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難二

한비자 韓非子 · 한비(韓非)와 후학 · 기원전 3세기 · 단락 15 · 한자 2,740자 · 낭독 11.0분

「한비자」 난이 「難二」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법가가 한자리에 모인 책이다. 상앙의 법(法)과 신불해의 술(術)과 신도의 세(勢)를 한비가 받아 하나로 엮었다. 사람은 착해서 착한 것이 아니라 그름을 할 수 없어 착하다고 보고, 임금이 기댈 것은 어짊이 아니라 법과 술과 세라고 말한다. 모순(矛盾)이 여기서 나왔다. 뚫지 못할 방패와 뚫지 못함이 없는 창을 함께 파는 초나라 사람 이야기로 요와 순을 함께 기릴 수 없음을 보였고, 난세에서 다시 한 번 어짊과 세를 두고 같은 비유를 든다.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 송나라 사람(수주대토)과 발이 두 번 잘리고서야 옥으로 인정받은 화씨의 벽옥도 이 책의 이야기다. 말하기의 어려움을 다룬 세난(說難)에는 용의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 이야기가 있다. 임금에게도 그런 비늘이 있어 건드리면 죽는다는 것인데, 정작 한비 자신이 진나라에서 옥에 갇혀 죽었다. 존한(存韓)에는 한비가 진왕에게 올린 글과, 그 바로 뒤에 이사가 「한비는 한나라를 위해 온 자이니 돌려보내지 말라」고 올린 글이 나란히 실려 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몬 문서가 그 사람의 책에 함께 남았다.

景公過晏子,曰:「子宮小,近市,請徙子家豫章之圃。」晏子再拜而辭曰:「且嬰家貧,待市食,而朝暮趨之,不可以遠。」景公笑曰:「子家習市,識貴賤乎?」是時景公繁於刑。晏子對曰:「踴貴而屨賤。」景公曰:「何故?」對曰:「刑多也。」景公造然變色曰:「寡人其暴乎!」於是損刑五。

경공이 안자에게 들러 말하였다. 「그대의 집이 작고 저자에 가까우니 그대의 집을 예장의 남새밭으로 옮기기를 청한다.」 안자가 두 번 절하고 사양하였다. 「제 집이 가난하여 저자에 기대어 먹으며 아침저녁으로 그리로 달려가니 멀리할 수 없습니다.」 경공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의 집이 저자에 익숙하니 값이 비싸고 싼 것을 아는가?」 이때 경공이 형벌을 번거로이 하였다. 안자가 대답하였다. 「의족이 비싸고 신이 쌉니다.」 경공이 말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대답하였다. 「형벌이 많아서입니다.」 경공이 낯빛을 고치며 말하였다. 「과인이 사나웠구나!」 이에 형벌 다섯을 덜었다.

或曰:晏子之貴踴,非其誠也,欲便辭以止多刑也。此不察治之患也。夫刑當無多,不當無少。無以不當聞,而以太多說,無術之患也。敗軍之誅以千百數,猶北不止;即治亂之刑如恐不勝,而姦尚不盡。今晏子不察其當否,而以太多爲說,不亦妄乎?夫惜草茅者耗禾穗,惠盜賊者傷良民。今緩刑罰,行寛惠,是利姦邪而害善人也,此非所以爲治也。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안자가 의족이 비싸다 함은 참됨이 아니라 편한 말로 많은 형벌을 그치게 하려 함이다. 이는 다스림을 살피지 못한 근심이다. 무릇 형벌은 마땅하면 많음이 없고 마땅하지 않으면 적음이 없다. 마땅하지 않음으로 아뢰지 않고 너무 많음으로 말함은 술 없는 근심이다. 패한 군사를 벰이 천이요 백으로 헤아려져도 오히려 달아남이 그치지 않고, 곧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형벌이 이기지 못할까 두려운데도 간사함이 오히려 다하지 않는다. 이제 안자가 그 마땅한지 아닌지를 살피지 않고 너무 많음으로 말하니 또한 망령되지 않은가. 무릇 잡초를 아끼는 이는 벼 이삭을 축내고 도적을 은혜롭게 하는 이는 좋은 백성을 상하게 한다. 이제 형벌을 늦추고 너그러운 은혜를 행함은 간사하고 사악한 이를 이롭게 하고 착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니 다스림이 되는 길이 아니다.

