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儲說左上
一。明主之道,如有若之應密子也。人主之聽言也,美其辯;其觀行也,賢其遠。故羣臣士民之道言者迂弘,其行身也離世。其說在田鳩對荊王也。故墨子爲木鳶,謳癸築武宮。夫藥酒忠言,明君聖主之以獨知也。
하나. 밝은 임금의 도는 유약이 복자에게 응한 것과 같다. 임금이 말을 들음에 그 말솜씨를 아름다이 여기고 행실을 봄에 그 아득함을 어질다 하므로, 뭇 신하와 선비와 백성 가운데 말하는 이가 에두르고 크게 하며 몸을 행함에 세상을 떠난다. 그 설명은 전구가 초왕에게 대답한 데 있다. 그러므로 묵자가 나무 솔개를 만들고 구계가 무궁을 쌓았다. 무릇 약술과 충성된 말은 밝은 임금과 성스러운 임금이 홀로 아는 바다.
二。人主之聽言也,不以功用爲的,則說者多「棘刺」「白馬」之說;不以儀的爲關,則射者皆如羿也。人主於說也,皆如燕王學道也;而長說者,皆如鄭人爭年也。是以言有纎察微難而非務也,故季、惠、宋、墨皆畫策也;論有迂深閎大,非用也,故魏、長、瞻、陳、莊皆鬼魅也;行有拂難堅確,非功也,故務、卞、鮑、介、田仲皆堅瓠也。且虞慶詘匠也而屋壞,范且窮工而弓折。是故求其誠者,非歸餉也不可。
둘. 임금이 말을 들음에 공과 쓰임을 과녁으로 삼지 않으면 말하는 이에게 「가시 끝」과 「흰 말」 같은 설이 많고, 표준과 과녁을 관문으로 삼지 않으면 쏘는 이가 다 예 같아진다. 임금이 설에 대하여 다 연나라 왕이 도를 배우던 것과 같고, 길게 말하는 이는 다 정나라 사람이 나이를 다투던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말에 잘고 미세하고 어려우나 힘쓸 것이 아닌 것이 있으니 계량과 혜시와 송견과 묵적이 다 계책을 그린 이들이요, 논에 에두르고 깊고 넓고 크나 쓸 것이 아닌 것이 있으니 위모와 장로자와 첨하와 진병과 장주가 다 귀신과 도깨비를 그린 이들이며, 행실에 거스르고 어렵고 굳으나 공이 아닌 것이 있으니 무광과 변수와 포초와 개자추와 전중이 다 굳은 박이다. 또 우경이 목수를 굽혔더니 집이 무너졌고 범저가 활 장인을 궁하게 하였더니 활이 부러졌다. 이 때문에 그 참됨을 구하는 이는 밥 먹으러 돌아가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三。挾夫相爲則責望,自爲則事行。故父子或怨譙,取庸作者進美羮。說在文公之先宣言與勾踐之稱如皇也。故桓公藏蔡怒而攻楚,吳起懷瘳實而吮傷。且先王之賦頌,鍾鼎之銘,皆播吾之跡,華山之博也。然先王所期者利也,所用者力也。築社之諺,自辭說也。請許學者而行宛曼於先王,或者不宜今乎?如是,不能更也。鄭縣人得車厄也,衞人佐弋也,卜子妻寫弊袴也,而其少者侍長者飲也。先王之言,有其所爲小而世意之大者,有其所爲大而世意之小者,未可必知也。說在宋人之解書與梁人之讀記也。故先王有郢書,而後世多燕說。夫不適國事而謀先王,皆歸取度者也。
셋. 무릇 서로를 위한다는 마음을 끼면 책망과 바람이 생기고, 저를 위하면 일이 행해진다. 그러므로 아비와 자식도 혹 원망하고 꾸짖으며, 품꾼을 부리는 이는 좋은 국을 내놓는다. 설명은 문공이 먼저 말을 퍼뜨린 것과 구천이 여황을 일컬은 데 있다. 그러므로 환공이 채나라에 대한 노함을 감추고 초나라를 쳤으며 오기가 고름을 빨아 상처를 낫게 하였다. 또 선왕의 시와 노래와 종과 솥의 새김은 다 파오의 자취요 화산의 바둑판이다. 그러나 선왕이 기약한 바는 이로움이요 쓴 바는 힘이다. 사당 쌓는 이의 속담은 스스로 말한 것이다. 배우는 이를 허락하여 선왕의 아득한 말을 행하게 하면 혹 오늘에 마땅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하면 고칠 수 없다. 정현 사람이 수레 멍에를 얻은 일과 위나라 사람이 활쏘기를 돕던 일, 복자의 아내가 해진 바지를 본떠 만든 일과 어린 이가 어른을 모시고 마시던 일이 그것이다. 선왕의 말에는 작게 한 것을 세상이 크게 뜻하는 것이 있고 크게 한 것을 세상이 작게 뜻하는 것이 있어 반드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명은 송나라 사람이 글을 푼 일과 양나라 사람이 기록을 읽은 데 있다. 그러므로 선왕에게 영 땅의 글이 있고 후세에 연나라 식 풀이가 많다. 무릇 나라의 일에 맞추지 않고 선왕을 꾀함은 다 돌아가 치수를 가져오는 이들이다.
四。利之所在,民歸之;名之所彰,士死之。是以功外於法而賞加焉,則上不能得所利於下;名外於法而譽加焉,則士勸名而不畜之於君。故中章、胥己仕,而中牟之民弃田圃而隨文斈者邑之半;平公腓痛足痺而不敢壞坐,晉國之辭仕託者國之錘。此三士者,言襲法,則官府之籍也;行中事,則如令之民也,二君之禮太甚。若言離法而行遠功,則繩外民也,二君又何禮之?禮之當亡。且居學之士,國無事不用力,有難不被甲。禮之,則惰脩耕戰之功;不禮,則害主上之法。國安則尊顯,危則爲屈公之威,人主奚得於居學之士哉?故明主論李疵視中山也。
넷. 이익이 있는 곳에 백성이 돌아가고 이름이 드러나는 데 선비가 죽는다. 이 때문에 공이 법 밖에 있는데 상이 더해지면 위가 아래에서 이로움을 얻을 수 없고, 이름이 법 밖에 있는데 기림이 더해지면 선비가 이름에 힘쓰고 임금에게 쌓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장과 서기가 벼슬하자 중모의 백성이 밭과 남새밭을 버리고 글 배우기를 따르는 이가 고을의 반이었고, 평공이 장딴지가 아프고 발이 저려도 감히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자 진나라에서 벼슬을 사양하고 기대는 이가 나라의 반이었다. 이 세 선비가 말이 법을 따랐다면 관청의 문서요, 행실이 일에 맞았다면 명령대로 하는 백성이니, 두 임금의 예우가 너무 심하다. 만약 말이 법을 떠나고 행실이 공에서 멀다면 먹줄 밖의 백성이니 두 임금이 또 무엇을 예우하는가. 예우하면 마땅히 망한다. 또 배움에 머무는 선비는 나라에 일이 없어도 힘을 쓰지 않고 어려움이 있어도 갑옷을 입지 않는다. 예우하면 밭 갈고 싸우는 공을 닦기에 게을러지고, 예우하지 않으면 임금의 법을 해친다. 나라가 편안하면 높고 드러나며 위태로우면 굴공의 겁냄이 되니, 임금이 배움에 머무는 선비에게서 무엇을 얻겠는가.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이자가 중산을 본 일을 논한다.
五。《詩》曰:「不躬不親,庶民不信。」傅說之以「無衣紫」,援之以鄭簡、宋襄,責之以尊厚耕戰。夫不明分,不責誠,而以躬親位下,且爲「下走」「睡臥」,與夫「揜弊」「微服」。孔丘不知,故稱猶盂;鄒君不知,故先自僇。明主之道,如叔向賦獵與昭侯之奚聽也。
다섯. 「시」에 이르기를 「몸소 하지 않고 친히 하지 않으면 서민이 믿지 않는다」 하였다. 스승이 「자주색 옷을 입지 마십시오」로 말하고 정나라 간공과 송나라 양공으로 끌어대며 밭 갈고 싸움을 높이고 두터이 함으로 책하였다. 무릇 몫을 밝히지 않고 참됨을 책하지 않으며 몸소 아래 자리에 나서면, 장차 「달려 내려감」과 「졸며 누움」과 「가리고 덮음」과 「미행」이 된다. 공구는 알지 못하였으므로 사발에 견주었고 추나라 임금은 알지 못하였으므로 먼저 스스로를 욕보였다. 밝은 임금의 도는 숙향이 사냥한 것을 나눈 일과 소후가 무엇을 들었는가에 있다.
