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계원필경집 › 권19 장계·별지

찾아 주심에 사례하는 장謝降顧狀

계원필경집 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 886년 (당 중화 6·신라 헌강왕 12) · 단락 1 · 한자 274자 · 낭독 1.1분

「계원필경집」 권19 장계·별지 「찾아 주심에 사례하는 장」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한 이랑 궁한 집을 삼청의 신선 수레로 찾아 주시니

某啓。某未遂山棲。尙從塵役。所居官舍。深在軍營。雖異衡門。實同陋巷。旣乏君章之蘭菊。可襲馨香。空餘仲蔚之蓬蒿。偏資寂寞。春日則蝶牽晝夢。秋風則蛩助夜吟。以此爲娛。無他所覬。今者方經離亂。再獲起居。但喜攀父母之恩。却慙下兒女之淚。況某叨榮秦爵。就學漢儀。姜維之膽氣雖麤。鄧艾之口詞甚訥。唯深感激。莫備啓陳。伏蒙尙書念以遠方。察其獨立。俯憐素志。每煦温顏。聽及階及席之言。佇銘骨銘肌之懇早來又蒙降三淸之仙駕。顧一畝之窮居。方慙隨入室之賢。豈料忝軾廬之念。非所敢望。將何自安。莫不恩光遠耀於殊鄕。卑迹永超於末路。揣庸賤則華夷有隔。較輝榮則古今無倫。數年乖豹隱之期。常低俗眼。此日覩鳳儀之後。豁展愁眉。下情無任感戴欣抃兢惕之至。謹祗候起居陳謝。謹狀。

아무개는 아룁니다. 저는 아직 산에 깃들지 못하고 오히려 티끌 부역을 따라 사는 관사가 깊이 군영 안에 있으니 비록 형문과 다르나 실로 누추한 골목과 같아, 이미 군장의 난초와 국화가 향기를 이을 것이 모자라고 부질없이 중울의 쑥대만 남아 치우쳐 적막에 바탕하니, 봄날이면 나비가 낮 꿈을 끌고 가을바람이면 귀뚜라미가 밤 읊음을 도와 이로써 즐거움을 삼고 달리 바라는 바가 없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난리를 지나 다시 문안을 얻으니 다만 부모의 은혜를 잡음을 기뻐하되 도리어 아녀자의 눈물 내림이 부끄럽습니다. 하물며 저는 외람되이 진나라 작위를 영화롭게 받고 한나라 의식에 나아가 배우니 강유의 담기는 비록 거칠고 등애의 말은 매우 더듬어 오직 깊이 감격할 뿐 아뢰어 펴지 못합니다. 상서께서 먼 지방임을 생각하시고 그 홀로 섬을 살피시어 굽어 본디 뜻을 불쌍히 여겨 늘 따뜻한 낯빛으로 따뜻이 하시고 섬돌에 미치고 자리에 미치는 말을 들어 주시니 뼈에 새기고 살에 새기는 간절함을 기다립니다. 아침에 또 삼청의 신선 수레를 내려 한 이랑 궁한 집을 돌아보시니 바야흐로 방에 든 어진 이를 따름이 부끄러운데 어찌 여막에 예를 표하는 생각을 외람되이 받을 줄 헤아렸겠습니까. 감히 바랄 바가 아니니 장차 무엇으로 스스로 편안하겠습니까. 은혜의 빛이 멀리 다른 고을에 빛나고 낮은 자취가 길이 말로를 넘지 않음이 없으니, 용렬하고 천함을 헤아리면 화이가 막힘이 있고 빛나는 영광을 견주면 고금에 견줄 데 없습니다. 몇 해 표범이 숨는 기약에 어긋나 늘 속된 눈을 낮추었는데 이날 봉황 위의를 본 뒤 시름 눈썹을 활짝 폈습니다. 아랫사람의 마음은 은혜에 감격하여 기뻐 손뼉 치며 두려워하는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공손히 기다려 문안하고 사례를 아뢰니, 삼가 장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