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定法

한비자 韓非子 · 한비(韓非)와 후학 · 기원전 3세기 · 단락 6 · 한자 857자 · 낭독 3.4분

「한비자」 정법 「定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법가가 한자리에 모인 책이다. 상앙의 법(法)과 신불해의 술(術)과 신도의 세(勢)를 한비가 받아 하나로 엮었다. 사람은 착해서 착한 것이 아니라 그름을 할 수 없어 착하다고 보고, 임금이 기댈 것은 어짊이 아니라 법과 술과 세라고 말한다. 모순(矛盾)이 여기서 나왔다. 뚫지 못할 방패와 뚫지 못함이 없는 창을 함께 파는 초나라 사람 이야기로 요와 순을 함께 기릴 수 없음을 보였고, 난세에서 다시 한 번 어짊과 세를 두고 같은 비유를 든다.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 송나라 사람(수주대토)과 발이 두 번 잘리고서야 옥으로 인정받은 화씨의 벽옥도 이 책의 이야기다. 말하기의 어려움을 다룬 세난(說難)에는 용의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 이야기가 있다. 임금에게도 그런 비늘이 있어 건드리면 죽는다는 것인데, 정작 한비 자신이 진나라에서 옥에 갇혀 죽었다. 존한(存韓)에는 한비가 진왕에게 올린 글과, 그 바로 뒤에 이사가 「한비는 한나라를 위해 온 자이니 돌려보내지 말라」고 올린 글이 나란히 실려 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몬 문서가 그 사람의 책에 함께 남았다.

問者曰:「申不害、公孫鞅,此二家之言孰急於國?」

묻는 이가 말하였다. 「신불해와 공손앙, 이 두 집의 말 가운데 어느 것이 나라에 급한가?」

應之曰:「是不可程也。人不食,十日則死;大寒之隆,不衣亦死。謂之衣食孰急於人,則是不可一無也,皆養生之具也。今申不害言術而公孫鞅爲法。術者,因任而授官,循名而責實,操殺生之柄,課羣臣之能者也。此人主之所執也。法者,憲令著於官府,刑罰必於民心,賞存乎慎法,而罰加乎姦令者也。此臣之所師也。君無術則弊於上,臣無法則亂於下,此不可一無,皆帝王之具也。」

응하여 말하였다. 「이는 견줄 수 없다. 사람이 먹지 않으면 열흘이면 죽고, 큰 추위가 심할 때 입지 않아도 죽는다. 옷과 밥 가운데 어느 것이 사람에게 급한가 하면 이는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니 다 삶을 기르는 도구다. 이제 신불해는 술을 말하고 공손앙은 법을 하였다. 술이란 맡김을 따라 벼슬을 주고 이름을 좇아 실지를 책하며, 죽이고 살리는 자루를 잡고 뭇 신하의 능함을 매기는 것이니 이는 임금이 잡을 바다. 법이란 헌령을 관청에 드러내고 형벌을 백성 마음에 반드시 하며, 상은 법을 삼가는 데 있고 벌은 명령을 간사히 어긴 이에게 더하는 것이니 이는 신하가 스승 삼을 바다. 임금에게 술이 없으면 위에서 가려지고 신하에게 법이 없으면 아래에서 어지러우니, 이는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며 다 제왕의 도구다.」

問者曰:「徒術而無法,徒法而無術,其不可何哉?」

묻는 이가 말하였다. 「다만 술만 있고 법이 없거나 다만 법만 있고 술이 없으면 안 됨은 어째서인가?」

對曰:「申不害,韓昭侯之佐也。韓者,晉之別國也。晉之故法未息,而韓之新法又生;先君之令未收,而後君之令又下。申不害不擅其法,不一其憲令,則姦多。故利在故法前令則道之,利在新法後令則道之,利在故新相反,前後相勃,則申不害雖十使昭侯用術,而姦臣猶有所譎其辭矣。故託萬乘之勁韓,十七年而不至於霸王者,雖用術於上,法不勤飾於官之患也。公孫鞅之治秦也,設告相坐而責其實,連什伍而同其罪,賞厚而信,刑重而必。是以其民用力勞而不休,逐敵危而不却,故其國富而兵強;然而無術以知姦,則以其富強也資人臣而已矣。及孝公、商君死,惠王即位,秦法未敗也,而張儀以秦殉韓、魏。惠王死,武王即位,甘茂以秦殉周。武王死,昭襄王即位,穰侯越韓、魏而東攻齊,五年而秦不益尺土之地,乃城其陶邑之封。應侯攻韓八年,成其汝南之封。自是以來,諸用秦者,皆應、穰之類也。故戰勝則大臣尊,益地則私封立,主無術以知姦也。商君雖十飾其法,人臣反用其資。故乘強秦之資數十年而不至於帝王者,法雖勤飾於官,主無術於上之患也。

