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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智明

해동고승전 海東高僧傳 · 각훈(覺訓) · 1215년 · 단락 2 · 한자 407자 · 낭독 1.6분

「해동고승전」 한 권 「지명」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한국에 남은 가장 오래된 승전. 각훈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1215년에 지었으니 삼국유사보다 예순여섯 해 앞선다. 고구려에 처음 온 순도, 백제로 건너온 마라난타, 신라에서 목이 떨어지자 흰 젖이 솟았다는 염촉, 세속오계를 일러 준 원광, 그리고 나란타사에 머물다 그곳에서 마친 아리야발마와 혜업까지 열여덟 사람의 전이 실렸다. 진흥왕이 원화를 세우고 화랑을 둔 내력도 여기 적혀 있다.

1지명 — 진나라에 들어가 열 해 만에 돌아와 대덕이 되다

釋智明.新羅人。神解超悟。行止合度。內蘊密行。讚揚他德挽回向己。捨直與人。顒顒卬卬。動有可觀。自竺教宣通於海東。權輿之際未曾大集。英俊間生。奮臂而作。或自悟以逞能。或遠求而命駕。新醫𥚫於舊醫。邪正始分。舊尹告於新尹。師資相授。於是西入中國。飽參而來。繼踵而起。師以命世之才。當真平王之七年秋七月。問津利往。入陳求法。雲遊海陸。梗轉西東。苟有道而有名。悉爰諮而爰詣。如木從繩。如金成器飄然一去。忽爾十霜。學既得髓。心切傳燈。以真平王二十四年九月。隨入朝使還國。王欽風景仰。推重戒律。褒為大德。以勸方來。師岳立嵩□。量含滄溟。炤之以慧月。振之以德風。緇素之徒。是彛是訓。後加大大德。蔚居峻秩。不知所卒。初師入陳後五年。圓光法師入陳八年。曇育入隋七年。隨入朝使惠文俱還。師與智明。竝以高德顯名。當代之才之美。固不相上下者也。

석 지명(智明)은 신라 사람이다. 신령히 깨쳐 뛰어나게 알았고 나아가고 멈춤이 법도에 맞았다. 안으로 은밀한 행을 쌓고 남의 덕을 기려 자기에게로 돌리지 않았으며, 곧은 것을 남에게 내주었다. 우러르고 늠름하여 움직임에 볼 만한 것이 있었다.

천축의 가르침이 해동에 펴진 뒤로 처음 열리던 즈음에는 크게 모인 적이 없었다. 뛰어난 이가 사이사이 나서 팔을 떨치고 일어나, 더러는 스스로 깨쳐 재주를 드러내고 더러는 멀리 구하여 수레를 몰았다. 새 의원이 옛 의원보다 낫고서야 삿된 것과 바른 것이 비로소 갈리며, 옛 수령이 새 수령에게 일러 주고서야 스승과 제자가 서로 주고받는다. 이에 서쪽으로 중국에 들어가 배불리 참구하고 돌아오는 이가 발꿈치를 이어 일어났다.

스승은 세상에 이름날 재주로, 진평왕 칠년 가을 칠월에 나루를 물어 이로운 데로 가고자 진(陳)나라에 들어가 법을 구하였다. 바다와 뭍을 구름처럼 떠돌아 서와 동으로 굴러다니며, 진실로 도가 있고 이름이 있으면 다 찾아가 묻고 나아갔다. 나무가 먹줄을 따르는 것 같고 쇠가 그릇을 이루는 것 같았다. 표연히 한 번 떠난 것이 홀연 열 해가 되었다.

배움이 이미 골수를 얻자 마음이 등불 전하기에 간절하여, 진평왕 이십사년 구월에 조회에 드는 사신을 따라 나라에 돌아왔다. 왕이 그 기풍을 흠모하고 우러러 계율을 무겁게 여기고 기려 대덕(大德)으로 삼아 뒷사람을 권면하였다. 스승은 산악처럼 서서 높았고 그릇이 큰 바다를 머금었다. 지혜의 달로 비추고 덕의 바람으로 떨치니, 검은 옷 입은 이와 흰 옷 입은 이가 이를 떳떳함으로 삼고 가르침으로 삼았다. 뒤에 대대덕(大大德)을 더하여 높은 자리에 성대히 있었다. 어떻게 마쳤는지는 알지 못한다.

처음에 스승이 진나라에 들어간 뒤 다섯 해에 원광 법사가 진나라에 들어가 여덟 해를 있었고, 담육(曇育)이 수나라에 들어가 일곱 해를 있다가 조회에 드는 사신 혜문(惠文)을 따라 함께 돌아왔다. 스승과 지명이 아울러 높은 덕으로 이름을 드러내었으니, 그 시대의 재주와 아름다움이 진실로 서로 위아래가 아니었다.

2찬 — 다른 길로 갔으나 같은 데로 돌아왔다

贊曰:季札觀樂於周室。仲尼問禮於老聃。非始學也。亦有宗矣。德等往還上國。訪道而返。斯亦異類而同歸者歟。

찬하여 이른다.

계찰(季札)이 주나라 왕실에서 음악을 보았고 중니가 노담에게 예를 물었으니, 처음 배운 것이 아니라 또한 종지가 있었던 것이다. 각덕의 무리가 큰 나라를 오가며 도를 찾아 돌아왔으니, 이 또한 갈래는 다르나 같은 데로 돌아간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