喻老
天下有道,無急患,則曰静,遽傳不用。故曰:「却走馬以糞。」天下無道,攻擊不休,相守數年不已,甲胄生蟣虱,鷰雀處帷幄,而兵不歸。故曰:「戎馬生於郊。」
천하에 도가 있으면 급한 근심이 없어 고요하다 하고 역참의 급한 전갈이 쓰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달리는 말을 물려 거름을 나른다」 하였다. 천하에 도가 없으면 치고 침이 쉬지 않아 서로 몇 해를 버티어도 그치지 않으니, 갑옷과 투구에 서캐와 이가 생기고 제비와 참새가 장막에 깃들어도 군사가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싸움말이 교외에서 새끼를 낳는다」 하였다.
翟人有獻豐狐、玄豹之皮於晉文公。文公受客皮而歎曰:「此以皮之美自爲罪。」夫治國者以名號爲罪,徐偃王是也;以城與地爲罪,虞、虢是也。故曰:「罪莫大於可欲。」
적(翟) 사람이 살진 여우와 검은 표범의 가죽을 진나라 문공에게 바쳤다. 문공이 손님의 가죽을 받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것들은 가죽이 아름다워 스스로 죄를 지었구나.」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이름과 칭호로 죄를 지음은 서언왕이 그러하고, 성과 땅으로 죄를 지음은 우나라와 괵나라가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화는 바랄 만한 것보다 큰 것이 없다」 하였다.
智伯兼范、中行而攻趙不已,韓、魏反之,軍敗晉陽,身死高梁之東,遂卒被分,漆其首以爲溲器。故曰:「禍莫大於不知足。」
지백이 범씨와 중항씨를 아우르고도 조나라 치기를 그치지 않으니 한나라와 위나라가 돌아섰다. 진양에서 군사가 깨지고 몸은 고량 동쪽에서 죽었으며, 마침내 나라가 나뉘고 그 머리는 옻칠하여 오줌 그릇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화는 족함을 모르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하였다.
虞君欲屈産之乘與垂棘之璧,不聽宮之奇,故邦亡身死。故曰:「咎莫憯於欲得。」
우나라 임금이 굴 땅의 네 말과 수극의 벽옥을 바라 궁지기의 말을 듣지 않았으니, 그러므로 나라가 망하고 몸이 죽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허물은 얻기를 바람보다 참혹한 것이 없다」 하였다.
邦以存爲常,霸王其可也;身以生爲常,富貴其可也。不以欲自害,則邦不亡,身不死。故曰:「知足之爲足矣。」
나라는 남아 있음을 떳떳함으로 삼으면 패왕이 될 수 있고, 몸은 살아 있음을 떳떳함으로 삼으면 부귀할 수 있다. 바람으로 스스로를 해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지 않고 몸이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족함을 앎이 족함이 된다」 하였다.
楚莊王既勝,狩于河雍,歸而賞孫叔敖。孫叔敖請漢間之地,沙石之處。楚邦之法,祿臣再世而收地,唯孫叔敖獨在。此不以其邦爲收者,瘠也,故九世而祀不絶。故曰:「善建不拔,善抱不脫,子孫以其祭祀世世不輟。」孫叔敖之謂也。
초나라 장왕이 이미 이기고 하옹에서 사냥한 뒤 돌아와 손숙오에게 상 주었다. 손숙오는 한수 사이의 땅, 모래와 돌이 있는 곳을 청하였다. 초나라 법에 신하의 녹은 두 대가 지나면 땅을 거두는데 오직 손숙오만 홀로 남았다. 이는 그 나라가 거두지 않은 까닭이니 땅이 메말라서다. 그러므로 아홉 대가 지나도록 제사가 끊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잘 세운 것은 뽑히지 않고 잘 안은 것은 벗어나지 않으니, 자손이 그 제사를 대대로 그치지 않는다」 하였으니 손숙오를 이름이다.
