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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소의 복야를 위한 재사爲故昭義僕射齋詞

계원필경집 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 886년 (당 중화 6·신라 헌강왕 12) · 단락 1 · 한자 309자 · 낭독 1.2분

「계원필경집」 권15 재사 「고 소의 복야를 위한 재사」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조카손자와 두 손자를 위해 재를 베풀며

中和二年七月二十三日。爲故昭義姪孫僕射及二孫子敬。設齋于法雲寺。聊憑法疏。用寫悲詞。以昭義姪孫幼蘊壯圖。長居重任。不掃一室。有志四方。手運豹韜。旣是吾家之事。身持龍節。累沾聖代之恩。至於越海征蠻。對河分陝。立戰功於遐徼。傳理化於近藩。愼守詔條。能諧物議。遂移上黨。實委外權。尋屬戎馬生郊。陣虵出穴。遽令寇孼。直犯京華。頻興伐叛之師。稍急訓戎之令。上將則雖期徇難。欲竭忠誠。小人則多是幸災。潛興狡計。叛徒忽至。橫禍斯侵。弘演納肝。其誰能繼。酆舒傷目。所不忍言。噫。道則日彰。志惟天奪。征旌永卷。飛旐遠來。言念彫零。莫勝悲慟。但以推尋佛理。抑割俗情。旣知前世因緣。粗解此時冤痛。況乃父立忠節。子揚孝名。古賢所稱。今我何恨。俾資冥福。敬設妙齋。所願慧炬照迷。慈航援溺。早推誠於貫日。終致樂於生天。子子孫孫。永絶怨讎之本。生生世世。常逢安泰之期。謹疏。

중화 이년 칠월 이십삼일, 고 소의 조카손자 복야와 두 손자를 위해 공경히 법운사에서 재를 베풀고 애오라지 법의 소에 기대어 슬픈 글을 적습니다. 소의 조카손자는 어려서 장한 계획을 쌓고 자라서 무거운 임무에 거하여 한 방을 쓸지 않고 사방에 뜻을 두어 손으로 병법을 운용하니 이미 우리 집안의 일이요 몸에 용 부절을 지니니 거듭 성대의 은혜에 젖었습니다. 바다를 건너 남만을 정벌하고 하수를 마주하여 섬(陝) 땅처럼 한 방면을 나누어 맡아 먼 변방에 전공을 세우고 가까운 번에 다스림과 교화를 전하며 조서 조목을 삼가 지켜 물의에 맞아 마침내 상당으로 옮겨 실로 바깥 권한을 맡았습니다. 곧 군마가 교외에 나고 진의 뱀이 굴을 나와 갑자기 도적의 재앙 무리이 곧바로 경화를 범하니 자주 반역을 치는 군사를 일으키고 조금 군사 훈련의 명령을 급히 하였는데, 상장은 비록 난에 죽기를 기약하여 충성을 다하려 하였으나 소인은 흔히 재앙을 요행으로 여겨 몰래 교활한 꾀를 일으켜 반란 무리가 갑자기 이르러 뜻밖의 화가 닥쳤습니다. 홍연이 간을 넣은 것을 누가 이을 수 있으며 풍서가 임금의 눈을 다치게 한 일은 차마 말하지 못할 바입니다. 아, 도는 날로 드러나는데 뜻은 오직 하늘이 빼앗아 정벌 깃발은 길이 말리고 나는 조기(旐)는 멀리 오니 시들어 떨어짐을 생각하매 슬픔과 통곡을 이기지 못합니다. 다만 부처의 이치를 미루어 찾아 속된 정을 억눌러 끊어 이미 전세의 인연을 알고 대략 이때의 원통함을 풉니다. 하물며 아버지는 충절을 세우고 아들은 효명을 드날렸으니 옛 어진 이가 일컫는 바인데 이제 내가 무엇을 한하겠습니까. 명복에 바탕하게 하려 공경히 묘한 재를 베푸니, 원하는 바는 지혜의 횃불이 미혹을 비추고 자비의 배가 빠진 이를 건져 일찍 해를 꿰는 정성을 미루고 끝내 하늘에 나는 즐거움을 이루어 자자손손 길이 원수의 근본을 끊고 생생세세 늘 안태의 때를 만나는 것입니다. 삼가 소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