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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편 첫째 — 논과 차례流通一之一

해동고승전 海東高僧傳 · 각훈(覺訓) · 1215년 · 단락 3 · 한자 1,188자 · 낭독 4.8분

「해동고승전」 한 권 「유통편 첫째 — 논과 차례」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한국에 남은 가장 오래된 승전. 각훈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1215년에 지었으니 삼국유사보다 예순여섯 해 앞선다. 고구려에 처음 온 순도, 백제로 건너온 마라난타, 신라에서 목이 떨어지자 흰 젖이 솟았다는 염촉, 세속오계를 일러 준 원광, 그리고 나란타사에 머물다 그곳에서 마친 아리야발마와 혜업까지 열여덟 사람의 전이 실렸다. 진흥왕이 원화를 세우고 화랑을 둔 내력도 여기 적혀 있다.

1영통사 사문 각훈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짓다

〔京北五冠山靈通寺住持教學賜紫沙門〔臣〕覺訓奉宣撰〕

〔서울 북쪽 오관산 영통사 주지이며 교학(教學)이요 자줏빛 가사를 받은 사문 〔신〕 각훈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짓다.〕

2논 — 서쪽에서 난 가르침이 동쪽 끝에 이르기까지

論曰:夫佛陀之為教也。性相常住。悲願洪深。窮三際。遍十方。雨露以潤之。雷霆以鼓之。不行而至。不疾而速。五目不能覩其容。四辯莫能談其狀。其體也無去無來。其用也有生有滅。故我釋迦如來。從兜率天。乘栴檀樓閣。入摩耶胎。以周昭王甲寅四月初八日。遂開右脇。生於淨飯王宮。其夜五色光氣入貫大微。通於西方。昭王問太史蘇由。曰。有大聖人。生於西方。問利害。曰。此時無他。一千年後。聲教被此土焉。始處宮中。亦同世俗。粵四十二年甲申四月八日。佛年三十。踰城出家。遂坐樹成道。轉法利生。如優曇花時一現耳。初說華嚴。次說小乘。或般若.深密。或法華.涅槃。隨機普被。任器方圓。其猶一風而萬竅齊號。孤月而千江皆現。四十九年度脫群品。列子所謂西方有聖人者是也。是時文殊與目連為化人亦𫐨子震旦。佛年七十九。以穆王壬申二月十五日入滅於瓊林。白虹十二道。連夜不滅。王問太史扈多。曰。西方大聖人方滅度耳。於是阿難等結集金言。具載貝牒。經律論戒定慧。爰方啟行。然雜華恒常之說。隱入于虬宮。邪宗蚢肆。異部蛙鳴。既而馬鳴屹起挺生。及陳那護法唱之和之。推邪現正。演義申宗。廣大悉備乎西域。將有待而東驅矣。自佛滅一百十六年。東天竺國阿育王收佛舍利。役使鬼兵。散起八萬四千寶塔。遍閻浮提。時當周敬王二十六年丁未也。塔興周世。經二十二王。至秦始皇三十四年。焚燒典籍。育王寶塔由是隱亡。當是時。沙門利方。十八賢者。賚持佛經。來化咸陽。秦始皇不從而囚之。夜有金剛丈人。破獄出之而去。蓋機緣未熟故也及後漢永平十二年。摩騰.竺法蘭.來儀漢庭。慈雲布於九州。法雨灑於四海。然按霍去病傳云。得休屠王祭天金人。則像設似先入於沙漠矣。又前漢哀帝時。秦景使月氏國。來傳浮屠經教。乃知前漢已行。六十三年而後明帝方感金人夢耳。若我海東。則高句麗解味留王時。順道至平壤城。繼有摩羅難陀。從晉來千百濟國。則枕流王代也。後於新羅第二十三法興王踐祚.梁大通元年丁未三月十一日。阿道來止一善縣。因信士毛禮隱焉。屬有吳使者。香道指其焚點之儀。由是延致王宮。然其教未闡。舍人厭髑。赤心面內勇決國人之疑。噫微夫子吾當從何教也。自爾圓光慈藏之徒。西入傳法。上下信敬。內外奉行。先呼而後應。日益而月增。遂使於三韓及我聖祖葦舊鼎尤尊佛教。凡制度多用佛教。守文繼體之君。傳而不失。惟大祖四代孫大覺國師。於宣王三年乙丑四月。航海求法。東至于洋。導其百派大小始終頓圓之五教。各得其所。復歸于正。然源乎周.派乎漢。汪洋於晉魏。汗漫於隋唐。波之於宋。而淵沄於海東也。都算.佛入滅至今乙亥。二千一百六十四年。滅後第一千一十四年。入後漢至今一千一百五十一年。自順道入句高麗至今八百四十四年矣。且道不自弘。弘之由人。故著流通篇以示于後。按古梁唐宋三高僧傳皆有譯經。以我本朝無翻譯之事故。不存此科也。

