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圓光
1원광 — 삼기산의 신, 운문사, 그리고 세속오계
釋圓光.俗姓薜氏。或云朴。新羅王京人。年十三落髮為僧〔續高僧傳云入唐剎削〕神器恢廓。惠解超倫。校涉玄儒。愛染篇章。逸想高邁。厭居情鬧。三十歸隱三岐山影不出洞。有一比丘。來止近地。作蘭若修道。師夜坐誦念。有神呼曰。善哉凡修行者雖眾。無出法師右者。今彼比丘徑修呪術。但惱汝淨念礙我行路。而無所得。每當經歷。幾發惡心。請師誘令移去。若不□住從。當有患矣。明旦師往告彼僧曰。可移居逃害。不然將有不利。對曰。至行魔之所妨。何憂妖鬼言乎。是夕其神來訊。彼答.師恐其怒也。謬曰未委耳。何敢不聽。神曰吾己俱知其情。且可默住而見之。至夜聲動如雷。黎明往視之。有山頹于蘭若壓焉。神來證曰。吾生幾千年。威變最壯。此何足怪。因諭曰。今師雖有自利。而闕利他。何不入中朝得法波及後徒。師曰.學道於中華固所願也。海陸逈阻。不能自達。於是神祥誘西遊之事。乃以真平王十二年春三月。遂入陳遊歷講肆。領牒微言。傳稟成實.涅槃.三藏數論。便投吳之虎丘。攝想青霄。因信士請。遂講成實。企仰請益。相接如鱗。會隋兵入楊都。主將望見塔火。將救之。秖見師被縛在塔前。若無告狀。異而釋之。開皇間攝論肇興。奉佩文言。宣譽京皐。勣業既精。道東須繼。本朝上啟。有勅放還。真平二十二年庚申。隨朝聘使奈麻諸父大舍橫川還國。俄見海中異人出拜請曰。願師為我剏寺常講真詮。令弟子得勝報也。師頷之。師往來累稔。老幼相忻。王亦面申虔敬。仰若能仁。遂到三岐山舊居。午夜彼神來問往返如何。謝曰。賴爾恩護凡百適願。神曰。吾固不離扶擁。且師與海龍結剏寺約。其龍今亦偕來。師問之曰。何處為可。神曰。于彼雲門小當有群鵲啄地。即其處也。詰朝師與神龍偕歸。果見其地。即崛地有石塔存焉。便剏伽藍。額曰雲門而住之。神又不捨冥衛。一日神報曰。吾大期不久。願受菩薩戒。為長往之資。師乃授訖。因結世世相度之誓。又謂曰神之形可得見乎。曰。師可遲明望東方。有大臂貫雲接天。神曰。師見予臂乎。雖有此神。未免無常。當於某日死於某地。請來訣別。師趁期往見。一禿黑狸吱吱而斃。即其神也。西海龍女常隨聽講。適有大旱。師曰汝幸雨境內。對曰。上帝不許。我若謾雨。必獲罪於天。無所禱也。師曰。吾力能免矣。俄而南山朝隮。崇朝而雨。時天雷震即欲罰之。龍告急。師匿龍於講床下講經。天使來告曰。予受上帝命師為逋逃者。主萃不得成命奈何。師指庭中梨木曰。彼變為此樹。汝當擊之。遂震梨而去。龍乃出謝禮。以其木代已受罰。引手撫之。其樹即蘇。真平王三十年。王患句高麗屢侵封疆。欲請隋兵以征敵國。命師修乞師表。師曰。求自存而滅他。非沙門之行也。然貧道在大王之土地。費大王之衣食。敢不唯命是從。乃述以聞。師性虛閑。情多汎愛。言常含笑。慍結不形。為牋表啟書。竝出自胸襟。舉國傾奉。委以治方。乘機敷化。垂範後代。三十五年皇龍寺設百座會。邀集福田講經。師為上首。常僑居加悉寺講演真詮。沙梁部.貴山。箒頂。詣門摳衣告曰。俗士顓蒙無所知識。願賜一言。為終身之誡。師曰有菩薩戒。其別有十。若等為人臣子。恐不能行。今有世俗五戒。一曰事君以忠。二曰奉親以孝。三曰交友以信。四曰臨戰不退。五曰殺生有擇。若等行之無忽。貴山曰。他則既受命矣。但不曉殺生有擇。師曰。春夏月及六齋日不殺。是擇時也。不殺使畜。謂牛馬鷄犬。