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顯學

한비자 韓非子 · 한비(韓非)와 후학 · 기원전 3세기 · 단락 11 · 한자 2,324자 · 낭독 9.3분

「한비자」 현학 「顯學」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법가가 한자리에 모인 책이다. 상앙의 법(法)과 신불해의 술(術)과 신도의 세(勢)를 한비가 받아 하나로 엮었다. 사람은 착해서 착한 것이 아니라 그름을 할 수 없어 착하다고 보고, 임금이 기댈 것은 어짊이 아니라 법과 술과 세라고 말한다. 모순(矛盾)이 여기서 나왔다. 뚫지 못할 방패와 뚫지 못함이 없는 창을 함께 파는 초나라 사람 이야기로 요와 순을 함께 기릴 수 없음을 보였고, 난세에서 다시 한 번 어짊과 세를 두고 같은 비유를 든다.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 송나라 사람(수주대토)과 발이 두 번 잘리고서야 옥으로 인정받은 화씨의 벽옥도 이 책의 이야기다. 말하기의 어려움을 다룬 세난(說難)에는 용의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 이야기가 있다. 임금에게도 그런 비늘이 있어 건드리면 죽는다는 것인데, 정작 한비 자신이 진나라에서 옥에 갇혀 죽었다. 존한(存韓)에는 한비가 진왕에게 올린 글과, 그 바로 뒤에 이사가 「한비는 한나라를 위해 온 자이니 돌려보내지 말라」고 올린 글이 나란히 실려 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몬 문서가 그 사람의 책에 함께 남았다.

世之顯學,儒、墨也。儒之所至,孔丘也;墨之所至,墨翟也。自孔子之死也,有子張之儒,有子思之儒,有顔氏之儒,有孟氏之儒,有漆雕氏之儒,有仲良氏之儒,有孫氏之儒,有樂正氏之儒。自墨子之死也,有相里氏之墨,有相夫氏之墨,有鄧陵氏之墨。故孔、墨之後,儒分爲八,墨離爲三,取舍相反不同,而皆自謂真孔、墨。孔、墨不可復生,將誰使定世之學乎?孔子、墨子俱道堯、舜,而取舍不同,皆自謂真堯、舜。堯、舜不復生,將誰使定儒、墨之誠乎?殷、周七百餘歲,虞、夏二千餘歲,而不能定儒、墨之真;今乃欲審堯、舜之道於三千歲之前,意者其不可必乎!無參驗而必之者,愚也;弗能必而據之者,誣也。故明據先王,必定堯、舜者,非愚則誣也。愚誣之學,雜反之行,明主弗受也。

세상에 드러난 배움은 유가와 묵가다. 유가의 지극한 이는 공구요 묵가의 지극한 이는 묵적이다. 공자가 죽은 뒤로 자장의 유가가 있고 자사의 유가가 있으며, 안씨의 유가가 있고 맹씨의 유가가 있으며, 칠조씨의 유가가 있고 중량씨의 유가가 있으며, 손씨의 유가가 있고 악정씨의 유가가 있다. 묵자가 죽은 뒤로 상리씨의 묵가가 있고 상부씨의 묵가가 있으며 등릉씨의 묵가가 있다. 그러므로 공자와 묵자 뒤에 유가가 여덟으로 나뉘고 묵가가 셋으로 갈려 취하고 버림이 서로 반대여서 같지 않은데도, 다 스스로 참된 공자와 묵자라 이른다. 공자와 묵자가 다시 살아날 수 없으니 장차 누구로 하여금 세상의 배움을 정하게 하겠는가. 공자와 묵자가 다 요와 순을 말하는데 취하고 버림이 같지 않으면서 다 스스로 참된 요와 순이라 이른다. 요와 순이 다시 살아나지 않으니 장차 누구로 하여금 유가와 묵가의 참됨을 정하게 하겠는가. 은나라와 주나라가 칠백여 해요 우와 하가 이천여 해인데도 유가와 묵가의 참됨을 정할 수 없다. 이제 삼천 해 앞의 요와 순의 도를 살피려 하니, 생각건대 반드시 할 수 없지 않겠는가. 맞대어 살펴봄 없이 반드시 그렇다 하는 것은 어리석음이요, 반드시 할 수 없는데 근거로 삼음은 속임이다. 그러므로 밝게 선왕에 근거한다며 반드시 요와 순을 정한다 하는 이는 어리석지 않으면 속이는 것이다. 어리석고 속이는 배움과 뒤섞여 반대되는 행실을 밝은 임금은 받지 않는다.

