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계원필경집 › 권7 별지

노소 급사에게盧紹給事

계원필경집 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 886년 (당 중화 6·신라 헌강왕 12) · 단락 1 · 한자 288자 · 낭독 1.2분

「계원필경집」 권7 별지 「노소 급사에게」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형 좌승의 영전을 아우에게 하례하며

近睹除書。恭承賢兄左丞。榮膺寵命。伏惟感慰。竊以國有司直。野無遺賢。蓋前代之所難。實我朝之獨盛。況乃上可以糺彈八座。下可以整肅百官。永言其才。固屬全德。賢兄左丞。中庸處厚。大雅含淸。柱晴空而嶽頂無雲。瑩秋色而潭心有月。是得歷游華貫。輝綽令猷。頃遇分憂。暫作甘棠。太守尋聆徵詔。請爲仙桂主人。此時也歡聲則風振儒林。喜氣則雲鋪筆陣。有口皆賀。無心不歸。蓬島靈珠。想離頷下。荊山瑞玉。待入掌中。而屬鶯谷藏春。鳳城陷寇。不見孔門盛事。唯傷魏闕餘災。今者遠從行朝。久臨憲府。旣躡淸資於侍極。榮升重位於肅機。傅咸之畏愼無虧。鄭晉之矜莊有裕。正當今日。必繼芳塵。給事避地經時。陟岡勞念。今聆美拜。稍慰遠思。然每於絳帳馳心。共懷遺恨。須到洪勻入手。方洽群情。高接雁行。佇迎鳳詔。虔禱瞻戀。無以披陳云云。

근래 제서를 보니 어진 형 좌승께서 영광스럽게 총명을 받으셨다 하니 엎드려 감축합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나라에 사직이 있고 들에 버려진 어진 이가 없는 것은 대개 전대에 어려웠던 바요 실로 우리 조정만이 홀로 성한 것입니다. 하물며 위로는 팔좌를 규탄하고 아래로는 백관을 정숙하게 할 수 있으니, 길이 그 재주를 말하면 참으로 온전한 덕에 속합니다. 어진 형 좌승께서는 중용으로 두터움에 처하고 대아로 맑음을 머금어 갠 하늘을 떠받쳐 산꼭대기에 구름이 없고 가을빛을 맑혀 못 속에 달이 있으니, 이에 화려한 관직을 두루 거쳐 아름다운 계책을 빛내셨습니다. 지난날 근심을 나누어 잠시 감당이 되었다가 태수로 곧 부르는 조서를 듣고 신선 계수의 주인이 되기를 청하니, 이때 기쁜 소리는 바람이 유림을 떨치고 기쁜 기운은 구름이 필진에 깔려 입 있는 이는 다 하례하고 마음은 돌아가지 않음이 없어, 봉래섬의 신령한 구슬이 턱 아래를 떠나려 하고 형산의 상서로운 옥이 손안에 들기를 기다렸는데, 꾀꼬리 골짜기가 봄을 감추고 봉성이 도적에게 함락되어 공문의 성대한 일을 보지 못하고 오직 위궐의 남은 재앙을 아파하였습니다. 이제 멀리 행조를 따라 오래 헌부에 임하시어 이미 시극에서 맑은 자리를 밟고 영광스럽게 숙기에서 무거운 자리에 오르시니, 부함의 두려워 삼감에 이지러짐이 없고 정진의 엄숙함에 넉넉함이 있는 것이 바로 오늘에 해당하여 반드시 향기로운 자취를 이으실 것입니다. 급사께서는 땅을 피해 때를 지내며 산에 올라 수고로이 생각하셨는데 이제 아름다운 제배를 들으니 먼 그리움이 조금 위로될 것입니다. 그러나 늘 강장에 마음을 달려 함께 남은 한을 품으니, 모름지기 큰 균형이 손에 들어와야 바야흐로 뭇 정에 흡족할 것입니다. 높이 기러기 행렬에 잇닿아 봉황 조서를 맞이하기를 기다리며 삼가 빌고 우러러 그리니 펴 아뢸 길이 없습니다.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