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難四

한비자 韓非子 · 한비(韓非)와 후학 · 기원전 3세기 · 단락 12 · 한자 1,786자 · 낭독 7.1분

「한비자」 난사 「難四」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법가가 한자리에 모인 책이다. 상앙의 법(法)과 신불해의 술(術)과 신도의 세(勢)를 한비가 받아 하나로 엮었다. 사람은 착해서 착한 것이 아니라 그름을 할 수 없어 착하다고 보고, 임금이 기댈 것은 어짊이 아니라 법과 술과 세라고 말한다. 모순(矛盾)이 여기서 나왔다. 뚫지 못할 방패와 뚫지 못함이 없는 창을 함께 파는 초나라 사람 이야기로 요와 순을 함께 기릴 수 없음을 보였고, 난세에서 다시 한 번 어짊과 세를 두고 같은 비유를 든다.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 송나라 사람(수주대토)과 발이 두 번 잘리고서야 옥으로 인정받은 화씨의 벽옥도 이 책의 이야기다. 말하기의 어려움을 다룬 세난(說難)에는 용의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 이야기가 있다. 임금에게도 그런 비늘이 있어 건드리면 죽는다는 것인데, 정작 한비 자신이 진나라에서 옥에 갇혀 죽었다. 존한(存韓)에는 한비가 진왕에게 올린 글과, 그 바로 뒤에 이사가 「한비는 한나라를 위해 온 자이니 돌려보내지 말라」고 올린 글이 나란히 실려 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몬 문서가 그 사람의 책에 함께 남았다.

衛孫文子聘於魯,公登亦登。叔孫穆子趨進曰:「諸侯之會,寡君未嘗後衛君也。今子不後寡君一等,寡君未知所過也。子其少安。」孫子無辭,亦無悛容。穆子退而告人曰:「孫子必亡。亡臣而不後君,過而不悛,亡之本也。」

위나라 손문자가 노나라에 빙문하였는데 공이 오르자 저도 올랐다. 숙손목자가 종종걸음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제후의 모임에 저희 임금께서 일찍이 위나라 임금보다 뒤진 적이 없습니다. 이제 그대가 저희 임금보다 한 등급 뒤지지 않으시니 저희 임금께서는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대는 조금 편안히 계십시오.」 손자가 말이 없고 또 뉘우치는 낯빛도 없었다. 목자가 물러나 남에게 알렸다. 「손자는 반드시 망한다. 망명한 신하이면서 임금보다 뒤지지 않고 허물이 있어도 뉘우치지 않으니 망함의 근본이다.」

或曰:天子失道,諸侯伐之,故有湯、武。諸侯失道,大夫伐之,故有齊、晉。臣而伐君者必亡,則是湯、武不王,晉、齊不立也。孫子君於衛,而後不臣於魯,臣之君也。君有失也,故臣有得也。不命亡於有失之君,而命亡於有得之臣,不察。魯不得誅衛大夫,而衛君之明不知不悛之臣。孫子雖有是二也,巨以亡?其所以亡其失,所以得君也。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천자가 도를 잃으면 제후가 치므로 탕과 무왕이 있었고, 제후가 도를 잃으면 대부가 치므로 제나라와 진나라가 있었다. 신하로서 임금을 친 이가 반드시 망한다면 탕과 무왕이 왕 노릇 하지 못하고 진나라와 제나라가 서지 못하였을 것이다. 손자가 위나라에서 임금 노릇 하듯 하고 뒤에 노나라에 신하 노릇 하지 않았음은 신하가 임금 노릇 한 것이다. 임금에게 잃음이 있으므로 신하에게 얻음이 있다. 잃음이 있는 임금에게 망함을 말하지 않고 얻음이 있는 신하에게 망함을 말함은 살피지 못한 것이다. 노나라는 위나라 대부를 벨 수 없었고 위나라 임금의 밝음은 뉘우치지 않는 신하를 알지 못하였다. 손자에게 비록 이 두 가지가 있은들 어찌 망하겠는가. 그가 망할 까닭이 되는 그 잘못은 임금 자리를 얻은 까닭이 되기도 한다.

