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序
1동방을 이(夷)라 한다 — 아홉 갈래의 이름
《王制》云:“東方曰夷。”夷者,柢也,言仁而好生,萬物柢地而出。故天性柔順,易以道御,至有君子、不死之國焉。夷有九種,曰畎夷、於夷、方夷、黄夷、白夷、赤夷、玄夷、風夷、陽夷。故孔子欲居九夷也。
『예기』 왕제(王制)에 이르기를 「동방을 이(夷)라 한다」 하였다. 이란 뿌리라는 뜻이니, 어질어 살리기를 좋아하여 만물이 땅에 뿌리박고 나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천성이 부드럽고 순하여 도로 다스리기 쉬우며, 군자의 나라와 죽지 않는 나라까지 있다.
이에는 아홉 갈래가 있으니 견이(畎夷)·우이(於夷)·방이(方夷)·황이(黄夷)·백이(白夷)·적이(赤夷)·현이(玄夷)·풍이(風夷)·양이(陽夷)라 한다. 그러므로 공자가 구이(九夷)에 살고자 하였다.
2요임금이 우이에 살게 하다, 그리고 삼백 년의 복종과 배반
昔堯命羲仲宅嵎夷,曰暘谷,蓋日之所出也。夏后氏太康失德,夷人始畔。自少康已後,世服王化,遂賓於王門,獻其樂舞。桀為暴虐,諸夷内侵,殷湯革命,伐而定之。至於仲丁,藍夷作寇。自是或服或畔,三百餘年。武乙衰敝,東夷浸盛,遂分遷淮、岱,漸居中土。
옛날 요임금이 희중(羲仲)에게 명하여 우이(嵎夷)에 살게 하고 그곳을 양곡(暘谷)이라 하였으니, 해가 나오는 곳이다. 하후씨 태강(太康)이 덕을 잃자 이인(夷人)이 처음으로 배반하였다. 소강(少康) 뒤로는 대대로 왕의 교화에 복종하여 마침내 왕의 문에 손님으로 들어 그 악무를 바쳤다.
걸(桀)이 사납게 굴자 여러 이가 안으로 침노하였고, 은나라 탕(湯)이 천명을 바꾸어 쳐서 평정하였다. 중정(仲丁) 때에 이르러 남이(藍夷)가 도둑질하였다. 이로부터 복종하기도 하고 배반하기도 하기를 삼백여 년이었다. 무을(武乙)이 쇠하고 무너지자 동이가 차츰 성하여, 마침내 나뉘어 회수(淮水)와 대산(岱山) 쪽으로 옮겨 가 점차 중원 땅에 살았다.
3서언왕에게 서른여섯 나라가 조회하다
及武王滅紂,肅慎來獻石砮、楛矢。管、蔡畔周,乃招誘夷狄,周公征之,遂定東夷。康王之時,肅慎復至。後徐夷僭號,乃率九夷以伐宗周,西至河上。穆王畏其方熾,乃分東方諸侯,命徐偃王主之。偃王處潢池東,地方五百里,行仁義,陸地而朝者三十有六國。穆王後得驥騄之乘,乃使造父御以告楚,令伐徐,一日而至。於是楚文王大舉兵而滅之。偃王仁而無權,不忍斗其人,故致於敗。乃北走彭城武原縣東山下,百姓隨之者以萬數,因名其山為徐山。厲王無道,淮夷入寇,王命虢仲征之,不克,宣王復命召分伐而平之。及幽王淫亂,四夷交侵,至齊桓修霸,攘而卻焉。及楚靈會申,亦來豫盟。後越遷琅邪,與共征戰,遂陵暴諸夏,侵滅小邦。
무왕이 주(紂)를 멸하매 숙신(肅慎)이 와서 돌화살촉과 싸리나무 화살을 바쳤다. 관숙과 채숙이 주나라를 배반하고 이적을 꾀어 부르매 주공이 쳐서 마침내 동이를 평정하였다. 강왕(康王) 때에 숙신이 다시 왔다.
