難三
魯穆公問於子思曰:「吾聞龐𥼴氏之子不孝,其行奚如?」子思對曰:「君子尊賢以崇德,舉善以觀民。若夫過行,是細人之所識也,臣不知也。」子思出。子服厲伯入見,問龐𥼴氏子,子服厲伯對曰:「其過三。」皆君之所未嘗聞。自是之後,君貴子思而賤子服厲伯也。
노나라 목공이 자사에게 물었다. 「내가 듣기로 방간씨의 아들이 효도하지 않는다 하는데 그 행실이 어떠한가?」 자사가 대답하였다. 「군자는 어진 이를 높여 덕을 숭상하고 착한 이를 들어 백성에게 보입니다. 저 허물된 행실 같은 것은 잔사람이 아는 바요 신은 알지 못합니다.」 자사가 나갔다. 자복여백이 들어와 뵈니 방간씨의 아들을 물었다. 자복여백이 대답하였다. 「그 허물이 셋입니다.」 다 임금이 일찍이 듣지 못한 것이었다. 이 뒤로 임금이 자사를 귀히 여기고 자복여백을 천히 여겼다.
或曰:魯之公室,三世劫於季氏,不亦宜乎?明君求善而賞之,求姦而誅之,其得之一也。故以善聞之者,以說善同於上者也;以姦聞之者,以惡姦同於上者也,此宜賞譽之所及也。不以姦聞,是異於上而下比周於姦者也,此宜毁罰之所及也。今子思不以過聞而穆公貴之,厲伯以姦聞而穆公賤之。人情皆喜貴而惡賤,故季氏之亂成而不上聞,此魯君之所以劫也。且此亡王之俗,取、魯之民所以自美,而穆公獨貴之,不亦倒乎?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노나라 공실이 세 대에 걸쳐 계씨에게 겁박당함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밝은 임금은 착함을 구해 상 주고 간사함을 구해 베니 그 얻음은 하나다. 그러므로 착함으로 아뢰는 이는 착함을 기뻐하기를 위와 같이하는 이요, 간사함으로 아뢰는 이는 간사함을 미워하기를 위와 같이하는 이니, 이는 마땅히 상과 기림이 미칠 바다. 간사함을 아뢰지 않음은 위와 달리하고 아래로 간사한 이와 무리 짓는 것이니, 이는 마땅히 헐뜯음과 벌이 미칠 바다. 이제 자사가 허물을 아뢰지 않았는데 목공이 귀히 여기고 여백이 간사함을 아뢰었는데 목공이 천히 여겼다. 사람의 정은 다 귀함을 기뻐하고 천함을 미워하므로 계씨의 어지러움이 이루어져도 위에 들리지 않았으니, 이것이 노나라 임금이 겁박당한 까닭이다. 또 이는 망한 왕의 풍속이라 추나라와 노나라 백성이 스스로 아름답게 여기는 바인데 목공이 홀로 귀히 여겼으니 또한 거꾸로 된 것이 아닌가.
文公出亡,獻公使寺人披功之蒲城,披斬其袪,文公奔翟。惠公即位,又使功之惠竇,不得也。及文公反國,披求見。公曰:「蒲城之役,君令一宿,而汝即至;惠竇之難,君令三宿,而汝一宿,何其速也?」披對曰:「君令不二。除君之惡,惟恐不堪。蒲人、翟人,余何有焉?今公即位,其無蒲、翟乎?且桓公置射鈎而相管仲。」君乃見之。
문공이 달아났을 때 헌공이 시인 피를 시켜 포성을 치게 하니 피가 그 소매를 베었고 문공은 적으로 달아났다. 혜공이 즉위하여 또 혜두에서 치게 하였으나 잡지 못하였다. 문공이 나라에 돌아오자 피가 뵙기를 구하였다. 공이 말하였다. 「포성의 싸움에 임금이 하룻밤 뒤라 하였는데 너는 곧 이르렀고, 혜두의 어려움에 임금이 사흘 밤 뒤라 하였는데 너는 하룻밤 만에 왔으니 어찌 그리 빨랐는가?」 피가 대답하였다. 「임금의 명령은 둘이 아닙니다. 임금의 미움을 없앰에 오직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포 사람과 적 사람이 저에게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공께서 즉위하셨으니 포와 적 같은 일이 없겠습니까. 또 환공은 갈고리에 맞은 일을 놓아두고 관중을 재상 삼았습니다.」 임금이 이에 만나 보았다.