不殺細物。謂肉不足一臠。是擇物也。過此雖□所□。但不求多殺。此可謂世俗之善戒。貴山等守而勿墮。後國王染患。醫治不□。請師說法。入宮安置。或講或說。王誠心信奉。初夜見師首領。金色如日輪。宮人共覩。王疾立効。法臘既高。乘輿入內。衣服藥石。竝是王手自營用希專福。襯施之資捨充營寺。惟餘衣鉢以此盛宣正法。誘掖道俗。將終之際。王親執慰。囑累遺法兼濟斯民。為說徵詳。建福五十八年。不豫經七日。遺誡清切。端坐終于所住。皇隆寺東北虛中音樂盈空。異香充院。合國悲慶。葬具羽儀同於王禮。春秋九十九。即貞觀四年也。後有兒胎死者。聞諺傳埋于有德人墓側。子孫不絕。乃私瘞之。即日震。胎屍擲于塋外。三岐山浮屠至今存焉。
석 원광(圓光)은 세속 성이 설씨(薜氏)요 박씨라고도 한다. 신라 왕경 사람이다. 나이 열셋에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속고승전』에는 당나라에 들어가 머리를 깎았다고 한다.〕 그릇이 크고 넓었으며 지혜로운 앎이 무리에서 뛰어났다. 현학과 유학을 두루 건너고 글 짓기를 좋아하였다. 뛰어난 생각이 높이 뛰어넘어 시끄러운 데 사는 것을 싫어하였다. 서른에 삼기산에 돌아가 숨어 그림자가 골짜기를 나오지 않았다.
한 비구가 있어 와서 가까운 땅에 머물며 난야(蘭若)를 짓고 도를 닦았다. 스승이 밤에 앉아 외우는데 신이 있어 불러 말하였다. 「좋구나. 무릇 수행하는 이가 비록 많으나 법사보다 나은 이가 없다. 지금 저 비구는 곧장 주술을 닦아 다만 그대의 깨끗한 생각을 어지럽히고 내 다니는 길을 막을 뿐 얻는 바가 없다. 지날 때마다 몇 번이나 나쁜 마음이 일었다. 청컨대 스승이 달래어 옮겨 가게 하라. 만약 그대로 머물러 좇지 않으면 마땅히 근심이 있을 것이다.」
이튿날 아침에 스승이 가서 그 승려에게 말하였다. 「옮겨 살아 해를 피하시오. 그러지 않으면 이롭지 않은 일이 있을 것이오.」 대답하기를 「지극한 행실은 마귀가 막는 바이니 어찌 요망한 귀신의 말을 근심하겠소」 하였다. 그날 저녁에 그 신이 와서 물으니 스승이 저쪽 대답을 전하다가 그 노함을 두려워하여 거짓으로 「아직 말하지 못하였다. 어찌 감히 듣지 않겠는가」 하였다. 신이 말하였다. 「내 이미 그 사정을 다 안다. 잠자코 머물러 보라.」
밤이 되자 소리가 우레처럼 울렸다. 새벽에 가 보니 산이 무너져 난야를 눌러 버렸다. 신이 와서 증험하여 말하였다. 「내가 산 지 몇천 년에 위엄과 변화가 가장 씩씩하니 이것이 무엇이 괴이하랴.」 그러고는 일러 말하였다. 「지금 스승이 비록 스스로 이로운 것은 있으나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모자란다. 어찌 중원에 들어가 법을 얻어 뒷사람에게 미치게 하지 않는가.」 스승이 말하였다. 「중화에서 도를 배우는 것은 진실로 바라는 바이나 바다와 뭍이 아득히 막혀 스스로 이르지 못한다.」 이에 신이 서쪽으로 갈 일을 자세히 일러 이끌었다.
