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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柄

한비자 韓非子 · 한비(韓非)와 후학 · 기원전 3세기 · 단락 3 · 한자 942자 · 낭독 3.8분

「한비자」 이병 「二柄」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법가가 한자리에 모인 책이다. 상앙의 법(法)과 신불해의 술(術)과 신도의 세(勢)를 한비가 받아 하나로 엮었다. 사람은 착해서 착한 것이 아니라 그름을 할 수 없어 착하다고 보고, 임금이 기댈 것은 어짊이 아니라 법과 술과 세라고 말한다. 모순(矛盾)이 여기서 나왔다. 뚫지 못할 방패와 뚫지 못함이 없는 창을 함께 파는 초나라 사람 이야기로 요와 순을 함께 기릴 수 없음을 보였고, 난세에서 다시 한 번 어짊과 세를 두고 같은 비유를 든다.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 송나라 사람(수주대토)과 발이 두 번 잘리고서야 옥으로 인정받은 화씨의 벽옥도 이 책의 이야기다. 말하기의 어려움을 다룬 세난(說難)에는 용의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 이야기가 있다. 임금에게도 그런 비늘이 있어 건드리면 죽는다는 것인데, 정작 한비 자신이 진나라에서 옥에 갇혀 죽었다. 존한(存韓)에는 한비가 진왕에게 올린 글과, 그 바로 뒤에 이사가 「한비는 한나라를 위해 온 자이니 돌려보내지 말라」고 올린 글이 나란히 실려 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몬 문서가 그 사람의 책에 함께 남았다.

明主之所導制其臣者,二柄而已矣。二柄者,刑德也。何謂刑德?曰:殺戮之謂刑,慶賞之謂德。爲人臣者畏誅罰而利慶賞,故人主自用其刑德,則羣臣畏其威而歸其利矣。故世之姦臣則不然,所惡,則能得之其主而罪之;所愛,則能得之其主而賞之。今人主非使賞罰之威利出於己也,聽其臣而行其賞罰,則一國之人皆畏其臣而易其君,歸其臣而去其君矣。此人主失刑德之患也。夫虎之所以能服狗者,爪牙也,使虎釋其爪牙而使狗用之,則虎反服於狗矣。人主者,以刑德制臣者也,今君人者釋其刑德而使臣用之,則君反制於臣矣。故田常上請爵祿而行之羣臣,下大斗斛而施於百姓,此簡公失德而田常用之也,故簡公見弑。子罕謂宋君曰:「夫慶賞賜予者,民之所喜也,君自行之;殺戮刑罰者,民之所惡也,臣請當之。」於是宋君失刑而子罕用之。故宋君見劫。田常徒用德而簡公弑,子罕徒用刑而宋君劫。故今世爲人臣者兼刑德而用之,則是世主之危甚於簡公、宋君也。故劫殺擁蔽之主,兼失刑德而使臣用之,而不危亡者,則未嘗有也。

밝은 임금이 그 신하를 이끌고 제어하는 것은 두 자루뿐이다. 두 자루란 형(刑)과 덕(德)이다. 무엇을 형과 덕이라 하는가. 죽이는 것을 형이라 하고 경사와 상을 덕이라 한다. 남의 신하 된 이는 베고 벌함을 두려워하고 경사와 상을 이롭게 여기니, 그러므로 임금이 스스로 그 형과 덕을 쓰면 뭇 신하가 그 위엄을 두려워하고 그 이로움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세상의 간사한 신하는 그렇지 않아, 미워하는 자는 임금에게서 얻어 내어 죄주고 사랑하는 자는 임금에게서 얻어 내어 상 준다. 이제 임금이 상벌의 위엄과 이로움을 제게서 나오게 하지 않고 그 신하의 말을 들어 상벌을 행하면, 온 나라 사람이 다 그 신하를 두려워하고 임금을 가벼이 여기며 그 신하에게 돌아가고 임금을 떠난다. 이것이 임금이 형과 덕을 잃는 근심이다. 무릇 범이 개를 복종시킬 수 있는 것은 발톱과 어금니 때문이니, 범이 그 발톱과 어금니를 놓고 개에게 쓰게 하면 범이 도리어 개에게 복종한다. 임금은 형과 덕으로 신하를 제어하는 이인데, 이제 남의 위에 선 이가 그 형과 덕을 놓고 신하로 하여금 쓰게 하면 임금이 도리어 신하에게 제어된다. 그러므로 전상은 위로 작위와 녹을 청하여 뭇 신하에게 행하고 아래로 말과 섬을 크게 하여 백성에게 베풀었으니, 이는 간공이 덕을 잃고 전상이 그것을 쓴 것이라 간공이 죽임을 당하였다. 자한이 송나라 임금에게 말하였다. 「무릇 경사와 상과 내려 주는 것은 백성이 기뻐하는 바이니 임금께서 몸소 행하시고, 죽이고 형벌하는 것은 백성이 미워하는 바이니 신이 맡기를 청합니다.」 이에 송나라 임금은 형을 잃고 자한이 그것을 썼으므로 송나라 임금이 겁탈당하였다. 전상은 다만 덕을 썼는데 간공이 죽었고 자한은 다만 형을 썼는데 송나라 임금이 겁탈당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남의 신하 된 이가 형과 덕을 아울러 쓴다면 세상 임금의 위태로움은 간공과 송나라 임금보다 심하다. 그러므로 겁탈당하고 죽고 가려진 임금이 형과 덕을 아울러 잃고 신하에게 쓰게 하고서 위태롭거나 망하지 않은 일은 일찍이 없었다.