制在己曰重,不離位曰静。重則能使輕,静則能使躁。故曰:「重爲輕根,静爲躁君。」故曰「君子終日行,不離輜重」也。邦者,人君之輜重也。主父生傳其邦,此離其輜重者也,故雖有代、雲中之樂,超然已無趙矣。主父,萬乘之主,而以身輕於天下。無勢之謂輕,離位之謂躁,是以生幽而死。故曰:「輕則失臣,躁則失君。」主父之謂也。
제어가 저에게 있음을 무거움이라 하고 자리를 떠나지 않음을 고요함이라 한다. 무거우면 가벼운 것을 부릴 수 있고 고요하면 조급한 것을 부릴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요 고요함은 조급함의 임금이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군자는 종일 다녀도 짐수레를 떠나지 않는다」 하였다. 나라는 임금의 짐수레다. 주보가 살아서 그 나라를 물려주었으니 이는 그 짐수레를 떠난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대와 운중의 즐거움이 있어도 훌쩍 이미 조나라가 없어졌다. 주보는 만승의 임금인데 제 몸을 천하보다 가벼이 여겼다. 세가 없음을 가벼움이라 하고 자리를 떠남을 조급함이라 하니, 이 때문에 살아서 갇히고 죽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가벼우면 신하를 잃고 조급하면 임금을 잃는다」 하였으니 주보를 이름이다.
勢重者,人君之淵也。君人者,勢重於人臣之間,失則不可復得也。簡公失之於田成,晉公失之於六卿,而邦亡身死。故曰:「魚不可脫於深淵。」賞罰者,邦之利器也,在君則制臣,在臣則勝君。君見賞,臣則損之以爲德;君見罰,臣則益之以爲威。人君見賞,而人臣用其勢;人君見罰,人臣乘其威。故曰:「邦之利器,不可以示人。」
세와 무거움은 임금의 못이다. 남의 위에 선 이가 신하들 사이에서 세와 무거움을 잃으면 다시 얻을 수 없다. 간공은 전성에게 잃었고 진나라 임금은 여섯 경에게 잃어 나라가 망하고 몸이 죽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고기는 깊은 못을 벗어날 수 없다」 하였다. 상과 벌은 나라의 이로운 그릇이니, 임금에게 있으면 신하를 제어하고 신하에게 있으면 임금을 이긴다. 임금이 상을 드러내면 신하가 그것을 덜어 제 덕으로 삼고, 임금이 벌을 드러내면 신하가 그것을 보태 제 위엄으로 삼는다. 임금이 상을 드러내면 신하가 그 세를 쓰고, 임금이 벌을 드러내면 신하가 그 위엄을 탄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나라의 이로운 그릇은 남에게 보일 수 없다」 하였다.
越王入宦於吳,而觀之伐齊以弊吳。吳兵既勝齊人於艾陵,張之於江、濟,強之於黄池,故可制於五湖。故曰:「將欲翕之,必固張之;將欲弱之,必固強之。」晉獻公將欲襲虞,遺之以璧馬;知伯將襲仇由,遺之以廣車。故曰:「將欲取之,必固與之。」起事於無形,而要大功於天下,「是謂微明」。處小弱而重自卑損,謂「弱勝強」也。
월왕이 오나라에 들어가 부림을 받으면서 오나라가 제나라를 쳐서 스스로 지치게 되기를 보고 있었다. 오나라 군사가 이미 애릉에서 제나라 사람을 이기고 강수와 제수에 세력을 펴며 황지에서 강함을 뽐냈으므로 오호에서 제어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장차 오므리려 하면 반드시 먼저 펴 주고, 장차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 준다」 하였다. 진나라 헌공이 장차 우나라를 엄습하려 하여 벽옥과 말을 보냈고, 지백이 장차 구유를 엄습하려 하여 넓은 수레를 보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장차 빼앗으려 하면 반드시 먼저 준다」 하였다. 꼴 없는 데서 일을 일으켜 천하에 큰 공을 이루니 「이를 미세한 밝음이라 한다」. 작고 약한 데 처하여 스스로 낮추고 더는 것을 무겁게 여김을 「약함이 강함을 이긴다」 한다.
