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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 나성도기西州羅城圖記

계원필경집 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 886년 (당 중화 6·신라 헌강왕 12) · 단락 1 · 한자 1,472자 · 낭독 5.9분

「계원필경집」 권16 기 「서주 나성도기」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삼십삼 리 나성을 쌓은 내력

西州羅城。四仞高。三尋闊。周三十三里。乃今淮海太尉燕公所築也。粵若梁州別壤。蜀國雄都。內跨犍牂。外聯蠻蜑。左臨百濮。右挾六戎。咽喉之控引寔繁。唇齒之輔依難保。自昔鼈靈流異。龜跡標奇。藩籬始建其一城。扃鐍猶虧於四郭。莒子則旣忘重閉。衛人則唯慮徙居。蠢彼狗封。恣其狼戾。每至草乾僰道。浪縮瀘河。則必推紒橫侵。撥群驅隊。編甿懾竄。巷哭街號。戎兵以拔旆爲中權。府尹以閉關爲上策。稔成氛祲。積有歲時。洎乾符初。偶絶羈縻。大興叛換。白虎之狂災漸盛。黃龍之舊約難尋。兵力莫申。帝心有寄。以公慶傳渭夢。業練圯書。交趾銘勳。則永威八詔。鄆城報政。則不待三年。屬蠻寇加囂。王師告老。遂飛急詔。請救倒懸。由是自東徂西。以晝繼夜。走單車於外境。豈煩龔遂獻書。受戎輅於中塗。莫掩晉侯稱伯遙銜睿略。倏達成都。于時驃信屯兵。逼郊隊而纔踰一舍。黔黎失業。焚里閭而何啻萬家。彼則擧國而濟師。此則闔城而受弊。外熾崑岡之焰。噀酒無能。內枯疏勒之源。指梅何益。莫非枕倚墻壁。誰堪擐執甲兵。公至止之日。豁啓城扉。若開籠檻。威振而寧勞利器。邪膽皆摧。化行而如嗅新香。驚魂盡返。蠻王以鐻耳飽聆其異略。鏤膚畏挂於嚴誅。恟然觀電懼雷。欻爾烏飛魚散。公尋令選銳。暫使追逃。乘其垂翅之時。展我燎毛之勢。數俘莫記。執馘居多。爾後因閱地圖。得搜天險。是猿狖養高之窟。爲豺狼伺隙之蹊。乃令一刱雄關。一標巨防。危堞則憑巒助峻。長溝則噵澗資深。宛成善閉之機。實扼間行之徑。丸泥可固。斷知無得而踰。爟火罷驚。坐見不爭而勝。仍尋水道。別建河營。遠方猾夏之徒。難謀航葦。均發戍申之卒。免詠流薪。疆陲永保於覆盂。廛閈唯矜於列鼎。卿雲邦彦。閒吟搜吐鳳之詞。卓鄭鄕豪。靜坐貯蹲鴟之利。公以寢處戎閫。夢想扁舟。將申遠慮於無窮。豈立空言爲不朽。乃曰彼蠻之習也。外癡內黠。朝四暮三。雖莊叔此時。功已成於長狄。而季孫他日。憂必在於顓臾。詎可虛號錦城。尙無羅郭。守民之制。非我而誰。啓抱而神欽至誠。飛章而帝允丹請。時有寡寮進難。將校獻疑。皆云公孫述躍馬雄臨。非無意也。諸葛亮臥龍崛起。亦有志焉。但以曩築子城。猶資客土。九年方就。百代所難。況今將興廓落之基。恐致遷延之誚。公曰術已先定。事當速成。必能終簡天心。豈謂虛穿地脈。於是郡侯奔告。邑尹樂從。乃使揣高卑議遠邇。慮材用量事期。採時候於魯書。倣規模於周令。引長江而列長塹。夏禹慙能。對高巘而劃高墉。秦皇失色。矧乃命五丁而嘯侶。運六甲以驅僮。天吳則燥水於寒泉。地媼則變沙爲美土。實謂百靈幽贊。萬姓悅隨。鍤聚雲鋒。杵騰雷響。不見烈風凌雨。又令簋飽觴酣。登登而只競歡呼。屹屹而便如湧出。百堵皆作。三旬而成。然後郢匠勞功。素材變質。優人展妙。赬壤凝華。攢空而烽櫓高排。架險而闉闍聳起。橫分八尺。結雕甍而彩鳳聯飛。檻徹四隅。擁繡堞而晴虹直挂。罩一川之佳景。籠萬戶之歡聲。遠而望焉則巍巍峨峨。若雲中之疊嶂錦霞縠霧隱映乎其上。迫而察也則赫赫燡燡。想海畔之仙山金臺銀闕焜燿乎其間。始自庀徒。終於解役。不假朽緡於官稅。無資剖粒於軍租。皆聚羨財。儼成壯觀。遂使蠻酋褫魄。賨旅歸心。不敢言摩壘而旋。無因致入郛之役。爰徵繪事。仰貢九重。旋降綸言。過褒一字。宣睿旨於翰林才子。綴姸辭於黃絹外孫。公雖迎金鳳銜書。未議石龜戴版。蓋乃謙沖自牧。恥其功伐驟稱。及蒼鳥高飛。翠華遠狩。儼仙遊於玉壘。安聖慮於金墉。故得親覽宏規。益欽忠節。特傳瑤檢。徵進碑詞。遂命雕鐫。永揚威烈。實萬古未聆之事。乃四方無比之榮。美矣哉。龍以雲興。魚因水樂。誰不仰公智周物表。事照機先。凡施權謀。若合符契。則昔全蜀未城也。天留盛績。日待英才。所謂有非常之人。然後有非常之事。有非常之事。然後有非常之功。是以。非常者固非常人之所覬也。致遠雖丘堂覩奧。師冕何知。而秦國斂賢。由余不棄。謹成實錄。敢記殊庸。所冀四海梯航。閱雄圖而稽顙。九州旄鉞。望法駕而安心。中和三年龍集癸卯八月二十五日記。