或曰:齊、晉絶祀,不亦宜乎?桓公能用管仲之功而忘射鈎之怨,文公能聽寺人之言而弃斬祛之罪,桓公、文公能容二子者也。後世之君,明不及二公;後世之臣,賢不如二子。不忠之臣以事不明之君,君不知,則有燕操、子罕、田常之賊;知之,則以管仲、寺人自解。君必不誅而自以爲有桓、文之德,是臣讎而明不能燭,多假之資,自以爲賢而不戒,則雖無後嗣,不亦可乎?且寺人之言也,直飾君令而不貳者,則是貞於君也。死君復生,臣不愧,而後爲貞。今惠公朝卒而暮事文公,寺人之不貳何如?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제나라와 진나라의 제사가 끊어짐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환공은 관중의 공을 쓰고 갈고리에 맞은 원망을 잊을 수 있었고, 문공은 시인의 말을 듣고 소매 벤 죄를 버릴 수 있었으니, 환공과 문공은 두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들이다. 후세의 임금은 밝음이 두 공에 미치지 못하고 후세의 신하는 어짊이 두 사람만 못하다. 충성되지 않은 신하로 밝지 않은 임금을 섬기는데, 임금이 알지 못하면 연나라 조와 자한과 전상 같은 도적이 있고, 알면 관중과 시인을 끌어 스스로 변명한다. 임금이 반드시 베지 못하고 스스로 환공과 문공의 덕이 있다 여기면, 이는 신하가 원수인데 밝음이 비추지 못하면서 밑천을 많이 빌려 주고 스스로 어질다 여겨 경계하지 않는 것이니, 비록 뒤를 이을 이가 없은들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또 시인의 말은 다만 임금의 명령을 꾸며 둘로 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니, 그러면 이는 임금에게 곧은 것이다. 죽은 임금이 다시 살아나도 신하가 부끄럽지 않아야 그런 뒤에 곧음이 된다. 이제 혜공이 아침에 죽고 저녁에 문공을 섬겼으니 시인의 둘로 하지 않음이 어떠한가.
人有設桓公隱者曰:「一難,二難,三難,何也?」桓公不能對,以告管仲。管仲對曰:「一難也,近優而遠士。二難也,去其國而數之海。三難也,君老而晩置太子。」桓公曰:「善。」不擇日而廟禮太子。
어떤 이가 환공에게 수수께끼를 내어 말하였다. 「하나의 어려움과 둘의 어려움과 셋의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환공이 대답하지 못하고 관중에게 알렸다. 관중이 대답하였다. 「하나의 어려움은 광대를 가까이하고 선비를 멀리함입니다. 둘의 어려움은 그 나라를 떠나 자주 바다에 감입니다. 셋의 어려움은 임금이 늙어서야 늦게 태자를 세움입니다.」 환공이 말하였다. 「좋다.」 날을 가리지 않고 사당에서 태자에게 예를 하였다.
或曰:管仲之射隱,不得也。士之用不在近遠,而俳優侏儒固人主之所與燕也,則近優而遠士而以爲治,非其難者也。夫處勢而不能用其有,而悖不去國,是以一人之力禁一國。以一人之力禁一國者,少能勝之。明能照遠姦而見隱微,必行之令,雖遠於海,内必無變。然則去國之海而不劫殺,非其難者也。楚成王置商臣以爲太子,又欲置公子職,商臣作難,遂弑成王。公子宰,周太子也,公子根有寵,遂以東州反,分而爲兩國。此皆非晩置太子之患也。夫分勢不二,庶孽卑,寵無藉,雖處大臣,晚置太子可也。然則晚置太子,庶孽不亂,又非其難也。物之所謂難者,必借人成勢而勿使侵害己,可謂一難也。貴妾不使二后,二難也。愛孽不使危正適,專聽一臣而不敢偶君,此則可謂三難也。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관중이 수수께끼를 맞힘은 얻은 것이 아니다. 