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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함安含

해동고승전 海東高僧傳 · 각훈(覺訓) · 1215년 · 단락 2 · 한자 921자 · 낭독 3.7분

「해동고승전」 한 권 「안함」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한국에 남은 가장 오래된 승전. 각훈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1215년에 지었으니 삼국유사보다 예순여섯 해 앞선다. 고구려에 처음 온 순도, 백제로 건너온 마라난타, 신라에서 목이 떨어지자 흰 젖이 솟았다는 염촉, 세속오계를 일러 준 원광, 그리고 나란타사에 머물다 그곳에서 마친 아리야발마와 혜업까지 열여덟 사람의 전이 실렸다. 진흥왕이 원화를 세우고 화랑을 둔 내력도 여기 적혀 있다.

1안함 — 수나라에 들어가 서역 삼장과 함께 돌아오다

釋安含。俗姓金。詩賦伊飧之孫也。生而覺悟。性乃冲虛。毅然淵懿之量。莫窮涯畛。嘗浪志遊方。觀風私化。真平二十二年約與高僧惠宿為伴。擬將乘桴泛泥浦津。過涉島之下。忽值風浪。回泊此濱。明年有旨簡差堪成法器者。入朝學問。遂命法師允當行矣。乃與聘國使同舟涉海。遠赴天庭。天王引見。皇情大悅。勅配於大興聖寺居住。旬月之間洞解玄旨。於是□山仙掌十驛之程。即日午行迴。誰聞夕鼓。秦嶺帝宮千里之地。即星馳陟降。豈待晨鐘。十乘祕法。玄義真文。五稔之中莫不該覽。越二十七年。爰與于闐沙門毘摩真諦。沙門農加陀等俱來至此。西域胡僧直到雞林。蓋自茲也。崔致遠所撰義相傳云。相真平建福四十二年受生。是年東方聖人安弘法師與西國二三藏。漢僧二人至自唐。注云。北天竺烏萇國毘摩羅真諦年四十四。農伽陀。年四十六。摩豆羅國佛陀僧伽。年四十六。經由五十二國始漢土。遂東來住皇龍寺。譯出旃檀香火星光妙女經。鄉僧曇和筆授。未幾漢僧上表。乞還中國。王許而送之。則安弘者殆和尚是也。又按新羅本記。真興王三十七年。安弘入陳求法。與胡僧毘摩羅等二人迴。上楞伽勝鬘經及佛舍利。自真興末至真平建福。相去幾五十年。何三藏來之前却如是。或恐安含。安弘。實有二人。然其所與三藏不殊。而厥名不殊。今合而立傳。又未詳西國三藏去留所終。和尚返國。以後作《讖書》一卷。字印離合。為之者罕測。宗□幽隱。索理者難究。如云鵂鶹鳥〔碑文隱晦未詳〕散。又云。第一女主葬忉利天。及千里戰軍之敗。四天王寺之成。王子還鄉之歲。大君盛明之年。皆懸言遙記的如目覩。了無差脫。善德王九年九月二十三日。終于萬善道場。享年六十二。是月鄉使從漢而邂逅法師。敷座于碧浪之上。怡然向西而去。真所謂騰空步階坐水行地者矣。翰林薛某奉詔撰碑。其銘云。后葬忉利。建天天寺。怪鳥夜鳴。兵眾旦殪。王子渡關入朝。聖顏五年。限外三十而還。浮沈輪轉。彼我奚免。年六十二。終于萬善。使還海路。師亦交遇。端坐水上。指西而去〔碑文苔蝕字缺十。喪四五。略取可觀擬以成文。〕蓋不待他。亦彷彿其遺跡矣。

석 안함(安含)은 세속 성이 김씨요 시부(詩賦) 이찬의 손자다. 나면서 깨쳤고 성품이 비고 그윽하였다. 굳세고 깊고 아름다운 그릇이라 그 끝을 다할 수 없었다.

일찍이 뜻을 놓아 두루 다니며 풍속을 보고 남몰래 교화하고자 하였다. 진평 이십이년에 고승 혜숙(惠宿)과 짝하기로 약속하고 뗏목을 타고 이포진(泥浦津)에 띄우려 하였는데, 섭도(涉島) 아래를 지나다 홀연 풍랑을 만나 이 물가로 돌아와 대었다.

이듬해에 법의 그릇이 될 만한 이를 가려 뽑아 조정에 들어가 배우게 하라는 뜻이 있었다. 마침내 법사에게 명하여 마땅히 가게 하였다. 이에 나라를 방문하는 사신과 한배로 바다를 건너 멀리 천자의 뜰에 나아갔다. 천왕이 이끌어 보고 임금의 마음이 크게 기뻐하여, 조칙으로 대흥성사(大興聖寺)에 머물게 하였다. 열흘 한 달 사이에 그윽한 뜻을 환히 풀었다. 이에 산과 신선의 손바닥 같은 열 역참의 길을 그날 낮에 다녀왔으니 누가 저녁 북소리를 들었겠으며, 진령(秦嶺)과 제궁(帝宮) 천 리 땅을 별처럼 달려 오르내렸으니 어찌 새벽 종을 기다렸겠는가. 열 수레의 비밀한 법과 그윽한 뜻과 참된 글을 다섯 해 안에 두루 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십칠년을 넘겨, 이에 우전(于闐) 사문 비마진제(毘摩眞諦)와 사문 농가타(農伽陀) 등과 함께 여기에 이르렀다. 서역의 승려가 곧바로 계림에 이른 것은 대개 이때부터다.

