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계원필경집 › 권5 주장

천정군 임종해 등의 옷과 양식을 논하여 아뢰는 장奏論天征軍任從海等衣糧狀

계원필경집 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 886년 (당 중화 6·신라 헌강왕 12) · 단락 2 · 한자 329자 · 낭독 1.3분

「계원필경집」 권5 주장 「천정군 임종해 등의 옷과 양식을 논하여 아뢰는 장」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천정군 이백팔십칠 명

天征軍都將任從海及節級軍將並官健摠二百八十七人

천정군 도장 임종해와 절급 군장 및 관건 모두 이백팔십칠 명.

2서천이 끊은 양식을 돌려주소서

右臣得都將任從海及節級狀。稱自赴征行。已逾五載。累曾沿海襲賊。上江防虞。去年軍都放廻本道。從海等且在當府。願隨行營者。各得家信。知西川已停衣糧。伏緣從海等皆是貧寒。更無營業。彼處父母親屬。便須委壑塡溝。請具奏論。乞還衣糧者。謹按史記釋云。天子車駕所至。則人臣爲僥幸。賜人爵有級數。或賜田租之半。故因謂之幸也。伏以任從海等萬里從戎。五年于役。不辭艱險。願盡勤勞。今者身在東吳。職居西蜀。此方苦於羇旅。彼已停其衣糧。遠路音書。難寫征人之恨。貧家親戚。先懷餓殍之憂。伏遇陛下暫幸龜城。未廻龍闕。三川草木。別有光榮。萬戶烝黎。永能蘇息。而任從海等久離本鎭。不睹殊恩。望雨露之均沾。恨煙波之迥隔。固堪傷憫。輒具奏論。伏乞聖慈允臣所請。特令本道却給全糧。所冀鳳駕巡遊。士卒皆知其有幸。鴻慈煦育。君親必表於無私。謹具錄奏聞。伏聽勑旨。

위는, 신이 도장 임종해와 절급의 장을 받으니 「정벌에 나선 뒤로 이미 다섯 해가 넘어 여러 번 연해에서 적을 습격하고 상강에서 방비하였는데, 지난해 군도가 본도로 놓아 보냈으나 종해 등은 우선 당부에 있어 행영을 따르기를 원하였더니, 각기 집 소식을 받고 서천이 이미 옷과 양식을 끊은 것을 알았습니다. 종해 등은 다 가난하고 달리 생업이 없어 저곳의 부모와 친속이 곧 골짜기와 도랑에 묻힐 것이니 갖추어 아뢰어 논하여 옷과 양식을 돌려주기를 빌어 주소서」 하였습니다. 삼가 『사기』 주석을 살피니 「천자의 거가가 이르는 곳에서는 신하에게 요행이 되니 사람에게 작위를 급수에 따라 내리고 혹 밭 세의 반을 내리므로 이로 말미암아 행(幸)이라 한다」 하였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임종해 등은 만 리에서 군사를 따라 다섯 해를 부역하며 어려움과 험함을 사양하지 않고 부지런함을 다하기 원하였는데, 이제 몸은 동오에 있고 직은 서촉에 있어 이곳에서는 나그네살이에 괴롭고 저곳에서는 이미 그 옷과 양식을 끊었으니, 먼 길의 소식은 정벌 나간 사람의 한을 적기 어렵고 가난한 집 친척은 먼저 굶어 죽는 근심을 품습니다. 폐하께서 잠시 귀성에 행차하시고 아직 용궐에 돌아가지 않으시어 삼천의 초목도 따로 광영이 있고 만호의 백성이 길이 되살아나는데, 임종해 등은 오래 본진을 떠나 특별한 은혜를 보지 못하여 비와 이슬이 고루 젖기를 바라며 연파가 아득히 막힘을 한하니 참으로 아파하고 가엾이 여길 만하여 문득 갖추어 아뢰어 논합니다. 엎드려 빌건대 성상의 자애로 신의 청을 윤허하시어 특별히 본도로 하여금 온전한 양식을 도로 주게 하소서. 바라는 바는 봉가가 순유하심에 사졸이 다 그 행운을 알고 큰 자애로 따뜻이 기르심에 임금이 어버이처럼 반드시 사사로움 없음을 표하는 것입니다. 삼가 갖추어 적어 아뢰니 칙지를 엎드려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