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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法空

해동고승전 海東高僧傳 · 각훈(覺訓) · 1215년 · 단락 2 · 한자 1,451자 · 낭독 5.8분

「해동고승전」 한 권 「법공」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한국에 남은 가장 오래된 승전. 각훈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1215년에 지었으니 삼국유사보다 예순여섯 해 앞선다. 고구려에 처음 온 순도, 백제로 건너온 마라난타, 신라에서 목이 떨어지자 흰 젖이 솟았다는 염촉, 세속오계를 일러 준 원광, 그리고 나란타사에 머물다 그곳에서 마친 아리야발마와 혜업까지 열여덟 사람의 전이 실렸다. 진흥왕이 원화를 세우고 화랑을 둔 내력도 여기 적혀 있다.

1법공 — 법흥왕과 염촉, 목이 떨어진 자리에서 흰 젖이 솟다

釋法空.新羅第二十三法興王也。名原宗。智證王元子母延帝夫人。王身長七尺。寬厚愛人。乃神乃聖。彰信兆民。三年龍現楊井中。四年始置兵部。七年頒示律令。始制百官朱紫之秩。即位已來。每欲興佛法。群臣噪噪騰口舌。王難之。然念阿道之至願。乃召群臣問曰。聖祖味鄒與阿道。肇宣佛教。大功未集而崩。能仁妙化。遏而不行。朕甚痛焉。當大立伽藍重興像設。其克從先王之烈。其如卿等何。大臣恭謁等諫曰。近者年不登.民不安。加以隣兵犯境。師旅未息。奚暇勞民作役。作無用之屋哉。王㦖左右無信。歎曰.寡人以不德。叨承大寶。陰陽不序。黎民未安。故臣下逆而不從。誰能以妙法之術曉諭迷人者乎。久無應者。至十六年。奧有內史舍人朴厭髑〔或云異次頓或云居次頓〕年二十六。匪直也。人秉心塞淵。奮義見之勇。欲助洪願。密奏曰。陛下若欲興佛教。臣請偽傳王命於有司曰。王欲剏佛事。如此則群臣必諫。當即下勅曰。朕無此令。誰矯命耶。彼等當劾臣罪。若可其秦彼當服矣。王曰彼既頑傲。雖殺卿何服。曰大聖之教天神所奉。若斬小臣。當有天地之異。若果有變誰敢違傲。王曰本欲興利除害。反賊忠臣。可無傷乎。曰殺身成仁。人臣大節。況佛日恒明。皇圖愈永。死之日猶生之年也。王大加嗟賞曰。汝是布衣。意懷錦繡。乃與厭髑。深結洪誓。遂傳宣曰。剏寺於天鏡林。執事者奉勅興功。延臣果面。折逆諍。王曰朕不出令。髑乃昌言。臣固為之。若行此法舉國泰安。苟有益於經濟。雖矯國令何罪。於是大會群臣問之。僉曰今見僧徒。童頭毀服。議論奇詭。而非常道。若忽從之恐有後悔。臣等雖死罪不敢奉詔。髑奮曰。今群臣之言非也。夫有非常之人。而後有非常之事。吾聞佛教淵奧。不可不行。且燕雀焉知鴻鵠之志哉。王曰眾人之言。牢不可破。汝獨異言。不能兩從。遂下吏將誅。髑告天誓曰。我為法就刑。庶興義利。佛若有神。吾死當有異事。及斬其頭。飛至金剛山頂落焉。白乳從斷處湧出。高數十丈。日色昏黑。天雨妙花。地大震動君臣士庶。咸皆上畏天變。下慟舍人重法隕命。相向舉哀而哭。遂奉遺體營葬金剛山禮也。于時君臣盟曰。自今而後。奉佛歸僧。有渝此盟。明神殛之。君子曰。大聖應千百年之運。仁發於祥。義動於瑞。莫不應乎天地亙乎日月動乎鬼神。而況於人乎。夫其自信於道則天地不得為不應然功貴成而業貴廣也。故苟有大賴。則輕泰山於鴻毛。壯哉。得其死所矣。是年下令禁殺生〔按國史及古諸傳商量而述。〕二十一年伐木天鏡林。欲立精舍。掃地得柱礎.石龕及階陛。果是往昔招提舊基。梁棟之用皆出此林。工既告畢。王遜位為僧。改名法空。念三衣瓦鉢。志行高遠。慧悲一切。因名其寺。曰大王興輪寺。以大王所住故也。此新羅剏寺之始。王妃亦奉佛為比丘尼。住永興寺焉。自此啟興大事故。王之諡曰法興。非虛美也。厥後每丁厭髑忌旦。設會於興輪寺。以追其遠及大王宗時。宰輔金良圖信向西方。捨二女。曰花寶.曰蓮寶。為此寺婢。又以逆臣毛尺族類充賤。故二種銅錫至今執役。予遊東都登金剛嶺。見孤墳短碑。慨然不能自止。是日山人會食。問其故。即吾舍人諱日也。亦可謂去滋久.思滋深矣。按阿道碑。法興王出法名法雲.字法空。今按國史及殊異傳。分立二傳。諸好古者請詳撿焉。

