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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민욱 상서에게湖南閔頊尙書

계원필경집 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 886년 (당 중화 6·신라 헌강왕 12) · 단락 1 · 한자 315자 · 낭독 1.3분

「계원필경집」 권8 별지 「호남 민욱 상서에게」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말 다루는 그림과 상서로운 자취를 보고

親故前河西朱大夫到。遠垂書示。深荷眷私。兼將尙書弄馬圖及貴府祥瑞事跡相示。閱覽忘倦。欣仰有餘。且武藝所稱。歷朝可數。楚誇徹札。魯衒蒙輪。彎三百斤之長弓。嘗傳漢史。掉八十斤之雙戟。亦著魏書。然而唯守一隅。莫能四達。長於射而短於御。力甚壯而心甚怯。永言戎伎。難遇全才。今者尙書術繼白猿。名高赤兔。旣占萬人之敵。眞爲一代之雄。雖居仗鉞之榮。不忘據鞍之勇。爰徵粉繪。妙寫風儀。遍覽左旋右抽。唯知目駭神聳。彼繫繩逞捷。運甓服勤。實謂區區瑣瑣者爾。況乃夢符捧日。政洽觀風。花竹呈祥。果驗中興之運。龜龍薦感。皆標上瑞之姿。若非望重行春。歌喧來暮。則何以三軍效勇。永諧欽化之名。七郡懷恩。盡表殊常之應。必期渥澤。繼入瀟湘。此則但睹其電擊雲飛。鷹瞵鶚視。每勞企想。無以喩言。唯望愼擧政條。仰酬寵寄。方値四郊多壘。實憑萬里長城。其他中心藏之。永以爲好。幸垂諒察云云。

친구인 전 하서 주 대부가 이르러 멀리 글로 보이시니 사사로운 돌봄을 깊이 입었고, 겸하여 상서의 말 다루는 그림과 귀부의 상서로운 사적을 보여 주시니 보고 읽어 피로를 잊고 기뻐 우러름이 남음이 있습니다. 또 무예로 일컫는 이는 역대에 셀 수 있으니 초나라는 갑옷 뚫기를 자랑하고 노나라는 수레바퀴 무릅쓰기를 뽐내며, 삼백 근 긴 활을 당긴 것은 일찍이 한나라 역사에 전하고 팔십 근 쌍극을 휘두른 것은 또한 위나라 글에 실렸으나, 오직 한 모퉁이를 지킬 뿐 사방에 통달하지 못하여 쏘는 데 길고 모는 데 짧으며 힘은 매우 장한데 마음은 매우 겁내니, 길이 무예를 말하면 온전한 재주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이제 상서께서는 술이 백원을 잇고 이름이 적토보다 높아 이미 만 사람을 대적할 재주를 갖추었으니 참으로 한 시대의 영웅이라, 비록 도끼를 잡는 영광에 거하면서도 안장에 걸터앉는 용맹을 잊지 않아 이에 그림을 그려 풍모를 묘하게 베끼시니,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뽑는 것을 두루 보매 오직 눈이 놀라고 정신이 솟을 뿐입니다. 저 줄에 매달려 날랜 것을 부리고 벽돌을 나르며 부지런을 바친 것은 실로 자잘하고 보잘것없는 것일 뿐입니다. 하물며 꿈이 해를 받드는 데 맞고 정사가 풍속을 살피는 데 흡족하여 꽃과 대가 상서를 바쳐 과연 중흥의 운수를 징험하고 거북과 용이 감응을 바쳐 다 으뜸 상서의 자태를 표하니, 명망이 두터워 봄 순행을 하고 노래가 「늦게 오시네」로 시끄럽지 않았다면 어찌 삼군이 용맹을 바쳐 길이 교화를 흠모하는 이름에 맞고 칠군이 은혜를 품어 다 특별한 감응을 표하겠습니까. 반드시 두터운 은택이 이어 소상에 들기를 기약합니다. 이는 다만 그 번개처럼 치고 구름처럼 날며 매처럼 노려보고 물수리처럼 보는 것을 볼 뿐이니 늘 우러러 생각을 수고롭게 하나 말로 비유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정사의 조목을 삼가 들어 총애의 부탁에 우러러 보답하시기 바라니, 바야흐로 사교에 보루가 많은 때를 당하여 실로 만 리 장성에 기댑니다. 그 밖은 마음속에 간직하여 길이 우호로 삼겠습니다. 바라건대 헤아려 살펴 주소서.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