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업惠業
「해동고승전」 한 권 「혜업」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한국에 남은 가장 오래된 승전. 각훈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1215년에 지었으니 삼국유사보다 예순여섯 해 앞선다. 고구려에 처음 온 순도, 백제로 건너온 마라난타, 신라에서 목이 떨어지자 흰 젖이 솟았다는 염촉, 세속오계를 일러 준 원광, 그리고 나란타사에 머물다 그곳에서 마친 아리야발마와 혜업까지 열여덟 사람의 전이 실렸다. 진흥왕이 원화를 세우고 화랑을 둔 내력도 여기 적혀 있다.
1혜업 — 부처의 이 나무 아래에서 베껴 쓰다
釋惠業。器局冲深。氣度凝深。巉巖容儀。戌削風骨。直辭邊壤。遽入中華。遂於貞觀年中往遊西域。涉流沙之廣漠。登雪嶺之嶔岑。每以清暉啟曙。即潛伏幽林。皓月淪霄。乃崩波永路。輕生徇法。志切宣通。遂往菩提寺。觀禮聖蹤。又於那爛陀寺。寄跡棲真久之請讀淨名經。因撿唐本。淹通綸貫。梁論下記云。在佛齒樹下。新羅僧惠業寫記。傳云。業終于是寺。年將六十餘矣。所寫梵本竝在那爛陀寺焉。
석 혜업(惠業)은 그릇이 비고 깊었으며 기개와 도량이 엉기어 깊었다. 우뚝한 몸가짐에 깎아 세운 듯한 풍골이었다. 곧바로 변방 땅을 하직하고 곧 중화에 들어갔다.
마침내 정관 연간에 서역에 놀러 가, 흐르는 모래의 넓은 사막을 건너고 눈 덮인 재의 험한 봉우리에 올랐다. 늘 맑은 빛이 새벽을 열면 곧 그윽한 숲에 몸을 숨기고, 흰 달이 하늘에 잠기면 곧 물결을 헤치고 먼 길을 갔다. 목숨을 가벼이 여겨 법을 좇았고 뜻이 널리 펴는 데 간절하였다.
마침내 보리사에 가서 성인의 자취를 우러러 예하였다. 또 나란타사에 자취를 붙여 참됨에 깃들기를 오래 하다가, 『유마경』 읽기를 청하고 이로 말미암아 당나라 본을 살펴 두루 꿰뚫었다. 『양론(梁論)』 아래 적은 글에 이르기를 「부처의 이 나무 아래에서 신라 승려 혜업이 베껴 적다」 하였다.
전하는 말에 혜업이 이 절에서 마쳤는데 나이 예순 남짓이 되었다 한다. 베껴 쓴 범어 본이 아울러 나란타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