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계원필경집 › 권12 위곡

광주 이한지에게 — 변로로 함께 나아가자光州李罕之

계원필경집 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 886년 (당 중화 6·신라 헌강왕 12) · 단락 1 · 한자 266자 · 낭독 1.1분

「계원필경집」 권12 위곡 「광주 이한지에게 — 변로로 함께 나아가자」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내가 가지 않으면 뭇 장수는 어디로 가랴

報李罕之。成覵有言。彼丈夫也。我丈夫也。然則成功立節。不獨古人。仗順輸忠。正當今日。近奉勑書手詔。無非激勵衆心。兼除王令公充都統。西門軍容充都監。此乃藩鎭功虧。朝廷計盡。遂將大任。專付老儒。雖漫傳聲。必難濟事。此去年齊驅猛銳。將掃頑兇。尋奉絲綸。俾安淮海。詔書云。爲朕全吳越之地。遣朕無東南之憂。遂乃旋師。不敢違命。然則審詳物議。參酌軍期。關中有執斧之徒。閫外無枕戈之志。誰能竭力。實可痛心。吾若不行。衆將焉往。今欲直趨汴路。便入潼關。佇復鳳城。奉迎鑾駕。永使流傳萬代。終能肅靜四方。罕之已處分憂。久爲養勇。必欲揀精練銳。以期伐叛摧兇。今錄勑書手詔白寄往。仰窺聖旨。必勵忠誠。便決征行。共圖富貴。時不可失。吾子勉之。故此告知。速宜飛報。悉之。

이한지에게 알린다. 성간의 말에 「저도 장부요 나도 장부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공을 이루고 절개를 세우는 것은 옛사람만이 아니요 순리를 지켜 충성을 바치는 것은 바로 오늘에 해당한다. 근래 칙서와 수조를 받드니 뭇 마음을 격려하지 않음이 없고 겸하여 왕 영공을 도통에 서문 군용을 도감에 제수하였으니, 이는 곧 번진의 공이 이지러지고 조정의 계책이 다하여 마침내 큰 임무를 오로지 늙은 유자에게 맡긴 것이라 비록 널리 소리를 전하나 반드시 일을 이루기 어렵다. 이쪽은 지난해 맹렬하고 날랜 군사를 나란히 몰아 완흉을 쓸려다 곧 사륜을 받들어 회해를 편안히 하게 하니, 조서에 「짐을 위해 오월의 땅을 온전히 하여 짐에게 동남의 근심이 없게 하라」 하므로 마침내 군사를 돌려 감히 명을 어기지 않았다. 그러나 물의를 자세히 살피고 군기를 참작하면 관중에는 도끼를 잡은 무리가 있으나 곤외에는 창을 베는 뜻이 없으니 누가 힘을 다하랴. 실로 마음 아플 만하다. 내가 만약 가지 않으면 뭇 장수는 어디로 가랴. 이제 곧바로 변로로 달려 곧 동관에 들어가 봉성을 회복하고 난가를 봉영하기를 기다려 길이 만대에 흘러 전하고 끝내 사방을 숙정하게 하려 한다. 한지는 이미 근심을 나누어 맡아 오래 용맹을 길렀으니 반드시 정예를 가리고 날쌘 이를 훈련하여 반역을 치고 흉악을 꺾기를 기약하라. 이제 칙서와 수조를 적어 부쳐 보내니 우러러 성지를 엿보면 반드시 충성을 힘써 곧 정벌을 결단하여 함께 부귀를 도모할 것이다. 때는 잃을 수 없으니 그대는 힘쓰라. 그러므로 이렇게 알리니 속히 날려 보고하라. 다 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