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蠹
上古之世,人民少而禽獸衆,人民不勝禽獸蟲蛇。有聖人作,搆木爲巢以避羣害,而民悅之,使王天下,號曰有巢氏。民食果蓏蜯蛤,腥臊惡臭而傷害腹胃,民多疾病。有聖人作,鑽燧取火以化腥臊,而民說之,使王天下,號之曰燧人氏。中古之世,天下大水,而鯀、禹決瀆。近古之世,桀、紂暴亂,而湯、武征伐。今有搆木鑽燧於夏后氏之世者,必爲鯀、禹笑矣;有決瀆於殷、周之世者,必爲湯、武笑矣。然則今有美堯、舜、湯、武、禹之道於當今之世者,必爲新聖笑矣。是以聖人不期脩古,不法常可,論世之事,因爲之備。宋人有耕田者,田中有株,兔走觸株,折頸而死,因釋其耒而守株,冀復得兔,兔不可復得,而身爲宋國笑。今欲以先王之政,治當世之民,皆守株之類也。
아주 옛날 세상에는 사람이 적고 새와 짐승이 많아 사람이 새와 짐승과 벌레와 뱀을 이기지 못하였다. 성인이 나와 나무를 얽어 둥지를 지어 여러 해로움을 피하게 하니 백성이 기뻐하여 천하에 왕 노릇 하게 하고 유소씨라 불렀다. 백성이 열매와 조개를 먹으니 비리고 누린 나쁜 냄새가 배와 밥통을 상하게 하여 백성이 흔히 병들었다. 성인이 나와 부싯돌을 뚫어 불을 얻어 비리고 누린 것을 삭이니 백성이 기뻐하여 천하에 왕 노릇 하게 하고 수인씨라 불렀다. 중간 옛날 세상에는 천하에 큰물이 나 곤과 우가 도랑을 텄다. 가까운 옛날 세상에는 걸과 주가 사납고 어지러워 탕과 무왕이 쳤다. 이제 하후씨의 세상에 나무를 얽고 부싯돌을 뚫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곤과 우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은나라와 주나라 세상에 도랑을 트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탕과 무왕에게 웃음거리가 된다. 그러면 이제 오늘 세상에 요와 순과 탕과 무왕과 우의 도를 아름답다 하는 이는 반드시 새 성인에게 웃음거리가 된다. 이 때문에 성인은 옛것을 닦기를 기약하지 않고 늘 옳다는 것을 본받지 않으며, 세상의 일을 논하여 그에 따라 갖춘다. 송나라 사람 가운데 밭 가는 이가 있었는데 밭 가운데 그루터기가 있었다. 토끼가 달리다 그루터기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으니, 이에 쟁기를 놓고 그루터기를 지키며 다시 토끼를 얻기를 바랐다. 토끼는 다시 얻을 수 없었고 몸은 송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제 선왕의 정사로 오늘 세상의 백성을 다스리려 함은 다 그루터기를 지키는 무리다.
古者丈夫不耕,草木之實足食也;婦人不織,禽獸之皮足衣也。不事力而養足,人民少而財有餘,故民不爭。是以厚賞不行,重罰不用,而民自治。今人有五子不爲多,子又有五子,大父未死而有二十五孫。是以人民衆而貨財寡,事力勞而供養薄,故民爭,雖倍賞累罰而不免於亂。
옛날에는 사내가 밭 갈지 않아도 풀과 나무의 열매가 먹기에 넉넉하고, 아낙이 짜지 않아도 새와 짐승의 가죽이 입기에 넉넉하였다. 힘을 일삼지 않아도 기름이 넉넉하고 사람이 적어 재물에 남음이 있었으므로 백성이 다투지 않았다. 이 때문에 두터운 상을 행하지 않고 무거운 벌을 쓰지 않아도 백성이 절로 다스려졌다. 이제 사람에게 아들 다섯은 많다 하지 않고 아들이 또 아들 다섯을 두니, 할아비가 죽기 전에 손자 스물다섯이 있다. 이 때문에 사람은 많고 재화는 적으며 힘써 일해도 이바지함이 얇으므로 백성이 다툰다. 비록 상을 곱으로 하고 벌을 거듭하여도 어지러움을 면하지 못한다.