마침내 진평왕 십이년 봄 삼월에 진(陳)나라에 들어가 강석을 두루 다니며 미묘한 말을 받아 적고, 『성실론』과 『열반경』과 삼장과 여러 논을 전해 받았다. 곧 오나라 호구(虎丘)에 들어가 생각을 푸른 하늘에 모았는데, 신도의 청으로 마침내 『성실론』을 강하였다. 우러러 더 배우기를 청하는 이가 비늘처럼 잇대었다. 마침 수나라 군사가 양도(楊都)에 들어왔는데, 장수가 탑에 불이 난 것을 바라보고 구하려 갔더니 다만 스승이 탑 앞에 묶여 있으면서 하소연하는 기색이 없는 것만 보였다. 이상히 여겨 풀어 주었다.
개황 연간에 『섭대승론』이 비로소 일어나매 그 글을 받들어 지니고 서울에서 명예를 드날렸다. 공부가 이미 정밀하고 도가 동쪽으로 이어져야 하였으므로, 본조에서 글을 올리매 조칙으로 돌려보내게 하였다. 진평왕 이십이년 경신에 조회에 든 사신 나마 제부(諸父)와 대사 횡천(橫川)을 따라 나라에 돌아왔다.
조금 뒤에 바다 가운데 남다른 사람이 나와 절하며 청하였다. 「원컨대 스승은 나를 위하여 절을 지어 늘 참된 가르침을 강하여 제자로 하여금 좋은 갚음을 얻게 하소서.」 스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이 오간 것이 여러 해라 늙은이와 어린이가 서로 기뻐하였고 왕도 낯을 마주하여 공경을 폈으니 우러르기를 부처같이 하였다. 마침내 삼기산 옛 거처에 이르렀다. 한밤에 그 신이 와서 오가는 동안 어떠하였는지 물으매 사례하여 말하였다. 「그대의 은혜와 보호에 힘입어 온갖 것이 원대로 되었다.」 신이 말하였다. 「나도 본디 붙들어 돕기를 떠나지 않았다. 또 스승이 바다 용과 절 지을 약속을 맺었는데 그 용이 지금 또한 함께 왔다.」
스승이 물었다. 「어느 곳이 좋겠는가.」 신이 말하였다. 「저 운문(雲門) 작은 데에 마땅히 까치 떼가 땅을 쪼는 곳이 있을 것이니 곧 그곳이다.」 이튿날 아침에 스승이 신과 용과 함께 돌아가 과연 그 땅을 보니, 땅을 파매 돌탑이 있었다. 곧 절을 지어 이름을 운문이라 하고 거기 머물렀다.
신이 또 그윽한 보호를 버리지 않았다. 하루는 신이 알려 말하였다. 「나의 큰 기한이 멀지 않다. 원컨대 보살계를 받아 길이 가는 밑천으로 삼고자 한다.」 스승이 이에 주기를 마쳤다. 이로 말미암아 세세생생 서로 건네주기로 맹세를 맺었다. 또 말하였다. 「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겠는가.」 「스승은 날이 밝기를 기다려 동쪽을 바라보라.」 큰 팔이 구름을 꿰어 하늘에 닿아 있었다. 신이 말하였다. 「스승은 내 팔을 보았는가. 비록 이런 신통이 있으나 덧없음을 벗어나지 못한다. 마땅히 아무 날 아무 곳에서 죽을 것이니 와서 이별하기를 청한다.」 스승이 기한을 좇아 가 보니 검은 여우 한 마리가 낑낑거리다 죽었다. 곧 그 신이었다.