墨者之葬也,冬日冬服,夏日夏服,桐棺三寸,服喪三月,世主以爲儉而禮之。儒者破家而葬,服喪三年,大毁扶杖,世主以爲孝而禮之。夫是墨子之儉,將非孔子之侈也;是孔子之孝,將非墨子之戾也。今孝、戾、侈、儉俱在儒、墨,而上兼禮之。漆雕之議,不色撓,不目逃,行曲則違於臧獲,行直則怒於諸侯,世主以爲廉而禮之。宋榮子之議,設不鬬爭,取不隨仇,不羞囹圄,見侮不辱,世主以爲寛而禮之。夫是漆雕之廉,將非宋榮之恕也;是宋榮之寛,將非漆雕之暴也。今寛、廉、恕、暴俱在二子,人主兼而禮之。自愚誣之學、雜反之辭爭,而人主俱聽之,故海内之士,言無定術,行無常議。夫冰炭不同器而久,寒暑不兼時而至,雜反之學不兩立而治。今兼聽雜學繆行同異之辭,安得無亂乎?聽行如此,其於治人又必然矣。

묵가의 장사는 겨울에는 겨울옷, 여름에는 여름옷을 입히고 오동나무 관 세 치에 상복이 석 달이라, 세상 임금이 검소하다 하여 예우한다. 유가는 집을 깨뜨려 장사하고 상복이 세 해라 크게 헐어 지팡이를 짚으니, 세상 임금이 효성스럽다 하여 예우한다. 무릇 묵자의 검소함을 옳다 하면 장차 공자의 사치를 그르다 해야 하고, 공자의 효를 옳다 하면 장차 묵자의 매정함을 그르다 해야 한다. 이제 효와 매정함과 사치와 검소가 다 유가와 묵가에 있는데 위가 아울러 예우한다. 칠조의 의논은 낯빛에 굽히지 않고 눈길을 피하지 않으며, 행실이 굽으면 종에게도 물러서고 행실이 곧으면 제후에게도 성내니, 세상 임금이 청렴하다 하여 예우한다. 송영자의 의논은 싸우지 않기로 하고 원수를 따라가지 않기로 하며, 옥에 갇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업신여김을 당해도 욕으로 여기지 않으니, 세상 임금이 너그럽다 하여 예우한다. 무릇 칠조의 청렴을 옳다 하면 장차 송영의 용서를 그르다 해야 하고, 송영의 너그러움을 옳다 하면 장차 칠조의 사나움을 그르다 해야 한다. 이제 너그러움과 청렴과 용서와 사나움이 다 두 사람에게 있는데 임금이 아울러 예우한다. 어리석고 속이는 배움과 뒤섞여 반대되는 말이 다투는데 임금이 다 들으므로, 해내의 선비가 말에 정해진 술이 없고 행실에 떳떳한 의논이 없다. 무릇 얼음과 숯은 한 그릇에 오래 있지 못하고 추위와 더위는 때를 겸하여 이르지 않으니, 뒤섞여 반대되는 배움은 둘이 서서 다스릴 수 없다. 이제 뒤섞인 배움과 어그러진 행실과 같고 다른 말을 아울러 들으니 어찌 어지럽지 않겠는가. 듣고 행함이 이러하니 사람 다스림에서도 또한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

今世之學士語治者,多曰:「與貧窮地以實無資。」今夫與人相若也,無豐年旁入之利而獨以完給者,非力則儉也。與人相若也,無饑饉、疾疚、禍罪之殃獨以貧窮者,非侈則墯也。侈而墯者貧,而力而儉者富。今上徵斂於富人以布施於貧家,是奪力儉而與侈墯也,而欲索民之疾作而節用,不可得也。

이제 세상의 배운 선비로 다스림을 말하는 이가 흔히 「가난하고 궁한 이에게 땅을 주어 밑천 없음을 채우라」 한다. 이제 남과 서로 같은데 풍년의 곁 수입 없이 홀로 온전히 대는 이는 힘쓰지 않으면 검소해서다. 남과 서로 같은데 굶주림과 병과 재앙과 죄의 화 없이 홀로 가난하고 궁한 이는 사치하지 않으면 게을러서다. 사치하고 게으른 이는 가난하고 힘쓰고 검소한 이는 부유하다. 이제 위가 부유한 사람에게 거두어 가난한 집에 베풀면, 이는 힘쓰고 검소한 이에게서 빼앗아 사치하고 게으른 이에게 주는 것인데, 백성이 부지런히 짓고 쓰임을 절제하기를 구하니 얻을 수 없다.