堯之王天下也,茅茨不翦,采椽不斵;糲粢之食,䔧藿之羹;冬日麑裘,夏日葛衣,雖監門之服養,不虧於此矣。禹之王天下也,身執耒臿以爲民先,股無胈,脛不生毛,雖臣虜之勞,不苦於此矣。以是言之,夫古之讓天子者,是去監門之養而離臣虜之勞也,古傳天下而不足多也。今之縣令,一日身死,子孫累世絜駕,故人重之。是以人之於讓也,輕辭古之天子,難去今之縣令者,薄厚之實異也。夫山居而谷汲者,膢臘而相遺以水;澤居苦水者,買庸而決竇。故饑歲之春,幼弟不饟;穰歲之秋,䟽客必食。非疏骨肉愛過客也,多少之實異也。是以古之易財,非仁也,財多也;今之爭奪,非鄙也,財寡也。輕辭天子,非高也,勢薄也;爭士槖,非下也,權重也。故聖人議多少、論薄厚爲之政。故罰薄不爲慈,誅嚴不爲戾,稱俗而行也。故事因於世,而備適於事。
요가 천하에 왕 노릇 할 때 띠 지붕을 자르지 않고 참나무 서까래를 다듬지 않았으며, 거친 밥과 명아주와 콩잎국을 먹고 겨울에는 사슴 갖옷, 여름에는 갈포 옷을 입었으니, 비록 문지기의 입성과 기름이라도 이보다 못하지 않다. 우가 천하에 왕 노릇 할 때 몸소 쟁기와 삽을 잡고 백성보다 앞섰으니, 넓적다리에 살이 없고 정강이에 털이 나지 않아, 비록 신하와 종의 수고라도 이보다 괴롭지 않다. 이로써 말하면 무릇 옛날에 천자를 사양한 이는 문지기의 기름을 버리고 신하와 종의 수고를 떠난 것이니, 옛날에 천하를 전한 일은 대단하다 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이제 현령은 하루아침에 몸이 죽어도 자손이 여러 대 수레를 타므로 사람이 무겁게 여긴다. 이 때문에 사람이 사양함에 옛 천자는 가벼이 물러나면서 오늘의 현령은 버리기 어려워하니, 얇고 두터움의 실지가 달라서다. 무릇 산에 살며 골짜기에서 물을 긷는 이는 제삿날에 서로 물을 보내 주고, 못가에 살며 물에 괴로운 이는 품꾼을 사서 도랑을 튼다. 그러므로 흉년 든 해의 봄에는 어린 아우에게도 밥을 주지 않고, 풍년 든 해의 가을에는 성근 손님도 반드시 먹인다. 골육을 멀리하고 지나가는 손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많고 적음의 실지가 달라서다. 이 때문에 옛날에 재물을 가벼이 여긴 것은 어질어서가 아니라 재물이 많아서요, 오늘날 다투어 빼앗음은 비루해서가 아니라 재물이 적어서다. 천자를 가벼이 물러남은 높아서가 아니라 세가 얇아서요, 벼슬자리를 다툼은 낮아서가 아니라 권세가 무거워서다. 그러므로 성인은 많고 적음을 의논하고 얇고 두터움을 논하여 정사를 한다. 그러므로 벌이 얇아도 자애롭다 하지 않고 벰이 엄해도 사납다 하지 않으니, 풍속에 걸맞게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은 세상을 따르고 갖춤은 일에 맞춘다.
古者文王處豐、鎬之間,地方百里,行仁義而懷西戎,遂王天下。徐偃王處漢東,地方五百里,行仁義,割地而朝者三十有六國。荊文王恐其害己也,舉兵伐徐,遂滅之。故文王行仁義而王天下,偃王行仁義而喪其國,是仁義用於古不用於今也。故曰:世異則事異。當舜之時,有苗不服,禹將伐之。舜曰:「不可。上德不厚而行武,非道也。」乃修教三年,執干戚舞,有苗乃服。共工之戰,鐵銛短者及乎敵,鎧甲不堅者傷乎體。是干戚用於古不用於今也。故曰:事異則備變。上古競於道德,中世逐於智謀,當今爭於氣力。齊將攻魯,魯使子貢說之。齊人曰:「子言非不辯也,吾所欲者土地也,非斯言所謂也。」遂舉兵伐魯,去門十里以爲界。故偃王仁義而徐亡,子貢辯智而魯削。以是言之,夫仁義辯智,非所以持國也。去偃王之仁,息子貢之智,循徐、魯之力使敵萬乘,則齊、荊之欲不得行於二國矣。
옛날 문왕이 풍과 호 사이에 처하여 땅이 사방 백 리였는데, 어짊과 의를 행하여 서융을 품고 마침내 천하에 왕 노릇 하였다. 서언왕은 한수 동쪽에 처하여 땅이 사방 오백 리였는데, 어짊과 의를 행하여 땅을 베어 주며 조회한 나라가 서른여섯이었다. 초나라 문왕이 그가 저를 해칠까 두려워 군사를 들어 서나라를 쳐서 마침내 없앴다. 그러므로 문왕은 어짊과 의를 행하여 천하에 왕 노릇 하였고 언왕은 어짊과 의를 행하여 그 나라를 잃었으니, 이는 어짊과 의가 옛날에는 쓰였고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음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세상이 다르면 일이 다르다 한다. 순 때에 유묘가 복종하지 않아 우가 치려 하니 순이 말하였다. 「안 된다. 위의 덕이 두텁지 않은데 무력을 행함은 도가 아니다.」 이에 가르침을 세 해 닦고 방패와 도끼를 잡고 춤추니 유묘가 이에 복종하였다. 공공의 싸움에서는 쇠 창날이 짧은 이가 적에게 미치고 갑옷이 굳지 않은 이가 몸을 다쳤다. 이는 방패와 도끼가 옛날에는 쓰였고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음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일이 다르면 갖춤이 변한다 한다. 아주 옛날에는 도덕을 겨루었고 중간 세상에는 슬기와 꾀를 좇았으며 오늘날에는 기운과 힘을 다툰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치려 하니 노나라가 자공을 보내 달래게 하였다. 제나라 사람이 말하였다. 「그대의 말이 말솜씨 없는 것이 아니나, 내가 바라는 것은 땅이지 이 말이 이르는 바가 아니다.」 마침내 군사를 들어 노나라를 쳐서 성문에서 십 리 되는 곳을 경계로 삼았다. 그러므로 언왕은 어질고 의로웠으나 서나라가 망하였고 자공은 말솜씨 있고 슬기로웠으나 노나라가 깎였다. 이로써 말하면 무릇 어짊과 의와 말솜씨와 슬기는 나라를 지니는 까닭이 아니다. 언왕의 어짊을 버리고 자공의 슬기를 그치며 서나라와 노나라의 힘을 좇아 만승을 맞섰다면 제나라와 초나라의 바람이 두 나라에서 행해지지 못하였을 것이다.