최치원이 지은 「의상전」에 이르기를, 의상은 진평 건복 사십이년에 났는데 이해에 동방의 성인 안홍(安弘) 법사가 서역의 삼장 두셋과 한나라 승려 두 사람과 함께 당나라에서 왔다 하고, 주에 이르기를 북천축 오장국의 비마라진제는 나이 마흔넷이요 농가타는 마흔여섯이요 마두라국의 불타승가는 마흔여섯인데, 쉰두 나라를 지나 비로소 한나라 땅에 이르렀고 마침내 동쪽으로 와서 황룡사에 머물며 『전단향화성광묘녀경』을 옮겨 내고 이 나라 승려 담화(曇和)가 받아 적었다 하였다. 얼마 안 되어 한나라 승려가 표를 올려 중국으로 돌아가기를 비니 왕이 허락하여 보냈다. 그렇다면 안홍이란 아마 이 화상일 것이다.

또 『신라본기』를 보면 진흥왕 삼십칠년에 안홍이 진(陳)나라에 들어가 법을 구하고 서역 승려 비마라 등 두 사람과 함께 돌아와 『능가경』과 『승만경』과 부처의 사리를 올렸다 한다. 진흥 말년에서 진평 건복까지는 서로 오십 년 가까이 떨어졌으니, 어찌 삼장이 온 것이 이처럼 앞뒤가 어긋나는가. 혹 안함과 안홍이 실은 두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함께 온 삼장이 다르지 않고 그 이름도 다르지 않으므로 이제 합하여 전을 세운다. 또 서역 삼장이 가고 머문 끝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화상이 나라에 돌아온 뒤에 『참서(讖書)』 한 권을 지었는데, 글자와 인(印)이 흩어지고 합하여 그것을 하는 이가 헤아리는 일이 드물고 종지가 그윽이 숨어 이치를 찾는 이가 캐기 어려웠다. 이를테면 「휴류조(鵂鶹鳥)가〔비문이 흐려 자세하지 않다〕 흩어진다」 하고, 또 「첫째 여자 임금이 도리천에 장사된다」 하고, 천 리 싸움의 군사가 패할 일과 사천왕사가 이루어질 일과 왕자가 고향에 돌아올 해와 큰 임금이 성하고 밝을 해를 다 멀리 미리 말하고 아득히 적었는데, 눈으로 본 듯 꼭 맞아 도무지 어긋나거나 빠짐이 없었다.

선덕왕 구년 구월 이십삼일에 만선도량(萬善道場)에서 마치니 나이 예순둘이었다. 이달에 이 나라 사신이 한나라에서 오다가 법사를 우연히 만났는데, 푸른 물결 위에 자리를 펴고 앉아 기쁜 낯으로 서쪽을 향하여 갔다. 참으로 이른바 허공에 올라 층계를 밟고 물에 앉아 땅을 걷는 이라 하겠다.

한림 설(薛) 아무개가 조칙을 받들어 비를 지었다. 그 명(銘)에 이르기를 「왕후가 도리천에 장사되고 천천사(天天寺)를 세우다. 괴이한 새가 밤에 울고 군사들이 아침에 죽다. 왕자가 관문을 건너 조회에 들어 임금의 얼굴을 다섯 해. 기한 밖 서른에 돌아오다. 뜨고 잠기며 굴러가니 저와 나를 어찌 면하랴. 나이 예순둘에 만선에서 마치다. 사신이 바닷길로 돌아오다 스승 또한 마주치다. 물 위에 단정히 앉아 서쪽을 가리키고 가다」 하였다.〔비문이 이끼에 먹혀 글자가 열은 빠지고 너덧은 없어졌다. 볼 만한 것만 간추려 글로 이루었다.〕 대개 다른 것을 기다릴 것 없이 또한 그 남긴 자취를 어렴풋이 볼 수 있다.

2찬 — 함(含)과 홍(弘) 두 글자에 하나는 잘못이 있는 듯하다

贊曰:師之神通解脫。去住自在。大菩薩之閑事。豈容筆舌於其間哉。然入朝始與西域三藏。手派真源。吹法螺而雨法雨。河潤海陬。真弘法之聖人字也。字經三寫。烏焉成馬。予疑含弘二字之有一錯焉。

찬하여 이른다.

스승의 신통과 해탈, 가고 머무름이 자재한 것은 큰 보살에게 한가한 일이니 어찌 그 사이에 붓과 혀를 용납하겠는가. 그러나 조정에 들어가 처음으로 서역 삼장과 더불어 손수 참된 근원을 갈라 법의 소라를 불고 법의 비를 내려, 냇물이 적시고 바다 모퉁이에까지 미쳤으니 참으로 법을 넓힌 성인의 이름이다.

글자가 세 번 옮겨 적히면 오(烏)가 언(焉)이 되고 마(馬)가 된다. 나는 함(含)과 홍(弘) 두 글자에 하나는 잘못이 있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