難勢
慎子曰:飛龍乘雲,騰蛇遊霧,雲罷霧霽,而龍蛇與螾螘同矣,則失其所乘也。賢人而詘於不肖者,則權輕位卑也;不肖而能服於賢者,則權重位尊也。堯爲匹夫,不能治三人;而桀爲天子,能亂天下,吾以此知勢位之足恃而賢智之不足慕也。夫弩弱而矢高者,激於風也;身不肖而令行者,得助於衆也。堯教於隸屬而民不聽,至於南面而王天下,令則行,禁則止。由此觀之,賢智未足以服衆,而勢位足以屈賢者也。
신자가 말하였다. 나는 용은 구름을 타고 등사는 안개에 노니는데,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개면 용과 뱀도 지렁이나 개미와 같아지니 그 타던 것을 잃어서다. 어진 사람이 못난 이에게 굽히는 것은 권세가 가볍고 자리가 낮아서요, 못난 이가 어진 이를 복종시킬 수 있음은 권세가 무겁고 자리가 높아서다. 요가 필부였을 때는 세 사람도 다스리지 못하였고 걸은 천자여서 천하를 어지럽힐 수 있었으니, 나는 이로써 세와 자리는 믿기에 넉넉하고 어짊과 슬기는 사모하기에 넉넉하지 않음을 안다. 무릇 쇠뇌가 약한데 화살이 높이 감은 바람에 실려서요, 몸이 못난데 명령이 행해짐은 무리에게 도움을 얻어서다. 요가 종들에게 가르칠 때는 백성이 듣지 않았으나 남면하여 천하에 왕 노릇 함에 이르러서는 명령하면 행해지고 금하면 그쳤다. 이로써 보면 어짊과 슬기는 무리를 복종시키기에 넉넉하지 않고 세와 자리는 어진 이를 굽히기에 넉넉하다.
應慎子曰:飛龍乘雲,騰蛇遊霧,吾不以龍蛇爲不託於雲霧之勢也。雖然,夫釋賢而專任勢,足以爲治乎?則吾未得見也。夫有雲霧之勢而能乘遊之者,龍蛇之材美也;今雲盛而螾弗能乘也,霧醲而螘不能遊也,夫有盛雲醲霧之勢而不能乘遊者,螾螘之材薄也。今桀、紂南面而王天下,以天子之威爲之雲霧,而天下不免乎大亂者,桀、紂之材薄也。
신자에게 응하여 말한다. 나는 용이 구름을 타고 등사가 안개에 노닌다 하나, 나는 용과 뱀이 구름과 안개의 세에 기대지 않는다고 여기지 않는다. 비록 그러나 무릇 어짊을 놓고 오로지 세에만 맡기면 다스림이 되기에 넉넉한가.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하였다. 무릇 구름과 안개의 세가 있어 타고 노닐 수 있음은 용과 뱀의 재목이 아름다워서다. 이제 구름이 성해도 지렁이는 탈 수 없고 안개가 짙어도 개미는 노닐 수 없으니, 무릇 성한 구름과 짙은 안개의 세가 있어도 타고 노닐 수 없음은 지렁이와 개미의 재목이 얇아서다. 이제 걸과 주가 남면하여 천하에 왕 노릇 하며 천자의 위엄으로 구름과 안개를 삼고도 천하가 큰 어지러움을 면하지 못한 것은 걸과 주의 재목이 얇아서다.