有形之類,大必起於小;行久之物,族必起於少。故曰:「天下之難事必作於易,天下之大事必作於細。」是以欲制物者於其細也,故曰:「圖難於其易也,爲大於其細也。」千丈之堤,以螻蟻之穴潰;百尺之室,以突隙之煙焚。故曰:白圭之行堤也塞其穴,丈人之慎火也塗其隙,是以白圭無水難,丈人無火患。此皆慎易以避難,敬細以遠大者也。扁鵲見蔡桓公,立有間,扁鵲曰:「君有疾在腠理,不治將恐深。」桓侯曰:「寡人無。」扁鵲出。桓侯曰:「醫之好治不病以爲功。」居十日,扁鵲復見曰:「君之病在肌膚,不治將益深。」桓侯不應。扁鵲出。桓侯又不悅。居十日,扁鵲復見曰:「君之病在腸胃,不治將益深。」桓侯又不應。扁鵲出。桓侯又不悅。居十日,扁鵲望桓侯而還走,桓侯故使人問之。扁鵲曰:「疾在腠理,湯熨之所及也;在肌膚,鍼石之所及也;在腸胃,火齊之所及也;在骨髓,司命之所屬,無柰何也。今在骨髄,臣是以無請也。」居五日,桓侯體痛,使人索扁鵲,已逃秦矣。桓侯遂死。故良醫之治病也,攻之於腠理。此皆爭之於小者也。夫事之禍福亦有腠理之地,故聖人蚤從事焉。
꼴 있는 무리는 큰 것이 반드시 작은 데서 일어나고, 오래가는 물건은 무리가 반드시 적은 데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일어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자잘한 데서 일어난다」 하였다. 이 때문에 물건을 제어하려는 이는 그 자잘한 데서 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어려운 것을 그 쉬운 데서 꾀하고 큰 것을 그 자잘한 데서 한다」 하였다. 천 길 둑이 땅강아지와 개미 구멍으로 무너지고 백 자 집이 굴뚝 틈의 연기로 타 버린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백규가 둑을 다닐 때는 그 구멍을 막고 어른이 불을 삼갈 때는 그 틈을 바르니, 이 때문에 백규에게 물난리가 없고 어른에게 불의 근심이 없다 한다. 이는 다 쉬운 것을 삼가 어려움을 피하고 자잘한 것을 공경하여 큰 것을 멀리한 것이다. 편작이 채나라 환공을 뵙고 한동안 서 있다가 말하였다. 「임금께 살결에 병이 있으니 다스리지 않으면 깊어질까 두렵습니다.」 환후가 말하였다. 「과인에게는 없다.」 편작이 나갔다. 환후가 말하였다. 「의원은 병 아닌 것을 다스려 공으로 삼기를 좋아한다.」 열흘이 지나 편작이 다시 뵙고 말하였다. 「임금의 병이 살갗에 있으니 다스리지 않으면 더 깊어집니다.」 환후가 응하지 않았다. 편작이 나가자 환후가 또 기뻐하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 편작이 다시 뵙고 말하였다. 「임금의 병이 창자와 밥통에 있으니 다스리지 않으면 더 깊어집니다.」 환후가 또 응하지 않았다. 편작이 나가자 환후가 또 기뻐하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 편작이 환후를 바라보고 돌아서 달아나니 환후가 짐짓 사람을 시켜 물었다. 편작이 말하였다. 「병이 살결에 있으면 찜질로 미치고, 살갗에 있으면 침과 돌로 미치며, 창자와 밥통에 있으면 불로 달인 약으로 미치지만, 뼛속에 있으면 목숨을 맡은 이에게 딸린 것이라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제 뼛속에 있으므로 신은 청하지 않았습니다.」 닷새가 지나 환후가 몸이 아파 사람을 시켜 편작을 찾았으나 이미 진나라로 달아났다. 환후는 마침내 죽었다. 그러므로 좋은 의원이 병을 다스림은 살결에서 친다. 이는 다 작은 데서 다투는 것이다. 무릇 일의 화와 복에도 살결의 자리가 있으니, 그러므로 성인은 일찍 일한다.