선비를 씀은 가깝고 멂에 있지 않고, 광대와 난쟁이는 본디 임금이 함께 잔치하는 이들이니, 광대를 가까이하고 선비를 멀리하면서도 다스림이 되면 그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무릇 세에 처하고도 가진 것을 쓸 수 없어 어그러져도 나라를 떠나지 못함은 한 사람의 힘으로 한 나라를 금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힘으로 한 나라를 금하는 이는 이길 수 있는 이가 적다. 밝음이 먼 간사함을 비추고 숨은 미세함을 볼 수 있어 반드시 행해지는 명령이 있으면, 비록 바다에 멀리 있어도 안에 반드시 변고가 없다. 그러면 나라를 떠나 바다에 가도 겁박당하고 죽지 않으니 그 어려운 것이 아니다. 초나라 성왕이 상신을 두어 태자로 삼고 또 공자 직을 두려 하매 상신이 난을 일으켜 마침내 성왕을 죽였다. 공자 재는 주나라 태자였는데 공자 근이 사랑을 받아 마침내 동주로 배반하여 나뉘어 두 나라가 되었다. 이는 다 늦게 태자를 세운 근심이 아니다. 무릇 세를 나눔이 둘이 아니고 서자가 낮으며 사랑함에 기댈 것이 없으면, 비록 대신에 처하여도 늦게 태자를 세워도 괜찮다. 그러면 늦게 태자를 세워도 서자가 어지럽히지 않으니 또 그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일에 이른바 어려운 것은, 반드시 남을 빌려 세를 이루되 저를 침노하고 해치지 못하게 함이니 하나의 어려움이라 할 만하고, 귀한 첩으로 후비를 둘로 삼지 않음이 둘의 어려움이며, 사랑하는 서자로 바른 적자를 위태롭게 하지 않고 한 신하만 오로지 듣되 감히 임금과 짝하지 못하게 함이니 이것이 셋의 어려움이라 할 만하다.
葉公子高問政於仲尼,仲尼曰:「政在悅近而來遠。」哀公問政於仲尼,仲尼曰:「政在選賢。」齊景公問政於仲尼,仲尼曰:「政在節財。」三公出,子貢問曰:「三公問夫子政一也,夫子對之不同,何也?」仲尼曰:「葉都大而國小,民有背心,故曰『政在悅近而來遠』。魯哀公有大臣三人,外障距諸侯四隣之士,内比周而以愚其君,使宗廟不掃除,社稷不血食者,必是三臣也,故曰『政在選賢』。齊景公築雍門,爲路寢,一朝而以三百乘之家賜者三,故曰『政在節財』。」
섭공 자고가 중니에게 정사를 물으니 중니가 말하였다. 「정사는 가까운 이를 기쁘게 하고 먼 이를 오게 함에 있습니다.」 애공이 중니에게 정사를 물으니 중니가 말하였다. 「정사는 어진 이를 가림에 있습니다.」 제나라 경공이 중니에게 정사를 물으니 중니가 말하였다. 「정사는 재물을 아낌에 있습니다.」 세 공이 나가자 자공이 물었다. 「세 공이 부자께 물은 정사가 하나인데 부자께서 대답하심이 같지 않으니 어째서입니까?」 중니가 말하였다. 「섭은 도읍이 크고 나라가 작아 백성에게 등지는 마음이 있으므로 『정사는 가까운 이를 기쁘게 하고 먼 이를 오게 함에 있다』 하였다. 노나라 애공에게 대신 셋이 있어 밖으로 제후와 사방 이웃의 선비를 막고 안으로 무리 지어 그 임금을 어리석게 하니, 종묘가 쓸리지 않고 사직이 피 흘려 제사되지 못하게 할 이는 반드시 이 세 신하다. 그러므로 『정사는 어진 이를 가림에 있다』 하였다. 제나라 경공은 옹문을 쌓고 노침을 지으며 하루아침에 삼백 승의 집을 내린 것이 세 번이었다. 그러므로 『정사는 재물을 아낌에 있다』 하였다.」
或曰:仲尼之對,亡國之言也。葉民有倍心,而說之「悅近而來遠」,則是教民懷惠。惠之爲政,無功者受賞,而有罪者免,此法之所以敗也。法敗而政亂,以亂政治敗民,未見其可也。且民有倍心者,君上之明有所不及也。不紹葉公之明,而使之悅近而來遠,是舍吾勢之所能禁而使與下行惠以爭民,非能持勢者也。夫堯之賢,六王之冠也。舜一徙而成邑,而堯無天下矣。有人無術以禁下,恃爲舜而不失其民,不亦無術乎?明君見小姦於微,故民無大謀;行小誅於細,故民無大亂。此謂「圖難於其所易也,爲大者於其所細也」。今有功者必賞,賞者不得君,力之所致也;有罪者必誅,誅者不怨上,罪之所生也。民知誅賞之皆起於身也,故疾功利於業,而不受賜於君。「太上,下智有之。」