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順道
1순도 — 부견이 사신과 함께 불상과 경문을 보내오다
釋順道。不知何許人也。邁德高標。慈忍濟物。誓志弘宣。周流震旦。移家就機。誨人不倦。句高麗第十七解味留王〔或云小獸林王〕二年壬申夏六月。秦符堅發使及浮屠順道。送佛像經文。於是君臣以會遇之禮。奉迎于省門。投誠敬信。感慶流行。尋遣使迴謝。以貢方物。或說.順道從東晉來。始傳佛法則秦晉莫辨。何是何非。師既來異國。傳西域之慈燈。懸東暆之慧日。示以因果。誘以禍福。蘭薰霧潤。漸漬成習。然世質民淳。不知所以裁之。師雖蘊深解廣。未多宣暢。自摩騰入後漢。至此二百餘年.後四年。神僧阿道至自魏〔存古文。〕始創省門寺。以置順道。記云以省門為寺。今興國寺是也。後訛寫為肖門。又剏伊弗蘭寺。以置阿道。古記云興福寺是也。此海東佛教之始。惜乎.之人也.之德也。宜書竹帛以宣懿績。其文辭不少概見。何哉。然世之使於西方。不辱君命。必侍賢者而能之。則特至他邦肇行未曾有之大事。非其有大智慧.大謀猷。得不思議通力。其何以行之哉。以此知其為異人。斯亦法蘭.僧會之流乎。
석 순도(順道)는 어디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덕을 힘써 높이 드러내고 자비와 참음으로 남을 건졌으며, 널리 펴기를 맹세하고 진단(震旦)을 두루 돌아다녔다. 집을 옮겨 근기에 나아가고 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고구려 제십칠대 해미류왕〔소수림왕이라고도 한다〕 이년 임신 여름 유월에, 진(秦)나라 부견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보내어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다. 이에 임금과 신하가 맞이하는 예로 성문(省門)에서 받들어 맞고, 정성을 바쳐 공경하고 믿으니 기쁨이 흘러 퍼졌다. 이어 사신을 보내어 사례하고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어떤 이는 순도가 동진에서 왔다고도 하니, 불법이 처음 전해진 것을 두고 진(秦)인지 진(晉)인지를 가리지 못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스승이 이미 다른 나라에 와서 서역의 자비로운 등불을 전하고 동이(東暆)에 지혜의 해를 걸어, 인과로 보이고 화복으로 이끄니, 난초의 향과 안개의 젖음처럼 차츰 배어 버릇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이 질박하고 백성이 순박하여 어떻게 마름질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였다. 스승이 비록 깊이 쌓고 넓게 알았으나 많이 펴지는 못하였다. 마등이 후한에 들어온 뒤로 여기에 이르기까지 이백여 년이다.
네 해 뒤에 신승 아도가 위나라에서 왔다.〔옛 글대로 둔다.〕 비로소 성문사(省門寺)를 지어 순도를 두었다. 기록에 이르기를 성문을 절로 삼았다 하니 지금의 흥국사가 그것이다. 뒤에 잘못 옮겨 적어 초문(肖門)이 되었다. 또 이불란사를 지어 아도를 두었다. 옛 기록에 흥복사라 한 것이 그것이다. 이것이 해동 불교의 처음이다.
애석하다. 그 사람됨이여, 그 덕이여. 마땅히 죽백에 적어 아름다운 자취를 펴야 할 것인데 그 글이 조금도 보이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인가. 그러나 세상에서 서방에 사신 가서 임금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는 일은 반드시 어진 이라야 할 수 있다. 하물며 남의 나라에 이르러 일찍이 없던 큰일을 처음으로 행함이겠는가. 큰 지혜와 큰 헤아림이 있고 헤아릴 수 없는 신통한 힘을 얻은 이가 아니면 어찌 이를 행하였겠는가. 이로써 그가 남다른 사람인 줄을 알겠으니, 이 또한 축법란과 강승회의 무리가 아니겠는가.
2찬 — 순도를 전의 첫머리로 삼는다
贊曰:古者三韓鼎峙。開國稱王。彼佛聲光蔑有其兆。及感應道交。賢德聿來。以赴機叩。易曰.感而遂通。天下之故。順道有之矣。始予躬詣所謂興國興福。因有綴文記事之志。無緣以發之。今謬承景命。乃以順道為傳首云。
찬하여 이른다.
옛날 삼한이 솥발처럼 벌여 서서 나라를 열고 왕이라 일컬을 때, 저 부처의 소리와 빛은 그 조짐조차 없었다. 감응의 길이 서로 사귀기에 이르러서야 어진 덕이 마침내 와서 근기의 두드림에 나아갔다. 『역』에 「느껴 마침내 통하는 것이 천하의 까닭이다」 하였으니 순도가 그러하다.
처음에 내가 몸소 이른바 흥국사와 흥복사에 가 보고, 이로 말미암아 글을 엮어 일을 적을 뜻을 두었으나 그것을 낼 인연이 없었다. 이제 외람되이 큰 명을 받들었으므로 순도를 전의 첫머리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