人主將欲禁姦,則審合刑名;刑名者,言與事也。爲人臣者陳而言,君以其言授之事,專以其事責其功。功當其事,事當其言,則賞;功不當其事,事不當其言,則罰。故羣臣其言大而功小者則罰,非罰小功也,罰功不當名也;羣臣其言小而功大者亦罰,非不說於大功也,以爲不當名也害甚於有大功,故罰。昔者韓昭侯醉而寢,典冠者見君之寒也,故加衣於君之上,覺寢而說,問左右曰:「誰加衣者?」左右對曰:「典冠。」君因兼罪典衣與典冠。其罪典衣,以爲失其事也;其罪典冠,以爲越其職也。非不惡寒也,以爲侵官之害甚於寒。故明主之畜臣,臣不得越官而有功,不得陳言而不當。越官則死,不當則罪。守業其官,所言者貞也,則羣臣不得朋黨相爲矣。

임금이 간사함을 금하려 하면 꼴과 이름이 맞는지 살핀다. 꼴과 이름이란 말과 일이다. 남의 신하 된 이가 늘어놓아 말하면 임금은 그 말로 일을 주고 오로지 그 일로 공을 책한다. 공이 그 일에 맞고 일이 그 말에 맞으면 상 주고, 공이 그 일에 맞지 않고 일이 그 말에 맞지 않으면 벌한다. 그러므로 뭇 신하 가운데 그 말이 크고 공이 작은 자는 벌하니, 작은 공을 벌하는 것이 아니라 공이 이름에 맞지 않음을 벌하는 것이다. 뭇 신하 가운데 그 말이 작고 공이 큰 자도 벌하니, 큰 공을 기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름에 맞지 않음의 해로움이 큰 공이 있음보다 심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벌한다. 옛날 한나라 소후가 취하여 잠들자 갓을 맡은 이가 임금이 추운 것을 보고 옷을 임금 위에 덮었다. 잠에서 깨어 기뻐하며 좌우에게 물었다. 「누가 옷을 덮었느냐?」 좌우가 대답하였다. 「갓을 맡은 이입니다.」 임금은 이에 옷을 맡은 이와 갓을 맡은 이를 아울러 죄주었다. 옷을 맡은 이를 죄준 것은 그 일을 잃었다고 여겨서요, 갓을 맡은 이를 죄준 것은 그 직분을 넘었다고 여겨서다. 추위를 싫어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벼슬을 침노하는 해로움이 추위보다 심하다고 여겨서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이 신하를 기름에, 신하는 벼슬을 넘어 공을 세울 수 없고 말을 늘어놓고 맞지 않을 수 없다. 벼슬을 넘으면 죽고 맞지 않으면 죄준다. 제 벼슬의 업을 지켜 말한 바가 곧으면 뭇 신하가 붕당을 지어 서로 위해 줄 수 없다.

人主有二患:任賢,則臣將乘於賢以劫其君;妄舉,則事沮不勝。故人主好賢,則羣臣飾行以要君欲,則是羣臣之情不效;羣臣之情不效,則人主無以異其臣矣。故越王好勇而民多輕死;楚靈王好細腰而國中多餓人;齊桓公妬而好内,故竪刁自宮以治内;桓公好味,易牙蒸其子首而進之;燕子噲好賢,故子之明不受國。故君見惡,則羣臣匿端;君見好,則羣臣誣能。人主欲見,則羣臣之情態得其資矣。故子之託於賢以奪其君者也,竪刁、易牙因君之欲以侵其君者也。其卒,子噲以亂死,桓公蟲流出户而不葬。此其故何也?人君以情借臣之患也。人臣之情非必能愛其君也,爲重利之故也。今人主不掩其情,不匿其端,而使人臣有緣以侵其主,則羣臣爲子之、田常不難矣。故曰:「去好去惡,羣臣見素。」羣臣見素,則大君不蔽矣。

임금에게 두 가지 근심이 있다. 어진 이에게 맡기면 신하가 어짊을 타고 그 임금을 겁탈하려 하고, 망령되이 들면 일이 막혀 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임금이 어짊을 좋아하면 뭇 신하가 행실을 꾸며 임금의 바람에 맞추니, 이러면 뭇 신하의 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뭇 신하의 정이 드러나지 않으면 임금은 그 신하를 가릴 길이 없다. 그러므로 월왕이 용맹을 좋아하니 백성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이가 많았고, 초나라 영왕이 가는 허리를 좋아하니 나라 안에 주린 사람이 많았으며, 제나라 환공이 시샘하고 안을 좋아하니 수조가 스스로 거세하여 안을 다스렸고, 환공이 맛을 좋아하니 역아가 제 아들의 머리를 쪄서 바쳤으며, 연나라 자쾌가 어진 이를 좋아하니 자지가 밝히 나라를 받지 않는 척하였다. 그러므로 임금이 미워함을 보이면 뭇 신하가 실마리를 감추고, 임금이 좋아함을 보이면 뭇 신하가 능한 척 속인다. 임금이 뜻을 드러내려 하면 뭇 신하의 정과 태도가 밑천을 얻는다. 그러므로 자지는 어짊에 기대어 그 임금을 빼앗은 자요, 수조와 역아는 임금의 바람을 타고 그 임금을 침노한 자다. 그 끝에 자쾌는 어지러움 속에 죽고 환공은 구더기가 문밖으로 흘러 나오도록 장사되지 못하였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임금이 정을 신하에게 빌려 준 근심이다. 신하의 정은 반드시 그 임금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이익 때문이다. 이제 임금이 그 정을 가리지 않고 그 실마리를 감추지 않아 신하로 하여금 말미암아 그 임금을 침노할 수 있게 하면, 뭇 신하가 자지와 전상이 되기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좋아함을 버리고 미워함을 버리면 뭇 신하가 바탕을 드러낸다」 한다. 뭇 신하가 바탕을 드러내면 큰 임금이 가려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