논하여 이른다.

무릇 불타의 가르침이 됨은, 성(性)과 상(相)이 늘 머물고 슬픈 원(願)이 넓고 깊어 삼제(三際)를 다하고 시방에 두루 미친다. 비와 이슬로 적시고 우레로 북돋우며, 가지 않아도 이르고 서두르지 않아도 빠르다. 다섯 눈으로도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네 가지 말재주로도 그 형상을 말하지 못한다. 그 몸은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그 씀은 남도 있고 사라짐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석가여래께서 도솔천에서 전단 누각을 타고 마야부인의 태에 드시어, 주나라 소왕 갑인년 사월 초파일에 마침내 오른 옆구리를 열고 정반왕의 궁에서 나셨다. 그날 밤 다섯 빛깔 광기(光氣)가 태미성을 꿰뚫고 서쪽으로 통하였다. 소왕이 태사 소유(蘇由)에게 물으니 「큰 성인이 서쪽에서 나셨습니다」 하였다. 이롭고 해로움을 물으니 「이때에는 다른 일이 없고, 천 년 뒤에 그 소리와 가르침이 이 땅에 미칠 것입니다」 하였다.

처음에는 궁중에 계시어 또한 세속과 같으셨다. 마흔두 해가 지난 갑신년 사월 팔일, 부처 나이 서른에 성을 넘어 출가하시고 마침내 나무 아래 앉아 도를 이루시어 법륜을 굴려 중생을 이롭게 하셨으니, 우담화가 때가 되어 한 번 피는 것과 같았다. 처음에 화엄을 말씀하시고 다음에 소승을 말씀하셨으며, 반야와 심밀을 말씀하기도 하고 법화와 열반을 말씀하기도 하시어, 근기를 따라 두루 입히시고 그릇을 따라 모나고 둥글게 하셨다. 그것은 한 바람에 만 구멍이 한꺼번에 우는 것 같고, 외로운 달이 천 강에 다 비치는 것 같았다. 마흔아홉 해 동안 뭇 무리를 건지셨으니 『열자』에 이른바 「서방에 성인이 있다」는 것이 이것이다. 이때 문수와 목련이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어 또한 진단(震旦)에 다녀갔다.

부처 나이 일흔아홉, 목왕 임신년 이월 십오일에 경림(瓊林)에서 열반에 드셨다. 흰 무지개 열두 줄기가 밤이 새도록 스러지지 않았다. 왕이 태사 호다(扈多)에게 물으니 「서방의 큰 성인이 바야흐로 멸도하셨습니다」 하였다. 이에 아난 등이 금 같은 말씀을 모아 패엽에 갖추어 실으니, 경(經)과 율(律)과 논(論), 계(戒)와 정(定)과 혜(慧)가 이에 비로소 길을 열었다.

그러나 잡화(雜華)의 한결같은 말씀은 규궁(虬宮)에 숨어들고, 삿된 종(宗)이 방자하고 갈라진 부(部)가 개구리처럼 울었다. 이윽고 마명(馬鳴)이 우뚝 일어나고 진나(陳那)와 호법(護法)이 부르고 화답하여 삿된 것을 밀어내고 바른 것을 드러내며 뜻을 펴고 종지를 세우니, 넓고 크게 서역에 다 갖추어져 장차 때를 기다려 동쪽으로 달릴 참이었다.