서해 용녀가 늘 따라와 강을 들었다. 마침 크게 가물자 스승이 말하였다. 「그대가 지경 안에 비를 내려 주면 다행이겠다.」 대답하기를 「상제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만약 함부로 비를 내리면 반드시 하늘에 죄를 얻어 빌 곳이 없습니다」 하였다. 스승이 말하였다. 「내 힘으로 면하게 할 수 있다.」 조금 뒤에 남산에 아침 기운이 오르더니 아침나절에 비가 내렸다. 그때 하늘의 우레가 진동하여 곧 벌하려 하매 용이 급함을 고하였다. 스승이 용을 강상(講床) 아래 숨기고 경을 강하였다. 하늘의 사자가 와서 고하였다. 「내가 상제의 명을 받았는데 스승이 달아난 자를 숨겼으니 명을 이룰 수 없으니 어찌합니까.」 스승이 뜰 가운데 배나무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것이 이 나무로 바뀌었으니 그대는 마땅히 그것을 치라.」 마침내 배나무에 벼락을 치고 갔다. 용이 이에 나와 사례하고, 그 나무가 제 대신 벌을 받았으므로 손을 내밀어 어루만지니 그 나무가 곧 되살아났다.
진평왕 삼십년에 왕이 고구려가 자주 봉토를 침노하는 것을 근심하여 수나라 군사를 청하여 적국을 치고자 하매, 스승에게 군사를 비는 표문을 짓게 하였다. 스승이 말하였다. 「제 살기를 구하여 남을 없애는 것은 사문의 행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빈도가 대왕의 땅에 있으며 대왕의 옷과 밥을 쓰니 감히 명을 좇지 않겠습니까.」 이에 지어 아뢰었다.
스승은 성품이 비고 한가하며 정이 두루 사랑함이 많았다. 말에 늘 웃음을 머금었고 성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牋)과 표(表)와 계(啟)와 서(書)를 지음이 다 제 가슴에서 나왔다. 온 나라가 기울여 받들고 다스리는 방도를 맡겼다. 기틀을 타 교화를 펴고 뒷대에 본을 드리웠다.
삼십오년에 황룡사에서 백좌회를 베풀어 복전을 맞아 모으고 경을 강할 때 스승이 으뜸이 되었다. 늘 가실사에 붙어 살며 참된 가르침을 강하였는데, 사량부 귀산(貴山)과 추항(箒頂)이 문에 나아가 옷깃을 여미고 아뢰었다. 「속된 선비가 어리석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원컨대 한 말씀을 내리시어 한평생의 경계로 삼게 하소서.」
스승이 말하였다. 「보살계가 있으니 그 갈래가 열이다. 너희는 남의 신하 된 자식이라 아마 행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세속의 다섯 계가 있으니, 첫째는 임금 섬기기를 충으로 하고, 둘째는 어버이 받들기를 효로 하고, 셋째는 벗 사귀기를 믿음으로 하고, 넷째는 싸움에 임하여 물러서지 않고, 다섯째는 산 것을 죽이되 가림이 있어야 한다. 너희는 이를 행하고 소홀히 하지 말라.」
귀산이 말하였다. 「다른 것은 이미 명을 받았습니다. 다만 산 것을 죽이되 가림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스승이 말하였다. 「봄과 여름의 달과 육재일에 죽이지 않는 것은 때를 가리는 것이다. 부리는 가축을 죽이지 않는 것은 소와 말과 닭과 개를 이르고, 작은 것을 죽이지 않는 것은 고기가 한 점에 차지 않는 것을 이르니, 이것이 물건을 가리는 것이다. 이보다 지나치면 비록 쓸 데가 있더라도 다만 많이 죽이기를 구하지 말라. 이를 세속의 좋은 계라 할 만하다.」 귀산 등이 지키고 떨어뜨리지 않았다.