昔晉公子重耳出亡,過鄭,鄭君不禮。叔瞻諫曰:「此賢公子也,君厚待之,可以積德。」鄭君不聽。叔瞻又諫曰:「不厚待之,不若殺之,無令有後患。」鄭君又不聽。及公子返晉邦,舉兵伐鄭,大破之,取八城焉。晉獻公以垂棘之璧假道於虞而伐虢,大夫宮之奇諫曰:「不可。脣亡而齒寒,虞、虢相救,非相德也。今日晉滅虢,明日虞必隨之亡。」虞君不聽,受其璧而假之道。晉已取虢,還,反滅虞。此二臣者皆爭於腠理者也,而二君不用也。然則叔瞻、宮之奇亦虞、鄭之扁鵲也,而二君不聽,故鄭以破、虞以亡。故曰:「其安易持也,其未兆易謀也。」
옛날 진나라 공자 중이가 달아나 정나라를 지날 때 정나라 임금이 예로 대하지 않았다. 숙첨이 간하여 말하였다. 「이는 어진 공자이니 임금께서 두터이 대하시면 덕을 쌓을 수 있습니다.」 정나라 임금이 듣지 않았다. 숙첨이 또 간하여 말하였다. 「두터이 대하지 않으실 것이면 죽여 뒷날의 근심이 없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 정나라 임금이 또 듣지 않았다. 공자가 진나라로 돌아가자 군사를 들어 정나라를 쳐서 크게 깨뜨리고 여덟 성을 얻었다. 진나라 헌공이 수극의 벽옥으로 우나라에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치려 하니 대부 궁지기가 간하여 말하였다. 「안 됩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니, 우나라와 괵나라가 서로 구함은 서로 덕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진나라가 괵나라를 없애면 내일 우나라가 반드시 따라 망합니다.」 우나라 임금이 듣지 않고 그 벽옥을 받고 길을 빌려 주었다. 진나라가 괵나라를 얻고 돌아오면서 우나라를 없앴다. 이 두 신하는 다 살결에서 다툰 이들인데 두 임금이 쓰지 않았다. 그러면 숙첨과 궁지기는 또한 우나라와 정나라의 편작인데 두 임금이 듣지 않았으므로 정나라가 깨지고 우나라가 망하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편안할 때 지니기 쉽고 그 조짐이 없을 때 꾀하기 쉽다」 하였다.
昔者紂爲象箸而箕子怖,以爲象箸必不加於土鉶,必將犀玉之杯;象箸玉杯必不羮菽藿,必旄、象、豹胎;旄、象、豹胎必不衣短褐而食於茅屋之下,則錦衣九重,廣室高臺。吾畏其卒,故怖其始。居五年,紂爲肉圃,設炮烙,登糟丘,臨酒池,紂遂以亡。故箕子見象箸以知天下之禍,故曰:「見小曰明。」
옛날 주(紂)가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기자가 두려워하였다. 상아 젓가락은 반드시 흙그릇에 놓지 않고 반드시 무소뿔과 옥 잔을 쓸 것이며, 상아 젓가락과 옥 잔에는 반드시 콩과 콩잎국을 담지 않고 반드시 쇠꼬리와 코끼리와 표범의 태를 담을 것이며, 쇠꼬리와 코끼리와 표범의 태를 먹으면 반드시 짧은 갈옷을 입고 띠집 아래서 먹지 않을 것이니 곧 아홉 겹 비단옷과 넓은 방과 높은 대일 것이라 여겼다. 「나는 그 끝이 두려우므로 그 시작을 두려워한다.」 다섯 해가 지나 주는 고기 밭을 만들고 포락을 베풀며 지게미 언덕에 오르고 술 못에 임하니, 주는 마침내 그로써 망하였다. 그러므로 기자가 상아 젓가락을 보고 천하의 화를 알았으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작은 것을 봄을 밝음이라 한다」 하였다.
勾踐入宦於吳,身執干戈爲吳王洗馬,故能殺夫差於姑蘇。文王見詈於王門,顔色不變,而武王擒紂於牧野。故曰:「守柔曰強。」越王之霸也不病宦,武王之王也不病詈。故曰:「聖人之不病也,以其不病,是以無病也。」
구천이 오나라에 들어가 부림을 받으며 몸소 방패와 창을 잡고 오왕의 말 앞을 걸었으므로 부차를 고소에서 죽일 수 있었다. 문왕이 왕문에서 꾸짖음을 당하고도 낯빛이 변하지 않았으므로 무왕이 목야에서 주를 사로잡았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부드러움을 지킴을 강하다 한다」 하였다. 월왕이 패자가 됨은 종노릇을 병으로 여기지 않아서요 무왕이 왕 노릇 함은 꾸짖음을 병으로 여기지 않아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성인이 병들지 않음은 그 병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병이 없다」 하였다.