今有人於此,義不入危城,不處軍旅,不以天下大利易其脛一毛,世主必從而禮之,貴其智而高其行,以爲輕物重生之士也。夫上所以陳良田大宅,設爵祿,所以易民死命也。今上尊貴輕物重生之士,而索民之出死而重殉上事,不可得也。藏書策,習談論,聚徒役,服文學而議說,世主必從而禮之,曰:「敬賢士,先王之道也。」夫吏之所稅,耕者也;而上之所養,學士也。耕者則重稅,學士則多賞,而索民之疾作而少言談,不可得也。立節參明,執操不侵,怨言過於耳,必隨之以劒,世主必從而禮之,以爲自好之士。夫斬首之勞不賞,而家鬬之勇尊顯,而索民之疾戰距敵而無私鬬,不可得也。國平則養儒俠,難至則用介士。所養者非所用,所用者非所養,此所以亂也。且夫人主於聽學也,若是其言,宜布之官而用其身;若非其言,宜去其身而息其端。今以爲是也,而弗布於官;以爲非也,而不息其端。是而不用,非而不息,亂亡之道也。

이제 여기 어떤 사람이 있어 의로 위태로운 성에 들지 않고 군에 처하지 않으며 천하의 큰 이로움으로도 제 정강이 털 하나 바꾸지 않는데, 세상 임금이 반드시 좇아 예우하며 그 슬기를 귀히 여기고 그 행실을 높다 하여 물건을 가벼이 하고 삶을 무겁게 여기는 선비라 여긴다. 무릇 위가 좋은 밭과 큰 집을 벌여 놓고 작위와 녹을 베풂은 백성의 죽을 목숨과 바꾸려는 것이다. 이제 위가 물건을 가벼이 하고 삶을 무겁게 여기는 선비를 높이면서, 백성이 죽음을 무릅쓰고 위의 일에 목숨 바치기를 무겁게 여기기를 구하니 얻을 수 없다. 글과 문서를 감추고 말과 논함을 익히며 무리를 모으고 글공부를 하며 의논하고 말하는데, 세상 임금이 반드시 좇아 예우하며 「어진 선비를 공경함이 선왕의 도다」 한다. 무릇 아전이 세금을 매기는 이는 밭 가는 이인데 위가 기르는 이는 배운 선비다. 밭 가는 이에게는 세금이 무겁고 배운 선비에게는 상이 많은데, 백성이 부지런히 짓고 말을 적게 하기를 구하니 얻을 수 없다. 절개를 세워 밝음에 견주고 지조를 잡아 침노당하지 않으며 원망하는 말이 귀를 지나면 반드시 칼로 따르는데, 세상 임금이 반드시 좇아 예우하며 스스로를 아끼는 선비라 여긴다. 무릇 머리 벤 수고에는 상 주지 않고 집안 싸움의 용맹이 높고 드러나는데, 백성이 부지런히 싸워 적을 막고 사사로이 싸우지 않기를 구하니 얻을 수 없다. 나라가 평온하면 유자와 협객을 기르고 어려움이 이르면 갑옷 입은 군사를 쓴다. 기른 이가 쓸 이가 아니요 쓸 이가 기른 이가 아니니 이것이 어지러운 까닭이다. 또 임금이 배움을 들음에, 그 말이 옳으면 마땅히 관청에 펴고 그 몸을 써야 하며, 그 말이 그르면 마땅히 그 몸을 버리고 그 실마리를 그치게 해야 한다. 이제 옳다 하면서 관청에 펴지 않고 그르다 하면서 그 실마리를 그치게 하지 않는다. 옳다 하면서 쓰지 않고 그르다 하면서 그치게 하지 않음은 어지러워 망하는 길이다.