且其人以堯之勢以治天下也,其勢何以異桀之勢也、亂天下者也?夫勢者,非能必使賢者用之而不肖者不用之也。賢者用之則天下治,不肖者用之則天下亂。人之情性,賢者寡而不肖者衆,而以威勢之利濟亂世之不肖人,則是以勢亂天下者多矣,以勢治天下者寡矣。夫勢者,便治而利亂者也。故《周書》曰:「毋爲虎傅翼,將飛入邑,擇人而食之。」夫乘不肖人於勢,是爲虎傅翼也。桀、紂爲高臺深池以盡民力,爲炮烙以傷民性,桀、紂得成肆行者,南面之威爲之翼也。使桀、紂爲匹夫,未始行一而身在刑戮矣。勢者,養虎狼之心而成暴亂之事者也,此天下之大患也。勢之於治亂,本未有位也,而語專言勢之足以治天下者,則其智之所至者淺矣。
또 그 사람이 요의 세로 천하를 다스린다 하는데, 그 세가 무엇으로 천하를 어지럽힌 걸의 세와 다른가. 무릇 세란 반드시 어진 이가 쓰고 못난 이가 쓰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진 이가 쓰면 천하가 다스려지고 못난 이가 쓰면 천하가 어지럽다. 사람의 정과 성품은 어진 이가 적고 못난 이가 많은데, 위엄과 세의 이로움으로 어지러운 세상의 못난 사람을 건네주면 이는 세로 천하를 어지럽히는 이가 많고 세로 천하를 다스리는 이가 적은 것이다. 무릇 세란 다스림에 편하고 어지러움에도 이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주서」에 이르기를 「범에게 날개를 붙이지 말라. 장차 날아 고을에 들어 사람을 가려 먹을 것이다」 하였다. 무릇 못난 사람을 세에 태움은 범에게 날개를 붙이는 것이다. 걸과 주는 높은 대와 깊은 못을 만들어 백성의 힘을 다하게 하고 포락을 만들어 백성의 성품을 상하게 하였는데, 걸과 주가 마음대로 행할 수 있었음은 남면의 위엄이 날개가 되어서다. 걸과 주가 필부였다면 하나도 행하기 전에 몸이 형벌과 죽임에 있었을 것이다. 세란 범과 이리의 마음을 기르고 사납고 어지러운 일을 이루는 것이니 이는 천하의 큰 근심이다. 세는 다스림과 어지러움에 본디 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은데, 말하는 이가 오로지 세만으로 천하를 다스리기에 넉넉하다 하니 그 슬기가 이른 바가 얕다.
夫良馬固車,使臧獲御之則爲人笑,玉良御之而日取千里。車馬非異也,或至乎千里,或爲人笑,則巧拙相去遠矣。今以國位爲車,以勢爲馬,以號令爲轡,以刑罰爲鞭筴,使堯、舜御之則天下治,桀、紂御之則天下亂,則賢不肖相去遠矣。夫欲追速致遠,不知任王良;欲進利除害,不知任賢能,此則不知類之患也。夫堯、舜亦治民之王良也。
무릇 좋은 말과 굳은 수레도 종에게 몰게 하면 남의 웃음거리가 되고 왕량이 몰면 날마다 천 리를 간다. 수레와 말이 다른 것이 아닌데 혹 천 리에 이르고 혹 남의 웃음거리가 되니 교묘함과 서툶의 서로 떨어짐이 멀다. 이제 나라의 자리로 수레를 삼고 세로 말을 삼으며 호령으로 고삐를 삼고 형벌로 채찍을 삼아, 요와 순이 몰면 천하가 다스려지고 걸과 주가 몰면 천하가 어지러우니 어짊과 못남의 서로 떨어짐이 멀다. 무릇 빨리 좇아 멀리 이르려 하면서 왕량에게 맡길 줄 모르고, 이로움을 나아가게 하고 해로움을 없애려 하면서 어질고 능한 이에게 맡길 줄 모르니, 이는 무리를 알지 못하는 근심이다. 무릇 요와 순은 또한 백성을 다스리는 왕량이다.