此言太上之下民無說也,安取懷惠之民?上君之民無利害,說以「悅近來遠」,亦可舍已。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중니의 대답은 나라를 잃는 말이다. 섭의 백성에게 등지는 마음이 있는데 「가까운 이를 기쁘게 하고 먼 이를 오게 하라」고 말함은 백성에게 은혜를 품게 가르침이다. 은혜로 정사하면 공 없는 이가 상을 받고 죄 있는 이가 면하니 이는 법이 무너지는 까닭이다. 법이 무너지면 정사가 어지러운데, 어지러운 정사로 무너진 백성을 다스림은 그 될 수 있음을 보지 못하였다. 또 백성에게 등지는 마음이 있음은 임금의 밝음이 미치지 못한 바가 있어서다. 섭공의 밝음을 잇게 하지 않고 그로 하여금 가까운 이를 기쁘게 하고 먼 이를 오게 하라 함은, 내 세가 금할 수 있는 바를 놓고 아래와 더불어 은혜를 행하며 백성을 다투게 함이니 세를 지닐 수 있는 이가 아니다. 무릇 요의 어짊은 여섯 왕의 으뜸이다. 순이 한 번 옮기니 고을이 이루어졌고 요에게 천하가 없어졌다. 사람에게 아래를 금할 술이 없이 순이 되어 그 백성을 잃지 않기를 믿으니 또한 술이 없지 않은가. 밝은 임금은 작은 간사함을 미세할 때 보므로 백성에게 큰 꾀가 없고, 작은 벰을 자잘한 데 행하므로 백성에게 큰 어지러움이 없다. 이를 「어려운 것을 그 쉬운 데서 꾀하고 큰 것을 그 자잘한 데서 한다」 한다. 이제 공 있는 이는 반드시 상 주니 상 받는 이가 임금에게 얻은 것이 아니라 제 힘이 이르게 한 것이요, 죄 있는 이는 반드시 베니 베어지는 이가 위를 원망하지 않고 제 죄가 낳은 것이다. 백성이 베고 상 줌이 다 제 몸에서 일어남을 알므로 업에서 공과 이익에 힘쓰고 임금에게 내림을 받지 않는다. 「가장 위는 아래가 있음만 안다」 하였으니, 이는 가장 위의 아래에 있는 백성은 기뻐함이 없다는 말이니 어디서 은혜를 품는 백성을 취하겠는가. 높은 임금의 백성에게는 이롭고 해로움이 없으니 「가까운 이를 기쁘게 하고 먼 이를 오게 하라」는 말은 또한 버려도 좋다.
哀公有臣外障距内比周以愚其君,而說之以「選賢」,此非功伐之論也,選其心之所謂賢者也。使哀公知三子外障距内比周也,則三子不一日立矣。哀公不知選賢,選其心之所謂賢,故三子得任事。燕子噲賢子之而非孫卿,故身死爲僇;夫差智太宰嚭而愚子胥,故滅於越。魯君不必知賢,而說以選賢,是使哀公有夫差、燕噲之患也。明君不自舉臣,臣相進也;不自賢,功自徇也。論之於任,試之於事,課之於功,故羣臣公政而無私,不隱賢,不進不肖,然則人主奚勞於選賢?
애공에게 밖으로 막고 안으로 무리 지어 그 임금을 어리석게 하는 신하가 있는데 「어진 이를 가리라」고 말함은 공을 세운 것으로 논함이 아니라 제 마음에 어질다 여기는 이를 가리는 것이다. 애공이 세 사람이 밖으로 막고 안으로 무리 짓는 줄 알았다면 세 사람은 하루도 서지 못하였을 것이다. 애공이 어진 이를 가릴 줄 모르고 제 마음에 어질다 여기는 이를 가렸으므로 세 사람이 일을 맡을 수 있었다. 연나라 자쾌는 자지를 어질다 하고 손경을 그르다 하였으므로 몸이 죽어 죽임을 당하였고, 부차는 태재 백비를 슬기롭다 하고 오자서를 어리석다 하였으므로 월나라에 망하였다. 노나라 임금이 반드시 어진 이를 아는 것이 아닌데 어진 이를 가리라 말함은 애공에게 부차와 연나라 자쾌의 근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밝은 임금은 스스로 신하를 들지 않고 신하가 서로 나아가게 하며, 스스로 어질다 하지 않고 공이 스스로 돌게 한다. 맡김에서 논하고 일에서 시험하며 공으로 매기므로, 뭇 신하가 공변되이 정사하고 사사로움이 없어 어진 이를 숨기지 않고 못난 이를 나아가게 하지 않으니, 그러면 임금이 어진 이를 가림에 무엇을 수고롭겠는가.