或曰:臣主之施,分也。臣能奪君者,以得相踦也。故非其分而取者,衆之所奪也;辭其分而取者,民之所予也。是以桀索㟭山之女,紂求比干之心,而天下離;湯身易名,武身受詈,而海内服;趙咺走山,田氏外僕,而齊、晉從。則湯、武之所以王,齊、晉之所以立,非必以其君也,彼得之而後以君處之也。今未有其所以得,而行其所以處,是倒義而逆德也。倒義,則事之所以敗也;逆德,則怨之所以聚也。敗亡之不察,何也?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신하와 임금의 베풂은 몫이다. 신하가 임금을 빼앗을 수 있음은 서로 기울어짐을 얻어서다. 그러므로 제 몫이 아닌데 취하는 이는 무리가 빼앗는 바요, 제 몫을 사양하고 취하는 이는 백성이 주는 바다. 이 때문에 걸이 민산의 여자를 찾고 주가 비간의 심장을 구하매 천하가 떠났고, 탕이 몸소 이름을 바꾸고 무왕이 몸소 꾸짖음을 받으매 해내가 복종하였으며, 조훤이 산으로 달아나고 전씨가 밖에서 종노릇하매 제나라와 진나라가 따랐다. 그러면 탕과 무왕이 왕 노릇 한 까닭과 제나라와 진나라가 선 까닭은 반드시 임금 노릇 함으로써가 아니라, 저들이 얻은 뒤에 임금으로 처한 것이다. 이제 얻을 까닭이 있지 않은데 처할 바를 행하니 이는 의를 거꾸로 하고 덕을 거스름이다. 의를 거꾸로 하면 일이 무너지는 까닭이요, 덕을 거스르면 원망이 모이는 까닭이다. 무너지고 망함을 살피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魯陽虎欲攻三桓,不尅而犇齊,景公禮之。鮑文子諫曰:「不可。陽虎有寵於季氏而欲伐於季孫,貪其富也。今君富於季孫,而齊大於魯,陽虎所以盡詐也。」景公乃囚陽虎。

노나라 양호가 세 환씨를 치려다가 이기지 못하고 제나라로 달아나니 경공이 예우하였다. 포문자가 간하였다. 「안 됩니다. 양호는 계씨에게 사랑을 받고도 계손을 치려 하였으니 그 부유함을 탐해서입니다. 이제 임금께서는 계손보다 부유하고 제나라는 노나라보다 크니, 양호가 속임을 다할 까닭입니다.」 경공이 이에 양호를 가두었다.

或曰:千食之家,其子不仁,人之急利甚也。桓公,五伯之上也,爭國而殺其兄,其利大也。臣主之間,非兄弟之親也。劫殺之功,制萬乘而享大利,則羣臣孰非陽虎也?事以微巧成,以踈拙敗。羣臣之未起難也,其備未具也。羣臣皆有陽虎之心,而君上不知,是微而巧也。陽虎貪,知於天下,以欲攻上,是䟽而拙也。不使景公加誅於齊之巧臣,而使加誅於拙虎,是鮑文子之說反也。臣之忠詐,在君所行也。君明而嚴,則羣臣忠;君懦而闇,則羣臣詐。知微之謂明,無救赦之謂嚴。不知齊之巧臣而誅魯之成亂,不亦妄乎?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천 섬 먹는 집의 자식도 어질지 않으니 사람이 이익에 급함이 심하다. 환공은 다섯 패자의 으뜸인데 나라를 다투어 그 형을 죽였으니 그 이익이 커서다. 신하와 임금 사이는 형제의 친함이 아니다. 겁박하고 죽인 공으로 만승을 제어하고 큰 이익을 누린다면 뭇 신하 가운데 누가 양호가 아니겠는가. 일은 미세하고 교묘함으로 이루어지고 성글고 서툶으로 무너진다. 뭇 신하가 아직 난을 일으키지 않음은 그 채비가 갖추어지지 않아서다. 뭇 신하가 다 양호의 마음을 가졌는데 임금이 알지 못하니 이는 미세하고 교묘함이다. 양호는 탐함이 천하에 알려졌으면서 위를 치려 하였으니 이는 성글고 서툶이다. 경공에게 제나라의 교묘한 신하를 베게 하지 않고 서툰 양호를 베게 하였으니 이는 포문자의 설이 뒤집힌 것이다. 신하의 충성됨과 속임은 임금이 행하는 바에 있다. 임금이 밝고 엄하면 뭇 신하가 충성되고, 임금이 무르고 어두우면 뭇 신하가 속인다. 미세함을 앎을 밝다 하고 구하고 사면함이 없음을 엄하다 한다. 제나라의 교묘한 신하를 알지 못하면서 노나라의 어지러움을 이룬 이를 베니 또한 망령되지 않은가.