夫古今異俗,新故異備。如欲以寛緩之政,治急世之民,猶無轡策而御駻馬,此不知之患也。今儒、墨皆稱先王兼愛天下,則視民如父母。何以明其然也?曰:「司寇行刑,君爲之不舉樂;聞死刑之報,君爲流涕。」此所舉先王也。夫以君臣爲如父子則必治,推是言之,是無亂父子也。人之情性莫先於父母,皆見愛而未必治也,雖厚愛矣,奚遽不亂?今先王之愛民,不過父母之愛子,子未必不亂也,則民奚遽治哉?且夫以法行刑,而君爲之流涕,此以效仁,非以爲治也。夫垂泣不欲刑者,仁也;然而不可不刑者,法也。先王勝其法,不聽其泣,則仁之不可以爲治亦明矣。
무릇 옛날과 오늘은 풍속이 다르고 새것과 옛것은 갖춤이 다르다. 만약 너그럽고 느슨한 정사로 급한 세상의 백성을 다스리려 하면, 고삐와 채찍 없이 사나운 말을 모는 것과 같으니 이는 알지 못하는 근심이다. 이제 유가와 묵가가 다 선왕이 천하를 아울러 사랑하여 백성 보기를 부모같이 하였다고 일컫는다. 무엇으로 그러함을 밝히는가. 이르기를 「사구가 형벌을 행하면 임금이 그 때문에 음악을 들지 않고, 사형 소식을 들으면 임금이 눈물을 흘렸다」 한다. 이것이 그들이 드는 선왕이다. 무릇 임금과 신하가 아비와 자식 같으면 반드시 다스려진다 하니, 이 말을 미루면 어지러운 아비와 자식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정과 성품에 부모보다 앞선 것이 없어 다 사랑을 받는데도 반드시 다스려지지 않으니, 비록 사랑이 두터운들 어찌 문득 어지럽지 않겠는가. 이제 선왕이 백성을 사랑함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을 넘지 못하는데 자식이 반드시 어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니, 백성이 어찌 문득 다스려지겠는가. 또 무릇 법으로 형벌을 행하며 임금이 그 때문에 눈물을 흘림은 어짊을 나타냄이지 다스림을 삼음이 아니다. 무릇 눈물을 흘리며 형벌하고 싶어 하지 않음은 어짊이요, 그러면서도 형벌하지 않을 수 없음은 법이다. 선왕이 그 법을 이기게 하고 그 울음을 듣지 않았으니, 어짊으로 다스림을 삼을 수 없음이 또한 분명하다.
且民者固服於勢,寡能懷於義。仲尼,天下聖人也,脩行明道以游海内,海内說其仁、美其義而爲服役者七十人。蓋貴仁者寡,能義者難也。故以天下之大,而爲服役者七十人,而仁義者一人。魯哀公,下主也,南面君國,境内之民莫敢不臣。民者固服於勢,勢誠易以服人,故仲尼反爲臣而哀公顧爲君。仲尼非懷其義,服其勢也。故以義則仲尼不服於哀公,乘勢則哀公臣仲尼。今學者之說人主也,不乘必勝之勢,而務行仁義則可以王,是求人主之必及仲尼,而以世之凡民皆如列徒,此必不得之數也。
또 백성은 본디 세에 복종하고 의에 품기는 이가 적다. 중니는 천하의 성인이라 행실을 닦고 도를 밝혀 해내에 노닐었는데, 해내가 그 어짊을 기뻐하고 그 의를 아름다이 여겨 복종하여 부려진 이가 일흔 사람이었다. 대개 어짊을 귀히 여기는 이가 적고 의에 능한 이가 어려워서다. 그러므로 천하의 큼으로도 복종하여 부려진 이가 일흔 사람이요 어질고 의로운 이는 한 사람이었다. 노나라 애공은 낮은 임금인데 남면하여 나라에 임금 노릇 하니 지경 안의 백성이 감히 신하 노릇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백성은 본디 세에 복종하니 세는 참으로 사람을 복종시키기 쉬우므로, 중니가 도리어 신하가 되고 애공이 도리어 임금이 되었다. 중니가 그 의에 품긴 것이 아니라 그 세에 복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로 하면 중니가 애공에게 복종하지 않고 세를 타면 애공이 중니를 신하로 삼는다. 이제 배운 이들이 임금에게 말하기를 반드시 이기는 세를 타지 않고 어짊과 의를 행하기에 힘쓰면 왕 노릇 할 수 있다 하니, 이는 임금이 반드시 중니에 미치기를 구하고 세상의 뭇 백성이 다 그 무리 같기를 바라는 것이라, 이는 반드시 얻을 수 없는 수다.
今有不才之子,父母怒之弗爲改,鄉人譙之弗爲動,師長教之弗爲變。夫以父母之愛、鄉人之行、師長之智,三美加焉,而終不動,其脛毛不改。州部之吏,操官兵,推公法,而求索姦人,然後恐懼,變其節,易其行矣。故父母之愛不足以教子,必待州部之嚴刑者,民固驕於愛、聽於威矣。故十仞之城,樓季弗能踰者,峭也;千仞之山,跛牂易牧者,夷也。故明王峭其法而嚴其刑也。布帛尋常,庸人不釋;鑠金百溢,盜跖不掇。不必害則不釋尋常,必害手則不掇百溢,故明主必其誅也。是以賞莫如厚而信,使民利之;罰莫如重而必,使民畏之;法莫如一而固,使民知之。故主施賞不遷,行誅無赦,譽輔其賞,毁隨其罰,則賢、不肖俱盡其力矣。
이제 재주 없는 자식이 있어 부모가 노하여도 고치지 않고 마을 사람이 꾸짖어도 움직이지 않으며 스승이 가르쳐도 변하지 않는다. 무릇 부모의 사랑과 마을 사람의 행실과 스승의 슬기, 세 아름다움을 더하여도 끝내 움직이지 않아 그 정강이 털 하나 고치지 않는다. 주와 부의 아전이 관가의 병기를 잡고 공변된 법을 밀어 간사한 사람을 찾은 뒤에야 두려워하여 그 절조를 바꾸고 그 행실을 고친다. 그러므로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가르치기에 넉넉하지 않고 반드시 주와 부의 엄한 형벌을 기다리니, 백성은 본디 사랑에 교만하고 위엄에 듣는다. 그러므로 열 길 성을 누계가 넘지 못함은 가팔라서요, 천 길 산에서 절름발이 양을 쉬이 침은 평평해서다. 그러므로 밝은 왕은 그 법을 가파르게 하고 그 형벌을 엄히 한다. 베와 비단 여덟 자를 보통 사람이 놓지 않고, 녹인 금 백 일을 도척이 줍지 않는다. 반드시 해롭지 않으면 여덟 자를 놓지 않고, 반드시 손을 해치면 백 일을 줍지 않으니,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그 벰을 반드시 한다. 이 때문에 상은 두텁고 미더움만 한 것이 없어 백성이 이롭게 여기게 하고, 벌은 무겁고 반드시 행해짐만 한 것이 없어 백성이 두려워하게 하며, 법은 하나이고 굳음만 한 것이 없어 백성이 알게 한다. 그러므로 임금이 상을 베풀되 옮기지 않고 벰을 행하되 사면이 없으며, 기림이 그 상을 돕고 헐뜯음이 그 벌을 따르면, 어질고 못난 이가 함께 그 힘을 다한다.
