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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老

한비자 韓非子 · 한비(韓非)와 후학 · 기원전 3세기 · 단락 35 · 한자 6,371자 · 낭독 25.5분

「한비자」 해로 「解老」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법가가 한자리에 모인 책이다. 상앙의 법(法)과 신불해의 술(術)과 신도의 세(勢)를 한비가 받아 하나로 엮었다. 사람은 착해서 착한 것이 아니라 그름을 할 수 없어 착하다고 보고, 임금이 기댈 것은 어짊이 아니라 법과 술과 세라고 말한다. 모순(矛盾)이 여기서 나왔다. 뚫지 못할 방패와 뚫지 못함이 없는 창을 함께 파는 초나라 사람 이야기로 요와 순을 함께 기릴 수 없음을 보였고, 난세에서 다시 한 번 어짊과 세를 두고 같은 비유를 든다.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 송나라 사람(수주대토)과 발이 두 번 잘리고서야 옥으로 인정받은 화씨의 벽옥도 이 책의 이야기다. 말하기의 어려움을 다룬 세난(說難)에는 용의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 이야기가 있다. 임금에게도 그런 비늘이 있어 건드리면 죽는다는 것인데, 정작 한비 자신이 진나라에서 옥에 갇혀 죽었다. 존한(存韓)에는 한비가 진왕에게 올린 글과, 그 바로 뒤에 이사가 「한비는 한나라를 위해 온 자이니 돌려보내지 말라」고 올린 글이 나란히 실려 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몬 문서가 그 사람의 책에 함께 남았다.

德者,内也;得者,外也。「上德不德」,言其神不淫於外也。神不淫於外則身全,身全之謂德。德者,得身也。凡德者,以無爲集,以無欲成,以不思安,以不用固。爲之欲之,則德無舍;德無舍,則不全。用之思之則不固,不固則無功,無功則生於德。德則無德,不得則有德。故曰:「上德不德,是以有德。」

덕(德)은 안이요 얻음은 밖이다. 「높은 덕은 덕으로 여기지 않는다」 함은 그 신이 밖으로 넘치지 않음을 말한다. 신이 밖으로 넘치지 않으면 몸이 온전하고, 몸이 온전함을 덕이라 한다. 덕이란 몸을 얻음이다. 무릇 덕은 함이 없음으로 모이고 바람이 없음으로 이루어지며, 생각하지 않음으로 편안하고 쓰지 않음으로 굳는다. 하고 바라면 덕이 머물 데가 없고, 덕이 머물 데가 없으면 온전하지 않다. 쓰고 생각하면 굳지 않고, 굳지 않으면 공이 없으며, 공이 없음은 덕으로 여김에서 난다. 덕으로 여기면 덕이 없고 얻으려 하지 않으면 덕이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높은 덕은 덕으로 여기지 않으니 이 때문에 덕이 있다」 하였다.

所以貴無爲無思爲虚者,謂其意無所制也。夫無術者,故以無爲無思爲虚也。夫故以無爲無思爲虚者,其意常不忘虚,是制於爲虚也。虚者,謂其意無所制也。今制於爲虚,是不虚也。虚者之無爲也,不以無爲爲有常。不以無爲爲有常則虚,虚則德盛,德盛之謂上德。故曰:「上德無爲而無不爲也。」

함이 없음과 생각 없음을 빔이라 하여 귀히 여기는 까닭은 그 뜻이 매인 바가 없음을 말한다. 무릇 술이 없는 이는 짐짓 함이 없음과 생각 없음을 빔으로 삼는다. 무릇 짐짓 함이 없음과 생각 없음을 빔으로 삼는 이는 그 뜻이 늘 빔을 잊지 못하니 이는 빔이 되는 데 매인 것이다. 빔이란 그 뜻이 매인 바가 없음을 말한다. 이제 빔이 되는 데 매였으니 이는 비지 않은 것이다. 빈 이의 함 없음은 함 없음을 떳떳함으로 삼지 않는다. 함 없음을 떳떳함으로 삼지 않으면 비고, 비면 덕이 성하며, 덕이 성함을 높은 덕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높은 덕은 함이 없으면서 하지 않음이 없다」 하였다.

仁者,謂其中心欣然愛人也;其喜人之有福,而惡人之有禍也;生心之所不能已也,非求其報也。故曰:「上仁爲之而無以爲也。」

인(仁)이란 그 속마음이 흔연히 남을 사랑함을 말한다. 남에게 복이 있음을 기뻐하고 남에게 화가 있음을 미워하니, 나는 마음이 그칠 수 없는 것이요 그 갚음을 구함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높은 인은 하되 하는 까닭이 없다」 하였다.

義者,君臣上下之事,父子貴賤之差也,知交朋友之接也,親踈内外之分也。臣事君宜,下懷上宜,子事父宜,賤敬貴宜,知交友朋之相助也宜,親者内而踈者外宜。義者,謂其宜也,宜而爲之。故曰:「上義爲之而有以爲也。」

의(義)란 임금과 신하와 위아래의 일이요, 아비와 자식과 귀하고 천함의 차등이며, 아는 사이와 벗의 사귐이요, 친하고 성글고 안팎의 나뉨이다. 신하가 임금을 섬김이 마땅하고, 아래가 위를 품음이 마땅하며, 자식이 아비를 섬김이 마땅하고, 천한 이가 귀한 이를 공경함이 마땅하며, 아는 사이와 벗이 서로 도움이 마땅하고, 친한 이를 안으로 하고 성근 이를 밖으로 함이 마땅하다. 의란 그 마땅함을 이르니 마땅하여 그것을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높은 의는 하되 하는 까닭이 있다」 하였다.

禮者,所以貌情也,群義之文章也,君臣父子之交也,貴賤賢不肖之所以別也。中心懷而不諭,故疾趨卑拜而明之;實心愛而不知,故好言繁辝以信之。禮者,外飾之所以諭内也。故曰:禮以貌情也。凡人之爲外物動也,不知其爲身之禮也。衆人之爲禮也,以尊他人也,故時勸時衰。君子之爲禮,以爲其身;以爲其身,故神之爲上禮;上禮神而衆人貳,故不能相應;不能相應,故曰:「上禮爲之而莫之應。」衆人雖貳,聖人之復恭敬盡手足之禮也不衰。故曰:「攘臂而仍之。」

예(禮)란 정을 모양 짓는 까닭이요 뭇 의의 무늬이며, 임금과 신하와 아비와 자식의 사귐이요, 귀하고 천하고 어질고 못남을 가르는 까닭이다. 속마음이 품었으나 깨우쳐지지 않으므로 빨리 나아가 몸을 낮추어 절하여 밝히고, 참마음으로 사랑하나 알아주지 않으므로 좋은 말과 번거로운 말로 미덥게 한다. 예란 밖의 꾸밈으로 안을 깨우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예로 정을 모양 짓는다 한다. 무릇 사람이 밖의 물건에 움직여질 때는 그것이 제 몸을 위한 예임을 알지 못한다. 뭇사람이 예를 함은 남을 높이기 위함이므로 때로 힘쓰고 때로 시든다. 군자가 예를 함은 제 몸을 위함이니, 제 몸을 위하므로 신령히 여겨 높은 예로 삼는다. 높은 예를 신령히 여기는데 뭇사람은 두 마음이므로 서로 응할 수 없고, 서로 응할 수 없으므로 이르기를 「높은 예는 하여도 응하는 이가 없다」 하였다. 뭇사람이 비록 두 마음이나 성인이 거듭 공경하여 손발의 예를 다함은 시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팔을 걷어 이끈다」 하였다.

道有積而積有功;德者,道之功。功有實而實有光;仁者,德之光。光有澤而澤有事;義者,仁之事也。事有禮而禮有文;禮者,義之文也。故曰:「失道而後失德,失德而後失仁,失仁而後失義,失義而後失禮。」

도에는 쌓임이 있고 쌓임에는 공이 있으니 덕은 도의 공이다. 공에는 실지가 있고 실지에는 빛이 있으니 인은 덕의 빛이다. 빛에는 윤택이 있고 윤택에는 일이 있으니 의는 인의 일이다. 일에는 예가 있고 예에는 무늬가 있으니 예는 의의 무늬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도를 잃은 뒤에 덕을 잃고, 덕을 잃은 뒤에 인을 잃으며, 인을 잃은 뒤에 의를 잃고, 의를 잃은 뒤에 예를 잃는다」 하였다.