齊桓公飲酒醉,遺其冠,恥之,三日不朝。管仲曰:「此有國之恥也,公胡其不雪之以政?」公曰:「胡其善!」因發倉囷賜貧窮,論囹圄出薄罪。處三日而民歌之曰:「公胡不復遺冠乎!」

제나라 환공이 술을 마시고 취하여 그 관을 잃고 부끄러워 사흘을 조회하지 않았다. 관중이 말하였다. 「이는 나라를 가진 이의 부끄러움입니다. 공께서는 어찌 정사로 씻지 않으십니까?」 공이 말하였다. 「좋구나!」 이에 곳간을 열어 가난하고 궁한 이에게 내리고 옥사를 살펴 가벼운 죄를 내보냈다. 사흘이 지나 백성이 노래하였다. 「공께서는 어찌 다시 관을 잃지 않으시는가!」

或曰:管仲雪桓公之恥於小人,而生桓公之恥於君子矣。使桓公發倉囷而賜貧窮,論囹圄而出薄罪,非義也,不可以雪恥;使之而義也,桓公宿義,須遺冠而後行之,則是桓公行義非爲遺冠也?是雖雪遺冠之恥於小人,而亦生遺義之恥於君子矣。且夫發囷倉而賜貧窮者,是賞無功也;論囹圄而出薄罪者,是不誅過也。夫賞無功,則民偷幸而望於上;不誅過,則民不懲而易爲非。此亂之本也,安可以雪恥哉?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관중은 환공의 부끄러움을 소인에게 씻어 주고 환공의 부끄러움을 군자에게 낳았다. 환공에게 곳간을 열어 가난하고 궁한 이에게 내리고 옥사를 살펴 가벼운 죄를 내보내게 함이 의가 아니라면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고, 그리함이 의라면 환공이 의를 묵혀 두었다가 관을 잃은 뒤에 행한 것이니 이는 환공이 의를 행함이 관을 잃음 때문이 아닌가. 이는 비록 관 잃은 부끄러움을 소인에게 씻었으나 또한 의를 버려 둔 부끄러움을 군자에게 낳은 것이다. 또 무릇 곳간을 열어 가난하고 궁한 이에게 내림은 공 없는 이에게 상 줌이요, 옥사를 살펴 가벼운 죄를 내보냄은 허물을 베지 않음이다. 무릇 공 없는 이에게 상 주면 백성이 요행을 훔쳐 위에 바라고, 허물을 베지 않으면 백성이 징계되지 않아 쉬이 그름을 한다. 이는 어지러움의 근본이니 어찌 부끄러움을 씻겠는가.

昔者文王侵盂、克莒、舉酆,三舉事而紂惡之。文王乃懼,請入洛西之地、赤壤之國方千里,以請解炮烙之刑。天下皆說。仲尼聞之,曰:「仁哉,文王!輕千里之國而請解炮烙之刑。智哉,文王!出千里之地而得天下之心。」

옛날 문왕이 우를 침노하고 거를 이기며 풍을 들었는데, 세 번 일을 들자 주가 미워하였다. 문왕이 이에 두려워 낙수 서쪽 땅과 붉은 흙의 나라 사방 천 리를 들이고 포락의 형벌을 풀기를 청하였다. 천하가 다 기뻐하였다. 중니가 듣고 말하였다. 「어질구나, 문왕이여! 천 리 나라를 가벼이 여기고 포락의 형벌 풀기를 청하였다. 슬기롭구나, 문왕이여! 천 리 땅을 내고 천하의 마음을 얻었다.」

或曰:仲尼以文王爲智也,不亦過乎?夫智者,知禍難之地而辟之者也,是以身不及於患也。使文王所以見惡於紂者,以其不得人心耶,則雖索人心以解惡可也。紂以其大得人心而惡之,己又輕地以收人心,是重見疑也,固其所以桎梏、囚於羑里也。鄭長者有言:「體道,無爲無見也。」此最宜於文王矣,不使人疑之也。仲尼以文王爲智,未及此論也。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중니가 문왕을 슬기롭다 함은 또한 지나치지 않은가. 무릇 슬기로운 이는 화와 어려움의 자리를 알아 피하는 이라 이 때문에 몸이 근심에 미치지 않는다. 문왕이 주에게 미움받은 까닭이 사람 마음을 얻지 못해서라면 비록 사람 마음을 찾아 미움을 푸는 것도 좋다. 주가 그가 사람 마음을 크게 얻었기 때문에 미워하였는데, 저가 또 땅을 가벼이 하여 사람 마음을 거두었으니 이는 의심을 거듭 받은 것이라 본디 차꼬를 차고 유리에 갇힌 까닭이다. 정나라 장자가 말하였다. 「도를 몸 삼아 함이 없고 드러남이 없다.」 이것이 문왕에게 가장 마땅하니 사람이 그를 의심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중니가 문왕을 슬기롭다 함은 이 논에 미치지 못하였다.

