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계원필경집 › 권18 서장계

전 호남 관찰순관 배료를 위한 계前湖南觀察巡官裵璙啓

계원필경집 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 886년 (당 중화 6·신라 헌강왕 12) · 단락 1 · 한자 310자 · 낭독 1.2분

「계원필경집」 권18 서장계 「전 호남 관찰순관 배료를 위한 계」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서른 식구 외로운 이들을 위해 산직을 청하며

右件人。是某座主侍郞再從弟。某去乾符三年冬。到湖南。起居座主侍郞之時。見於諸院弟兄中。偏所記念。自數年繼遭剽劫。生計蕩盡。骨肉凋零。久在江南。近投常府。願披情懇。泣告尊慈。駐留多時。不幸疾苦。遂且扶持發去云。欲逕往襄陽。迎接侍郞。今得書云行至滁州。前去未得。道途旣阻。溝壑是虞。況乃孤孀三十餘口。更無産業。未卜定居。伏緣某家寄日邊。路踰天外。杳無來信。固絶他圖。旣無寸土以分耕。寧有尺波而假潤。是以不量僭越。輒具薦論。命懸沸鼎之中。目斷台階之下。非不知捋虎鬚之險。非不知探龍頷之難。但緣旣忝門生。豈論賓貢。鴛鸞之與螻蟻。感恩皆同。多士之與遠人。報德何異。伏乞太尉相公念以程窮計盡。愍其柱促聲哀。特賜於廬壽管內場院。或堰埭中。補署散職。所冀月有俸入。便獲安家。裵璙卽自到襄州。令弟璹仰副驅策。不度涯分。浼瀆尊嚴。下情無任感泣兢懼之至。

위 사람은 저의 좌주 시랑의 재종제입니다. 제가 지난 건부 삼년 겨울 호남에 이르러 좌주 시랑께 문안할 때 여러 원의 형제 가운데서 보아 특별히 기억하는 바인데, 몇 해 잇달아 노략을 당해 생계가 탕진되고 골육이 시들어 떨어져 오래 강남에 있다가 근래 상주 관부에 몸을 던져 정의 간절함을 펴서 존귀한 자애께 울며 고하기 원하였습니다. 머문 지 여러 때에 불행히 병을 앓다가 마침내 우선 부축하여 떠나 곧바로 양양에 가서 시랑을 맞이하려 하였는데, 이제 글을 받으니 「저주에 이르러 앞으로 가지 못하니 길이 이미 막혀 구렁에 굴러 떨어질까 근심이다」 하며, 하물며 외로운 과부 삼십여 식구가 다시 산업이 없어 정착할 곳을 아직 정하지 못하였다 합니다. 저는 집이 해 곁에 붙어 있고 길이 하늘 밖을 넘어 아득히 오는 소식이 없고 참으로 다른 도모가 끊겨 이미 한 치 땅도 나누어 갈 것이 없고 어찌 한 자 물결로 윤택을 빌리겠습니까. 그러므로 참월함을 헤아리지 않고 문득 천거를 갖추어 논하니 목숨은 끓는 솥 안에 달리고 눈은 태계 아래 끊깁니다. 범 수염을 잡는 위험을 모르는 것이 아니요 용 턱을 더듬는 어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다만 이미 외람되이 그 문생이 되었으니 어찌 빈공 출신이라 따지겠습니까. 원앙과 난새와 땅강아지와 개미가 은혜에 감격함은 다 같고 많은 선비와 먼 사람이 덕에 보답함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엎드려 빌건대 태위 상공께서 정도가 궁하고 계책이 다한 것을 생각하시고 그 줄받침을 바싹 조인 듯 소리가 애처로움을 불쌍히 여기시어 특별히 여주·수주 관내 창고나 둑을 맡은 자리 가운데 한직에 채워 임명해 주소서. 바라는 바는 달마다 봉급이 들어와 곧 집을 편안히 하는 것입니다. 배료는 곧 스스로 양주에 이르고 아우 숙이 부림에 맞추기를 우러릅니다. 분수를 헤아리지 않고 존엄을 더럽히니 아랫사람의 마음은 감격하여 울고 두려워하는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