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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反

한비자 韓非子 · 한비(韓非)와 후학 · 기원전 3세기 · 단락 7 · 한자 2,289자 · 낭독 9.2분

「한비자」 육반 「六反」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법가가 한자리에 모인 책이다. 상앙의 법(法)과 신불해의 술(術)과 신도의 세(勢)를 한비가 받아 하나로 엮었다. 사람은 착해서 착한 것이 아니라 그름을 할 수 없어 착하다고 보고, 임금이 기댈 것은 어짊이 아니라 법과 술과 세라고 말한다. 모순(矛盾)이 여기서 나왔다. 뚫지 못할 방패와 뚫지 못함이 없는 창을 함께 파는 초나라 사람 이야기로 요와 순을 함께 기릴 수 없음을 보였고, 난세에서 다시 한 번 어짊과 세를 두고 같은 비유를 든다.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 송나라 사람(수주대토)과 발이 두 번 잘리고서야 옥으로 인정받은 화씨의 벽옥도 이 책의 이야기다. 말하기의 어려움을 다룬 세난(說難)에는 용의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 이야기가 있다. 임금에게도 그런 비늘이 있어 건드리면 죽는다는 것인데, 정작 한비 자신이 진나라에서 옥에 갇혀 죽었다. 존한(存韓)에는 한비가 진왕에게 올린 글과, 그 바로 뒤에 이사가 「한비는 한나라를 위해 온 자이니 돌려보내지 말라」고 올린 글이 나란히 실려 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몬 문서가 그 사람의 책에 함께 남았다.

畏死遠難,降北之民也,而世尊之曰「貴生之士」。學道立方,離法之民也,而世尊之曰「文學之士」。遊居厚養,牟食之民也,而世尊之曰「有能之士」。語曲牟知,僞詐之民也,而世尊之曰「辯智之士」。行劒攻殺,暴憿之民也,而世尊之曰「磏勇之士」。活賊匿姦,當死之民也,而世尊之曰「任譽之士」。此六民者,世之所譽也。赴險殉誠,死節之民,而世少之曰「失計之民」也。寡聞從令,全法之民也,而世少之曰「樸陋之民」也。力作而食,生利之民也,而世少之曰「寡能之民」也。嘉厚純粹,整穀之民也,而世少之曰「愚戇之民」也。重命畏事,尊上之民也,而世少之曰「怯懾之民」也。挫賊遏姦,明上之民也,而世少之曰「讇讒之民」也。此六民者,世之所毁也。姦僞無益之民六,而世譽之如彼;耕戰有益之民六,而世毁之如此,此之謂「六反」。布衣循私利而譽之,世主聽虚聲而禮之,禮之所在,利必加焉。百姓循私害而訾之,世主壅於俗而賤之,賤之所在,害必加焉。故名賞在乎私惡當罪之民,而毁害在乎公善宜賞之士,索國之富強,不可得也。

죽음을 두려워하고 어려움을 멀리함은 항복하고 달아나는 백성인데 세상은 높여 「삶을 귀히 여기는 선비」라 한다. 도를 배우고 방술을 세움은 법을 떠난 백성인데 세상은 높여 「글공부하는 선비」라 한다. 노닐며 살면서 두터이 얻어먹음은 남의 것을 취해 먹는 백성인데 세상은 높여 「능함 있는 선비」라 한다. 말을 굽혀 슬기를 취함은 거짓되고 속이는 백성인데 세상은 높여 「말솜씨 있고 슬기로운 선비」라 한다. 검을 쓰고 쳐서 죽임은 사납고 격한 백성인데 세상은 높여 「굳세고 용맹한 선비」라 한다. 도적을 살리고 간사함을 숨김은 죽어 마땅한 백성인데 세상은 높여 「의리를 맡고 기림받는 선비」라 한다. 이 여섯 백성은 세상이 기리는 바다. 험한 데로 나아가 정성에 목숨을 바침은 절개에 죽는 백성인데 세상은 낮추어 「셈을 잃은 백성」이라 한다. 듣는 것이 적고 명령을 좇음은 법을 온전히 하는 백성인데 세상은 낮추어 「질박하고 비루한 백성」이라 한다. 힘써 지어 먹음은 이로움을 낳는 백성인데 세상은 낮추어 「능함이 적은 백성」이라 한다. 아름답고 두터우며 순수함은 반듯하고 착한 백성인데 세상은 낮추어 「어리석고 미련한 백성」이라 한다. 명령을 무겁게 여기고 일을 두려워함은 위를 높이는 백성인데 세상은 낮추어 「겁내는 백성」이라 한다. 도적을 꺾고 간사함을 막음은 위를 밝히는 백성인데 세상은 낮추어 「아첨하고 참소하는 백성」이라 한다. 이 여섯 백성은 세상이 헐뜯는 바다. 간사하고 거짓되어 이익 없는 백성이 여섯인데 세상이 저처럼 기리고, 밭 갈고 싸워 이익 있는 백성이 여섯인데 세상이 이처럼 헐뜯으니 이를 「여섯 뒤집힘」이라 한다. 베옷 입은 이가 사사로운 이익을 좇아 기리고 세상 임금이 헛된 소리를 듣고 예우하니, 예우가 있는 곳에 이로움이 반드시 더해진다. 백성이 사사로운 해로움을 좇아 헐뜯고 세상 임금이 풍속에 막혀 천히 여기니, 천히 여김이 있는 곳에 해로움이 반드시 더해진다. 그러므로 이름과 상이 사사로이 미워하고 죄에 마땅한 백성에게 있고 헐뜯음과 해로움이 공변되이 착하고 마땅히 상 줄 선비에게 있으니, 나라의 부유하고 강함을 구한들 얻을 수 없다.