景公以百乘之家賜,而說以「節財」,是使景公無術以知富之侈,而獨儉於上,未免於貧也。有君以千里養其口腹,則雖桀、紂不侈焉。齊國方三千里而桓公以其半自養,是侈於桀、紂也;然而能爲五霸冠者,知侈儉之地也。爲君不能禁下而自禁者謂之劫,不能飾下而自飾者謂之亂,不節下而自節者謂之貧。明君使人無私,以詐而食者禁;力盡於事、歸利於上者必聞,聞者必賞;汙穢爲私者必知,知者必誅。然,故忠臣盡忠於公,民士竭力於家,百官精尅於上,侈倍景公,非國之患也。然則說之以節財,非其急者也。
경공이 백 승의 집을 내리는데 「재물을 아끼라」고 말함은, 경공에게 부유함의 사치를 알 술이 없이 홀로 위에서 검소하게 하는 것이니 가난함을 면하지 못한다. 임금이 천 리로 제 입과 배를 기르면 비록 걸과 주라도 그보다 사치하지 못한다. 제나라는 사방 삼천 리인데 환공이 그 반으로 스스로를 길렀으니 이는 걸과 주보다 사치한 것이다. 그런데도 다섯 패자의 으뜸이 될 수 있었음은 사치와 검소의 자리를 알아서다. 임금이 되어 아래를 금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금함을 겁박당함이라 하고, 아래를 꾸미지 못하고 스스로를 꾸밈을 어지러움이라 하며, 아래를 절제하지 못하고 스스로 절제함을 가난이라 한다. 밝은 임금은 사람에게 사사로움이 없게 하여 속임으로 먹는 이를 금하고, 일에 힘을 다하고 이로움을 위에 돌리는 이는 반드시 들리게 하며 들린 이는 반드시 상 주고, 더러이 사사로움을 하는 이는 반드시 알게 하며 알려진 이는 반드시 벤다. 그러하므로 충성된 신하가 공변된 일에 충성을 다하고 백성과 선비가 집에서 힘을 다하며 백관이 위에서 정밀히 힘쓰니, 사치가 경공의 갑절이어도 나라의 근심이 아니다. 그러면 재물을 아끼라 말함은 그 급한 것이 아니다.
夫對三公一言而三公可以無患,知下之謂也。知下明則禁於微,禁於微則姦無積,姦無積則無比周,無比周則公私分,公私分則朋黨散,朋黨散則無外障距内比周之患。知下明則見精沐,見精沐則誅賞明,誅賞明則國不貧。故曰:一對而三公無患,知下之謂也。
무릇 세 공에게 한마디로 대답하여 세 공이 근심 없게 함은 아래를 앎을 이른다. 아래를 앎이 밝으면 미세할 때 금하고, 미세할 때 금하면 간사함이 쌓이지 않으며, 간사함이 쌓이지 않으면 무리 짓지 않고, 무리 짓지 않으면 공과 사가 나뉘며, 공과 사가 나뉘면 붕당이 흩어지고, 붕당이 흩어지면 밖으로 막고 안으로 무리 짓는 근심이 없다. 아래를 앎이 밝으면 정밀하고 깨끗한 것을 보고, 정밀하고 깨끗한 것을 보면 베고 상 줌이 밝으며, 베고 상 줌이 밝으면 나라가 가난하지 않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한 번 대답하여 세 공이 근심 없음은 아래를 앎을 이른다 한다.