뒤에 서이(徐夷)가 참람하게 왕호를 일컫고 구이를 거느려 종주(宗周)를 쳐서 서쪽으로 하수에 이르렀다. 목왕(穆王)이 그 기세가 한창임을 두려워하여 동방 제후를 나누어 서언왕(徐偃王)에게 주관하게 하였다. 언왕이 황지(潢池) 동쪽에 있으며 땅이 사방 오백 리였는데, 어질고 의로운 정사를 행하매 뭍으로 와서 조회하는 나라가 서른여섯이었다.
목왕이 뒤에 준마의 수레를 얻어 조보(造父)에게 몰게 하여 초나라에 알리고 서(徐)를 치게 하니 하루 만에 이르렀다. 이에 초 문왕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멸하였다. 언왕은 어질기만 하고 권도가 없어 차마 그 백성을 싸우게 하지 못하였으므로 패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북쪽으로 팽성 무원현 동산 아래로 달아나매 백성으로 따르는 자가 만으로 헤아려졌으니, 그로 말미암아 그 산을 서산(徐山)이라 이름 하였다.
여왕(厲王)이 무도하매 회이(淮夷)가 들어와 도둑질하니 왕이 괵중(虢仲)에게 명하여 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고, 선왕(宣王)이 다시 소공(召公)에게 명하여 쳐서 평정하였다. 유왕(幽王)이 음란하매 사이가 번갈아 침노하였는데, 제 환공이 패업을 닦기에 이르러 물리쳐 쫓았다. 초 영왕이 신(申) 땅에서 회맹할 때에도 와서 맹약에 참여하였다. 뒤에 월(越)이 낭야로 옮겨 함께 싸우니, 마침내 여러 하(夏)를 짓밟고 작은 나라를 침노하여 멸하였다.
4위만이 조선에 왕 노릇 하고, 동이가 서울과 통하다
秦併六國,其淮、泗夷皆散為民户。陳涉起兵,天下崩潰,燕人衛滿避地朝鮮,因王其國。百有餘歲,武帝滅之,於是東夷始通上京。王莽篡位,貊人寇邊。建武之初,復來朝貢。時遼東太守祭肜威讋北方,聲行海表,於是濊、貊、倭、韓,萬里朝獻,故章、和已後,使聘流通。逮永初多難,始入寇鈔;桓、靈失政,漸滋曼焉。
진나라가 여섯 나라를 아우르매 그 회수와 사수의 이(夷)가 다 흩어져 백성의 호구가 되었다. 진섭(陳涉)이 군사를 일으켜 천하가 무너지매, 연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조선으로 피하여 그 나라에 왕 노릇 하였다. 백여 해 만에 무제가 이를 멸하니, 이에 동이가 비로소 서울과 통하였다.
왕망이 왕위를 빼앗으매 맥인(貊人)이 변방을 노략하였다. 건무 처음에 다시 와서 조공하였다. 그때 요동태수 채융(祭肜)이 북방에 위엄을 떨쳐 그 소리가 바다 밖까지 갔으므로, 이에 예(濊)와 맥(貊)과 왜(倭)와 한(韓)이 만 리 밖에서 조회하고 바쳤다. 그러므로 장제와 화제 뒤로 사신 왕래가 트였다.
영초 연간에 이르러 어려움이 많아지자 비로소 들어와 노략하였고, 환제와 영제가 정사를 그르치매 점차 번져 갔다.
5중국이 예를 잃으면 사이에서 구한다
自中興之後,四夷來賓,雖時有乖畔,而使驛不絕,故國俗風土,可得略記。東夷率皆土著,憙飲酒歌舞,或寇弁衣錦,器用俎豆。所謂中國失禮,求之四夷者也。几蠻、夷、戎、狄總名四夷者,猶公、侯、伯、子、男皆號諸侯云。
중흥한 뒤로 사이가 와서 손님이 되었다. 때로 어긋나 배반함이 있었으나 사신과 역참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나라의 풍속과 땅의 형편을 대강 적을 수 있다.
동이는 대개 다 붙박여 살며,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하고, 더러는 고깔을 쓰고 비단옷을 입으며, 그릇으로 조두(俎豆)를 쓴다. 이른바 「중국이 예를 잃으면 사이에서 구한다」는 것이다. 무릇 만(蠻)·이(夷)·융(戎)·적(狄)을 통틀어 사이라 하는 것은, 공·후·백·자·남을 다 제후라 부르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