禮爲情貌者也,文爲質飾者也。夫君子取情而去貌,好質而惡飾。夫恃貌而論情者,其情惡也;須飾而論質者,其質衰也。何以論之?和氏之璧,不飾以五采;隋侯之珠,不飾以銀黄。其質至美,物不足以飾之。夫物之待飾而後行者,其質不美也。是以父子之間,其禮樸而不明,故曰禮薄也。凡物不並盛,陰陽是也;理相奪予,威德是也;實厚者貌薄,父子之禮是也。由是觀之,禮繁者,實心衰也。然則爲禮者,事通人之樸心者也。衆人之爲禮也,人應則輕歡,不應則責怨。今爲禮者事通人之樸心而資之以相責之分,能毋爭乎?有爭則亂,故曰:「夫禮者,忠信之薄也,而亂之首乎。」先物行先理動之謂前識。前識者,無緣而妄意度也。何以論之?詹何坐,弟子侍,牛鳴於門外。弟子曰:「是黑牛也而白題。」詹何曰:「然,是黑牛也,而白在其角。」使人視之,果黑牛而以布裹其角。以詹子之術,嬰衆人之心,華焉殆矣!故曰:「道之華也。」嘗試釋詹子之察,而使五尺之愚童子視之,亦知其黑牛而以布裹其角也。故以詹子之察,苦心傷神,而後與五尺之愚童子同功,是以曰:「愚之首也。」故曰:「前識者,道之華也,而愚之首也。」

예는 정을 모양 짓는 것이요 무늬는 바탕을 꾸미는 것이다. 무릇 군자는 정을 취하고 모양을 버리며 바탕을 좋아하고 꾸밈을 미워한다. 무릇 모양에 기대어 정을 논하는 것은 그 정이 나쁜 것이요, 꾸밈을 기다려 바탕을 논하는 것은 그 바탕이 시든 것이다. 무엇으로 논하겠는가. 화씨의 벽옥은 다섯 빛깔로 꾸미지 않고 수후의 구슬은 은과 금으로 꾸미지 않는다. 그 바탕이 지극히 아름다워 물건으로 꾸미기에 넉넉하지 않아서다. 무릇 물건이 꾸밈을 기다린 뒤에 행세하는 것은 그 바탕이 아름답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아비와 자식 사이는 그 예가 질박하고 밝지 않으니, 그러므로 예가 얇다 한다. 무릇 물건은 나란히 성하지 않으니 음과 양이 그러하고, 이치가 서로 빼앗고 주니 위엄과 덕이 그러하며, 실지가 두터운 것은 모양이 얇으니 아비와 자식의 예가 그러하다. 이로써 보면 예가 번거로운 것은 참마음이 시든 것이다. 그러면 예를 하는 이는 남의 질박한 마음을 뚫어 통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뭇사람이 예를 함에 남이 응하면 가벼이 기뻐하고 응하지 않으면 책하고 원망한다. 이제 예를 하는 이가 남의 질박한 마음을 뚫는 일을 하면서 거기에 서로 책하는 몫을 밑천으로 삼으니 다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툼이 있으면 어지러우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무릇 예란 충성과 믿음이 얇아진 것이요 어지러움의 머리다」 하였다. 물건보다 앞서 행하고 이치보다 앞서 움직임을 앞선 앎이라 한다. 앞선 앎이란 말미암을 것 없이 망령되이 헤아리는 것이다. 무엇으로 논하겠는가. 첨하가 앉아 있고 제자가 모시는데 문밖에서 소가 울었다. 제자가 말하였다. 「이는 검은 소인데 이마가 흽니다.」 첨하가 말하였다. 「그렇다. 이는 검은 소인데 흰 것이 그 뿔에 있다.」 사람을 시켜 보게 하니 과연 검은 소인데 베로 그 뿔을 싸 두었다. 첨자의 술로 뭇사람의 마음을 흔드니 화려하되 아슬아슬하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도의 꽃이다」 하였다. 시험 삼아 첨자의 살핌을 놓고 다섯 자 어린아이에게 보게 하여도 그것이 검은 소요 베로 뿔을 쌌음을 안다. 그러므로 첨자의 살핌으로 마음을 괴롭히고 신을 상한 뒤에야 다섯 자 어린아이와 공이 같으니, 이 때문에 「어리석음의 머리다」 하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앞선 앎은 도의 꽃이요 어리석음의 머리다」 하였다.

所謂「大丈夫」者,謂其智之大也。所謂「處其厚不處其薄」者,行情實而去禮貌也。所謂「處其實不處其華」者,必緣理不徑絶也。所謂「去彼取此」者,去貌、徑絶而取緣理、好情實也。故曰:「去彼取此。」

이른바 「대장부」란 그 슬기가 큼을 말한다. 이른바 「두터운 데 처하고 얇은 데 처하지 않는다」 함은 정과 실지를 행하고 예와 모양을 버림이다. 이른바 「실지에 처하고 꽃에 처하지 않는다」 함은 반드시 이치를 따르고 질러 끊지 않음이다. 이른바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함은 모양과 질러 끊음을 버리고 이치를 따름과 정과 실지를 좋아함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하였다.

人有禍,則心畏恐;心畏恐,則行端直;行端直,則思慮熟;思慮熟,則得事理。行端直,則無禍害;無禍害,則盡天年。得事理,則必成功。盡天年,則全而壽。必成功,則富與貴。全壽富貴之謂福,而福本於有禍。故曰:「禍兮福之所倚。」以成其功也。

사람에게 화가 있으면 마음이 두렵고, 마음이 두려우면 행실이 바르고 곧으며, 행실이 바르고 곧으면 생각이 익고, 생각이 익으면 일의 이치를 얻는다. 행실이 바르고 곧으면 화와 해가 없고, 화와 해가 없으면 하늘이 준 나이를 다한다. 일의 이치를 얻으면 반드시 공을 이루고, 하늘이 준 나이를 다하면 온전히 오래 산다. 반드시 공을 이루면 부유하고 귀해진다. 온전하고 오래 살고 부유하고 귀함을 복이라 하는데 복은 화가 있음에 뿌리를 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화는 복이 기대는 바다」 하였으니 그 공을 이루기 때문이다.

人有福,則富貴至;富貴至,則衣食美;衣食美,則驕心生;驕心生,則行邪僻而動弃理。行邪僻,則身死夭;動弃理,則無成功。夫内有死夭之難而外無成功之名者,大禍也,而禍本生於有福。故曰:「福兮禍之所伏。」

사람에게 복이 있으면 부귀가 이르고, 부귀가 이르면 옷과 밥이 아름다우며, 옷과 밥이 아름다우면 교만한 마음이 나고, 교만한 마음이 나면 행실이 사악하고 치우쳐 움직임이 이치를 버린다. 행실이 사악하고 치우치면 몸이 일찍 죽고, 움직임이 이치를 버리면 이룬 공이 없다. 무릇 안으로 일찍 죽을 어려움이 있고 밖으로 공을 이룬 이름이 없음은 큰 화인데, 화는 복이 있음에서 뿌리내려 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복은 화가 엎드린 바다」 하였다.

夫緣道理以從事者,無不能成。無不能成者,大能成天子之勢尊,而小易得卿相將軍之賞祿。夫弃道理而妄舉動者,雖上有天子諸侯之勢尊,而下有猗頓、陶朱、卜祝之富,猶失其民人而亡其財資也。衆人之輕弃道理而易妄舉動者,不知其禍福之深大而道闊遠若是也,故諭人曰:「孰知其極?」

무릇 도와 이치를 따라 일하는 이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 이루지 못함이 없는 이는 크게는 천자의 높은 세를 이룰 수 있고 작게는 경상과 장군의 상과 녹을 쉽게 얻는다. 무릇 도와 이치를 버리고 망령되이 움직이는 이는 비록 위로 천자와 제후의 높은 세가 있고 아래로 의돈과 도주와 점쟁이의 부유함이 있어도 오히려 그 백성을 잃고 그 재물을 잃는다. 뭇사람이 도와 이치를 가벼이 버리고 쉽게 망령되이 움직임은 그 화와 복의 깊고 큼과 도의 넓고 멂이 이와 같음을 알지 못해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깨우쳐 이르기를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하였다.