六。小信成則大信立,故明主積於信。賞罰不信則禁令不行,說在文公之攻原與箕鄭救餓也。是以吳起須故人而食,文侯會虞人而獵。故明主表信,如曾子殺彘也。患在厲王撃警鼓與李悝謾兩和也。
여섯. 작은 믿음이 이루어지면 큰 믿음이 서므로 밝은 임금은 믿음을 쌓는다. 상과 벌이 미덥지 않으면 금령이 행해지지 않으니, 설명은 문공이 원을 친 일과 기정이 굶주림을 구한 데 있다. 이 때문에 오기가 옛 벗을 기다려 먹었고 문후가 사냥터지기와 만나 사냥하였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이 믿음을 드러냄은 증자가 돼지를 잡음과 같다. 근심은 여왕이 경계하는 북을 친 일과 이회가 좌우 양쪽 진을 속인 데 있다.
一。宓子賤治單父。有若見之曰:「子何臞也?」宓子曰:「君不知賤不肖,使治單父,官事急,心憂之,故臞也。」有若曰:「昔者舜鼓五絃、歌《南風》之詩而天下治。今以單父之細也,治之而憂,治天下將奈何乎?故有術而御之,身坐於廟堂之上,有處女子之色,無害於治;無術而御之,身雖瘁臞,猶未有益。
하나. 복자천이 단보를 다스렸다. 유약이 보고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 여위었는가?」 복자가 말하였다. 「임금께서 제가 못난 줄 모르시고 단보를 다스리게 하시니 관청 일이 급하고 마음이 근심되어 여위었습니다.」 유약이 말하였다. 「옛날 순은 다섯 줄 거문고를 타고 「남풍」의 시를 노래하였는데 천하가 다스려졌다. 이제 단보처럼 자잘한 것을 다스리며 근심하니 천하를 다스리면 장차 어찌하겠는가. 그러므로 술이 있어 부리면 몸이 사당 위에 앉아 처녀 같은 낯빛이어도 다스림에 해롭지 않고, 술 없이 부리면 몸이 비록 마르고 여위어도 오히려 보탬이 없다.」
楚王謂田鳩曰:「墨子者,顯斈也。其身體則可,其言多而不辯,何也?」曰:「昔秦伯嫁其女於晉公子,令晉爲之飾裝,從衣文之媵七十人。至晉,晉人愛其妾而賤公女。此可謂善嫁妾,而未可謂善嫁女也。楚人有賣其珠於鄭者,爲木蘭之櫝,薰以桂椒,綴以珠玉,飾以玫瑰,輯以翡翠。鄭人買其櫝而還其珠。此可謂善賣櫝矣,未可謂善鬻珠也。今世之談也,皆道辯說文辭之言,人主覽其丈而忘有用。墨子之說,傳先王之道,論聖人之言,以宣告人。若辯其辭,則恐人懷其文忘其直,以文害用也。此與楚人鬻珠、秦伯嫁女同類,故其言多不辯。」
초왕이 전구에게 말하였다. 「묵자는 드러난 배움이다. 그 몸으로 행함은 좋으나 그 말이 많고 다듬어지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말하였다. 「옛날 진(秦)나라 임금이 제 딸을 진(晉)나라 공자에게 시집보내면서 진(晉)나라로 하여금 꾸며 차리게 하고 무늬 옷을 입은 잉첩 일흔 사람을 딸려 보냈습니다. 진(晉)나라에 이르니 진(晉)나라 사람이 그 첩을 사랑하고 공주를 천히 여겼습니다. 이는 첩을 잘 시집보냈다 할 수 있으나 딸을 잘 시집보냈다 할 수 없습니다. 초나라 사람 가운데 정나라에 구슬을 파는 이가 있어 목란으로 함을 만들고 계수와 산초로 향을 쐬며 구슬과 옥을 달고 붉은 옥으로 꾸미며 비취로 엮었습니다. 정나라 사람이 그 함을 사고 구슬은 돌려주었습니다. 이는 함을 잘 팔았다 할 수 있으나 구슬을 잘 팔았다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세상의 말이 다 말솜씨와 꾸민 글의 말을 이르니 임금이 그 꾸밈을 보고 쓸모를 잊습니다. 묵자의 설은 선왕의 도를 전하고 성인의 말을 논하여 사람에게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만약 그 말을 다듬으면 사람이 그 꾸밈을 품고 그 곧음을 잊어 꾸밈으로 쓸모를 해칠까 두렵습니다. 이는 초나라 사람이 구슬을 팔고 진(秦)나라 임금이 딸을 시집보낸 것과 같은 무리이므로 그 말이 흔히 다듬어지지 않았습니다.」
墨子爲木鳶,三年而成,蜚一日而敗。弟子曰:「先生之巧,至能使木鳶飛。」墨子曰:「不如爲車輗者巧也。用咫尺之木,不費一朝之事,而引三十石之任,致遠力多,久於歲數。今我爲鳶,三年成,蜚一日而敗。」惠子聞之曰:「墨子大巧,巧爲輗,拙爲鳶。」
묵자가 나무 솔개를 만들어 세 해 만에 이루었는데 하루를 날고 부서졌다. 제자가 말하였다. 「선생의 교묘함은 나무 솔개를 날게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묵자가 말하였다. 「수레 멍에 걸이를 만드는 이의 교묘함만 못하다. 한 자 남짓한 나무를 써서 하루아침의 일도 허비하지 않고 서른 섬의 짐을 끌며 멀리 이르고 힘이 많으며 여러 해를 간다. 이제 내가 솔개를 만들어 세 해에 이루었는데 하루 날고 부서졌다.」 혜자가 듣고 말하였다. 「묵자는 크게 교묘하다. 멍에 걸이를 만듦에 교묘하고 솔개를 만듦에 서툴다.」
宋王與齊仇也,築武宮。謳癸倡,行者止觀,築者不倦。王聞,召而賜之。對曰:「臣師射稽之謳又賢於癸。」王召射稽使之謳,行者不止,築者知倦。王曰:「行者不止,築者知倦,其謳不勝如癸美,何也?」對曰:「王試度其功。」癸四板,射稽八板;擿其堅,癸五寸,射稽二寸。
송나라 왕이 제나라와 원수여서 무궁을 쌓았다. 구계가 노래를 부르니 지나는 이가 멈추어 보고 쌓는 이가 게으르지 않았다. 왕이 듣고 불러 상을 내렸다. 대답하였다. 「신의 스승 사계의 노래는 또 저보다 낫습니다.」 왕이 사계를 불러 노래하게 하니 지나는 이가 멈추지 않고 쌓는 이가 게을러졌다. 왕이 말하였다. 「지나는 이가 멈추지 않고 쌓는 이가 게을러지니 그 노래가 계의 아름다움만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대답하였다. 「왕께서는 시험 삼아 그 공을 재어 보십시오.」 계가 부를 때는 네 판을 쌓았고 사계가 부를 때는 여덟 판을 쌓았다. 그 굳기를 찔러 보니 계 때는 다섯 치가 들어가고 사계 때는 두 치가 들어갔다.
夫良藥苦於口,而智者勸而飲之,知其入而已己疾也。忠言拂於耳,而明主聽之,知其可以致功也。
무릇 좋은 약은 입에 쓰나 슬기로운 이가 힘써 마심은 그것이 몸에 들어가 제 병을 낫게 함을 알아서요, 충성된 말은 귀에 거슬리나 밝은 임금이 들음은 그것으로 공을 이룰 수 있음을 알아서다.
