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主
人主之所以身危國亡者,大臣太貴,左右太威也。所謂貴者,無法而擅行,操國柄而便私者也。所謂威者,擅權勢而輕重者也。此二者,不可不察也。夫馬之所以能任重引車致遠道者,以筋力也。萬乘之主、千乘之君所以制天下而征諸侯者,以其威勢也。威勢者,人主之筋力也。今大臣得威,左右擅勢,是人主失力;人主失力而能有國者,千無一人。虎豹之所以能勝人執百獸者,以其爪牙也;當使虎豹失其爪牙,則人必制之矣。今勢重者,人主之爪牙也;君人而失其爪牙,虎豹之類也。宋君失其爪牙於子罕,簡公失其爪牙於田常,而不蚤奪之,故身死國亡。今無術之主皆明知宋、簡之過也,而不悟其失,不察其事類者也。
임금이 몸이 위태롭고 나라가 망하는 까닭은 대신이 너무 귀하고 좌우가 너무 위엄 있어서다. 이른바 귀하다 함은 법 없이 멋대로 행하고 나라의 자루를 잡아 사사로움을 편하게 하는 이요, 이른바 위엄 있다 함은 권세를 멋대로 하여 가볍고 무겁게 하는 이다. 이 둘은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무릇 말이 무거운 것을 지고 수레를 끌어 먼 길에 이를 수 있음은 힘줄과 힘 때문이다. 만승의 임금과 천승의 임금이 천하를 제어하고 제후를 치는 까닭은 그 위엄과 세 때문이다. 위엄과 세는 임금의 힘줄과 힘이다. 이제 대신이 위엄을 얻고 좌우가 세를 멋대로 하면 이는 임금이 힘을 잃음이다. 임금이 힘을 잃고도 나라를 가질 수 있는 이는 천에 한 사람도 없다. 범과 표범이 사람을 이기고 온갖 짐승을 잡을 수 있음은 그 발톱과 어금니 때문이니, 범과 표범이 그 발톱과 어금니를 잃게 하면 사람이 반드시 제어한다. 이제 세와 무거움은 임금의 발톱과 어금니인데, 남의 위에 서서 그 발톱과 어금니를 잃으면 범과 표범의 무리와 같다. 송나라 임금은 자한에게 그 발톱과 어금니를 잃었고 간공은 전상에게 그 발톱과 어금니를 잃었는데 일찍 빼앗지 않았으므로 몸이 죽고 나라가 망하였다. 이제 술 없는 임금이 다 송나라 임금과 간공의 허물을 밝히 알면서 제 잘못을 깨닫지 못하니 그 일의 무리를 살피지 못하는 이다.
且法術之士與當途之臣,不相容也。何以明之?主有術士,則大臣不得制斷,近習不敢賣重;大臣、左右權勢息,則人主之道明矣。今則不然,其當途之臣得勢擅事以環其私,左右近習朋黨比周以制䟽遠,則法術之士奚時得進用,人主奚時得論裁?故有術不必用,而勢不兩立,法術之士焉得無危?故君人者非能退大臣之議而背左右之訟,獨合乎道言也,則法術之士安能蒙死亡之危而進說乎?此世之所以不治也。明主者,推功而爵祿,稱能而官事,所舉者必有賢,所用者必有能,賢能之士進,則私門之請止矣。夫有功者受重祿,有能者處大官,則私劒之士安得無離於私勇而疾距敵,游宦之士焉得無撓於私門而務於清潔矣?此所以聚賢能之士而散私門之屬也。今近習者不必智,人主之於人也或有所知而聽之,入因與近習論其言,聽近習而不計其智,是與愚論智也。其當途者不必賢,人主之於人或有所賢而禮之,入因與當途者論其行,聽其言而不用賢,是與不肖論賢也。故智者決策於愚人,賢士程行於不肖,則賢智之士奚時得用,而人主之明塞矣。昔關龍逄說桀而傷其四肢,王子比干諫紂而剖其心,子胥忠直夫差而誅於屬鏤。此三子者,爲人臣非不忠,而說非不當也,然不免於死亡之患者,主不察賢智之言,而蔽於不肖之患也。今人主非肯用法術之士,聽愚不肖之臣,則賢智之士孰敢當三子之危而進其智能者乎?此世之所以亂也。
