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계원필경집 › 권12 위곡

회구진 이질에게 — 아들을 베고 반역을 막은 이에게淮口鎭李質

계원필경집 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 886년 (당 중화 6·신라 헌강왕 12) · 단락 1 · 한자 275자 · 낭독 1.1분

「계원필경집」 권12 위곡 「회구진 이질에게 — 아들을 베고 반역을 막은 이에게」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살무사가 손에 있으면 장사는 그 마디를 끊는다

報李質。覽所申狀。慰愜良多。李再興未革狼心。敢張蜂目。搆稱虛事。違負本軍。初憑逐寇之名。却設起戎之計。賴質深懷智策。善審兵機。一唱義聲。四圍逆黨。狀疾風之掃危葉。如烈火之爇飛蓬。再興將見誅夷。果當懾竄。然旣是傷弓之物。必爲釁鼓之資。兼知質男裕黃口小兒。血氣未定。偶虧嚴父之訓。以涉叛夫之謀。質又徇公絶私。捨曲取直。愛而知惡。義以滅親。削其舐犢之言。遵彼烹梟之理。若非忠勇。何得如斯。古語有之。蝮虵在手則壯士斷其節。是乃忍小痛而除大患也。況石碏傳芳於魯史。日磾載美於漢書。故事斯存。令名不朽。足以見質有大丈夫之氣。有眞君子之心。權兵而動必成功。鎭境而靜能守節。前勞後效。日就月將。固當榮盛可期。勿以滯淹爲恨。勉安軍旅。善保勳名。以古況今。惟吾知汝。悉之。

이질에게 알린다. 아뢴 장을 보니 위로되고 흡족함이 참으로 많다. 이재흥은 이리 마음을 고치지 않고 감히 벌 눈을 벌려 헛일을 얽어 일컫고 본군을 어기고 저버려 처음에는 도적을 쫓는다는 이름에 기대다가 도리어 군사를 일으키는 계책을 베풀었는데, 질이 지혜로운 계책을 깊이 품고 군기를 잘 살펴 한 번 의로운 소리를 외치자 사방에서 역당을 에워싸니 마치 빠른 바람이 위태로운 잎을 쓸고 맹렬한 불이 날리는 쑥을 태우는 것 같았다. 재흥은 장차 주살을 당할 것이니 과연 두려워 달아나겠지만 이미 활에 다친 물건이라 반드시 북에 피 바르는 밑천이 될 것이다. 겸하여 질의 아들 유가 젖내 나는 어린아이로 혈기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 우연히 엄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지러뜨려 반란한 사내의 꾀에 걸렸는데, 질이 또 공을 좇고 사사로움을 끊어 굽음을 버리고 곧음을 취하며 사랑하면서도 악을 알아 의로 친족을 멸하여 송아지를 핥는 말을 깎고 저 올빼미를 삶는 이치를 따랐으니 충용이 아니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으랴. 옛말에 「살무사가 손에 있으면 장사는 그 마디를 끊는다」 하였으니 이는 작은 아픔을 참고 큰 근심을 없애는 것이다. 하물며 석작은 노나라 사서에 향기를 전하고 김일제는 『한서』에 아름다움을 실었으니 옛일이 여기 있어 좋은 이름이 썩지 않는다. 질에게 대장부의 기운이 있고 참된 군자의 마음이 있어 군사를 잡고 움직이면 반드시 공을 이루고 경계를 지키며 고요하면 절개를 지킬 수 있음을 보기에 족하다. 앞의 수고와 뒤의 효험이 날로 나아가고 달로 나아가니 참으로 영성을 기약할 만하니 지체됨을 한하지 말라. 힘써 군려를 편안히 하고 훈명을 잘 보전하라. 옛것으로 지금을 견주니 오직 내가 너를 안다. 다 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