석 법공(法空)은 신라 제이십삼대 법흥왕이다. 이름은 원종(原宗)이요 지증왕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연제부인이다. 왕은 키가 일곱 자요 너그럽고 두터워 사람을 아꼈으니, 신령하고 거룩하여 뭇 백성에게 믿음을 드러내었다. 삼년에 용이 양정(楊井)에 나타났고, 사년에 병부를 처음 두었으며, 칠년에 율령을 반포하고 백관의 붉고 자줏빛 나는 차례를 처음 정하였다.

자리에 오른 뒤로 늘 불법을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여러 신하가 시끄럽게 혀를 놀리므로 왕이 어렵게 여겼다. 그러나 아도의 지극한 원을 생각하여 이에 여러 신하를 불러 물었다. 「거룩한 조상 미추왕과 아도가 불교를 처음 폈으나 큰 공이 모이기 전에 돌아가셨고, 부처의 묘한 교화가 막혀 행하여지지 않으니 짐이 몹시 아프게 여긴다. 마땅히 큰 절을 세우고 불상을 다시 일으켜 능히 선왕의 뜻을 좇고자 하니 경들은 어떠한가.」

대신 공알(恭謁) 등이 간하여 말하였다. 「요사이 흉년이 들어 백성이 편안하지 않고, 더구나 이웃의 군사가 지경을 범하여 싸움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느 겨를에 백성을 수고롭게 부려 쓸데없는 집을 짓겠습니까.」

왕은 좌우에 믿을 이가 없음을 딱하게 여겨 탄식하였다. 「과인이 덕이 없으면서 외람되이 큰 자리를 이었다. 음양이 차례를 잃고 백성이 편안하지 않으므로 신하가 거슬러 좇지 않는 것이다. 누가 묘한 법의 술로 미혹한 사람들을 깨우칠 수 있겠는가.」 오래도록 응하는 이가 없었다.

십육년에 이르러 내사사인(內史舍人) 박염촉(朴厭髑)〔이차돈이라고도 하고 거차돈이라고도 한다〕이 있었으니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곧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깊고 그윽하였으며, 의를 떨쳐 보고 나아가는 용기가 있어 큰 원을 돕고자 하였다. 몰래 아뢰었다. 「폐하께서 불교를 일으키고자 하신다면, 신이 거짓으로 왕명을 맡은 관아에 전하여 『왕께서 불사를 지으려 하신다』 하기를 청합니다. 이렇게 하면 여러 신하가 반드시 간할 것입니다. 그때 곧 조칙을 내리시어 『짐에게 이런 명이 없다. 누가 명을 꾸몄느냐』 하십시오. 저들이 마땅히 신의 죄를 따질 것이니, 만약 그 아뢰는 바를 옳다 하시면 저들이 마땅히 복종할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저들이 이미 완고하고 오만하니 그대를 죽인들 어찌 복종하겠는가.」

