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계원필경집 › 권17 계장

천거를 아뢰기를 허락하심에 사례하는 장謝許奏薦狀

계원필경집 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 886년 (당 중화 6·신라 헌강왕 12) · 단락 1 · 한자 239자 · 낭독 1.0분

「계원필경집」 권17 계장 「천거를 아뢰기를 허락하심에 사례하는 장」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공자에게 물은 남궁괄처럼

右某。昨日見衙前兵馬使曠師禮奉傳處分。特賜慰問。兼許奏薦。令自修狀本來者。俯慙蓬跡。仰聽蘭言。喜抃而身輕欲飛。兢惶而心戰難遏。何者。某職叨鄭驛。已謂極榮。名達堯階。實爲過望。憑何展效。佩此恩光。況乃朗鑑氷開。英才霧集。所宜倒屣則先迎王粲。築臺則次接劇辛。如某者。輟耕海上之田。來泣塵中之路。雖云游學。尙未成功。豈料勤勞莫副於指蹤。將念已全於卵翼。許令伐善。將使警愚。每思郄子之驟稱。深慙速謗。欲效黃公之多讓。又恐失時。冀緝拙詞。仰遵嚴命。南宮适之問宣父。實有所歸。東方朔之對漢皇。寧辭自責。旣忝風雷之變化。佇期雨露之沾濡。下情無任感戴榮抃兢灼之至。謹奉狀陳謝。謹狀。

위는, 제가 어제 아전병마사 광사례가 처분을 받들어 전하는 것을 보니 특별히 위문을 내리고 겸하여 천거를 아뢰기를 허락하여 스스로 장본을 닦아 오게 하셨습니다. 굽어 쑥대 같은 자취가 부끄럽고 우러러 난초 같은 말씀을 들으니 기뻐 손뼉 쳐 몸이 가벼워 날 듯하고 두려워 마음이 떨려 막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직이 외람되이 정역이니 이미 지극한 영광이라 하겠고 이름이 요임금 섬돌에 이르니 실로 지나친 바람이라 무엇에 기대어 효험을 펴서 이 은혜의 빛을 차겠습니까. 하물며 밝은 거울이 얼음처럼 열리고 영재가 안개처럼 모이니 마땅히 신을 거꾸로 신고 먼저 왕찬을 맞고 대를 쌓아 다음으로 극신을 접해야 하는데, 저 같은 이는 바다 위의 밭 갈기를 그치고 와서 티끌 속 길에서 우니 비록 유학한다 하나 아직 공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어찌 부지런한 수고가 가리키는 바에 맞지 않는데 장차 생각은 이미 알 품는 데 온전하여 자랑을 허락하고 어리석은 이를 경계하게 하실 줄 헤아렸겠습니까. 늘 극자의 갑작스러운 일컬음을 생각하매 깊이 빠른 비방이 부끄럽고 황공의 많은 사양을 본받으려 하나 또 때를 잃을까 두려우니 졸렬한 말을 엮어 엄명을 우러러 따르기 바랍니다. 남궁괄이 공자에게 물은 것은 실로 돌아가는 바가 있었고 동방삭이 한나라 황제에게 답한 것은 어찌 자책을 사양하였겠습니까. 이미 풍뢰의 변화를 외람되이 받았으니 비와 이슬의 적심을 기다립니다. 아랫사람의 마음은 은혜에 감격하여 영광에 손뼉 치며 두려워 애타는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장을 받들어 사례하니, 삼가 장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