人莫不欲富貴全壽,而未有能免於貧賤死夭之禍也。心欲富貴全壽,而今貧賤死夭,是不能至於其所欲至也。凡失其所欲之路而妄行者之謂迷,迷則不能至於其所欲至矣。今衆人之不能至於其所欲至,故曰「迷」。衆人之所不能至於其所欲至也,自天地之剖判以至于今。故曰:「人之迷也,其日故以久矣。」

사람은 부유하고 귀하고 온전히 오래 살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으나 가난하고 천하고 일찍 죽는 화를 면한 이가 있지 않다. 마음은 부유하고 귀하고 온전히 오래 살기를 바라는데 이제 가난하고 천하고 일찍 죽으니, 이는 바라는 곳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무릇 바라는 길을 잃고 망령되이 가는 것을 헤맴이라 하니, 헤매면 바라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이제 뭇사람이 바라는 곳에 이르지 못하므로 「헤맨다」 한다. 뭇사람이 바라는 곳에 이르지 못함은 하늘과 땅이 갈라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사람이 헤맨 지 그 날이 참으로 오래되었다」 하였다.

所謂方者,内外相應也,言行相稱也。所謂廉者,必生死之命也,輕恬資財也。所謂直者,義必公正,公心不偏黨也。所謂光者,官爵尊貴,衣裘壯麗也。今有道之士,雖中外信順,不以誹謗窮墮;雖死節輕財,不以侮罷羞貪;雖義端不黨,不以去邪罪私;雖勢尊衣美,不以夸賤欺貧。其故何也?使失路者而肯聽習問知,即不成迷也。今衆人之所以欲成功而反爲敗者,生於不知道理而不肯問知而聽能。衆人不肯問知聽能,而聖人強以其禍敗適之,則怨。衆人多而聖人寡,寡之不勝衆,數也。今舉動而與天下之爲讎,非全身長生之道也,是以行軌節而舉之也。故曰:「方而不割,廉而不穢,直而不肆,光而不耀。」

이른바 모남이란 안과 밖이 서로 응하고 말과 행실이 걸맞음이다. 이른바 청렴이란 죽고 삶의 명을 반드시 하고 재물을 가벼이 여김이다. 이른바 곧음이란 의가 반드시 공변되고 바르며 공변된 마음이 치우쳐 편들지 않음이다. 이른바 빛남이란 벼슬과 작위가 높고 귀하며 옷과 갖옷이 크고 고움이다. 이제 도 있는 선비는 비록 안팎이 미덥고 순하여도 남을 헐뜯어 궁하게 하지 않고, 비록 절개에 죽고 재물을 가벼이 여겨도 남의 지침을 업신여겨 탐한다고 부끄럽게 하지 않으며, 비록 의가 바르고 무리 짓지 않아도 사악함을 버렸다 하여 남의 사사로움을 죄주지 않고, 비록 세가 높고 옷이 아름다워도 천한 이에게 자랑하여 가난한 이를 속이지 않는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길 잃은 이로 하여금 즐겨 듣고 익히고 물어 알게 하면 곧 헤맴을 이루지 않는다. 이제 뭇사람이 공을 이루려다 도리어 낭패가 되는 것은 도와 이치를 알지 못하면서 즐겨 아는 이에게 묻고 능한 이의 말을 듣지 않는 데서 난다. 뭇사람이 즐겨 묻고 듣지 않는데 성인이 억지로 그 화와 낭패로 다그치면 원망한다. 뭇사람은 많고 성인은 적으니 적은 것이 많은 것을 이기지 못함은 정해진 수다. 이제 움직여 천하와 원수가 됨은 몸을 온전히 하고 길이 사는 길이 아니니, 이 때문에 궤도와 절제를 행하여 든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모나되 자르지 않고, 청렴하되 해치지 않으며, 곧되 방자하지 않고, 빛나되 눈부시지 않다」 하였다.

聰明睿智,天也;動靜思慮,人也。人也者,乘於天明以視,寄於天聰以聽,託於天智以思慮。故視強,則目不明;聽甚,則耳不聰;思慮過度,則智識亂。目不明,則不能決黑白之分;耳不聰,則不能別清濁之聲;智識亂,則不能審得失之地。目不能決黑白之色則謂之盲,耳不能別清濁之聲則謂之聾,心不能審得失之地則謂之狂。盲則不能避晝日之險,聾則不能知雷霆之害,狂則不能免人間法令之禍。書之所謂「治人」者,適動靜之節,省思慮之費也。所謂「事天」者,不極聰明之力,不盡智識之任。苟極盡,則費神多;費神多,則盲聾悖狂之禍至,是以嗇之。嗇之者,愛其精神,嗇其智識也。故曰:「治人事天莫如嗇。」

총명하고 슬기로움은 하늘이요 움직임과 고요함과 생각은 사람이다. 사람이란 하늘의 밝음을 타고 보며 하늘의 총명함에 부쳐 듣고 하늘의 슬기에 맡겨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기를 억지로 하면 눈이 밝지 않고, 듣기를 심하게 하면 귀가 총명하지 않으며, 생각이 도를 지나치면 슬기와 앎이 어지럽다. 눈이 밝지 않으면 검고 흰 것의 나뉨을 결단할 수 없고, 귀가 총명하지 않으면 맑고 흐린 소리를 가릴 수 없으며, 슬기와 앎이 어지러우면 얻고 잃음의 자리를 살필 수 없다. 눈이 검고 흰 빛을 결단할 수 없으면 소경이라 하고, 귀가 맑고 흐린 소리를 가릴 수 없으면 귀머거리라 하며, 마음이 얻고 잃음의 자리를 살필 수 없으면 미쳤다 한다. 소경이면 대낮의 험한 데를 피할 수 없고, 귀머거리면 우레와 벼락의 해를 알 수 없으며, 미치면 사람 사이 법령의 화를 면할 수 없다. 글에서 이르는 「사람을 다스림」이란 움직임과 고요함의 마디를 맞추고 생각의 허비를 더는 것이요, 이르는 「하늘을 섬김」이란 총명의 힘을 다하지 않고 슬기와 앎의 맡음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진실로 다하면 신을 허비함이 많고, 신을 허비함이 많으면 소경과 귀머거리와 미침의 화가 이르니, 이 때문에 아낀다. 아낀다 함은 그 정신을 사랑하고 그 슬기와 앎을 아낌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김에 아낌만 한 것이 없다」 하였다.

衆人之用神也躁,躁則多費,多費之謂侈。聖人之用神也靜,靜則少費,少費之謂嗇。嗇之謂術也,生於道理。夫能嗇也,是從於道而服於理者也。衆人離於患,陷於禍,猶未知退,而不服從道理。聖人雖未見禍患之形,虚無服從於道理,以稱蚤服。故曰:「夫謂嗇,是以蚤服。」

뭇사람이 신을 씀은 조급하니 조급하면 허비가 많고 허비가 많음을 사치라 한다. 성인이 신을 씀은 고요하니 고요하면 허비가 적고 허비가 적음을 아낌이라 한다. 아낌이 술이 됨은 도와 이치에서 난다. 무릇 아낄 수 있음은 도를 좇고 이치에 복종하는 것이다. 뭇사람은 근심에 걸리고 화에 빠져도 오히려 물러날 줄 모르고 도와 이치를 좇지 않는다. 성인은 비록 화와 근심의 꼴을 보기 전에도 비고 없이 도와 이치를 좇으니 이를 일찍 복종함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무릇 아낌을 이르니 이 때문에 일찍 복종한다」 하였다.

知治人者,其思慮靜;知事天者,其孔竅虚。思慮靜,故德不去;孔竅虚,則和氣日入。故曰:「重積德。」夫能令故德不去,新和氣日至者,蚤服者也。故曰:「蚤服,是謂重積德。」積德而後神静,神静而後和多,和多而後計得,計得而後能御萬物,能御萬物則戰易勝敵,戰易勝敵而論必蓋世,論必蓋世,故曰:「無不克。」無不克本於重積德,故曰:「重積德,則無不克。」戰易勝敵,則兼有天下;論必蓋世,則民人從。進兼天下而退從民人,其術遠,則衆人莫見其端末。莫見其端末,是以莫知其極。故曰:「無不克,則莫知其極。」

사람 다스림을 아는 이는 그 생각이 고요하고, 하늘 섬김을 아는 이는 그 구멍이 비어 있다. 생각이 고요하므로 덕이 떠나지 않고, 구멍이 비면 화한 기운이 날로 들어온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덕을 거듭 쌓는다」 하였다. 무릇 옛 덕이 떠나지 않고 새 화한 기운이 날로 이르게 할 수 있는 이는 일찍 복종한 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일찍 복종함을 덕을 거듭 쌓는다 한다」 하였다. 덕을 쌓은 뒤에 신이 고요하고, 신이 고요한 뒤에 화함이 많으며, 화함이 많은 뒤에 셈이 맞고, 셈이 맞은 뒤에 만물을 부릴 수 있으며, 만물을 부릴 수 있으면 싸움에 적을 쉽게 이기고, 싸움에 적을 쉽게 이기면 논의가 반드시 세상을 덮는다. 논의가 반드시 세상을 덮으므로 이르기를 「이기지 못함이 없다」 하였다. 이기지 못함이 없음은 덕을 거듭 쌓음에 뿌리를 두므로 이르기를 「덕을 거듭 쌓으면 이기지 못함이 없다」 하였다. 싸움에 적을 쉽게 이기면 천하를 아울러 가지고, 논의가 반드시 세상을 덮으면 백성이 따른다. 나아가 천하를 아우르고 물러나 백성을 따르게 하니 그 술이 멀어 뭇사람이 그 처음과 끝을 볼 수 없다. 그 처음과 끝을 볼 수 없으니 이 때문에 그 끝을 아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이기지 못함이 없으면 그 끝을 아는 이가 없다」 하였다.