「큰 성인의 가르침은 하늘 신이 받드는 바입니다. 만약 작은 신을 벤다면 마땅히 하늘과 땅의 이변이 있을 것이니, 과연 변고가 있다면 누가 감히 어기고 오만하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본디 이로움을 일으키고 해를 없애려는 것인데 도리어 충신을 해치게 되니 상함이 없겠는가.」

「몸을 죽여 어짊을 이루는 것은 신하의 큰 절개입니다. 하물며 부처의 해가 늘 밝고 임금의 터전이 더욱 길어진다면, 죽는 날이 오히려 사는 해일 것입니다.」

왕이 크게 감탄하고 기려 말하였다. 「너는 베옷을 입었으되 뜻에 비단을 품었구나.」 이에 염촉과 더불어 깊이 큰 맹세를 맺었다.

마침내 명을 전하기를 「천경림에 절을 지으라」 하니, 일 맡은 이가 조칙을 받들어 일을 일으켰다. 조정 신하들이 과연 낯을 맞대고 거슬러 다투었다. 왕이 「짐이 명을 내리지 않았다」 하니 염촉이 이에 큰소리로 말하였다. 「신이 짐짓 그리하였습니다. 만약 이 법을 행하면 온 나라가 크게 편안할 것입니다. 진실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이로움이 있다면 나라의 명을 꾸민들 무슨 죄이겠습니까.」

이에 여러 신하를 크게 모아 물으니 다들 말하였다. 「지금 승려의 무리를 보면 머리를 아이처럼 깎고 옷을 헐었으며 의논이 기괴하여 떳떳한 도가 아닙니다. 만약 갑자기 좇으면 뒤에 뉘우침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신들은 비록 죽더라도 감히 조칙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염촉이 떨쳐 말하였다. 「지금 여러 신하의 말은 그르다. 무릇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 있은 뒤에야 예사롭지 않은 일이 있다. 내 들으니 불교는 깊고 그윽하여 행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제비와 참새가 어찌 큰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겠는가.」

왕이 말하였다. 「뭇사람의 말이 굳어 깨뜨릴 수 없고 너 홀로 다른 말을 하니 둘 다 좇을 수 없다.」 마침내 관리에게 내려 죽이게 하였다.

염촉이 하늘에 고하여 맹세하였다. 「내가 법을 위하여 형벌에 나아가니 바라건대 의로움과 이로움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부처께 만약 신령함이 있으면 내가 죽은 뒤에 마땅히 남다른 일이 있을 것이다.」 그 머리를 베매 날아서 금강산 꼭대기에 이르러 떨어졌다. 흰 젖이 끊어진 자리에서 솟아올라 높이가 수십 길이었다. 햇빛이 어두워지고 하늘에서 묘한 꽃이 비처럼 내리며 땅이 크게 진동하였다.

임금과 신하와 선비와 백성이 다 위로는 하늘의 변고를 두려워하고 아래로는 사인이 법을 무겁게 여겨 목숨을 버린 것을 슬퍼하여, 서로 마주 보며 소리 내어 울었다. 마침내 남은 몸을 받들어 금강산에 장사하니 예에 맞았다. 이때 임금과 신하가 맹세하였다. 「이제부터 뒤로 부처를 받들고 승려에게 돌아갈 것이니, 이 맹세를 어기는 자는 밝은 신이 죽일 것이다.」

군자는 말한다. 큰 성인이 천백 년의 운수에 응하여 어짊이 상서로움으로 피고 의로움이 조짐으로 움직였으니, 하늘과 땅에 응하고 해와 달에 뻗치고 귀신을 움직이지 않음이 없거늘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무릇 스스로 도를 믿으면 하늘과 땅도 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공은 이룸을 귀히 여기고 업은 넓힘을 귀히 여긴다. 그러므로 진실로 크게 힘입는 바가 있으면 태산을 기러기 털보다 가볍게 여기는 것이니, 장하다, 죽을 자리를 얻었도다.