澹臺子羽,君子之容也,仲尼幾而取之,與處久而行不稱其貌。宰予之辭,雅而文也,仲尼幾而取之,與處久而智不充其辯。故孔子曰:「以容取人乎,失之子羽;以言取人乎,失之宰予。」故以仲尼而智而有失實之聲。今之新辯濫乎宰予,而世主之聽眩乎仲尼,爲悅其言,因任其身,則焉得無失乎?是以魏任孟卯之辯,而有華下之患;趙任馬服之辯,而有長平之禍。此二者,任辯之失也。夫視鍛錫而察青黄,區冶不能以必劒;水擊鵠鴈,陸斷駒馬,則臧獲不疑鈍利。發齒吻形容,伯樂不能以必馬;授車就駕,而觀其末塗,則臧獲不疑駑良。觀容服,聽辭言,仲尼不能以必士;試之官職,課其功伐,則庸人不疑於愚智。故明主之吏,宰相必起於州部,猛將必發於卒伍。夫有功者必賞,則爵祿厚而愈勸;遷官襲級,則官職大而愈治。夫爵祿大而官職治,王之道也。

담대자우는 군자의 모습이라 중니가 가까이하여 취하였는데 함께 지내기 오래되니 행실이 그 모습에 걸맞지 않았다. 재여의 말은 우아하고 문채가 있어 중니가 가까이하여 취하였는데 함께 지내기 오래되니 슬기가 그 말솜씨를 채우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였다. 「모습으로 사람을 취하였다가 자우에게 그르쳤고, 말로 사람을 취하였다가 재여에게 그르쳤다.」 그러므로 중니의 슬기로도 실지를 잃은 소리가 있다. 이제 새로 말솜씨 있는 이가 재여보다 넘치고 세상 임금의 들음이 중니보다 아찔한데, 그 말을 기뻐하여 이어 그 몸을 맡기니 어찌 그르침이 없겠는가. 이 때문에 위나라가 맹묘의 말솜씨에 맡겨 화양 아래의 근심이 있었고, 조나라가 마복의 말솜씨에 맡겨 장평의 화가 있었다. 이 둘은 말솜씨에 맡긴 잘못이다. 무릇 두드린 쇠와 주석을 보고 푸르고 누런빛을 살펴서는 구야도 검을 판단할 수 없으나, 물에서 고니와 기러기를 치고 뭍에서 망아지와 말을 벤다면 종도 무디고 날카로움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를 벌리고 입 모양과 생김새를 보아서는 백락도 말을 판단할 수 없으나, 수레를 주어 멍에 하고 그 마지막 길을 보면 종도 노둔함과 좋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모습과 옷을 보고 말을 들어서는 중니도 선비를 판단할 수 없으나, 벼슬과 직임으로 시험하고 그 공을 매기면 보통 사람도 어리석음과 슬기로움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의 아전은 재상이 반드시 주와 부에서 일어나고 사나운 장수가 반드시 군졸에서 나온다. 무릇 공 있는 이가 반드시 상 받으면 작위와 녹이 두터워 더욱 권해지고, 벼슬을 옮김에 등급을 밟으면 벼슬이 커져 더욱 다스려진다. 무릇 작위와 녹이 크고 벼슬이 다스려짐은 왕의 도다.

磐石千里,不可謂富;象人百萬,不可謂强。石非不大,數非不衆也,而不可謂富强者,磐不生粟,象人不可使距敵也。今商官技藝之士亦不墾而食,是地不墾,與磐石一貫也。儒俠毋軍勞,顯而榮者,則民不使,與象人同事也。夫知禍磐石象人,而不知禍商官儒俠爲不墾之地、不使之民,不知事類者也。

너럭바위가 천 리라도 부유하다 이를 수 없고, 허수아비가 백만이라도 강하다 이를 수 없다. 돌이 크지 않은 것이 아니고 수가 많지 않은 것이 아니나 부유하고 강하다 이를 수 없음은, 너럭바위가 조를 나게 하지 못하고 허수아비가 적을 막게 할 수 없어서다. 이제 장사꾼과 관가의 재주 있는 선비도 개간하지 않고 먹으니 이는 땅이 개간되지 않음이라 너럭바위와 한가지다. 유자와 협객이 군사의 수고 없이 드러나고 영화로우면 백성을 부릴 수 없으니 허수아비와 같은 일이다. 무릇 너럭바위와 허수아비의 화를 알면서 장사꾼과 관가와 유자와 협객이 개간하지 않은 땅이 되고 부릴 수 없는 백성이 되는 화를 알지 못하니, 일의 무리를 알지 못하는 이다.

故敵國之君王雖說吾義,吾弗入貢而臣;關内之侯雖非吾行,吾必使執禽而朝。是故力多則人朝,力寡則朝於人,故明君務力。夫嚴家無悍虜,而慈母有敗子。吾以此知威勢之可以禁暴,而德厚之不足以止亂也。

그러므로 적국의 임금이 비록 내 의를 기뻐하여도 나는 공물을 들이며 신하 노릇 하지 않고, 관문 안의 제후가 비록 내 행실을 그르다 하여도 나는 반드시 새를 잡고 조회하게 한다. 이 때문에 힘이 많으면 남이 조회하고 힘이 적으면 남에게 조회하니,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힘에 힘쓴다. 무릇 엄한 집에 사나운 종이 없고 자애로운 어미에게 그르친 자식이 있다. 나는 이로써 위엄과 세가 사나움을 금할 수 있고 덕의 두터움이 어지러움을 그치기에 넉넉하지 않음을 안다.

