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계원필경집 › 권4 주장

조카 굉약을 제(濟)로 개명하고 양주대도독부 좌사마에 제수한 것에 사례하는 장謝侄男宏約改名濟除授楊州大都府左司馬狀

계원필경집 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 886년 (당 중화 6·신라 헌강왕 12) · 단락 2 · 한자 210자 · 낭독 0.8분

「계원필경집」 권4 주장 「조카 굉약을 제(濟)로 개명하고 양주대도독부 좌사마에 제수한 것에 사례하는 장」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전 악주 도단련부사 고구

前鄂州都團練副使朝議郞檢校祠部郞中兼侍御史柱國賜緋魚袋高劬

전 악주 도단련부사 조의랑 검교사부낭중 겸 시어사 주국 사비어대 고구.

2조카 구를 협내 자사로 청하며

右件官。是臣親姪男。粗詳吏術。早忝官裳。始佐理於江陽。旋從知於寒壤。實得片言以折獄。未嘗枉道而事人。遂荷寵榮。已登班列。尋叨命服。久倅廉車。方當寇盜喧驚。亦有籌謀施展。加以每遵家法。願報國恩。宗族稱孝悌之名。僚友許溫恭之行。臣是以輒思內擧。敢具上陳。引以進之。守戴禮之深義。惟善所擧。憑魯書之美譚。伏乞聖慈俯鑑忠懇。特賜除授峽內刺史。劬也必能勵心從政。常銘馬援之言。竭力分憂。不負謝安之擧。干黷宸扆。無任兢惶。謹錄奏聞。伏聽勑旨。

위 관원은 신의 친조카로 관리의 술을 대략 알고 일찍이 외람되이 관복을 입어, 처음 강양에서 다스림을 돕고 이어 차가운 땅에서 앎을 따랐으니 실로 한마디로 옥사를 결단하고 도를 굽혀 남을 섬긴 적이 없습니다. 마침내 총영을 입어 이미 반열에 오르고 곧 명복을 외람되이 받아 오래 염거의 부관이 되었으니, 바야흐로 도적이 시끄럽게 놀랄 때를 당하여 또한 계책을 펼침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늘 가법을 따라 나라 은혜에 보답하기를 바라 종족은 효제의 이름을 일컫고 동료는 온공한 행실을 허락합니다. 신은 그러므로 문득 안으로 천거할 것을 생각하여 감히 위에 아뢰니, 「끌어서 나아가게 한다」는 『대대례』의 깊은 뜻을 지키고 「오직 선한 이를 천거한다」는 노나라 사서의 아름다운 말에 기댑니다. 엎드려 빌건대 성상의 자애로 충성스러운 간절함을 굽어 살피시어 특별히 협내 자사에 제수하소서. 구는 반드시 마음을 힘써 정사에 종사하여 늘 마원의 말을 새기고 힘을 다해 근심을 나누어 사안의 천거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성상의 자리를 더럽히니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적어 아뢰니 칙지를 엎드려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