古者有諺曰:「爲政猶沐也,雖有弃髮,必爲之。」愛弃髮之費而忘長髮之利,不知權者也。夫彈痤者痛,飲藥者苦,爲苦憊之故不彈痤飲藥,則身不活,病不已矣。今上下之接,無子父之澤,而欲以行義禁下,則交必有郄矣。且父母之於子也,産男則相賀,産女則殺之。此俱出父母之懷袵,然男子受賀,女子殺之者,慮其後便,計之長利也。故父母之於子也,猶用計算之心以相待也,而況無父子之澤乎?今學者之說人主也,皆去求利之心,出相愛之道,是求人主之過父母之親也,此不熟於論恩,詐而誣也,故明主不受也。聖人之治也,審於法禁,法禁明著則官治;必於賞罰,賞罰不阿則民用。民用官治則國富,國富則兵强,而霸王之業成矣。霸王者,人主之大利也。人主挾大利以聽治,故其任官者當能,其賞罰無私。使士民明焉,盡力致死,則功伐可立而爵祿可致,爵祿致而富貴之業成矣。富貴者,人臣之大利也。人臣挾大利以從事,故其行危至死,其力盡而不望。此謂君不仁,臣不忠,則可以霸王矣。

옛날 속담에 이르기를 「정사함은 머리 감음과 같아 비록 빠지는 머리털이 있어도 반드시 한다」 하였다. 빠지는 머리털의 허비를 아끼고 머리 기르는 이로움을 잊음은 저울질할 줄 모르는 이다. 무릇 종기를 터뜨리는 이는 아프고 약을 마시는 이는 쓴데, 괴롭고 고달프다 하여 종기를 터뜨리지 않고 약을 마시지 않으면 몸이 살지 못하고 병이 낫지 않는다. 이제 위와 아래의 사귐에 아들과 아비의 은택이 없는데 의를 행함으로 아래를 금하려 하면 사귐에 반드시 틈이 있다. 또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 사내를 낳으면 서로 하례하고 계집을 낳으면 죽인다. 이는 다 부모의 품에서 나왔는데 사내는 하례를 받고 계집은 죽임을 당함은 그 뒤의 편함을 헤아리고 긴 이익을 셈해서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도 오히려 셈하는 마음으로 서로 대하는데 하물며 아비와 자식의 은택이 없는 사이겠는가. 이제 배운 이들이 임금에게 말하기를 다 이익을 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는 길로 나오라 하니, 이는 임금에게 부모의 친함보다 더하기를 구하는 것이라 은혜를 논함에 익지 않은 것이요 속이고 어긋난 것이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받지 않는다. 성인의 다스림은 법과 금함을 살펴 법과 금함이 밝게 드러나면 관청이 다스려지고, 상과 벌을 반드시 하여 상과 벌이 아첨하지 않으면 백성이 쓰인다. 백성이 쓰이고 관청이 다스려지면 나라가 부유하고, 나라가 부유하면 군사가 강하여 패왕의 업이 이루어진다. 패왕은 임금의 큰 이로움이다. 임금이 큰 이로움을 끼고 다스림을 들으므로, 그 벼슬 맡김이 능함에 마땅하고 그 상과 벌에 사사로움이 없다. 선비와 백성으로 하여금 밝게 하여 힘을 다하고 죽음을 이르게 하면 공을 세우고 작위와 녹을 얻을 수 있으니, 작위와 녹을 얻으면 부귀의 업이 이루어진다. 부귀는 신하의 큰 이로움이다. 신하가 큰 이로움을 끼고 일을 좇으므로, 그 행함이 위태로워 죽음에 이르고 그 힘이 다하여도 바라지 않는다. 이를 임금이 어질지 않고 신하가 충성되지 않으면 패왕이 될 수 있다 한다.

