만하였으니, 집안 이름을 떨친 청렴하고 삼가는 명성이 고을 풍속에서 붙잡기를 청하는 것을 이루었습니다. 하물며 품계는 황제의 목구멍과 혀를 빌리고 관은 왕의 손톱과 어금니에 올랐으니 벼슬이 이미 영광스럽고 근심을 나누는 것이 또 무겁습니다. 축은 반드시 힘쓰라는 가르침을 따라 다시 어루만짐을 삼가 칼을 준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수레를 안은 무리에게 사례할 것입니다. 신도 가르침을 펴 탐욕과 외람됨을 속죄하게 하겠습니다. 함께 조정에 있는 성대한 의식은 비록 옛 어진 이에게 부끄러우나 각기 고을을 위한 맑은 명예는 후생이 두려워할 만하니, 함께 넉넉하다는 시에 바탕하여 너그러운 정사를 펴기 바랍니다. 신은 번진에 매여 행재소에서 사례하지 못하니 은혜에 감격하여 손뼉 치고 뛰는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장을 받들어 사례하니, 삼가 아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