或曰:仁貪不同心。故公子目夷辭宋,而楚商臣弑父;鄭去疾予弟,而魯桓弑兄。五伯兼并,而以桓律人,則是皆無貞廉也。且君明而嚴,則羣臣忠。陽虎爲亂於魯,不成而走,入齊而不誅,是承爲亂也。君明則誅,知陽虎之可以濟亂也,此見微之情也。語曰:「諸侯以國爲親。」君嚴則陽虎之罪不可失,此無救赦之實也,則誅陽虎,所以使羣臣忠也。未知齊之巧臣而廢明亂之罰,責於未然而不誅昭昭之罪,此則妄矣。今誅魯之罪亂以威羣臣之有姦心者,而可以得季、孟、叔孫之親,鮑文之說,何以爲反?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어짊과 탐함은 마음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공자 목이는 송나라를 사양하였고 초나라 상신은 아비를 죽였으며, 정나라 거질은 아우에게 주었고 노나라 환공은 형을 죽였다. 다섯 패자가 아우르고 삼켰는데 환공으로 사람을 재면 다 곧고 청렴함이 없는 것이 된다. 또 임금이 밝고 엄하면 뭇 신하가 충성된다. 양호가 노나라에서 난을 일으켜 이루지 못하고 달아나 제나라에 들었는데 베지 않으면 이는 난을 일으킴을 받아 주는 것이다. 임금이 밝으면 베니 양호가 어지러움을 이룰 수 있는 이임을 앎이 미세함을 보는 정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제후는 나라로 친함을 삼는다」 하였다. 임금이 엄하면 양호의 죄를 놓칠 수 없으니 이것이 구하고 사면함이 없음의 실지다. 그러면 양호를 벰은 뭇 신하를 충성되게 하는 까닭이다. 제나라의 교묘한 신하를 알지 못한다 하여 밝고 어지러움에 대한 벌을 폐하고, 아직 그러하지 않은 것을 책하면서 뚜렷한 죄를 베지 않으면 이는 망령됨이다. 이제 노나라의 죄지어 어지럽힌 이를 베어 뭇 신하 가운데 간사한 마음이 있는 이에게 위엄을 보이고, 그로써 계씨와 맹씨와 숙손씨의 친함을 얻을 수 있으니 포문자의 설이 무엇으로 뒤집힘이 되겠는가.

鄭伯將以高渠彌爲卿,昭公惡之,固諫不聽。及昭公即位,懼其殺己也,辛卯,弑昭公而立子亶也。君子曰:「昭公知所惡矣。」公子圉曰:「高伯其爲戮乎,報惡已甚矣。」

정나라 임금이 고거미를 경으로 삼으려 하니 소공이 미워하여 굳이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소공이 즉위함에 미쳐 고거미가 저를 죽일까 두려워하여 신묘일에 소공을 죽이고 자단을 세웠다. 군자가 말하였다. 「소공은 미워할 바를 알았다.」 공자 어가 말하였다. 「고백은 죽임을 당하겠구나. 미움 갚음이 너무 심하였다.」