夫姦必知則備,必誅則止;不知則肆,不誅則行。夫陳輕貨於幽隱,雖曾、史可疑也;懸百金於市,雖大盜不取也。不知,則曾、史可疑於幽隱;必知,則大盜不取懸金於市。故明主之治國也,衆其守而重其罪,使民以法禁而不以廉止。母之愛子也倍父,父令之行於子者十母;吏之於民無愛,令之行於民也萬父。母積愛而令窮,吏用威嚴而民聽從,嚴愛之筴亦可決矣。且父母之所以求於子也,動作則欲其安利也,行身則欲其遠罪也。君上之於民也,有難則用其死,安平則盡其力。親以厚愛關子於安利而不聽,君以無愛利求民之死力而令行。明主知之,故不養恩愛之心而增威嚴之勢。故母厚愛處,子多敗,推愛也;父薄愛教笞,子多善,用嚴也。

무릇 간사함은 반드시 알려지면 대비하고 반드시 베어지면 그친다. 알려지지 않으면 방자하고 베어지지 않으면 행해진다. 무릇 가벼운 재물을 그윽하고 숨은 데 두면 비록 증삼과 사추라도 의심스럽고, 백 금을 저자에 매달면 비록 큰 도둑이라도 가져가지 않는다. 알려지지 않으면 증삼과 사추도 그윽한 데서 의심스럽고, 반드시 알려지면 큰 도둑도 저자에 매단 금을 가져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림은 지킴을 많이 하고 그 죄를 무겁게 하여, 백성이 법으로 금해지게 하고 청렴으로 그치게 하지 않는다. 어미가 자식을 사랑함이 아비의 갑절인데 아비의 명령이 자식에게 행해짐은 어미의 열 배요, 아전이 백성에게 사랑이 없는데 명령이 백성에게 행해짐은 아비의 만 배다. 어미는 사랑을 쌓아도 명령이 궁하고 아전은 위엄과 엄함을 쓰는데 백성이 듣고 따르니, 엄함과 사랑의 방책을 또한 결단할 만하다. 또 부모가 자식에게 구하는 바는, 움직이면 그 편안하고 이롭기를 바라고 몸을 행하면 그 죄를 멀리하기를 바람이다. 임금이 백성에 대하여는 어려움이 있으면 그 죽음을 쓰고 편안하고 평온하면 그 힘을 다하게 한다. 어버이가 두터운 사랑으로 자식을 편안하고 이로운 데 매어 두려 하여도 듣지 않는데, 임금은 사랑과 이로움 없이 백성의 죽을힘을 구하여도 명령이 행해진다. 밝은 임금은 이를 알므로 은혜와 사랑의 마음을 기르지 않고 위엄과 엄함의 세를 더한다. 그러므로 어미가 두터운 사랑에 처하면 자식이 흔히 그르쳐지니 사랑을 밀어서요, 아비가 사랑을 얇게 하고 가르쳐 매질하면 자식이 흔히 착하니 엄함을 써서다.