또 법과 술의 선비와 요직에 있는 신하는 서로 용납하지 못한다. 무엇으로 밝히겠는가. 임금에게 술 있는 선비가 있으면 대신이 제어하고 결단할 수 없고 임금 곁에 가까운 이가 감히 무거움을 팔지 못한다. 대신과 좌우의 권세가 그치면 임금의 도가 밝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 요직에 있는 신하가 세를 얻고 일을 멋대로 하여 제 사사로움을 두르고, 좌우 임금 곁에 가까운 이가 붕당을 지어 멀고 성근 이를 제어하니, 법과 술의 선비가 어느 때에 나아가 쓰일 수 있으며 임금이 어느 때에 논하여 마름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술이 있어도 반드시 쓰이지 않고 세가 둘이 설 수 없으니 법과 술의 선비가 어찌 위태롭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남의 위에 선 이가 대신의 의논을 물리고 좌우의 다툼을 등지며 홀로 도의 말에 맞을 수 있는 이가 아니면, 법과 술의 선비가 어찌 죽고 망할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나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세상이 다스려지지 않는 까닭이다. 밝은 임금은 공을 미루어 작위와 녹을 주고 능함에 걸맞게 벼슬 일을 맡기니, 드는 이가 반드시 어질고 쓰는 이가 반드시 능하다. 어질고 능한 선비가 나아가면 사삿집의 청탁이 그친다. 무릇 공 있는 이가 무거운 녹을 받고 능함 있는 이가 큰 벼슬에 처하면, 사사로운 칼의 선비가 어찌 사사로운 용맹을 떠나 급히 적을 막지 않을 수 있으며, 떠돌며 벼슬하는 선비가 어찌 사삿집에 굽히지 않고 맑고 깨끗함에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어질고 능한 선비를 모으고 사삿집의 무리를 흩는 까닭이다. 이제 임금 곁에 가까운 이가 반드시 슬기롭지 않은데, 임금이 사람에 대하여 혹 아는 바가 있어 그 말을 듣고서 들어와 임금 곁에 가까운 이와 그 말을 논한다. 임금 곁에 가까운 이의 말을 듣고 그 슬기를 셈하지 않으니 이는 어리석은 이와 슬기를 논함이다. 그 요직에 있는 이가 반드시 어질지 않은데, 임금이 사람에 대하여 혹 어질다 여겨 예우하고서 들어와 요직에 있는 이와 그 행실을 논한다. 그 말을 듣고 어진 이를 쓰지 않으니 이는 못난 이와 어짊을 논함이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이가 어리석은 사람에게서 계책을 결단받고 어진 선비가 못난 이에게 행실을 재이면, 어질고 슬기로운 선비가 어느 때에 쓰일 수 있으며 임금의 밝음이 막힌다. 옛날 관용봉이 걸에게 말하다 사지를 상하였고, 왕자 비간이 주에게 간하다 심장이 갈렸으며, 오자서가 부차에게 충성되고 곧았으나 촉루검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이 세 사람은 신하로서 충성되지 않은 것이 아니요 말이 마땅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나, 죽고 망하는 근심을 면하지 못한 것은 임금이 어질고 슬기로운 말을 살피지 않고 못난 이에게 가려진 근심 때문이다. 이제 임금이 법과 술의 선비를 쓰려 하지 않고 어리석고 못난 신하의 말을 들으면, 어질고 슬기로운 선비 가운데 누가 감히 세 사람의 위태로움을 맞으며 그 슬기와 능함을 올리겠는가. 이것이 세상이 어지러운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