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한비자 › 궤사

詭使

한비자 韓非子 · 한비(韓非)와 후학 · 기원전 3세기 · 단락 6 · 한자 1,469자 · 낭독 5.9분

「한비자」 궤사 「詭使」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법가가 한자리에 모인 책이다. 상앙의 법(法)과 신불해의 술(術)과 신도의 세(勢)를 한비가 받아 하나로 엮었다. 사람은 착해서 착한 것이 아니라 그름을 할 수 없어 착하다고 보고, 임금이 기댈 것은 어짊이 아니라 법과 술과 세라고 말한다. 모순(矛盾)이 여기서 나왔다. 뚫지 못할 방패와 뚫지 못함이 없는 창을 함께 파는 초나라 사람 이야기로 요와 순을 함께 기릴 수 없음을 보였고, 난세에서 다시 한 번 어짊과 세를 두고 같은 비유를 든다.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 송나라 사람(수주대토)과 발이 두 번 잘리고서야 옥으로 인정받은 화씨의 벽옥도 이 책의 이야기다. 말하기의 어려움을 다룬 세난(說難)에는 용의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 이야기가 있다. 임금에게도 그런 비늘이 있어 건드리면 죽는다는 것인데, 정작 한비 자신이 진나라에서 옥에 갇혀 죽었다. 존한(存韓)에는 한비가 진왕에게 올린 글과, 그 바로 뒤에 이사가 「한비는 한나라를 위해 온 자이니 돌려보내지 말라」고 올린 글이 나란히 실려 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몬 문서가 그 사람의 책에 함께 남았다.

聖人之所以爲治道者三:一曰「利」,二曰「威」,三曰「名」。夫利者,所以得民也;威者,所以行令也;名者,上下之所同道也。非此三者,雖有不急矣。今利非無有也,而民不化上;威非不存也,而下不聽從;官非無法也,而治不當名。三者非不存也,而世一治一亂者,何也?夫上之所貴與其所以爲治相反也。

성인이 다스림의 길로 삼는 것이 셋이다. 첫째는 「이로움」이요 둘째는 「위엄」이며 셋째는 「이름」이다. 무릇 이로움은 백성을 얻는 까닭이요, 위엄은 명령을 행하는 까닭이며, 이름은 위와 아래가 함께 가는 길이다. 이 셋이 아니면 비록 있어도 급하지 않다. 이제 이로움이 없지 않은데 백성이 위에 교화되지 않고, 위엄이 있지 않은 것이 아닌데 아래가 듣고 따르지 않으며, 관청에 법이 없지 않은데 다스림이 이름에 맞지 않는다. 셋이 있지 않은 것이 아닌데 세상이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어지러움은 어째서인가. 무릇 위가 귀히 여기는 바가 그 다스림이 되는 까닭과 서로 반대여서다.

夫立名號,所以爲尊也;今有賤名輕實者,世謂之「高」。設爵位,所以爲賤貴基也;而簡上不求見者,世謂之「賢」。威利,所以行令也;而無利輕威者,世謂之「重」。法令,所以爲治也;而不從法令爲私善者,世謂之「忠」。官爵,所以勸民也;而好名義不進仕者,世謂之「烈士」。刑罰,所以擅威也;而輕法不避刑戮死亡之罪者,世謂之「勇夫」。民之急名也,甚其求利也;如此,則士之饑餓乏絶者,焉得無巖居苦身以爭名於天下哉?故世之所以不治者,非下之罪,上失其道也。常貴其所以亂,而賤其所以治,是故下之所欲,常與上之所以爲治相詭也。

무릇 이름과 칭호를 세움은 높임을 삼으려 함인데, 이제 이름을 천히 여기고 실지를 가벼이 하는 이를 세상이 「높다」 한다. 작위와 자리를 베풂은 천하고 귀함의 터를 삼으려 함인데, 위를 소홀히 하고 뵙기를 구하지 않는 이를 세상이 「어질다」 한다. 위엄과 이로움은 명령을 행하는 까닭인데, 이로움이 없고 위엄을 가벼이 여기는 이를 세상이 「무겁다」 한다. 법령은 다스림이 되는 까닭인데, 법령을 좇지 않고 사사로운 착함을 하는 이를 세상이 「충성되다」 한다. 벼슬과 작위는 백성을 권하는 까닭인데, 이름과 의를 좋아하여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이를 세상이 「열사」라 한다. 형벌은 위엄을 오로지하는 까닭인데, 법을 가벼이 여겨 형벌과 죽음의 죄를 피하지 않는 이를 세상이 「용맹한 사내」라 한다. 백성이 이름에 급함이 이로움 구함보다 심하니, 이러하면 선비 가운데 주리고 궁핍한 이가 어찌 바위에 살며 몸을 괴롭혀 천하에 이름을 다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이 다스려지지 않는 까닭은 아래의 죄가 아니라 위가 그 도를 잃어서다. 늘 어지러워지는 까닭을 귀히 여기고 다스려지는 까닭을 천히 여기니, 이 때문에 아래가 바라는 바가 늘 위가 다스림으로 삼는 바와 서로 어긋난다.