凡有國而後亡之,有身而後殃之,不可謂能有其國、能保其身。夫能有其國,必能安其社禝;能保其身,必能終其天年,而後可謂能有其國、能保其身矣。夫能有其國、保其身者,必且體道。體道,則其智深;其智深,則其會遠;其會遠,衆人莫能見其所極。唯夫能令人不見其事極,不見其事極者爲保其身、有其國。故曰:「莫知其極。」「莫知其極,則可以有國。」

무릇 나라를 가졌다가 뒤에 잃고 몸을 가졌다가 뒤에 재앙을 입으면 그 나라를 가질 수 있다거나 그 몸을 지킬 수 있다고 이를 수 없다. 무릇 그 나라를 가질 수 있는 이는 반드시 그 사직을 편안히 할 수 있고, 그 몸을 지킬 수 있는 이는 반드시 그 하늘이 준 나이를 마칠 수 있으니, 그런 뒤에야 그 나라를 가질 수 있고 그 몸을 지킬 수 있다 이를 만하다. 무릇 그 나라를 가지고 그 몸을 지키는 이는 반드시 또한 도를 몸 삼는다. 도를 몸 삼으면 그 슬기가 깊고, 그 슬기가 깊으면 그 모임이 멀며, 그 모임이 멀면 뭇사람이 그 끝을 볼 수 없다. 오직 남으로 하여금 그 일의 끝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이, 그 일의 끝을 보이지 않는 이라야 그 몸을 지키고 그 나라를 가진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끝을 아는 이가 없다」 하고, 「그 끝을 아는 이가 없으면 나라를 가질 수 있다」 하였다.

所謂「有國之母」:母者,道也;道也者,生於所以有國之術;所以有國之術,故謂之「有國之母」。夫道以與世周旋者,其建生也長,持祿也久。故曰:「有國之母,可以長久。」樹木有曼根,有直根。直根者,書之所謂「柢」也。柢也者,木之所以建生也;曼根者,木之所以持生也。德也者,人之所以建生也;祿也者,人之所以持生也。今建於理者,其持祿也久,故曰:「深其根。」體其道者,其生日長,故曰:「固其柢。」柢固則生長,根深則視久,故曰:「深其根,固其柢,長生久視之道也。」

이른바 「나라를 가진 어미」에서 어미는 도다. 도란 나라를 가지는 술에서 나니, 나라를 가지는 술이므로 「나라를 가진 어미」라 한다. 무릇 도로 세상과 더불어 돌아 어울리는 이는 그 삶을 세움이 길고 녹을 지님이 오래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나라를 가진 어미는 길고 오랠 수 있다」 하였다. 나무에는 뻗은 뿌리가 있고 곧은 뿌리가 있다. 곧은 뿌리는 글에서 이르는 「밑동」이다. 밑동은 나무가 삶을 세우는 까닭이요 뻗은 뿌리는 나무가 삶을 지니는 까닭이다. 덕은 사람이 삶을 세우는 까닭이요 녹은 사람이 삶을 지니는 까닭이다. 이제 이치에 세운 이는 그 녹을 지님이 오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뿌리를 깊게 한다」 하였다. 그 도를 몸 삼은 이는 그 삶이 날로 기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밑동을 굳게 한다」 하였다. 밑동이 굳으면 삶이 길고 뿌리가 깊으면 오래 보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뿌리를 깊게 하고 그 밑동을 굳게 함이 길이 살고 오래 보는 길이다」 하였다.

工人數變業則失其功,作者數揺徙則亡其功。一人之作,日亡半日,十日則亡五人之功矣;萬人之作,日亡半日,十日則亡五萬人之功矣。然則數變業者,其人彌衆,其虧彌大矣。凡法令更則利害易,利害易則民務變,務變之謂變業。故以理觀之:事大衆而數揺之,則少成功;藏大器而數徒之,則多敗傷;烹小鮮而數撓之,則賊其澤;治大國而數變法,則民苦之。是以有道之君貴静,不重變法。故曰:「治大國者若烹小鮮。」

장인이 자주 업을 바꾸면 그 공을 잃고, 짓는 이가 자주 흔들려 옮기면 그 공을 잃는다. 한 사람의 일에서 하루에 반나절을 잃으면 열흘이면 다섯 사람의 공을 잃고, 만 사람의 일에서 하루에 반나절을 잃으면 열흘이면 오만 사람의 공을 잃는다. 그러면 자주 업을 바꾸는 이는 그 사람이 많을수록 그 이지러짐이 크다. 무릇 법령이 고쳐지면 이해가 바뀌고, 이해가 바뀌면 백성의 힘쓰는 바가 변하며, 힘쓰는 바가 변함을 업을 바꿈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치로 보면, 많은 무리를 부리면서 자주 흔들면 공을 이룸이 적고, 큰 그릇을 감추면서 자주 옮기면 깨지고 상함이 많으며, 작은 생선을 삶으면서 자주 저으면 그 윤기를 해치고, 큰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주 법을 바꾸면 백성이 괴로워한다. 이 때문에 도 있는 임금은 고요함을 귀히 여기고 법 바꾸기를 무겁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큰 나라 다스림은 작은 생선 삶듯 한다」 하였다.

人處疾則貴醫,有禍則畏鬼。聖人在上,則民少欲;民少欲,則血氣治而舉動理;舉動理,則少禍害。夫内無痤疽癉痔之害,而外無刑罰法誅之禍者,其輕恬鬼也甚。故曰:「以道蒞天下,其鬼不神。」治世之民,不與鬼神相害也。故曰:「非其鬼不神也,其神不傷人也。」鬼祟也疾人之謂鬼傷人,人逐除之之謂人傷鬼也。民犯法令之謂民傷上,上刑戮民之謂上傷民。民不犯法,則上亦不行刑,上不行刑之謂上不傷人。故曰:「聖人亦不傷民。」上不與民相害,而人不與鬼相傷,故曰:「兩不相傷。」民不敢犯法,則上内不用刑罰,而外不事利其産業。上内不用刑罰,而外不事利其産業,則民蕃息。民蕃息而畜積盛。民蕃息而畜積盛之謂有德。凡所謂崇者,魂魄去而精神亂,精神亂則無德。鬼不祟人則魂魄不去,魂魄不去而精神不亂,精神不亂之謂有德。上盛畜積而鬼不亂其精神,則德盡在於民矣。故曰:「兩不相傷,則德交歸焉。」言其德上下交盛而俱歸於民也。