宋之鄙人得璞玉而獻之子罕,子罕不受。鄙人曰:「此寶也,宜爲君子器,不宜爲細人用。」子罕曰:「爾以玉爲寶,我以不受子玉爲寶。」是鄙人欲玉,而子罕不欲玉。故曰:「欲不欲,而不貴難得之貨。」
송나라 시골 사람이 옥 원석을 얻어 자한에게 바쳤으나 자한이 받지 않았다. 시골 사람이 말하였다. 「이는 보배이니 군자의 그릇이 되어야 마땅하고 잔사람이 쓸 것이 아닙니다.」 자한이 말하였다. 「너는 옥을 보배로 여기고 나는 네 옥을 받지 않음을 보배로 여긴다.」 이는 시골 사람은 옥을 바라고 자한은 옥을 바라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바라지 않기를 바라며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 하였다.
王壽負書而行,見徐馮於周塗。馮曰:「事者,爲也。爲生於時,知者無常事。書者,言也。言生於知,知者不藏書。今子何獨負之而行?」於是王壽因焚其書而儛之。故知者不以言談教,而慧者不以藏書篋。此世之所過也,而王壽復之,是學不學也。故曰:「學不學,復歸衆人之所過也。」
왕수가 책을 지고 가다가 주나라 길에서 서풍을 만났다. 서풍이 말하였다. 「일이란 함이다. 함은 때에서 나니 아는 이는 떳떳한 일이 없다. 책이란 말이다. 말은 앎에서 나니 아는 이는 책을 감추지 않는다. 이제 그대는 어찌 홀로 그것을 지고 다니는가?」 이에 왕수가 그 책을 불사르고 춤을 추었다. 그러므로 아는 이는 말로 가르치지 않고 슬기로운 이는 상자에 책을 감추지 않는다. 이것이 세상이 지나쳐 온 바인데 왕수가 그리로 돌아갔으니, 이는 배우지 않음을 배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배우지 않음을 배워 뭇사람이 지나친 바로 돌아간다」 하였다.
夫物有常容,因乘以導之。因隨物之容,故静則建乎德,動則順乎道。宋人有爲其君以象爲楮葉者,三年而成。豐殺莖柯,毫芒繁澤,亂之楮葉之中而不可別也。此人遂以功食祿於宋邦。列子聞之曰:「使天地三年而成一葉,則物之有葉者寡矣。」故不乘天地之資而載一人之身,不隨道理之數而學一人之智,此皆一葉之行也。故冬耕之稼,后稷不能羨也;豐年大禾,臧獲不能惡也。以一人力,則后稷不足;隨自然,則臧獲有餘。故曰:「恃萬物之自然而不敢爲也。」
무릇 물건에는 떳떳한 모습이 있으니 그것을 타고 이끈다. 물건의 모습을 따르므로 고요하면 덕에 서고 움직이면 도를 따른다. 송나라 사람 가운데 제 임금을 위해 상아로 닥나무 잎을 만든 이가 있어 세 해 만에 이루었다. 굵고 가는 줄기와 가지, 잔털 같은 무늬와 윤기가 닥나무 잎 사이에 섞어 놓아도 가릴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마침내 그 공으로 송나라에서 녹을 먹었다. 열자가 듣고 말하였다. 「하늘과 땅이 세 해 걸려 잎 하나를 이룬다면 잎 가진 물건이 드물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밑천을 타지 않고 한 사람의 몸에 싣거나, 도리의 수를 따르지 않고 한 사람의 슬기를 배움은 다 잎 하나의 행실이다. 그러므로 겨울에 간 곡식은 후직도 많게 할 수 없고, 풍년의 큰 벼는 종도 나쁘게 할 수 없다. 한 사람의 힘으로 하면 후직도 모자라고 절로 그러함을 따르면 종도 남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만물의 절로 그러함에 기대어 감히 하지 않는다」 하였다.
空竅者,神明之户牗也。耳目竭於聲色,精神竭于外貌,故中無主。中無主,則禍福雖如丘山,無從識之。故曰:「不出於户,可以知天下;不闚於牗,可以知天道。」此言神明之不離其實也。
빈 구멍은 신명의 문과 창이다. 귀와 눈이 소리와 빛에 다하고 정신이 겉모양에 다하면 속에 주인이 없다. 속에 주인이 없으면 화와 복이 비록 언덕과 산 같아도 알아볼 길이 없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문을 나가지 않고 천하를 알 수 있고 창을 엿보지 않고 하늘의 도를 알 수 있다」 하였다. 이는 신명이 그 실지를 떠나지 않음을 말한다.
