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계원필경집 › 권5 주장

병사를 뽑아 보내는 일을 논하여 아뢰는 장奏論抽發兵士狀

계원필경집 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 886년 (당 중화 6·신라 헌강왕 12) · 단락 2 · 한자 209자 · 낭독 0.8분

「계원필경집」 권5 주장 「병사를 뽑아 보내는 일을 논하여 아뢰는 장」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네 주에서 이만 명을 뽑으라는 조서

當道先准詔旨。抽廬,壽,滁,和等州兵馬共二萬人。仍委監軍使押領赴軍前者。臣當時已各帖諸州。令排比點檢。次又得進奏院狀報。近奉詔旨。更於諸州催促兵士者。

당도는 앞서 조지에 준하여 여주·수주·저주·화주 등 주의 병마 모두 이만 명을 뽑아 감군사에게 맡겨 거느리고 군전에 가게 하라 하셨습니다. 신은 당시 이미 각기 여러 주에 첩을 내려 배비하고 점검하게 하였는데, 다음에 또 진주원의 장보를 받으니 근래 조지를 받들어 다시 여러 주에서 병사를 재촉하라 하셨습니다.

2서로 원수인 군사를 한데 모으면

右臣伏以兵惟飾怒。雖尙勇於戰征。師克有和。固推誠於輯睦。苟非得衆。何以成功。臣當管廬州與和州。舊有讎嫌。至今疑忌。唯謀以怨報怨。未遂知和而和。孫端新授滁州。又與秦彦有隙。旣是滁,和接境。動有他虞。若於光蔡會軍。必酬舊憾。事非便穩。理合奏論。臣自得招降。多方控馭。粗能禁戢。免有動搖。如令各出兵戈。必恐自相魚肉。輒陳利害。冀愼始終。謹錄奏聞。伏聽勑旨。

위는, 신이 엎드려 생각하건대 군사는 오직 노여움을 꾸미는 것이라 비록 싸움에서 용맹을 숭상하나 군사가 이기는 것은 화합에 있으니 참으로 화목에 정성을 미룹니다. 만약 무리를 얻지 못하면 무엇으로 공을 이루겠습니까. 신이 관할하는 여주와 화주는 예부터 서로 원수처럼 미워하여 지금까지 의심하고 꺼려 오직 원한으로 원한을 갚기를 꾀할 뿐 화합을 알고 화합하는 데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손단이 새로 저주를 제수받았는데 또 진언과 틈이 있고 이미 저주와 화주는 경계를 접하여 걸핏하면 다른 근심이 있으니, 만약 광주·채주에서 군사를 모으면 반드시 옛 원한을 갚아 일이 편안하지 않을 것이라 이치상 아뢰어 논함이 마땅합니다. 신은 항복을 받은 뒤로 여러 방법으로 어거하여 대략 금하고 거두어 동요가 없게 하였는데, 만약 각기 병기를 내게 하면 반드시 서로 죽이고 짓밟을까 두려워 문득 이해를 아뢰어 처음과 끝을 삼가기 바랍니다. 삼가 적어 아뢰니 칙지를 엎드려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