二。宋人有請爲燕王以棘刺之端爲母猴者,必三月齋然後能觀之。燕王因以三乘養之。右御冶工言王曰:「臣聞人主無十日不燕之齋。今知王不能久齋以觀無用之器也,故以三月爲期。凡刻削者,以其所以削必小。今臣冶人也,無以爲之削,此不然物也,王必察之。」王因囚而問之,果妄,乃殺之。冶人謂王曰:「計無度量,言談之士多『棘刺』之說也。」
둘. 송나라 사람 가운데 연나라 왕을 위해 가시나무 끝에 어미 원숭이를 새기겠다고 청한 이가 있었는데, 반드시 석 달을 재계한 뒤에야 볼 수 있다 하였다. 연나라 왕이 이에 수레 셋의 녹으로 길렀다. 오른쪽 어자인 대장장이가 왕에게 말하였다. 「신이 듣기로 임금은 열흘도 잔치하지 않고 재계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제 왕께서 오래 재계하여 쓸모없는 그릇을 보실 수 없음을 알므로 석 달로 기한을 삼은 것입니다. 무릇 새기고 깎는 이는 그 깎는 연장이 반드시 작아야 합니다. 이제 신은 대장장이인데 그것을 만들 깎는 칼이 없으니 이는 그럴 수 없는 물건입니다. 왕께서는 반드시 살피십시오.」 왕이 이에 가두고 물으니 과연 망령된 것이라 이에 죽였다. 대장장이가 왕에게 말하였다. 「셈에 도량이 없으면 말하는 선비에게 「가시 끝」 같은 설이 많습니다.」
一曰:燕王好微巧。衛人曰:「能以棘刺之端爲母猴。」燕王說之,養之以五乘之奉。王曰:「吾試觀客爲棘刺之母猴。」客曰:「人主欲觀之,必半歲不入宮,不飲酒食肉。雨霽日出,視之晏陰之間,而棘刺之母猴乃可見也。」燕王因養衛人,不能觀其母猴。鄭有臺下之冶者謂燕王曰:「臣削者也,諸微物必以削削之,而所削必大於削。今棘刺之端不容削鋒,難以治棘刺之端。王試觀客之削,能與不能可知也。」王曰:「善。」謂衛人曰:「客爲棘刺之母猴也,何以理之?」曰:「以削。」王曰:「吾欲觀見之。」客曰:「臣請之舍取之。」因逃。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연나라 왕이 미세하고 교묘한 것을 좋아하였다. 위나라 사람이 말하였다. 「가시나무 끝에 어미 원숭이를 새길 수 있습니다.」 연나라 왕이 기뻐하여 수레 다섯의 녹으로 길렀다. 왕이 말하였다. 「내가 시험 삼아 손님이 만든 가시나무 끝의 어미 원숭이를 보고자 한다.」 손님이 말하였다. 「임금께서 보시려면 반드시 반년을 궁에 들지 않으시고 술과 고기를 드시지 말아야 합니다. 비가 개고 해가 나거든 흐리고 밝은 사이에 보셔야 가시나무 끝의 어미 원숭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연나라 왕이 이에 위나라 사람을 길렀으나 그 어미 원숭이를 볼 수 없었다. 정나라의 대 아래 대장장이가 연나라 왕에게 말하였다. 「신은 깎는 이입니다. 여러 작은 물건은 반드시 깎는 칼로 깎는데 깎이는 것은 반드시 칼보다 커야 합니다. 이제 가시나무 끝은 칼끝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가시나무 끝을 다루기 어렵습니다. 왕께서는 시험 삼아 손님의 칼을 보십시오.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좋다.」 위나라 사람에게 말하였다. 「손님이 가시나무 끝의 어미 원숭이를 만든다는데 무엇으로 다루는가?」 말하였다. 「깎는 칼로 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내가 그것을 보고자 한다.」 손님이 말하였다. 「신이 집에 가서 가져오기를 청합니다.」 그러고는 달아났다.
兒說,宋人,善辯者也,持「白馬非馬也」服齊稷下之辯者。乘白馬而過關,則顧白馬之賦。故籍之虚辭,則能勝一國;考實按形,不能謾於一人。
아열은 송나라 사람으로 말을 잘하는 이인데 「흰 말은 말이 아니다」를 가지고 제나라 직하의 변론하는 이들을 복종시켰다. 그러나 흰 말을 타고 관문을 지나면서는 흰 말의 세를 물었다. 그러므로 빈말에 기대면 한 나라를 이길 수 있으나, 실지를 살피고 꼴을 짚으면 한 사람도 속일 수 없다.
夫新砥礪殺矢,彀弩而射,雖冥而妄發,其端未嘗不中秋毫也,然而莫能復其處,不可謂善射,無常儀的也。設五寸之的,引十步之遠,非羿、逄蒙不能必全者,有常儀的也。有度難而無度易也。有常儀的,則羿、逄蒙以五寸爲巧;無常儀的,則以妄發而中秋毫爲拙。故無度而應之,則辯士繁說;設度而持之,雖知者猶畏失也,不敢妄言。今人主聽說,不應之以度而說其辯;不度以功,譽其行而不入關。此人主所以長欺,而說者所以長養也。
무릇 새로 갈아 벼린 화살을 쇠뇌에 메겨 쏘면, 비록 눈을 감고 망령되이 쏘아도 그 끝이 가을 터럭에 맞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나 그 자리를 다시 맞힐 수 없으니 잘 쏜다 이를 수 없다. 정해진 표준과 과녁이 없어서다. 다섯 치 과녁을 두고 열 걸음 떨어져 당기면 예와 방몽이 아니면 반드시 온전할 수 없으니 정해진 표준과 과녁이 있어서다. 법도가 있으면 어렵고 법도가 없으면 쉽다. 정해진 표준과 과녁이 있으면 예와 방몽도 다섯 치 맞힘을 교묘하다 하고, 정해진 표준과 과녁이 없으면 망령되이 쏘아 가을 터럭을 맞혀도 서툴다 한다. 그러므로 법도 없이 응하면 말 잘하는 선비가 말을 번거로이 하고, 법도를 두어 지니면 비록 슬기로운 이라도 오히려 그르칠까 두려워 감히 망령되이 말하지 못한다. 이제 임금이 설을 들으며 법도로 응하지 않고 그 말솜씨를 기뻐하며, 공으로 재지 않고 그 행실을 기려 관문에 넣지 않는다. 이것이 임금이 오래 속는 까닭이요 말하는 이가 오래 길러지는 까닭이다.
客有教燕王爲不死之道者,王使人學之,所使學者未及學而客死。王大怒,誅之。王不知客之欺己,而誅學者之晩也。夫信不然之物而誅無罪之臣,不察之患也。且人所急無如其身,不能自使其無死,安能使王長生哉?
손님 가운데 연나라 왕에게 죽지 않는 도를 가르치겠다는 이가 있었다. 왕이 사람을 시켜 배우게 하였는데 배우러 간 이가 배우기 전에 손님이 죽었다. 왕이 크게 노하여 그를 베었다. 왕은 손님이 저를 속인 줄 알지 못하고 배우는 이가 늦었다고 벤 것이다. 무릇 그럴 수 없는 물건을 믿고 죄 없는 신하를 벰은 살피지 않은 근심이다. 또 사람에게 제 몸보다 급한 것이 없는데, 스스로 죽지 않게 할 수 없으면서 어찌 왕을 길이 살게 하겠는가.
鄭人有相與爭年者。一人曰:「吾與堯同年。」其一人曰:「我與黃帝之兄同年。」訟此而不決,以後息者爲勝耳。
정나라 사람 가운데 서로 나이를 다투는 이가 있었다. 한 사람이 말하였다. 「나는 요와 나이가 같다.」 한 사람이 말하였다. 「나는 황제의 형과 나이가 같다.」 이를 송사하여도 결판나지 않아 뒤에 그치는 이를 이긴 것으로 삼을 뿐이었다.
客有爲周君畫筴者,三年而成。君觀之,與髹筴者同狀。周君大怒。畫筴者曰:「築十版之墻,鑿八尺之牖,而以日始出時加之其上而觀。」周君爲之,望見其狀,盡成龍蛇禽獸車馬,萬物之狀備具。周君大悅。此筴之功非不微難也,然其用與素髹筴同。
손님 가운데 주나라 임금을 위해 채찍에 그림을 그린 이가 있어 세 해 만에 이루었다. 임금이 보니 옻칠한 채찍과 같은 모양이었다. 주나라 임금이 크게 노하였다. 채찍에 그림 그린 이가 말하였다. 「열 판 높이의 담을 쌓고 여덟 자 창을 뚫어, 해가 처음 뜰 때 그 위에 놓고 보십시오.」 주나라 임금이 그리하니 그 모양이 다 용과 뱀과 새와 짐승과 수레와 말이 되어 만물의 모양이 갖추어졌다. 주나라 임금이 크게 기뻐하였다. 이 채찍의 공이 미세하고 어렵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 쓰임은 그냥 옻칠한 채찍과 같다.
客有爲齊王畫者,齊王問曰:「畫孰最難者?」曰:「犬馬難。」「孰易者?」對曰:「鬼魅最易。」夫犬馬,人所知也,旦暮罄於前,不可類之,故難。鬼魅,無形者,不罄於前,故易之也。
손님 가운데 제왕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이가 있었다. 제왕이 물었다. 「그림에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 말하였다. 「개와 말이 어렵습니다.」 「무엇이 쉬운가?」 대답하였다. 「귀신과 도깨비가 가장 쉽습니다.」 무릇 개와 말은 사람이 아는 바요 아침저녁으로 앞에 다 드러나 비슷하게 그릴 수 없으므로 어렵고, 귀신과 도깨비는 꼴이 없어 앞에 드러나지 않으므로 쉽다.
齊有居士田仲者,宋人屈穀見之,曰:「穀聞先王之義,不恃仰人而食。今穀有巨瓠,堅如石,厚而無竅,獻之。」仲曰:「夫瓠所貴者,謂其可以盛也。今厚而無竅,則不可剖以盛物;而任重如堅石,則不可以剖而以斟。吾無以瓠爲也。」曰:「然,穀將弃之。」今田仲不恃仰人而食,亦無益人之國,亦堅瓠之類也。
제나라에 전중이라는 처사가 있었는데 송나라 사람 굴곡이 보고 말하였다. 「제가 듣기로 선왕의 의는 남에게 기대어 먹지 않는 것이라 합니다. 이제 제게 큰 박이 있는데 돌처럼 굳고 두꺼우며 구멍이 없으니 바치겠습니다.」 전중이 말하였다. 「무릇 박이 귀한 것은 물건을 담을 수 있어서다. 이제 두껍고 구멍이 없으면 갈라 물건을 담을 수 없고, 굳은 돌처럼 무거우면 갈라 떠 마실 수도 없다. 나는 그 박을 쓸 데가 없다.」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버리겠습니다.」 이제 전중이 남에게 기대어 먹지 않으나 또한 남의 나라에 이익이 없으니 또한 굳은 박의 무리다.