今家人之治産也,相忍以饑寒,相強以勞苦,雖犯軍旅之難,饑饉之患,温衣美食者,必是家也;相憐以衣食,相惠以佚樂,天饑歲荒,嫁妻賣子者,必是家也。故法之爲道,前苦而長利;仁之爲道,偷樂而後窮。聖人權其輕重,出其大利,故用法之相忍,而弃仁人之相憐也。學者之言皆曰「輕刑」,此亂亡之術也。凡賞罰之必者,勸禁也。賞厚,則所欲之得也疾;罰重,則所惡之禁也急。夫欲利者必惡害,害者,利之反也。反於所欲,焉得無惡?欲治者必惡亂,亂者,治之反也。是故欲治甚者,其賞必厚矣;其惡亂甚者,其罰必重矣。今取於輕刑者,其惡亂不甚也,其欲治又不甚也。此非特無術也,又乃無行。是故決賢、不肖、愚、知之筴,在賞罰之輕重。且夫重刑者,非爲罪人也。明主之法,揆也。治賊,非治所治也;治所治也者,是治死人也。刑盜,非治所刑也;治所刑也者,是治胥靡也。故曰:重一姦之罪而止境内之邪,此所以爲治也。重罰者,盜賊也;而悼懼者,良民也。欲治者奚疑於重刑!若夫厚賞者,非獨賞功也,又勸一國。受賞者甘利,未賞者慕業,是報一人之功而勸境内之衆也,欲治者何疑於厚賞!今不知治者皆曰:「重刑傷民,輕刑可以止姦,何必於重哉?」此不察於治者也。夫以重止者,未必以輕止也;以輕止者,必以重止矣。是以上設重刑者而姦盡止,姦盡止,則此奚傷於民也?所謂重刑者,姦之所利者細,而上之所加焉者大也。民不以小利加大罪,故姦必止者也。所謂輕刑者,姦之所利者大,上之所加焉者小也。民慕其利而傲其罪,故姦不止也。故先聖有諺曰:「不躓於山,而躓於垤。」山者大,故人順之;垤微小,故人易之也。今輕刑罰,民必易之。犯而不誅,是驅國而弃之也;犯而誅之,是爲民設陷也。是故輕罪者,民之垤也。是以輕罪之爲民道也,非亂國也,則設民陷也,此則可謂傷民矣!

이제 집안 사람이 생업을 다스릴 때 굶주림과 추위를 서로 참고 수고로움을 서로 굳세게 하면, 비록 군사의 어려움과 굶주림의 근심을 만나도 따뜻한 옷과 좋은 밥을 먹는 이는 반드시 이 집이다. 옷과 밥으로 서로 가엾이 여기고 편안한 즐거움으로 서로 은혜롭게 하면, 기근이 들고 흉년이 든 해에 아내를 시집보내고 자식을 파는 이는 반드시 이 집이다. 그러므로 법이 길이 됨은 앞이 괴롭고 이로움이 길며, 어짊이 길이 됨은 잠시 즐겁고 뒤에 궁하다. 성인이 그 가볍고 무거움을 저울질하여 큰 이로움을 내므로, 법의 서로 참음을 쓰고 어진 사람의 서로 가엾이 여김을 버린다. 배운 이의 말이 다 「형벌을 가벼이 하라」 하니 이는 어지러워 망하는 술이다. 무릇 상과 벌을 반드시 함은 권하고 금함이다. 상이 두터우면 바라는 바를 얻음이 빠르고 벌이 무거우면 미워하는 바를 금함이 급하다. 무릇 이로움을 바라는 이는 반드시 해로움을 미워하니, 해로움은 이로움의 반대다. 바라는 바와 반대인데 어찌 미워하지 않겠는가.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이는 반드시 어지러움을 미워하니 어지러움은 다스림의 반대다. 이 때문에 다스려지기를 바람이 심한 이는 그 상이 반드시 두텁고, 어지러움을 미워함이 심한 이는 그 벌이 반드시 무겁다. 이제 가벼운 형벌을 취하는 이는 어지러움을 미워함이 심하지 않고 다스려지기를 바람도 심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다만 술이 없을 뿐 아니라 또한 행실도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어질고 못나며 어리석고 슬기로움을 결단하는 방책이 상과 벌의 가볍고 무거움에 있다. 또 무릇 무거운 형벌은 죄인을 위함이 아니다. 밝은 임금의 법은 헤아림이다. 도적을 다스림은 다스려지는 그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니, 다스려지는 그 사람을 다스림은 죽은 사람을 다스림이다. 도둑을 형벌함은 형벌받는 그 사람을 다스림이 아니니, 형벌받는 그 사람을 다스림은 죄수를 다스림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한 간사한 이의 죄를 무겁게 하여 지경 안의 사악함을 그치게 함이 다스림이 되는 까닭이라 한다. 무겁게 벌 받는 이는 도적이요 두려워 떠는 이는 좋은 백성이다.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이가 어찌 무거운 형벌을 의심하겠는가. 저 두터운 상 같은 것은 홀로 공에 상 줌이 아니라 또한 온 나라를 권함이다. 상 받는 이는 이로움을 달게 여기고 아직 상 받지 못한 이는 그 업을 사모하니, 이는 한 사람의 공을 갚아 지경 안의 무리를 권함이다.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이가 어찌 두터운 상을 의심하겠는가. 이제 다스림을 모르는 이들이 다 말하기를 「무거운 형벌은 백성을 상하게 하고 가벼운 형벌로 간사함을 그치게 할 수 있는데 어찌 반드시 무겁게 하겠는가」 하니, 이는 다스림을 살피지 못한 것이다. 무릇 무거운 것으로 그치는 것은 반드시 가벼운 것으로 그치지 않으나, 가벼운 것으로 그치는 것은 반드시 무거운 것으로도 그친다. 이 때문에 위가 무거운 형벌을 베풀면 간사함이 다 그치고, 간사함이 다 그치면 이것이 어찌 백성을 상하게 하겠는가. 이른바 무거운 형벌이란 간사함이 이롭게 여기는 바가 작고 위가 더하는 바가 큰 것이다. 백성이 작은 이로움으로 큰 죄를 더하지 않으므로 간사함이 반드시 그친다. 이른바 가벼운 형벌이란 간사함이 이롭게 여기는 바가 크고 위가 더하는 바가 작은 것이다. 백성이 그 이로움을 사모하고 그 죄를 우습게 여기므로 간사함이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앞선 성인의 속담에 이르기를 「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개미둑에 걸려 넘어진다」 하였다. 산은 크므로 사람이 순히 대하고 개미둑은 작으므로 사람이 쉬이 여긴다. 이제 형벌을 가벼이 하면 백성이 반드시 쉬이 여긴다. 범해도 베지 않으면 이는 나라를 몰아 버리는 것이요, 범하면 베는 것은 백성에게 함정을 놓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벼운 죄는 백성의 개미둑이다. 이 때문에 가벼운 죄가 백성에게 길이 됨은 나라를 어지럽히지 않으면 백성에게 함정을 놓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백성을 상하게 한다 이를 만하다.