晉平公問叔向曰:「昔者齊桓公九合諸侯,一匡天下,不識臣之力也,君之力也?」叔向對曰:「管仲善制割,賔胥無善削縫,隰朋善純緣,衣成,君舉而服之。亦臣之力也,君何力之有?」師曠伏琴而笑之。公曰:「太師奚笑也?」師曠對曰:「臣笑叔向之對君也。凡爲人臣者,猶炮宰和五味而進之君。君弗食,孰敢强之也?臣請譬之:君者壤地也,臣者草木也。必壤地美,然後草木碩大。亦君之力也,臣何力之有?」

진나라 평공이 숙향에게 물었다. 「옛날 제나라 환공이 아홉 번 제후를 모으고 한 번 천하를 바로잡았는데, 신하의 힘인지 임금의 힘인지 알지 못하겠다.」 숙향이 대답하였다. 「관중이 마름질을 잘하고 빈서무가 자르고 꿰매기를 잘하며 습붕이 가장자리 두르기를 잘하여 옷이 이루어지니, 임금은 들어 입었을 뿐입니다. 또한 신하의 힘이니 임금에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사광이 거문고에 엎드려 웃었다. 공이 말하였다. 「태사는 어찌 웃는가?」 사광이 대답하였다. 「신은 숙향이 임금께 대답한 것을 웃습니다. 무릇 남의 신하 된 이는 요리사가 다섯 맛을 고르게 하여 임금에게 올림과 같습니다. 임금이 드시지 않으면 누가 감히 억지로 하겠습니까. 신이 비유하기를 청합니다. 임금은 땅이요 신하는 풀과 나무입니다. 반드시 땅이 아름다운 뒤에야 풀과 나무가 크게 자랍니다. 또한 임금의 힘이니 신하에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或曰:叔向、師曠之對,皆偏辭也。夫一匡天下,九合諸侯,美之大者也,非專君之力也,又非專臣之力也。昔者宮之奇在虞,僖負羈在曹,二臣之智,言中事,發中功,虞、曹俱亡者,何也?此有其臣而無其君者也。且蹇叔處干而干亡,處秦而秦霸,非蹇叔愚於干而智於秦也,此有君與無君也。向曰「臣之力也」,不然矣。昔者桓公宮中二市,婦閭二百,披髪而御婦人。得管仲,爲五伯長;失管仲、得竪刁而身死,蟲流出户不葬。以爲非臣之力也,且不以管仲爲霸;以爲君之力屯,且不以竪刁爲亂。昔者晉文公慕於齊女而亡歸,咎犯極諫,故使反晉國。故桓公以管仲合,文公以舅犯霸,而師曠曰「君之力也」,又不然矣。凡五霸所以能成功名於天下者,必君臣俱有力焉。故曰:叔向、師曠之對,皆偏辭也。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숙향과 사광의 대답은 다 치우친 말이다. 무릇 한 번 천하를 바로잡고 아홉 번 제후를 모음은 아름다움의 큰 것이니 오로지 임금의 힘도 아니요 또 오로지 신하의 힘도 아니다. 옛날 궁지기가 우나라에 있고 희부기가 조나라에 있어 두 신하의 슬기가 말이 일에 맞고 발하면 공에 맞았는데 우나라와 조나라가 다 망함은 어째서인가. 이는 그 신하는 있고 그 임금은 없어서다. 또 건숙이 간나라에 있을 때 간나라가 망하고 진(秦)나라에 있을 때 진(秦)나라가 패자가 되었으니, 건숙이 간나라에서는 어리석고 진(秦)나라에서는 슬기로워서가 아니라 임금이 있고 없음이다. 숙향이 「신하의 힘이다」 함은 그렇지 않다. 옛날 환공은 궁 안에 저자가 둘이요 여자 골목이 이백이며 머리를 풀고 부인을 데리고 있었다. 관중을 얻어 다섯 패자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관중을 잃고 수조를 얻어 몸이 죽어 구더기가 문밖으로 흐르도록 장사되지 못하였다. 신하의 힘이 아니라 하면 관중으로 패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요, 임금의 힘이라 하면 수조로 어지러워진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옛날 진(晉)나라 문공이 제나라 여자를 사모하여 돌아가기를 잊었는데 구범이 끝까지 간하였으므로 진(晉)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환공은 관중으로 모았고 문공은 구범으로 패자가 되었는데, 사광이 「임금의 힘이다」 함은 또 그렇지 않다. 무릇 다섯 패자가 천하에 공과 이름을 이룰 수 있었던 까닭은 반드시 임금과 신하에게 다 힘이 있어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숙향과 사광의 대답은 다 치우친 말이다 한다.