서주 나성은 높이가 네 길, 너비가 세 발(尋), 둘레가 삼십삼 리이니 지금 회해 태위 연공이 쌓은 것이다. 양주의 별다른 땅이요 촉국의 웅장한 도읍으로 안으로 건위(犍爲)·장가(牂柯)를 걸터앉고 밖으로 만단에 잇닿아 왼쪽으로 백복에 임하고 오른쪽으로 육융을 끼어 목구멍처럼 당기고 끄는 것이 실로 많고 입술과 이처럼 돕고 기대는 것이 보전하기 어렵다. 예부터 별령이 기이함을 흘리고 거북 자취가 기이함을 표하였으나 울타리는 처음 그 한 성만 세우고 빗장은 오히려 네 성곽이 이지러져, 거자는 이미 겹겹이 닫는 것을 잊고 위나라 사람은 오직 옮겨 살 것을 염려하였다. 저 벌레 같은 구봉이 그 이리 같은 사나움을 함부로 하여 풀이 마르는 북도와 물결이 줄어드는 노하에 이를 때마다 반드시 상투를 밀며 가로로 침노하여 무리를 헤치고 대오를 몰아 백성이 두려워 숨고 골목에서 울고 거리에서 부르짖으니, 군사는 깃발을 뽑는 것을 중권으로 삼고 부윤은 관문을 닫는 것을 상책으로 삼아 요기를 익혀 이룬 것이 여러 해였다. 건부 초에 이르러 우연히 기미가 끊겨 크게 반란을 일으켜 백호의 미친 재앙이 점점 성하고 황룡의 옛 언약을 찾기 어려워 병력을 펴지 못하니 황제 마음이 맡길 데가 있어, 공이 경사가 위수의 꿈에 전하고 업이 이교의 글을 익혀 교지에 훈을 새겨 길이 팔조에 위엄을 떨치고 운성에서 정사를 갚아 세 해를 기다리지 않았으므로, 만구가 시끄러움을 더하고 왕사가 늙음을 고하자 마침내 급한 조서를 날려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하기를 청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동에서 서로 낮으로 밤을 이어 홑수레로 바깥 경계에 달리니 어찌 공수가 글을 바침을 번거롭게 하며 길 가운데서 융로를 받으니 진후(晉侯)가 패자라 일컬음을 덮지 못하였다. 멀리 성상의 계략을 머금고 훌쩍 성도에 이르니, 이때 표신이 군사를 주둔하여 교외 대오를 핍박함이 겨우 한 사(舍)를 넘고 백성이 생업을 잃어 마을을 불사름이 어찌 만 집뿐이랴. 저쪽은 온 나라로 군사를 건너고 이쪽은 온 성이 폐단을 받아 밖으로 곤강의 불꽃이 치성하니 술을 뿜을 수 없고 안으로 소륵의 근원이 마르니 매실을 가리킨들 무슨 보탬이랴. 담벽에 베개하고 기대지 않음이 없으니 누가 갑병을 입고 잡음을 감당하랴. 공이 이른 날 성문을 활짝 여니 새장과 우리를 연 듯하여 위엄이 떨쳐 어찌 예리한 기물을 수고롭게 하랴 삿된 쓸개가 다 꺾이고 교화가 행해져 새 향기를 맡는 듯 놀란 넋이 다 돌아왔다. 만왕이 뚫은 귀로 그 남다른 계략을 배불리 듣고 새긴 살갗이 엄한 주벌에 걸릴까 두려워 흉흉히 번개를 보고 우레를 두려워하다 갑자기 까마귀처럼 날고 물고기처럼 흩어졌다. 공이 곧 날랜 이를 가려 잠시 도망을 쫓게 하여 그 날개 늘어뜨린 때를 타서 우리의 털 태우는 형세를 펴니 포로의 수를 적지 못하고 벤 귀가 많았다. 그 뒤 지도를 살펴 천험을 찾으니 이는 원숭이가 높이 기르는 굴이요 승냥이와 이리가 틈을 엿보는 지름길이라 이에 하나는 웅장한 관문을 창건하고 하나는 큰 방비를 표하게 하여, 위태로운 성가퀴는 산에 기대어 험준함을 돕고 긴 도랑은 골짜기를 이끌어 깊음에 바탕하니 완연히 잘 닫는 기틀을 이루고 실로 사잇길을 잡았다. 진흙 한 덩이로 굳힐 수 있으니 넘을 수 없음을 알겠고 봉화가 놀람을 그치니 앉아서 싸우지 않고 이김을 보았다. 이어 물길을 찾아 따로 하영을 세우니 먼 데 중하를 어지럽히는 무리가 갈대배를 꾀하기 어렵고 고루 수자리 군졸을 내니 흘러가는 땔감 노래를 면하여, 강역은 길이 엎은 사발처럼 보전되고 마을은 오직 솥을 벌인 것을 자랑하니 경운의 나라 인재는 한가히 봉황 토하는 말을 읊고 탁·정 같은 고을 호걸은 고요히 앉아 토란(蹲鴟)의 이익을 쌓았다. 공은 융곤에서 자고 먹으며 조각배를 꿈꾸어 먼 염려를 무궁에 펴려 하니 어찌 빈말을 세워 썩지 않기를 바라랴. 이에 말하기를 「저 만의 습속은 겉은 어리석고 속은 교활하여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이니 비록 장숙이 이때 공이 이미 장적에게 이루어졌으나 계손이 뒷날 근심이 반드시 전유에 있을 것이다. 어찌 헛되이 금성이라 부르면서 아직 나곽이 없으랴. 