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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루挹婁

후한서 동이열전 後漢書 東夷列傳 · 범엽(范曄) · 5세기 (432~445년 무렵) · 단락 1 · 한자 251자 · 낭독 1.0분

「후한서 동이열전」 한 권 「읍루」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이백 년 동안 중국이 동쪽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5세기 사람이 정리한 글. 부여·읍루·고구려·동옥저·예·삼한·왜가 차례로 나온다. 삼국지 동이전보다 백오십 해쯤 뒤에 엮이면서 더 이른 시대를 다루므로, 같은 자리를 두고 두 책이 무엇을 덜고 무엇을 보탰는지가 나란히 드러난다. 동명이 활로 물을 쳐 부여를 세운 이야기, 히미코가 왕으로 세워진 내력, 마한이 큰 나무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세운 소도가 여기 실렸다.

1읍루 — 옛 숙신의 나라, 조두를 쓰지 않는 자들

挹婁,古肅慎之國也。在夫餘東北千餘里,東濱大海,南與北沃沮接,不知其北所極。土地多山險。人形似夫餘,而言語各異。有五穀、麻布,出赤玉、好貂。無君長,其邑落各有大人。處於山林之間,土氣極寒,常為穴居,以深為貴,大家至接九梯。好養豕,食其肉,衣其皮。冬以豕膏塗身,厚數分,以御風寒。夏則裸袒,以尺布蔽其前後。其人臭穢不潔,作廁於中,圜之而居。自漢興以後,臣屬夫餘。種眾雖少,而多勇力,處山險,又善射,發能入人目。弓長四尺,力如弩。矢用枯,長一尺八寸,青石為鏃,鏃皆施毒,中人即死。便乘船,好寇盜,鄰國畏患,而卒不能服。東夷夫餘飲食類皆用俎豆,唯挹婁獨無,法俗最無綱紀者也。

읍루는 옛 숙신의 나라다. 부여 동북 천여 리에 있고 동으로 큰 바다에 닿았으며 남으로 북옥저와 잇대었는데, 그 북쪽이 어디까지인지는 알지 못한다. 땅에 산이 많고 험하다. 사람의 생김새는 부여와 비슷하나 말은 서로 다르다. 오곡과 삼베가 있고 붉은 옥과 좋은 담비가 난다.

임금이 없고 그 읍락마다 각기 대인(大人)이 있다. 산림 사이에 살며 기후가 몹시 추워 늘 굴에서 사는데 깊은 것을 귀하게 여겨, 큰 집은 사다리 아홉을 이은 데까지 이른다. 돼지 기르기를 좋아하여 그 고기를 먹고 그 가죽을 입는다. 겨울에는 돼지기름을 몸에 바르는데 두께가 몇 푼이나 되어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 여름에는 벌거벗고 한 자 베로 앞뒤를 가릴 뿐이다. 그 사람들은 냄새 나고 더러워 깨끗하지 않으며, 뒷간을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둘러 산다.

한나라가 일어난 뒤로 부여에 신하로 딸렸다. 종족은 비록 적으나 힘센 이가 많고, 험한 산에 살며 또 활을 잘 쏘아 쏘면 사람의 눈을 맞힐 수 있다. 활은 길이가 넉 자인데 힘이 쇠뇌 같다. 화살은 싸리나무를 쓰는데 길이가 한 자 여덟 치요, 푸른 돌로 살촉을 삼고 살촉에는 다 독을 발라 사람이 맞으면 곧 죽는다. 배 타기에 익숙하고 도둑질하기를 좋아하여 이웃 나라가 두려워하고 근심하였으나 끝내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동이의 부여는 마시고 먹는 데 대개 조두를 쓰는데 오직 읍루만이 홀로 없으니, 법과 풍속에 벼리가 가장 없는 자들이다.