復應之曰:其人以勢爲足恃以治官;客曰「必待賢乃治」,則不然矣。夫勢者,名一而變無數者也。勢必於自然,則無爲言於勢矣。吾所爲言勢者,言人之所設也。夫堯、舜生而在上位,雖有十桀紂不能亂者,則勢治也;桀、紂亦生而在上位,雖有十堯舜而亦不能治者,則勢亂也。故曰:「勢治者則不可亂,而勢亂者則不可治也。」此自然之勢也,非人之所得設也。若吾所言,謂人之所得設也而已矣,賢何事焉?何以明其然也?客曰:「人有鬻矛與楯者,譽其楯之堅:『物莫能陷也。』俄而又譽其矛曰:『吾矛之利,物無不陷也。』人應之曰:『以子之矛,陷子之楯,何如?』其人弗能應也。」以爲不可陷之楯,與無不陷之矛,爲名不可兩立也。夫賢之爲道不可禁,而勢之爲道也無不禁,以不可禁之賢與無不禁之勢,此矛楯之說也。夫賢勢之不相客亦明矣。
다시 응하여 말한다. 그 사람은 세로 벼슬을 다스리기에 믿기 넉넉하다 하고, 손님은 「반드시 어진 이를 기다려야 다스려진다」 하니 그렇지 않다. 무릇 세란 이름은 하나이나 변화가 수없는 것이다. 세가 반드시 절로 그러함에서 나온다면 세를 말할 것이 없다. 내가 세를 말하는 바는 사람이 베푸는 바를 말한다. 무릇 요와 순이 나면서 윗자리에 있으면 비록 열 걸과 주가 있어도 어지럽힐 수 없으니 세가 다스려짐이요, 걸과 주도 나면서 윗자리에 있으면 비록 열 요와 순이 있어도 또한 다스릴 수 없으니 세가 어지러움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세가 다스려지면 어지럽힐 수 없고 세가 어지러우면 다스릴 수 없다」 한다. 이는 절로 그러한 세라 사람이 베풀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바 같은 것은 사람이 베풀 수 있는 바를 이를 뿐이니 어짊이 무슨 일을 하겠는가. 무엇으로 그러함을 밝히겠는가. 손님이 말하였다. 「사람 가운데 창과 방패를 파는 이가 있어 그 방패의 굳음을 기려 『무엇도 뚫을 수 없다』 하더니, 얼마 뒤 또 그 창을 기려 『내 창의 날카로움은 뚫지 못할 것이 없다』 하였다. 사람이 응하여 말하기를 『그대의 창으로 그대의 방패를 뚫으면 어떠한가?』 하니 그 사람이 응하지 못하였다.」 뚫을 수 없는 방패와 뚫지 못함이 없는 창은 이름이 둘 다 설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무릇 어짊이 길이 됨은 금할 수 없고 세가 길이 됨은 금하지 못함이 없으니, 금할 수 없는 어짊과 금하지 못함이 없는 세는 이것이 창과 방패의 설이다. 무릇 어짊과 세가 서로 받아들이지 못함이 또한 분명하다.