虞慶爲屋,謂匠人曰:「屋太尊。」匠人對曰:「此新屋也,塗濡而椽生。」虞慶曰:「不然。夫濡塗重而生椽撓,以橈椽任重塗,此宜卑。更日久,則塗乾而椽燥。塗乾則輕,椽燥則直,以直椽任輕塗,此益尊。」匠人詘,爲之而屋壞。
우경이 집을 지으며 목수에게 말하였다. 「집이 너무 높다.」 목수가 대답하였다. 「이는 새 집이라 흙이 젖었고 서까래가 생나무입니다.」 우경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무릇 젖은 흙은 무겁고 생나무 서까래는 휘니, 휘는 서까래로 무거운 흙을 지면 이는 마땅히 낮아진다. 날이 오래되면 흙이 마르고 서까래가 마른다. 흙이 마르면 가볍고 서까래가 마르면 곧으니, 곧은 서까래로 가벼운 흙을 지면 이는 더 높아진다.」 목수가 굽혀 그대로 지었더니 집이 무너졌다.
一曰:虞慶將爲屋,匠人曰:「材生而塗濡。夫材生則撓,塗濡則重,以撓任重,今雖成,久必壞。」虞慶曰:「材乾則直,塗乾則輕。今誠得乾,日以輕直,雖久,必不壞。」匠人詘,作之成,有間,屋果壞。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우경이 집을 지으려 하니 목수가 말하였다. 「재목이 생나무이고 흙이 젖었습니다. 무릇 재목이 생나무이면 휘고 흙이 젖으면 무거우니, 휘는 것으로 무거운 것을 지면 이제 비록 이루어져도 오래되면 반드시 무너집니다.」 우경이 말하였다. 「재목이 마르면 곧고 흙이 마르면 가볍다. 이제 참으로 마름을 얻으면 날마다 가볍고 곧아지니 비록 오래되어도 반드시 무너지지 않는다.」 목수가 굽혀 지어 이루었는데 얼마 뒤 집이 과연 무너졌다.
范且曰:「弓之折,必於其盡也,不於其始也。夫工人張弓也,伏檠三旬而蹈弦,一日犯機,是節之其始而暴之其盡也,焉得無折?且張弓不然:伏檠一日而蹈弦,三旬而犯機,是暴之其始而節之其盡也。」工人窮也,爲之,弓折。
범저가 말하였다. 「활이 부러짐은 반드시 그 끝에서요 그 처음에서가 아니다. 무릇 장인이 활을 걸 때 도지개에 서른 날을 엎어 두었다가 시위를 밟고 하루 만에 당겨 시험하니, 이는 그 처음에는 절제하고 그 끝에는 사납게 함이라 어찌 부러지지 않겠는가. 또 활을 거는 것은 그렇지 않아야 하니, 도지개에 하루 엎어 두고 시위를 밟은 뒤 서른 날에 당겨 시험하면 이는 그 처음에 사납고 그 끝에 절제하는 것이다.」 장인이 궁하여 그리하였더니 활이 부러졌다.
范且、虞慶之言,皆文辯辭勝而反事之情。人主說而不禁,此所以敗也。夫不謀治强之功,而艷乎辯說文麗之聲,是却有術之士而任「壞屋」「折弓」也。故人主之於國事也,皆不達乎工匠之搆屋張弓也。然而士窮乎范且、虞慶者,爲虚辭,其無用而勝;實事,其無易而窮也。人主多無用之辯,而少無易之言,此所以亂也。今世之爲范且、虞慶者不輟,而人主說之不止,是貴敗折之類而以知術之人爲工匠也。工匠不得施其技巧,故屋壞弓折;知治之人不得行其方術,故國亂而主危。
범저와 우경의 말은 다 꾸민 말솜씨가 이기고 일의 실정에 어긋난다. 임금이 기뻐하고 금하지 않으니 이것이 낭패하는 까닭이다. 무릇 다스리고 강해지는 공을 꾀하지 않고 말솜씨와 꾸민 소리에 홀림은, 술 있는 선비를 물리치고 「집을 무너뜨리고 활을 부러뜨리는 이」에게 맡김이다. 그러므로 임금이 나라 일에 대하여 다 목수가 집을 짓고 활을 거는 일만큼도 통하지 못한다. 그런데 선비가 범저와 우경에게 궁해짐은, 빈말은 쓸모없어도 이기고 실지 일은 바꿀 수 없어 궁해지기 때문이다. 임금에게 쓸모없는 말솜씨가 많고 바꿀 수 없는 말이 적으니 이것이 어지러운 까닭이다. 이제 세상에 범저와 우경 같은 이가 그치지 않고 임금이 기뻐하기를 멈추지 않으니, 이는 낭패하고 부러뜨리는 무리를 귀히 여기고 다스림을 아는 사람을 목수로 삼는 것이다. 목수가 제 재주를 베풀 수 없으므로 집이 무너지고 활이 부러지며, 다스림을 아는 사람이 제 방술을 행할 수 없으므로 나라가 어지럽고 임금이 위태롭다.
夫嬰兒相與戲也,以塵爲飯,以塗爲羮,以木爲胾,然至日晩必歸饟者,塵飯塗羮可以戲而不可食也。夫稱上古之傅頌,辯而不慤,道先王仁義而不能正國者,此亦可以戲而不可以爲治也。夫慕仁義而弱亂者,三晉也;不慕而治强者,秦也,然而未帝者,治未畢也。
무릇 아기들이 서로 놀 때 티끌로 밥을 삼고 진흙으로 국을 삼으며 나무로 고기를 삼으나, 날이 저물면 반드시 밥 먹으러 돌아감은 티끌 밥과 진흙 국이 놀이는 되어도 먹을 수는 없어서다. 무릇 상고의 전해 오는 노래를 일컬으며 말솜씨는 있으나 성실하지 않고, 선왕의 어짊과 의를 말하나 나라를 바로잡지 못함은 이 또한 놀이는 되어도 다스림은 될 수 없다. 무릇 어짊과 의를 사모하다 약해지고 어지러워진 것은 삼진이요, 사모하지 않고 다스려지고 강해진 것은 진나라다. 그러나 아직 황제가 되지 못함은 다스림이 아직 다하지 않아서다.
三。人爲嬰兒也,父母養之簡,子長而怨;子盛壯成人,其供養薄,父母怒而誚之。子、父,至親也,而或譙或怨者,皆挾相爲而不周於爲己也。夫買庸而播耕者,主人費家而美食,調布而求易錢者,非愛庸客也,曰:如是,耕者且深,耨者熟耘也。庸客致力而疾耘耕者,盡巧而正畦陌者,非愛主人也,曰:如是,羮且美,錢布且易云也。此其養功力,有父子之澤矣,而心調於用者,皆挾自爲心也。故人行事施予,以利之爲心,則越人易和;以害之爲心,則父子離且怨。
셋. 사람이 아기일 때 부모가 기름이 소홀하면 자식이 자라 원망하고, 자식이 장성하여 어른이 되어 그 봉양이 얇으면 부모가 노하여 꾸짖는다. 자식과 아비는 지극히 친한데도 혹 꾸짖고 혹 원망함은 다 서로를 위한다는 마음을 끼고 저를 위함에 두루 하지 못해서다. 무릇 품꾼을 사서 밭에 씨 뿌리는 이가 집안 살림을 허비하여 좋은 밥을 먹이고 베를 고르고 돈으로 바꾸어 주는 것은 품꾼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밭 가는 이가 깊이 갈고 김매는 이가 익숙히 맬 것이라 여겨서다. 품꾼이 힘을 다해 급히 김매고 갈며 재주를 다해 두둑과 이랑을 바르게 함은 주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국이 좋고 돈과 베를 바꾸기 쉬우리라 여겨서다. 이렇게 힘을 길러 주는 데에 아비와 자식의 은택이 있으나 마음이 쓰임에 고름은 다 저를 위하는 마음을 껴서다. 그러므로 사람이 일하고 베풀 때 이롭게 함을 마음으로 삼으면 월나라 사람과도 쉬이 화합하고, 해롭게 함을 마음으로 삼으면 아비와 자식도 떨어지고 원망한다.
