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사주 정렴 상시에게前泗州鄭廉常侍
「계원필경집」 권10 별지 「전 사주 정렴 상시에게」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군사에게 쫓겨난 이를 위로하며
竊以寇戎未殄。士卒多驕。凡曰郡侯。實難政理。縱得上和下睦。猶爲朝是夕非。況福乃儻來。禍惟不測。但無慙於屋漏。亦何累於國恩。然而常侍蓋切奉公。匪疎撫士。雖云驚擾。終免侵傷。有以見爲政無私。當仁有裕。伏承已離泗水。始及淮山。捧閱來緘。撝謙往咎。其於瞻仰。胡可弭忘。然則郡守懸魚。旣繼古人之節。塞翁喪馬。可寬達士之懷云云。
가만히 생각하건대 도적이 아직 없어지지 않고 사졸이 교만함이 많으니 무릇 군후라 하는 이는 실로 정사를 다스리기 어렵습니다. 비록 위가 화하고 아래가 화목함을 얻어도 오히려 아침에 옳고 저녁에 그르니, 하물며 복은 뜻밖에 오고 화는 헤아릴 수 없음에랴. 다만 옥루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또한 어찌 나라 은혜에 누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상시께서는 대개 공을 받드는 데 간절하고 군사를 어루만짐에 소홀하지 않아 비록 놀라 소란하였다 하나 끝내 침해를 면하였으니, 정사를 함에 사사로움이 없고 인을 당함에 넉넉함이 있음을 봅니다. 이미 사수를 떠나 비로소 회산에 이르셨다 하니 보내신 편지를 받들어 읽으니 겸손히 지난 허물을 돌리시어 그 우러름을 어찌 잊겠습니까. 그렇다면 군수가 물고기를 매단 것은 이미 옛사람의 절개를 이었고 새옹이 말을 잃은 것은 통달한 선비의 회포를 너그럽게 할 만합니다.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