今下而聽其上,上之所急也。而惇慤純信,用心怯言,則謂之「窶」。守法固,聽令審,則謂之「愚」。敬上畏罪,則謂之「怯」。言時節,行中適,則謂之「不肖」。無二心私學,聽吏從教者,則謂之「陋」。

이제 아래가 그 위의 말을 들음은 위가 급히 여기는 바다. 그런데 도탑고 성실하며 순수하고 미더워 마음을 쓰되 말을 삼가면 「궁상맞다」 하고, 법을 굳게 지키고 명령을 살펴 들으면 「어리석다」 하며, 위를 공경하고 죄를 두려워하면 「겁쟁이」라 하고, 말이 때에 맞고 행실이 알맞으면 「못났다」 하며, 두 마음과 사사로운 배움이 없어 아전의 말을 듣고 가르침을 좇으면 「비루하다」 한다.

難致謂之「正」,難予謂之「廉」,難禁謂之「齊」,有令不聽從謂之「勇」,無利於上謂之「愿」,少欲、寛惠、行德謂之「仁」,重厚自尊謂之「長者」,私學成羣謂之「師徒」,閑静安居謂之「有思」,損仁逐利謂之「疾」,險躁佻反覆謂之「智」,先爲人而後自爲、類名號、言汎愛天下謂之「聖」,言大本、稱而不可用、行而乖於世者謂之「大人」,賤爵祿、不撓上者謂之「傑」。下漸行如此,入則亂民,出則不便也。上宜禁其欲,滅其迹,而不止也,又從而尊之,是教下亂上以爲治也。

오게 하기 어려움을 「바르다」 하고, 주기 어려움을 「청렴하다」 하며, 금하기 어려움을 「가지런하다」 하고, 명령이 있어도 듣고 따르지 않음을 「용맹하다」 하며, 위에 이로움이 없음을 「성실하다」 하고, 바람이 적고 너그럽고 은혜로우며 덕을 행함을 「어질다」 하며, 무겁고 두터워 스스로 높임을 「어른」이라 하고, 사사로운 배움으로 무리를 이룸을 「스승과 제자」라 하며, 한가로이 고요히 지냄을 「생각이 있다」 하고, 어짊을 덜고 이로움을 좇음을 「빠르다」 하며, 험하고 조급하며 가볍게 뒤집음을 「슬기롭다」 하고, 남을 먼저 하고 저를 뒤로 하며 이름과 칭호를 무리 지어 천하를 두루 사랑한다고 말함을 「성스럽다」 하며, 큰 근본을 말하되 일컬어도 쓸 수 없고 행하면 세상에 어긋나는 이를 「대인」이라 하고, 작위와 녹을 천히 여겨 위에 굽히지 않는 이를 「호걸」이라 한다. 아래의 스며든 행실이 이와 같으면 들어와서는 백성을 어지럽히고 나가서는 편하지 않다. 위가 마땅히 그 바람을 금하고 그 자취를 없애야 하는데 그치지 않고 또 좇아 높이니, 이는 아래에게 위를 어지럽히기를 가르쳐 다스림으로 삼는 것이다.