趙襄王學御於王子於期,俄而與於期逐,三易馬而三後。襄王曰:「子之教我御,術未盡也?」對曰:「術已盡,用之則過也。凡御之所貴:馬體安于車,人心調于馬,而後可以進速致遠。今君後則欲逮臣,先則恐逮于臣。夫誘道爭遠,非先則後也,而先後心皆在于臣,上何以調於馬?此君之所以後也。」白公勝慮亂,罷朝,倒杖而策鋭貫顊,血流至于地而不知。鄭人聞之曰:「顊之忘,將何不忘哉!」故曰:「其出彌遠者,其智彌少。」此言智周乎遠,則所遺在近也。是以聖人無常行也。能並智,故曰:「不行而知。」能並視,故曰:「不見而明。」隨時以舉事,因資而立功,用萬物之能而獲利其上,故曰:「不爲而成。」
조나라 양왕이 왕자 어기에게 수레 몰기를 배우고 얼마 뒤 어기와 겨루었는데 말을 세 번 바꾸고도 세 번 뒤졌다. 양왕이 말하였다. 「그대가 내게 몰기를 가르치면서 술을 다하지 않았구나.」 대답하였다. 「술은 이미 다하였으나 쓰심이 지나칩니다. 무릇 수레 몰기에서 귀한 바는 말의 몸이 수레에 편안하고 사람 마음이 말과 고른 뒤에야 빨리 나아가 멀리 이를 수 있음입니다. 이제 임금께서는 뒤지면 신을 따라잡으려 하고 앞서면 신에게 따라잡힐까 두려워하십니다. 무릇 길을 이끌어 멂을 다툼은 앞서지 않으면 뒤지는 것인데, 앞서고 뒤짐에 마음이 다 신에게 있으니 무엇으로 말과 고르시겠습니까. 이것이 임금께서 뒤지신 까닭입니다.」 백공승이 난을 꾀하며 조회를 마치고 지팡이를 거꾸로 짚어 날카로운 끝이 턱을 꿰뚫어 피가 땅에 흘렀으나 알지 못하였다. 정나라 사람이 듣고 말하였다. 「턱을 잊었으니 무엇인들 잊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나감이 멀수록 그 슬기가 적다」 하였다. 이는 슬기가 먼 데 두루 하면 남기는 것이 가까운 데 있음을 말한다. 이 때문에 성인은 떳떳한 다님이 없다. 슬기를 아우를 수 있으므로 이르기를 「다니지 않고 안다」 하였고, 봄을 아우를 수 있으므로 이르기를 「보지 않고 밝다」 하였다. 때를 따라 일을 들고 밑천을 따라 공을 세우며 만물의 능함을 써서 그 위에서 이로움을 얻으므로 이르기를 「하지 않고 이룬다」 하였다.
楚莊王蒞政三年,無令發,無政爲也。右司馬御座而與王隱曰:「有鳥止南方之阜,三年不翅,不飛不鳴,嘿然無聲,此爲何名?」王曰:「三年不翅,將以長羽翼;不飛不鳴,將以觀民則。雖無飛,飛必冲天;雖無鳴,鳴必驚人。子釋之,不穀知之矣。」處半年,乃自聽政。所廢者十,所起者九;誅大臣五,舉處士六,而邦大治。舉兵誅齊,敗之徐州,勝晉於河雍,合諸侯於宋,遂霸天下。莊王不爲小害善,故有大名;不蚤見示,故有大功。故曰:「大器晩成,大音希聲。」
초나라 장왕이 정사에 임한 지 세 해에 명령을 내지 않고 정사를 하지 않았다. 우사마가 임금을 모시고 앉아 왕에게 수수께끼로 말하였다. 「새가 남쪽 언덕에 앉아 세 해를 날개 치지 않고 날지도 울지도 않으며 잠잠히 소리가 없으니 이를 무엇이라 이름합니까?」 왕이 말하였다. 「세 해를 날개 치지 않음은 깃을 기르려는 것이요, 날지도 울지도 않음은 백성의 법도를 보려는 것이다. 비록 날지 않았으나 날면 반드시 하늘에 오르고, 비록 울지 않았으나 울면 반드시 사람을 놀라게 한다. 그대는 놓아두라. 과인이 안다.」 반년이 지나 이에 몸소 정사를 들었다. 폐한 것이 열이요 일으킨 것이 아홉이며 대신 다섯을 베고 처사 여섯을 들어 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군사를 들어 제나라를 쳐 서주에서 깨뜨리고 하옹에서 진나라를 이겼으며 송나라에서 제후를 모아 마침내 천하에 패자가 되었다. 장왕은 작은 착함을 하지 않았으므로 큰 이름이 있고, 일찍 보이지 않았으므로 큰 공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고 큰 소리는 소리가 드물다」 하였다.