鄭子産晨出,過東匠之閭,聞婦人之哭,撫其御之手而聽之。有間,遣吏執而問之,則手絞其夫者也。異日,其御問曰:「夫子何以知之?」子産曰:「其聲懼。凡人於其親愛也,始病而憂,臨死而懼,已死而哀。今哭已死,不哀而懼,是以知其有姦也。」
정나라 자산이 새벽에 나가 동장의 마을을 지나다가 아낙의 곡소리를 듣고 마부의 손을 눌러 들었다. 얼마 뒤 아전을 보내 잡아 물으니 손으로 제 지아비를 목 졸라 죽인 이였다. 다른 날 그 마부가 물었다. 「부자께서는 무엇으로 아셨습니까?」 자산이 말하였다. 「그 소리가 두려워하였다. 무릇 사람이 그 친히 사랑하는 이에 대하여 처음 병들면 근심하고 죽음에 임하면 두려워하며 이미 죽으면 슬퍼한다. 이제 이미 죽은 이를 곡하는데 슬퍼하지 않고 두려워하니 이 때문에 간사함이 있음을 알았다.」
或曰:子産之治,不亦多士乎?姦必待耳目之所及而後知之,則鄭國之得姦者寡矣。不任典成之吏,不察參伍之政,不明度量,恃盡聰明勞智慮而以知姦,不亦無術乎?且夫物衆而智寡,寡不勝衆,智不足以徧知物,故因物以治物。下衆而上寡,寡不勝衆者,言君不足以徧知臣也,故因人以知人。是以形體不勞而事治,智慮不用而姦得。故宋人語曰:「一雀過羿,羿必得之,則羿誣矣。以天下爲之羅,則雀不失矣。」夫知姦亦有大羅,不失其一而已矣。不修其理,而以己之胷察爲之弓矢,則子産誣矣。老子曰:「以智治國,國之賊也。」其子産之謂矣。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자산의 다스림은 또한 일이 많지 않은가. 간사함을 반드시 귀와 눈이 미친 뒤에야 안다면 정나라에서 간사함을 얻는 일이 적을 것이다. 옥사를 맡은 아전에게 맡기지 않고 맞대어 살피는 정사를 살피지 않으며 도량을 밝히지 않고, 총명을 다하고 슬기를 수고롭게 하여 간사함을 알려 하니 또한 술이 없지 않은가. 또 무릇 물건은 많고 슬기는 적으니 적은 것이 많은 것을 이기지 못하며, 슬기는 물건을 두루 알기에 넉넉하지 않으므로 물건으로 물건을 다스린다. 아래는 많고 위는 적으니 적은 것이 많은 것을 이기지 못한다 함은 임금이 신하를 두루 알기에 넉넉하지 않다는 말이므로 사람으로 사람을 안다. 이 때문에 몸이 수고롭지 않고 일이 다스려지며 슬기를 쓰지 않고 간사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송나라 사람의 말에 「참새 하나가 예를 지날 때 예가 반드시 잡는다 하면 예를 속이는 것이요, 천하를 그물로 삼으면 참새를 놓치지 않는다」 하였다. 무릇 간사함을 앎에도 큰 그물이 있어 하나도 놓치지 않을 뿐이다. 그 이치를 닦지 않고 제 가슴의 살핌으로 활과 화살을 삼으면 자산은 속이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였다. 「슬기로 나라를 다스림은 나라의 도적이다.」 그것이 자산을 이름이다.