사람이 병들면 의원을 귀히 여기고 화가 있으면 귀신을 두려워한다. 성인이 위에 있으면 백성이 바람이 적고, 백성이 바람이 적으면 피와 기운이 다스려져 거동이 이치에 맞으며, 거동이 이치에 맞으면 화와 해가 적다. 무릇 안으로 종기와 치질의 해가 없고 밖으로 형벌과 법의 벰의 화가 없는 이는 귀신을 가벼이 여김이 심하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도로 천하에 임하면 그 귀신이 신령하지 않다」 하였다. 다스려진 세상의 백성은 귀신과 서로 해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귀신이 신령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신령함이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귀신이 빌미가 되어 사람을 앓게 함을 귀신이 사람을 상하게 한다 하고, 사람이 쫓아 없앰을 사람이 귀신을 상하게 한다 한다. 백성이 법령을 범함을 백성이 위를 상하게 한다 하고, 위가 백성을 형벌하여 죽임을 위가 백성을 상하게 한다 한다. 백성이 법을 범하지 않으면 위도 형벌을 행하지 않고, 위가 형벌을 행하지 않음을 위가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음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성인도 백성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하였다. 위가 백성과 서로 해치지 않고 사람이 귀신과 서로 상하게 하지 않으므로 이르기를 「둘이 서로 상하게 하지 않는다」 하였다. 백성이 감히 법을 범하지 않으면 위는 안으로 형벌을 쓰지 않고 밖으로 그 생업을 이롭게 하려 애쓰지 않는다. 위가 안으로 형벌을 쓰지 않고 밖으로 그 생업을 이롭게 하려 애쓰지 않으면 백성이 불어난다. 백성이 불어나고 쌓아 둠이 성함을 덕이 있다 한다. 무릇 이른바 빌미란 혼과 백이 떠나 정신이 어지러움이니, 정신이 어지러우면 덕이 없다. 귀신이 사람에게 빌미하지 않으면 혼과 백이 떠나지 않고, 혼과 백이 떠나지 않으면 정신이 어지럽지 않으며, 정신이 어지럽지 않음을 덕이 있다 한다. 위가 쌓아 둠을 성하게 하고 귀신이 그 정신을 어지럽히지 않으면 덕이 다 백성에게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둘이 서로 상하게 하지 않으면 덕이 서로 돌아간다」 하였으니, 그 덕이 위와 아래에서 함께 성하여 다 백성에게 돌아감을 말한다.

有道之君,外無怨讎於鄰敵,而内有德澤於人民。夫外無怨讎於鄰敵者,其遇諸侯也外有禮義;内有德澤於人民者,其治人事也務本。遇諸侯有禮義,則役希起;治民事務本,則淫奢止。凡馬之所以大用者,外供甲兵而内給淫奢也。今有道之君,外希用甲兵,而内禁淫奢。上不事馬於戰鬬逐北,而民不以馬遠淫通物,所積力唯田疇。積力於田疇,必且糞灌。故曰:「天下有道,却走馬以糞也。」人君無道,則内暴虐其民,而外侵欺其鄰國。内暴虐則民産絶,外侵欺則兵數起。民産絶則畜生少,兵數起則士卒盡。畜生少則戎馬乏,士卒盡則軍危殆。戎馬乏則牸馬出,軍危殆則近臣役。馬者,軍之大用;郊者,言其近也。今所以給軍之具於牸馬近臣。故曰:「天下無道,戎馬生於郊矣。」

도 있는 임금은 밖으로 이웃 적에게 원수가 없고 안으로 백성에게 덕과 은택이 있다. 무릇 밖으로 이웃 적에게 원수가 없는 이는 제후를 만남에 밖으로 예의가 있고, 안으로 백성에게 덕과 은택이 있는 이는 사람의 일을 다스림에 근본에 힘쓴다. 제후를 만남에 예의가 있으면 부역이 드물게 일어나고, 백성의 일을 다스림에 근본에 힘쓰면 넘치는 사치가 그친다. 무릇 말이 크게 쓰이는 까닭은 밖으로 갑옷과 병기에 이바지하고 안으로 넘치는 사치에 대는 것이다. 이제 도 있는 임금은 밖으로 갑옷과 병기를 드물게 쓰고 안으로 넘치는 사치를 금한다. 위가 싸우고 쫓는 데 말을 쓰지 않고 백성이 말로 멀리 다니며 물건을 넘치게 주고받지 않으면, 힘을 쌓는 곳은 오직 밭이다. 밭에 힘을 쌓으면 반드시 거름 주고 물을 댄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천하에 도가 있으면 달리는 말을 물려 거름을 나른다」 하였다. 임금에게 도가 없으면 안으로 그 백성에게 사납고 밖으로 그 이웃 나라를 침노하고 속인다. 안으로 사나우면 백성의 생산이 끊어지고 밖으로 침노하고 속이면 군사가 자주 일어난다. 백성의 생산이 끊어지면 기르는 짐승이 적고, 군사가 자주 일어나면 군졸이 다한다. 기르는 짐승이 적으면 싸움말이 모자라고, 군졸이 다하면 군대가 위태롭다. 싸움말이 모자라면 새끼 밴 암말까지 나가고, 군대가 위태로우면 가까운 신하까지 부역한다. 말은 군대의 큰 쓰임이요 교외란 그 가까움을 말한다. 이제 군대에 댈 도구를 새끼 밴 암말과 가까운 신하에게서 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천하에 도가 없으면 싸움말이 교외에서 새끼를 낳는다」 하였다.

人有欲則計會亂,計會亂而有欲甚,有欲甚則邪心勝,邪心勝則事經絶,事經絶則禍難生。由是觀之,禍難生於邪心,邪心誘於可欲。可欲之類,進則教良民爲姦,退則令善人有禍;姦起則上侵弱君,禍至則民人多傷。然則可欲之類,上侵弱君而下傷人民。夫上侵弱君而下傷人民者,大罪也。故曰:「禍莫大於可欲。」是以聖人不引五色,不淫於聲樂,明君賤玩好而去淫麗。

사람에게 바람이 있으면 셈이 어지럽고, 셈이 어지러운데 바람이 심하며, 바람이 심하면 사악한 마음이 이기고, 사악한 마음이 이기면 일의 날줄이 끊어지며, 일의 날줄이 끊어지면 화와 어려움이 난다. 이로써 보면 화와 어려움은 사악한 마음에서 나고 사악한 마음은 바랄 만한 것에 꾀인다. 바랄 만한 것들은 나아가서는 좋은 백성을 간사하게 만들고 물러가서는 착한 사람에게 화가 있게 한다. 간사함이 일면 위로 임금을 침노하여 약하게 하고, 화가 이르면 백성이 많이 상한다. 그러면 바랄 만한 것들은 위로 임금을 침노하여 약하게 하고 아래로 백성을 상하게 한다. 무릇 위로 임금을 침노하여 약하게 하고 아래로 백성을 상하게 함은 큰 죄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화는 바랄 만한 것보다 큰 것이 없다」 하였다. 이 때문에 성인은 다섯 빛깔에 끌리지 않고 소리와 풍악에 넘치지 않으며, 밝은 임금은 노리개를 천히 여기고 넘치게 고운 것을 버린다.

人無毛羽,不衣則不犯寒;上不屬天而下不著地,以腸胃爲根本,不食則不能活。是以不免於欲利之心。欲利之心不除,其身之憂也。故聖人衣足以犯寒,食足以充虚,則不憂矣。衆人則不然,大爲諸侯,小餘千金之資,其欲得之憂不除也。胥靡有免,死罪時活,今不知足者之憂終身不解。故曰:「禍莫大於不知足。」

사람은 털과 깃이 없어 옷을 입지 않으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위로 하늘에 붙지 않고 아래로 땅에 붙지 않아 창자와 밥통을 근본으로 삼으니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이 때문에 이익을 바라는 마음을 면하지 못한다. 이익을 바라는 마음을 없애지 않으면 그 몸의 근심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옷이 추위를 견디기에 넉넉하고 밥이 빈 배를 채우기에 넉넉하면 근심하지 않는다. 뭇사람은 그렇지 않아 크게는 제후가 되고 작게는 천금의 밑천이 남아도 그것을 얻으려는 근심이 없어지지 않는다. 죄수도 풀려남이 있고 죽을죄도 때로 살아나는데, 이제 족함을 모르는 이의 근심은 종신토록 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화는 족함을 모르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하였다.

故欲利甚於憂,憂則疾生,疾生而智慧衰;智慧衰,則失度量;失度量,則妄舉動;妄舉動,則禍害至;禍害至而疾嬰内,疾嬰内,則痛禍薄外;痛禍薄外,則苦痛雜於腸胃之間;苦痛雜於腸胃之間,則傷人也憯。憯則退而自咎,退而自咎也生於欲利。故曰:「咎莫憯於欲利。」

그러므로 이익을 바람이 근심보다 심하니, 근심하면 병이 나고, 병이 나면 슬기가 시들며, 슬기가 시들면 도량을 잃고, 도량을 잃으면 망령되이 움직이며, 망령되이 움직이면 화와 해가 이른다. 화와 해가 이르러 병이 안에 얽히고, 병이 안에 얽히면 아픔과 화가 밖에 다가오며, 아픔과 화가 밖에 다가오면 괴로움과 아픔이 창자와 밥통 사이에 섞이고, 괴로움과 아픔이 창자와 밥통 사이에 섞이면 사람을 상하게 함이 참혹하다. 참혹하면 물러나 스스로를 탓하는데, 물러나 스스로를 탓함은 이익을 바람에서 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허물은 이익을 바람보다 참혹한 것이 없다」 하였다.