楚莊王欲伐越,杜子諫曰:「王之伐越,何也?」曰:「政亂兵弱。」杜子曰:「臣愚患之。智如目也,能見百步之外而不能自見其睫。王之兵自敗於秦、晉,喪地數百里,此兵之弱也;莊蹊蹻爲盜於境内而吏不能禁,此政之亂也。王之弱亂,非越之下也,而欲伐越,此智之如目也。」王乃止。故知之難,不在見人,在自見。故曰:「自見之謂明。」
초나라 장왕이 월나라를 치려 하니 두자가 간하여 말하였다. 「왕께서 월나라를 치려 하심은 어째서입니까?」 말하였다. 「정사가 어지럽고 군사가 약하다.」 두자가 말하였다. 「신은 어리석으나 이를 근심합니다. 슬기는 눈과 같아 백 걸음 밖은 볼 수 있으나 제 속눈썹은 보지 못합니다. 왕의 군사가 진(秦)나라와 진(晉)나라에게 스스로 패하여 땅 수백 리를 잃었으니 이것이 군사의 약함이요, 장교가 지경 안에서 도적질하는데 아전이 금하지 못하니 이것이 정사의 어지러움입니다. 왕의 약하고 어지러움이 월나라 아래가 아닌데 월나라를 치려 하시니 이것이 슬기가 눈과 같음입니다.」 왕이 이에 그쳤다. 그러므로 앎의 어려움은 남을 보는 데 있지 않고 스스로를 보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스스로를 봄을 밝음이라 한다」 하였다.
子夏見曾子。曾子曰:「何肥也?」對曰:「戰勝,故肥也。」曾子曰:「何謂也?」子夏曰:「吾入見先王之義則榮之,出見富貴之樂又榮之,兩者戰於胷中,未知勝負,故臞。今先王之義勝,故肥。」是以志之難也,不在勝人,在自勝也。故曰:「自勝之謂強。」
자하가 증자를 뵈니 증자가 말하였다. 「어찌 살쪘는가?」 대답하였다. 「싸워 이겼으므로 살쪘습니다.」 증자가 말하였다. 「무슨 말인가?」 자하가 말하였다. 「제가 들어와 선왕의 의를 보면 그것을 영화롭게 여기고, 나가서 부귀의 즐거움을 보면 또 그것을 영화롭게 여겨, 둘이 가슴속에서 싸우는데 이기고 짐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여위었습니다. 이제 선왕의 의가 이겼으므로 살쪘습니다.」 이 때문에 뜻의 어려움은 남을 이기는 데 있지 않고 스스로를 이기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스스로를 이김을 강하다 한다」 하였다.
周有玉版,紂令膠鬲索之,文王不予;費仲來求,因予之。是膠鬲賢而費仲無道也。周惡賢者之得志也,故予費仲。文王舉太公於渭濵者,貴之也;而資費仲玉版者,是愛之也。故曰:「不貴其師,不愛其資,雖知大迷,是謂要妙。」
주나라에 옥판이 있었는데 주(紂)가 교격을 시켜 찾게 하니 문왕이 주지 않았고, 비중이 와서 구하니 이에 주었다. 이는 교격이 어질고 비중이 도가 없어서다. 주나라는 어진 이가 뜻을 얻음을 미워하였으므로 비중에게 준 것이다. 문왕이 위수 가에서 태공을 든 것은 그를 귀히 여김이요, 비중에게 옥판을 대 준 것은 그를 사랑함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스승을 귀히 여기지 않고 그 밑천을 사랑하지 않으면 비록 슬기로워도 크게 헤매니, 이를 요긴하고 묘함이라 한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