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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面

한비자 韓非子 · 한비(韓非)와 후학 · 기원전 3세기 · 단락 5 · 한자 900자 · 낭독 3.6분

「한비자」 남면 「南面」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법가가 한자리에 모인 책이다. 상앙의 법(法)과 신불해의 술(術)과 신도의 세(勢)를 한비가 받아 하나로 엮었다. 사람은 착해서 착한 것이 아니라 그름을 할 수 없어 착하다고 보고, 임금이 기댈 것은 어짊이 아니라 법과 술과 세라고 말한다. 모순(矛盾)이 여기서 나왔다. 뚫지 못할 방패와 뚫지 못함이 없는 창을 함께 파는 초나라 사람 이야기로 요와 순을 함께 기릴 수 없음을 보였고, 난세에서 다시 한 번 어짊과 세를 두고 같은 비유를 든다.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 송나라 사람(수주대토)과 발이 두 번 잘리고서야 옥으로 인정받은 화씨의 벽옥도 이 책의 이야기다. 말하기의 어려움을 다룬 세난(說難)에는 용의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 이야기가 있다. 임금에게도 그런 비늘이 있어 건드리면 죽는다는 것인데, 정작 한비 자신이 진나라에서 옥에 갇혀 죽었다. 존한(存韓)에는 한비가 진왕에게 올린 글과, 그 바로 뒤에 이사가 「한비는 한나라를 위해 온 자이니 돌려보내지 말라」고 올린 글이 나란히 실려 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몬 문서가 그 사람의 책에 함께 남았다.

人主之過,在已任臣矣,又必反與其所不任者備之,此其說必與其所任者爲讎,而主反制於其所不任者。今所與備人者,且曩之所備也。人主不能明法而以制大臣之威,無道得小人之信矣。人主釋法而以臣備臣,則相愛者比周而相譽,相憎者朋黨而相非。非譽交爭,則主惑亂矣。人臣者,非名譽請謁無以進取,非背法專制無以爲威,非假於忠信無以不禁;三者,惽主壞法之資也。人主使人臣雖有智能,不得背法而專制;雖有賢行,不得踰功而先勞;雖有忠信,不得釋法而不禁:此之謂明法。

임금의 허물은 이미 신하에게 맡기고서 또 반드시 맡기지 않은 이로 그를 대비하는 데 있다. 이러면 그 말이 반드시 맡긴 이와 원수가 되고 임금은 도리어 맡기지 않은 이에게 제어된다. 이제 함께 남을 대비하는 이가 또한 지난날 대비하던 대상이다. 임금이 법을 밝혀 대신의 위엄을 제어하지 못하면 소인의 믿음을 얻을 길이 없다. 임금이 법을 놓고 신하로 신하를 대비하면, 서로 사랑하는 이는 무리 지어 서로 기리고 서로 미워하는 이는 붕당을 지어 서로 그르다 한다. 그르다 함과 기림이 서로 다투면 임금은 홀려 어지러워진다. 신하란 이름과 기림과 청탁이 아니면 나아가 얻을 길이 없고, 법을 등지고 오로지 제어하지 않으면 위엄을 삼을 길이 없으며, 충성과 믿음을 빌리지 않으면 금함을 면할 길이 없다. 이 셋은 임금을 어둡게 하고 법을 무너뜨리는 밑천이다. 임금은 신하로 하여금 비록 슬기와 능함이 있어도 법을 등지고 오로지 제어하지 못하게 하고, 비록 어진 행실이 있어도 공을 넘어 먼저 수고했다 하지 못하게 하며, 비록 충성과 믿음이 있어도 법을 놓고 금함을 면하지 못하게 하니, 이를 법을 밝힘이라 한다.

人主有誘於事者,有壅於言者,二者不可不察也。人臣易言事者,少索資,以事誣主。主誘而不察,因而多之,則是臣反以事制主也。如是者謂之誘,誘於事者困於患。其進言少,其退費多,雖有功,其進言不信。不信者有罪,事有功者不賞,則羣臣莫敢飾言以惽主。主道者,使人臣前言不復於後,後言不復於前,事雖有功,必伏其罪,謂之任下。

임금에게 일로 꾀임을 받는 일이 있고 말로 막히는 일이 있으니 이 둘은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신하 가운데 일을 쉽게 말하는 자는 밑천을 적게 구하며 일로 임금을 속인다. 임금이 꾀임을 받고 살피지 않아 이어 그를 대단히 여기면, 이는 신하가 도리어 일로 임금을 제어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꾀임이라 하니 일에 꾀임을 받는 이는 근심에 곤해진다. 그가 아뢴 말은 적은데 물러난 뒤 비용은 많으면, 비록 공이 있어도 그 아뢴 말이 미덥지 않다. 미덥지 않은 이에게 죄가 있고 일에 공이 있어도 상 주지 않으면, 뭇 신하가 감히 말을 꾸며 임금을 어둡게 하지 못한다. 임금의 도는 신하로 하여금 앞의 말이 뒤에서 뒤집히지 않고 뒤의 말이 앞에서 뒤집히지 않게 하며, 일에 비록 공이 있어도 반드시 그 죄를 지우니 이를 아래에 맡김이라 한다.