今則不然,以其有功也爵之,而卑其士官也;以其耕作也賞之,而少其家業也;以其不收也外之,而高其輕世也;以其犯禁也罪之,而多其有勇也。毁譽、賞罰之所加者,相與悖繆也,故法禁壞而民愈亂。今兄弟被侵,必攻者,廉也;知友被辱,隨仇者,貞也。廉貞之行成,而君上之法犯矣。人主尊貞廉之行,而忘犯禁之罪,故民程於勇,而吏不能勝也。不事力而衣食,則謂之能;不戰功而尊,則謂之賢。賢能之行成,而兵弱而地荒矣。人主說賢能之行,而忘兵弱地荒之禍,則私行立而公利滅矣。
이제는 그렇지 않다. 공이 있다 하여 작위를 주면서 그 벼슬살이를 낮추어 보고, 밭 갈아 지었다 하여 상 주면서 그 집안 생업을 하찮게 여기며, 거두어 쓰이지 않는다 하여 물리치면서 그 세상을 가벼이 여김을 높다 하고, 금함을 범하였다 하여 죄주면서 그 용맹 있음을 대단하다 한다. 헐뜯음과 기림과 상과 벌이 더해지는 바가 서로 어그러지므로 법과 금함이 무너지고 백성이 더욱 어지럽다. 이제 형제가 침노당하면 반드시 치는 것을 청렴이라 하고, 아는 벗이 욕을 당하면 원수를 따라가는 것을 곧음이라 한다. 청렴과 곧음의 행실이 이루어지면 임금의 법이 범해진다. 임금이 곧고 청렴한 행실을 높이고 금함을 범한 죄를 잊으므로, 백성이 용맹을 겨루고 아전이 이기지 못한다. 힘을 일삼지 않고 입고 먹으면 능하다 하고, 싸워 공을 세우지 않고 높아지면 어질다 한다. 어질고 능하다는 행실이 이루어지면 군사가 약해지고 땅이 거칠어진다. 임금이 어질고 능하다는 행실을 기뻐하고 군사가 약해지고 땅이 거칠어지는 화를 잊으면, 사사로운 행실이 서고 공변된 이로움이 없어진다.
儒以文亂法,俠以武犯禁,而人主兼禮之,此所以亂也。夫離法者罪,而諸先生以文學取;犯禁者誅,而羣俠以私劒養。故法之所非,君之所取;吏之所誅,上之所養也。法、趣、上、下,四相反也,而無所定,雖有十黄帝不能治也。故行仁義者非所譽,譽之則害功;文學者非所用,用之則亂法。楚之有直躬,其父竊羊,而謁之吏。令尹曰:「殺之!」以爲直於君而曲於父,報而罪之。以是觀之,夫君之直臣,父之暴子也。魯人從君戰,三戰三北。仲尼問其故,對曰:「吾有老父,身死莫之養也。」仲尼以爲孝,舉而上之。以是觀之,夫父之孝子,君之背臣也。故令尹誅而楚姦不上聞,仲尼賞而魯民易降北。上下之利,若是其異也,而人主兼舉匹夫之行,而求致社稷之福,必不幾矣。
유자는 글로 법을 어지럽히고 협객은 무력으로 금함을 범하는데 임금이 아울러 예우하니 이것이 어지러운 까닭이다. 무릇 법을 떠난 이는 죄인데 여러 선생이 글공부로 취해지고, 금함을 범한 이는 베어지는데 뭇 협객이 사사로운 칼로 길러진다. 그러므로 법이 그르다 하는 바를 임금이 취하고 아전이 베는 바를 위가 기른다. 법과 취지와 위와 아래 넷이 서로 반대되어 정해진 바가 없으니, 비록 열 황제가 있어도 다스릴 수 없다. 그러므로 어짊과 의를 행하는 이는 기릴 바가 아니니 기리면 공을 해치고, 글공부하는 이는 쓸 바가 아니니 쓰면 법을 어지럽힌다. 초나라에 직궁이라는 이가 있어 그 아비가 양을 훔치자 아전에게 아뢰었다. 영윤이 말하였다. 「죽이라!」 임금에게 곧고 아비에게 굽었다 하여 잡아 죄주었다. 이로써 보면 무릇 임금의 곧은 신하가 아비의 사나운 자식이다. 노나라 사람이 임금을 따라 싸웠는데 세 번 싸워 세 번 달아났다. 중니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제게 늙은 아비가 있어 제가 죽으면 봉양할 이가 없습니다.」 중니가 효라 여겨 들어 올려 주었다. 이로써 보면 무릇 아비의 효자가 임금의 등지는 신하다. 그러므로 영윤이 베자 초나라의 간사함이 위에 들리지 않았고 중니가 상 주자 노나라 백성이 쉬이 항복하고 달아났다. 위와 아래의 이로움이 이처럼 다른데, 임금이 필부의 행실을 아울러 들면서 사직의 복을 이르게 하려 하니 반드시 어림없다.