或曰:公子圉之言也,不亦反乎?昭公之及於難者,報惡晚也。然則高伯之晚於死者,報惡甚也。明君不懸怒,懸怒,則罪臣輕舉以行計,則人主危。故靈臺之飲,衛侯怒而不誅,故褚師作難;食黿之羮,鄭君怒而不誅,故子公殺君。君子之舉「知所惡」,非甚之也,曰:知之若是其明也,而不行誅焉,以及於死。故「知所惡」,以見其無權也。人君非獨不足於見難而已,或不足於斷制;今昭公見惡,稽罪而不誅,使渠彌含憎懼死以徼幸,故不免於殺,是昭公之報惡不甚也。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공자 어의 말은 또한 뒤집힌 것이 아닌가. 소공이 어려움에 미친 것은 미움 갚음이 늦어서다. 그러면 고백이 늦게 죽은 것은 미움 갚음이 심해서다. 밝은 임금은 노함을 매달아 두지 않으니, 노함을 매달아 두면 죄지은 신하가 가벼이 들고일어나 계책을 행하므로 임금이 위태롭다. 그러므로 영대의 술자리에서 위나라 임금이 노하고도 베지 않았으므로 저사가 난을 일으켰고, 자라 국을 먹은 일에 정나라 임금이 노하고도 베지 않았으므로 자공이 임금을 죽였다. 군자가 「미워할 바를 알았다」고 든 것은 심하다 함이 아니라, 앎이 이처럼 밝으면서도 벰을 행하지 않아 죽음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미워할 바를 알았다」 함은 그에게 권도가 없었음을 보인 것이다. 임금은 다만 어려움을 봄에 모자랄 뿐 아니라 혹 끊어 제어함에도 모자란다. 이제 소공이 미움을 보고도 죄를 미루어 두고 베지 않아, 거미로 하여금 미움을 품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요행을 바라게 하였으므로 죽임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소공의 미움 갚음이 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或曰:報惡甚者,大誅報小罪。大誅報小罪也者,獄之至也。獄之患,故非在所以誅也,以讎之衆也。是以晉厲公滅三郄而欒、中行作難,鄭子都殺伯咺而食鼎起禍,吳王誅子胥而越勾踐成霸。則衛侯之逐,鄭靈之弑,不以褚師之不死而公父之不誅也,以未可以怒而有怒之色,未可誅而有誅之心。怒其當罪,而誅不逆人心,雖懸奚害?夫未立有罪,即位之後,宿罪而誅,齊胡之所以滅也。君行之臣,猶有後患,況爲臣而行之君乎?誅既不當,而以盡爲心,是與天下爲讎也。則雖爲戮,不亦可乎!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미움 갚음이 심하다 함은 큰 벰으로 작은 죄를 갚음이다. 큰 벰으로 작은 죄를 갚음은 옥사의 지극함이다. 옥사의 근심은 본디 베는 까닭에 있지 않고 원수가 많음에 있다. 이 때문에 진나라 여공이 세 극씨를 없애자 난씨와 중항씨가 난을 일으켰고, 정나라 자도가 백훤을 죽이자 솥에 밥 먹던 일이 화를 일으켰으며, 오왕이 오자서를 베자 월왕 구천이 패업을 이루었다. 그러면 위나라 임금이 쫓겨나고 정나라 영공이 죽임을 당한 것은 저사를 죽이지 않고 공보를 베지 않아서가 아니라, 노할 만하지 않은데 노한 낯빛이 있고 벨 만하지 않은데 베려는 마음이 있어서다. 노함이 그 죄에 마땅하고 벰이 사람 마음을 거스르지 않으면 비록 매달아 둔들 무엇이 해롭겠는가. 무릇 서기 전에 죄가 있는데 즉위한 뒤에 묵은 죄로 베는 것은 제나라 호공이 없어진 까닭이다. 임금이 신하에게 행하여도 오히려 뒷근심이 있는데 하물며 신하로서 임금에게 행하겠는가. 벰이 이미 마땅하지 않은데 다 없앰을 마음으로 삼으면 이는 천하와 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비록 죽임을 당한들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衛靈公之時,彌子瑕有寵,專於衛國。侏儒有見公者曰:「臣之夢淺矣。」公曰:「奚夢?」「夢見竈者,爲見公也。」公怒曰:「吾聞見人主者夢見日,奚爲見寡人而夢見竈乎?」侏儒曰:「夫日兼照天下,一物不能當也;人君兼照一國,一人不能壅也,故將見人主而夢日也。夫竈,一人煬焉,則後人無從見矣。或者一人煬君邪?則臣雖夢竈,不亦可乎?」公曰:「善。」遂去雍鉏,退彌子瑕,而用司空狗。