夫聖人之治國,不恃人之爲吾善也,而用其不得爲非也。恃人之爲吾善也,境内不什數;用人不得爲非,一國可使齊。爲治者用衆而舍寡,故不務德而務法。夫必恃自直之箭,百世無矢;恃自圜之木,千世無輪矣。自直之箭,自圜之木,百世無有一,然而世皆乘車射禽者何也?隱栝之道用也。雖有不恃隱栝而有自直之箭、自圜之木,良工弗貴也。何則?乘者非一人,射者非一發也。不恃賞罰而恃自善之民,明主弗貴也。何則?國法不可失,而所治非一人也。故有術之君,不隨適然之善,而行必然之道。

무릇 성인이 나라를 다스림은 사람이 나를 위해 착해지기를 믿지 않고 그가 그름을 할 수 없게 함을 쓴다. 사람이 나를 위해 착해지기를 믿으면 지경 안에 열도 헤아릴 수 없고, 사람이 그름을 할 수 없게 하면 한 나라를 가지런히 할 수 있다. 다스리는 이는 많음을 쓰고 적음을 버리므로 덕에 힘쓰지 않고 법에 힘쓴다. 무릇 반드시 절로 곧은 화살을 믿으면 백 세대에 화살이 없고, 절로 둥근 나무를 믿으면 천 세대에 바퀴가 없다. 절로 곧은 화살과 절로 둥근 나무는 백 세대에 하나도 있지 않은데, 그런데도 세상이 다 수레를 타고 새를 쏨은 어째서인가. 도지개의 도를 써서다. 비록 도지개를 믿지 않고도 절로 곧은 화살과 절로 둥근 나무가 있어도 좋은 공인은 귀히 여기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타는 이가 한 사람이 아니요 쏘는 것이 한 발이 아니어서다. 상과 벌을 믿지 않고 절로 착한 백성을 믿음을 밝은 임금은 귀히 여기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나라의 법을 잃을 수 없고 다스리는 바가 한 사람이 아니어서다. 그러므로 술 있는 임금은 우연히 그러한 착함을 따르지 않고 반드시 그러한 도를 행한다.

今或謂人曰「使子必智而壽」,則世必以爲狂。夫智,性也;壽,命也。性命者,非所學於人也,而以人之所不能爲說人,此世之所以謂之爲狂也。謂之不能然,則是諭也,夫諭性也。以仁義教人,是以智與壽說也,有度之主弗受也。故善毛嗇、西施之美,無益吾面;用脂澤粉黛,則倍其初。言先王之仁義,無益於治;明吾法度,必吾賞罰者,亦國之脂澤粉黛也。故明主急其助而緩其頌,故不道仁義。

이제 어떤 이가 남에게 「그대로 하여금 반드시 슬기롭고 오래 살게 하겠다」 하면 세상이 반드시 미쳤다 여긴다. 무릇 슬기는 성품이요 오래 삶은 명이다. 성품과 명은 남에게 배울 바가 아닌데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으로 사람에게 말하니 이것이 세상이 미쳤다 이르는 까닭이다. 그럴 수 없다고 이르면 이는 깨우침이니 무릇 성품을 깨우치는 것이다. 어짊과 의로 사람을 가르침은 슬기와 오래 삶으로 말함이니 법도 있는 임금은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장과 서시의 아름다움을 좋다 하여도 내 얼굴에 이로움이 없고, 기름과 분과 눈썹먹을 쓰면 그 처음보다 갑절이 된다. 선왕의 어짊과 의를 말함은 다스림에 이로움이 없고, 내 법도를 밝히고 내 상과 벌을 반드시 함이 또한 나라의 기름과 분과 눈썹먹이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그 도움을 급히 하고 그 기림을 늦추므로 어짊과 의를 말하지 않는다.