古者蒼頡之作書也,自環者謂之私,背私謂之公,公私之相背也,乃蒼頡固以知之矣。今以爲同利者,不察之患也。然則爲匹夫計者,莫如修行義而習文學。行義修則見信,見信則受事;文學習則爲明師,爲明師則顯榮,此匹夫之美也。然則無功而受事,無爵而顯榮,爲有政如此,則國必亂、主必危矣。故不相容之事,不兩立也。斬敵者受賞,而高慈惠之行;拔城者受爵祿,而信廉愛之說;堅甲厲兵以備難,而美薦紳之飾;富國以農,距敵恃卒,而貴文學之士;廢敬上畏法之民,而養遊俠私劒之屬。舉行如此,治强不可得也。國平養儒俠,難至用介士,所利非所用,所用非所利。是故服事者簡其業,而游學者日衆,是世之所以亂也。
옛날 창힐이 글자를 지을 때 스스로 둘러싼 것을 사(私)라 하고 사를 등진 것을 공(公)이라 하였으니, 공과 사가 서로 등짐을 창힐이 본디 알았던 것이다. 이제 이로움을 같이한다고 여김은 살피지 못한 근심이다. 그러면 필부를 위해 셈하는 이는 행실과 의를 닦고 글공부를 익힘만 한 것이 없다. 행실과 의가 닦이면 믿음을 받고 믿음을 받으면 일을 맡으며, 글공부가 익으면 밝은 스승이 되고 밝은 스승이 되면 드러나 영화로우니 이것이 필부의 아름다움이다. 그러면 공 없이 일을 맡고 작위 없이 드러나 영화로우니, 정사가 이와 같으면 나라가 반드시 어지럽고 임금이 반드시 위태롭다. 그러므로 서로 용납하지 못하는 일은 둘이 함께 서지 못한다. 적을 벤 이가 상을 받는데 자애와 은혜의 행실을 높이고, 성을 뽑은 이가 작위와 녹을 받는데 청렴과 사랑의 설을 미덥게 여기며, 갑옷을 굳히고 병기를 벼려 어려움에 대비하면서 홀을 꽂은 꾸밈을 아름다이 여기고, 농사로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졸로 적을 막으면서 글공부하는 선비를 귀히 여기며, 위를 공경하고 법을 두려워하는 백성을 폐하고 떠도는 협객과 사사로운 칼의 무리를 기른다. 거동이 이와 같으니 다스려지고 강해짐을 얻을 수 없다. 나라가 평온할 때는 유자와 협객을 기르고 어려움이 이르면 갑옷 입은 군사를 쓰니, 이롭게 여긴 이가 쓸 이가 아니요 쓸 이가 이롭게 여긴 이가 아니다. 이 때문에 일을 맡아 섬기는 이가 그 업을 소홀히 하고 떠돌며 배우는 이가 날로 많아지니, 이것이 세상이 어지러운 까닭이다.
且世之所謂賢者,貞信之行也;所謂智者,微妙之言也。微妙之言,上智之所難知也。今爲衆人法,而以上智之所難知,則民無從識之矣。故糟糠不飽者不務粱肉,短褐不完者不待文繡。夫治世之事,急者不得,則緩者非所務也。今所治之政,民間之事,夫婦所明知者不用,而慕上知之論,則其於治反矣。故微妙之言,非民務也。若夫賢貞信之行者,必將貴不欺之士;不欺之士者,亦無不欺之術也。布衣相與交,無富厚以相利,無威勢以相懼也,故求不欺之士。今人主處制人之勢,有一國之厚,重賞嚴誅,得操其柄,以修明術之所燭,雖有田常、子罕之臣,不敢欺也,奚待於不欺之士?今貞信之士不盈於十,而境内之官以百數,必任貞信之士,則人不足官;人不足官,則治者寡而亂者衆矣。故明主之道,一法而不求智,固術而不慕信,故法不敗,而羣官無姦詐矣。
또 세상이 이른바 어질다 하는 것은 곧고 미더운 행실이요, 이른바 슬기롭다 하는 것은 미묘한 말이다. 미묘한 말은 위의 슬기로도 알기 어렵다. 이제 뭇사람의 법을 만들면서 위의 슬기로도 알기 어려운 것으로 하면 백성이 좇아 알 길이 없다. 그러므로 지게미와 겨도 배부르지 않은 이는 좋은 밥과 고기에 힘쓰지 않고, 짧은 갈옷도 온전하지 않은 이는 무늬 놓은 수를 기다리지 않는다. 무릇 세상을 다스리는 일에 급한 것을 얻지 못하면 느린 것은 힘쓸 바가 아니다. 이제 다스리는 정사와 백성 사이의 일에서 지아비와 지어미도 밝게 아는 것을 쓰지 않고 위의 슬기로운 논을 사모하면, 그 다스림에 대하여 거꾸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미묘한 말은 백성의 힘쓸 바가 아니다. 저 곧고 미더운 행실을 어질다 하는 이는 반드시 속이지 않는 선비를 귀히 여길 것이다. 속이지 않는 선비란 또한 속이지 않게 하는 술이 없는 것이다. 베옷 입은 이가 서로 사귈 때 부유하고 두터움으로 서로 이롭게 할 수 없고 위엄과 세로 서로 두렵게 할 수 없으므로 속이지 않는 선비를 구한다. 이제 임금은 사람을 제어하는 세에 처하고 한 나라의 두터움을 가지며 무거운 상과 엄한 벰의 자루를 잡을 수 있어, 밝은 술이 비추는 바를 닦으면 비록 전상과 자한 같은 신하가 있어도 감히 속이지 못하니 어찌 속이지 않는 선비를 기다리겠는가. 이제 곧고 미더운 선비가 열도 차지 않는데 지경 안의 벼슬은 백으로 헤아리니, 반드시 곧고 미더운 선비에게 맡기면 사람이 벼슬에 모자란다. 사람이 벼슬에 모자라면 다스리는 이가 적고 어지럽히는 이가 많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의 도는 법을 하나로 하고 슬기를 구하지 않으며 술을 굳게 하고 미더움을 사모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법이 무너지지 않고 뭇 벼슬아치에게 간사함과 속임이 없다.