대답하였다. 「신불해는 한나라 소후를 도운 이다. 한나라는 진(晉)나라에서 갈라진 나라다. 진(晉)나라의 옛 법이 그치지 않았는데 한나라의 새 법이 또 생기고, 선군의 명령이 거두어지지 않았는데 뒤 임금의 명령이 또 내려졌다. 신불해가 그 법을 오로지하지 않고 그 헌령을 하나로 하지 않으니 간사함이 많았다. 그러므로 이로움이 옛 법과 앞선 명령에 있으면 그것을 말하고, 이로움이 새 법과 뒤의 명령에 있으면 그것을 말하며, 이로움이 옛것과 새것이 서로 반대되고 앞뒤가 서로 어그러지는 데 있으면, 신불해가 비록 열 번 소후에게 술을 쓰게 하여도 간사한 신하가 오히려 그 말을 속일 데가 있었다. 그러므로 만승의 굳센 한나라에 기대고도 열일곱 해에 패왕에 이르지 못하였음은, 비록 위에서 술을 썼으나 법이 관청에서 부지런히 닦이지 않은 근심이다. 공손앙이 진(秦)나라를 다스릴 때 고발하고 서로 연좌하는 법을 베풀어 그 실지를 책하고, 열 집과 다섯 집을 이어 그 죄를 같이하며, 상이 두텁고 미더우며 형벌이 무겁고 반드시 행해졌다. 이 때문에 그 백성이 힘써 수고롭게 일하며 쉬지 않고 적을 좇아 위태로워도 물러나지 않았으므로 나라가 부유하고 군사가 강해졌다. 그러나 간사함을 알 술이 없으니 그 부유하고 강함으로 신하에게 밑천을 대 준 것일 뿐이었다. 효공과 상군이 죽고 혜왕이 즉위함에 미쳐 진(秦)나라 법이 무너지지 않았는데도 장의가 진(秦)나라를 한나라와 위나라에 바쳤다. 혜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감무가 진(秦)나라를 주나라에 바쳤다. 무왕이 죽고 소양왕이 즉위하자 양후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넘어 동으로 제나라를 쳤는데, 다섯 해에 진(秦)나라가 한 자 땅도 더하지 못하고 이에 제 도읍 도 땅의 봉지에 성을 쌓았다. 응후가 한나라를 여덟 해 쳐서 제 여남의 봉지를 이루었다. 이 뒤로 진(秦)나라에서 쓰인 이들이 다 응후와 양후의 무리였다. 그러므로 싸워 이기면 대신이 높아지고 땅을 더하면 사사로운 봉지가 서니, 임금에게 간사함을 알 술이 없어서다. 상군이 비록 열 번 그 법을 꾸며도 신하가 도리어 그 밑천을 썼다. 그러므로 강한 진(秦)나라의 밑천을 타고 수십 년에 제왕에 이르지 못하였음은, 법이 비록 관청에서 부지런히 닦였으나 임금에게 위에서 술이 없던 근심이다.」

問者曰:「主用申子之術,而官行商君之法,可乎?」

묻는 이가 말하였다. 「임금이 신자의 술을 쓰고 관청이 상군의 법을 행하면 되겠는가?」

對曰:「申子未盡於術,商君未盡於法也。申子言:『治不踰官,雖知弗言。』法不踰官,謂之守職也可;知而弗言,是不謂過也。人主以一國目視,故視莫明焉;以一國耳聽,故聽莫聰焉。今知而弗言,則人主尚安假借矣?商君之法曰:『斬一首者爵一級,欲爲官者爲五十石之官;斬二首者爵二級,欲爲官者爲百石之官。』官爵之遷與斬首之功相稱也。今有法曰:『斬首者令爲醫、匠。』則屋不成而病不已。夫匠者手巧也,而醫者齊藥也,而以斬首之功爲之,則不當其能。今治官者,智能也;今斬首者,勇力之所加也。以勇力之所加而治智能之官,是以斬首之功爲醫、匠也。故曰:二子之於法術,皆未盡善也。」

대답하였다. 「신자는 술에 다하지 못하였고 상군은 법에 다하지 못하였다. 신자가 말하기를 『다스림은 벼슬을 넘지 않으니 비록 알아도 말하지 않는다』 하였다. 법이 벼슬을 넘지 않음을 직분을 지킨다 함은 괜찮으나, 알면서 말하지 않음은 허물이 아니라 이를 수 없다. 임금은 한 나라의 눈으로 보므로 봄에 그보다 밝은 것이 없고 한 나라의 귀로 들으므로 들음에 그보다 총명한 것이 없다. 이제 알면서 말하지 않으면 임금이 오히려 무엇을 빌리겠는가. 상군의 법에 이르기를 『머리 하나를 벤 이는 작위 한 등급을 주고 벼슬하려 하면 오십 섬의 벼슬을 주며, 머리 둘을 벤 이는 작위 두 등급을 주고 벼슬하려 하면 백 섬의 벼슬을 준다』 하였다. 벼슬과 작위의 옮김이 머리 벤 공과 서로 걸맞다. 이제 법에 이르기를 『머리 벤 이를 의원과 목수로 삼으라』 하면 집이 이루어지지 않고 병이 낫지 않는다. 무릇 목수는 손이 교묘하고 의원은 약을 고르는데, 머리 벤 공으로 그것을 하게 하면 그 능함에 맞지 않는다. 이제 벼슬을 다스림은 슬기와 능함이요 머리를 벰은 용맹과 힘을 더한 것이다. 용맹과 힘을 더한 것으로 슬기와 능함의 벼슬을 다스림은 머리 벤 공으로 의원과 목수를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두 사람이 법과 술에 다 아직 다 좋지 못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