道者,萬物之所然也,萬理之所稽也。理者,成物之文也;道者,萬物之所以成也。故曰:道,理之者也。物有理,不可以相薄;物有理不可以相薄,故理之爲物之制。萬物各異理,而道盡稽萬物之理,故不得不化;不得不化,故無常操。無常操,是以死生氣稟焉,萬智斟酌焉,萬事廢興焉。天得之以高,地得之以藏,維斗得之以成其威,日月得之以恆其光,五常得之以常其位,列星得之以端其行,四時得之以御其變氣,軒轅得之以擅四方,赤松得之與天地統,聖人得之以成文章。道,與堯舜俱智,與接輿俱狂,與桀紂俱滅,與湯武俱昌。以爲近乎,遊於四極;以爲遠乎,常在吾側;以爲暗乎,其光昭昭;以爲明乎,其物冥冥。而功成天地,和化雷霆,宇内之物,恃之以成。凡道之情,不制不形,柔弱隨時,與理相應。萬物得之以死,得之以生;萬事得之以敗,得之以成。道譬諸若水,溺者多飲之即死,渴者適飲之即生;譬之若劒戟,愚人以行忿則禍生,聖人以誅暴則福成。故得之以死,得之以生,得之以敗,得之以成。

도란 만물이 그러한 바요 온갖 이치가 모이는 바다. 이치란 물건을 이루는 무늬요 도란 만물이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도는 이치 짓는 것이라 한다. 물건에 이치가 있으면 서로 다그칠 수 없고, 물건에 이치가 있어 서로 다그칠 수 없으므로 이치가 물건의 제어가 된다. 만물이 저마다 이치를 달리하는데 도는 만물의 이치를 다 모으니, 그러므로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변화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떳떳한 잡음이 없다. 떳떳한 잡음이 없으니 이 때문에 죽고 사는 기운이 여기서 품부되고 온갖 슬기가 여기서 짐작되며 온갖 일이 여기서 폐하고 일어난다. 하늘이 이를 얻어 높고, 땅이 이를 얻어 감추며, 북두가 이를 얻어 그 위엄을 이루고, 해와 달이 이를 얻어 그 빛을 늘 하며, 다섯 떳떳한 것이 이를 얻어 그 자리를 늘 하고, 벌인 별이 이를 얻어 그 다님을 바르게 하며, 사철이 이를 얻어 그 변하는 기운을 부리고, 헌원이 이를 얻어 사방을 오로지하며, 적송자가 이를 얻어 하늘과 땅과 함께 이어지고, 성인이 이를 얻어 문장을 이룬다. 도는 요·순과 함께 슬기롭고 접여와 함께 미치며 걸·주와 함께 없어지고 탕·무와 함께 창성한다. 가깝다 여기면 사방 끝에 노닐고, 멀다 여기면 늘 내 곁에 있으며, 어둡다 여기면 그 빛이 밝고 밝으며, 밝다 여기면 그 물건이 어둡고 어둡다. 그러면서 공은 하늘과 땅을 이루고 우레와 벼락을 화하여 변화시키니, 우주 안의 물건이 이에 기대어 이루어진다. 무릇 도의 정은 제어되지 않고 꼴 지어지지 않으며, 부드럽고 약하게 때를 따라 이치와 서로 응한다. 만물이 이를 얻어 죽고 이를 얻어 살며, 온갖 일이 이를 얻어 낭패하고 이를 얻어 이루어진다. 도는 비유하면 물과 같아 빠진 이가 많이 마시면 죽고 목마른 이가 알맞게 마시면 살며, 비유하면 검과 창 같아 어리석은 사람이 성냄을 행하면 화가 나고 성인이 사나움을 베면 복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를 얻어 죽고 이를 얻어 살며 이를 얻어 낭패하고 이를 얻어 이룬다.

人希見生象也,而得死象之骨,案其圖以想其生也,故諸人之所以意想者皆謂之「象」也。今道雖不可得聞見,聖人執其見功以處見其形,故曰:「無狀之狀,無物之象。」

사람이 살아 있는 코끼리를 보는 일이 드물어 죽은 코끼리의 뼈를 얻으면 그 그림을 살펴 그 살아 있는 모습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뜻으로 그려 보는 것을 다 「상(象)」이라 한다. 이제 도는 비록 듣고 볼 수 없으나 성인은 그 드러난 공을 잡아 그 꼴을 드러내 본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모양 없는 모양이요 물건 없는 형상이다」 하였다.

凡理者,方圓、短長、麤靡、堅脆之分也,故理定而後可得道也。故定理有存亡,有死生,有盛衰。夫物之一存一亡,乍死乍生,初盛而後衰者,不可謂常。唯夫與天地之剖判也具生,至天地之消散也不死不衰者謂「常」。而常者無攸易,無定理。無定理,非在於常所,是以不可道也。聖人觀其玄虚,用其周行,强字之曰「道」,然而可論。故曰:「道之可道,非常道也。」

무릇 이치란 모나고 둥글고 짧고 길고 거칠고 곱고 굳고 무름의 나뉨이니, 그러므로 이치가 정해진 뒤에 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정해진 이치에는 남고 없어짐이 있고 죽고 삶이 있으며 성하고 쇠함이 있다. 무릇 물건이 한 번 남고 한 번 없어지며 갑자기 죽고 갑자기 살며 처음에 성하고 뒤에 쇠하는 것은 떳떳하다 이를 수 없다. 오직 하늘과 땅이 갈라짐과 함께 나서 하늘과 땅이 흩어짐에 이르도록 죽지도 쇠하지도 않는 것을 「떳떳함」이라 한다. 그러나 떳떳한 것은 바뀔 바가 없고 정해진 이치가 없다. 정해진 이치가 없어 떳떳한 자리에 있지 않으니 이 때문에 말할 수 없다. 성인이 그 검고 빈 것을 보고 그 두루 다님을 써서 억지로 글자를 붙여 「도」라 하였으니, 그러고서야 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도라 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하였다.

人始於生而卒於死。始之謂出,卒之謂入。故曰:「出生入死。」人之身三百六十節,四肢、九竅,其大具也。四肢與九竅十有三者,十有三者之動静盡屬於生焉。屬之謂徒也,故曰:生之徒也,十有三者。至死也,十有三具者皆還而屬之於死,死之徒亦有十三。故曰:「生之徒十有三,死之徒十有三。」凡民之生生,而生者固動,動盡則損也;而動不止,是損而不止也。損而不止則生盡,生盡之謂死,則十有三具者皆爲死死地也。故曰:「民之生,生而動,動皆之死地,之十有三。」

사람은 남에서 시작하여 죽음에서 마친다. 시작함을 나옴이라 하고 마침을 들어감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나오면 살고 들어가면 죽는다」 하였다. 사람의 몸에는 삼백육십 마디가 있는데 네 팔다리와 아홉 구멍이 그 큰 것이다. 네 팔다리와 아홉 구멍 열셋은 그 움직임과 고요함이 다 삶에 딸린다. 딸림을 무리라 하니, 그러므로 삶의 무리가 열셋이라 한다. 죽음에 이르러서는 열셋이 다 돌아가 죽음에 딸리니 죽음의 무리도 열셋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삶의 무리가 열셋이요 죽음의 무리가 열셋이다」 하였다. 무릇 백성이 살고 또 살려 하는데 사는 것은 본디 움직이고, 움직임이 다하면 덜리며, 움직임이 그치지 않으면 이는 덜리기를 그치지 않는 것이다. 덜리기를 그치지 않으면 삶이 다하고, 삶이 다함을 죽음이라 하니, 곧 열셋이 다 죽음의 자리가 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백성이 살아 움직이는데 움직임이 다 죽음의 자리로 가니 그것이 열셋이다」 하였다.