齊桓公之時,晉客至,有司請禮。桓公曰「告仲父」者三。而優笑曰:「易哉,爲君!一曰仲父,二曰仲父。」桓公曰:「吾聞君人者勞於索人,佚於使人。吾得仲父已難矣,得仲父之後,何爲不易乎哉?」

제나라 환공 때에 진나라 손님이 이르니 유사가 예를 청하였다. 환공이 「중보에게 알리라」 하기를 세 번 하였다. 광대가 웃으며 말하였다. 「쉽구나, 임금 노릇 하기가! 한 번도 중보요 두 번도 중보다.」 환공이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남의 위에 선 이는 사람 찾기에 수고롭고 사람 부리기에 편하다 한다. 내가 중보를 얻기가 이미 어려웠으니 중보를 얻은 뒤에 어찌 쉽지 않겠는가.」

或曰:桓公之所應優,非君人者之言也。桓公以君人爲勞於索人,何索人爲勞哉?伊尹自以爲宰干湯,百里奚自以爲虜干穆公。虜,所辱也;宰,所羞也。蒙羞辱而接君上,賢者之憂世急也。然則君人者無逆賢而已矣,索賢不爲人主難。且官職,所以任賢也;爵祿,所以賞功也。設官職,陳爵祿,而士自至,君人者奚其勞哉?使人又非所佚也。人主雖使人,必以度量凖之,以刑名參之;以事遇於法則行,不遇於法則止;功當其言則賞,不當則誅。以刑名收臣,以度量凖下,此不可釋也,君人者焉佚哉?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환공이 광대에게 응한 말은 남의 위에 선 이의 말이 아니다. 환공이 임금 노릇 함을 사람 찾기에 수고롭다 여겼는데 어찌 사람 찾음이 수고롭겠는가. 이윤은 스스로 요리사가 되어 탕에게 나아갔고 백리해는 스스로 종이 되어 목공에게 나아갔다. 종은 욕된 바요 요리사는 부끄러운 바인데, 부끄러움과 욕됨을 무릅쓰고 임금을 만남은 어진 이가 세상을 근심함이 급해서다. 그러면 남의 위에 선 이는 어진 이를 거스르지 않을 뿐이니, 어진 이를 찾음은 임금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벼슬과 직임은 어진 이를 맡기는 것이요 작위와 녹은 공에 상 주는 것이다. 벼슬과 직임을 베풀고 작위와 녹을 벌여 두면 선비가 스스로 이르니 남의 위에 선 이가 무엇을 수고롭겠는가. 사람 부림도 또한 편한 바가 아니다. 임금이 비록 사람을 부려도 반드시 도량으로 재고 꼴과 이름으로 맞대어 보아, 일이 법에 맞으면 행하고 법에 맞지 않으면 그치며, 공이 그 말에 맞으면 상 주고 맞지 않으면 벤다. 꼴과 이름으로 신하를 거두고 도량으로 아래를 재니 이는 놓을 수 없다. 남의 위에 선 이가 어찌 편하겠는가.