且夫堯、舜、桀、紂千世而一出,是比肩隨踵而生也。世之治者不絶於中,吾所以爲言勢者,中也。中者,上不及堯、舜,而下亦不爲桀、紂。抱法處勢則治,背法去勢則亂。今廢勢背法而待堯、舜,堯、舜至乃治,是千世亂而一治也。抱法處勢而待桀、紂,桀、紂至乃亂,是千世治而一亂也。且夫治千而亂一,與治一而亂千也,是猶乘驥、駬而分馳也,相去亦遠矣。夫弃隱栝之法,去度量之數,使奚仲爲車,不能成一輪。無慶賞之勸,刑罰之威,釋勢委法,堯、舜户說而人辨之,不能治三家。夫勢之足用亦明矣,而曰「必待賢」,則亦不然矣。
또 무릇 요와 순과 걸과 주는 천 세대에 한 번 나오니 이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꿈치를 이어 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의 다스리는 이는 중간에서 끊이지 않으니, 내가 세를 말하는 바는 중간이다. 중간이란 위로 요와 순에 미치지 못하고 아래로 또한 걸과 주가 되지도 않는다. 법을 안고 세에 처하면 다스려지고 법을 등지고 세를 버리면 어지럽다. 이제 세를 폐하고 법을 등지고 요와 순을 기다려, 요와 순이 이르러야 다스려진다면 이는 천 세대가 어지럽고 한 번 다스려짐이다. 법을 안고 세에 처하여 걸과 주를 기다려, 걸과 주가 이르러야 어지럽다면 이는 천 세대가 다스려지고 한 번 어지러움이다. 또 무릇 천 번 다스리고 한 번 어지러움과 한 번 다스리고 천 번 어지러움은, 기기와 녹이를 타고 갈라져 달림과 같으니 서로 떨어짐이 또한 멀다. 무릇 도지개의 법을 버리고 도량의 수를 놓으면 해중에게 수레를 만들게 하여도 바퀴 하나를 이루지 못한다. 경사와 상의 권함과 형벌의 위엄이 없이 세를 놓고 법을 버리면, 요와 순이 집집이 말하고 사람마다 가려 주어도 세 집을 다스릴 수 없다. 무릇 세가 쓰기에 넉넉함이 또한 분명한데 「반드시 어진 이를 기다려야 한다」 하니 또한 그렇지 않다.
且夫百日不食以待粱肉,餓者不活;今待堯、舜之賢乃治當世之民,是猶待粱肉而救餓之說也。夫曰「良馬固車,臧獲御之則爲人笑,王良御之則日取乎千里」,吾不以爲然。夫待越人之善海遊者以救中國之溺人,越人善遊矣,而溺者不濟矣。夫待古之王良以馭今之馬,亦猶越人救溺之說也,不可亦明矣。夫良馬固車,五十里而一置,使中手御之,追速致遠,可以及也,而千里可日致也,何必待古之王良乎?且御,非使王良也,則必使臧獲敗之;治,非使堯、舜也,則必使桀、紂亂之。此味非飴蜜也,必苦萊、亭歴也。此則積辯累辭,離理失術,兩末之議也,奚可以難夫道理之言乎哉?客議未及此論也。
또 무릇 백 날을 먹지 않고 좋은 밥과 고기를 기다리면 주린 이가 살지 못한다. 이제 요와 순의 어짊을 기다려 오늘 세상의 백성을 다스리려 함은 좋은 밥과 고기를 기다려 주림을 구하려는 설과 같다. 무릇 「좋은 말과 굳은 수레도 종이 몰면 남의 웃음거리가 되고 왕량이 몰면 날마다 천 리를 간다」 함을 나는 그렇다 여기지 않는다. 무릇 바다에서 헤엄 잘 치는 월나라 사람을 기다려 중원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 하면, 월나라 사람이 헤엄을 잘 쳐도 빠진 이는 건져지지 못한다. 무릇 옛 왕량을 기다려 오늘의 말을 몰려 함은 또한 월나라 사람으로 빠진 이를 구하려는 설과 같으니 안 됨이 또한 분명하다. 무릇 좋은 말과 굳은 수레를 오십 리마다 하나씩 두고 중간쯤 되는 솜씨에게 몰게 하면, 빨리 좇아 멀리 이름에 미칠 수 있고 천 리도 날로 이를 수 있으니 어찌 반드시 옛 왕량을 기다리겠는가. 또 모는 일이 왕량을 시키지 않으면 반드시 종을 시켜 무너뜨린다 하고, 다스림이 요와 순을 시키지 않으면 반드시 걸과 주를 시켜 어지럽힌다 함은, 이 맛이 엿과 꿀이 아니면 반드시 쓴 나물과 정력이라는 것이다. 이는 말솜씨를 쌓고 말을 포갠 것이라 이치를 떠나고 술을 잃은 두 끝의 의논이니, 어찌 저 도리의 말을 논박할 수 있겠는가. 손님의 의논은 이 논에 미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