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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절에 조지를 내려 타이르기를 청하는 당장請降詔旨指喩兩浙狀

계원필경집 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 886년 (당 중화 6·신라 헌강왕 12) · 단락 1 · 한자 316자 · 낭독 1.3분

「계원필경집」 권6 당장 「양절에 조지를 내려 타이르기를 청하는 당장」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오와 월이 다시 원수가 되다

右先淮浙西周相公牒。杭州與浙東兵士鬪敵。某遂具事由申奏。請降詔書。速令戢斂。伏奉二月二十日詔旨。已詔兩浙。務在叶和者。某當時備錄王言。各移公牒訖。兼先差人齎書牒。與劉漢宏尙書。詰彼起戎之本。諭其繼好之規。今得廻書。其言不讓。唯稱周相公與董昌苟恃寵榮。妄行威福。虐侵近境。阻截通津。況有不同國之讎嫌。又夫無蘊年之誓約。必想見豺而戰。猶能首鼠幸生。已決加兵。終期釋憾。然則此無和氣。彼有鬪心。嘗膽者結怨旣深。抉眼者遺言可驗。必恐以吳與越。終當有越無吳。實所謂夫差之麋鹿興譏。范蠡之黿鼉得便。唯憂黎庶枉見殺傷。輒再具狀奏。陳請更飛詔止遏。某徒圓鑿方枘。避柱觸楹。累陳高鳳之詞。莫解子都之怒。且讎因手足。疾在腹心。久練師徒。決期戰伐。則也衛絲轉亂。鄭蔓難除。三人是仇。百姓何罪。伏惟相公贊成睿略。施展廟謀。俾陳兩武之事端。唯仰一言之恩庇。謹錄狀上。

위는, 앞서 절서 주 상공의 첩에 준하니 항주가 절동의 병사와 싸운다 하여 제가 마침내 사유를 갖추어 아뢰고 조서를 내려 속히 거두게 하기를 청하였는데, 이월 이십일 조지를 삼가 받드니 이미 양절에 조서를 내려 화합에 힘쓰게 하셨다 하였습니다. 저는 당시 왕의 말씀을 갖추어 적어 각기 공첩을 보냈고 겸하여 먼저 사람을 보내 글과 첩을 지니고 유한굉 상서에게 저 군사를 일으킨 근본을 따지고 우호를 잇는 법도를 타일렀습니다. 이제 회답을 받으니 그 말이 사양하지 않고 오직 주 상공과 동창이 구차히 총영을 믿고 함부로 위복을 행하여 가까운 경계를 학대하고 통하는 나루를 끊는다 하며, 하물며 한 나라에 함께 살 수 없는 원한이 있고 또 해를 넘기는 맹약이 없으니 반드시 승냥이를 보면 싸울 것이요 오히려 쥐처럼 요행으로 살아 이미 군사를 더하기로 결단하여 끝내 원한을 풀기를 기약한다 합니다. 그렇다면 이쪽에 화기가 없고 저쪽에 싸울 마음이 있으니, 쓸개를 맛본 자는 원한 맺음이 이미 깊고 눈을 도려낸 자의 남긴 말이 징험될 만합니다. 반드시 오와 월로써 끝내 월은 있고 오는 없게 될까 두려우니, 실로 이른바 부차의 고라니와 사슴이 비난을 일으키고 범려의 자라가 편의를 얻는 것입니다. 오직 백성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할까 근심되어 문득 다시 장을 갖추어 아뢰어 다시 조서를 날려 막기를 청합니다. 저는 한갓 둥근 구멍에 모난 자루라 기둥을 피하다 기둥에 부딪히니, 거듭 고봉의 말을 아뢰어도 자도의 노여움을 풀지 못합니다. 또 원수는 손발에서 비롯하고 병은 뱃속에 있어 오래 군사를 훈련하여 싸움을 결단할 때가 되었으니, 위나라 실은 더욱 어지럽고 정나라 덩굴은 없애기 어려우니 세 사람이 원수인데 백성이 무슨 죄입니까. 엎드려 생각하건대 상공께서는 성상의 계략을 이루고 묘당의 꾀를 펼치시어 두 무부의 일의 단서를 아뢰게 하시니, 오직 한마디 은혜로운 덮음을 우러릅니다. 삼가 적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