文公伐宋,乃先宣言曰:「吾聞宋君無道,蔑侮長老,分財不中,教令不信,余來爲民誅之。」
문공이 송나라를 치며 이에 먼저 말을 퍼뜨렸다. 「내가 듣기로 송나라 임금이 도가 없어 어른을 업신여기고 재물을 나눔이 고르지 않으며 가르치는 명령이 미덥지 않다 하니, 내가 백성을 위해 그를 베러 왔다.」
越伐吳,乃先宣言曰:「我聞吳王築如皇之臺,掘深池,罷苦百姓,煎靡財貨,以盡民力,余來爲民誅之。」
월나라가 오나라를 치며 이에 먼저 말을 퍼뜨렸다. 「내가 듣기로 오왕이 여황의 대를 쌓고 깊은 못을 파며 백성을 지치고 괴롭게 하고 재화를 녹여 없애 백성의 힘을 다하게 한다 하니, 내가 백성을 위해 그를 베러 왔다.」
蔡女爲桓公妻,桓公與之乘舟,夫人蕩舟,桓公大懼,禁之不止,怒而出之。乃且復召之,因復更嫁之。桓公大怒,將伐蔡。仲父諫曰:「夫以寢席之戲,不足以伐人之國,功業不可冀也,請無以此爲稽也。」桓公不聽。仲父曰:「必不得已,楚之菁茅不貢於天子三年矣,君不如舉兵爲天子伐楚。楚伏,因還襲蔡,曰『余爲天子伐楚,而蔡不以兵聽從』,遂滅之。此義於名而利於實,故必有爲天子誅之名,而有報讎之實。」
채나라 여자가 환공의 아내가 되었는데 환공이 함께 배를 탔을 때 부인이 배를 흔들었다. 환공이 크게 두려워 그치게 하였으나 그치지 않으므로 노하여 내보냈다. 이에 다시 부르려 하였으나 채나라가 다시 시집보내 버렸다. 환공이 크게 노하여 채나라를 치려 하니 중보가 간하였다. 「무릇 잠자리의 놀이로 남의 나라를 치기에는 넉넉하지 않고 공업을 바랄 수 없으니, 이것을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환공이 듣지 않았다. 중보가 말하였다. 「반드시 마지못하시겠다면, 초나라가 천자에게 청모를 바치지 않은 지 세 해입니다. 임금께서는 군사를 들어 천자를 위해 초나라를 치는 것만 못합니다. 초나라가 엎드리면 이어 돌아서 채나라를 엄습하며 『내가 천자를 위해 초나라를 쳤는데 채나라가 군사로 좇지 않았다』 하고 마침내 없애십시오. 이는 이름에 의롭고 실지에 이로우니, 반드시 천자를 위해 벤다는 이름이 있고 원수를 갚는 실지가 있습니다.」
吳起爲魏將而攻中山。軍人有病疽者,吳起跪而自吮其膿。傷者之母立泣,人問曰:「將軍於若子如是,尚何爲而泣?」對曰:「吳起吮其父之創而父死,今是子又將死也,今吾是以泣。」
오기가 위나라 장수가 되어 중산을 쳤다. 군사 가운데 종기를 앓는 이가 있어 오기가 무릎 꿇고 몸소 그 고름을 빨았다. 다친 이의 어미가 서서 우니 사람이 물었다. 「장군이 그대 아들에게 이와 같은데 어찌하여 우는가?」 대답하였다. 「오기가 그 아비의 상처를 빨아 아비가 죽었는데, 이제 이 아들이 또 죽을 것이니 나는 이 때문에 웁니다.」
趙主父令工施鈎梯而緣播吾,刻踈人迹其上,廣三尺,長五尺,而勒之曰:「主父常遊於此。」
조나라 주보가 장인을 시켜 갈고리 사다리를 놓고 파오에 올라 사람 발자국을 성기게 새기게 하였는데 너비가 석 자요 길이가 다섯 자였다. 그리고 새겨 두었다. 「주보가 일찍이 여기에 노닐었다.」
秦昭王令工施鈎梯而上華山,以松栢之心爲博,箭長八尺,棊長八寸,而勒之曰:「昭王嘗與天神博於此矣。」
진나라 소왕이 장인을 시켜 갈고리 사다리를 놓고 화산에 올라 소나무와 잣나무 속으로 바둑판을 만들게 하였는데 화살이 여덟 자요 바둑알이 여덟 치였다. 그리고 새겨 두었다. 「소왕이 일찍이 하늘 신과 여기서 바둑을 두었다.」
文公反國,至河,令籩豆捐之,席蓐捐之,手足胼胝、面目黧黑者後之。咎犯聞之而夜哭。公曰:「寡人出亡二十年,乃今得反國。咎犯聞之不喜而哭,意不欲寡人反國耶?」犯對曰:「籩豆,所以食也;席蓐,所以臥也,而君捐之。手足胼胝、面目黧黑,勞有功者也,而君後之。今臣有與在後,中不勝其哀,故哭。且臣爲君行詐僞以反國者衆矣,臣尚自惡也,而況於君?」再拜而辭。文公止之曰:「諺曰:『築社者,㩷撅而置之,端冕而祀之。』今子與我取之,而不與我治之;與我置之,而不與我祀之,焉可?」解左驂而盟于河。
문공이 나라로 돌아가다가 하수에 이르러 영을 내려 대그릇과 나무그릇을 버리고 자리와 깔개를 버리며, 손발에 굳은살이 박이고 얼굴이 검게 그을린 이들을 뒤에 서게 하였다. 구범이 듣고 밤에 곡하니 공이 말하였다. 「과인이 달아나 스무 해 만에 이제야 나라에 돌아가는데, 구범이 듣고 기뻐하지 않고 곡하니 과인이 나라에 돌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 뜻인가?」 구범이 대답하였다. 「대그릇과 나무그릇은 먹는 것이요 자리와 깔개는 눕는 것인데 임금께서 버리셨습니다. 손발에 굳은살이 박이고 얼굴이 검게 그을린 이는 수고하여 공이 있는 이들인데 임금께서 뒤에 두셨습니다. 이제 신도 뒤에 서게 되어 마음에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므로 곡하였습니다. 또 신이 임금을 위해 속임과 거짓을 행하여 나라로 돌아오게 한 일이 많으니, 신도 오히려 스스로 미워하는데 하물며 임금께서겠습니까.」 두 번 절하고 물러나려 하니 문공이 말리며 말하였다. 「속담에 이르기를 『사당을 쌓는 이는 옷을 걷고 흙을 다지고, 다 되면 단정한 옷과 면류관으로 제사한다』 하오. 이제 그대는 나와 함께 얻어 놓고 나와 함께 다스리지 않으며, 나와 함께 세워 놓고 나와 함께 제사하지 않으려 하니 어찌 옳겠소.」 왼쪽 곁말을 풀어 하수에 맹세하였다.
鄭縣人卜子使其妻爲袴,其妻問曰:「今袴何如?」夫曰:「象吾故袴。」妻子因毁新,令如故袴。
정현 사람 복자가 그 아내에게 바지를 짓게 하니 아내가 물었다. 「이제 바지를 어떻게 할까요?」 지아비가 말하였다. 「내 헌 바지를 본떠라.」 아내가 이에 새것을 헐어 헌 바지처럼 만들었다.
鄭縣人有得車軛者,而不知其名,問人曰:「此何種也?」對曰:「此車軛也。」俄又復得一,問人曰:「此是何種也?」對曰:「此車軛也。」問者大怒曰:「曩者曰車軛,今又曰車軛,是何衆也?此女欺我也!」遂與之鬬。
정현 사람 가운데 수레 멍에를 얻은 이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남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슨 종류인가?」 대답하였다. 「이는 수레 멍에다.」 얼마 뒤 또 하나를 얻어 남에게 물었다. 「이는 무슨 종류인가?」 대답하였다. 「이는 수레 멍에다.」 물은 이가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아까도 수레 멍에라 하더니 이제 또 수레 멍에라 하니 어찌 이리 많은가. 이는 네가 나를 속이는 것이다!」 마침내 더불어 싸웠다.
衛人有佐弋者,鳥至,因先以其裷麾之,鳥驚而不射也。
위나라 사람 가운데 활쏘기를 돕는 이가 있었는데 새가 이르자 이에 먼저 제 두건으로 휘저으니 새가 놀라 쏘지 못하였다.
鄭縣人卜子妻之市,買鼈以歸。過潁水,以爲渴也,因縱而飲之,遂亡其鼈。
정현 사람 복자의 아내가 저자에 가서 자라를 사서 돌아왔다. 영수를 지나며 목마르리라 여겨 이에 놓아 물을 먹이니 마침내 그 자라를 잃었다.
夫少者侍長者飲,長者飲,亦自飲也。
무릇 어린 이가 어른을 모시고 마실 때 어른이 마시면 저도 마신다.
一曰:魯人有自喜者,見長年飲酒不能釂則唾之,亦效唾之。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노나라 사람 가운데 스스로 기뻐하는 이가 있어, 나이 든 이가 술을 마시다가 다 비우지 못하면 뱉는 것을 보고 저도 본떠 뱉었다.
一曰:宋人有少者亦欲效善,見長者飲無餘,非堪酒飲也而欲盡之。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송나라 사람 가운데 어린 이가 또한 착함을 본받으려 하여, 어른이 마시면 남기지 않음을 보고 술을 감당할 수 없으면서도 다 비우려 하였다.