是以聖人愛精神而貴處靜,不愛精神、不貴處靜,此甚大於兕虎之害。夫兕虎有域,動靜有時。避其域,省其時,則免其兕虎之害矣。民獨知兕虎之有爪角也,而莫知萬物之盡有爪角也,不免於萬物之害。何以論之?時雨降集,曠野閒靜,而以昬晨犯山川,則風露之爪角害之。事上不忠,輕犯禁令,則刑法之爪角害之。處鄉不節,憎愛無度,則爭闘之爪角害之。嗜慾無限,動靜不節,則痤疽之爪角害之。好用其私智而弃道理,則網羅之爪角害之。兕虎有域,而萬害有原,避其域,塞其原,則免於諸害矣。凡兵革者,所以備害也。重生者,雖入軍無忿爭之心;無忿爭之心,則無所用救害之備。此非獨謂野處之軍也,聖人之遊世也,無害人之心,則必無人害;無人害,則不備人。故曰:「陸行不遇兕虎。」入山不恃備以救害,故曰:「入軍不備甲兵。」遠諸害,故曰:「兕無所投其角,虎無所錯其爪,兵無所容其刃。」不設備而必無害,天地之道理也。體天地之道,故曰:「無死地焉。」動無死地,而謂之「善攝生」矣。

이 때문에 성인은 정신을 아끼고 고요히 처함을 귀히 여긴다. 정신을 아끼지 않고 고요히 처함을 귀히 여기지 않음은 외뿔소와 범의 해로움보다 훨씬 크다. 무릇 외뿔소와 범은 사는 데가 있고 움직이고 고요함에 때가 있다. 그 사는 데를 피하고 그 때를 살피면 외뿔소와 범의 해를 면한다. 백성은 다만 외뿔소와 범에게 발톱과 뿔이 있음만 알고 만물에 다 발톱과 뿔이 있음은 알지 못하여 만물의 해를 면하지 못한다. 무엇으로 논하겠는가. 때맞은 비가 내리고 넓은 들이 한가로이 고요한데 어스름과 새벽에 산과 내를 무릅쓰면 바람과 이슬의 발톱과 뿔이 해친다. 위를 섬김에 충성되지 않고 가벼이 금령을 범하면 형법의 발톱과 뿔이 해친다. 마을에 처함에 절도가 없고 미워하고 사랑함에 법도가 없으면 다툼의 발톱과 뿔이 해친다. 즐기고 바람에 끝이 없고 움직임과 고요함에 절도가 없으면 종기의 발톱과 뿔이 해친다. 제 사사로운 슬기 쓰기를 좋아하고 도와 이치를 버리면 그물의 발톱과 뿔이 해친다. 외뿔소와 범은 사는 데가 있고 온갖 해로움에는 근원이 있으니, 그 사는 데를 피하고 그 근원을 막으면 여러 해로움을 면한다. 무릇 병기와 갑옷은 해를 대비하는 것이다. 삶을 무겁게 여기는 이는 비록 군에 들어가도 성내어 다투는 마음이 없고, 성내어 다투는 마음이 없으면 해를 구할 대비를 쓸 데가 없다. 이는 홀로 들에 나가 있는 군사만 이르는 것이 아니다. 성인이 세상에 노닐 때 남을 해칠 마음이 없으면 반드시 남에게 해를 입지 않고, 남에게 해를 입지 않으면 남을 대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뭍길을 가도 외뿔소와 범을 만나지 않는다」 하였다. 산에 들어가 해를 구할 대비에 기대지 않으므로 이르기를 「군에 들어가도 갑옷과 병기를 갖추지 않는다」 하였다. 여러 해로움을 멀리하므로 이르기를 「외뿔소가 그 뿔을 던질 데가 없고 범이 그 발톱을 둘 데가 없으며 병기가 그 날을 담을 데가 없다」 하였다. 대비를 베풀지 않고도 반드시 해가 없음은 하늘과 땅의 도리다. 하늘과 땅의 도를 몸 삼으므로 이르기를 「죽을 자리가 없다」 하였다. 움직여도 죽을 자리가 없으니 이를 「삶을 잘 지님」이라 한다.

愛子者慈於子,重生者慈於身,貴功者慈於事。慈母之於弱子也,務致其福;務致其福,則事除其禍;事除其禍,則思慮熟;思慮熟,則得事理;得事理,則必成功;必成功,則其行之也不疑,不疑之謂勇。聖人之於萬事也,盡如慈母之爲弱子慮也,故見必行之道。見必行之道則明,其從事亦不疑,不疑之謂勇。不疑生於慈,故曰:「慈,故能勇。」

자식을 사랑하는 이는 자식에게 자애롭고, 삶을 무겁게 여기는 이는 제 몸에 자애로우며, 공을 귀히 여기는 이는 일에 자애롭다. 자애로운 어미가 약한 자식에 대하여 그 복을 이르게 하기에 힘쓴다. 그 복을 이르게 하기에 힘쓰면 그 화를 없애는 일을 하고, 그 화를 없애는 일을 하면 생각이 익으며, 생각이 익으면 일의 이치를 얻고, 일의 이치를 얻으면 반드시 공을 이루며, 반드시 공을 이루면 그 행함에 의심하지 않으니 의심하지 않음을 용맹이라 한다. 성인이 온갖 일에 대함이 자애로운 어미가 약한 자식을 위해 헤아림과 같으므로 반드시 행할 길을 본다. 반드시 행할 길을 보면 밝고, 그 일함에 또한 의심하지 않으니 의심하지 않음을 용맹이라 한다. 의심하지 않음은 자애에서 나므로 이르기를 「자애로우므로 용맹할 수 있다」 하였다.

周公曰:「冬日之閉凍也不固,則春夏之長草木也不茂。」天地不能常侈常費,而況於人乎?故萬物必有盛衰,萬事必有㢮張,國家必有文武,官治必有賞罰。是以智士儉用其財則家富,聖人愛寶其神則精盛,人君重戰其卒則民衆,民衆則國廣。是以舉之曰:「儉,故能廣。」

주공이 말하였다. 「겨울날 얼어붙음이 굳지 않으면 봄여름에 풀과 나무가 자람이 무성하지 않다.」 하늘과 땅도 늘 사치하고 늘 허비할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그러므로 만물에 반드시 성하고 쇠함이 있고, 온갖 일에 반드시 늦춤과 당김이 있으며, 나라에 반드시 문과 무가 있고, 벼슬의 다스림에 반드시 상과 벌이 있다. 이 때문에 슬기로운 선비가 그 재물을 아껴 쓰면 집이 부유하고, 성인이 그 신을 사랑하여 보배로 여기면 정기가 성하며, 임금이 그 군졸의 싸움을 무겁게 여기면 백성이 많고, 백성이 많으면 나라가 넓다. 이 때문에 들어 이르기를 「아끼므로 넓힐 수 있다」 하였다.

凡物之有形者易裁也,易割也。何以論之?有形則有短長,有短長則有小大,有小大則有方圓,有方圓則有堅脆,有堅脆則有輕重,有輕重則有白黑。短長、大小、方圓、堅脆、輕重、白黑之謂理。理定而物易割也。故議於大庭而後言則立,權議之士知之矣。故欲成方圓而隨其規矩,則萬事之功形矣。而萬物莫不有規矩,議言之士,計會規矩也。聖人盡隨於萬物之規矩,故曰:「不敢爲天下先。」不敢爲天下先,則事無不事,功無不功,而議必蓋世,欲無處大官,其可得乎?處大官之謂爲成事長。是以故曰:「不敢爲天下先,故能爲成事長。」

무릇 물건에 꼴이 있는 것은 마름하기 쉽고 가르기 쉽다. 무엇으로 논하겠는가. 꼴이 있으면 짧고 긺이 있고, 짧고 긺이 있으면 작고 큼이 있으며, 작고 큼이 있으면 모나고 둥긂이 있고, 모나고 둥긂이 있으면 굳고 무름이 있으며, 굳고 무름이 있으면 가볍고 무거움이 있고, 가볍고 무거움이 있으면 희고 검음이 있다. 짧고 긺과 크고 작음과 모나고 둥긂과 굳고 무름과 가볍고 무거움과 희고 검음을 이치라 한다. 이치가 정해지면 물건을 가르기 쉽다. 그러므로 큰 마당에서 의논한 뒤에 말하면 말이 서니 저울질하여 의논하는 선비가 이를 안다. 그러므로 모나고 둥근 것을 이루려면 그 그림쇠와 곱자를 따라야 온갖 일의 공이 꼴 지어진다. 만물에 그림쇠와 곱자 아님이 없으니, 말을 의논하는 선비는 그림쇠와 곱자를 셈하는 것이다. 성인은 만물의 그림쇠와 곱자를 다 따르므로 이르기를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는다」 하였다.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으면 일마다 일 되지 않음이 없고 공마다 공 되지 않음이 없으며 의논이 반드시 세상을 덮으니, 큰 벼슬에 처하지 않으려 한들 될 수 있겠는가. 큰 벼슬에 처함을 일을 이루는 어른이 됨이라 한다. 이 때문에 이르기를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으므로 일을 이루는 어른이 될 수 있다」 하였다.