백성을 지키는 제도는 내가 아니면 누구랴」 하고 마음을 열어 신이 지극한 정성을 흠모하고 장을 날려 황제가 붉은 청을 윤허하였다. 이때 몇몇 관료가 어려움을 아뢰고 장교가 의심을 바쳐 다 말하기를 「공손술이 말을 뛰어 웅장하게 임한 것도 뜻이 없지 않았고 제갈량이 와룡으로 굴기한 것도 뜻이 있었다. 다만 지난번 자성을 쌓을 때 오히려 객토에 바탕하여 아홉 해 만에 비로소 이루었으니 백대에 어려운 바다. 하물며 이제 크게 터를 일으키려 하니 지체한다는 비난을 이룰까 두렵다」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술법이 이미 먼저 정해졌으니 일은 마땅히 속히 이룰 것이다. 반드시 끝내 하늘 마음에 간택될 것이니 어찌 헛되이 지맥을 뚫는다 하랴」 하였다. 이에 군후가 달려 고하고 읍윤이 즐겨 따라, 높낮이를 재고 원근을 의논하며 재용을 염려하고 사기를 헤아려 노나라 글에서 시후를 캐고 주나라 법령에서 규모를 본떠 긴 강을 끌어 긴 참호를 벌이니 하우가 능함을 부끄러워하고 높은 산을 마주하여 높은 담을 그으니 진황(秦皇)이 낯빛을 잃었다. 하물며 오정에게 명하여 벗을 부르고 육갑을 운용하여 종을 몰아 천오는 찬 샘에서 물을 말리고 지온은 모래를 변하여 아름다운 흙으로 만드니 실로 백령이 그윽이 돕고 만백성이 기꺼이 따른다 하겠다. 삽이 구름 봉우리처럼 모이고 절굿공이가 우레 소리로 뛰되 사나운 바람과 세찬 비를 보지 못하고 또 대바구니를 배불리 하고 술잔을 흡족하게 하니 등등히 다만 다투어 환호하고 흘흘히 곧 솟아난 듯하여 백 담이 다 지어져 삼십 일에 이루어졌다. 그런 뒤 영 땅 장인이 공을 수고롭게 하여 흰 재목이 바탕을 바꾸고 우인이 묘함을 펴서 붉은 흙이 빛을 엉기니, 허공을 모아 봉로가 높이 벌이고 험함을 걸쳐 인도가 솟아나 가로로 여덟 자를 나누고 조각한 용마루를 맺어 채색 봉황이 잇달아 날고 난간이 네 모퉁이에 통하여 수놓은 성가퀴를 안아 갠 무지개가 곧게 걸렸다. 한 냇물의 아름다운 경치를 덮고 만 집의 기쁜 소리를 감싸 멀리서 바라보면 높고 높아 구름 속 겹친 봉우리에 비단 노을과 비단 안개가 그 위에 은은히 비치는 듯하고 다가가 살피면 붉고 빛나 바닷가 신선 산의 금대와 은궐이 그 사이에 빛나는 듯하다. 처음 무리를 갖춤에서 부역을 풀기까지 관세의 썩은 꿰미를 빌리지 않고 군조의 쪼갠 낟알에 바탕하지 않고 다 남은 재물을 모아 엄연히 장관을 이루니, 마침내 만 추장이 넋을 잃고 종 무리가 마음을 돌려 감히 보루를 문지르고 돌아온다 말하지 못하고 성곽에 들어오는 부역을 이룰 길이 없었다. 이에 그림을 징발하여 구중에 우러러 바치니 곧 윤언을 내려 한 글자로 지나치게 칭찬하여 한림 재자에게 성상의 뜻을 펴고 황견외손에게 고운 말을 엮게 하였다. 공은 비록 금봉이 글을 물어 옴을 맞았으나 돌거북이 비석을 지는 일은 의논하지 않았으니 대개 겸손으로 스스로 다스려 그 공을 갑자기 일컬음을 부끄러워한 것이다. 창조(蒼鳥)가 높이 날고 취화가 멀리 사냥하여 옥루에 신선처럼 노닐고 금용에 성상의 염려를 편안히 함에 이르러 친히 넓은 규모를 살피고 더욱 충절을 흠모하여 특별히 옥함을 전하여 비문을 징발하여 올리게 하고 마침내 새기라 명하여 길이 위열을 드날리니 실로 만고에 듣지 못한 일이요 사방에 견줄 데 없는 영광이다. 아름답다. 용은 구름으로 일어나고 물고기는 물로 즐기니 누가 공이 지혜가 사물 밖까지 두루 미치고 일이 기틀에 앞서 비추어 무릇 권모를 베풂이 부절을 합한 듯함을 우러르지 않으랴. 그러니 옛날 온 촉이 성이 없을 때 하늘이 성대한 공적을 남겨 날마다 영재를 기다렸으니 이른바 비상한 사람이 있은 뒤에 비상한 일이 있고 비상한 일이 있은 뒤에 비상한 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상한 것은 참으로 보통 사람이 바랄 바가 아니다. 치원은 비록 언덕에서 방을 보듯 사면(師冕)이 무엇을 알랴만 진(秦)나라가 어진 이를 거두어 유여를 버리지 않았으니 삼가 실록을 이루어 감히 특별한 공을 적는다. 바라는 바는 사해의 사다리와 배가 웅장한 계획을 보고 이마를 조아리고 구주의 정과 부월이 법가를 바라보며 마음을 편안히 하는 것이다. 중화 삼년 용집 계묘 팔월 이십오일에 적는다.