書曰:「紳之束之。」宋人有治者,因重帶自紳束也。人曰:「是何也?」對曰:「書言之,固然。」
글에 이르기를 「띠를 매고 묶는다」 하였다. 송나라 사람 가운데 다스림을 배우는 이가 있어 이에 띠를 겹쳐 스스로를 묶었다. 사람이 말하였다. 「이는 무엇인가?」 대답하였다. 「글이 그렇게 말하였으니 본디 그러하다.」
書曰:「既雕既琢,還歸其樸。」梁人有治者,動作言學,舉事於文,曰:「難之。」顧失其實。人曰:「是何也?」對曰:「書言之,固然。」
글에 이르기를 「이미 새기고 이미 쪼았으면 도로 그 통나무로 돌아간다」 하였다. 양나라 사람 가운데 다스림을 배우는 이가 있어 움직임과 말을 배우고 일을 꾸밈에 들어 말하기를 「어렵다」 하더니 도리어 그 실지를 잃었다. 사람이 말하였다. 「이는 무엇인가?」 대답하였다. 「글이 그렇게 말하였으니 본디 그러하다.」
郢人有遺燕相國書者,夜書,火不明,因謂持燭者曰:「舉燭。」云而過書「舉燭」。舉燭,非書意也。燕相受書而說之,曰:「舉燭者,尚明也;尚明也者,舉賢而任之。」燕相白王,王大說,國以治。治則治矣,非書意也。今世舉學者多似此類。
영 땅 사람 가운데 연나라 재상에게 글을 보낸 이가 있었다. 밤에 글을 쓰는데 불이 밝지 않으므로 촛불 든 이에게 말하였다. 「촛불을 들라.」 그렇게 말하면서 잘못 「촛불을 들라」고 글에 적었다. 촛불을 들라 함은 글의 뜻이 아니었다. 연나라 재상이 글을 받고 기뻐하며 말하였다. 「촛불을 들라 함은 밝음을 숭상함이요, 밝음을 숭상함이란 어진 이를 들어 맡김이다.」 연나라 재상이 왕에게 아뢰니 왕이 크게 기뻐하여 나라가 그로써 다스려졌다. 다스려지기는 다스려졌으나 글의 뜻은 아니었다. 이제 세상에서 배움을 드는 이가 흔히 이런 무리와 같다.
鄭人有且置履者,先自度其足而置之其坐,至之市而忘操之。已得履,乃曰:「吾忘持度。」反歸取之。及反,市罷,遂不得履。人曰:「何不試之以足?」曰:「寧信度,無自信也。」
정나라 사람 가운데 신을 사려는 이가 있었다. 먼저 스스로 제 발을 재어 그 자리에 두었는데 저자에 이르러 가져오기를 잊었다. 이미 신을 골라 놓고 이에 말하였다. 「내가 치수 잰 것을 잊었다.」 돌아가 가져왔는데 돌아왔을 때는 저자가 파하여 마침내 신을 얻지 못하였다. 사람이 말하였다. 「어찌 발로 신어 보지 않았는가?」 말하였다. 「차라리 치수를 믿을지언정 나를 믿지 않는다.」
四。王登爲中牟令,上言於襄主曰:「中牟有士曰中章、胥己者,其身甚修,其學甚博,君何不舉之?」主曰:「子見之,我將爲中大夫。」相室諫曰:「中大夫,晉重列也,今無功而受,非晉臣之意。君其耳而未之目邪!」襄主曰:「我取登,既耳而目之矣;登之所取,又耳而目之。是耳目人絶無已也。」王登一日而見二中大夫,予之田宅。中牟之人弃其田耘、賣宅圃而隨文學者,邑之半。
넷. 왕등이 중모의 현령이 되어 양주에게 아뢰었다. 「중모에 중장과 서기라는 선비가 있는데 그 몸이 매우 닦였고 그 배움이 매우 넓습니다. 임금께서는 어찌 그들을 들어 쓰지 않으십니까?」 양주가 말하였다. 「그대가 보았으니 나는 중대부로 삼겠다.」 재상이 간하였다. 「중대부는 진나라의 무거운 반열입니다. 이제 공 없이 받음은 진나라 신하의 뜻이 아닙니다. 임금께서는 귀로만 들으시고 눈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양주가 말하였다. 「내가 왕등을 취할 때 이미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았다. 왕등이 취한 이를 또 귀로 듣고 눈으로 본다면, 이는 사람마다 귀와 눈으로 살피기를 끝없이 하는 것이다.」 왕등이 하루에 두 중대부를 뵙게 하고 밭과 집을 주었다. 중모의 사람 가운데 그 밭 김매기를 버리고 집과 남새밭을 팔며 글 배우기를 따르는 이가 고을의 반이었다.
叔向御坐,平公請事,公腓痛足痺轉筋而不敢壞坐。晉國聞之,皆曰:「叔向賢者,平公禮之,轉筋而不敢壞坐。」晉國之辭仕託慕叔向者,國之錘矣。
숙향이 모시고 앉았는데 평공이 일을 묻느라 공이 장딴지가 아프고 발이 저리며 쥐가 났으나 감히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진나라가 듣고 다 말하였다. 「숙향은 어진 이라 평공이 예우하여 쥐가 나도 감히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진나라에서 벼슬을 사양하고 숙향을 사모하여 기대는 이가 나라의 반이었다.
鄭縣人有屈公者,聞敵,恐,因死;恐已,因生。
정현 사람 가운데 굴공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적이 온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 죽었다가 두려움이 그치자 다시 살아났다.
趙主父使李疵視中山可攻不也。還報曰:「中山可伐也。君不亟伐,將後齊、燕。」主父曰:「何故可攻?」李疵對曰:「其君見好巖穴之士,所傾蓋與車以見窮閭隘巷之士以十數,伉禮下布衣之士以百數矣。」君曰:「以子言論,是賢君也,安可攻?」疵曰:「不然。夫好顯巖穴之士而朝之,則戰士怠於行陣;上尊學者,下士居朝,則農夫惰於田。戰士怠於行陳者,則兵弱也;農夫惰於田者,則國貧也。兵弱於敵,國貧於内,而不亡者,未之有也。伐之不亦可乎?」主父曰:「善。」舉兵而伐中山,遂滅也。
조나라 주보가 이자를 시켜 중산을 칠 만한지 보게 하였다. 돌아와 아뢰었다. 「중산은 칠 만합니다. 임금께서 급히 치지 않으시면 제나라와 연나라에 뒤집니다.」 주보가 말하였다. 「무슨 까닭으로 칠 만한가?」 이자가 대답하였다. 「그 임금이 바위굴에 사는 선비를 드러내기를 좋아하여 수레 덮개를 기울여 궁벽한 마을과 좁은 골목의 선비를 만난 것이 열로 헤아려지고, 예를 낮추어 베옷 입은 선비를 만난 것이 백으로 헤아려집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그대의 말로 논하면 이는 어진 임금인데 어찌 칠 수 있는가?」 이자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바위굴의 선비를 드러내기를 좋아하여 조회하게 하면 싸우는 군사가 진에 서기를 게을리하고, 위에서 배우는 이를 높이고 선비를 낮추어 조정에 두면 농부가 밭에 게을러집니다. 싸우는 군사가 진에 게으르면 군사가 약하고, 농부가 밭에 게으르면 나라가 가난합니다. 군사가 적에게 약하고 나라가 안에서 가난한데 망하지 않은 일은 있지 않았습니다. 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습니까.」 주보가 말하였다. 「좋다.」 군사를 들어 중산을 쳐서 마침내 없앴다.
五。齊桓公好服紫,一國盡服紫。當是時也,五素不得一紫。桓公患之,謂管仲曰:「寡人好服紫,紫貴甚,一國百姓好服紫不已,寡人奈何?」管仲曰:「君欲止之,何不試勿衣紫也?謂左右曰:『吾甚惡紫之臭。』於是左右適有衣紫而進者,公必曰:『少却,吾惡紫臭。』」公曰:「諾。」於是日,郎中莫衣紫;其明日,國中莫衣紫;三日,境内莫衣紫也。
다섯. 제나라 환공이 자주색 옷 입기를 좋아하니 온 나라가 다 자주색을 입었다. 이때에 흰 비단 다섯으로도 자주색 하나를 얻지 못하였다. 환공이 근심하여 관중에게 말하였다. 「과인이 자주색 옷 입기를 좋아하여 자주색이 몹시 귀해졌는데, 온 나라 백성이 자주색 입기를 좋아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과인이 어찌하겠는가?」 관중이 말하였다. 「임금께서 그치게 하시려면 어찌 시험 삼아 자주색을 입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좌우에게 『나는 자주색 냄새가 몹시 싫다』고 하십시오. 이에 좌우에 마침 자주색을 입고 나아오는 이가 있거든 공께서 반드시 『조금 물러서라. 나는 자주색 냄새가 싫다』 하십시오.」 공이 말하였다. 「그리하겠다.」 이날 낭중에 자주색을 입은 이가 없었고, 이튿날 나라 안에 자주색을 입은 이가 없었으며, 사흘에 지경 안에 자주색을 입은 이가 없었다.