뒤에 국왕이 병에 걸려 의원이 고치지 못하매 스승에게 법을 설하기를 청하여 궁에 들여 모셨다. 더러 강하고 더러 설하니 왕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믿고 받들었다. 초저녁에 스승의 머리를 보니 금빛이 해바퀴 같았고 궁 안 사람들이 함께 보았다. 왕의 병이 곧 나았다.
법랍이 이미 높아 수레를 타고 안에 들었다. 옷과 약을 다 왕이 손수 마련하여 복을 오로지 하기를 바랐다. 보시로 받은 밑천은 다 내어 절 짓는 데 채우고 오직 옷과 바리때만 남겼다. 이로써 바른 법을 성대히 펴고 도인과 속인을 이끌어 도왔다. 장차 마치려 할 즈음에 왕이 몸소 손을 잡고 위로하며, 남긴 법을 부탁하고 아울러 이 백성을 건지게 하며 조짐을 자세히 말하게 하였다.
건복 오십팔년에 편치 않은 지 이레 만에 남긴 경계가 맑고 간절하였고, 단정히 앉아 머물던 곳에서 마쳤다. 황륭사 동북 허공 가운데 음악이 하늘에 가득하고 남다른 향기가 절에 찼다. 온 나라가 슬퍼하고 기렸다. 장례의 갖춤과 의장이 왕의 예와 같았다. 나이 아흔아홉이니 곧 정관 사년이다.
뒤에 아이가 배 속에서 죽은 이가 있었는데, 속담에 덕 있는 사람의 무덤 곁에 묻으면 자손이 끊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사사로이 묻었다. 그날로 벼락이 쳐서 태아의 주검을 무덤 밖으로 던졌다. 삼기산의 부도가 지금도 남아 있다.
2높은 제자 원안
高弟圓安亦新羅人。機鋒頴銳。性希歷覽。仰慕幽永。遂北趣九都。東觀不耐。又遊西燕北魏。後展帝京。備通方俗。尋諸經論。跨轢大綱。洞清纖旨。高軌光塵。以道素有聞。特進肅瑀請住所造藍田津梁寺。供給四事。不知所終。
높은 제자 원안(圓安)도 신라 사람이다. 기틀의 칼끝이 날카롭고 성품이 두루 보기를 좋아하였다. 그윽하고 길이 가는 것을 우러러 사모하여, 마침내 북으로 구도(九都)에 나아가고 동으로 불내(不耐)를 보았으며 또 서쪽 연나라와 북위에 놀았다. 뒤에 황제의 서울에 이르러 여러 지방의 풍속에 두루 통하고 여러 경과 논을 찾아 큰 벼리를 넘어 밟고 가는 뜻까지 환히 밝혔다. 높은 자취와 빛나는 티끌로 도가 본디 들렸으므로, 특진 소우(肅瑀)가 제가 지은 남전(藍田) 진량사에 머물기를 청하고 네 가지를 대어 주었다. 어떻게 마쳤는지는 알지 못한다.
3찬 — 안팎을 통하여 근기를 따라 법을 베풀다
贊曰:昔遠公不廢俗典。講論之際。引莊老連類。能使人悟解玄旨。若光師之論世俗戒。蓋學通內外。隨機設法之効也。然殺生有擇者。夫豈湯網去三面。仲尼弋不射宿之謂耶。又其動天神返天使則道力固可知也已。
찬하여 이른다.
옛날 혜원(遠公)이 세속의 전적을 버리지 않고 강론할 즈음에 장자와 노자를 끌어와 견주어, 사람으로 하여금 그윽한 뜻을 깨치게 하였다. 원광 스승이 세속의 계를 논한 것도 대개 배움이 안팎에 통하여 근기를 따라 법을 베푼 보람이다.
그러나 산 것을 죽이되 가림이 있다 한 것은, 어찌 탕임금이 그물의 세 면을 걷은 일과 중니가 주살로 잠든 새를 쏘지 않은 일을 이름이 아니겠는가. 또 하늘의 신을 움직이고 하늘의 사자를 돌려보낸 것으로 보면 도의 힘을 진실로 알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