今人主之於言也,說其辯而不求其當焉;其用於行也,美其聲而不責其功。是以天下之衆,其談言者務爲辨而不周於用,故舉先王言仁義者盈廷,而政不免於亂;行身者競於爲高而不合於功,故智士退處巖穴,歸祿不受,而兵不免於弱。兵不免於弱,政不免於亂,此其故何也?民之所譽,上之所禮,亂國之術也。今境内之民皆言治,藏商、管之法者家有之,而國愈貧,言耕者衆,執耒者寡也;境内皆言兵,藏孫、吳之書者家有之,而兵愈弱,言戰者多,被甲者少也。故明主用其力,不聽其言;賞其功,必禁無用。故民盡死力以從其上。夫耕之用力也勞,而民爲之者,曰可得以富也。戰之爲事也危,而民爲之者,曰可得以貴也。今修文學,習言談,則無耕之勞而有富之實,無戰之危而有貴之尊,則人孰不爲也?是以百人事智而一人用力。事智者衆則法敗,用力者寡則國貧,此世之所以亂也。
이제 임금이 말에 대하여 그 말솜씨를 기뻐하고 그 마땅함을 구하지 않으며, 행함에 씀에 대하여 그 소리를 아름다이 여기고 그 공을 책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천하의 무리 가운데 말하는 이가 말솜씨에 힘쓰고 쓰임에 두루 하지 않으므로 선왕을 들며 어짊과 의를 말하는 이가 조정에 가득한데 정사가 어지러움을 면하지 못하고, 몸을 행하는 이가 높음 되기를 겨루고 공에 맞지 않으므로 슬기로운 선비가 물러나 바위굴에 처하고 녹을 돌려주며 받지 않아 군사가 약함을 면하지 못한다. 군사가 약함을 면하지 못하고 정사가 어지러움을 면하지 못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백성이 기리는 바와 위가 예우하는 바가 나라를 어지럽히는 술이어서다. 이제 지경 안의 백성이 다 다스림을 말하고 상앙과 관중의 법을 감춘 이가 집집이 있는데 나라가 더욱 가난함은, 밭 갈기를 말하는 이가 많고 쟁기를 잡는 이가 적어서다. 지경 안이 다 군사를 말하고 손무와 오기의 글을 감춘 이가 집집이 있는데 군사가 더욱 약함은, 싸움을 말하는 이가 많고 갑옷을 입는 이가 적어서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그 힘을 쓰고 그 말을 듣지 않으며, 그 공에 상 주고 반드시 쓸모없는 것을 금한다. 그러므로 백성이 죽을힘을 다해 그 위를 따른다. 무릇 밭 갊은 힘씀이 수고로운데 백성이 그것을 함은 그로써 부유해질 수 있다 여겨서요, 싸움은 일이 위태로운데 백성이 그것을 함은 그로써 귀해질 수 있다 여겨서다. 이제 글공부를 닦고 말하기를 익히면 밭 가는 수고 없이 부유한 실지가 있고 싸우는 위태로움 없이 귀한 높음이 있으니, 사람이 누가 하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백 사람이 슬기를 일삼고 한 사람이 힘을 쓴다. 슬기를 일삼는 이가 많으면 법이 무너지고 힘을 쓰는 이가 적으면 나라가 가난하니, 이것이 세상이 어지러운 까닭이다.
故明主之國,無書簡之文,以法爲教;無先王之語,以吏爲師;無私劒之捍,以斬首爲勇。是境内之民,其言談者必軌於法,動作者歸之於功,爲勇者盡之於軍。是故無事則國富,有事則兵强,此之謂王資。既畜王資而承敵國之舋,超五帝、侔三王者,必此法也。
그러므로 밝은 임금의 나라는 글과 문서의 꾸밈이 없고 법으로 가르침을 삼으며, 선왕의 말이 없고 아전으로 스승을 삼으며, 사사로운 칼의 사나움이 없고 머리 벰으로 용맹을 삼는다. 이에 지경 안의 백성은 말하는 이가 반드시 법을 좇고 움직이는 이가 공으로 돌아가며 용맹한 이가 군에서 다한다. 이 때문에 일이 없으면 나라가 부유하고 일이 있으면 군사가 강하니 이를 왕의 밑천이라 한다. 이미 왕의 밑천을 쌓고 적국의 틈을 타 오제를 넘고 삼왕과 나란히 함은 반드시 이 법이다.