협주 7

公鄆行次咸陽。除授西川節制。

공이 운주에서 함양에 이르렀을 때 서천 절제에 제수되었다.

修功峽關。置平夷鎭。蠻賊要路。固守無虞。

협관에 공을 닦아 평이진을 두니 만적의 요로라 굳게 지켜 근심이 없다.

大渡河側。置防河營。

대도하 곁에 방하영을 두었다.

蜀山無土。昔張儀築子城。輦土於學射山。日役往返。九載後始成。

촉산에는 흙이 없어 옛날 장의가 자성을 쌓을 때 학사산에서 흙을 날라 날마다 오가며 아홉 해 뒤에야 이루었다.

蜀地穿未盈尺。泉源漲起。至是土出沙中。城畢如舊

촉 땅은 한 자를 채 파지 못하면 샘이 솟아오르는데 이때에 이르러 모래 속에서 흙이 나와 성이 예전처럼 끝났다.

築板所費。錢一百五十六貫。米一十九萬石。皆由智計。不破上供。

판축에 든 비용은 돈 백오십육 관, 쌀 십구만 석인데 다 지혜로운 계책으로 말미암아 상공을 축내지 않았다.

築城碑。今租庸王相公承旨撰詞。

축성비는 지금 조용 왕 상공이 뜻을 받들어 글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