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연義淵
1의연이 업(鄴)에 가서 법상에게 부처의 연대를 묻다
釋義淵。句高麗人也。世系緣致咸莫聞也。自隷剃染。善守律儀。慧解淵深。見聞泓博。兼得儒玄。為一時道俗所歸。性愛傳法。意在宣通。以無上法寶.光顯實難。未辨所因。聞.前齊定國寺沙門法上。戒山慧海。肅物範人。歷跨齊世為都統。所部僧尼不減二百萬。而上綱紀將四十年。當文宣時盛弘釋典。內外闡揚。黑白咸允。景行既彰。逸響遐被。是時句高麗大聖相王高德。乃深懷正信。崇重大乘。欲以釋風被之海曲。然莫測其始末緣由.自西徂東年世帝代。故件錄事條。遣淵乘帆向鄴。啟發未聞。其略曰:釋迦文佛。入涅槃來。至今幾年。又在天竺。經歷幾年。方到漢地。初到何帝。年號是何。又齊陳佛法誰先從爾。至今歷幾年帝。請乞具注。其十地.智度.地持.金剛般若等諸論本。誰述作著論。緣起靈瑞所由有傳記不。謹錄諮審。請垂釋疑。上答云。佛以姬周昭王二十四年甲寅歲生。十九出家。三十成道。當穆王二十四年癸未。王聞西方有化人出。便即西入。至竟不還。以此為驗。四十九年在世。滅度至今齊世武平七年丙申。凡一千四百六十五年。後漢明帝永平。經法初來。魏晉相傳。吳孫權赤烏年。康僧會適吳。方弘教法。地持阿僧伽比丘從彌勒菩薩受得其本。至晉安帝隆安年。曇摩讖於姑藏為河西王沮渠蒙遜譯。摩訶衍論.是龍樹菩薩造。晉隆安年。鳩摩什波至長安為姚興譯。十地論金剛般若論。竝是僧佉弟波藪槃豆造。至魏宣武帝時。菩提留支始翻。上答指證。由緣甚廣。今略舉要。淵服膺善誘。博通幽奧。辯高灸輠。理究連環。曩日舊疑。煥然氷釋。今茲妙義。朗若霞開。西承慧日。東注法源。望懸金不刊。傳群玉而無朽。所謂苦海津濟。法門梁棟者。其惟吾師乎。既返國揄揚大慧。導誘群迷。義貫古今。英聲藉甚。自非天質火拔。世道相資。何以致如斯之極哉。史不敘所終。故不書
석 의연(義淵)은 고구려 사람이다. 집안 내력과 어떻게 이르렀는지는 다 들리지 않는다.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은 뒤로 계율을 잘 지키고 지혜로운 앎이 깊었으며 보고 들은 것이 넓었다. 유학과 현학까지 아울러 얻어 한때의 도인과 속인이 돌아가 의지하는 바가 되었다.
성품이 법 전하기를 좋아하고 뜻이 널리 펴는 데 있었으나, 위없는 법의 보배는 밝게 드러내기가 참으로 어려워 그 말미암은 바를 가릴 수 없었다. 듣건대 앞선 제(齊)나라 정국사(定國寺) 사문 법상(法上)은 계율이 산 같고 지혜가 바다 같아 사물을 엄히 하고 사람의 본이 되어, 제나라 한 세상을 걸쳐 도통(都統)이 되었고 그가 거느린 승려와 비구니가 이백만에 밑돌지 않았으며, 법상이 벼리를 잡은 것이 사십 년에 가까웠다. 문선제 때를 맞아 불전을 성대히 넓히고 안팎으로 드날리매 검은 옷과 흰 옷이 다 우러렀다. 큰 행실이 이미 드러나고 뛰어난 울림이 멀리 미쳤다.
이때 고구려 대승상왕(大丞相王) 고덕(高德)이 바른 믿음을 깊이 품고 대승을 높이 받들어 부처의 기풍으로 바다 모퉁이를 덮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처음과 끝의 연유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온 해와 세대와 임금을 헤아릴 수 없었으므로, 일을 조목으로 적어 의연을 배에 태워 업(鄴)으로 보내어 듣지 못한 것을 여쭙게 하였다.