凡上之所以治者,刑罰也,今有私行義者尊。社稷之所以立者,安静也,而躁險讒諛者任。四封之内所以聽從者,信與德也,而陂知傾覆者使。令之所以行,威之所以立者,恭儉聽上也,而巖居非世者顯。倉廩之所以實者,耕農之本務也,而綦組、錦繡、刻畫爲末作者富。名之所以成,城池之所以廣者,戰士也,今死士之孤飢餓乞於道,而優笑酒徒之屬乘車衣絲。賞祿,所以盡民力、易下死也,今戰勝攻取之士勞而賞不霑,而卜筮、視手理、狐蠱爲順辭於前者日賜。上握度量,所以擅生殺之柄也,今守度奉量之士欲以忠嬰上而不得見,巧言利辭行姦軌以倖偷世者數御。據法直言,名刑相當,循䋲墨,誅姦人,所以爲上治也,而愈疏遠,諂施順意從欲以危世者近習。悉租稅,專民力,所以備難充倉府也,而士卒之逃事伏匿、附託有威之門以避傜賦而上不得者萬數。夫陳善田利宅,所以戰士卒也,而斷頭裂腹、播骨乎平原野者,無宅容身,身死田奪,而女妹有色、大臣左右無功者,擇宅而受,擇田而食。賞利一從上出,所以善制下也,而戰介之士不得職,而間居之士尊顯。上以此爲教,名安得無卑,位安得無危?夫卑名危位者,必下之不從法令、有二心務私學反逆世者也,而不禁其行、不破其羣以散其黨,又從而尊之,用事者過矣。上之所以立廉恥者,所以厲下也,今士大夫不羞汙泥醜辱而宦,女妹私義之門不待次而宦。賞賜,所以爲重也,而戰鬬有功之士貧賤,而便辟優徒超級。名號誠信,所以通威也,而主揜障,近習女謁竝行,百官主爵遷人,用事者過矣。大臣官人,與下先謀比周,雖不法行,威利在下,則主卑而大臣重矣。

무릇 위가 다스리는 까닭은 형벌인데 이제 사사로이 의를 행하는 이가 높다. 사직이 서는 까닭은 편안하고 고요함인데 조급하고 험하며 참소하고 아첨하는 이가 맡는다. 사방 봉토 안이 듣고 따르는 까닭은 믿음과 덕인데 치우쳐 슬기롭고 뒤집기 잘하는 이가 부려진다. 명령이 행해지고 위엄이 서는 까닭은 공손하고 검소하며 위의 말을 들음인데 바위에 살며 세상을 그르다 하는 이가 드러난다. 곳간이 차는 까닭은 밭 갈고 농사함이 근본의 힘씀인데, 끈과 비단 수와 새기고 그리는 끝의 일을 하는 이가 부유하다. 이름이 이루어지고 성과 못이 넓어지는 까닭은 싸우는 군사인데, 이제 죽은 군사의 고아가 주려 길에서 빌고 광대와 술꾼의 무리가 수레를 타고 비단을 입는다. 상과 녹은 백성의 힘을 다하게 하고 아래가 쉽게 죽게 하는 까닭인데, 이제 싸워 이기고 쳐서 얻은 군사가 수고하고도 상이 젖지 않고, 점치고 손금 보고 여우 홀림으로 앞에서 순한 말을 하는 이가 날마다 내림을 받는다. 위가 도량을 잡음은 죽이고 살리는 자루를 오로지하는 까닭인데, 이제 법도를 지키고 되를 받드는 선비가 충성으로 위를 두르려 하여도 뵙지 못하고, 교묘한 말과 이로운 말솜씨로 간사한 짓을 행하며 요행으로 세상을 훔치는 이가 자주 나아온다. 법에 근거하여 곧게 말하고 이름과 형벌이 서로 맞으며 먹줄을 좇아 간사한 사람을 벰은 위의 다스림이 되는 까닭인데, 그런 이가 더욱 멀어지고 아첨하며 뜻을 좇고 바람을 따라 세상을 위태롭게 하는 이가 임금 곁에 가까워진다. 조세를 다 거두고 백성의 힘을 오로지함은 어려움에 대비하고 곳간을 채우는 까닭인데, 군졸이 일을 피해 엎드려 숨고 위엄 있는 집에 붙어 부역과 세를 피하여 위가 얻지 못하는 이가 만으로 헤아려진다. 무릇 좋은 밭과 이로운 집을 벌여 둠은 군졸을 싸우게 하는 까닭인데, 머리가 끊어지고 배가 갈라져 들판에 뼈를 뿌린 이는 몸을 담을 집이 없고 몸이 죽자 밭을 빼앗기며, 딸과 누이로 얼굴이 고운 이와 대신과 좌우로 공 없는 이가 집을 골라 받고 밭을 골라 먹는다. 상과 이로움이 한결같이 위에서 나옴은 아래를 잘 제어하는 까닭인데, 갑옷 입고 싸우는 군사는 직임을 얻지 못하고 한가로이 사는 선비가 높고 드러난다. 위가 이로써 가르치니 이름이 어찌 낮지 않을 수 있고 자리가 어찌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이름을 낮추고 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이는 반드시 아래에서 법령을 좇지 않고 두 마음을 가지며 사사로운 배움에 힘써 세상을 거스르는 이들인데, 그 행실을 금하지 않고 그 무리를 깨뜨려 붕당을 흩지 않으며 또 좇아 높이니 일 맡은 이의 허물이다. 위가 청렴과 부끄러움을 세움은 아래를 가다듬는 까닭인데, 이제 사대부가 더러운 진흙과 추한 욕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벼슬하며, 여자 형제와 사사로운 의로 맺어진 문에 있는 이가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벼슬한다. 상과 내림은 무거움을 삼는 까닭인데 싸워 공 있는 군사가 가난하고 천하며, 아첨하는 이와 광대 무리가 등급을 뛰어넘는다. 이름과 칭호와 참된 믿음은 위엄을 통하게 하는 까닭인데, 임금이 가려지고 막혀 임금 곁에 가까운 이와 여자의 청탁이 아울러 행해지며, 백관과 작위를 맡은 이가 사람을 옮기니 일 맡은 이의 허물이다. 대신이 사람에게 벼슬을 주며 아래와 먼저 꾀하고 무리 지어, 비록 법대로 행하지 않아도 위엄과 이로움이 아래에 있으면 임금이 낮아지고 대신이 무거워진다.

