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계원필경집 › 권13 거첩

허권에게 관찰아추를 대리시키고 홍택순관에 충임하는 첩許權攝觀察衙推充洪澤巡官

계원필경집 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 886년 (당 중화 6·신라 헌강왕 12) · 단락 1 · 한자 218자 · 낭독 0.9분

「계원필경집」 권13 거첩 「허권에게 관찰아추를 대리시키고 홍택순관에 충임하는 첩」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만 이랑 밭에 농사를 권하라

牒奉處分。撫俗所先。勸農爲最。是以。鄭渾則奪其獵具。溫嶠則請置田曹。仰順天時。俯徵日力。俾督耕夫之業。須憑幹吏之才。前件官。歷試已多。忠勤可奬。令尹之功成製錦。督郵之政克提綱。但承闕乏之時。皆有緝綏之譽。今以山陽沃壤。淮畔奧區。地占三巡。田逾萬頃。非乏決渠爲雨。尙虧多稼如雲。蓋爲編甿。不勤功於藨蔉。縱當稔歲。皆失利於稻粱。知爾奉公。勸民務本。若使耰而不輟。必期敏則有功。委以農時。假之使職。永言從政。實可與權。無取潤於膏腴。苟徇私於毫髮。勉施乃力廣諭衆心。事須差攝觀察衙推充洪澤巡官兼都巡勘指揮奉國謝陽等巡務者。

첩은 처분을 받든다. 풍속을 어루만지는 데 앞세우는 것은 농사를 권함이 으뜸이니, 그러므로 정혼은 그 사냥 도구를 빼앗고 온교는 전조 두기를 청하였다. 우러러 천시에 순응하고 굽어 날의 힘을 징발하여 밭 가는 사내의 업을 감독하게 하려면 모름지기 재간 있는 관리의 재주에 기댄다. 위 관원은 두루 시험함이 이미 많고 충성스럽고 부지런함이 장려할 만하여 영윤의 공은 비단 마름질을 이루고 독우의 정사는 벼리를 잡을 수 있어 다만 빈자리를 이을 때마다 다 어루만져 편안케 한 명예가 있었다. 이제 산양의 기름진 땅, 회수 가의 깊은 구역은 땅이 세 순을 차지하고 밭이 만 이랑을 넘어 도랑을 터 비를 삼는 것이 모자라지 않은데 오히려 구름 같은 곡식이 이지러지니, 대개 백성이 김매고 북돋는 데 공을 부지런히 하지 않아 풍년을 당해도 다 벼와 기장의 이익을 잃기 때문이다. 네가 공을 받들어 백성에게 근본에 힘쓰기를 권하는 것을 아니 만약 김매기를 그치지 않게 하면 반드시 민첩하면 공이 있기를 기약할 것이다. 농사철의 일을 맡기고 사신으로 나가는 직임을 빌려 주니 길이 정사에 종사함을 말하면 실로 더불어 권도를 행할 만하다. 기름진 땅에서 윤택을 취하지 말고 털끝만치라도 사사로움을 좇지 말며 힘써 네 힘을 베풀고 널리 뭇 마음을 타이르라. 일은 모름지기 관찰아추를 대리하고 홍택순관 겸 도순감 지휘 봉국·사양 등 순무에 충임하도록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