今學者皆道書筴之頌語,不察當世之實事,曰:「上不愛民,賦斂常重,則用不足而下怨上,故天下大亂。」此以爲足其財用以加愛焉,雖輕刑罰,可以治也。此言不然矣。凡人之取重罰,固已足之之後也;雖財用足而後厚愛之,然而輕刑,猶之亂也。夫當家之愛子,財貨足用,貨財足用則輕用,輕用則侈泰。親愛之則不忍,不忍則驕恣。侈泰則家貧,驕恣則行暴。此雖財用足而愛厚,輕刑之患也。凡人之生也,財用足則隳於用力,上懦則肆於爲非。財用足而力作者,神農也;上治懦而行脩者,曾、史也。夫民之不及神農、曾、史,亦明矣。

이제 배운 이들이 다 글의 기리는 말을 말하고 오늘 세상의 실지 일을 살피지 않으며 말하기를 「위가 백성을 사랑하지 않고 부세를 늘 무겁게 하면 쓰임이 모자라고 아래가 위를 원망하므로 천하가 크게 어지럽다」 한다. 이는 그 재물과 쓰임을 넉넉히 하고 사랑을 더하면 비록 형벌을 가벼이 하여도 다스릴 수 있다고 여김이다. 이 말은 그렇지 않다. 무릇 사람이 무거운 벌을 받음은 본디 이미 넉넉해진 뒤다. 비록 재물과 쓰임이 넉넉하고 뒤에 두터이 사랑하여도 형벌을 가벼이 하면 오히려 어지럽다. 무릇 집안의 사랑하는 자식은 재물과 쓰임이 넉넉하고, 재물과 쓰임이 넉넉하면 가벼이 쓰며, 가벼이 쓰면 사치하고 넘친다. 친히 사랑하면 차마 못하고 차마 못하면 교만하고 방자하다. 사치하고 넘치면 집이 가난하고 교만하고 방자하면 행실이 사납다. 이는 비록 재물과 쓰임이 넉넉하고 사랑이 두터워도 형벌을 가벼이 한 근심이다. 무릇 사람의 삶은 재물과 쓰임이 넉넉하면 힘써 일함에 게을러지고 위가 무르면 그름을 함에 방자해진다. 재물과 쓰임이 넉넉한데도 힘써 짓는 이는 신농이요, 위의 다스림이 무른데도 행실을 닦는 이는 증삼과 사추다. 무릇 백성이 신농과 증삼과 사추에 미치지 못함이 또한 분명하다.