부처께서 멸도하신 지 백열여섯 해에 동천축국 아육왕이 부처의 사리를 거두고 귀신의 군사를 부려 팔만 사천 보탑을 흩어 세워 염부제에 두루 하였다. 때는 주나라 경왕 이십육년 정미년이다. 탑이 주나라 세상에 일어나 스물두 임금을 지나 진시황 삼십사년에 이르러 전적을 불사르매, 아육왕의 보탑이 이로 말미암아 숨어 없어졌다. 이때에 사문 이방(利方)과 열여덟 어진 이가 불경을 지니고 함양에 와서 교화하였는데 진시황이 따르지 않고 가두었다. 밤에 금강 장인이 있어 옥을 부수고 내보내 갔으니, 대개 기연이 아직 익지 않은 까닭이었다.

후한 영평 십이년에 이르러 마등(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 한나라 조정에 왔다. 자비의 구름이 아홉 고을에 퍼지고 법의 비가 사해에 뿌려졌다. 그러나 「곽거병전」을 보면 휴도왕이 하늘에 제사하던 금인(金人)을 얻었다 하니, 불상은 먼저 사막에 들어온 듯하다. 또 전한 애제 때에 진경(秦景)이 월지국에 사신으로 가서 부도(浮屠)의 경교(經教)를 전하여 왔으니, 이에 전한에 이미 행하여졌고 예순세 해 뒤에야 명제가 금인의 꿈을 꾼 것임을 알겠다.

우리 해동으로 말하면, 고구려 해미류왕 때에 순도가 평양성에 이르렀고, 이어 마라난타가 진나라에서 백제국으로 왔으니 침류왕 때다. 뒤에 신라 제이십삼대 법흥왕이 자리에 오른 뒤 양나라 대통 원년 정미 삼월 십일일에 아도가 일선현에 와서 머물며 신도 모례의 집에 숨었다. 마침 오나라 사신이 있어 향과 도(道)로 그 사르고 점 찍는 법을 일러 주매, 이로 말미암아 왕궁에 맞아들였다. 그러나 그 가르침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사인(舍人) 염촉(厭髑)이 붉은 마음으로 안을 향하여 나라 사람의 의심을 용감히 끊었다. 아, 저분이 아니었더라면 내 무엇을 좇았겠는가.

이로부터 원광과 자장의 무리가 서쪽으로 들어가 법을 전하매 위아래가 믿고 공경하고 안팎이 받들어 행하여, 앞에서 부르면 뒤에서 응하여 날로 더하고 달로 불었다. 마침내 삼한과 우리 성조(聖祖)에 이르러 옛것을 이어 더욱 불교를 높이니, 무릇 제도에 불교를 많이 썼고 글을 지키며 대를 이은 임금들이 전하여 잃지 않았다. 태조의 사대손 대각국사가 선왕 삼년 을축 사월에 바다를 건너 법을 구하고 동쪽으로 큰 바다에 이르러, 백 갈래와 크고 작음과 처음과 끝과 돈(頓)과 원(圓)의 다섯 가르침을 이끌어 저마다 제자리를 얻고 다시 바름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러하니 주나라에서 근원하고 한나라에서 갈라져 진(晉)과 위(魏)에서 넘실대고 수와 당에서 질펀하며 송에서 물결치다가 해동에서 깊이 소용돌이친 것이다.

모두 헤아리면, 부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지금 을해년까지 이천백육십사 년이요, 멸도하신 뒤 천십사 년에 후한에 들어왔으니 지금까지 천백오십일 년이며, 순도가 고구려에 들어온 지 지금까지 팔백사십사 년이다.

또한 도가 스스로 넓혀지는 것이 아니라 넓히는 것은 사람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유통편」을 지어 뒷사람에게 보인다. 살피건대 옛 양(梁)·당(唐)·송(宋) 세 고승전에는 다 「역경(譯經)」이 있으나 우리 본조에는 번역한 일이 없으므로 이 과목을 두지 않는다.

3권1에 실린 이들

順道 亡名 義淵 昙始 摩羅難陀 阿道〔黑胡子元表〕 玄彰 法空 法雲

순도(順道) 망명(亡名) 의연(義淵) 담시(曇始) 마라난타(摩羅難陀) 아도(阿道)〔흑호자·원표〕 현창(玄彰) 법공(法空) 법운(法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