人臣爲主設事而恐其非也,則先出說設言曰:「議是事者,妬事者也。」人主藏是言,不更聽羣臣;羣臣畏是言,不敢議事。二勢者用,則忠臣不聽而譽臣獨任。如是者謂之壅於言,壅於言者制於臣矣。主道者,使人臣必有言之責,又有不言之責。言無端末辯無所驗者,此言之責也;以不言避責持重位者,此不言之責也。人主使人臣言者必知其端以責其實,不言者必問其取舍以爲之責,則人臣莫敢妄言矣,又不敢默然矣,言、默則皆有責也。

신하가 임금을 위해 일을 벌이면서 그것이 그르다 할까 두려워하면, 먼저 말을 내어 이렇게 깔아 둔다. 「이 일을 의논하는 자는 이 일을 시샘하는 자입니다.」 임금이 이 말을 마음에 담아 다시 뭇 신하의 말을 듣지 않고, 뭇 신하는 이 말을 두려워하여 감히 일을 의논하지 못한다. 두 형세가 쓰이면 충성된 신하의 말은 들리지 않고 기리는 신하만 홀로 맡는다. 이런 것을 말에 막힘이라 하니 말에 막힌 이는 신하에게 제어된다. 임금의 도는 신하로 하여금 반드시 말한 데 대한 책임이 있게 하고 또 말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도 있게 한다. 말에 처음과 끝이 없고 말솜씨에 살펴볼 바가 없음은 말한 책임이요, 말하지 않음으로 책임을 피하고 무거운 자리를 지킴은 말하지 않은 책임이다. 임금이 신하로 하여금 말한 이는 반드시 그 실마리를 알아 그 실지를 책하고, 말하지 않은 이는 반드시 그 취하고 버림을 물어 책임을 지우면, 신하가 감히 망령되이 말하지 못하고 또 감히 잠자코 있지도 못하니 말함과 잠잠함에 다 책임이 있는 것이다.

人主欲爲事,不通其端末,而以明其欲,有爲之者,其爲不得利,必以害反。知此者,任理去欲。舉事有道,計其入多,其出少者,可爲也。惑主不然,計其入,不計其出,出雖倍其入,不知其害,則是名得而實亡。如是者功小而害大矣。凡功者,其入多,其出少,乃可謂功。今大費無罪而少得爲功,則人臣出大費而成小功,小功成而主亦有害。

임금이 일을 하려 하면서 그 처음과 끝에 통하지 않은 채 하고 싶은 바만 밝히면, 그것을 하는 이는 그 함이 이롭지 못하고 반드시 해로움으로 돌아온다. 이를 아는 이는 이치에 맡기고 바람을 버린다. 일을 듦에 도가 있으니 그 들어옴이 많고 나감이 적은 것을 할 만하다. 홀린 임금은 그렇지 않아 들어옴만 헤아리고 나감을 헤아리지 않으니, 나감이 비록 들어옴의 갑절이라도 그 해로움을 알지 못하면 이는 이름은 얻고 실지는 잃는 것이다. 이러하면 공은 작고 해는 크다. 무릇 공이란 들어옴이 많고 나감이 적어야 공이라 할 수 있다. 이제 큰 비용을 쓰고도 죄가 없고 조금 얻은 것을 공으로 삼으면, 신하는 큰 비용을 내고 작은 공을 이루니 작은 공이 이루어져도 임금에게는 해가 있다.

不知治者,必曰:「無變古,毋易常。」變與不變,聖人不聽,正治而已。然則古之無變,常之毋易,在常古之可與不可。伊尹毋變殷,太公毋變周,則湯、武不王矣。管仲毋易齊,郭偃毋更晉,則桓、文不霸矣。凡人難變古者,憚易民之安也。夫不變古者,襲亂之迹;適民心者,恣姦之行也。民愚而不知亂,上懦而不能更,是治之失也。人主者,明能知治,嚴必行之,故雖拂於民,必立其治。說在商君之内外而鐵殳,重盾而豫戒也。故郭偃之始治也,文公有官卒;管仲始治也,桓公有武車:戒民之備也。是以遇贛窳墯之民,苦小費而忘大利也,故夤虎受阿謗。而𨌑小變而失長便,故鄒賈非載旅。狎習於亂而容於治,故鄭人不能歸。

다스림을 모르는 이는 반드시 말한다. 「옛것을 바꾸지 말고 떳떳한 것을 고치지 말라.」 바꿈과 바꾸지 않음을 성인은 듣지 않고 바르게 다스릴 뿐이다. 그러면 옛것을 바꾸지 않음과 떳떳한 것을 고치지 않음은 그 떳떳한 옛것이 될 만한지 아닌지에 달렸다. 이윤이 은나라를 바꾸지 않고 태공이 주나라를 바꾸지 않았다면 탕과 무왕이 왕 노릇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관중이 제나라를 고치지 않고 곽언이 진나라를 고치지 않았다면 환공과 문공이 패자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무릇 사람이 옛것을 바꾸기를 어려워함은 백성의 편안함을 흔들기를 꺼려서다. 무릇 옛것을 바꾸지 않음은 어지러운 자취를 이어받는 것이요, 백성의 마음에 맞춤은 간사한 행실을 놓아 두는 것이다. 백성이 어리석어 어지러움을 알지 못하고 위가 무르러 고치지 못하니 이것이 다스림의 잘못이다. 임금은 밝게 다스림을 알고 엄히 반드시 행하니, 그러므로 백성의 뜻에 거슬려도 반드시 그 다스림을 세운다. 그 설명은 상군이 드나들 때 쇠 몽둥이를 들고 무거운 방패로 미리 경계한 데 있다. 그러므로 곽언이 처음 다스릴 때 문공에게 관아의 군졸이 있었고, 관중이 처음 다스릴 때 환공에게 무장한 수레가 있었으니 백성을 경계하는 채비였다. 이 때문에 어리석고 게으른 백성을 만나면 작은 비용을 괴로워하여 큰 이익을 잊으니, 그러므로 인호가 마을의 헐뜯음을 받았다. 또 작은 변화에도 놀라 긴 편함을 잃으니, 그러므로 추가가 나그네 실어 나르는 일을 그르다 하였다. 어지러움에 익숙해져 다스림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그러므로 정나라 사람이 돌아오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