今則不然,士民縱恣於内,言談者爲勢於外,外内稱惡,以待强敵,不亦殆乎!故羣臣之言外事者,非有分於從衡之黨,則有仇讎之忠,而借力於國也。從者,合衆弱以攻一强也;而衡者,事一强以攻衆弱也,皆非所以持國也。今人臣之言衡者,皆曰:「不事大,則遇敵受禍矣。」事大未必有實,則舉圖而委,效璽而請兵矣。獻圖則地削,效璽則名卑,地削則國削,名卑則政亂矣。事大爲衡,未見其利也,而亡地亂政矣。人臣之言從者,皆曰:「不救小而伐大,則失天下,失天下則國危,國危而主卑。」救小未必有實,則起兵而敵大矣。救小未必能存,而伐大未必不有䟽,有䟽則爲强國制矣。出兵則軍敗,退守則城拔。救小爲從,未見其利,而亡地敗軍矣。是故事强,則以外權士官於内;救小,則以内重求利於外。國利未立,封土厚祿至矣;主上雖卑,人臣尊矣;國地雖削,私家富矣。事成則以權長重,事敗則以富退處。人主之聽說於其臣,事未成則爵祿已尊矣,事敗而弗誅,則游說之士孰不爲用矰繳之說而徼倖其後?故破國亡主以聽言談者之浮說。此其故何也?是人君不明乎公私之利,不察當否之言,而誅罰不必其後也。皆曰:「外事,大可以王,小可以安。」夫王者,能攻人者也,而安則不可攻也。强則能攻人者也,治則不可攻也。治强不可責於外,内政之有也。今不行法術於内,而事智於外,則不至於治强矣。
이제는 그렇지 않다. 선비와 백성이 안에서 방자하고 말하는 이가 밖에서 세를 지어 안팎이 함께 나쁜데 강한 적을 맞으니 또한 아슬아슬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뭇 신하 가운데 밖의 일을 말하는 이는 합종과 연횡의 무리에 몫이 있거나 원수를 갚으려는 마음이 있어 나라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합종은 여러 약한 나라를 합하여 한 강한 나라를 침이요, 연횡은 한 강한 나라를 섬겨 여러 약한 나라를 침이니, 다 나라를 지니는 까닭이 아니다. 이제 신하로서 연횡을 말하는 이는 다 이르기를 「큰 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적을 만나 화를 받는다」 한다. 큰 나라를 섬김에 반드시 실지가 있지 않은데 지도를 들어 맡기고 도장을 바치며 군사를 청한다. 지도를 바치면 땅이 깎이고 도장을 바치면 이름이 낮아지며, 땅이 깎이면 나라가 깎이고 이름이 낮아지면 정사가 어지럽다. 큰 나라를 섬겨 연횡함은 그 이로움을 보지 못한 채 땅을 잃고 정사를 어지럽힌다. 신하로서 합종을 말하는 이는 다 이르기를 「작은 나라를 구하지 않고 큰 나라를 치지 않으면 천하를 잃고, 천하를 잃으면 나라가 위태로우며, 나라가 위태로우면 임금이 낮아진다」 한다. 작은 나라를 구함에 반드시 실지가 있지 않은데 군사를 일으켜 큰 나라를 맞선다. 작은 나라를 구하여도 반드시 지켜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큰 나라를 쳐도 반드시 성긂이 없지 않으니, 성긂이 있으면 강한 나라에게 제어된다. 군사를 내면 군이 패하고 물러나 지키면 성이 뽑힌다. 작은 나라를 구하여 합종함은 그 이로움을 보지 못한 채 땅을 잃고 군사가 패한다. 이 때문에 강한 나라를 섬기면 밖의 권세로 안에서 벼슬하고, 작은 나라를 구하면 안의 무거움으로 밖에서 이로움을 구한다. 나라의 이로움이 서기 전에 봉토와 두터운 녹이 이르고, 임금이 비록 낮아져도 신하는 높아지며, 나라 땅이 비록 깎여도 사삿집은 부유해진다. 일이 이루어지면 권세로 무거움을 길게 하고 일이 무너지면 부유함으로 물러나 산다. 임금이 그 신하에게 설을 들을 때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작위와 녹이 이미 높아지고, 일이 무너져도 베지 않으면 떠돌며 말하는 선비 가운데 누가 주살 같은 설을 써서 그 뒤를 요행으로 바라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나라를 깨뜨리고 임금을 잃음은 말하는 이의 뜬 설을 들어서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이는 임금이 공과 사의 이로움에 밝지 못하고 마땅한지 아닌지의 말을 살피지 않으며, 벌함이 그 뒤에 반드시 행해지지 않아서다. 다들 이르기를 「밖의 일을 잘하면 크게는 왕 노릇 하고 작게는 편안하다」 한다. 무릇 왕이란 남을 칠 수 있는 이요, 편안하면 침노당하지 않는다. 강하면 남을 칠 수 있고 다스려지면 침노당하지 않는다. 다스려지고 강함은 밖에서 책할 수 없고 안의 정사에 있다. 이제 안에서 법과 술을 행하지 않고 밖에서 슬기를 일삼으면 다스려지고 강함에 이르지 못한다.