老聃有言曰:「知足不辱,知止不殆。」夫以殆辱之故而不求於足之外者,老聃也。今以爲足民而可以治,是以民爲皆如老聃也。故桀貴在天子而不足於尊,富有四海之内而不足於寶。君人者雖足民,不能足使爲天子,而桀未必以爲天子爲足也,則雖足民,何可以爲治也?故明主之治國也,適其時事以致財物,論其稅賦以均貧富,厚其爵祿以盡賢能,重其刑罰以禁姦邪,使民以力得富,以事致貴,以過受罪,以功致賞,而不念慈惠之賜,此帝王之政也。

노담이 말하였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아슬아슬하지 않다.」 무릇 아슬아슬하고 욕되는 까닭으로 족함 밖을 구하지 않은 이는 노담이다. 이제 백성을 넉넉하게 하면 다스릴 수 있다 함은 백성을 다 노담 같다고 여김이다. 그러므로 걸은 귀하기가 천자였으나 높음에 족하지 않았고 부유함이 사해 안을 가졌으나 보배에 족하지 않았다. 임금이 비록 백성을 넉넉하게 하여도 다 천자가 되게 할 수는 없는데, 걸도 반드시 천자 됨을 족하다 여기지 않았으니, 그러면 비록 백성을 넉넉하게 한들 무엇으로 다스림을 삼겠는가. 그러므로 밝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림은 그 때와 일에 맞추어 재물을 이르게 하고, 그 세와 부세를 논하여 가난하고 부유함을 고르게 하며, 그 작위와 녹을 두터이 하여 어질고 능한 이를 다하게 하고, 그 형벌을 무겁게 하여 간사하고 사악함을 금한다. 백성이 힘으로 부유함을 얻고 일로 귀함을 이르게 하며 허물로 죄를 받고 공으로 상을 이르게 하여, 자애로운 은혜의 내림을 생각하지 않게 하니 이것이 제왕의 정사다.

人皆寐,則盲者不知;皆嘿,則喑者不知。覺而使之視,問而使之對,則喑盲者窮矣。不聽其言也,則無術者不知;不任其身也,則不肖者不知。聽其言而求其當,任其身而責其功,則無術不肖者窮矣。夫欲得力士而聽其自言,雖庸人與烏獲不可別也;授之以鼎爼,則罷健效矣。故官職者,能士之鼎爼也,任之以事而愚智分矣。故無術者得於不用,不肖者得於不任。言不用而自文以爲辯,身不任而自飾以爲高。世主眩其辯、濫其高而尊貢之,是不須視而定明也,不待對而定辯也,喑盲者不得矣。明主聽其言必責其用,觀其行必求其功,然則虚舊之學不談,矜誣之行不飾矣。

사람이 다 자면 소경을 알지 못하고 다 잠잠하면 벙어리를 알지 못한다. 깨워 보게 하고 물어 대답하게 하면 벙어리와 소경이 궁해진다. 그 말을 듣지 않으면 술 없는 이를 알지 못하고 그 몸에 맡기지 않으면 못난 이를 알지 못한다. 그 말을 듣고 그 마땅함을 구하며 그 몸에 맡기고 그 공을 책하면 술 없고 못난 이가 궁해진다. 무릇 힘센 이를 얻으려 하면서 그 스스로 하는 말을 들으면 비록 보통 사람과 오획도 가릴 수 없으나, 솥과 도마를 주면 지친 이와 굳센 이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벼슬과 직임은 능한 선비의 솥과 도마이니, 일을 맡기면 어리석음과 슬기로움이 나뉜다. 그러므로 술 없는 이는 쓰이지 않음에서 얻고 못난 이는 맡겨지지 않음에서 얻는다. 말이 쓰이지 않으면 스스로 꾸며 말솜씨라 하고 몸이 맡겨지지 않으면 스스로 꾸며 높다 한다. 세상 임금이 그 말솜씨에 아찔하고 그 높음에 넘쳐 높여 바치니, 이는 보게 하지 않고 밝음을 정하고 대답하게 하지 않고 말솜씨를 정하는 것이라 벙어리와 소경을 얻어 낼 수 없다. 밝은 임금은 그 말을 들으면 반드시 그 쓰임을 책하고 그 행실을 보면 반드시 그 공을 구하니, 그러면 헛되고 낡은 배움이 말해지지 않고 뽐내고 속이는 행실이 꾸며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