索人不勞,使人不佚,而桓公曰「勞於索人,佚於使人」者,不然。且桓公得管仲又不難。管仲不死其君而歸桓公,鮑叔輕官讓能而任之,桓公得管仲又不難,明矣。已得管仲之後,奚遽易哉?管仲非周公旦。周公旦假爲天子七年,成王壯,授之以政,非爲天下計也,爲其職也。夫不奪子而行天下者,必不背死君而事其讎;背死君而事其讎者,必不難奪子而行天下;不難奪子而行天下者,必不難奪其君國矣。管仲,公子糾之臣也,謀殺桓公而不能,其君死而臣桓公,管仲之取舍非周公旦,可知也。若使管仲大賢也,且爲湯、武。湯、武,桀、紂之臣也;桀、紂作亂,湯、武奪之。今桓公以易居其上,是以桀、紂之行居湯、武之上,桓公危矣。若使管仲不肖人也,且爲田常。田常,簡公之臣也,而弑其君。今桓公以易居其上,是以簡公之易居田常之上也,桓公又危矣。管仲非周公旦以明矣,然爲湯、武與田常,未可知也。爲湯、武,有桀、紂之危;爲田、常,有簡公之亂也。已得仲父之後,桓公奚遽易哉?若使桓公之任管仲,必知不欺己也,是知不欺主之臣也。然雖知不欺主之臣,今桓公以任管仲之專借竪刁、易牙,蟲流出户而不葬,桓公不知臣欺主與不欺主已明矣,而任臣如彼其專也,故曰:桓公闇主。

사람 찾음이 수고롭지 않고 사람 부림이 편하지 않은데 환공이 「사람 찾기에 수고롭고 사람 부리기에 편하다」 함은 그렇지 않다. 또 환공이 관중을 얻음도 어렵지 않았다. 관중이 제 임금을 위해 죽지 않고 환공에게 돌아왔고 포숙이 벼슬을 가벼이 여기고 능한 이에게 사양하여 맡겼으니, 환공이 관중을 얻음이 또한 어렵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이미 관중을 얻은 뒤에 어찌 문득 쉽겠는가. 관중은 주공 단이 아니다. 주공 단은 일곱 해 천자 노릇을 대신하다가 성왕이 자라자 정사를 주었으니, 천하를 위한 셈이 아니라 그 직분이었다. 무릇 아들에게서 빼앗지 않고 천하를 행한 이는 반드시 죽은 임금을 등지고 그 원수를 섬기지 않으며, 죽은 임금을 등지고 그 원수를 섬긴 이는 반드시 아들에게서 빼앗아 천하를 행하기를 어려워하지 않고, 아들에게서 빼앗아 천하를 행하기를 어려워하지 않는 이는 반드시 그 임금의 나라를 빼앗기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관중은 공자 규의 신하로 환공 죽이기를 꾀하다 이루지 못하였고, 그 임금이 죽자 환공에게 신하 노릇 하였으니 관중의 취하고 버림이 주공 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약 관중이 크게 어진 이라면 장차 탕과 무왕이 될 것이다. 탕과 무왕은 걸과 주의 신하였는데 걸과 주가 난을 지으매 탕과 무왕이 빼앗았다. 이제 환공이 쉽다며 그 위에 있으니 이는 걸과 주의 행실로 탕과 무왕의 위에 있는 것이라 환공이 위태롭다. 만약 관중이 못난 사람이라면 장차 전상이 될 것이다. 전상은 간공의 신하인데 그 임금을 죽였다. 이제 환공이 쉽다며 그 위에 있으니 이는 간공의 쉬움으로 전상의 위에 있는 것이라 환공이 또 위태롭다. 관중이 주공 단이 아님은 밝은데, 탕과 무왕이 될지 전상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탕과 무왕이 되면 걸과 주의 위태로움이 있고 전상이 되면 간공의 어지러움이 있다. 이미 중보를 얻은 뒤에 환공이 어찌 문득 쉽겠는가. 만약 환공이 관중에게 맡김이 반드시 저를 속이지 않을 줄 알아서라면 이는 임금을 속이지 않는 신하를 아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임금을 속이지 않는 신하를 알았어도, 이제 환공이 관중에게 맡긴 것처럼 오로지 수조와 역아에게 빌려 주어 구더기가 문밖으로 흐르도록 장사되지 못하였으니, 환공이 신하가 임금을 속이는지 속이지 않는지 알지 못하였음이 이미 분명한데도 신하에게 맡기기를 저처럼 오로지하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환공은 어두운 임금이라 한다.