慈於子者不敢絶衣食,慈於身者不敢離法度,慈於方圓者不敢舍規矩。故臨兵而慈於士吏則戰勝敵,慈於器械則城堅固。故曰:「慈,於戰則勝,以守則固。」夫能自全也而盡隨於萬物之理者,必且有天生。天生也者,生心也,故天下之道盡之生也。若以慈衛之也,事必萬全,而舉無不當,則謂之寶矣。故曰:「吾有三寶,持而寶之。」

자식에게 자애로운 이는 감히 옷과 밥을 끊지 못하고, 제 몸에 자애로운 이는 감히 법도를 떠나지 못하며, 모나고 둥근 것에 자애로운 이는 감히 그림쇠와 곱자를 놓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사에 임하여 군사와 아전에게 자애로우면 싸워 적을 이기고, 기계에 자애로우면 성이 굳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자애로우면 싸움에 이기고 지킴에 굳다」 하였다. 무릇 스스로를 온전히 하고 만물의 이치를 다 따를 수 있는 이는 반드시 또한 하늘이 낸 것이 있다. 하늘이 냄이란 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천하의 도가 다 이 남에 있다. 만약 자애로 지키면 일이 반드시 만에 하나도 온전하고 듦이 마땅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를 보배라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내게 세 보배가 있어 지녀 보배로 여긴다」 하였다.

書之所謂「大道」也者,端道也。所謂貌「施」也者,邪道也。所謂「徑」大也者,佳麗也。佳麗也者,邪道之分也。「朝甚除」也者,獄訟繁也。獄訟繁則田荒,田荒則府倉虚,府倉虚則國貧,國貧而民俗淫侈,民俗淫侈則衣食之業絶,衣食之業絶則民不得無飾巧詐,飾巧詐則知采文,知采文之謂「服文采」。獄訟繁,倉廩虚,而有以淫侈爲俗,則國之傷也若以利劒刺之。故曰:「帶利劒。」諸夫飾智故以至於傷國者,其私家必富;私家必富,故曰:「資貨有餘。」國有若是者,則愚民不得無術而效之,效之則小盜生。由是觀之,大姦作則小盜隨,大姦唱則小盜和。竽也者,五聲之長者也,故竽先則鍾瑟皆隨,竽唱則諸樂皆和。今大姦作則俗之民唱,俗之民唱則小盜必和。故「服文采,帶利劒,厭飲食,而貨資有餘者,是之謂盜竽矣」。

글에서 이르는 「큰 길」이란 바른 길이요, 이르는 「뻗음」이란 사악한 길이며, 이르는 「지름길」의 큼이란 곱고 화려함이다. 곱고 화려함이란 사악한 길의 갈래다. 「조정이 몹시 깨끗함」이란 옥사와 송사가 번거로움이다. 옥사와 송사가 번거로우면 밭이 거칠고, 밭이 거칠면 곳간이 비며, 곳간이 비면 나라가 가난하고, 나라가 가난한데 백성의 풍속이 넘치고 사치하면 옷과 밥의 생업이 끊어지며, 옷과 밥의 생업이 끊어지면 백성이 교묘한 속임을 꾸미지 않을 수 없고, 교묘한 속임을 꾸미면 채색 무늬를 알게 되니, 채색 무늬를 앎을 「무늬 옷을 입음」이라 한다. 옥사와 송사가 번거롭고 곳간이 비었는데 넘치고 사치함으로 풍속을 삼으면 나라의 상함이 날카로운 검으로 찌름과 같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날카로운 검을 찬다」 하였다. 저 슬기를 꾸미고 짐짓 하여 나라를 상하게 하는 이는 그 사삿집이 반드시 부유하니, 사삿집이 반드시 부유하므로 이르기를 「재화가 남는다」 하였다. 나라에 이런 자가 있으면 어리석은 백성이 술수를 부려 본받지 않을 수 없고, 본받으면 작은 도둑이 난다. 이로써 보면 큰 간사함이 일면 작은 도둑이 따르고, 큰 간사함이 부르면 작은 도둑이 화답한다. 우(竽)는 다섯 소리의 어른이므로 우가 앞서면 종과 비파가 다 따르고, 우가 부르면 뭇 풍악이 다 화답한다. 이제 큰 간사함이 일면 세속의 백성이 부르고, 세속의 백성이 부르면 작은 도둑이 반드시 화답한다. 그러므로 「무늬 옷을 입고 날카로운 검을 차며 먹고 마심에 물리고 재화가 남는 자, 이를 도둑의 우라 한다」 하였다.

人無愚智,莫不有趨舍。恬淡平安,莫不知禍福之所由來。得於好惡,怵於淫物,而後變亂。所以然者,引於外物,亂於玩好也。恬淡有趨舍之義,平安知禍福之計。而今也玩好變之,外物引之;引之而往,故曰「拔」。至聖人不然:一建其趨舍,雖見所好之物不能引,不能引之謂「不拔」;一於其情,雖有可欲之類神不爲動,神不爲動之謂「不脫」。爲人子孫者,體此道以守宗廟,宗廟不滅之謂「祭祀不絶」。身以積精爲德,家以資財爲德,鄉國天下皆以民爲德。今治身而外物不能亂其精神,故曰:「脩之身,其德乃真。」真者,慎之固也。治家,無用之物不能動其計,則資有餘,故曰:「脩之家,其德有餘。」治鄉者行此節,則家之有餘者益衆,故曰:「脩之鄉,其德乃長。」治邦者行此節,則鄉之有德者益衆,故曰:「脩之邦,其德乃豐。」蒞天下者行此節,則民之生莫不受其澤,故曰:「脩之天下,其德乃普。」脩身者以此別君子小人,治鄉治邦蒞天下者各以此科適觀息耗,則萬不失一。故曰:「以身觀身,以家觀家,以鄉觀鄉,以邦觀邦,以天下觀天下。吾奚以知天下之然也?以此。」

사람은 어리석고 슬기로움을 가릴 것 없이 취하고 버림이 있지 않은 이가 없다. 담담하고 편안하면 화와 복이 말미암아 오는 바를 알지 못하는 이가 없다. 좋아하고 미워함에 끌리고 넘치는 물건에 흔들린 뒤에 변하여 어지러워진다. 그러한 까닭은 밖의 물건에 끌리고 노리개에 어지러워져서다. 담담하면 취하고 버림의 의가 있고 편안하면 화와 복의 셈을 안다. 그런데 이제 노리개가 그것을 바꾸고 밖의 물건이 그것을 끄니, 끌려가므로 「뽑힌다」 한다. 지극한 성인에 이르러서는 그렇지 않다. 그 취하고 버림을 한 번 세우면 비록 좋아하는 물건을 보아도 끌리지 않으니 끌리지 않음을 「뽑히지 않음」이라 하고, 그 정에 한결같아 비록 바랄 만한 것이 있어도 신이 움직이지 않으니 신이 움직이지 않음을 「벗어나지 않음」이라 한다. 남의 자손 된 이가 이 도를 몸 삼아 종묘를 지키면 종묘가 없어지지 않으니 이를 「제사가 끊기지 않음」이라 한다. 몸은 정기를 쌓음을 덕으로 삼고, 집은 재물을 덕으로 삼으며, 마을과 나라와 천하는 다 백성을 덕으로 삼는다. 이제 몸을 다스려 밖의 물건이 그 정신을 어지럽히지 못하므로 이르기를 「몸에 닦으면 그 덕이 참되다」 하였다. 참됨이란 삼감이 굳음이다. 집을 다스려 쓸모없는 물건이 그 셈을 움직이지 못하면 밑천이 남으므로 이르기를 「집에 닦으면 그 덕이 남는다」 하였다. 마을을 다스리는 이가 이 절도를 행하면 집에 남는 이가 더욱 많아지므로 이르기를 「마을에 닦으면 그 덕이 자란다」 하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이 절도를 행하면 마을에 덕 있는 이가 더욱 많아지므로 이르기를 「나라에 닦으면 그 덕이 풍성하다」 하였다. 천하에 임하는 이가 이 절도를 행하면 백성의 삶이 그 은택을 받지 않음이 없으므로 이르기를 「천하에 닦으면 그 덕이 두루 미친다」 하였다. 몸을 닦는 이는 이로써 군자와 소인을 가르고, 마을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에 임하는 이는 저마다 이 조목으로 늘고 줆을 살피면 만에 하나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몸으로 몸을 보고, 집으로 집을 보며, 마을로 마을을 보고, 나라로 나라를 보며, 천하로 천하를 본다. 내가 무엇으로 천하가 그러함을 아는가. 이로써 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