秦昭王問於左右曰:「今時韓、魏孰與始強?」左右對曰:「弱於始也。」「今之如耳、魏齊孰與曩之孟嘗、芒卯?」對曰:「不及也。」王曰:「孟嘗、芒卯率強韓、魏,猶無奈寡人何也。」左右對曰:「甚然。」中期推琴而對曰:「王之料天下過矣。夫六晉之時,知氏最強,滅范、中行而從韓、魏之兵以伐趙,灌以晉水,城之未沈者三板。知伯出,魏宣子御,韓康子爲驂乘。知伯曰:『始吾不知水可以滅人之國,吾乃今知之。汾水可以灌安邑,絳水可以灌平陽。』魏宣子肘韓康子,康子踐宣子之足,肘足接乎車上,而知氏分於晉陽之下。今足下雖強,未若知氏;韓、魏雖弱,未至如其在晉陽之下也。此天下方用肘足之時,願王勿易之也。」
진(秦)나라 소왕이 좌우에게 물었다.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를 처음과 견주면 어떠한가?」 좌우가 대답하였다. 「처음보다 약합니다.」 「지금의 여이와 위제를 지난날의 맹상군과 망묘에 견주면 어떠한가?」 대답하였다. 「미치지 못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맹상군과 망묘가 강한 한나라와 위나라를 거느리고도 오히려 과인을 어찌하지 못하였다.」 좌우가 대답하였다. 「매우 그렇습니다.」 중기가 거문고를 밀며 대답하였다. 「왕께서 천하를 헤아리심이 지나치십니다. 무릇 여섯 진(晉)나라 때에 지씨가 가장 강하여 범씨와 중항씨를 없애고 한나라와 위나라의 군사를 좇아 조나라를 치며 진수를 대니 성이 잠기지 않은 것이 세 판이었습니다. 지백이 나갈 때 위나라 선자가 몰고 한나라 강자가 곁수레를 탔습니다. 지백이 말하였습니다. 『처음에 나는 물로 남의 나라를 없앨 수 있음을 알지 못하였는데 내가 이제야 알았다. 분수는 안읍을 잠글 수 있고 강수는 평양을 잠글 수 있다.』 위나라 선자가 한나라 강자를 팔꿈치로 찌르고 강자가 선자의 발을 밟아 팔꿈치와 발이 수레 위에서 통하니, 지씨가 진양 아래서 나뉘었습니다. 이제 발아래가 비록 강하나 지씨만 못하고, 한나라와 위나라가 비록 약하나 진양 아래 있던 때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천하가 바야흐로 팔꿈치와 발을 쓸 때이니 바라건대 왕께서는 가벼이 여기지 마십시오.」
或曰:昭王之問也有失,左右中期之對也有過。凡明主之治國也,任其勢。勢不可害,則雖強天下無奈何也,而況孟嘗、芒卯、韓、魏能奈我何?其勢可害也,則不肖如如耳、魏齊及韓、魏猶能害之。然則害與不侵,在自恃而已矣,奚問乎?自恃其不可侵,則強與弱奚其擇焉?失在不自恃,而問其奈何也,其不侵也幸矣。申子曰:「失之數而求之信,則疑矣。」其昭王之謂也。知伯無度,從韓康、魏宣而圖以水灌滅其國,此知伯之所以國亡而身死,頭爲飲柸之故也。今昭王乃問孰與始強,其畏有水人之患乎?雖有左右,非韓、魏之二子也,安有肘足之事?而中期曰「勿易」,此虚言也。且中期之所官,琴瑟也。絃不調,弄不明,中期之任也,此中期所以事昭王者也。中期善承其任,未慊昭王也,而爲所不知,豈不妄哉?左右對之曰「弱於始」與「不及」則可矣,其曰「甚然」則諛也。申子曰:「治不踰官,雖知不言。」今中期不知而尚言之。故曰:昭王之問有失,左右中期之對皆有過也。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소왕의 물음에 잘못이 있고 좌우와 중기의 대답에 허물이 있다. 무릇 밝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림은 그 세에 맡긴다. 세를 해칠 수 없으면 비록 천하를 강하게 하여도 어찌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맹상군과 망묘와 한나라와 위나라가 나를 어찌하겠는가. 그 세를 해칠 수 있으면 여이와 위제 같은 못난 이와 한나라와 위나라도 오히려 해칠 수 있다. 그러면 해침과 침노당하지 않음은 스스로를 믿음에 있을 뿐이니 무엇을 묻겠는가. 스스로 침노당할 수 없음을 믿는다면 강하고 약함을 어찌 가리겠는가. 잘못은 스스로를 믿지 않고 어찌할까 물음에 있으니, 침노당하지 않음이 요행이다. 신자가 말하였다. 「수에서 잃고 믿음에서 구하면 의심스럽다.」 그것이 소왕을 이름이다. 지백은 법도가 없이 한나라 강자와 위나라 선자를 좇아 물을 대어 그 나라를 없애려 하였으니, 이것이 지백이 나라가 망하고 몸이 죽어 머리가 술잔이 된 까닭이다. 이제 소왕이 이에 처음과 견주어 어느 쪽이 강한가 물으니 물에 잠기는 근심이 있을까 두려워한 것인가. 비록 좌우가 있으나 한나라와 위나라의 두 사람이 아니니 어찌 팔꿈치와 발의 일이 있겠는가. 그런데 중기가 「가벼이 여기지 말라」 하였으니 이는 빈말이다. 또 중기가 맡은 벼슬은 거문고와 비파다. 줄이 고르지 않고 타는 것이 밝지 않음이 중기의 맡음이니 이것이 중기가 소왕을 섬기는 바다. 중기가 그 맡음을 잘 받들어도 소왕을 만족시키지 못하는데 알지 못하는 바를 하였으니 어찌 망령되지 않은가. 좌우가 대답하기를 「처음보다 약하다」와 「미치지 못한다」 함은 괜찮으나 「매우 그렇다」 함은 아첨이다. 신자가 말하였다. 「다스림은 벼슬을 넘지 않으니 비록 알아도 말하지 않는다.」 이제 중기는 알지 못하면서 오히려 말하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소왕의 물음에 잘못이 있고 좌우와 중기의 대답에 다 허물이 있다 한다.