今巫祝之祝人曰:「使若千秋萬歲。」千秋萬歲之聲括耳,而一日之壽無徵於人,此人所以簡巫祝也。今世儒者之說人主,不善今之所以爲治,而語已治之功;不審官法之事,不察姦邪之情,而皆道上古之傳譽、先王之成功。儒者飾辝曰:「聽吾言,則可以霸王。」此說者之巫祝,有度之主不受也。故明主舉實事,去無用,不道仁義者故,不聽學者之言。

이제 무당이 사람에게 빌기를 「그대로 하여금 천 해 만 해를 살게 하소서」 한다. 천 해 만 해 하는 소리가 귀를 채우나 하루의 목숨도 남에게 나타난 적이 없으니 이것이 사람이 무당을 소홀히 여기는 까닭이다. 이제 세상의 유자가 임금에게 말할 때 오늘 다스림이 되는 까닭을 잘 말하지 않고 이미 다스려진 공을 말하며, 관청과 법의 일을 살피지 않고 간사하고 사악한 실정을 살피지 않으면서, 다 상고의 전해 오는 기림과 선왕의 이룬 공을 말한다. 유자가 말을 꾸며 「내 말을 들으면 패왕이 될 수 있다」 하니 이는 말하는 이의 무당 노릇이라 법도 있는 임금은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실지 일을 들고 쓸모없는 것을 버리며, 어짊과 의의 까닭을 말하지 않고 배운 이의 말을 듣지 않는다.

今不知治者必曰:「得民之心。」欲得民之心而可以爲治,則是伊尹、管仲無所用也,將聽民而已矣。民智之不可用,猶嬰兒之心也。夫嬰兒不剔首則腹痛,不㨽痤則寖益。剔首、揊痤,必一人抱之,慈母治之,然猶啼呼不止,嬰兒子不知犯其所小苦、致其所大利也。今上急耕田墾草以厚民産也,而以上爲酷;脩刑重罰以爲禁邪也,而以上爲嚴;徵賦錢粟以實倉庫,且以救飢饉、備軍旅也,而以上爲貪;境内必知介而無私解,并力疾闘,所以禽虜也,而以上爲暴。此四者,所以治安也,而民不知悅也。夫求聖通之士者,爲民知之不足師用。昔禹決江濬河,而民聚瓦石;子産開畝樹桑,鄭人謗訾。禹利天下,子産存鄭人,皆以受謗,夫民智之不足用亦明矣。故舉士而求賢智,爲政而期適民,皆亂之端,未可與爲治也。

이제 다스림을 모르는 이는 반드시 「백성의 마음을 얻으라」 한다. 백성의 마음을 얻어 다스림이 될 수 있다면 이윤과 관중이 쓸 데가 없고 백성의 말을 들으면 그만이다. 백성의 슬기를 쓸 수 없음은 아기의 마음과 같다. 무릇 아기는 머리를 깎지 않으면 배가 아프고 종기를 터뜨리지 않으면 점점 더한다. 머리를 깎고 종기를 터뜨림에 반드시 한 사람이 안고 자애로운 어미가 다스리는데도 오히려 울부짖기를 그치지 않으니, 아기는 그 작은 괴로움을 무릅써 큰 이로움을 이르게 함을 알지 못한다. 이제 위가 밭 갈고 풀을 개간하기를 급히 함은 백성의 생산을 두터이 하려는 것인데 위가 모질다 하고, 형벌을 닦고 벌을 무겁게 함은 사악함을 금하려는 것인데 위가 엄하다 하며, 돈과 조를 거두어 곳간을 채움은 굶주림을 구하고 군사에 대비하려는 것인데 위가 탐한다 하고, 지경 안이 반드시 갑옷을 알고 사사로이 면함이 없이 힘을 합쳐 급히 싸움은 사로잡기 위함인데 위가 사납다 한다. 이 넷은 다스려지고 편안해지는 까닭인데 백성이 기뻐할 줄 모른다. 무릇 성스럽고 통달한 선비를 구함은 백성의 슬기가 스승 삼아 쓰기에 넉넉하지 않아서다. 옛날 우가 강을 트고 하수를 쳤는데 백성이 기와와 돌을 모아 던졌고, 자산이 이랑을 열고 뽕을 심었는데 정나라 사람이 헐뜯었다. 우는 천하를 이롭게 하고 자산은 정나라 사람을 살렸는데 다 헐뜯음을 받았으니, 무릇 백성의 슬기가 쓰기에 넉넉하지 않음이 또한 분명하다. 그러므로 선비를 들며 어질고 슬기롭기를 구하고 정사하며 백성에게 맞추기를 기약함은 다 어지러움의 실마리라 더불어 다스림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