一曰:齊王好衣紫,齊人皆好也。齊國五素不得一紫,齊王患紫貴。傅說王曰:「《詩》云:『不躬不親,庶民不信。』今王欲民無衣紫者,王請自解紫衣而朝。羣臣有紫衣進者,曰:『益遠!寡人惡臭。』」是日也,郎中莫衣紫;是月也,國中莫衣紫;是歲也,境内莫衣紫。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제왕이 자주색 옷 입기를 좋아하니 제나라 사람이 다 좋아하였다. 제나라에서 흰 비단 다섯으로도 자주색 하나를 얻지 못하니 제왕이 자주색이 귀함을 근심하였다. 스승이 왕에게 말하였다. 「「시」에 이르기를 『몸소 하지 않고 친히 하지 않으면 서민이 믿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이제 왕께서 백성이 자주색을 입지 않게 하시려면, 왕께서 스스로 자주색 옷을 벗고 조회하시기를 청합니다. 뭇 신하 가운데 자주색 옷을 입고 나아오는 이가 있거든 『더 멀리 가라! 과인은 냄새가 싫다』 하십시오.」 이날 낭중에 자주색을 입은 이가 없었고, 이달에 나라 안에 자주색을 입은 이가 없었으며, 이해에 지경 안에 자주색을 입은 이가 없었다.
鄭簡公謂子産曰:「國小,迫於荊、晉之間。今城郭不完,兵甲不備,不可以待不虞。」子産曰:「臣閉其外也已遠矣,而守其内也已固矣,雖國小,猶不危之也。君其勿憂。」是以沒簡公身無患。
정나라 간공이 자산에게 말하였다. 「나라가 작고 초나라와 진나라 사이에 다그쳐져 있다. 이제 성곽이 온전하지 않고 병기와 갑옷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니 뜻밖의 일을 기다릴 수 없다.」 자산이 말하였다. 「신이 그 밖을 닫음이 이미 멀고 그 안을 지킴이 이미 굳으니, 비록 나라가 작아도 오히려 위태롭지 않습니다. 임금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이 때문에 간공이 몸을 마치도록 근심이 없었다.
一曰:子産相鄭,簡公謂子産曰:「飲酒不樂也。俎豆不大,鐘鼓竽瑟不鳴,寡人之事不一,國家不定,百姓不治,耕戰不輯睦,亦子之罪。子有職,寡人亦有職,各守其職。」子産退而爲政五年,國無盜賊,道不拾遺,桃棗蔭於街者莫有援也,錐刀遺道三日可反。三年不變,民無飢也。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자산이 정나라 재상일 때 간공이 자산에게 말하였다. 「술을 마셔도 즐겁지 않다. 제기가 크지 않고 종과 북과 우와 비파가 울리지 않으며, 과인의 일이 한결같지 않고 나라가 정해지지 않으며 백성이 다스려지지 않고 밭 갈고 싸움이 화목하지 않으니 또한 그대의 죄다. 그대에게 직분이 있고 과인에게도 직분이 있으니 저마다 그 직분을 지키자.」 자산이 물러나 정사를 한 지 다섯 해에 나라에 도적이 없고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으며, 거리에 그늘 드리운 복숭아와 대추를 따는 이가 없고 송곳이나 칼을 길에 흘려도 사흘이면 돌아왔다. 세 해를 바꾸지 않으니 백성에게 굶주림이 없었다.
宋襄公與楚人戰於涿谷上。宋人既成列矣,楚人未及濟。右司馬購强趨而諫曰:「楚人衆而宋人寡,請使楚人半涉未成列而撃之,必敗。」襄公曰:「寡人聞君子曰:『不重傷,不擒二毛,不推人於險,不迫人於阨,不鼓不成列。』今楚未濟而撃之,害義。請使楚人畢涉成陣而後鼓士進之。」右司馬曰:「君不愛宋民,腹心不完,特爲義耳。」公曰:「不反列,且行法。」右司馬反列,楚人已成列撰陣矣,公乃鼓之。宋人大敗,公傷股,三日而死。此乃慕自親仁義之禍。夫必恃人主之自躬親而後民聽從,是則將令人主耕以爲食、服戰鴈行也民乃肯耕戰,則人主不泰危乎?而人臣不泰安乎?
송나라 양공이 초나라 사람과 탁곡 위에서 싸웠다. 송나라 사람이 이미 줄을 이루었는데 초나라 사람이 아직 건너지 못하였다. 우사마 구강이 종종걸음으로 나아가 간하였다. 「초나라 사람은 많고 송나라 사람은 적으니, 초나라 사람이 반쯤 건너 아직 줄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 치기를 청합니다. 반드시 깨뜨립니다.」 양공이 말하였다. 「과인이 군자에게 듣기로 『거듭 상하게 하지 않고 두 빛깔 머리를 사로잡지 않으며, 남을 험한 데로 밀지 않고 좁은 데서 다그치지 않으며, 줄을 이루지 못한 이에게 북을 치지 않는다』 하였다. 이제 초나라가 아직 건너지 못하였는데 치면 의를 해친다. 초나라 사람이 다 건너 진을 이룬 뒤에 북을 쳐 군사를 나아가게 하기를 청한다.」 우사마가 말하였다. 「임금께서 송나라 백성을 아끼지 않으시고 배와 심장이 온전하지 않게 하시며 다만 의를 하실 뿐입니다.」 공이 말하였다. 「대열로 돌아가지 않으면 법을 행하겠다.」 우사마가 대열로 돌아갔고 초나라 사람이 이미 줄을 이루어 진을 갖추자 공이 이에 북을 쳤다. 송나라 사람이 크게 패하고 공은 넓적다리를 다쳐 사흘 만에 죽었다. 이는 곧 스스로 어짊과 의를 몸소 하기를 사모한 화다. 무릇 반드시 임금이 몸소 친히 한 뒤에야 백성이 듣고 따른다면, 이는 장차 임금으로 하여금 밭 갈아 먹고 갑옷 입고 기러기 떼처럼 줄지어 싸우게 한 뒤에야 백성이 즐겨 밭 갈고 싸우게 하는 것이니, 임금이 너무 위태롭지 않은가. 그리고 신하는 너무 편안하지 않은가.
齊景公遊少海,傳騎從中來謁曰:「嬰疾甚,且死,恐公後之。」景公遽起,傳騎又至。景公曰:「趨駕煩且之乘,使騶子韓樞御之。」行數百步,以騶爲不疾,奪轡代之御;可數百步,以馬爲不進,盡釋車而走。以煩且之良而騶子韓樞之巧,而以爲不如下走也。
제나라 경공이 소해에 노닐 때 역참 기병이 안에서 와 아뢰었다. 「안영의 병이 심하여 죽게 되었으니 공께서 늦으실까 두렵습니다.」 경공이 급히 일어나는데 역참 기병이 또 이르렀다. 경공이 말하였다. 「급히 번차의 수레를 메우고 마부 한추에게 몰게 하라.」 몇백 걸음을 가서 마부가 빠르지 않다 여겨 고삐를 빼앗아 대신 몰았고, 몇백 걸음쯤 가서 말이 나아가지 않는다 여겨 수레를 다 놓고 달렸다. 번차 같은 좋은 말과 마부 한추의 교묘함으로도 제가 달리는 것만 못하다 여긴 것이다.
魏昭王欲與官事,謂孟嘗君曰:「寡人欲與官事。」君曰:「王欲與官事,則何不試習讀法?」昭王讀法十餘簡而睡臥矣。王曰:「寡人不能讀此法。」夫不躬親其勢柄,而欲爲人臣所宜爲者也,睡不亦宜乎?
위나라 소왕이 관청 일에 참여하려 하여 맹상군에게 말하였다. 「과인이 관청 일에 참여하고자 한다.」 맹상군이 말하였다. 「왕께서 관청 일에 참여하시려면 어찌 시험 삼아 법을 읽어 익히지 않으십니까?」 소왕이 법을 열 몇 쪽 읽고는 졸며 누웠다. 왕이 말하였다. 「과인은 이 법을 읽을 수 없다.」 무릇 그 세와 자루를 몸소 잡지 않고 신하가 마땅히 할 바를 하려 하였으니 조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孔子曰:「爲人君者猶盂也,民猶水也。盂方水方,盂圜水圜。」
공자가 말하였다. 「임금 된 이는 사발과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사발이 모나면 물이 모나고 사발이 둥글면 물이 둥글다.」
鄒君好服長纓,左右皆服長纓,纓甚貴。鄒君患之,問左右,左右曰:「君好服,百姓亦多服,是以貴。」君因先自斷其纓而出,國中皆不服長纓。君不能下令爲百姓服度以禁之,斷纓出以示先民,是先戮以蒞民也。
추나라 임금이 긴 갓끈을 좋아하니 좌우가 다 긴 갓끈을 하여 갓끈이 몹시 귀해졌다. 추나라 임금이 근심하여 좌우에게 물으니 좌우가 말하였다. 「임금께서 좋아하시니 백성도 많이 하여 이 때문에 귀합니다.」 임금이 이에 먼저 스스로 그 갓끈을 끊고 나가니 나라 안이 다 긴 갓끈을 하지 않았다. 임금이 영을 내려 백성을 위해 옷의 법도를 정하여 금하지 못하고, 갓끈을 끊고 나가 백성에게 먼저 보였으니 이는 먼저 스스로를 욕보여 백성에게 임한 것이다.