李克治中山,苦陘令上計而入多。李克曰:「語言辨,聽之說,不度於義,謂之窕言。無山林澤谷之利而入多者,謂之窕貨。君子不聽窕言,不受窕貨。子姑免矣。」

이극이 중산을 다스릴 때 고형의 현령이 회계를 올렸는데 들어온 것이 많았다. 이극이 말하였다. 「말이 말솜씨 있어 듣기에 기쁘나 의로 재지 않은 것을 넘치는 말이라 한다. 산림과 못과 골짜기의 이로움이 없는데 들어온 것이 많은 것을 넘치는 재화라 한다. 군자는 넘치는 말을 듣지 않고 넘치는 재화를 받지 않는다. 그대는 잠시 물러가라.」

或曰:李子設辭曰:「夫言語辨,聽之說,不度於義者,謂之窕言。」辯在言者,說在聽者,言非聽者也。所謂不度於義,非謂聽者,必謂所聽也。聽者,非小人則君子也。小人無義,必不能度之義也;君子度之義,必不肯說也。夫曰「言語辯,聽之說,不度於義」者,必不誠之言也。入多之爲窕貨也,未可遠行也。李子之姦弗蚤禁,使至於計,是遂過也。無術以知而入多,入多者,穰也,雖倍入,將奈何?舉事慎陰陽之和,種樹節四時之適,無早晚之失、寒温之災,則入多。不以小功妨大務,不以私欲害人事,丈夫盡於耕農,婦人力於織紝,則入多。務於畜養之理,察於土地之宜,六畜遂,五穀殖,則入多。明於權計,審於地形、舟車、機械之利,用力少,致功大,則入多。利商市關梁之行,能以所有致所無,客商歸之,外貨留之,儉於財用,節於衣食,宮室器械周於資用,不事玩好,則入多。入多,皆人爲也。若天事,風雨時,寒温適,土地不加大,而有豐年之功,則入多。人事、天功二物者皆入多,非山林澤谷之利也。夫無山林澤谷之利入多,因謂之窕貨者,無術之言也。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이자가 말을 베풀어 「무릇 말이 말솜씨 있어 듣기에 기쁘나 의로 재지 않은 것을 넘치는 말이라 한다」 하였다. 말솜씨는 말하는 이에게 있고 기쁨은 듣는 이에게 있으니 말은 듣는 이가 아니다. 이른바 의로 재지 않음은 듣는 이를 이름이 아니라 반드시 들리는 바를 이름이다. 듣는 이는 소인이 아니면 군자다. 소인은 의가 없으니 반드시 의로 잴 수 없고, 군자는 의로 재니 반드시 기뻐하려 하지 않는다. 무릇 「말이 말솜씨 있어 듣기에 기쁘나 의로 재지 않는다」 함은 반드시 참되지 않은 말이다. 들어온 것이 많음을 넘치는 재화라 함은 멀리 밀고 갈 수 없다. 이자가 그 간사함을 일찍 금하지 않고 회계에 이르게 하였으니 이는 허물을 이룬 것이다. 술 없이 알면서 들어온 것이 많다 하나, 들어온 것이 많음은 풍년이니 비록 갑절이 들어온들 장차 어찌하겠는가. 일을 듦에 음양의 화함을 삼가고 심고 기름에 사철의 맞음을 절제하여 이르고 늦음의 그르침과 춥고 더움의 재앙이 없으면 들어옴이 많다. 작은 공으로 큰 일을 방해하지 않고 사사로운 바람으로 남의 일을 해치지 않아 사내가 밭 갈기에 다하고 아낙이 길쌈에 힘쓰면 들어옴이 많다. 기르는 이치에 힘쓰고 땅의 마땅함을 살펴 여섯 짐승이 잘되고 오곡이 자라면 들어옴이 많다. 저울질과 셈에 밝고 지형과 배와 수레와 기계의 이로움을 살펴 힘을 적게 쓰고 공을 크게 이루면 들어옴이 많다. 저자와 관문과 다리의 다님을 이롭게 하여 있는 것으로 없는 것을 오게 하고 객상이 돌아오며 밖의 재화가 머물게 하고, 재물 씀에 검소하고 옷과 밥에 절제하며 궁실과 기계가 쓰임에 두루 하고 노리개를 일삼지 않으면 들어옴이 많다. 들어옴이 많음은 다 사람이 한 것이다. 하늘의 일로 말하면 바람과 비가 때맞고 춥고 더움이 알맞아 땅이 더 커지지 않고도 풍년의 공이 있으면 들어옴이 많다. 사람의 일과 하늘의 공 두 가지가 다 들어옴을 많게 하니 산림과 못과 골짜기의 이로움이 아니다. 무릇 산림과 못과 골짜기의 이로움 없이 들어옴이 많다 하여 이를 넘치는 재화라 함은 술 없는 말이다.