管子曰:「見其可,說之有證;見其不可,惡之有形。賞罰信於所見,雖所不見,其敢爲之乎?見其可,說之無證;見其不可,惡之無形。賞罰不信於所見,而求所不見之外,不可得也。」
관자가 말하였다. 「그 될 만한 것을 보면 기뻐함에 증거가 있고, 그 안 될 것을 보면 미워함에 꼴이 있다. 상과 벌이 보이는 데서 미더우면 비록 보이지 않는 데인들 감히 그리하겠는가. 그 될 만한 것을 보아도 기뻐함에 증거가 없고, 그 안 될 것을 보아도 미워함에 꼴이 없다. 상과 벌이 보이는 데서 미덥지 않은데 보이지 않는 밖에서 구함은 얻을 수 없다.」
或曰:廣廷嚴居,衆人之所肅也;宴室獨處,曾、史之所僈也。觀人之所肅,非行情也。且君上者,臣下之所爲飾也。好惡在所見,臣下之飾姦物以愚其君,必也。明不能燭遠姦,見隱微,而待之以觀飾行,定賞罰,不亦弊乎?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넓은 뜰과 엄한 자리는 뭇사람이 엄숙해지는 곳이요, 잔치하는 방과 홀로 있음은 증삼과 사추도 게을러지는 곳이다. 사람이 엄숙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정을 행함이 아니다. 또 임금은 신하가 꾸미는 대상이다. 좋아하고 미워함이 보이는 데 있으면 신하가 간사한 것을 꾸며 그 임금을 어리석게 함이 반드시 그러하다. 밝음이 먼 간사함을 비추고 숨은 미세함을 보지 못하면서, 꾸민 행실을 보아 상과 벌을 정하기를 기다리니 또한 가려지지 않겠는가.
管子曰:「言於室,滿於室;言於堂,滿於堂,是謂天下王。」
관자가 말하였다. 「방에서 말하면 방에 가득하고 마루에서 말하면 마루에 가득하니 이를 천하의 왕이라 한다.」
或曰:管仲之所謂言室滿室、言堂滿堂者,非特謂遊戲飲食之言也,必謂大物也。人主之大物,非法則術也。法者,編著之圖籍,設之於官府,而布之於百姓者也。術者,藏之於𦙄中,以偶衆端而潜御羣臣者也。故法莫如顯,而術不欲見。是以明主言法,則境内卑賤莫不聞知也,不獨滿於堂;用術,則親受近習莫之得聞也,不得滿室。而管子猶曰「言於室滿室,言於堂滿堂」,非法術之言也。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관중이 이른바 방에서 말하면 방에 가득하고 마루에서 말하면 마루에 가득하다 함은, 다만 놀이와 먹고 마심의 말을 이름이 아니라 반드시 큰일을 이름이다. 임금의 큰일은 법이 아니면 술이다. 법이란 문서에 엮어 적고 관청에 베풀어 백성에게 펴는 것이요, 술이란 가슴속에 감추어 여러 실마리를 맞대어 보고 몰래 뭇 신하를 부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은 드러남만 한 것이 없고 술은 드러나지 않으려 한다. 이 때문에 밝은 임금이 법을 말하면 지경 안의 낮고 천한 이도 듣고 알지 않음이 없어 다만 마루에 가득할 뿐이 아니요, 술을 쓰면 친히 사랑하고 가까이 익은 이도 들을 수 없어 방에 가득할 수 없다. 그런데 관자가 오히려 「방에서 말하면 방에 가득하고 마루에서 말하면 마루에 가득하다」 하였으니 법과 술의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