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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난타摩羅難陀

해동고승전 海東高僧傳 · 각훈(覺訓) · 1215년 · 단락 2 · 한자 651자 · 낭독 2.6분

「해동고승전」 한 권 「마라난타」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한국에 남은 가장 오래된 승전. 각훈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1215년에 지었으니 삼국유사보다 예순여섯 해 앞선다. 고구려에 처음 온 순도, 백제로 건너온 마라난타, 신라에서 목이 떨어지자 흰 젖이 솟았다는 염촉, 세속오계를 일러 준 원광, 그리고 나란타사에 머물다 그곳에서 마친 아리야발마와 혜업까지 열여덟 사람의 전이 실렸다. 진흥왕이 원화를 세우고 화랑을 둔 내력도 여기 적혀 있다.

1마라난타가 진나라에서 백제로 와 한산에 절을 세우다

釋摩羅難陀.胡僧也。神異感通。莫測階位。約志遊方。不滯一隅。按古記本從竺乾入于中國。附材傳身。徵烟召侶。乘危駕險。任歷艱辛。有緣則隨。無遠不履。當百濟第十四枕流王。即位九年九月。從晉乃來。王出郊迎之。邀致宮中。敬奉供養。稟受其說。上好下化。大弘佛事。共贊奉行。如置郵而傳命。二年春剏寺於漢山。度僧十人。尊法師故也。由是百濟次高麗而興佛教焉。逆數至摩騰入後漢二百八十有年矣。耆老記云。句高麗始祖朱蒙娶高麗女。生二子。曰避流恩祖。二人同志。南走至漢山開國。今廣州是也。本以百家渡河故名百濟。後於公州扶餘郡。前後相次而立都。三韓東南隅海內有倭國。即日本國也。倭之東北有毛人國。其國東北有文身國。其國東二千餘里有大漢國。其國東二萬里有扶桑國。宋時有天竺五僧。遊行至此。始行佛法此皆海中在。惟日本國僧。往往渡海而來。餘皆未詳。夫三韓者。馬韓.卞韓.辰韓.是也。寶藏經云。東北方有震旦國。或云支那。此云多思惟。謂此國人思百端故。即大唐國也。然則三韓在閻浮提東北邊。非海島矣。佛涅槃後六百餘年乃興。中有聖住山。名室梨母怛梨〔唐言三印山〕峻峯高聳。觀世音菩薩宮殿在彼山頂。即月岳也。此處聖住未易殫書。然百濟乃馬韓之謂矣。宋僧傳云。難陀得如幻三昧。入水不濡。投火無灼。能變金石。化現無窮。時當建中。年代相拒而不同。恐非一人之跡也

석 마라난타(摩羅難陀)는 서역 승려다. 신이하게 느껴 통함이 그 지위를 헤아릴 수 없었다. 뜻을 묶어 두루 다니며 한 모퉁이에 머무르지 않았다. 옛 기록을 보면 본디 천축에서 중국으로 들어와, 재목에 붙여 몸을 싣고 연기를 살펴 벗을 부르며, 위태로움을 타고 험한 데를 넘어 온갖 고생을 다 겪었다. 인연이 있으면 따라가고 멀다고 밟지 않는 데가 없었다.

백제 제십사대 침류왕 즉위 구년 구월에 진나라에서 왔다. 왕이 교외에 나가 맞아 궁중으로 모시고 공경히 받들어 공양하며 그 말씀을 받았다. 위에서 좋아하니 아래가 교화되어 불사를 크게 넓히고 다 함께 기려 받들어 행하기를, 역참을 두어 명을 전하는 것 같았다. 이년 봄에 한산(漢山)에 절을 짓고 승려 열 사람을 두었으니 법사를 높인 까닭이다. 이로 말미암아 백제가 고구려 다음으로 불교를 일으켰다. 거슬러 세면 마등이 후한에 들어온 뒤 이백팔십 년이다.

『기로기(耆老記)』에 이르기를, 고구려 시조 주몽이 고구려 여자에게 장가들어 두 아들을 낳으니 비류와 은조라 한다. 두 사람이 뜻을 같이하여 남쪽으로 달려 한산에 이르러 나라를 열었으니 지금의 광주(廣州)다. 본디 백 집으로 물을 건넜으므로 백제라 이름하였다. 뒤에 공주와 부여군에 앞뒤로 이어 도읍하였다.

삼한 동남 모퉁이 바다 안에 왜국이 있으니 곧 일본국이다. 왜의 동북에 모인국(毛人國)이 있고, 그 나라 동북에 문신국(文身國)이 있으며, 그 나라 동쪽 이천여 리에 대한국(大漢國)이 있고, 그 나라 동쪽 이만 리에 부상국(扶桑國)이 있다. 송나라 때에 천축 승려 다섯이 다니다가 여기에 이르러 비로소 불법을 행하였다. 이들은 다 바다 가운데 있다. 오직 일본국 승려만이 이따금 바다를 건너오고 나머지는 다 자세하지 않다.

무릇 삼한이란 마한·변한·진한이 그것이다. 『보장경(寶藏經)』에 이르기를, 동북방에 진단국(震旦國)이 있는데 지나(支那)라고도 하니 여기 말로는 다사유(多思惟)라 한다. 이 나라 사람이 생각이 백 갈래인 까닭이라 하였으니 곧 대당국이다. 그러하니 삼한은 염부제 동북 가장자리에 있고 바다 섬이 아니다. 부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육백여 년에 일어났다. 그 가운데 성주산(聖住山)이 있어 이름을 실리모달리(室梨母怛梨)〔당나라 말로 삼인산(三印山)이다〕라 한다. 가파른 봉우리가 높이 솟았고 관세음보살의 궁전이 그 산꼭대기에 있으니 곧 월악(月岳)이다. 이곳에 성인이 머문 일은 쉬이 다 적을 수 없다. 그러나 백제는 곧 마한을 이르는 것이다.

『송고승전』에 이르기를, 난타가 여환삼매(如幻三昧)를 얻어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에 던져도 타지 않으며 쇠와 돌을 바꾸고 끝없이 변하여 나타났다 하는데, 때가 건중(建中) 연간에 해당한다. 연대가 서로 멀어 같지 않으니 한 사람의 자취가 아닌 듯하다.

2찬 — 때를 타야 힘이 갑절이 된다

贊曰:世之流民。性多𢤱戾。王命有所不從。國令有所不順。一旦聞所未聞。見所未見。即皆革面遷善。修真面內。以順機宜故也。傳所謂出其言善。則千里之外應者。豈非是耶。然攝機之道。要在乘時。故事半古人。功必倍之。

찬하여 이른다.

세상의 떠도는 백성은 성품이 자못 사납고 어그러져, 임금의 명에도 좇지 않는 바가 있고 나라의 영에도 따르지 않는 바가 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듣지 못하던 것을 듣고 보지 못하던 것을 보매 곧 다 낯을 고쳐 착함으로 옮기고 참됨을 닦아 안을 향하였으니, 기틀에 알맞게 따른 까닭이다. 전(傳)에 이른바 「그 말을 냄이 착하면 천 리 밖에서 응한다」는 것이 어찌 이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기틀을 잡는 길은 요컨대 때를 타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일은 옛사람의 절반이로되 공은 반드시 갑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