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섬 수재의 송별에 답함酬楊贍秀才送別
「계원필경집」 권20 시 「양섬 수재의 송별에 답함」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의 막부에서 네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스스로 골라 스무 권으로 엮어 886년 신라 헌강왕에게 올린 문집. 황제에게 올린 표와 장, 황소를 꾸짖은 격문, 여러 절도사에게 보낸 편지, 부하에게 내린 위곡과 거첩, 도교 재사와 불교 재문, 제문, 성도 나성과 안남 그림에 붙인 기, 그리고 고변에게 올린 계와 시까지 366편이 실려 있다. 「신은 신라 사람입니다」로 시작하는 첫 계와 「천하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 귀신도 너를 베기로 의논하였다」는 토황소격문이 여기 있고, 마지막 권은 열두 살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은 시다. 지금 전하는 한국인의 문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 홍석주와 서유구가 활자로 찍으며 「우리 동방 문장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하였다. 그 두 서문도 함께 옮겼다.
1광릉의 풍월이 잔 드는 것을 기다리리
海槎雖定隔年廻。衣錦還鄕愧不才。暫別蕪城當葉落。遠尋蓬島趁花開。谷鶯遙想高飛去。遼豕寧慙再獻來。好把壯心謀後會。廣陵風月待銜杯。
바다 뗏목은 비록 해를 넘겨 돌아옴이 정해졌으나 비단옷으로 고향에 돌아감이 재주 없음에 부끄럽네. 잠시 무성을 떠나니 잎 떨어질 때요 멀리 봉래섬을 찾으니 꽃 필 때에 맞추리. 골짜기 꾀꼬리는 멀리 높이 날아감을 생각하고 요동 돼지는 어찌 다시 바침을 부끄러워하랴. 장한 마음을 잘 잡아 뒷날 모임을 꾀하니 광릉의 풍월이 잔 드는 것을 기다리리.
협주 1
時楊生有隨計之行
이때 양생은 과거를 보러 갈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