鄙諺曰:「長袖善舞,多錢善賈。」此言多資之易爲工也。故治强易爲謀,弱亂難爲計。故用於秦者,十變而謀希失;用於燕者,一變而計希得。非用於秦者必智,用於燕者必愚也,盖治亂之資異也。故周去秦爲從,朞年而舉;衛離魏爲衡,半歳而亡。是周滅於從,衛亡於衡也。使周、衛緩其從衡之計,而嚴其境内之治,明其法禁,必其賞罰,盡其地力以多其積,致其民死以堅其城守,天下得其地則其利少,攻其國則其傷大,萬乘之國莫敢自頓於堅城之下,而使强敵裁其弊也,此必不亡之術也。舍必不亡之術而道必滅之事,治國者之過也。智困於外而政亂於内,則亡不可振也。
속담에 이르기를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한다」 하니, 이는 밑천이 많으면 잘하기 쉬움을 말한다. 그러므로 다스려지고 강하면 꾀하기 쉽고 약하고 어지러우면 셈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진나라에서 쓰인 이는 열 번 바꾸어도 꾀가 그르치는 일이 드물고, 연나라에서 쓰인 이는 한 번 바꾸어도 셈이 맞는 일이 드물다. 진나라에서 쓰인 이가 반드시 슬기롭고 연나라에서 쓰인 이가 반드시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대개 다스림과 어지러움의 밑천이 달라서다. 그러므로 주나라가 진나라를 떠나 합종하자 한 해 만에 들려 없어졌고, 위(衛)나라가 위(魏)나라를 떠나 연횡하자 반년 만에 망하였다. 이는 주나라가 합종에 없어지고 위(衛)나라가 연횡에 망한 것이다. 주나라와 위나라로 하여금 합종과 연횡의 셈을 늦추고 그 지경 안의 다스림을 엄히 하며, 그 법과 금함을 밝히고 그 상과 벌을 반드시 하며, 그 땅의 힘을 다해 쌓음을 많이 하고 그 백성을 죽음에 이르게 하여 성 지킴을 굳게 하였다면, 천하가 그 땅을 얻어도 이로움이 적고 그 나라를 쳐도 상함이 클 것이니, 만승의 나라도 감히 굳은 성 아래서 스스로 지치며 강한 적이 그 지침을 마름하게 두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반드시 망하지 않는 술이다. 반드시 망하지 않는 술을 놓고 반드시 없어지는 일을 말함은 나라 다스리는 이의 허물이다. 슬기가 밖에서 곤하고 정사가 안에서 어지러우면 망함을 떨쳐 낼 수 없다.
民之政計,皆就安利如辟危窮。今爲之攻戰,進則死於敵,退則死於誅,則危矣。弃私家之事而必汗馬之勞,家困而上弗論,則窮矣。窮危之所在也,民安得勿避?故事私門而完解舍,解舍完則遠戰,遠戰則安。行貨賂而襲當塗者則求得,求得則私安,私安則利之所在,安得勿就?是以公民少而私人衆矣。
백성의 셈은 다 편안하고 이로운 데로 나아가고 위태롭고 궁한 데를 피함이다. 이제 그들을 위해 쳐서 싸우면 나아가면 적에게 죽고 물러나면 벰에 죽으니 위태롭다. 사삿집 일을 버리고 반드시 말에 땀나는 수고를 하는데 집이 곤해도 위가 논하지 않으면 궁하다. 궁하고 위태로움이 있는 곳을 백성이 어찌 피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사삿집을 섬겨 부역 면제를 온전히 하니, 부역 면제가 온전하면 싸움에서 멀어지고 싸움에서 멀어지면 편안하다. 재물과 뇌물을 행하여 요직에 있는 이에게 붙으면 구함을 얻고, 구함을 얻으면 사사로이 편안하며, 사사로이 편안하면 이로움이 있는 곳이니 어찌 나아가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공변된 백성이 적고 사사로운 사람이 많다.
夫明王治國之政,使其商工游食之民少而名卑,以寡趣本務而趨末作。今世近習之請行,則官爵可買;官爵可買,則商工不卑也矣。姦財貨賈得用於市,則商人不少矣。聚斂倍農而致尊過耕戰之士,則耿介之士寡而商賈之民多矣。
무릇 밝은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정사는 그 장사꾼과 공인과 떠돌며 먹는 백성을 적게 하고 이름을 낮추어, 근본의 힘씀으로 나아가는 이가 적고 끝의 지음으로 달려가는 것을 줄이는 것이다. 이제 세상에 임금 곁에 가까운 이의 청탁이 행해지면 벼슬과 작위를 살 수 있고, 벼슬과 작위를 살 수 있으면 장사꾼과 공인이 낮지 않다. 간사한 재화와 장사가 저자에서 쓰이면 장사꾼이 적지 않다. 거두어 모음이 농사의 갑절이고 이르는 높음이 밭 갈고 싸우는 선비를 넘으면, 굳세고 곧은 선비가 적고 장사하는 백성이 많다.
是故亂國之俗,其學者,則稱先王之道以籍仁義,盛容服而飾辯說,以疑當世之法,而貳人主之心。其言談者,爲設詐稱,借於外力,以成其私,而遺社稷之利。其帶劒者,聚徒屬,立節操,以顯其名,而犯五官之禁。其患御者,積於私門,盡貨賂,而用重人之謁,退汗馬之勞。其商工之民,脩治苦窳之器,聚弗靡之財,蓄積待時,而侔農夫之利。此五者,邦之蠹也。人主不除此五蠧之民,不養耿介之士,則海内雖有破亡之國、削滅之朝,亦勿怪矣。
이 때문에 어지러운 나라의 풍속은 이렇다. 그 배운 이는 선왕의 도를 일컬어 어짊과 의에 기대고, 모습과 옷을 성대히 하며 말솜씨를 꾸며 오늘의 법을 의심하게 하고 임금의 마음을 둘로 한다. 그 말하는 이는 거짓을 베풀고 속여 일컬으며 밖의 힘을 빌려 제 사사로움을 이루고 사직의 이로움을 버린다. 그 칼 찬 이는 무리를 모으고 절조를 세워 제 이름을 드러내며 다섯 관청의 금함을 범한다. 그 부역을 걱정하는 이는 사삿집에 쌓아 두고 재물과 뇌물을 다하여 무거운 사람의 청을 써서 말에 땀나는 수고를 물린다. 그 장사꾼과 공인인 백성은 거칠고 나쁜 그릇을 만들고 사치한 재물을 모으며 쌓아 두고 때를 기다려 농부의 이로움을 가로챈다. 이 다섯은 나라의 좀이다. 임금이 이 다섯 좀 같은 백성을 없애지 않고 굳세고 곧은 선비를 기르지 않으면, 해내에 깨져 망한 나라와 깎여 없어진 조정이 있어도 또한 괴이할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