夫立法令者,以廢私也,法令行而私道廢矣。私者,所以亂法也。而士有二心私學、巖居窞路、託伏深慮,大者非世,細者惑下,上不禁,又從而尊之以名,化之以實,是無功而顯,無勞而富也。如此,則士之有二心私學者,焉得無深慮、勉知詐與誹謗法令,以求索與世相反者也?凡亂上反世者,常士有二心私學者也。故《本言》曰:「所以治者,法也;所以亂者,私也。法立,則莫得爲私矣。」故曰:道私者亂,道法者治。上無其道,則智者有私詞,賢者有私意。上有私惠,下有私欲,聖智成羣,造言作辭,以非法措於上。上不禁塞,又從而尊之,是教下不聽上、不從法也。是以賢者顯名而居,姦人賴賞而富。賢者顯名而居,姦人賴賞而富,是以上不勝下也。

무릇 법령을 세움은 사사로움을 폐하려 함이니, 법령이 행해지면 사사로운 길이 폐한다. 사사로움이란 법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그런데 선비 가운데 두 마음과 사사로운 배움을 가지고 바위에 살며 굴에 엎드려 깊이 생각한다며, 크게는 세상을 그르다 하고 작게는 아래를 홀리는 이가 있는데, 위가 금하지 않고 또 좇아 이름으로 높이며 실지로 교화하니, 이는 공 없이 드러나고 수고 없이 부유해지는 것이다. 이러하면 두 마음과 사사로운 배움을 가진 선비가 어찌 깊이 생각하고 슬기와 속임에 힘써 법령을 헐뜯고 세상과 반대되는 것을 구하지 않겠는가. 무릇 위를 어지럽히고 세상을 거스르는 이는 늘 두 마음과 사사로운 배움을 가진 선비다. 그러므로 「본언」에 이르기를 「다스려지는 까닭은 법이요 어지러워지는 까닭은 사사로움이다. 법이 서면 사사로이 할 수 있는 이가 없다」 하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사사로움을 말하는 이는 어지럽고 법을 말하는 이는 다스려진다 한다. 위에 그 도가 없으면 슬기로운 이에게 사사로운 말이 있고 어진 이에게 사사로운 뜻이 있다. 위에 사사로운 은혜가 있고 아래에 사사로운 바람이 있어, 성스럽고 슬기롭다는 이들이 무리를 이루어 말을 지어내고 법 아닌 것으로 위에 두려 한다. 위가 금하고 막지 않고 또 좇아 높이니, 이는 아래에게 위의 말을 듣지 말고 법을 좇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어질다는 이가 이름을 드러내고 살며 간사한 사람이 상에 힘입어 부유하다. 어질다는 이가 이름을 드러내고 살며 간사한 사람이 상에 힘입어 부유하니, 이 때문에 위가 아래를 이기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