이해에 명을 내려 산 것 죽이기를 금하였다.〔국사와 옛 여러 전을 살펴 헤아려 적는다.〕

이십일년에 천경림의 나무를 베어 정사를 세우려 하였다. 땅을 쓸다가 기둥 주춧돌과 돌감실과 섬돌을 얻으니 과연 지난날 절의 옛터였다. 들보와 마룻대에 쓸 것이 다 이 숲에서 나왔다. 공사가 이미 끝나매 왕이 자리를 물려주고 승려가 되어 이름을 법공(法空)이라 고쳤다. 세 벌 옷과 질그릇 바리때를 생각하고 뜻과 행실이 높고 멀며 지혜와 자비가 온갖 것에 미쳤다. 이로 말미암아 그 절을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라 하였으니 대왕이 머문 곳인 까닭이다. 이것이 신라에 절을 지은 처음이다. 왕비도 또한 부처를 받들어 비구니가 되어 영흥사에 머물렀다.

이로부터 큰일을 열어 일으켰으므로 왕의 시호를 법흥(法興)이라 하였으니 헛되이 기린 것이 아니다. 그 뒤로 염촉의 제삿날 아침마다 흥륜사에서 모임을 베풀어 그 멂을 좇았다. 대왕종(大王宗) 때에 이르러 재상 김양도(金良圖)가 서방을 믿고 향하여 두 딸 화보(花寶)와 연보(蓮寶)를 내어 이 절의 종으로 삼았다. 또 역신 모척(毛尺)의 겨레붙이를 천인으로 채웠으므로 이 두 갈래가 지금까지 일을 맡고 있다.

내가 동도(東都)에 놀러 가 금강령에 올라 외로운 무덤과 짧은 비를 보고 슬퍼 스스로 그칠 수 없었다. 이날 산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기에 그 까닭을 물으니 곧 우리 사인의 제삿날이었다. 또한 갈수록 오래되고 갈수록 생각이 깊어진다 하겠다. 아도의 비를 보면 법흥왕이 출가하여 법명을 법운(法雲)이라 하고 자를 법공이라 하였다 한다. 이제 국사와 『수이전』을 살펴 두 전으로 나누어 세우니, 옛것을 좋아하는 이들이 자세히 살펴 주기를 청한다.

2찬 — 미혹의 구름을 쓸어 낸 것은 염촉의 힘이다

贊曰:大抵國君與下舉事。可與守成。未可與慮始。加有時之利不利。信無信繫焉。則原宗雖欲剏興佛法。固難朝令而夕行。然承本願力。位據崇高。又賴賢臣啟沃。能以美利利天下。卒與漢明齊驅竝駕。偉矣哉。夫何間言。以梁武比之非也。彼以人主為大同寺奴。帝業墜地。法空既遜讓以固其嗣。自引為沙門。何有於我哉。髑經所謂王比丘殊身同體矣。若乎掃迷雲放性空之慧日挾之以飛者。惟厭髑之力乎。

찬하여 이른다.

대체로 나라의 임금은 아랫사람과 더불어 일을 이룰 때 이룬 것을 지킬 수는 있어도 처음을 꾀할 수는 없다. 더구나 때의 이롭고 이롭지 않음이 있고 믿음과 믿지 않음이 거기 매여 있다. 그러니 원종이 아무리 불법을 일으키고자 하였어도 아침에 명하여 저녁에 행하기는 진실로 어려웠다.

그러나 본디 세운 원의 힘을 이어받고 자리가 높은 데 있었으며, 또 어진 신하가 마음을 열어 도운 데 힘입어 아름다운 이로움으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었으니, 마침내 한나라 명제와 나란히 달렸다 하겠다. 위대하다. 무슨 딴말이 있겠는가.

양 무제에 견주는 것은 그르다. 저는 임금의 몸으로 대동사의 종이 되어 제왕의 업이 땅에 떨어졌으나, 법공은 이미 자리를 사양하여 그 뒤를 굳게 하고 스스로 물러나 사문이 되었으니 내게 무슨 상관이겠느냐 한 것이다. 염촉은 경에 이른바 왕과 비구가 몸은 다르나 한 몸이라는 것이다. 미혹의 구름을 쓸어 내고 성품이 빈 지혜의 해를 놓아 그것을 끼고 날아오른 것으로 말하면, 오직 염촉의 힘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