叔向賦獵,功多者受多,功少者受少。
숙향이 사냥한 것을 나눌 때 공이 많은 이는 많이 받고 공이 적은 이는 적게 받았다.
韓昭侯謂申子曰:「法度甚不易行也。」申子曰:「法者,見功而與賞,因能而受官。今君設法度而聽左右之請,此所以難行也。」昭侯曰:「吾自今以來知行法矣,寡人奚聽矣。」一日,申子請仕其從兄官。昭侯曰:「非所斈於子也。聽子之謁,敗子之道乎,亡其用子之謁?」申子辟舍請罪。
한나라 소후가 신자에게 말하였다. 「법도는 매우 행하기 쉽지 않다.」 신자가 말하였다. 「법이란 공을 보고 상을 주며 능함을 따라 벼슬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임금께서 법도를 베푸시고도 좌우의 청을 들으시니 이것이 행하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소후가 말하였다. 「내가 이제부터 법 행함을 알겠다. 과인이 무엇을 듣겠는가.」 하루는 신자가 제 사촌 형의 벼슬을 청하였다. 소후가 말하였다. 「그대에게서 배운 바가 아니다. 그대의 청을 들어 그대의 도를 무너뜨릴까, 아니면 그대의 청을 버릴까?」 신자가 집을 비우고 죄를 청하였다.
六。晉文公攻原,裹十日糧,遂與大夫期十日。至原十日而原不下,撃金而退,罷兵而去。士有從原中出者,曰:「原三日即下矣。」羣臣左右諫曰:「夫原之食竭力盡矣,君姑待之。」公曰:「吾與士期十日,不去,是亡吾信也。得原失信,吾不爲也。」遂罷兵而去。原人聞曰:「有君如彼其信也,可無歸乎?」乃降公。衛人聞曰:「有君如彼其信也,可無從乎?」乃降公。孔子聞而記之曰:「攻原得衛者,信也。」
여섯. 진나라 문공이 원을 치며 열흘 양식을 싸고 마침내 대부들과 열흘을 기약하였다. 원에 이르러 열흘이 되어도 원이 항복하지 않으니 징을 쳐 물러나며 군사를 파하고 떠나려 하였다. 군사 가운데 원 안에서 나온 이가 있어 말하였다. 「원은 사흘이면 곧 항복합니다.」 뭇 신하와 좌우가 간하였다. 「무릇 원은 먹을 것이 다하고 힘이 다하였으니 임금께서는 잠시 기다리십시오.」 공이 말하였다. 「내가 군사와 열흘을 기약하였으니 떠나지 않으면 이는 내 믿음을 잃는 것이다. 원을 얻고 믿음을 잃음을 나는 하지 않는다.」 마침내 군사를 파하고 떠났다. 원 사람이 듣고 말하였다. 「임금이 저처럼 미더우니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공에게 항복하였다. 위나라 사람이 듣고 말하였다. 「임금이 저처럼 미더우니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공에게 항복하였다. 공자가 듣고 적어 두었다. 「원을 치고 위나라를 얻은 것은 믿음이다.」
文公問箕鄭曰:「救餓奈何?」對曰:「信。」公曰:「安信?」曰:「信名,信事,信義。信名,則羣臣守職,善惡不踰,百事不怠;信事,則不失天時,百姓不踰;信義,則近親觀勉而遠者歸之矣。」
문공이 기정에게 물었다. 「굶주림을 구함은 어찌하는가?」 대답하였다. 「믿음입니다.」 공이 말하였다. 「어디에 믿음을 두는가?」 말하였다. 「이름에 미덥고 일에 미덥고 의에 미더워야 합니다. 이름에 미더우면 뭇 신하가 직분을 지켜 착하고 악함이 넘지 않고 온갖 일이 게으르지 않으며, 일에 미더우면 하늘의 때를 잃지 않아 백성이 넘지 않고, 의에 미더우면 가까운 친척이 보고 힘쓰며 먼 이가 돌아옵니다.」
吳起出,遇故人而止之食。故人曰:「諾,今返而御。」吳子曰:「待公而食。」故人至暮不來,起不食待之。明日早,令人求故人。故人來,方與之食。
오기가 나갔다가 옛 벗을 만나 붙잡아 밥을 먹으려 하였다. 옛 벗이 말하였다. 「그리하겠소. 이제 돌아왔다가 오리다.」 오자가 말하였다. 「공을 기다려 먹겠소.」 옛 벗이 저물도록 오지 않으니 오기는 먹지 않고 기다렸다. 이튿날 아침 사람을 시켜 옛 벗을 찾게 하였다. 옛 벗이 오자 그제야 함께 먹었다.
魏文侯與虞人期獵。明日,會天疾風,左右止文侯,不聽,曰:「不可以風疾之故而失信,吾不爲也。」遂自驅車往,犯風而罷虞人。
위나라 문후가 사냥터지기와 사냥을 기약하였다. 이튿날 마침 세찬 바람이 부니 좌우가 문후를 말렸으나 듣지 않고 말하였다. 「바람이 세다는 까닭으로 믿음을 잃을 수는 없다. 나는 그리하지 않는다.」 마침내 몸소 수레를 몰아 가서 바람을 무릅쓰고 사냥터지기를 물러나게 하였다.
曾子之妻之市,其子隨之而泣。其母曰:「女還,顧反爲女殺彘。」適市來,曾子欲捕彘殺之。妻止之曰:「特與嬰兒戲耳。」曾子曰:「嬰兒非與戲也。嬰兒非有知也,待父母而學者也,聽父母之教。今子欺之,是教子欺也。母欺子,子而不信其母,非以成教也。」遂烹彘也。
증자의 아내가 저자에 가는데 그 아들이 따라오며 울었다. 그 어미가 말하였다. 「너는 돌아가라. 돌아와서 너를 위해 돼지를 잡아 주겠다.」 저자에서 돌아오니 증자가 돼지를 잡으려 하였다. 아내가 말리며 말하였다. 「다만 아기와 놀았을 뿐입니다.」 증자가 말하였다. 「아기와는 놀 것이 아니오. 아기는 아는 것이 없어 부모를 기대어 배우고 부모의 가르침을 듣소. 이제 그대가 속이면 이는 자식에게 속임을 가르치는 것이오. 어미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이 그 어미를 믿지 않으니 가르침을 이루는 길이 아니오.」 마침내 돼지를 삶았다.
楚厲王有警,爲鼓以與百姓爲戍。飲酒醉,過而撃之也,民大驚。使人止之,曰:「吾醉而與左右戲,過撃之也。」民皆罷。居數月,有警,撃鼓而民不赴。乃更令明號而民信之。
초나라 여왕이 경보가 있으면 북을 만들어 백성과 함께 지키기로 하였다. 술을 마시고 취하여 잘못 북을 치니 백성이 크게 놀랐다. 사람을 시켜 그치게 하며 말하였다. 「내가 취하여 좌우와 놀다가 잘못 쳤다.」 백성이 다 물러갔다. 몇 달 뒤 경보가 있어 북을 쳤으나 백성이 달려오지 않았다. 이에 영을 고쳐 신호를 밝힌 뒤에야 백성이 믿었다.
李悝警其兩和,曰:「謹警敵人,旦暮且至撃汝。」如是者再三而敵不至。兩和懈怠,不信李悝。居數月,秦人求襲之,至幾奪其軍。此不信患也。
이회가 좌우 두 진을 경계하여 말하였다. 「삼가 적을 경계하라. 아침저녁으로 이르러 너희를 칠 것이다.」 이러기를 두세 번 하였으나 적이 오지 않았다. 두 진이 게을러져 이회를 믿지 않았다. 몇 달 뒤 진나라 사람이 엄습하려 하여 이르니 거의 그 군사를 빼앗길 뻔하였다. 이것이 미덥지 않음의 근심이다.
一曰:李悝與秦人戰,謂左和曰:「速上!右和已上矣。」又馳而至右和曰:「左和已上矣。」左右和曰:「上矣。」於是皆爭上。其明年,與秦人戰。秦人襲之,至幾奪其車。此不信之患。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이회가 진나라 사람과 싸울 때 왼쪽 진에 말하였다. 「빨리 오르라! 오른쪽 진이 이미 올랐다.」 또 달려 오른쪽 진에 이르러 말하였다. 「왼쪽 진이 이미 올랐다.」 왼쪽과 오른쪽 진이 말하였다. 「올랐구나.」 이에 다 다투어 올랐다. 그 이듬해 진나라 사람과 싸웠는데 진나라 사람이 엄습하여 거의 그 수레를 빼앗길 뻔하였다. 이것이 미덥지 않음의 근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