위나라 영공 때에 미자하가 사랑을 받아 위나라를 오로지하였다. 난쟁이 가운데 공을 뵌 이가 말하였다. 「신의 꿈이 얕았습니다.」 공이 말하였다. 「무슨 꿈인가?」 「꿈에 부뚜막을 본 것은 공을 뵐 조짐이었습니다.」 공이 노하여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임금을 뵐 이는 꿈에 해를 본다는데 어찌 과인을 보면서 꿈에 부뚜막을 보았다 하는가?」 난쟁이가 말하였다. 「무릇 해는 천하를 아울러 비추어 한 물건이 막을 수 없고, 임금은 한 나라를 아울러 비추어 한 사람이 막을 수 없으므로 임금을 뵐 이는 꿈에 해를 봅니다. 무릇 부뚜막은 한 사람이 앞에서 불을 쬐면 뒷사람이 볼 길이 없습니다. 혹 한 사람이 임금 앞에서 불을 쬐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신이 비록 부뚜막을 꿈꾸었어도 또한 괜찮지 않겠습니까.」 공이 말하였다. 「좋다.」 마침내 옹서를 버리고 미자하를 물리며 사공 구를 썼다.

或曰:侏儒善假於夢以見主道矣,然靈公不知侏儒之言也。去雍鉏,退彌子瑕,而用司空狗者,是去所愛而用所賢也。鄭子都賢慶建而壅焉,燕子噲賢子之而壅焉。夫去所愛而用所賢,未免使一人煬己也。不肖者煬主,不足以害明;今不加知而使賢者煬己,則必危矣。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난쟁이는 꿈을 잘 빌려 임금의 도를 보였으나 영공은 난쟁이의 말을 알지 못하였다. 옹서를 버리고 미자하를 물리며 사공 구를 씀은 사랑하는 이를 버리고 어질다 여기는 이를 쓴 것이다. 정나라 자도는 경건을 어질다 하고 막혔으며 연나라 자쾌는 자지를 어질다 하고 막혔다. 무릇 사랑하는 이를 버리고 어질다 여기는 이를 씀은 한 사람이 저 앞에서 불 쬐게 함을 면하지 못한다. 못난 이가 임금 앞에서 불을 쬐면 밝음을 해치기에 넉넉하지 않으나, 이제 앎을 더하지 않고 어질다 여기는 이가 저 앞에서 불 쬐게 하면 반드시 위태롭다.

或曰:屈到嗜芰,文王嗜菖蒲葅,非正味也,而二賢尚之,所味不必美。晉靈侯說參無恤,燕噲賢子之,非正士也,而二君尊之,所賢不必賢也。非賢而賢用之,與愛而用之同。賢誠賢而舉之,與用所愛異狀。故楚莊舉孫叔而霸,商辛用費仲而滅,此皆用所賢而事相反也。燕噲雖舉所賢,而同於用所愛,衛奚距然哉?則侏儒之未可見也。君壅而不知其壅也,已見之後而知其壅也,故退壅臣,是加知之也。曰「不加知而使賢者煬己則必危」,而今以加知矣,則雖煬己,必不危矣。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굴도는 마름을 즐기고 문왕은 창포 절임을 즐겼는데 바른 맛이 아니건만 두 어진 이가 숭상하였으니, 맛으로 삼는 바가 반드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진나라 영후는 참무휼을 기뻐하고 연나라 자쾌는 자지를 어질다 하였는데 바른 선비가 아니건만 두 임금이 높였으니, 어질다 하는 바가 반드시 어진 것은 아니다. 어질지 않은데 어질다 하여 씀은 사랑한다고 씀과 같다. 참으로 어질어 드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씀과 모양이 다르다. 그러므로 초나라 장왕이 손숙오를 들어 패자가 되었고 상나라 신이 비중을 써서 없어졌으니, 이는 다 어질다 여기는 이를 썼는데 일이 서로 반대된 것이다. 연나라 자쾌가 비록 어질다 여기는 이를 들었으나 사랑하는 이를 씀과 같았으니, 위나라가 어찌 여기서 벗어나겠는가. 그러면 난쟁이의 말도 볼 만한 것이 못 된다. 임금이 막혔으면서 그 막힘을 알지 못하다가 이미 보인 뒤에 그 막힘을 알았으므로 막는 신하를 물렸으니 이는 앎을 더한 것이다. 「앎을 더하지 않고 어질다 여기는 이가 저 앞에서 불 쬐게 하면 반드시 위태롭다」 하였는데, 이제 앎을 더하였으니 비록 앞에서 불을 쬔들 반드시 위태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