그 대략은 이러하다. 「석가모니 부처께서 열반에 드신 뒤로 지금까지 몇 해입니까. 또 천축에 계신 것이 몇 해이며 한나라 땅에는 어느 때에 이르렀습니까. 처음 이른 것이 어느 황제이며 연호는 무엇입니까. 또 제나라와 진나라에서 불법이 누구에게서 먼저 시작하였으며 지금까지 몇 임금을 지났습니까. 갖추어 적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십지』·『지도』·『지지』·『금강반야』 따위 여러 논은 그 본을 누가 지었으며, 논을 지은 연기와 신령한 상서로움에 말미암은 전기가 있습니까. 삼가 적어 여쭙습니다. 의심을 풀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법상이 답하여 이르기를, 「부처께서는 주나라 소왕 이십사년 갑인년에 나시어 열아홉에 출가하고 서른에 도를 이루셨으니 목왕 이십사년 계미년에 해당한다. 왕이 서방에 화인(化人)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곧 서쪽으로 들어가서 끝내 돌아오지 않았으니 이로써 증험을 삼는다. 마흔아홉 해를 세상에 계셨다. 멸도하신 뒤 지금 제나라 무평 칠년 병신년까지 무릇 천사백육십오 년이다.
후한 명제 영평에 경법이 처음 왔고 위와 진이 서로 전하였다. 오나라 손권 적오년에 강승회가 오나라에 가서 비로소 교법을 넓혔다. 『지지론』은 아승가 비구가 미륵보살에게서 그 본을 받은 것인데, 진나라 안제 융안년에 담무참이 고장(姑臧)에서 하서왕 저거몽손을 위하여 옮겼다. 『마하연론』은 용수보살이 지은 것으로 진나라 융안년에 구마라집이 장안에 이르러 요흥을 위하여 옮겼다. 『십지론』과 『금강반야론』은 다 승거(僧佉)의 아우 바수반두가 지은 것인데 위나라 선무제 때에 이르러 보리유지가 비로소 옮겼다」 하였다.
법상이 답하여 가리켜 증명한 것이 그 연유가 매우 넓으나 이제 요긴한 것만 간추려 든다.
의연이 마음에 새겨 잘 이끌림을 받아 그윽하고 깊은 데까지 널리 통하였다. 말이 높아 기름 부은 듯 흐르고 이치를 캐어 고리처럼 이었다. 지난날의 묵은 의심이 환하게 얼음 풀리듯 하고, 이제의 묘한 뜻이 노을 걷히듯 밝아졌다. 서쪽에서 지혜의 해를 이어받아 동쪽에 법의 근원을 부었으니, 쇠를 매단 듯 깎이지 않고 옥 무리를 전하여 썩지 않기를 바랄 만하다. 이른바 괴로움의 바다를 건네는 나루요 법문의 들보라 할 것이 오직 우리 스승이 아니겠는가. 나라에 돌아와 큰 지혜를 드날리고 뭇 미혹한 이를 이끄니, 뜻이 예와 이제를 꿰고 뛰어난 이름이 자자하였다. 하늘이 낸 바탕이 빼어나고 세상의 도가 서로 도운 것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사서에 그가 어떻게 마쳤는지를 적지 않았으므로 적지 않는다.
2찬 — 법상이 입으로 일러 준 것을 지남으로 삼는다
贊曰:佛生年月日傳記互出。理難一定。然淵親承法上口授而來。乃與唐法琳辨正論所據若合符節。當以此為指南。然鉅儒吳世文援引古文特啟異論。致有問對。雖辭旨煩麗。亦不足憑也。
찬하여 이른다.
부처께서 나신 해와 달과 날은 전기마다 서로 다르게 나와 이치로 하나를 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의연이 법상에게서 몸소 입으로 받아 온 것이 당나라 법림의 『변정론』이 근거로 삼은 바와 부절을 맞춘 듯하니 마땅히 이것을 지남으로 삼아야 한다. 큰 선비 오세문(吳世文)이 옛 글을 끌어와 유달리 다른 논을 폈고 그로 말미암아 묻고 답한 것이 있으나, 말과 뜻이 번거롭고 화려할 뿐 또한 기댈 만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