趙簡子圍衛之郛郭,犀楯、犀櫓,立於矢石之所不及,鼓之而士不起。簡子投枹曰:「烏乎!吾之士數弊也。」行人燭過免胄而對曰:「臣聞之:亦有君之不能耳,士無弊者。昔者吾先君獻公并國十七,服國三十八,戰十有二勝,是民之用也。獻公沒,惠公即位,淫衍暴亂,身好玉女,秦人恣侵,去絳十七里,亦是人之用也。惠公沒,文公授之,圍衛,取鄴,城濮之戰,五敗荊人,取尊名於天下,亦此人之用也。亦有君不能耳,士無弊也。」簡子乃去楯、櫓,立矢石之所及,鼓之而士乘之,戰大勝。簡子曰:「與吾得革車千乘,不如聞行人燭過之一言也。」

조나라 간자가 위나라 성곽을 에워쌌는데, 무소 가죽 방패와 큰 방패를 두르고 화살과 돌이 미치지 않는 곳에 서서 북을 쳤으나 군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간자가 북채를 던지며 말하였다. 「아아! 우리 군사가 자주 지쳤구나.」 행인 촉과가 투구를 벗고 대답하였다. 「신이 듣기로 다만 임금이 능하지 못함이 있을 뿐 군사가 지침은 없다 합니다. 옛날 우리 선군 헌공이 나라 열일곱을 아우르고 서른여덟 나라를 복종시키며 싸워 열두 번 이겼으니 이는 백성을 쓴 것입니다. 헌공이 죽고 혜공이 즉위하여 넘치고 사나우며 어지러워 몸소 여자를 좋아하니 진나라 사람이 마음대로 침노하여 강에서 십칠 리 되는 데까지 왔는데 이 또한 이 사람들을 쓴 것입니다. 혜공이 죽고 문공이 받아 위나라를 에워싸고 업을 얻으며 성복의 싸움에서 초나라 사람을 다섯 번 깨뜨려 천하에 높은 이름을 얻었으니 이 또한 이 사람들을 쓴 것입니다. 또한 임금이 능하지 못함이 있을 뿐 군사가 지침은 없습니다.」 간자가 이에 방패와 큰 방패를 버리고 화살과 돌이 미치는 데 서서 북을 치니 군사가 올라 싸워 크게 이겼다. 간자가 말하였다. 「내가 혁거 천 승을 얻음이 행인 촉과의 한마디 말을 들음만 못하다.」

或曰:行人未有以說也,乃道惠公以此人是敗,文公以此人是霸,未見所以用人也。簡子未可以速去盾、櫓也。嚴親在圍,輕犯矢石,孝子之所以愛親也。孝子愛親,百數之一也。今以爲身處危而人尚可戰,是以百族之子於上皆若孝子之愛親也,是行人之誣也。好利惡害,夫人之所有也。賞厚而信,人輕敵矣;刑重而必,夫人不北矣。長行徇上,數百不一人;喜利畏罪,人莫不然。將衆者不出乎莫不然之數,而道乎百無一人之行,行人未知用衆之道也。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행인은 말한 바가 있지 않다. 이에 혜공이 이 사람들로 패하고 문공이 이 사람들로 패자가 되었다고 말하였을 뿐 사람 쓰는 까닭은 보이지 않았다. 간자는 방패와 큰 방패를 빨리 버려서는 안 되었다. 엄한 어버이가 에워싸임에 있으면 화살과 돌을 가벼이 무릅씀은 효자가 어버이를 사랑하는 까닭이다. 효자가 어버이를 사랑함은 백에 하나다. 이제 몸이 위태한 데 처하면 사람이 오히려 싸울 수 있다 함은 백 겨레의 자식이 위에 대하여 다 효자가 어버이를 사랑하듯 하리라는 것이니 이는 행인의 속임이다. 이로움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미워함은 무릇 사람에게 있는 바다. 상이 두텁고 미더우면 사람이 적을 가벼이 여기고, 형벌이 무겁고 반드시 행해지면 무릇 사람이 달아나지 않는다. 행실을 길게 하여 위를 위해 죽음은 수백에 한 사람도 없고, 이로움을 기뻐하고 죄를 두려워함은 사람마다 그러하지 않음이 없다. 무리를 거느리는 이가 그러하지 않음이 없는 수를 벗어나 백에 한 사람도 없는 행실을 말하니, 행인은 무리 쓰는 도를 알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